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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로 본 상기생(桑寄生:Viscum)이 난 백령, 대청도위치
글쓴이:한부울
세계사는 거대한 건축물과 같다.
4해[四海]지명의 문제점
상기생(桑寄生Loranthus)이 난 백령, 대청도 위치
해류와 곡기생(槲寄生)으로 본 마무리
세계사는 거대한 건축물과 같다.
우리나라 역사 기록들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한반도 지형과 전혀 맞출 수도 없는 상황이 곳곳에 연출되어 역사사실이 전혀 엉뚱한 곳에 머무르게 하였음에도 이것을 우리는 철떡같이 사실로 믿고 있다는 어처구니들을 발견하곤 한다.
본 블로그 글 전편 "겨울폭풍(winter storm)에 의한 해일(海溢)이 조선시대에 있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0 "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겨울해일이 한반도에 발생할 수 없었던 자연환경임에도 역사사서에는 기록으로 버젓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파헤친 경우인데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역사가 무엇인가?
태고적부터 시간이 흐르면서 각 시대마다의 주요 인간들에 의해 발생한 사건들을 기록한 문서라고 보지만 이것이 현저하게 뒤틀어져 있다는 것은 역사 원칙으로 상상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사서는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상황들을 곳곳에 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야말로 혼란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세계삼한역사를 연구하면서 이것들을 어떻게 못본척 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역사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엄중한 현실은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자연이치(大自然理致:natural theory)가 무너지는 것은 여사이고, 자연공도(自然公道)조차 무시한 역사가 바로 한반도 역사라는 것은 크게 볼 때 인류역사적으로도 불행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근세기에 만들어 졌다고 보여지는 한반도 역사만을 한정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반도 역사가 모순이 있는 만큼 근세사가 가지고 있는 모순도 엄청난 것이며 그것은 역사로서의 가치를 상실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계사는 소위 하나의 역사로서 거대한 건물을 수세기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벽돌을 하나하나 만들어 지어 올리는 것이라고 할 때 절대 끊기지 않는 끊길 수도 없는 끝없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근세기 19세기 중엽부터 서양인들에 의해 거대한 건물은 하루아침에 붕괴되고 단절되었으며 다시금 그들 손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을 지금 우리는 근대사라고 하며 이것을 세계사라고 배우고 그것을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처음 기초 주춧돌을 세우고 수많은 시간이 흐름과 함께 하나하나 벽돌을 정성스럽게 쌓아 올리면서 역사원칙에 따라 기울기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동서남북 사방을 맞추어가며 적어도 19세기 중엽까지 공들이게 쌓아 올린 결과 그야말로 유일무일한 인류사라 할 수 있는 위대한 건축물이 완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나는 세계삼한역사라고 이름한다.
하나의 역사가 벽돌 하나 잘못 쌓았다고 하면 그 건물이 온전할 턱이 없다.
하지만 인류역사상 가장 찬란하고 위대했던 건축물은 이기에 빠진 해적출신들에 의해 근세기에 참담하게 무너뜨려졌다는 비극적인 역사사실마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릴 한없이 슬프게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제세이화사상을 바탕으로 홍익인간의 위대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죄다 헐어버리고 이기의 탐욕을 낳는 퇴락한 물질문명이 주는 휘황찬란한 새 건축물을 쌓아 올려 그것을 오늘날 세계사라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서세우월주의에 빠진 서양사가 주도된 근세사일뿐이며 어설픈 목수들이 곳곳에 날림공사를 한 결과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역사로서 온전할 수가 없다 할 것이다.
벽돌하나 삐둘하게 놓을 수도 없고 빠뜨릴 수도 없으며 하늘의 이치에 따라 반듯하게 건물을 수천년 동안 지어 올려 천리를 거스리지 않고 진리를 숭앙하며 원칙을 지켰고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건만 이것을 조각조각 내면서 일시에 뭉게 시켰으니 인류가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받은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하나의 벽돌이 한반도에 쌓여지는 것은 한반도 만의 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의 한 부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이 현저하게 잘못되었다고 판단된다는 것은 결국 세계사 전체가 근원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사실이다.
자연의 이치가 곧 진리이며, 순리이면서 근원적 진리로서 절대로 낳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아서 불생불멸불증불감(不生不滅不增不減)이란 뜻으로 불교에서 불변하다 또는 변함이 없다라고 하는 여여자연(如如自然)이라 하였듯이 이처럼 귀중한 원칙의 자연이치는 곧 하늘이라할 수 있고 거대한 질서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우주라고 하지만 이것을 인류가 종교로 받아들인 것이고 이것을 성스럽게 숭상하고 믿어 왔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대자연의 이치가 인류사와 직결된다는 엄중한 사실 때문일 것이다.
대자연의 이치는 인류가 지켜야 할 역사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탐욕과 이기에 눈이 먼 서세에 의해 하나의 역사는 하늘을 반하는 악행(sin against heaven)과 진실을 망각하게 하는 역사만들기에 광분하여 철저하게 훼손이 되었다는 것은 인류사에서 크나큰 오점을 남긴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4해[四海]지명의 문제점
동아시아대륙의 황해에 있는 발해만은 그야말로 폐쇄성이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고 만(灣)이란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모든 사서에 자주 접하던 발해(渤海)라는 지명이 이렇듯 물이 막혔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의 의미가 분명히 아닐 것이었음에도 정확하지 않는 근세기부터 지속적으로 발해만이라고 지칭하는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협소한 만(灣)같은 바다를 우리나라 한반도 역사에서는 황해(黃海)라고 하고 서해(西海)라고 하였으며 동아시아대륙사에서는 또한 동해(東海)라고 하거나 황해(黃海)도 부족하여 그곳을 발해(渤海)라하여 마구 뒤섞어 부르고 있다는 사실은 거대한 중국사란 이름의 역사로 볼 때 많은 모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도대체 지형학적으로 보면 분명 폐쇄성이 있는 만(灣)일 뿐인데 왜 이렇게 까지 지명을 만들어서야만 했을까?
이러한 모순점을 안고 있는 곳이기에 근세기에 신중국을 만들면서 부득불 상해를 깃점으로 하여 동지나해(東中國海:東支那海)라고 한 것은 그 만큼 역사적으로 올바르게 정립되지 못하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한어자료 중국문화상식(中國文化常識)에 보면 사해[四海]를 발해(渤海), 황해(黃海), 동해(東海), 남해(南海)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현재 동아시아대륙 지형상 보면 황해(黃海), 동해(東海)가 중복이 되고 있으며 난데 없이 발해(渤海)를 북해(北海)라고 해석된다는 사실이다.
중국사가 얼마나 빈곤스럽게 느껴지는 것인가?
꿰맞추었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西海是青海湖,東海是東中國海,北海是貝加爾湖,南海是南中國海
위 현재 자료의 설명처럼 지금은 신중국에서 서해(西海)를 청해호(青海湖)라고 하고 동해(東海)를 상해(上海:Shanghai)깃점 남쪽바다를 동중국해(東中國海)라고 하였으며 북해(北海)를 바이칼호(貝加爾湖:Baikal Lake)라 하였으며 남해(南海)를 남중국해(南中國海:南支那海)로 통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꿰맞춘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복잡할 이유가 없다.
정말 중국(中國)이었다면 사해(四海)는 단순한 것으로 사방(四方)과 같이 쓰는 명칭이라 할 때 온 천하, 세계를 나타내는 명칭이며 옛날, 중국 사람들은 바다가 사방으로 중국을 둘러싸고 있다고 여긴데서 온 명칭이라는 것을 바보아니면 쉽게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절대로 이런 식의 복잡성을 띨 수 없다는 것에서도 결국 동아시아대륙은 중국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四海,即东海,西海[现今的黄海],南海,北海[现今的渤海]
또한 한어자료에는 위의 설명도 존재하는데 사해(四海)에서 서해(西海)를 현재 황해(现今的黄海)라고 하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희한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동아시아대륙에서 도대체 서해가 어딘가?
황해(黄海)를 서해(西海)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한반도 역사뿐이다.
그런데도 신중국(新中國)한어자료에 서해를 지금의 황해라고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바로 옛 중국은 동아시아대륙이 아닌 곳에서 황해(黄海)란 이름의 서해(西海)를 가진 나라라는 진리와 자연의 원칙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근세기 1880년경부터 동아시아대륙에 신중국(新中國)을 만들면서부터 폐쇄성이 있는 만(灣)을 온갖 바다 이름을 붙이고 무리하게 부르도록 강요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한반도처럼 지형적인 한계로 인하여 역사기록에 마구 맞추다 보니 지명 본래 의미와 상관없이 끼워넣기에서 나온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한반도에 심어 놓은 역사가 신중국역사와 함께 이 바다 이름을 전부 충족시키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근세기에 만든 한반도 역사가 제대로 완성되면 동아시아대륙사도 살고 한반도 역사가 부지 할 수 없었다면 동아시아대륙사도 부지할 수 없다는 공생관계의 이론인 것이다.
더군다나 그 속에 갇혀 있는 물을 발해만(渤海灣:Bohai Bay)이라고 하였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발(渤)의 뜻이 "요동을 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때 엄청난 힘의 바다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어 동아시아대륙의 발해만 형상이 물에 갇혀 있기때문에 죽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라 할 때 발해의 뜻과 전혀 어울릴 수도 없고 충족시킬 수 없다는 한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옛 중국에서는 발해(渤海)를 그 만큼 중요한 지명으로 사용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한반도 서해 해류의 문제점
불생불멸불증불감(不生不滅不增不減) 여여자연(如如自然)의 대자연이치(大自然理致:natural theory)에서 전편에 겨울폭풍(winter storm)에 의한 해일(海溢)을 살펴보았고 이제 해류(海流:oceanic current)에 대해서 알아 볼 차례이다.
해류라 함은 일정한 방향과 속도로 이동하는 바닷물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이 해류(海流)가 중요한 것은 바로 역사사서에 표류(漂流)라는 단어가 수없이 많이 등장하고 특히 삼한사서에 대다수 이 표류로 인하여 오늘날 한반도 역사가 꾸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때문이다.
해류와 표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야후사전에 보면 표류는 바람이나 해류를 따라 흘러가는 현상이라 하였으니 당시 해류를 밝혀보면 표류한 사실과 일치하는지 않은지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아래 조선왕조실록 [1]인조23년 기사와 [2]정조1년, 기사를 보면 청나라 사람들이 한결같이 백령진(白翎鎭) 대청도(大靑島)에 표류하여 왔다는 기사이다.
[1]인조 23년 을유(1645,순치 2)
10월8일 (병술)
황해도 관찰사 정유성이 중국 배 한 척이 오차포로 표류해 왔음을 치계하다
○丙戌/黃海監司鄭維城馳啓曰: “今月初三日, 漢舡一隻, 自白翎鎭外洋, 漂到吾叉浦, 船中人皆漢人之剃頭者也。 其中有馬儒者, 自稱淸國漕都司, 以天津軍餉貿販事出來, 遇風漂來云。” 備局令其道, 厚給衣糧而送之, 儒稱以風勢不便, 乞留過冬, 廟堂許之。 或疑此非漂到者, 乃淸人爲伺察我國而來者也。
황해도 관찰사 정유성(鄭維城)이 치계하기를,
“이달 3일에 중국(漢舡) 배 한 척이 백령진(白翎鎭) 먼바다에서 오차포(吾叉浦)로 표류해 왔는데, 배 안의 사람은 모두가 머리를 깎은 중국 사람(漢人)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유(馬儒)라는 자가 있는데, 자칭 청나라의 조도사(漕都司)라며, 천진(天津)에 군량을 사들이러 나왔다가 풍랑을 만나서 표류하여 왔다고 합니다.”하였다. 비국이 그 도로 하여금 의복과 양식을 후히 주어서 돌려보내게 하였는데, 마유가 바람세가 좋지 않다고 하면서 겨울을 나고 가기를 청하자, 묘당이 허락하였다. 그런데 혹자는 이들이 표류하여 온 자가 아니고 청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염탐하기 위하여 보낸 자들이라고 의심하였다.
[2]정조 1년 정유(1777,건륭 42) 12월4일 (병신)
청인들이 표류해 왔는데 그들의 소원에 따라 돌려 보내다
○丙申/盛京奉天府南錦州人九人, 廣東省潮州府澄海縣人十四人, 福建人一人, 漂到於白翎鎭大靑島, 依其願旱路入送, 同付於靈光、珍島兩漂人領去咨官之行。
성경(盛京) 봉천부(奉天府) 남쪽 금주(錦州) 사람 9명, 광동성(廣東省) 조주부(潮州府) 징해현(澄海縣) 사람 14명, 복건(福建) 사람 1명이 백령진(白翎鎭) 대청도(大靑島)에 표류해 왔는데, 그들의 소원에 따라 육로(陸路)로 돌려보내되, 영광(靈光)과 진도(珍島)에 있는 두 표류인을 데리고 가는 자관(咨官)의 길에 딸려 보냈다.
[1]번 기사를 보면 머리를 모두 깎은 중국사람들을 실은 중국배 한척이 천진(天津)에 군량을 사들이러 나왔다가 풍랑을 만나 황해도(黃海道) 백령진(白翎鎭)에서 오차포(吾叉浦)로 향하여 표류하여 왔다고 하는 기사(紀事)이며 [2]번기사는 동아시아대륙 북쪽에 요동성에 있는 성경(盛京) 봉천부(奉天府) 남쪽 금주(錦州)사람, 동아시아대륙 남쪽에 있는 광동성(廣東省)사람과 복건(福建省)사람이 함께 표류해 왔다는 것인지에 대한 사실여부가 확실치 않지만 어쨌던 백령진(白翎鎭) 대청도(大靑島)에 표류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백령진의 대청도는 한반도 서해 섬을 말하는 것이다.
이 두 기사(紀事)에서 천진(天津)과 금주(錦州)에서 출발하여 왜 꼭 황해도(黃海道) 백령진(白翎鎭) 대청도(大靑島)에 표류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을 의하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록 만이라고 하지만 천진에서 나와 표류상태에서 황해도 백령진에 도착했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주장이라는 말이다.
천진(天津)에서 나오면 해류타고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을 의도하는 우격다짐말고 다르게 해석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분명 [1]번기사는 현재 동아시아대륙의 발해만(渤海灣:Bohai Bay) 서남쪽에 있는 천진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2]번기사는 약간의 추증을 더하면 요녕성 금주(錦州) 즉 발해만 북쪽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천진(天津)과 금주(錦州)이니 모두 현재 발해만에서 출발한 것이 맞다.
현재 동아시아대륙 지형만을 놓고 보면 발해만에서 벗어나 표류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래 그림[1]를 보면 2월과 8월 모두 붉은 화살표시로 나타나는 황해해류(黃海海流)가 북상하여 두 표류방향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즉 발해만을 벗어나 표류상태에 있었다고 하면 오직 바람과 해류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인데 더군다나 겨울이면 황해해류가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발해만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든지 아니면 황해해류때문에 대륙연안해류를 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즉 동력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바람이나 해류에 밀려 표류상태에 있었다면 거의 발해만에서 황해해류의 영향을 받아 한반도 황해도로 표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억지가 아니라 자연이치이다.
결과적으로 아래 그림[2]를 보면 황해해류가 가로막아 한반도 황해도(黃海道) 백령진(白翎鎭)에서 대청도(大靑島)방향으로 표류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遼錦州。明改置廣寧中左二屯衞。清改置廣寧府。治廣寧縣。尋設錦州府。移治錦縣。屬奉天府。民國廢。明末祖大壽守錦州。聞松山失。獻城降清。
위 위치자료를 보면 봉천부(奉天府) 남쪽 금주(錦州市)는 요녕성(遼寧省)의 금주만(錦州灣)에서 출발하여 표류하였다면 오히려 대련이나 산동반도 북단에 표류하였을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다.
[그림1]
[그림2]
특히 백과사전을 보면 황해해류(黃海海流) 또는 황해난류(黃海暖流)가 겨울에는 황해한류의 남하와 중국 연안수의 흐름이 약화되는 반면, 강한 북풍으로 한국의 황해 연안을 따라 남쪽으로 흐르는 연안해류가 발생하며 바람이 약할 때는 황해난류의 유입이 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어진다.
그렇다면 위 지도에서 붉은 화살표가 막는 두개의 화살 점선은 쉽사리 백령진으로 나갈 수 없고 도착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기로는 황해해류가 강해지는 겨울이라 할 수 있고 [1]번 표류는 1645년 10월8일, [2]번 표류시기는 1777년 12월4일로 모두 겨울이거나 겨울로 들어가는 시기에 맞춰 있다.
이와같은 사실은 결코 지금의 동아시아대륙 황해에서 표류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는 일이다.
한가지 더 붙인다면 [2]번 기사를 보면 성경(盛京) 봉천부(奉天府) 남쪽 금주(錦州) 사람 9명이라 하여 구분하고 광동성(廣東省) 조주부(潮州府) 징해현(澄海縣) 사람 14명이라 구분하였으며 복건(福建) 사람 1명이라 구분하여 이 모든 지역의 사람이 백령진(白翎鎭) 대청도(大靑島)에 표류해 왔다는 것인데, 문제는 동아시아대륙 남쪽에 있는 복건성과 광동성의 사람이 어떻게 한반도 백령도까지 해류에 떠밀려 표류해 왔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혹 남지나해에서 흘러 드는 대륙성난류를 따라 황해(黃海)를 휘돌아 나갈 때 한반도 황해도와 연결될 듯하겠지만 아래 해류도(海流圖:current chart)를 클릭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만(灣)이라는 특성과 반폐쇄성 때문에 산동반도에 막혀 다시 휘돌아 제주도를 거쳐 한반도 동해쪽으로 북상함을 알 수 있어 현재 백령도에는 이 대륙성난류가 전혀 미칠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627년에 우리에게 박연(朴淵/朴燕)이라고 알려진 네덜란드의 선원 얀 얀츠 벨테브레(Jan Jansz Weltevree:1595-?)등 3인이 제주도에 표류하였다는 기록도 있지만 문제는 핸드릭 하멜(Hendrick Hamel:1630-1692)일행이 1653년 7월에 상선 스페르베르호('De Sperwer'/'the Sparrowhawk')를 타고 바타비아(Batavia)를 떠나 일본의 난학(蘭學)의 본거지인 나가사키상관(和蘭商館) 데지마(出島)로 가다가 태풍을 만나 난파되고 하멜을 포함한 36명의 생존자들은 켈파르트 섬(Quelpaert)의 해변에 상륙하였다는 것에서 이 켈파르트섬을 근세사는 반드시 제주(濟州)라고 하였고 지금은 한반도 제주도 용머리해안에 표류하게 되었다는 기록으로 굳혀진 것이 바로 "하멜표류기(Hamel's Journal and a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 1653-1666)" 또는 제주도 난파기(An Account of the Shipwreck of a Dutch Vessel on the Coast of the Isle of Quelpaert)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아래 해류도(海流圖:current chart)를 보면 현재 한반도 제주와 열도 나가사키 간에서 발생하는 해류방향은 그의 기록처럼 간단하게 입증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동아시아대륙 양쯔강(揚子江)하구에서 제주도를 연결하는 선을 남쪽 경계선으로 하는 만(灣)형태의 반폐쇄성해역이라는 사실은 여러가지의 상황을 암시하게 하지만 고온의 남지나해에서 흘러드는 대륙성난류가 반패쇄성 해역을 시계방향으로 황해를 휘돌아 나올 때 제주에서는 쓰시마해류의 영향을 받지 않고 대한해협을 거쳐 오히려 동해안으로 빠져 나간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어 황해로부터 휘돌아 나오는 대륙성난류 때문에 동남아시아에서 진행되는 쿠로시오해류(Kuroshio current:黑潮) 방향이 제주도로 접근이 용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클릭확대-海流圖:current chart]
[태평양 해류도]
다시 위 해류도(海流圖:current chart)를 보면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Batavia)를 떠나 일본의 난학(蘭學)의 본거지인 나가사키상관(和蘭商館) 데지마(出島)로 가다가 태풍을 만나 난파되었다고 한다면 쿠로시오해류(Kuroshio current:黑潮)를 타는 것인데 제주도로 표류하기 보단 오히려 태평양쪽으로 흘러들어갔을 확률이 더 높아보이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제주 남부의 바다 해류를 근본적으로 더 상세하게 파고 들고 계절을 바탕으로 하는 어려운 현장시험도 거쳐야 하겠지만 단편적으로 보았을 때 그리고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발견된 여러 다른 사실들을 대입했을 때 이러한 역사사실들은 동아시아대륙에서 벌어진 기록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위 두 기사의 표류가 발생한 위치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이것이 본 페이지에서 말하려고 하는 키 포인트이다.
일단 예측할 수 있는 곳은 해류가 흐르는 방향에서 어떠한 방해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과 또한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흐르는 해류권 범위내에서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다는 전제가 있다면 지명 천진(天津)과 금주(錦州)는 출발위치에서 흐르는 시작 위치에 있어야 하고 또한 그곳에서부터 떨어져 있겠지만 같은 권역의 해류가 흐르는 방향아래 황해도(黃海道) 백령진(白翎鎭)에서 대청도(大靑島)로 이르는 자연스러운 해류길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상기생(桑寄生Loranthus)이 난 백령, 대청도 위치
아래 조선왕조실록에서 [1]세종 13년(1431)기록과, [2]광해군 7년(1615)기록을 보면 황해도 백령(白翎)·대청(大靑) 두 섬에서 나는 상기생(桑寄生)이 자생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고 상기생(桑寄生)은 얻기 어려운 명약으로서 조선팔도에 생산처가 없는데 오직 백령도(白翎島)에만 있다고 한 사실을 가지고 설명히 가능하다.
[1]세종 13년 신해(1431,선덕 6) 3월10일 (갑술)
의원 김자견이 상기생 50근을 바치다
○醫員金自堅採黃海道白翎ㆍ大靑兩島所産桑寄生五十斤以進。 本國舊無桑寄生, 自巡審別監高全性始得之。
의원(醫員) 김자견(金自堅)이 황해도 백령(白翎)·대청(大靑) 두 섬에서 나는 상기생(桑寄生) 50근을 채취하여 바쳤다. 본국에 예전에는 상기생이 없던 것을 순심 별감(巡審別監) 고전성(高全性)이 순찰 발견하여 비로소 이를 얻게 된 것이다.
[2]광해군 7년 을묘(1615,만력 43)1월8일
명약 상기생의 종자를 없어지게 한 일로 김기명의 국문을 청하다
○司諫院啓曰: “桑寄生乃難得之要藥也。 八道無産處而只於白翎島有之。 僉使金基命欲爲棺材, 伐其老桑, 居民等至於齊訴, 而終不聽, 盡伐之。 蓋寄生, 非此地數百年老桑不生而因此絶種, 以至闕供於內局。 爲監司者, 所當覈問定罪, 而泛然歸咎於前後僉使, 欲以他藥換定, 已極無謂。 及其內局促督之後, 反以假寄生封進, 此豈臣子享上之道乎? 基命則營私背公, 使君上所御之藥絶種, 監司、封進官則不能詳察, 以爲塞責之地。 請金基命拿鞫, 監司及封進官, 先罷後推。” 答曰: “徐當發落。
사간원이 아뢰기를,
“상기생(桑寄生)은 얻기 어려운 명약입니다. 팔도에 생산처가 없는데 오직 백령도(白翎島)에만 있습니다. 첨사(僉使) 김기명(金基命)이 관재(棺材)로 쓰고자 하여 그 늙은 뽕나무를 베려고 하자 주민들이 일제히 호소하기까지 하였는데도 끝내 듣지 않고 모두 베었습니다. 대개 기생(寄生)은 수백 년 묵은 이 지역의 뽕나무가 아니면 나지 않는데, 이로 인해 멸종되어 내국(內局)에 올리는 것을 빠뜨리게 되었습니다. 감사된 자는 의당 캐물어서 처벌을 해야 하는데, 범연히 전후 첨사에게만 허물을 돌리며 다른 약으로 바꾸어 정하고자 하였으니,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급기야 내국의 독촉을 받은 후 도리어 가기생(假寄生)으로 봉진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신하가 위에 이바지하는 도리이겠습니까. 기명(基命)은 사욕을 영위하고 공무를 저버려 군상에게 바치는 영약으로 하여금 종자가 없어지게 하였으며, 감사와 봉진관(封進官)은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는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려 하고 있습니다. 김기명은 잡아다가 국문하고 감사 및 봉진관은 우선 파직한 뒤에 추고하소서.”
하니, 차차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상기생(桑寄生)이름의 혼란이다.
단순하게 한어자료나 한반도 자료에서 적힌 대로 찾다보면 반드시 목적한 바를 찾을 수 없게 되는 맹정이 있다는 사실이다.
겨우살이(mistletoe)라고도 하는 이 상기생(桑寄生)은 다른 이름으로 곡기생(槲寄生)으로도 불린다.
본 블로그의 글 "겨우살이(mistletoe) 상기생(桑寄生)이 알려주는 해주(海州) http://blog.daum.net/han0114/17050656 "란 글에서 상기생보다는 오히려 곡기생(槲寄生)을 중점으로 하여 결국 해주를 찾아 낸 사실이 있다.
위 상기생과 곡기생에서 다른 점을 글자로 따진다면 뽕나무 상(桑)자와 떡갈나무 곡(槲)자가 다름을 알 수 있고 이것을 다시 풀어 보면 뽕나무에 기생하는 것을 상기생(桑寄生)이라 하고, 떡갈나무에 기생하는 것을 곡기생(槲寄生)이라고 하는 것인데 서양에서는 겨울살이라고 하면 곡기생(槲寄生)을 말한다라고 정리되고 있다.
이것이 얼마만큼 중요하는가 하면 바로 동양사와 서양사를 나누어 발생한 혼란이다.
만약 하나의 역사가 존재한 상태에서 생각 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거대한 하나의 건축물을 헐어 동양건축물과 서양건축물을 근세기에 세웠다고 볼 때 하나의 역사에서 통일 될 수 있는 이러한 생물들이 완전히 동양과 서양개념으로 나눠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대체로 상기생(桑寄生)은 동양에서 말하고 곡기생(槲寄生)은 서양에서 친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것에 따라 근세기에 분류학체계도 이런식으로 나눠지고 말았는데 대체로 동아시아대륙권에 단향목(檀香目:Santalales), 상기생과(桑寄生科:Loranthaceae), 상기생속(桑寄生屬:Loranthus)에 종들을 상기생(桑寄生)이라 하여 근원지라 하였고 북아메리카대륙이나 유럽권에서는 단향목(檀香目:Santalales), 단향과(檀香科:Santalaceae), 곡기생속(槲寄生屬:Viscum)으로 근원지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앞 선 학명들은 모두 서양권을 근원으로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한문으로 뜻을 볼 때는 이것과 한참 다르게 참나무목(山毛櫸目:Fagales), 참나무과(山毛榉科:Fagaceae), 참나무속(櫟屬:Quercus)의 뽕나무와 떡갈나무에 기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있어 혼란 스러운 것이며 또 하나는 동양권에서는 엄연히 상기생속으로 일단 나누었으면서도 또 다시 참나무겨우살이(鈍果寄生屬:Taxillus)이라 하여 그 속의 종(種)으로 상기생(桑寄生:Taxillus chinensis)을 또 다시 분류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그만큼 분류체계적으로 동양문헌과 서양기록간에 이해관계와 이질적인 차이 때문에 정확하게 정립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본래의 역사 근원지를 감추기 위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는가 판단된다.
우리가 위 게시한 조선왕조실록 기록 [1]1431년(세종 13년)기록과 [2]번 1615년(광해군7년)기록에 황해도 백령(白翎)·대청(大靑) 두 섬에서 상기생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더군다나 결정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것은 이 상기생(桑寄生)은 얻기 어려운 명약이라는 사실과 함께 팔도에 생산처가 없는데 오직 백령도(白翎島)에만 있다고 하는 기록을 우리는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지금 분류체계적으로 볼 때 상기생(桑寄生)인가 곡기생(槲寄生)인가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밝혀지면 황해도(黃海道) 백령진(白翎鎭) 뿐만 아니라 천진(天津)을 알 수 있고 금주(錦州)가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를 적어도 추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과 더불어 황해(黃海), 서해(西海)는 물론이고 북해(北海)라 하였던 발해(渤海)의 행방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혼란이 있는 것이 맞다면 분명 근세기에 동양과 서양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위 바다 이름들이 변형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상기생과 곡기생이란 이름이 결국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것은 근세기에 서양인들이 주도한 역사 판짜기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사태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종(種) 상기생과 곡기생의 근원지(Native) 즉 분포지를 살펴보면 어느정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앞 서 본 블로그 "겨우살이(mistletoe) 상기생(桑寄生)이 알려주는 해주(海州)"글에서 일차 곡기생에 대해 살펴보았으니 상기생은 어떻게 동양권에서 분류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유럽종]
[A]桑寄生属(学名:Loranthus)是桑寄生科下的一个属,为半寄生灌木植物。该属共有约10种,分布于欧洲和亚洲的温带和亚热带地区。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未分级) 被子植物 Angiosperms
(未分级) 真双子叶植物 Eudicots
目: 檀香目 Sandalates
科: 桑寄生科 Loranthaceae
屬: 桑寄生属 Loranthus europaeus Jacq.
[아시아종]
[B]桑寄生(學名:Taxillus chinensis)別稱廣寄生、梧州寄生茶、苦楝寄生、桃樹寄生、松寄生、寓木、宛童、寄屑、姬生等
科學分類
域: 真核域 Eukarya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雙子葉植物綱 Magnoliopsida
目: 檀香目 Santalales
科: 桑寄生科 Loranthaceae
屬: 鈍果寄生屬 Taxillus
種: 桑寄生 T. chinensis
分佈於中國、 泰國、越南、馬來西亞、柬埔寨、寮國、菲律賓、印尼加里曼丹等地。中國國內分佈於 廣東、香港、廣西、福建、雲南及浙江等省份
앞에서도 언급한 사실이지만 근세기 분류체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많은 의문점을 낳고 있음을 전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위 학명체계표에서 [A]번 상기생속이라고 하는 학명 "Loranthus" 에서 설명하는 것을 보면 유럽종이라고 하는 상기생속(桑寄生屬:Loranthus europaeus)은 열매가 노랗다고 하여 노란 겨우살이(Yellow mistletoe)라 하고 흔히들 크리스마스 겨우살이(Christmas mistletoe)라고하는 것이지만 일단 단향과(Santalaceae)나, 곡기생과(Viscaceae)로 취급할 수 있는 것으로 자료에 나타나고 거의 같은 분류로 대조된다 하였으니 학명 곡기생 "Viscum album L."과 혼입할 수 잇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동서양을 분리하면서 체계적으로 명확하지 않게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 속명은 네덜란드 식물학자 니콜라우스 자칸(Nikolaus Joseph von Jacquin:1727–1817)에 의해 명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참고로 자료에서"크리스마스 겨우살이"라 함은 고대 켈트(Celt)족 드루이드교의 승려(Druid)들이 겨우살이가 그리스도가 썼던 면류관의 가시를 상징한다하여 신성시 여겼고 그것을 부적으로 사용하였던 기원을 들 수가 있다.
[B]번 상기생을 보면 아시아종임을 알 수 있는데 사실상 아시아 상기생(桑寄生:Taxillus chinensis)은 이상하게도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과 디스커버 라이프(Discover life)에 자료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아시아 종으로서 동양권에서 분류한 것일 뿐 서양인들은 제대로 정립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에서 "얻기 어려운 명약이라는 사실과 함께 팔도에 생산처가 없는데 오직 백령도(白翎島)에만 있다"고 하는 상기생(桑寄生)은 곡기생(槲寄生)으로 풀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의 분포지도에서 곡기생(槲寄生)으로 분류된 학명 두 종 "Viscum album L(European Mistletoe), Viscum nudum Danser (Mistletoe)"의 분포지를 보면 극히 아메리카대륙에 희소하게 나타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얻기 어려운 명약이라는 사실과 함께 팔도에 생산처가 없는데 오직 백령도(白翎島)에만 있다"라고 하는 기록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왜 상기생이 동양종으로 곡기생은 서양종으로 분리 되었는지에 대한 것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볼 때 충분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어자료에 "桑寄生科本科植物主要分布在南半球的热带和亚热带地区"라 하였는데 곡기생(槲寄生)이 아닌 상기생(桑寄生)은 분명 열대, 아열대에서 자생하는 식물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한반도 백령도와 대청도가 아열대지역인가?
아무리 온난화가 되어 날시가 변했다고 하는 현대에 살지만 지금도 아열대를 구분할려치면 동아시아대륙 상해 이남 남부를 지칭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면 안된다.
다시말해 한반도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는 아열대가 아니라는 말이며 상기생(桑寄生:Viscum)이 자랄 곳이 못된다는 말과 같다.
상기생(桑寄生) 또는 곡기생(槲寄生)은 다른 나무에 기생하여 사는 반 기생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모양이 새가 그 위에 서 있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기생(寄生), 우목(寓木), 조목(蔦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와같은 기생나무들은 약 70종가량이 되고 뽕나무(桑樹), 보리수나무(榕樹), 복숭아나무(桃樹), 자두오얏나무(李樹), 카람볼라(楊桃:carambola), 용안(龍眼), 여지(Litchi:荔枝), 기름오동나무(油桐), 동백나무(油茶), 목화나무(木棉), 파라고무나무(橡膠樹), 마미송(馬尾松)과 수송(水松), 떡깔나무 그리고 그 외 다수가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곡기생)Viscum album L. (European Mistletoe)
(곡기생)Viscum nudum Danser (Mistletoe)
해류와 곡기생(槲寄生)으로 본 마무리
본 블로그의 글 "겨우살이(mistletoe) 상기생(桑寄生)이 알려주는 해주(海州) http://blog.daum.net/han0114/17050656 "란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가 캘리포니아주(州:California)란 사실을 밝혔다.
또한 상기생(桑寄生)은 아열대지방에서 자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곡기생(槲寄生)은 대체로 온대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 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곧 북아메리카대륙 서부가 유럽이었다는 등식을 적용한다면 아마도 이 곡기생(槲寄生)은 근세기에 유럽대륙으로 분식되거나 이식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위 곡기생(槲寄生)속의 두 종(種) "Viscum nudum Danser (Mistletoe)"와 "Viscum album L. (European Mistletoe)"을 보면 모두 유럽을 집중적으로 노란 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유럽종(種)이라고 하겠지만 유럽이란 지명자체가 오래된 지명이 아니라는 것에 무게를 실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 선 블로그 글에서 디스커버 라이프(Discover life)의 분포지도만을 살펴 보았지만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의 분포지도를 보면 유럽종 학명 "Viscum album L"의 분포지가 유럽이외에 북아메리카대륙 서부를 나타내고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그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캘리포니아(California) 알라메다(Alameda)카운티와 워싱턴주(Washington) 킹(King)카운티를 분포지로 확인하였던 바가 있었지만 자료 1900년 이전 DNA를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자료에서는 이 두 종(種) 공히 유럽을 제외하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의 포인 레이에스 국립 해안(Point reyes National Seashore), 산타로사(Santa Rosa), 새크라멘토(Sacramento) 와 브라이스캐니언국립공원(Bryce Canyon National Park) 그리고 남부의 오스틴(Austin), 달라스(Dallas) 그리고 중부에는 일리노이(Illinois) 카낙(Karnak)으로 나타나고 특히 별칭 "겨우살이(Mistletoe)"라고 하는 학명 "Viscum nudum Danser"은 중앙아메리카의 온두라스(Honduras) 동부의 크루타 강(Cruta River)상류에 유일하게 표시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황해도(黃海道) 백령진(白翎鎭)은 어디에 있을까?
이미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캘리포니아가 해주임을 밝혀 사실화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황해도 해주 그리고 백령진은 캘리포니아주 어디쯤에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鎭)을 옛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평시에는 토지를 경작하여 식량을 자급하고 전시에는 전투원으로 동원되는 둔전병(屯田兵)이 주둔하던 군사적 지방행정구역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섬이 아닌 것이 틀림이 없다.
즉 백령도라는 것은 근세기 한반도에서 어쩔 수 없이 파생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진(鎭)으로서 가치를 말할 때 샌프란시스코 위에 위치하는 포인 레이에스 국립 해안(Point reyes National Seashore)이거나, 산타로사(Santa Rosa), 새크라멘토(Sacramento)까지 그 범주에 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
위 해일표(海流圖:current chart)에 볼 수 있듯이 천진에서 표류를 하면 백령진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해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상기생(桑寄生)이 아닌 곡기생(槲寄生)으로 판단되는 것이 팔도에 생산처가 없는데 오직 백령도(白翎島)에만 있다 하였고 위 분포지도에 보니 해주라고 판단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의 포인 레이에스 국립 해안(Point reyes National Seashore)이거나, 산타로사(Santa Rosa), 새크라멘토(Sacramento)에 근원지로 분포지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자연의 이치를 바탕으로 밝히는 사실들은 공개하고자 하는 자료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다.
이미 이것을 위해 수많은 자료를 준비하였고 그리고 확신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일단 가시적으로 나마 밝혀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되어 이 페이지에 간략하게 기술한다.
이것은 본 블로그 귀중한 하나의 작품이자 결실이며 지금까지 나의 끊임 없는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이러한 결과에 충분히 만족하고 싶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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