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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려(薜荔, Ficus pumila)는 동아시아대륙이 아니라 아메리카가 원산이다.
글쓴이:한부울
소제:만리장성은 '죽의 장막'시기때 축조되었을 수도 있다.
왜 다른 곳은 다 제쳐두고 신세계라 하여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대륙을 말하는 것일까?
신세계라 함은 그 이전 역사는 없었다고 애써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진실로 사실일까 의문을 가져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원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근세사에서 진실을 찾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역사가 분명하게 존재하였음에도 없었던 것처럼 꾸미려 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구태여 서양역사만을 만들기 위해 신세계 운운했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으며 그렇게 보더라도 너무지나친 과욕에서 나온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때문에 이러한 도발적인 발상이 생성된 것일까?
생각 해 볼 수 있는 것은 근세기 역사의 틀이 근원적인 역사와 궤를 같이 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달리 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한다면 우리가 진실의 역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기본이 되어야 역사의 땅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신세계라고 생각되는 점을 숨길 수가 없다.
그 이전 역사는 신세계의 역사를 도저히 생성시킬 수 없는 역사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벽려(薜荔) 역시 이러한 원칙에 의한 것으로서 의문을 갖게 하는 식물이다.
이것의 원변종(原變種) 학명 'Ficus pumila var. pumila'이 아니라 원종(原種) 학명'Ficus pumila L.'가 근원종 벽려(薜荔)라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벽려의 근원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학명 뿐만아니라 린네(Carl von Linne:1707-1778)의 이름이 붙어 있는 무화나무속(榕屬:Ficus)의 학명은 이것 이외 더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또한 린네 이외에도 스코틀랜드 식물학자(Scottish botanist), 필립 밀러(Philip Miller, 1691-1771)가 명명한 학명도 무시될 수가 없다는 사실도 인지할 수 있다.
Ficus benghalensis L. Banyan Tree
Ficus benjamina L. Weeping Fig
Ficus carica L. Common Fig
Ficus citrifolia Mill. 1768 Wild Banyantree
Ficus nymphaeifolia Mill.
Ficus pumila L. Climbing Fig 薜荔 / 文頭郎
Ficus racemosa L. Gular Fig
Ficus religiosa L. Sacred Bo Tree 세인트루이스
Ficus sycomorus L. Large-fruited Sycamore Fig
Ficus trigonata L. Jaguey Blanco
위는 분주하게 찾아 밝힌 것으로 린네학명과 밀러학명이다.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이 제공한 분포지도에서 아래 린네의 대표학명 Ficus trigonata L. 과 디스커버 라이프(Discover life)분포지도에서 밀러의 대표학명 Ficus nymphaeifolia Mill.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Ficus trigonata L. Jaguey Blanco
Ficus nymphaeifolia Mill.
그 중에서도 가장 벽려의 상징성이 적나라하게 들어나는 종으로서 린네의 학명 'Ficus trigonata L.'를 들 수 있고 이것은 별칭 스페인어로'Jaguey Blanco'라고 하며 'Blanco' 는 흰(white)것을 나타내며 하궤이'Jaguey'는 사전에서 설명하길 '뽕나뭇과의 아메리카의 큰 나무들의 여러 종류의 총칭'이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대륙북부지역을 명확하게 가르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역시 밀러의 대표학명 Ficus nymphaeifolia Mill. 역시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대륙을 표시하고 있다는 점을 동시에 확인 할 수가 있다.
지금까지 벽려(薜荔)의 원산지를 한결같이 동아시아로 보았다는 것은 생물학적판단을 왜곡시킨 것으로서 벽려(薜荔)의 원변종임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또한 들 수가 있다.
native to East Asia
Ficus pumila (creeping fig or "climbing fig")
참 나도 한심스러웠던 것은 벽려(薜荔)의 원변종을 발견하여 조선의 강역인 조선대륙을 발견했다고 흥분하였던 적이 2011.03.15 이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흥분된 상태로 올렸다.
그것을 대단한 발견이라고 까지 하였다.
그럴 만도 한게 그렇게 결과를 얻기에 하루 이틀 날밤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고 기쁘기도 하여 시간가는 줄도 몰랐으며 살아생전 이런 사실을 알고서 죽는다고 하니 여한이 없다라고 까지 하며 극도로 흥분상태에 있었던 기억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한낱 1882년 이후의 강역이라는 사실을..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사는 20세기에 만들어진 것들이 분명하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철종(哲宗:1831-1863,재위1849-1863)과 직계왕족들이 갑작스럽게 몰살을 의심하도록 왕계보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한 혼란 속에서 거대한 삼한역사를 농단하고자 하는 일제와 그것을 동조하던 세력이 등장하였고 김홍집내각이 파생하며 급작스럽게 조선이 청과 혼입되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실마리를 찾을 수도 없도록 엉켜버리게 하여 역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시켜버린 시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뒤 늦게 알아버린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철종과 그의 직계가족들은 천하에 한번도 있을 수 없는 불행한 사태로서 몰살이란 표현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비참한 연속성이라는 사실이다.
철종과 그의 직계가족이 이렇게 몰살되고 난 후 16대 인조(仁祖)의 계비 조대비(趙大妃)에 의해 고종(高宗:1852-1919,재위1863-1907)이 옹립되는데 이 때부터 대조선은 비틀거렸다는 것을 알게 한다.
물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연속성도 철종대에서 끊겨버린다는 사실도 추가가 된다.
친일대신인 김홍집(金弘集, 1842-1896) 일행은 1880년 7월 일본기선 치토세(千歳:Chitose)호 편으로 부산항을 통해 도쿄에 도착하여 도쿄 체재 1개월 동안 이들은 일본 정부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일본의 근대화된 모습을 두루 살피고 유람을 했다고 한다.
김홍집(金弘集)과 로버트 케스코인 세실(Robert Gascoyne-Cecil)
http://blog.daum.net/han0114/17050576
원래 김홍집은 친일성향이 많은 정치인이다.
영국의 내각총리 로버트 케스코인 세실( Robert Gascoyne-Cecil)이 1895년부터 1902년까지 3차례나 내각총리로 재임했다는 사실은 김홍집과 매우 흡사하다고 느껴 위 글을 올려 보았는데 만약 이렇다면 실제로 조선과 영국은 같은 궤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 옳다. 김홍집은 대조선의 해체시기와 절묘하게 맞는 1880년 시기에 중국인(?) 황준헌(黃遵憲)이 저술한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을 소개하여 개화 정책을 적극 추진케 한 공으로 예조 참판에 승진했으나, 개화를 반대하는 유학자들의 배척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책을 소개한 책임을 지고 사직했다고 한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이미 그 전 해에 대조선이 해체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사는 조선이 계속적으로 이은 것처럼 하였는데 1882년 구미 열강의 통상요구에 의한 1882년5월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을 시작으로 1883년11월26일 조독통상조약(大朝鮮國大德國通商條約), 1883년11월26일 조영수호통상조약(朝英修好通商條約), 1884년7월7일 조로수호통상조약(朝露修好通商條約), 1885년7월10일 조이수호통상조약(朝伊修好通商條約), 1886년6월4일조불수호통상조약(朝佛修好通商條約)로 이어지고 임오군란(壬午軍亂:1882)의 뒤처리 등 복잡한 문제에 부딪친 조선 정부에 다시 김홍집은 기용되어 내각을 이끌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재등장의 연속이 로버트 케스코인 세실( Robert Gascoyne-Cecil)의 이력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되었을까? 몇 가지 가정을 해본다.
철종왕가 일족이 몰살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미 대조선은 자체 힘을 잃고 곤두박질 치기 사직할 때라고 볼 수 있고 김홍집이 재 등장하던 시기는 대조선이 해체되고 난 후 후처리 성격이 매우 강함을 알 수 있어 명맥만 유지한체 나라가 제대로 온전 할 턱이 없었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때 대조선이 가지고 있던 지배력은 고스란히 영국이란 국가에게 넘어간 것이라고 풀이 할 수 있다.
또한 1882년부터 동아시아대륙에 아시아중국 즉 신중국이 미영세력에 의해 만들어지던 시기를 감안할 때 행정편제 역시 그런 식으로 동강나기 시작하는데 대륙조선의 행정편제가 어느날 갑자기 청나라 행정편제로 둔갑하였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한반도 행정편제가 되었으며 청나라가 시행한 행정편제가 동아시아대륙에 맞게 별도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으로 동아시아대륙에서 신중국이 탄생하는 것이 된다.
이 모든 혼란은 대륙조선의 황후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시점 을미사변(乙未事變 1895.음력8.20)때를 깃 점까지 계속이어지면 기록에서는 동아시아대륙, 한반도 그렇게 여기저기 혼입된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의심케 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1895년 을미사변이 있기 전까지는 대조선이 해체가 되었다 하여도 법통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삼한역사농단세력들이라 할지라도 섣불리 이렇게 저렇게 혼입을 시키는 짓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점이 분명하게 있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 본다.
1863년 철종 왕조 일가족 모두가 몰살이 된 것처럼 쑥대밭이 되는 것에서 연장선상을 찾는다면 1881년 러시아왕조 니콜라이1세가 폭탄에 맞아 절명하는 것과 고스란히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였던가?
니콜라이2세(Aleksandrovich Nikolai II, 1868-1918)의 일가족 황후를 포함한 1남4녀 모두가 1918년 7월 17일 유대인 출신의 스베들로프(Sverdlov)에 의해 예카테린부르크(ekaterinburg)에서 집단 처형된 것을 보면 그대로 답습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이참에 우리가 두고두고 새겨할 이야기는 구세력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나의 투쟁(Mein Kampf)속에 등장하는 문구로서 "오늘날 서방의 소위 민주주의란 것은 맑시즘의 바로 전 단계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없이 맑시즘적 세계의 도래는 불가능하다... 맑시즘(Maxism)란 신흥종교의 도움으로 유대인이 만약 세상의 만국을 정복한다면 그들의 왕관은 인류의 무덤 앞에 바쳐지는 조화가 될 것이다."라고 한 말이 귀전에 맴돌고 있다.
구세력을 뒤 엎은 것은 미국도 영국도 아닌 바로 독점자본을 노리던 유대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반도사에는 1863년 때 이미 대조선의 혈족을 절단시켜 버렸고 동아시아의 조선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터전을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한번 1881년 대조선이 해체되는 시점을 살펴볼 때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Alexander II,1818-1881재위:185-1881)가 백주 대낮에 암살되었고 또한 같은 동년 9월 19일에 미국 20대 대통령 제임스 카필드(James Abram Garfield, 1831-1881재임:1881-1881)가 엽관운동(獵官運動)에 실패한 자에게 총탄세례를 받고 사망하였는데 내가 보았을 때 대조선에서 주요한 인물들이 모두 이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서 대조선이 결국 해체로 이어지는 수순에서 결정타가 아닌가 한다.
주동자 5인방 Grinevetski, Rysakov, Mikhailov, Emelianov, Helfmann은 공산주의혁명 테러지하조직이었던 인민의 의지파(Narodnaya Volya)의 멤버들로서 다섯 사람 모두 유대인이었다
이들은 이 전부터 끊임없이 1879년 11월 황제의 열차 폭파를 계획했으며 1880년 2월 겨울 궁전폭파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세력을 항해 주요사건들 모두 유대인들이 주도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구세력을 이끌던 히틀러가 치를 떤 것이라고 보여진다.
역사를 따진다면 유대인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이미 로마제정시대부터 기인한 것이다.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로 반도사에서는 고려 팔개금법 훈요십조(八個禁法 訓要十條)또는 훈요십조(訓要十條)其八曰 車峴以南公州江外山形地勢 趨背逆人心亦然彼下州郡人 與朝廷與王侯國戚婚姻得秉國政則或變亂國家或 統合之怨犯 生亂...를 들어 호남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 생겼는데 도대체가 한반도 지형에서 차령이남 그리고 공주강 밖이라고 하면 적용 안될 곳이 없다.
이것은 일제가 한반도내 계층간, 지역간 갈등을 야기시킨 것을 친일파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확대 적용시켜 혼란을 주고 있지만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엄밀하게 따진다면 이것도 유대인들을 경계하라는 말이 아닌가도 여겨진다.
其二曰: 諸寺院皆道詵推占山水順逆而開創. 道詵云: '吾所占定外妄加創造則損薄地德祚業不永.' 朕念後世國王公候后妃朝臣各稱願堂或增創造則大可憂也. 新羅之末競造浮屠衰損地德以底於亡可不戒哉
또 하나 중요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한데 훈요십조 2조에 "모든 사원(寺院)은 도선의 의견에 따라 산천의 길지를 골라 세운 것이다. 도선의 말에 따르면 자기가 선정한 곳 외에 함부로 짓는다면 지덕(地德)을 혜손시켜 국운이 길지 못할 것이라 한다. 내가 생각컨대 후세의 국왕, 공주, 왕후, 대관들이 각기 원당(願堂)이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중축할가 크게 걱정 된다. 신라말기에 야단스럽게 세워 지덕을 훼손시켰고, 결국 나라가 망했다. 이 어찌 경계할 일이 아니겠는가?
즉 도선 스님이 정해 놓은 땅 이외의 곳에 함부로 절(寺院)을 짓지 마라"라고 하는 요지의 경계를 하였는데 사원(寺院)을 사찰이나 교회라고 한다면 고려 땅에 무분별한 세움을 경계한 것인데 현대들어 불교라면 절은 이미 산속으로 다 들어가 버려 도시에 남아 있을 턱이 없고 현재 기독교 교회가 고을마다 곳곳마다 넘쳐나고 있음을 경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반도사는 같은 문장이고 어구이지만 해석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일제가 을미사변(1895)이후 비로소 조선의 끝을 맺었다고 일갈하였던 것을 보면 대조선과는 별도로 대한제국의 이름으로 나라가 존재했었지만 그때까지는 대조선으로서 명분을 갖추고 있었다고도 풀이 할 수가 있다.
즉 대한제국이란 이름으로 다른 지역에 조선과 공존했다는 이야기다.
근세조선이 망한 시기를 1881년으로 보는 것은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당시 세계질서를 좌지우지 하던 힘을 가진 신생세력인 미국인 역사가 리엄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1843-1928)가 그의 저서[Asiatic history]에서 "modern cho-sen 1392-1881"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1882년-1895년까지의 역사가 무슨 역사이고 과연 어딜 근원지라고 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일제에 의하여 대한제국은 김홍집이란 친일내각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고 기록만 한반도 조선으로 둔갑시켜 또 다른 이씨왕조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관습, 습관, 풍속, 음식, 의복,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은 20세기 한반도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또 다른 조선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판단이다.
그러나 비록 한반도에 머무른다 하여 100년 전 대조선의 존재를 어찌 망각하겠는가?
용속(榕屬:Ficus)담쟁이, 이것은 현대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얼마든지 은둔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된다.
임하필기는 한말의 문신 이유원(李裕元:1814~88)이 쓴 수록류(隨錄類)를 모아 엮은 책인데 이것을 보면 필자가 1841년(헌종7) 정시문과에 급제, 예문관검열·규장각대교를 거쳐 1845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의주부윤·함경도관찰사를 지냈고 고종(高宗)초에 좌의정에까지 올랐으나 흥선대원군과 반목하여 1865년(고종2)에 수원유수로 좌천되었는데 필자는 관직생활을 하는 동안 틈틈이 써놓았던 것을 흥선대원군에 밀려나 있는 1871년(고종8)에 거처지 우거지(寓居地)인 천마산(天摩山) 가오곡(嘉梧谷) 임하려(林下廬)에서 책으로 묶은 것이라 하였다.
대조선이 해체되기 꼭 10년전 이야기다.
16편으로 구성되었는데 권두에 정기세(鄭基世)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임하노인과 윤성진(尹成鎭)의 발문이 있다.
특히 임하필기 권35(벽려신지편 薛荔新志編)에 우리나라의 풍토·예법·관습 등을 논한 다음 저자가 존경하는 선유 및 친지들의 일화와 시문등이 수록되었는데 이상한 것은 이권 중앙에 의미심장한 내용을 숨겨놓고 있었다는 사실이며 바로 대조선 관할지 각 도성 내력을 적어 놓았는데 책 목록만 보아서는 이러한 내용이 중간에 적혀있다는 사실을 눈치 첼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고 느껴지는 점이다. 때문에 이 도서가 일제 병탄기에 일제총독부의 세밀한 검색에도 피할 수 있었다고 보이지만 한편으론 이것을 일제가 못 본척 일부러 남겼을 수도 있다고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나온다.
임하노인(林下老人)은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隱退)한 노인이라고 표현되고 있지만 이 노인의 실체는 매우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어쨌던 벽려신지는 청나라 행정편제가 대조선 행정편제라는 사실을 알게 하였다는데 일단 엄청난 가치를 부여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그러한 사실이 기록으로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륙자료들을 추적하여 찾아보니 대륙에서 조차 지금의 각 행정편제 위치가 엉뚱한 곳으로 여기저기 뒤섞여 종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다시 집어보면 1931년 장려화(臧勵龢)등이 편찬한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이 생성되면서 다시 뒤섞어 버렸고 그나마 남은 것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런 사실만 하여도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이야기다.
그런데 한반도를 기준으로 본 팔도 위치가 전혀 맞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동아시아대륙 강역 역시 임하필기가 말하려고 하는 진실된 강역의 설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넘어 고뇌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함경도와 평안도는 아예 중요한 위치를 감추고 있음을 여러면에서 알 수 있게 한다.
비록 벽려신지가 있어 대조선의 존재를 가름할 수 있었지만 결국 그 정확한 위치를 명확하게 확인 할 수 없다는데 실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동아시아도 아니고 한반도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겠는가?
다시말해 기존 대륙 지명들을 국민당 화하객가(華河客家)정치세력들이 동아시아대륙을 중국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여겨 25사 편집을 시작하였으며 그것을 정점으로 무차별 지명이동 시켰을 것이고 때문에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도 필요하였을 것이다.
이어 현대들어 공산정권이 동아시아대륙을 점령하고 문화대혁명기(文化大革命:1966-1976)를 거치면서 완전히 고착화시키는 작업을 완성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좀 더 확대시킨다면 이 10년이란 '죽의 장막'시기에 만리장성을 동아시아대륙에 상징처럼 축조하여 아시아중국으로서 면모를 갖추는 계기를 만들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 10년은 동아시아대륙인들을 도살하면서 만든 것이기에 세계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는 일이 죽의 장막(竹─帳幕:bamboo curtain)뒤에서 일어난 것이다.
만리장성이 실제로 존재한 곳은 아마도 황폐한 터전으로 남아 있을 테지만 이 모든 사실들은 만리장성을 우리삼한인들에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축조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게 한다.
여기서 매우 중요하게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유원(李裕元:1814~1888)은 왜 하필 벽려신지(薛荔新志)라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다 알다시피 신지(新志)라 함은 새롭게 뜻이나 포부(抱負)를 세운다는 의미이다.
무엇을 새롭게 뜻을 세우겠다는 것인가?
벽려(薛荔)는 노박덩굴과의 상록 활엽 덩굴나무 줄사철나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벽려(薜荔) ① 왕모람 ② 벽려 ③ 담쟁이 .
식물 왕모람. 벽려.
동의어 木莲 , 络石
뽕나무과 페밀리로 자웅이주(雌雄異株:dioecism)암꽃과 수꽃이 서로 딴 나무에서 피는 나무.
薜荔的别名:木蓮(植物名實圖考,1670年)、石壁蓮——因薜荔的果實像蓮藕,且攀附在樹木及岩石上,因而得名。風不動——當風吹過薜荔時,它的葉子好像不會隨風飄動。木瓜藤。木饅頭。壁石虎。鬼饅頭。文頭郎。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门 Magnoliophyta
綱: 双子叶植物纲 Magnoliopsida
亞綱: 金缕梅亚纲 Hamamelididae
目: 荨麻目 Urticales
科: 桑科 Moraceae
族: 榕族 Ficeae
屬: 榕属 Ficus
亞屬: 薜荔亞屬 Synoecia
種: 薜荔 F. pumila
위 10가지 종(種)의 게시한 학명은 뽕나무과(桑科:Moraceae), 무화과나무속(榕屬:Ficus)으로서 린네의 학명은 10종(種) 중 8종(種)에 달한다.
초사(楚詞)에 "벽려를 입고 여라를 띠었다[被薜荔兮帶女蘿]"라고 하는 글이 있다
초사(楚辭)는 굴원(屈原:BC340-BC278)등 대표되는 장강(長江)유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남방문학인데 은자(隱者:은둔하고 있는 사람)가 벽려(薛荔)의 옷을 입고 새롭게 뜻을 세운다는 의미가 있다.
임하노인이 은자라면 그 노인이 가진 깊은 뜻을 이 서책에 기록했다는 것을 그대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핵심은 무엇일까?
지금 여기서 풀어헤치는 놀라운 사실들을 말이다.
벽려(薜荔)는 도저히 한반도에서는 생장할 수 없고 생성될 수조차 없는 열대, 아열대식물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앞에서 밝혔다.
그러면 정확하게 어디에 나는 식물인가?
이 식물은 과거 중국 서남부에 서식한다는 것으로 굴원이 존재한 장강이남을 말하고 있으며 온난조습(溫暖潮濕), 따뜻하고 온화(溫和)하며 습기가 많고 축축한 기후에 적합한 식물로 동아시아대륙사는 현재중국 서남부와 일본, 인도등지에 난다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벽려의 원종이 아니라 원변종(原變種, Ficus pumila var. pumila)이 그렇다는 말을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그렇듯 그것은 동아시아대륙 역사일뿐 세계삼한역사관점은 바로 본 블로그에서 글쓴이가 밝힌 강남(江南)이라고 판명이 난 중앙아메리카 목구멍같은 곳, 목과 목덜미란 뜻인 후금(喉衿)이라는 사실을 적용하면 벽려의 변종이 아니라 원종 즉 근원종은 바로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대륙을 근원지라고 공히 가르키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렇다면 현재 원종(原種)이라고 알려진 학명 Ficus pumila L 의 근거지가 놀랍게도 북아메리카이고 남아메리카인 것이다.
그외 린네이름이 붙은 학명은 7종이 더 있다.
하나하나 따져보더라도 위 사실을 크게 벗어나지 않다는 사실 또한 알 수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뒤받침하는 자료들은 모두 미국자료들이다.
바로 DNA 분석을 기초로 하는 것으로서 분포지도는 매우 의미가 강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현재 동아시아대륙사가 꿰 맞춘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여기 적시한 한어자료에도 보듯이 일본이 등장하는데 일본근원지가 중국 서남지역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결국 일본은 운남 땅 어딘쯤인가 아니면 동남아시아 어디쯤에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맞추어도 동남아시아역사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중국과 조선은 같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그곳은 어디란 말인가?
세계삼한역사관에 따라 바로 중앙아메리카가 되어야 맞고 그래야만이 바로 서남쪽에 위치하는 것이 된다.
위에 학명 'Ficus trigonata L. Jaguey Blanco'과, 'Ficus nymphaeifolia Mill.' 두 종을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과 디스커버 라이프(Discover life)가 제공한 분포지도를 보더라도 벽려의 근원지가 동아시아가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한데 이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북아메리카대륙에 특히 미조리주(Missouri)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 City)를 지정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이유원이 은거한 곳은 천마산(天摩山)동쪽이라고 하는데 한국번역원에 따르면 경기도 개성시 북쪽 120킬로미터쯤 되는 곳에 있는 석축 산성이 있고 이것이 대흥산성이라고 하며 이 대흥산은 천마산(天摩山)과 성거산(聖居山)의 두 산 사이에 있다고 하였으니 경기와 천마산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금강산과도 천마산과는 지척간에 있음도 알 수 있다.
다산시문집 제17권
행장(行狀)
계부(季父) 가옹(稼翁)의 행장(行狀)
東遊金剛汎大瀛。又東游丹陽山水。南至俗離。西登天磨。又從洌口貰舟。㴑峽歷觀。臨水樓亭。然其裝辦。足以濟勝而已。無絲竹繁麗以蕩其心。斯皆不踰矩之實也。
동쪽으로 금강산(金剛山)에 노닐었고 대영(大瀛)에서 뱃놀이를 하였다. 또 동쪽으로 단양(丹陽)의 산수에 노닐었고 남쪽으로는 속리산(俗離山)에 이르렀고 서쪽으로 천마산(天摩山)에 올랐다. 또 한강 입구에서부터 배를 세내어 계곡을 따라 물가에 서 있는 누대와 정자를 두루 관람하였다. 그러나 그의 여장은 경치를 구경하기에 족할 뿐이었지 사죽(絲竹)과 요란스러운 미희(美姬)로 마음을 방탕하게 하는 일은 없었으니, 이것은 모두 법도를 넘지 않는 실상이다.
위는 정약용의 시문집에 보면 '동쪽으로 금강산(金剛山)에 노닐었고 대영(大瀛)에서 뱃놀이를 하였으며 또 동쪽으로 단양(丹陽)의 산수에 노닐었고 남쪽으로는 속리산(俗離山)에 이르렀고 서쪽으로 천마산(天摩山)에 올랐다.'라고 나온다.
또한 한강유람경로도 이야기 하는데 금강산, 대영, 단양, 속리산, 천마산, 한강등이 별도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 유람할 수 있는 연결된 경로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즉 서쪽에 있는 천마산은 금강산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금강산이 어디라고 했던가?
바로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북아메리카대륙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n Mountains)남쪽에 치우쳐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실학자 한치윤이 그의 저서 해동역사(海東繹史), 지리고(地理考)에서 한강(漢江)을 옛날에는 열수(列水)라고 하였으며, 혹 여강(驪江)이라고도 하였다는 사실 또한 상기해야 할 이야기다.
한가지 더 붙인다면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을 옛부터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많은 명칭이 있지만 우리사서에 자주 등장하는 오래된 강(老人河:Old Man River) 즉 노강(老江)이라 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다.
즉 벽려신지(薛荔新志)가 생성된 곳이라고 하는 우거지(寓居地) 천마산(天摩山) 가오곡(嘉梧谷) 임하려(林下廬)란 위치는 절대 한반도가 아님을 알 수 있고 그렇다고 대륙이라고 지칭되는 동아시아 대륙 역시 아님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용속(榕屬:Ficus)의 용(榕)은 용나무 용(榕)자이지만 한편으론 복건성(福建省) 복주(福州)의 다른 이름이나, 귀주성(貴州省)에 있는 강 이름으로 불리는 것으로서 전부 강남(江南)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곳은 바로 아메리카대륙으로 열대, 아열대지역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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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려(薜荔 : Ficus pumila)
薜荔(學名:Ficus pumila),是桑科榕屬植物,也是該屬中少見的攀緣藤本植物。多攀附於樹木(尤其樟樹)或岩石上。在溫暖潮濕(따뜻하고 온화(溫和)하며 습기가 많고 축축하다)的氣候最適合生長,廣泛分佈於亞洲地區,如中國西南部、日本及印度等地。
薜荔广泛分布于中国长江以南至广东、海南等省区。
垂直分布海拔50~800m之间,无论山区、丘陵、平原在土壤湿润肥沃的地块都有程度不同地零星野生分布,多攀附在村庄前后、山脚、山窝以及沿河沙洲、公路两侧的古树、大树上和断墙残壁、古石桥、庭园围墙等。
主要分布
生于旷野树上或村边残墙破壁上或石灰岩山坡上。分布于福建、江西、浙江、安徽、江苏、台湾、湖南、广东、广西、贵州、云南东南部、四川及陕西。北方偶有栽培。日本(琉球)、越南北部也有。
薜荔也有以下的名稱:
木蓮、石壁蓮-因薜荔的果實像蓮藕,且攀附在樹木及岩石上,因而得名。
風不動-當風吹過薜荔時,它的葉子好像不會隨風飄動。
木瓜藤
木饅頭
壁石虎
鬼饅頭
文頭郎
薜荔的種子有以下的名稱:
文頭米
廣東王不留行殼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雙子葉植物綱 Magnoliopsida
亞綱: 金縷梅亞綱 Hamamelididae
目: 蕁麻目 Urticales
科: 桑科 Moraceae
族: 榕族 Ficeae
屬: 榕屬 Ficus
亞屬: 薛荔亞屬 Synoecia
種: 薜荔 Ficus pumila
二名法
Ficus pumila L.
亞種
薛荔(原種)Ficus pumila
愛玉子(變種)Ficus pumila var. awkeotsang
薜荔的果實
薜荔剖面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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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林下筆記) 제35권
벽려신지(薜荔新志)
한말의 문신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 쓴 수록류(隨錄類)를 모아 엮은 책.
본문39권 33책 필사본.
권1 〈사시향춘관편 四時香春館編〉에서는 4서5경의 핵심들을 다루었으며,
권2 〈경전화시편 瓊田花市編〉은 유고(諭告)·조(詔)·책(冊)·칙(勅)·제(制)·주소(奏疏)·책문(策問)·묘지문을 비롯하여 고가(古歌)·고시체(古詩體) 등 각종 문체의 특징 등을 설명한 것이다.
권3·4〈금석해석묵편 金石石墨編〉은 종정(鍾鼎)·도량(度量)·천도(泉刀)·경감(鏡鑑)등 주로 중국 금석류,
권5·6 〈괘검여화편 掛劍餘話編〉에서는 중국 병법에 대하여 설명했다.
권7 〈근열편 近悅編〉은 중국 유학자를,
권8〈인일편 人日編〉은 우리나라 선현들의 일화와 유훈(遺訓)등을 기록한 것이다.
권9·10〈전모편 典謨編〉은 임금과 신하의 도리, 현인을 구해 쓰는 법, 백성을 교화하는 문제 등 천하를 경영하는 대도(大道)를 논했다.
권11~24〈문헌지장편 文獻指掌編〉은 총 1,647조목에 이르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부분으로 단군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 왕조 흥망성쇠의 연혁을 소개하고, 관제·정치·국방·토지제도·세제·과거·풍속·전적(典籍)·천문·지리·아악(雅樂) 등 광범한 분야에 걸쳐 폭넓게 설명했다.
권25~30〈춘명일사편 春明逸史編〉에는 연행견문록(燕行見聞錄), 국왕들이 쓴 글, 서화 등에 대한 글들이 실려 있다.
권31·32〈순일편 旬一編〉에서는 각 궁(宮)의 유래, 관직의 변천,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의식, 조신(朝臣)의 장래, 신위(申緯)에 얽힌 비화, 서울의 옛 지명에 대한 유래 등을 적었다.
권33·34〈화동옥삼편 華東玉糁編〉에서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명한 시·서화·도자기·필적(筆跡)·종이·벼루·민간오락 등을 다루었다.
권35〈벽려신지편 薛荔新志編〉에서는 우리나라의 풍토·예법·관습 등을 논한 다음 저자가 존경하는 선유 및 친지들의 일화와 시문 등을 수록했다.
권36〈부상개황고편 扶桑開荒攷編〉은 단군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나라에 나타났던 37개 나라들의 위치와 연혁을 각각 서술했다.
권37〈봉래비서편 蓬萊秘書編〉은 1865년에 전국을 유람했을 때 그가 다닌 명산·고적·사찰 등 경치가 아름답고 유서 깊은 27곳의 경승지에 대해 해설하고 그곳을 지나간 선현묵객들의 시가를 수록한 것이다.
권38〈해동악부편 海東樂府編〉은 기자악(箕子樂)·훈민정음 등 우리나라 시가와 음악의 발달 및 연혁을 설명한 것이다.
권39〈이역죽지사편 異域竹枝詞編〉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나라와 교섭이 있었던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및 서구열강의 지리적 위치·민족·산물 등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 글이다. 각종 제도·문물·인물·역사·시문 등의 간략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961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영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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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려신지(薜茘新志) 서(序)]우리 집은 가오곡(嘉梧谷)에 있는데, 바로 천마산(天摩山)의 동쪽이다. 임하려(林下廬)는 그 벽에 ‘벽려원(薜荔園)’이라 쓰여 있고, 자줏빛 등나무 몇 그루가 바위를 타고 뻗어 있는데, 기이한 향기가 사람의 코를 찌른다.
다산시문집 제17권
행장(行狀)
계부(季父) 가옹(稼翁)의 행장(行狀)
東遊金剛汎大瀛。又東游丹陽山水。南至俗離。西登天磨。又從洌口貰舟。㴑峽歷觀。臨水樓亭。然其裝辦。足以濟勝而已。無絲竹繁麗以蕩其心。斯皆不踰矩之實也。
동쪽으로 금강산(金剛山)에 노닐었고 대영(大瀛)에서 뱃놀이를 하였다. 또 동쪽으로 단양(丹陽)의 산수에 노닐었고 남쪽으로는 속리산(俗離山)에 이르렀고 서쪽으로 천마산(天摩山)에 올랐다. 또 한강 입구에서부터 배를 세내어 계곡을 따라 물가에 서 있는 누대와 정자를 두루 관람하였다. 그러나 그의 여장은 경치를 구경하기에 족할 뿐이었지 사죽(絲竹)과 요란스러운 미희(美姬)로 마음을 방탕하게 하는 일은 없었으니, 이것은 모두 법도를 넘지 않는 실상이다.
임하필기 제13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물의 조종(祖宗) 열둘
아홉째는 청천강(淸川江)인데 그 근원이 강계의 갑현(甲峴)에서 나와서, 문천(文川)을 지나 고성진(古城津)에 이르러 노강(老江)이 된다. 그런데 대령강(大寧江)은 그 근원이 의주의 천마산(天摩山)에서 나와서 해망우(海望隅)의 동쪽에 이르러 노강에서 청천강과 만난다.
임하필기 제13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대흥산성(大興山城) [번역원설명]경기도 개성시 북쪽 120킬로미터쯤 되는 곳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대흥산은 천마산(天摩山)과 성거산(聖居山)의 두 산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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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畿內 경기)행정구역]
1.보정부(保定府)는 지금의 고양(高陽)이고,
2.하간부(河間府)는 교하(交河)이고,
3.장평부(長平府)는 양성(陽城)이고,
4.용릉부(舂陵府)는 남양(南陽)이고,
5.광릉부(廣陵府)는 양주(楊州)이고,
6.서안부(西安府)는 부평(富平)이고,
7.영주부(永州府)는 강화(江華)이고,
8.청성부(淸城府)는 광주(廣州)이고,
9.남웅부(南雄府)는 시흥(始興)이고,
10.영창부(永昌府)는 영평(永平)이고,
11.운양부(鄖陽府)는 죽산(竹山)이다.
[충청도의 행정구역]
1.순천부(順天府)는 지금의 대흥(大興)이고,
2.진강부(鎭江府)는 단양(丹陽)이고,
3.지주부(池州府)는 청양(靑陽)이고,
4.하중부(河中府)는 직산(稷山)이고,
5.운중부(雲中府)는 회인(懷仁)이고,
6.소흥부(紹興府)는 신창(新昌)이고,
7.공주부(贛州府)는 석성(石城)이고,
8.광주부(廣州府)는 연산(連山)이고,
9.중경부(重慶府)는 충주(忠州)이고,
10.천주부(泉州府)는 영춘(永春)이다.
[전라도의 행정구역]
1.순천부(順天府)는 지금의 창평(昌平)이고,
2.청주부(靑州府)는 낙안(樂安)이고,
3.여남부(汝南府)는 광주(光州)이고,
4.서안부(西安府)는 진안(鎭安)이고,
5.연평부(延平府)는 남평(南平)이고,
6.염주부(廉州府)는 영산(靈山)이고,
7.계림부(桂林府)는 전주(全州)이고,
8.동평부(東平府)는 제주(濟州)이고,
9.호주부(湖州府)는 장흥(長興)이다.
[경상도의 행정구역]
1.진정부(眞定府)는 지금의 진주(晉州)
2.광평부(廣平府)는 청하(淸河)이고,
3.회안부(淮安府)는 안동(安東)이고,
4.서안부(西安府)는 함양(咸陽)이고,
5.사명부(四明府)는 봉화(奉化)이고,
6.남강부(南康府)는 안의(安義)이고,
7.남평부(南平府)는 영천(永川)이고,
8.운안부(雲安府)는 양산(陽山)이고,
9.광주부(廣州府)는 남해(南海)이고,
10.광주부(廣州府)는 신녕(新寧)이고,
11.하원부(河源府)는 하양(河陽)이고,
12.태주부(泰州府)는 영해(寧海)이고,
13.운남부(雲南府)는 곤양(昆陽)이고,
14.합서부(陜西府)는 예천(醴泉)이고,
15.기주부(夔州府)는 양산(梁山)이다.
[강원도의 행정구역]
1.산남부(山南府)는 지금의 양양(襄陽)이고,
2.형남부(荊南府)는 강릉(江陵)이고,
3.곡성부(穀城府)는 횡성(橫城)이다.
[황해도의 행정구역]
1.진정부(眞定府)는 지금의 평산(平山)이고,
2.상주부(常州府)는 강음(江陰)이고,
3.엄주부(嚴州府)는 수안(遂安)이고,
4.회남부(淮南府)는 해주(海州)이고,
5.동주부(潼州府)는 안악(安岳)이다.
[평안도의 행정구역]
1.보정부(保定府)는 지금의 안주(安州)이고,
2.진정부(眞定府)는 정주(定州)이고,
3.운중부(雲中府)는 삭주(朔州)이고,
4.천수부(天水府)는 영원(寧遠)이고,
5.임조부(臨洮府)는 위원(渭原)이고,
6.혜주부(惠州府)는 용천(龍川)이고,
7.요동진(遼東鎭)은 의주(義州)이고,
8.대동진(大同鎭)은 철산(鐵山)이고,
9.동천부(潼川府)는 창성(昌城)이다.
[함경도의 행정구역]
1.하중부(河中府)는 지금의 길주(吉州)이고,
2.서안부(西安府)는 삼수(三水)이고,
3.천수부(天水府)는 회령(會寧)이고,
4.침주부(郴州府)는 영흥(永興)이고,
5.광신부(廣信府)는 영풍(永豐)이다.[계속] http://blog.daum.net/han0114/1705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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