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대륙풍경이라고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가?

한부울 2010. 6. 7. 15:46

명,청 산수화가 조선 산수화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45078

채애도' 속에 나타난 공재의 풍속화  http://blog.daum.net/han0114/17049190 

산수유람 누정대(樓・亭・臺) http://blog.daum.net/han0114/14439401 

조선남종화의 진수를 보다 (대륙조선인이 그린그림) http://blog.daum.net/han0114/13446136  

조선 기생들은 대륙에서 살았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374 

남산(南山)목멱산(木覓山)·종남산(終南山)·인경산(仁慶山) http://blog.daum.net/han0114/1704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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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존 반도역사에 안주하고 있던 사학자들은 전부가 벙어리고 당달봉사로만 알았는데 그래도 무엇인가 보이는 것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기껏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탐구하여 알아냈다고 하는 것이 상상력이란다.

그래도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이 지금 한반도 풍경과 다르다고 보았으니 다행이다.

그것조차 다르지 않다고 우기고 똑같다고 항변하면 어쩌겠는가?

하지만 상상력으로 그렸다거나 기억으로 그렸다는 것은 역시 솔직한 것은 못된다.

그가 아니라 누구라도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냉철하게 분석한다는 것은 현재 처한 한반도사관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반도사관에 몰입된 사학자들은 그저 코끼리 다리만지기에 만족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우리의 역사 슬픈 현실이다.

보고그리기?

기억하고 그리기?

'기억으로 그리기'는 한발 더 나아가 '닮지 않게 그리기'로 발전하였다?

진경산수(眞景山水)가 한문으로 무슨 뜻인가?

사실 있는 그대로 진짜 모습을 관찰하고 보고 그린 풍경의 산수화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린 그림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왜 굳이 다르게 그렸다고 우리가 이해해야만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탐구하였다는 논리의 비약이 솔직하지 못한 핵심을 아주 벗어난 비켜가기라고 보일뿐이다.

우리나라 사학자들은 왜 솔직하지 못하고 사실과 거리가 먼 엉뚱한 짓거리만 할까?

반도역사가 주는 텃밭이 너무 달콤해서인가?

왜 고지 곳대로 본 대로 느낀 대로 왜 말하기를 두려워하는가?

무엇이 두려워 사실을 피해 달아나기만 할까?

보이는 것을 그대로 주장 할 수 있는 양심과 용기 있는 사학자들은 과연 다 죽어버렸는가?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 모두는 지금 한반도 풍경이 아니라 대륙풍경이라고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지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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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 머릿속에 풍경 담고 붓은 그 기억에서 뻗어가네

[조선일보] 2010년 06월 05일(토) 오전 03:04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가 조선시대 화가들이 우리 땅을 그린 산수화와 실제 그 땅의 모습을 비교한 책을 냈다. 우리 화가들이 한국의 땅과 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다.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같은 화가들이 구현한 진경산수(眞景山水)가 그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산수를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적인' 화풍(畵風)도 탄생할 수 있었다.


이태호 교수의 전공은 조선시대 회화사로 그중에서도 진경산수에 대해 많은 논문을 발표해 왔다. 이들 논문에서 이 교수가 특히 주목한 것은 화가들의 '보는 방식'(視方式)이었다.


본래 회화란 삼차원의 물체를 이차원의 평면에 고착시키는 일이다. 더욱이 카메라가 없던 시절 화가들이 실경(實景)을 그리는 자세는 오늘날의 풍경화가와는 아주 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에서 이태호 교수는 '보고 그리기'와 '기억으로 그리기'의 두 가지 방식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단원이 정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을 그려온 '금강산 사군첩(四郡帖)'은 대표적인 '보고 그리기'다. 단원의 시방식은 카메라의 50㎜ 표준렌즈로 본 것과 같다. 기암절벽과 장쾌한 계곡의 표현은 사생(寫生) 풍의 스케치를 연상케 하는 일종의 정밀묘사다. 여기서는 풍광 자체의 실체감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조형적 목표로 된다.


'기억으로 그리기'는 겸재의 금강산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겸재의 진경산수는 광각렌즈나 파노라마 카메라가 아니면 잡을 수 없는 시각구성을 보여준다. 이는 현장에 즉한 스케치가 아니라 기억에 의한 화면의 재구성임을 말해 준다. 실제로 겸재의 금강산 탐승에 동행했던 이병연은 "겸재는 붓도 없이 금강산에 들어갔다"고 했다.


'기억으로 그리기'는 조선시대 진경산수가 실경에 얽매이지 않고 화가의 조형 목표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현장감을 강조하기 위하여 시점을 상하좌우로 이동하기도 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는 사경(寫景)산수라고 하지 않고 진경산수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억으로 그리기'는 한발 더 나아가 '닮지 않게 그리기'로 발전하였다. 겸재의 '박연폭포'는 실제보다 네 배나 길게 과장하면서 감동적인 화면을 연출하고, 능호관 이인상의 '구룡폭포'는 모티브만 구룡폭포일 뿐 화면 구성은 갈필(渴筆)과 담묵(淡墨)의 변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장과 왜곡은 동양화론에서 "형상에 기초하면서 정신을 담아낸다"는 '이형사신(以形寫神)'의 미학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이태호 교수는 옛 화가들이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실체감 있게 표현하는 데 성공한 비결은 부감법(俯瞰法)의 능숙한 구사에 있었음을 꼽는다. 겸재의 '금강전도'나 단원의 '도담삼봉' 같은 그림은 헬리콥터를 타고 보기 전에는 잡을 수 없는 앵글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화가들은 마치 나는 새가 보는 듯한 시각으로 전체를 조망함으로써 실경의 진면목을 보여주었고, 이것은 고지도에서 '읍성도(邑城圖)'를 그리는 기본원칙이 되었다.


이런 결론은 이 교수가 작품의 면밀한 분석과 함께 옛 그림의 현장을 일일이 답사하면서 얻어낸 것이다. 그는 30년 전에 진재 김윤겸의 '영남기행화첩'의 낱낱 현장을 찾아가 그림과 대조해 보면서 대개 35㎜ 렌즈로 포착한 시각과 같았음을 밝혀낸 이후 관련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이 교수가 이 연구를 새 분야로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진경산수화라는 장르가 탄생한 계기였던 금강산을 1998년에 답사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금강산을 보기 전에 옛 그림을 통하여 금강산의 명승과 지리를 익혀 온 그는 현장에 가서는 풍광 자체보다 옛 그림이 먼저 떠오르는 특이한 경험을 하였다. 그런데 내금강 만폭동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겸재 그림의 장면이 나타나지 않자 그것이 겸재의 '기억으로 그리기'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태호 교수는 진경산수뿐만 아니라 단원이 한국의 평범한 일상적 풍광을 어떻게 실체감 있게 표현해 냈는가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로 분석을 시도한다. 우리 땅의 상징적 수목인 소나무는 물론이고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그리면서 향토적 시정을 담아낸 방식에 대해서도 논한다. 이런 시도는 회화사 연구가 보편적 사항에 대한 일반적 논고가 아니라 미세한 부분에 대한 심층적 탐구로 들어간 학문적 성숙을 보여준다.


이 책은 전에 없던 출판 형식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제1부는 진경산수화론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제2부에는 겸재 정선, 진재 김윤겸, 지우재 정수영, 단원 김홍도, 설탄 한시각, 동회 신익성 등 우리 땅을 그린 화가들에 대한 전문적인 작가론과 작품론이 실려 있다. 교양개설서의 역할을 하면서 학문적 성과도 담아낸 연구논문집인 셈이다. 여기에는 독자에게도 잘 읽히는 전문서를 펴내고자 하는 희망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유홍준 명지대 교수·미술사]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