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기록에 남아있는 제주(濟州)의 이상한 점들

한부울 2010. 5. 13. 22:44

낙타(駱駝, camel)와 양(羊)이 나고  남극성(Canopus)을 볼 수 있는 곳 

http://blog.daum.net/han0114/17049918 

제주목에 난 지네(蜈蚣 centipede)는 고려지네이고 베트남 지네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907 

독사(毒蛇 poisonous snake) 와 석화사(石花蛇) http://blog.daum.net/han0114/17049908 

대륙조선과 백화사(白花蛇 Deinagkistrodon) http://blog.daum.net/han0114/17049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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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제주(濟州)의 이상한 기록들

제주의 실체가 어떤 것이고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여기서 우리가 판단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사실적인 접근이 가능한 자료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들을 모아 이치를 토대로 한 분석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가 우리의 대륙역사를 말살하기 위해서 반도역사를 만들었다면 철저하게 대륙사료들을 숨기고 덮어버렸을 것이며 우리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뒤틀어 놓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것을 찾아 밝혀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냥 지나 칠 수 있는 이야기도 세심하게 따져보고 그런 자료 중에서도 가장 사실적으로 접근하고 이치적으로 따져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자료들을 찾아 밝혀내는 것이 바로 역사 찾기라고 본다.

아래 제주탐라의 풍속을 나름대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기언(記言) 속집(續集)에 의거하여 풀어 보았다.  현재 제주와 비교해 보아도 이상한 점이 많이 발견 된다.

 

탐라는 임읍(林邑)의 남쪽 변경 바다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책부원귀》

임읍은 베트남 중부에 있었던 참파왕국이다.
참파 왕국(Chăm Pa, Champa, The Kingdom of Champa, 192년 - 1832년)은 베트남 중부 지방에 위치해 있던 인도네시아계의 참족이 세운 왕국이다. 당나라에서는 임읍(林邑)라고 부르다가 송나라때에는 점성(占城)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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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 제11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탐라(耽羅)

책부원귀(冊府元龜)는 11 세기 초,  역대 정치에 관한 사적을 모은 책으로서 북송(北宋)의 왕흠약(王欽若) ·양억(楊億) 등이 진종(眞宗)의 명을 받들어 1005년에 편집에 착수, 1013년에 완성한 책. 그러나 송나라 시대 판본은 결본이 전할 뿐, 완본이 없다.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임읍(林邑) 남쪽 해변의 소국(小國)이라 하고, 《위서(魏書)》에는 섭라(涉羅)라 칭하였으며, 《수서(隋書)》에는 담모라(聃牟羅) 또는 담라(儋羅), 탁라(乇羅)라 하였다. 풍속이 질박하고 촌스러워 개와 돼지가죽 옷을 입었다. 여름에는 풀집[草屋]에서 살고 겨울에는 굴집[窟室]에서 살았다. 땅에는 오곡이 자라는데 밭갈이에 소를 사용할 줄 몰라서 철치(鐵齒 쇠스랑)로 땅을 고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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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돌이 없고 땅바닥에서 자고 거처한다.

이 말은 지역의 기후가 일단 덥다는 것을 추리 할 수 있다.

2. 밭머리에 무덤을 만든다.

3. 제주의 본래 풍속이 어버이를 장사 지내지 않고 죽으면 시체를 구렁에다 갖다 버리는 것이었다

4. 풍속이 음사(淫祀)를 숭상하여 산과 숲, 내와 못, 높고 낮은 언덕, 나무와 돌에 모두 신의 제사를 베푼다.  힌두교 hindu 多神

5. 아열대에 있는 뱀, 독사, 지네가 많으며 회색뱀은 차귀(遮歸)의 신이라하여 죽이지 말라고 금한다.

6. 일기가 항상 따뜻하다.(天氣常暖) 봄여름에는 운무(雲霧)가 자욱하게 끼고 가을과 겨울이 되면 갠다. 초목과 곤충이 겨울을 지나도 죽지 않으며 폭풍이 자주 인다.

초목과 곤충이 겨울이 지나도록 죽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기후가 열대나 아열대지방을 말하는 것

7. 고기를 낚시로 낚기 때문에 그물을 쓰지 않는다.

8. 땅이 척박하고 백성이 가난하여 오직 목도(木道)질로 생활을 영위한다.

목도(木道)-여러사람이 통나무나 돌을 운반하면서 발을 맞추는 소리나 행동 모두를 지칭

9. 주(州)를 제주시라고 보면 두무악(頭無嶽) 북쪽에 있는데 북쪽 지역은 늘 북풍이 심하게 불어 나무를 심어 놓으면 모두 남쪽을 향하여 쓰러진다(폭풍, 하리케인).

10. 두무악 남쪽지방(서귀포?)은 장기(瘴氣)를 품은 안개가 많아 낮에도 어두울 정도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장기(瘴氣)는 바로 말라리아(malaria)이다.

바로 아래 지도는 말라리아가 발생하는 곳인데 한반도와 열도는 제외 되어 있다.

 

 

 

11. 주의 곁에 있는 광양(廣壤) 땅만은 붉은 진흙이다

12. 재화로는 빈주(璸珠)ㆍ대모(玳瑁)ㆍ나패(螺貝)를 사용한다.

대모(玳瑁/瑇瑁, Hawksbill turtle) 인도양에서 아프리카 동해안을 따라, 마다가스카르와 인접 제도에 잘 발견된다. 아시아에서는 걸프만, 홍해, 인도대륙, 인도네시아제도, 북서 오스트레일리아에 걸쳐 분포한다.

13. 동남아시아가 원산인 향서(香鼠)가 그곳의 특산물이다.

14. 탁라((乇羅)), 화탈(火脫), 여서(餘鼠)사이에는 바다가 깊고 검푸르며 매서운 바람과 높은 파도가 많다. 매양 봄과 여름에 남쪽 수종(水宗) 밖을 바라보면 높은 돛을 단 큰 선박들이 무수히 지나간다.

15. 여기는 흑치(黑齿)오랑캐들이 중국과 통상하는 길목이며 또한 해외 여러 만이(蠻夷)들의 물화가 유통되는 곳이다. 서남쪽으로는 백해(白海)와 마주하고 있다.

16. 탑라치(塔羅赤)가 원 나라 사신으로 올 때 소ㆍ말ㆍ낙타ㆍ당나귀ㆍ양 등을 싣고 와서 수산평(首山坪)에서 길렀다고 하는데 지금도 낙타와 양의 종자가 있느냐? [갑인년(1794) 홍재전서(弘齋全書)]

 

그 중에서 가장 제주 위치를 잘 나타내고 있는 사실하나가 바로 흑치에 대한 고증자료로서 “...중국의 양가빈(梁嘉彬)은 중국 역대 문헌에 보이는 흑치에 관한 기록과 해류 등에 관하여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 위치를 지금의 필리핀 일원으로 비정하였고, 이 고증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따라서 흑치가 동남아시아에 소재한 지역임은 의심할 나위 없다...”란 기록이다.  

 

제주와 탐라는 지명처럼 위치가 다르다고 보고 시대에 따라 몇 차례 지명이동도 있었다고 본다.

신증에 기록된 제주는 남베트남을 추정해 볼 수 있고 탐라는 필리핀일 가능성이 높다.

“바다 한가운데 탁라((乇羅)), 화탈(火脫), 여서(餘鼠)사이에는 바다가 깊고 검푸르며 매서운 바람과 높은 파도가 많다. 매양 봄과 여름에 남쪽 수종(水宗) 밖을 바라보면 높은 돛을 단 큰 선박들이 무수히 지나간다.”

탁라((乇羅)), 화탈(火脫), 여서(餘鼠)는 각각 분리 독립된 섬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중국과 통상하는 길목이며 해외 여러 만이(蠻夷)들의 물화가 유통되는 곳이다.”

“한라산이라고 하는 두무악(頭無嶽)이 있는데 그곳 꼭대기에 백록홍(白鹿泓)이 있고 춘분과 추분의 초저녁에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 보인다”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라는 표현은 호주 극남인 남극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몰론 백해(白海)도 남수해(南水海)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낙타(駱駝, camel)와 양(羊)이 나는 곳 http://blog.daum.net/han0114/17049918  

 

탐라 섭라라 하는 한반도 제주남단에 남매봉 남성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남극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자료 설명에 있듯이 서울과 마찬가지로 수평선 저 멀리 남극노인성을 바라 불 수 있는데 붉은 빛의 별이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별 중에 가장 빛이 밝다고 하는 이별을 붉게 밖에 볼 수없다는 것은 위도 차이에 의해 볼 수 없는 곳에 제주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옛 기록에 탐라에서 남극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남극성을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탐라가 있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한반도 제주는 탐라나 섭라가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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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


본래 탐라국(耽羅國)인데 혹은 탁라(乇羅)라고도 한다. 전라도 남쪽 바다가운데에 있는데 넓이가 4백여리이다. 처음에 양을나(良乙那)ㆍ고을나(高乙那)ㆍ부을나(夫乙那)라는 세 사람이 있어 그 땅에 나누어 살고, 그 사는 곳을 도(都)라고 이름하였다. 신라 때에 고을나의 후손 고후(高厚)가 그 아우 두 사람과 함께 바다를 건너와서 신라에 조회하였다. 왕이 기뻐하여 고후에게 성주(星主)라 칭호하고, 그 둘째 아우는 왕자(王子)라 하고, 끝 아우는 도내(都內)라 하여 탐라(耽羅)라는 국호를 내려주었다.


所谓三姓穴是指济州传说中三个不同姓氏的祖先出现的地方,他们叫“高乙那”、“良乙那”、“夫乙那”。相传他们分别娶了碧浪国的三个公主,在济州岛繁衍后代。

良[liáng] 어질, 아름다울, 진실로-량 乙那 [yǐ nà] 에나.


[풍속]

백성의 풍속이 어리석고 검소하며 예절이 있다.(俚語艱澁)-백성의 풍속이 어리석고 검소하며, 또 초가가 많고 빈천한 백성들은 부엌과 온돌이 없고 땅바닥에서 자고 거처한다. 남녀가 짚신 신기를 좋아하고 방아가 없으며, 오직 여자가 손으로 나무절구에 찧는다. 등에 나무통을 짊어지고 다니고 머리에 이는 자가 없다. 잘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남자나 여자나 관원을 길에서 만나면 달아나 숨고 남자는 길옆에 엎드린다.

사투리가 난삽하다. 촌백성의 말이 난삽하여 먼저는 높고 뒤는 낮다.


이어(俚語)상말. 속어(俗語). 비속어(卑俗語). 저속한 말이나 통용되는 지역이 매우 좁은 방언 등을 가리킴. 간삽(艰涩)文章平易者多浅近,渊深者多艰涩。


밭머리에 무덤을 만든다.(田頭起墳) 상사를 마친 지 백일이면 복을 벗고 밭머리를 조금 파고 무덤을 만든다. 간혹 삼년상을 행하는 자도 있다. 풍속이 풍수지리와 점을 사용하지 않고 또 부처의 법도 쓰지 않는다.


음사(淫祀)를 숭상한다. 尙요사 풍속이 음사(淫祀)를 숭상하여 산과 숲, 내와 못, 높고 낮은 언덕, 나무와 돌에 모두 신의 제사를 베푼다.

 

힌두교는 여러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다신교적 일신교로서 교주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소를 신성하게 여겨서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힌두교 명칭은 서양 사람들이 호칭한 것으로 본래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 사나타나 다르마(Sanātana Dharma)이다.

사나타나(Sanātana)는 영원하다는 뜻이며 다르마(Dharma)는 법(法)으로 번역된다.


매년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남녀무당이 신의 기(旗)를 함께 받들고 경을 읽고 귀신 쫓는 놀이를 하는데 징과 북이 앞에서 인도하며 동네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다투어 재물과 곡식을 내어 제사한다. 또 2월 초하룻날 귀덕(歸德) 금녕(金寧) 등지에서는 나무 장대 열둘을 세워 신을 맞아 제사한다. 애월포(涯月浦)에 사는 자는 나무 등걸 형상이 말머리 같은 것을 구해서 채색 비단으로 꾸며 말이 뛰는 놀이를 하여 신을 즐겁게 하다가 보름날이 되면 그만두는데, 그것을 연등(燃燈)이라고 한다. 이달에는 배타는 것을 금한다. 또 봄가을로 남녀가 광양당(廣壤堂)과 차귀당(遮歸堂)에 무리로 모여 술과 고기를 갖추어 신에게 제사한다. 또 그 땅에 뱀ㆍ독사ㆍ지네가 많은데(아열대지방) 만일 회색뱀을 보면 차귀(遮歸)의 신이라 하여 죽이지 말라고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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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毒蛇 poisonous snake) 와 석화사(石花蛇) http://blog.daum.net/han0114/17049908

제주목에 난 지네는 고려지네이고 베트남 지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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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는 사람이 많다.(人多壽考) 지방 사람이 질병이 적어서 일찍 죽는 사람이 없고 나이 팔구십 세에 이르는 자가 많다.


일기가 항상 따뜻하다.(天氣常暖) 봄여름에는 운무(雲霧)가 자욱하게 끼고 가을과 겨울이 되면 갠다. 초목과 곤충이 겨울을 지나도 죽지 않으며 폭풍이 자주 인다.


일기가 항상 따뜻하다고 표현 한 것은 그냥 따뜻할 정도가 아니라 열대지방기후라고 해야 한다.

또한 운무(雲霧)는 그 당시 공포에 대상이던 풍토병으로서 장기(瘴氣)가 성행할 수 있는 습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구름안개이다. 장기(瘴氣)축축하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기. 장독(瘴毒)


산에는 사나운 짐승이 없다.(山無惡獸) 호랑이ㆍ표범ㆍ곰ㆍ승량이ㆍ이리등 사람을 해하는 짐승이 없고 또 여우ㆍ토끼ㆍ부엉이ㆍ까치 등속이 없다.

호랑이가 없는 섬 스리랑카, 해남, 필리핀, 보루네오, 대만 . 지역으로 베트남남부, 양자강 이남지역


그물을 쓰지 않는다.(不用網罟) 산과 바다가 험악하여 그물을 쓰지 못한다. 고기는 낚고 짐승은 쏜다. 조리희(照里戲)매년 8월 15일이면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왼편 오른편으로 나누어 큰 동아줄의 두 끝을 잡아당겨 승부를 결단하는데 동아줄이 만일 중간에 끊어져서 두 편이 땅에 자빠지면 구경하는 사람들이 크게 웃는다. 이것을 조리(照里)의 놀이라고 한다. 이날에 또 그네 뛰는 것과 닭 잡는 놀이를 한다.


옛날 동남아 풍습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풍습과 비슷한 부분이다.

조리(照里)라 함은 바로 줄다리기이다.

줄다리기를 발하(拔河) 또는 拖鉤(타구)라 한다.

拔 [bá]  뽑다, 빼어나다 , 성하다-발

河 [hé]  물 이름, 운하-하

우리나라 자료를 보면 줄다리기는 중국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일원에 널리 분포하는 놀이로서 그 기원과 유래를 확인하기는 곤란하다고만 나온다.

모든 것에서 뿌리와 근원이 없는 것은 없다.

우리가 배우는 반도사로서 도저히 확인하고 고증하기가 여러 가지로 중복이 되어 곤란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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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The sport of tug-of-war has a very long history. 

This practice, with or without the rope was carried over into many civilizations , often under ritual forms, such as Burma(Myanmar), Congo, Korea, India, Indonesia, Hawaii, New Guinea and New Zealand.

 

 

 

줄다리기의 스포츠는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4000-year-old의 이집트 Sakkara 무덤에서 미술품은 발견되는데 줄다리기의 로프 없는 상태에서 서로 겨루기가 붙은 3명의 청년의 팀을 묘사하고 있다.  밧줄이 있음과 없음에 관계없이 줄다리기는 Burma(Myanmar),  콩고,  한국,  인도,  인도네시아,  하와이,  뉴기니와 뉴질랜드 등지에서 전통 민속놀이로 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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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이 별나고 군사는 사납고 백성은 어리석다. 권근(權近)이 목사 이원항(李元恒)을 보내는 서(序)에, “탐라가 바다 가운데 있어 처음에 신라 때로부터 해마다 직공(職貢)을 닦아 우리의 부속국이 되었는데, 고려 때에 제주목을 두었고, 국가에서 그대로 하여 반드시 조정 신하 중에서 문무의 재주와 지략이 있고 위엄과 은혜가 평소에 드러난 자를 뽑아서 목사를 시킨다. 그러나 바람에 돛을 달고 바다에 떠서 아득하고 멀어서 끝이 없기 때문에 수백 리 무서운 파도와 한없이 험한 것을 건너서 도착하고 보면, 풍속은 별나고 군졸은 사납고 백성은 어리석어서 기쁠 때는 사람이지만 성내면 짐승 같아서 제어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땅은 척박하고 백성은 가난하다.(地瘠民貧) 고려 문종(文宗) 12년에 문하성이 아뢰기를, “탐라는 땅이 척박하고 백성이 가난하여 오직 목도(木道)질로 생활을 영위한다.” 하였다.

여러사람이 통나무나 돌을 운반하면서 발을 맞추는 소리나 행동 모두를 지칭


풍속이 야만스럽고 거리가 멀다.(俗猿地遠) 정이오(鄭以吾)가 박덕공(朴德恭)을 임지로 보내는 서(序)에, “그 풍속이 야만스럽고 거리도 먼데다가 성주(星主)ㆍ왕자(王子)ㆍ토호(土豪)의 강한 자가 다투어 평민을 차지하고 사역(使役)을 시켜, 그것을 인록(人祿)이라 하여 백성을 학대하여 욕심을 채우니, 다스리기 어렵기로 소문이 났다.” 하였다.

 

돌을 모아서 담을 쌓았다.(聚石築垣)《동문감(東文鑑)》에, “그 땅에 돌이 많고 건조하여 (乾燥多石)본래 논은 없고 오직 보리ㆍ콩ㆍ조만이 생산된다. 그 밭이 예전에는 경계의 둑이 없어서 강하고 사나운 집에서 날마다 차츰차츰 먹어 들어가므로 백성들이 괴롭게 여겼다. 김구(金坵)가 판관이 되었을 때에 백성의 고충을 물어서 돌을 모아 담을 쌓아 경계를 만드니, 백성들이 편리하게 여겼다.” 하였다.


여자는 많고 남자는 적다.(女多男少) 혼인을 구하는 자는 반드시 술과 고기를 갖춘다. 납채(納采)를 하는 자도 그렇다. 혼인날 저녁에 사위가 술과 고기를 갖추어 신부의 부모에게 뵙고 취한 뒤에야 방에 들어간다. 풍속이 소주를 많이 쓴다. 여자는 많고 남자는 적은데, 중이 모두 절 옆에 집을 짓고 처자를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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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언(記言) 제48권 속집(續集)  

사방(四方) 2

탐라지(耽羅誌)


(생략)州在頭無嶽北。北地常多北風。樹木之植。皆偃向南。旌義,大靜二縣。在嶽南。南地無風多瘴霧。晝晦。

주(州)는 두무악(頭無嶽) 북쪽에 있는데 북쪽 지역은 늘 북풍이 심하게 불어 나무를 심어 놓으면 모두 남쪽을 향하여 쓰러진다. 정의ㆍ대정 두 고을은 두무악의 남쪽에 있는데 그곳에는 심한 바람은 불지 않으나, 장기(瘴氣)를 품은 안개가 많아 낮에도 어두울 정도이다.


頭無嶽。漢挐別名。亦曰釜嶽。在州南二十里。衆峯。峯皆上有泓。地勢寬平。稱頭無嶽。其絶頂。有白鹿泓。春秋二分。夕見南極老人星。

두무악은 한라산의 별명이며 부악(釜嶽)이라고도 한다. 주의 남쪽 20리에 여러 개의 산봉우리가 있으며 봉 위에는 깊은 못이 있는데 지세가 넓고 평평하다. 그래서 두무악이라 한 것이다. 그곳 꼭대기에 백록홍(白鹿泓)이 있는데 춘분과 추분의 초저녁에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 보인다.


釜嶽東。爲長兀嶽。高與釜嶽齊。上有深淵。水旱行禱。山高。五月積雪。八月襲裘。州東五十里。長沙堆。

부악의 동쪽이 장올악(長兀嶽)인데 그 높이는 부악과 같다. 그 위에는 깊은 못이 있어 장마가 지거나 가뭄이 들 때 거기서 기도를 올렸다. 또한 산이 높아서 5월에도 눈이 쌓여 있으며 8월에는 털옷을 입어야 한다. 주의 동쪽으로 50리에는 장사퇴(長沙堆)가 있다.


州縣之居。皆山麓海上。其土皆沙礫。唯州旁廣壤赤埴。

주ㆍ현의 거주지가 모두 산기슭과 바닷가이다. 그러므로 그곳의 토지는 모두 모래와 자갈뿐이지만, 주의 곁에 있는 광양(廣壤) 땅만은 붉은 진흙이다.

广壤 赤埴 :红色黏土


其地多壽考。其俗好淫祠。男少女多。女執男役。有女丁之號。

장수(長壽)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곳의 풍속을 고찰하여 보면 부정한 귀신 모시기를 좋아하였고, 남자는 적고 여자는 많아 여자가 남자의 사역(使役)을 맡아서 하므로 ‘여자장정’이라고 하였다.

부정한 귀신 모시기(힌두신Hindu:興都)


島人皮服。海妻無裙。布繫一尺。越

섬사람들은 가죽으로 의복을 만들어 입고 바닷가 아낙네들은 치마를 입지 않고 한 자쯤 되는 천으로 몸을 가렸다.


其穀宜黍,稷,菽,麥。其貨。璸珠,玳瑁,螺具。其魚。鰒魚,鮫魚,望魚。胎化無卵育。其果。橘,柚,橙,柑,梔,榧。產良馬。

그곳의 곡식으로 알 맞는 것은 기장ㆍ피ㆍ콩ㆍ보리이며 재화로는 빈주(璸珠)ㆍ대모(玳瑁)ㆍ나패(螺貝)이고 고기는 복어(鰒魚:전복)ㆍ교어(鮫魚)ㆍ망어(望魚)인데 태생(胎生)이고 알에서 부화(孵化)된 것은 없다. 과일은 귤(橘)ㆍ유자(柚子)ㆍ등자(橙子)ㆍ감자(柑子)ㆍ치자(梔子)ㆍ비자(榧子)이며 좋은 말이 생산된다.


비자나무-주목과의 상록 침엽 교목으로 높이는 25미터 정도이고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며, 잎은 두툼하고 단단하며 가지에 촘촘히 나고 선 모양으로 깃처럼 두 줄로 배열되어 있음


山高海惡。其人業射獵漁釣。不用網罟。

산이 높고 바다가 험하므로 그곳 사람들은 사냥하고 낚시하는 것을 생업으로 여겼으며 그물은 사용하지 않았다.


山麓之地。多石少土。耕種者踏田。多蟲蛇。蝍蛆尺餘。出香鼠。

산기슭의 토지는 돌이 많고 흙이 적어서 경작을 할 때 씨를 뿌린 이는 그 밭을 밟아 놓아야 된다. 벌레와 뱀이 많고 지네[蝍蛆]는 1자 넘는 것이 있으며, 향서(香鼠)도 그곳의 특산물이다.

향서(香鼠)는 동남아시아가 원산이다.


山無虎,豹,熊,羆,豺,狼,惡獸。無狐,兔,鳥。無鸛無鵲。無鵂鶹。山中見奇禽怪鳥。有貢鳥,獸,麋,鹿,豕,海獺。

산에는 호표(虎豹)ㆍ웅비(熊羆)ㆍ시랑(豺狼) 등 사나운 짐승과 여우ㆍ토끼ㆍ새가 없으며, 까마귀ㆍ까치ㆍ부엉이ㆍ올빼미도 없다. 그러나 산중에는 기이하고 괴상한 새와 짐승들이 보이며 공물로 바치는 새 짐승에는 사슴과 돼지와 해달이 있다.


乇羅火脫餘鼠。其間海水深黝。多烈風高浪。每春夏南望水宗外。高檣,大䭵過者無數。

탁라ㆍ화탈(火脫)ㆍ여서(餘鼠)사이에는 바다가 깊고 검푸르며 매서운 바람과 높은 파도가 많다. 매양 봄과 여름에 남쪽 수종(水宗) 밖을 바라보면 높은 돛을 단 큰 선박들이 무수히 지나간다.


此黑齒之夷。通中國之路。亦海外諸蠻夷物貨所通。西南望白海。崔溥漂海東風七晝夜。至白海。其外大琉球。

여기는 흑치(黑齒)오랑캐들이 중국과 통상하는 길목이며 또한 해외 여러 만이(蠻夷)들의 물화가 유통되는 곳이다. 서남쪽으로는 백해(白海)와 마주하고 있는데 최부(崔溥)가 바다에서 표류(漂流)하다 동풍을 타고 7일 만에 백해에 도착하였다 한다. 그 밖으로 대유구(大琉球)가 있다.


1.백해(白海)가 어딜 말하는 것일까?

해(해) 바다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고유명사로서 어떤 지역을 지칭하는 것일까?
서남쪽으로 바다라 함은 인도양(印度洋)과 자와해(爪哇海) 그리고 남극 남수해(南水海)가 있다.

어쩌면 그 당시 인도양을 백해라 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2.黑齿(黑齒)

當時日本貴族仍普遍流行染黑齒的特殊風俗。台灣早期的原住民也有黑齒習俗。

(1).古国名。古籍所说不一,已难确指。《山海经·大荒东经》:“有 黑齿 之国。” 郭璞 注:“黑齿,齿如漆也。”《淮南子·修务训》:“西教沃民,东至 黑齿 。”《新唐书·南蛮传下》:“羣蛮种类,多不可记,有 黑齿 、 金齿 、 银齿 三种。” 清 黄遵宪 《和锺西耘庶常德祥津门感怀诗》之六:“ 黑齿 雕题 徵鬼籙,赤文緑字詡天书。”

(2).染黑牙齿。古代妇女的一种妆饰。 康有为 《大同书》戊部第八章:“女子既为男子私有之物,但供男子玩弄,故穿耳、裹足、细腰、黑齿、剃眉、敷黛、施脂、抹粉、诡髻、步摇,不惜损坏身体以供男子一日之娱。”

(3).复姓。 唐 有 黑齿常之 。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의 시구 가운데 "이[齒]를 물들이는 것은 일찍이 월(越)의 습속이었다. 染齒會將越俗" 라고 하여, 중국 남부 지역을 가리키는 월에서는 치아를 물들이는 습속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찍이 중국의 양가빈(梁嘉彬)은 중국 역대 문헌에 보이는 흑치에 관한 기록과 해류 등에 관하여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 위치를 지금의 필리핀 일원으로 비정하였고, 이 고증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따라서 흑치가 동남아시아에 소재한 지역임은 의심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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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林下筆記) 제16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제주(濟州) 장례의 시초

기건(奇虔)이 제주목사(濟州牧使)에 제수되었다. 그런데 제주의 본래 풍속이 어버이를 장사 지내지 않고 죽으면 시체를 구렁에다 갖다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건이 아직 부임지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고을에 지시를 내려 관곽(棺槨)을 갖추어 습렴(襲殮)을 해서 장사 지내도록 가르쳤는데, 이 고을에서 어버이를 장사 지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 비롯되었다. 하루는 그의 꿈에 3백여 명의 사람이 나타나 뜰 밑에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례하기를, “공의 덕택으로 우리의 해골이 맨땅에 나뒹구는 것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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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역사(海東繹史) 제16권  

세기(世紀) 16

제소국(諸小國) 살펴보건대, 동사(東史)를 보면 신라와 고려 시대 때 소소한 속국(屬國)들이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의 서책에 나오는 나라들만을 취하여 이들을 합하여 제국기(諸國記)로 삼아 끝에다가 붙인다.

 

탐라(耽羅)

진서(鎭書)가 삼가 살펴보건대, 탐라는 바다 섬 라이다. 《후위서(後魏書)》에서는 섭라(涉羅)라고 칭하였고, 《수서(隋書)》에서는 담모라(牟羅)라 칭하였고, 《당서(唐書)》에서는 담라(儋羅)라 칭하고 또 탐부라(耽浮羅)ㆍ탁라(乇羅)라 칭하였는데, 이는 모두 한나라이다. 우리나라의 방언에 도(島)를 ‘섬(剡)’이라 하고, 국(國)을 ‘나라(羅羅)’라 하는데, 탐(耽)ㆍ섭(涉)ㆍ담(儋) 세 음은 모두 섬(剡)과 음이 비슷하니, 대개 섬나라를 이른 것이다. 고기(古記)에 칭한 바 ‘처음에 탐진(耽津)에 정박하여 신라에 조회하였으므로 탐라(耽羅)라고 한다.’는 것은 견강부회한 설이다. 백제 문주왕(文周王) 때부터 백제를 섬겼고, 백제가 망하자 다시 신라를 섬겼으며, 고려 숙종(肅宗) 10년에 이르러 강등시켜 군(郡)으로 삼았는데, 지금의 제주(濟州)이다.

○ 탐라는 임읍(林邑)의 남쪽 변경 바다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책부원귀》

○ 《한창려집(韓昌黎集)》에는, “해외의 여러 나라 가운데 탐부라(耽浮羅)ㆍ유구(流求) 등의 나라는 동남쪽 천지(天池)에 있다.” 하였다.

○ 탐라는 또한 탐모라(耽牟羅)라고도 한다. 그 나라는 백제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 옛날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없었는데, 세 신인(神人)이 땅속에서 솟아나왔다. 맏이를 양을나(良乙那)라 하고, 다음을 고을나(高乙那)라 하고, 그다음을 부을나(夫乙那)라 하였다. 어느 날 세 사람이 바닷가에서 사냥을 하다가 석함(石函)을 하나 얻어 열어보니, 세 여인과 개와 소 등 가축과 오곡(五穀)의 종자가 있었다. 이에 드디어 세 여인을 나누어 아내로 삼고 각자 샘물이 달고 토질이 비옥한 곳을 찾아 살았다. 양을나가 사는 곳을 제1도(都)라 하고, 고을나가 사는 곳을 제2도, 부을나가 사는 곳을 제3도라 하고는 비로소 오곡을 씨뿌렸으며, 또 망아지와 송아지를 길러 날로 부유해졌다. 송 원휘(元徽 후폐제(後廢帝)의 연호) 4년(476)에 비로소 백제국에 방물을 보내었다. 《일본기(日本紀)》

○ 이것은 바로 동사(東史)의 본문이다.

○ 후위(後魏) 정시(正始 선무제(宣武帝)의 연호) 연간에 세조(世祖)가 고구려의 사신 예실불(芮悉弗)을 인견하였다. 예실불이 아뢰기를,

“황금은 부여(夫餘)에서 나고 가(珂)는 섭라(涉羅)에서 산출되는데, 지금 부여는 물길(勿吉)에게 쫓겨나고 섭라는 백제에게 병합되었습니다.” 하였다. 《후위서》

백제에서 남쪽 바다로 3개월을 가면 탐모라(耽牟羅)라는 나라가 있는데, 남쪽에서 북쪽까지의 거리가 1천여 리이고,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수백 리이며, 토산물로는 노루와 사슴이 있다. 백제의 부용국(附庸國)이다. 《수서》

○ 《수서》에는 또, “양제(煬帝) 대업(大業) 4년(608)에 문림랑(文林郞) 배세청(裴世淸)을 파견하여 왜국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는데, 백제국을 건너 죽도(竹島)에 이르러서 남쪽으로 바라보니, 탐라국이 큰 바다 가운데 있었다.” 하였다.

○ 당 고종 용삭(龍朔) 초에 담라(儋羅)란 나라가 있어 국왕 유리도라(儒李都羅)가 사신을 파견하여 들어와서 조회하였다. 그 나라는 신라 무주(武州)의 남쪽 섬에 있는데, 풍속이 소박하고 누추하며, 개 가죽과 돼지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여름에는 초실(草室)에 살고 겨울에는 굴실(窟室)에 산다. 땅에서는 오곡이 나는데, 소를 써서 경작할 줄 모르며, 철치(鐵齒)로 땅을 판다. 처음에는 백제에 부용하였다. 인덕(麟德 당나라 고종의 연호) 연간에 추장(酋長)이 와서 조회하면서 황제를 따라서 태산(太山)에 갔다. 뒤에 신라의 부용국이 되었다. 《신당서》

○ 가우(嘉祐 송나라 인종(仁宗)의 연호) 연간에 소주(蘇州) 곤산현(崑山縣) 상해(上海)에 어떤 배 한 척이 표류하여 와서 해안에 닿았다. 배 안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의관은 중국 사람과 같았으며,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시험 삼아 글자를 써 보게 하였으나 읽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서찰 하나를 내보였는데, 바로 당나라 천우(天祐 애제(哀帝)의 연호) 살펴보건대, 천우(天祐)가 《사문유취(事文類聚)》에는 천수(天授)로 되어 있는데, 이는 천우를 잘못 쓴 것이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서는 이를 인하여 고려 태조의 연호라고 하였는데, 이는 틀린 것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맞다)

연간에 둔라도(屯羅島)의 살펴보건대, 둔라도는 탁라도(乇羅島)가 잘못된 것이다. 수령(首領)에게 배융부위(陪戎副尉)를 제수하였음을 고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글이 있었는데, 바로 고려에 올리는 표문(表文)으로, 역시 둔라도라고 칭하였으며, 모두 한자(漢字)를 써서 기록하였다. 이는 대개 동이로서 고려에 신하로 소속된 자이다. 《몽계필담(夢溪筆談)》

○ 교빙지(交聘志) 표류조(漂流條)에 상세히 나온다.

○ 탐라는 고려의 여국(與國)이다. 세조(世祖)가 이미 고려를 신하로 복속시키고는 탐라가 남송(南宋)ㆍ일본(日本)과 통하는 요충지라고 여겨 주의를 기울였다. 《원사》

○ 삼가 살펴보건대, 원나라 때에는 탐라가 이미 고려에 병합되었으므로, 《원사》에 실려 있는 탐라에 대한 사실은 모두 고려기(高麗紀)에 편찬되어 있다.

○ 마한의 서쪽 바다의 섬 위에 주호국(州胡國)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키가 작고 머리를 깎았으며, 가죽 옷을 입는데 상의(上衣)만 있고 하의(下衣)는 없다. 소와 돼지를 잘 기르며, 배를 타고 왕래하면서 물화(物貨)를 한(韓)의 국중(國中)에 사고 판다. 《후한서》

馬韓之西,海島上有州胡國,其人短小,髠(髡)頭,衣有上無下,好養牛豕,乘船往來,貨市韓中也。
마한의 서쪽 바다섬 위에 '주호국'이 있다. 사람들이 작고,[위지에는 '人'자 밑에 '差'자가 있다.] 머리를 깍고 가죽옷을 입는데 위만 있고 아래는 없었다.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고 배를 타고 왕래하며 '韓'에서 재화를 교역하였다.

○ 살펴보건대, 주호국은 탐라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가 없기에 끝에다가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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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역사(海東繹史) 제27권  

물산지(物産志) 2

수류(獸類) 

사슴[鹿], 노루[麞]

○ 담모라국(耼牟羅國)의 땅에는 노루사슴이 많다. 《수서》

○ 발해의 풍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부여(夫餘)의 사슴이다. 《신당서》

○ 조선에는 순록[麋], 사슴[鹿], 노루[麕], 고라니[麅]는 있으나, 궤(麂)는 없다. 《현람(玄覽)》

○ 조선의 고라니는 노루[麞]와 같은데, 맛이 몹시 좋다. 산에는 가 나지 않는다. 《조선부(朝鮮賦) 주(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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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전서(弘齋全書) 제51권  

책문(策問) 4

탐라(耽羅) 제주(濟州) 세 고을 유생들의 시취(試取) ○ 갑인년(1794)

王若曰。咨爾濟州子諸生。子諸生生長之地。古之九韓之一也。東瀛洲是已。星土也。風俗也。制置也。產植也。雖職方所不載。王會所不圖。其區分之次。淳漓之殊。因革之由。水陸之宜。子諸生。生於是鄕。長於是鄕。耳之得目所親。自有聞博而識明者。予欲問是州。不於子諸生而伊誰。洪惟我家。聖繼神承。干羽舞階。文德播遠。海隅出日。罔不率俾。粤在我太宗初載。耽羅來賓。請改爵號。以星主王子。爲左右都知管。而自是厥後。修制寖備。東西道之置大靜,旌義也。牧使之兼節制使也。判官之兼監牧都尉也。審藥倭學譯學之各具分職也。率皆視同內服。備加經理。年荒則輸粟往哺。無險風濤。貢至則挾纊以歸。輒加喣濡。列聖朝柔遠字恤之澤。謳吟在口。於乎不忘環一島。且幾百歲矣。肆予否德。敉承丕緖。不敢不於先后之憲章。斯民之勞來也。夙夜盡心焉。而尙懼其九重邃矣。隱莫之達歟。萬姓衆矣。惠莫之究歟。人官有不能歟。物曲有不利歟。况以耽羅之僻處海中。厥產則有蠙珠曁魚橘柚驊騮之饒。厥民則有傷財困役。輕男重女之風。而比年以來。隔幷荐臻。饑饉頻仍。南顧一念。若恫在己。于斯時也。萬有一委貪狼以分憂之重。託碩鼠以百里之命。貨賄是求。箕斂恣行。則吏固無足言。將如我島氓之無告何哉。夫天生時而地生財。人其用天而因地。無古今一也。耽羅之水事多而陸事寡。今亦古也。茅茨不編。踏畊特苦。今亦古也。絮綿不產。尺布如金。今亦古也。而射石卜地之初。貲財之殷富如彼。休養生息之餘。民物之凋弊如此者。豈不由於古人所謂角而翼者歟。前制無追往之辜。後旨開自今之恕。悠悠世情。遂忽成法。爰命繡衣。往汝覈之。苟有犯也。常刑自有。而惟是窳政之孰爲當革。利事之孰爲當興。民欲之所必從。民窮之所必紓。不有以發策周諮。豈能使千里重溟魚欄蟹舍之情。戶庭不出而指掌可求哉。凡今對予問者。無非一方之俊乂。十室之忠信也。經歷審熟於土著。講磨厭飫於卷中。何以則蕞爾一島。物阜人安。天地之藏咸歸。尾閭之洩莫憂。而海波不揚。聲敎于訖歟。又有問於子諸生者曰。邑名耽羅。蓋因泊耽津而朝新羅。則或稱乇羅。或稱耽牟羅者。何所取義。豈乇亦津名。而牟乃語辭歟。昌黎送序。歷數海外諸國。而流求扶南耽浮羅之屬。東南際天地。則雲笈所謂太上老君之降于浮羅嶽者。疑或此島。豈牟爲浮訛而嶽有可徵歟。曰老人星見。人多壽考。而老人星。卽恒星之一。則世以南極之爲天樞者。謂之老人。何其謬歟。高襲星主。梁襲王子。而文昌佑得王子之爵。則志以王子之繼梁氏者。謂之繼高。得非誤耶。曰芮悉弗之告魏祖曰。金產夫餘。珂產涉羅。而爲百濟所幷。二品不登於府。涉羅。卽耽羅歟。塔羅赤之爲元使也。載牛馬駝驢羊來。牧于首山坪。駝羊今有種歟。曰達魯花赤府。何以遙管於中州。軍民安撫府。何以還隸於勝國。其地皆可指點。文林使倭而望洋統領。聘麗而識路故實。竝可揚扢歟。曰神人從地湧出。言猶河漢。自古有三姓之穴。紫衣齎糧送女。志在齊諧。至今傳石函之蹟者。何歟。曰星主王子之號。時世可稽。河幕兩道之設。本末可詳歟。曰雲漢若挐。鎭山以名。則嶽降之賢。且問幾人。溟渤無極。石壁環封。則水族之靈。亦多異聞歟。曰方嶽香飆。豓說神仙之遊。木槽零響。漫比風石之音。此淸虛者之所有事也。土性浮燥。從每每之新田。杵歌互答。和摻摻之舊曲。此風土記之所特書也。海上三神。天下其眞有耶。昇平百年。民物近何如也。曰高峰絶頂。往往多水貯之池。造化何其費精。雲際翠微點點。是江南之山。道里定云幾何歟。子諸生。其悉言乃聞乃識。以副予虛佇之意。予將親覽焉。


왕은 말하노라.

아, 그대 제주의 제생아. 그대 제생이 생장한 땅은 옛날 구한(九韓)의 하나인 동방 영주(瀛洲)가 이곳이다. 성좌와 토양과 풍속과 제도와 산물은 비록 《직방기(職方記)》에 기록된 것이 없고 《왕회도(王會圖)》에 그려진 것이 없다 하여도, 지역이 구분된 차례와 풍속의 순박하고 경박함과 연혁의 유래와 수륙의 알맞은 풍토에 대해서는 그대 제생이 이 고을에서 태어났고 이 고을에서 성장하며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았으니 자연히 듣는 것도 아는 것도 많을 것이다. 내가 이 고을에 대해 알고 싶은데 그대 제생이 아니면 누구에게 듣겠느냐.

오직 우리 국가는 성신(聖神)이 계승하여 방패와 깃털로 왕정에서 춤을 추면 문덕(文德)이 멀리 파급되어 해 뜨는 바닷가에까지 따르지 않는 곳이 없다. 옛날 우리 태종 초년에 탐라국에서 국빈으로 방문하여 관작의 호칭을 고쳐 주기를 청하여 성주(星主)와 왕자를 좌우 도지관(左右都知管)으로 삼았는데 이로부터 후대로 내려오면서 제도가 차츰 갖추어지게 되었다. 동도와 서도에 대정현(大靜縣)과 정의현(旌義縣)을 두어 목사(牧使)는 절제사를 겸하게 하고 판관(判官)은 감목도위(監牧都尉)를 겸하게 하였으며, 심약(審藥)과 왜학(倭學)과 역학(譯學)을 각각 갖추어 직책을 분장한 것은 모두 국내와 같이 관리하게 하였다. 흉년이 들면 바람과 파도를 무릅쓰고 곡식을 싣고 가 먹이고 공물이 도착하면 솜을 가지고 돌아가게 하여 따스한 은혜를 한층 더해 주니, 열성조의 먼 곳을 회유하고 사랑으로 어루만진 혜택을 온 섬 안에서 잊지 않고 입에 담아 노래하고 칭송한 지 몇 백년이 되었다.

이제 부덕한 내가 계통을 이어받았으니 선대 제왕의 헌장을 따라 이 백성을 위로하고 보호하는 일에 밤낮으로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구중궁궐이 깊어서 숨은 폐단을 진달하지 못하지나 않은지, 백성의 무리가 많아서 혜택이 두루 미치지 못하지나 않은지, 관리들이 잘못하고 있지나 않은지, 사물의 곡절이 불리하지나 않은지를 늘 두려워하고 있다. 더구나 탐라도는 외진 바다 가운데 있으며 산물은 진주생선감귤ㆍ유자ㆍ준마 등이 풍요하고, 백성은 재물을 잃고 노역에 곤란을 당하여 사내를 경시하고 여인네를 중하게 여기는 풍속이 있다. 근년 이래로는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겹치고 흉년이 자주 드니 남방에 대한 염려가 마치 몸에 질병이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때에 만약 한 탐욕스러운 이에게 다스리는 중책을 맡기거나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자에게 관직을 주어 뇌물이나 찾게 하고 거두어들이는 일을 자행하게 한다면, 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섬 백성들은 호소할 길조차 없을 것이니 어떻게 하겠느냐.

대저 하늘은 시절을 낳고 땅은 재물을 낳는데, 사람이 하늘의 도리를 이용하고 땅의 이로움을 따르는 것은 고금에 관계없이 동일한 일이다. 탐라도 바다에서의 일은 많고 육지의 일이 적은 것이 지금이나 옛날이나 같고, 띠풀의 이엉을 엮지 않고 씨앗을 심어서 밟아 주는 일이 특히 고된 것도 지금이나 옛날이나 같으며, 면화가 생산되지 않아서 한 조각의 베나 비단을 황금과 같이 여기는 것도 지금이나 옛날이나 같다. 활을 쏘아 땅을 점치던 당시에는 재물의 풍요로움이 저러하였건만, 백성들을 쉬게 하고 안정시킨 뒤인데도 그들의 생활과 물산의 산출이 이처럼 쇠잔해진 것은 옛사람들의 이른바 ‘토끼 머리에 뿔이 돋고 소 옆구리에 날개가 나온다’는 식의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조처에서 생긴 일이 아니겠느냐. 전일의 제도에 대해서는 지난 잘못을 추궁하여 허물 잡는 일이 없고 후일의 명령은 지금부터 관용의 길을 열어 주었는데, 무심한 세상의 인정은 마침내 국법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어사에게 명하여 그대들에게 찾아가 바로잡게 하였으니, 진실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있다면 국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잘못된 정치는 무엇을 고쳐야 하며, 이로운 일은 어느 것을 일으켜야 하고, 백성들의 하고 싶어 하는 것 중에 반드시 따라 주어야 할 것과 백성들의 곤경 가운데 반드시 풀어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책문을 내어 자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천 리의 먼 바다 속 어란(魚欄), 해사(蟹舍)의 실정을 뜰에도 나가지 않고 손바닥을 가리키듯 알아볼 수 있겠느냐. 지금 나의 책문에 대해 대책을 내는 이는 모두가 한 지방의 준재이며 마을의 착실한 사람이 아닌 이가 없다. 토박이이니 경험은 익숙할 것이며 공부는 책 속에서 만족하게 하였을 것이다. 어떻게 하여야 조그마한 섬에 산물은 풍성하고 백성은 편안하여 천지의 보물이 모두 모이고 아래로 새는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며 바다의 물결도 조용하여 아름다운 교화가 만족하게 될 수 있겠느냐?

또 그대 제생에게 묻노라. 고을 이름을 탐라라고 한 것은 대체로 탐진(耽津)에 정박하여 신라에 조회한 것으로 인하였다고 하는데, 혹 탁라(乇羅)라고 칭하기도 하고 혹은 탐모라(耽牟羅)라고 칭하기도 하는 것은 어디에서 취한 뜻이냐? 어쩌면 탁도 역시 나루 이름이고 모는 어조사인 것은 아니냐? 한퇴지(韓退之)의 ‘친구를 전송하는 서문[送序]’에 해외의 여러 나라들을 차례로 꼽으면서 유구(流求)ㆍ부남(扶南)ㆍ탐부라(耽浮羅) 등속은 동남의 하늘 땅 끝에 있다고 하였으니 《운급(雲笈)》에서 말하는 “태상노군(太上老君)이 부라악(浮羅嶽)에 하강하였다.”는 것이 혹시 이 섬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모(牟)부(浮)와전된 것이라면 산악이라는 악(嶽)은 증명할 만한 것이 있느냐? 또한 노인성(老人星)을 본 사람은 수명이 길어진다고 하는데 노인성이라는 것은 바로 항성(恒星)의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천추(天樞)가 되는 남극성(南極星)을 노인성이라고 한다고 하니 얼마나 잘못된 것이냐.

고씨(高氏)는 성주(星主)를 세습하고 양씨(梁氏)는 왕자를 세습하였다. 문창우(文昌佑)가 왕자의 작호를 얻었는데 기록에는 양씨를 계승한 왕자를 고씨를 계승한 것으로 말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 예실불(芮悉弗)이 위조(魏祖)에게 고하기를, “황금부여(夫餘)에서 생산되고 마노(瑪瑙)섭라(涉羅)에서 생산되는데,

 

강원도 삼척(三陟)에 마노(瑪瑙 agate)가 났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880
世界上整个欧洲、北美洲以及东南亚盛产玛瑙,世界上玛瑙著名产地有:印度、巴西(브라질)、美国、埃及(이집트)、澳大利亚(호주)、墨西哥(멕시코)等国。墨西哥、美国和纳米比亚还产有花边状纹带的玛瑙,称为“花边玛瑙”。美国黄石公园、怀俄明州及蒙大拿州还产有“风景玛瑙”。

 

백제(百濟)에 합병되고 나서 두 물품이 왕부에 오르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섭라가 바로 탐라이냐? 탑라치(塔羅赤)가 원 나라 사신으로 올 때 소ㆍ말ㆍ낙타ㆍ당나귀ㆍ양 등을 싣고 와서 수산평(首山坪)에서 길렀다고 하는데 지금도 낙타와 양의 종자가 있느냐? 또는 달로화치부(達魯花赤府)는 어떻게 먼 곳에 있는 중국(中國)에서 관할하였으며 군민안무부(軍民安撫府)는 어떻게 하여 고려에 두게 되었는지 그 지역을 지적할 수 있겠느냐? 문림(文林)이 왜국으로 사신을 가면서 해양을 바라보고 통괄하여 알았다고 하고 고려에 초빙되어 가면서는 길을 알았다고 하는데 그 고사를 아울러 들추어 보아라. 또한 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 나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마는 예로부터 삼성혈(三姓穴)이 전해 오고, 붉은 옷을 입은 사자가 곡식과 종자와 처녀를 보내왔다는 말이 《제해(齊諧)》에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석함(石函)의 유적이 전해 오고 있는 것은 어쩐 일이냐?

또한 성주와 왕자의 호칭이 시작된 시대를 상고해 보며, 하(河)ㆍ막(幕) 양 도를 설치하게 된 본말을 자세히 말하여 보아라. 또한 구름 속의 은하수라도 잡을 수 있다고 하여 진산(鎭山)의 이름을 한라산(漢拏山)이라고 하였는데, 이 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현인은 몇 사람이나 되느냐? 짙푸른 바다가 끝이 없고 암벽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수족(水族)의 신령함에 대한 많은 신기한 소문이 있지 않느냐? 또한 산악에서 향기가 나부끼면 신선이 노닌다고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나무 구유에서 물이 떨어지는 음향을 풍경 소리에 비하는데, 이러한 것은 청허(淸虛)한 자들에게 있는 일이다. 토양은 푸석하고 건조하여 매번 새 밭을 일구어야 하고, 절구질하며 주고받는 잔잔한 옛 노래는 이곳 풍토기에 특별히 기록된 것이다. 바다 위의 삼신산(三神山)이 천하에 진정 있는 것이냐? 태평 시절 백 년 동안에 백성과 사물은 근래에 어떠하냐? 또한 고봉 절정에 더러는 물이 담긴 연못이 많다고 하는데 조물주는 어쩌면 그리도 정력을 들였으며, 구름 사이에 푸른 점이 점점이 있는 것은 모두 강남의 산이라고 하는데 거리는 확실하게 얼마나 되느냐? 그대 제생은 듣고 본 것을 모두 말하여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는 나의 뜻에 보답하라. 내 친히 열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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