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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무신정권과 아타베그(Atabeg) 장기왕조는 같은 것인가?

한부울 2011. 7. 1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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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무신정권과 아타베그(Atabeg) 장기왕조는 같은 것인가?

 

글쓴이:한부울

 

고려시대 무신정권(武臣政權)은 의종 24년(1170)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100년간 무신들에 의해 수립된 정부를 말하며, 그 시기를 무인시대라 일컫는다 가 무신정권(武臣政權)의 정의이다. 그러나 이 무신정권이 가르키는 것은 놀랍게도 셀주크 왕조(Seljuk 1037–1194)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아타베그(Atabeg, Atabek, or Atabey)라고 하는 계승을 전제로 하는 나약하거나 나이어린 왕자들을 보호하고 대신 섭정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위키자료에는 아타베그(atabeg) 또는 아타벡이란 지배자의 어린 아들들 중 한 명을 가르치는 스승을 의미하고 투르크어로 ‘아타’란 ‘아버지’를, ‘벡’이란 ‘수령’을 의미하며 이 칭호는 셀주크 왕조에서 최초로 등장하였으며, 이후에는 투르크계 국가들뿐만 아니라 인근의 왕조들, 아이유브 왕조(Ayyubid dynasty 1171–1341)나 조지아 왕국(Kingdom of Georgia 978-1453)들에서도 쓰였다 하고 있다.

 

이은 자료의 설명은 투르크계 정권의 왕족남자는 사망율이 높은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암살 혹은 처형등 부하나 왕족끼리에 의한 배신 등이 많았기 때문에 자주 미성년의 왕자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었고 그를 지키기 위해 유능한 무장 아미르(Amir, Emir,아라비아어로 사령관, 총독) 등이 후견인으로 지명되어 왕자의 모친과 결혼하여 양아버지가 되거나 왕자를 대신해 섭정으로 군을 지휘하였는데 이것이 아타베그(atabeg)라고 불리게 되었던 것이라 하였으며 그들 중에는 노예(맘루크)나 노예의 아들 신분에서 그대로 군 지휘관으로 취임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였다.

 

특히 셀주크 왕조의 술탄 알프 아르슬란(Alp Arslan, 1063-1072)이 아들 말리크샤 1세(Melik sah I, 1072-1092)의 아타베그로 임명한 페르시아 관료 니잠 알 물크(Nizam al-Mulk 1018-1092)을 재상으로 삼아 제국의 지배력강화를 위해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미성년의 왕자(갓난아기일 때의 상황도 있다.)들은 외견상, 명목상 군주였지만 군이나 정권을 장악할 힘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는 대개 실질적인 권력자인 아타베그에 의해 왕자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고 거기에 아타베그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경우도 있어, 권력은 완전히 아타베그와 그 일족에게 영원히 빼앗겨 버리게 되었다는 보충 설명도 있다.

 

권력을 완전히 아타베그가 장악하는 경우가 바로 이마드 앗딘 장기(Imad ad-Din Zengi, 1127-1146)로 그는 처음에는 셀주크 제국령 모술(mosul:이라크 북부에 있는 도시)의 총독으로서, 그 뒤에 알레포(Aleppo, 시리아 북부의 고대도시 알레포의 주도)를 점령하여 시리아 북부와 그 부근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자신의 왕조를 세웠다. 그의 후손들은 아타벡(atabeg)이라는 칭호를 포기하지는 않았으나, 결코 그 본래의 역할인 셀주크 왕자들의 보호자가 아니었다. 각지의 방계 셀주크 왕조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장기왕조(Zengid, Zengid dynasty, 1127–1250)이다.

이 장기왕조가 고려 무신정권과 너무나도 닮았다.

반도사에서 고려 의종(毅宗, 剛果莊孝大王, 晛 1146-1170)은 무신정변으로 폐위 되었다 하였다.

 

무신정변(武臣政變:1170.8 의종24년)은 상장군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의 휘하장수들이 보현원(普賢院)에서 일으킨 쿠데타이다.

무신의 난 또는 경인의 난이라고도 하며 정변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정중부의 이름을 따서 정중부의 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시발이 되어 무신정권이 100년간 지속되게 하였다.

반도사에서는 이 무신정변의 이유로 고려 의종이 무신보다 문신을 더 높은 대우를 하고 내시가 궁궐을 좌지우지하며 김돈중(金敦中.?∼1170)이 정중부(鄭仲夫)의 수염을 태운 사건과 수박(격구와 함께 고려의 국기)경기에서 대장군 이소응(李紹膺)을 한뢰(韓賴)가 무뢰하게 뺨을 때리는 것으로 무신들의 불만이 고조에 이르러 마침내 시작된 사건이라 했다.

 

이때부터 군주가 아닌 총독(Amir) 또는 대장군이 계승을 해가면 장기적으로 정권을 잡았다는 사실이 같다.

고려도 이유야 어떻게 되었던 무신이 집권한 것이고 장기왕조도 따지고 보면 무신 즉 아타베그 총독(Amir)이 집권한 결과이다.

모두 쿠데타 성격이 강하다.

고려의 무신정권은 1170-1270, 까지 100년을 집권이라 한 것이라 하였고 아타베그(Atabeg) 장기왕조는 (1127-1250) 123년간 유지한 왕조라고 하고 있다.

때문에 성격상 같다 해야 맞다.

그래서 고려의 무신 대장군 신분과 장기왕조의 총독(Amir) 신분은 같다 할 수 있다.

고려연합국체제로 보면 이 대장군의 신분은 바로 몽골제국의 징기스칸을 위시한 3명의 군벌군주와 다를게 없다고 본다.

때문에

최충헌(崔忠獻 1149-1219, 집권:1196-1219), 집권23년

최우(崔瑀 ?-1249, 집권:1219-1249),

최항(崔沆 ?-1257, 집권:1249-1257),

최의(崔竩 ?-1258, 집권:1257-1258)는

 

고려연합 군벌체제-몽골제국(?)

칭기즈 칸(成吉思汗, Činggis Qaγan, 1162-1227,재위:1206-1227) 집권21년

오고타이 칸(窩闊臺, Ögedei Khan 1186-1241, 재위:1229-1241)

구유크 칸(貴由,Güyük or Kuyuk 1206-1248, 재위:1246-1248)

몽케 칸(蒙哥,Möngke Khan 1209-1259, 재위:1251-1259)

이다.

 

최씨정권은 위 몽골제국 계보와 똑 같다고 해야 하고 재위시기 또한 같은 시기에 연결되고 있다.

총독, Amir 대장군의 위치가 어떠한 가를 장기왕조 예를 보아 알 수 있었다.

고려연합체제에 속한 방계왕조에 이러한 총독들이 있었다는 것은 방대한 국가체계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몽골제국이라고 하는 실체도 고려연합체제에 존재한 총독, 몽골계 부족장으로서의 군벌이라고 해석해야 마땅하며 그것을 반도사에서는 최씨정권으로 둔갑시킨 것이라고 풀이 할 수 있다.

물론 고려연합체의 대왕 고종입장에서 보면 실권을 빼앗겨 허수아비 대왕으로 존재한 것이지만 고려 연합체제 전체로 보았을 땐 광대한 영토확장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리라 본다.

또한 고구려를 이은 전통적 영토확장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고려 몽골계가 고려 내에 안주하려는 주류들의 정책적인 면에서 불만과 반발이 있을 수 있고 그에 대한 확실한 나름대로의 각인이 필요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고구려가 확보한 유럽을 다시 지배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때마침 서쪽 유럽에서 고려에 항거하여 일어난 십자군들을 정벌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었을 것이고 십자군으로 동요하는 서쪽 제국들을 다스리기 위한 방책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반도사는 교묘하게 셀주크 방계왕조들의 장기왕조를 본 따 고려역사에 끼워넣기 하면서 고려 연합체 대장군들을 몽골군벌화하여 마치 고려전체를 협박, 압박한 것처럼 만든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와같은 현상은 고려가 연합국체제아래에서 가지는 특수한 체제라는 것이며 장기왕조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이해해야 마땅하다.

고려연합체제에 대한 획기적인 개혁이나 개정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 몽골제국이라고 하는 군벌들은 서양세력들을 저지하기 위해 유럽으로 쳐 들어간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실제로 징기스칸은 북유럽을 쳐 들어갔다.

이러한 부분들을 희석하기 위해 서양사학자들은 이와 같은 특이성을 이용하여 근세기에 존재자체가 의심스러운 십자군을 동원하여 횟칠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없지 않다.

 

십자군 동방침공이 7차례

몽골군 고려침공이 7차례

 

다시 고려 장기왕조로 넘어가 보면

고려 의종(毅宗, 1146-1170)을 폐위한 무신들은 이고(李高1170-1171), 이의방(李義方, 1171-1174), 정중부(鄭仲夫, 1174-1179), 경대승(慶大升, 1179-1183), 이의민(李義旼, 1183-1196)이 차례로 집권하게 되는데 이때가 장기왕조의 신자르(Sinjar, 이라크 북부에 위치함)의 아미르(Amir)-Zengid Emirs of Sinjar (in Northern Iraq) 첫째 총독 이마드 앗딘 장기 2세 (Imad ad-Din Zengi II 1171-1197)와 연결되며 무신정권 초기 시기(1170-1196)와 딱 맞아 떨어지고 있다.[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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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왕조의 통치자들-Zengids (Atabegs of Mosul) (of Turkish origin)

아타베그이자 모술의 아미르-Zengid Atabegs and Emirs of Mosul

이마드 앗딘 장기 1세 Imad ad-Din Zengi I 1127-1146

사이프 앗딘 가지 1세 Saif ad-Din Ghazi I 1146-1149

쿠틉 앗딘 마우두드 Qutb ad-Din Mawdud 1149-1170

사이프 앗딘 가지 2세 Saif ad-Din Ghazi II 1170-1180

이즈 앗딘 마수드 1세 Izz ad-Din Mas'ud 1180-1193

누르 앗딘 아르슬란 샤 1세 Nur ad-Din Arslan Shah I 1193-1211

이즈 앗딘 마수드 2세 Izz ad-Din Mas'ud II 1211-1218

누르 앗딘 아르슬란 샤 2세 Nur ad-Din Arslan Shah II 1218-1219

나시르 앗딘 마흐무드 Nasir ad-Din Mahmud 1219-1234

알레포의 아미르-Zengid Emirs of Aleppo

이마드 앗 딘 장기 1세-(Imad ad-Din Zengi I, 1128-1146)

누르 앗딘 마흐무드-(Nur ad-Din Mahmud, 1146-1174)

앗살리흐 이스마일-(As-Salih Ismail al-Malik, 1174-1181)(정중부1174-1179) 명종

이즈 앗딘 마수드 1세 (1181~1182) (경대승11179-1183)명종

이마드 앗딘 장기 2세-(Imad ad-Din Zengi II, 1181-1183) (경대승)명종

다마스쿠스의 아미르-Zengid Emirs of Damascus

누르 앗딘 마흐무드 (Nur ad-Din Mahmud, 1154-1174)

앗살리흐 이스마일 (As-Salih Ismail al-Malik, 1174) (이의방)

신자르(이라크 북부에 위치함)의 아미르-Zengid Emirs of Sinjar (in Northern Iraq)

이마드 앗딘 장기 2세 (Imad ad-Din Zengi II, 1171-1197) 이고~이의민(1183-1196)

쿠틉 앗딘 무함마드 (Qutb ad-Din Muhammad, 1197-1219)

이마드 앗딘 샤한샤 (Imad ad-Din Shahanshah, 1219-1220)

자랄 앗딘 마흐무드 (Jalal ad-Din Mahmud, 1219-1220)

파스 앗딘 우마르 (Fath ad-Din Umar, 1219-1220)

장기 왕조의 자지라(이라크 북부에 위치함)의 아미르-Zengid Emirs of Jazira (in Northern Iraq)

무이즈 앗딘 산자르 샤 (Mu'izz ad-Din Sanjar Shah, 1180-1208)

무이즈 앗딘 마흐무드 (Mu'izz ad-Din Mahmud, 1208-1241)

마흐무드 알말릭 알자히르 (Mahmud Al-Malik Al-Zahir, 1241-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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