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인물

고려문신 박인량의 고향은 대륙민강(岷江) 북쪽에 있었다

한부울 2010. 6. 6. 20:52

고려문신 박인량의 고향은 대륙민강(岷江) 북쪽에 있었다.


박인량(朴寅亮?~1096년)이 표문에 “문수(汶水) 북쪽의 옛 고향으로 돌아가서 좁은 땅이나마 가꾸고 싶습니다만...”

고려의 학자·문신으로서 자는 대천(代天), 호는 소화(小華), 시호는 문렬(文烈)이며, 본관은 죽산(竹山)또는 평산(平山)이다. 박인량은 고려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되어 1080년(문종34)에 호부상서 유홍(柳洪)·김근(金覲)등과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시문으로 크게 격찬을 받아, 김근의 글을 합친《소화집》을 중국인이 발간하였다 한다.

중국인 발간하였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도 바로 대륙에 살던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위 표문에서 그가 옛 고향이라고 하는 문수(汶水)가 어딘가?

바로 지금의 민강(岷江)임을 알 수 있다.

문수(汶水) 즉 민강(岷江)북쪽에 박인량의 옛 고향 죽산(竹山)이나 평산(平山)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지금 민강(岷江)이 있는 사천지방(四川省)은 죽 대다무로 유명하다.

그곳에 성도(成都)가 있어 더 유명하다.

죽산(竹山)은 대나무가 나는 산이다.

즉 판다(panda)가 사는 산을 끼고 있는 고을

낙산대불이 있는 아미산(峨眉山)부근이 아닐까?

 

古代「汶」,「岷」不單讀音相同,還有通用的關係,「岷江」就是「汶水」。而「汶川」之所以得名,跟岷江有莫大的關係。照這樣看,香港的新聞報道員把「汶川」的「汶」讀成,並無不妥。至於一些香港人把「岷江」讀成「敏江」,那是另一個問題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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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7년 병신(1476,성화 12)3월28일 (신미)

인정전에 나아가 다시 책문을 내리다

과시(科試)에서 시무(時務)의 문제를 내어 고시함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서 다시 책문(策問)을 내기를,

“천하(天下)의 이치는 내 마음에 모여 있으니, 진실로 그 이치를 탐구한다면 그 이치를 통(通)하지 아니할 리가 없다. 대개 해와 달이 운행(運行)함에 있어서는 일정한 법도(法度)가 있는 것이고, 일식(日蝕)과 월식(月蝕)도 역시 통상적인 이치이다. 그래서 선유(先儒)는, ‘역산(曆算)에 정통한 자는 비록 백세(百世) 뒤라도 이를 알 수가 있다.’ 하였다. 그러나 공자(孔子)께서는 《춘추(春秋)》에서는 반드시 일식(日蝕)을 기록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선유(先儒)는 또, ‘인군(人君)이 덕(德)을 닦아서 정치를 행하면 마땅히 일식이 될 것도 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미 통상적인 이치가 있는 것인데,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또 해라는 것은 양기(陽氣)의 정수(精髓)이요, 달이라는 것은 음기(陰氣)의 정수로서 태양(太陽)과 태음(太陰)은 하나일 뿐인데, 요(堯)임금 때 열 개의 해가 같이 떠오르고, 송(宋)나라 때 두 개의 해가 서로 움직이었으니 또한 무슨 이치인가? 조(潮) 석(汐)의 설(說)은 선유(先儒)의 논의가 같지 아니한데, 그 불어나고 줄어드는 이치를 들을 수 있겠는가? 동해(東海)에는 밀물[潮]이 없고 전당강(錢塘江)이 사흘 동안 바다에 이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또한 무슨 이치인가? 불이라는 것은 양기(陽氣)의 정수(精髓)이요, 물이라는 것은 음기(陰氣)의 정수로서 각각 그 성질이 있는데, 뜨거운 온천(溫泉)은 있으면서도 차거운 불[寒火]은 없으니, 무엇 때문인가? 얼음에 누에가 있고 불에 쥐가 있다니, 또한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귤(橘)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枳]가 되고 담비[貉]가 문수(汶水)를 건너면 죽는다니 또한 무슨 이치인가? 홍범(洪範)에 이르기를, ‘임금의 잘잘못[得失]은 해[歲]로써 징험하고, 경사(卿士)의 잘잘못은 달[月]로써 징험하고, 서민(庶民)의 상황은 별[星]로써 살핀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비오고 햇볕나고 덥고 춥고 바람부는 것은 정사의 엄숙하고 정연하고 지혜롭고 도모하고 착한 것의 응답(應答)이다.’고 하였는데, 비오고 햇볕나고 더웁고 춥고 바람부는 것은 일일이 과연 다섯 가지 일의 응답인가? 천하의 이치가 무궁(無窮)한 것이니 이치를 통하지 아니함이 없은 다음이라야 가히 유자(儒者)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차 그대 대부(大夫)들의 궁리(窮理)하는 학식을 보고자 함이니, 편(篇)으로 지으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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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24년 정해(1887, 광서 13) 9월19일 (계유)

건청궁에서 소대할 때 참찬관 조종필 등이 입시하여 《자치통감강목》을 진강하였다

○ 사경(四更).

“명당(明堂)이란 천자가 제후의 높고 낮은 서열을 밝히는 당(堂)입니다. 주(周) 나라가 쇠하여 정사가 해이하게 되자 명당도 무너져서 후세에 그 제도를 아는 자가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한 나라 무제 때에 이르러 공옥대(公玉帶)가 그 도식(圖式)을 올려서 문수(汶水)가에 지었습니다. 하지만 무제는 덕의 근본은 닦지 않고 다만 선왕이 행한 것만을 본받았으니, 형식적인 것에서 면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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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林下筆記) 제12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박인량(朴寅亮)의 표문(表文)

박인량이 지은 표문은 그 용사(用事)가 정밀하고 적절하였다. 그가 지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청한 표문에 이르기를, 문수(汶水) 북쪽의 옛 고향으로 돌아가서 좁은 땅이나마 가꾸고 싶습니다만, 장사정왕(長沙定王)의 옹색한 소매를 펄럭이며 태평성대를 손뼉을 치며 춤을 춥니다.[歸汶陽之故田 撫存褊邑 回長沙之拙袖 抃舞昌辰]” 하였다. 또 돌아오는 길에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통주(通州)에 이르러서 그곳 태수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지어 준 글에서, “북두성을 바라보며 뗏목을 타고 당초에 고국을 떠났는데, 무릉도원을 찾다가 길을 잃고 잘못 신선의 마을에 왔답니다.[望斗極而乘槎 初離下國 指桃源而迷路 誤到仙鄕]” 하였는데, 이상의 구절들은 모두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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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잡록 3 본조(本朝)

문진가(問津歌)

汶上애아니가다。陋巷이업시리아。藜藿의됴마。駟馬올가。春風에浴沂고。날로三省리。

문수(汶水) 위에 아니가다, 누항(陋巷)이 없으리라. 여곽(藜藿 명아주와 콩잎) 좋은 맛을 사마(駟馬) 탄 부귀한 사람 알 수 있나. 춘풍(春風)에 기수(沂水)에서 멱감고, 날로 세 번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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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강(岷江)

 

 

 

 

 


민강(岷江, Mín Jiāng)은 중화인민공화국을 흐르는 강의 하나로 양자강(揚子江)의 좌안의 지류이다. 사천성 중부의 대표적인 강으로 예전에는 문수(汶水)라고도 했다. 길이는 735km이고 민강 수계의 수량은 양자강(揚子江)의 지류 중에서도 최대이다.


주요 지류로는 흑수하(黑水河), 잡곡뇌하(杂谷脑河), 대도하(大渡河), 마변하(马边河), 금강(錦江) 등이 있다.


민강은 사천성 북부의 아바티베트족창족(阿巴藏族羌族)자치주 북부, 감숙성으로부터 사천성으로 뻗은 민산 산맥의 남쪽 기슭에서 출발한다. 송번현(松潘县), 무현(茂县), 문천현(汶川县)의 깊은 산지를 흘러 成都(都江堰市)에서 성도평원(成都平原)으로 나와 미산(眉山)를 지나 산(樂山)시에서 다두하(大渡河)와 합류한다. 최종적으로는 이빈(宜賓)시에서 사금(砂金)이 채집된다는 금사강(金沙江:古稱麗水)과 합류해 양자강(揚子江)을 형성한다. 민강과 그 지류가 흐르는 비옥한 성도평원(成都平原)은 사천분지의 서부에 있으며, 중국 남서부에서도 최대의 평야이다.


지류 중 다도하(大渡河)는 청해성(青海省) 위수티베트족 자치주(玉樹蔵族自治州) 남부의 바옌커라(巴顔喀拉)산맥의 남쪽 기슭에서 출발해 사천성 감자 티베트족 자치주(甘孜藏族自治州) 의 대설산맥(大雪山脈)과 공협산맥(邛崍山脈)의 사이를 통과해 러산(乐山:樂山)에서 민강과 합류하는 길이 1,155km의 대하이다. 다두하(大渡河)는 민강의 지류로서 다루어지지만 합류점까지의 연장은 민강보다 길고 수량도 민강보다 많다.


민강이 산악부에서 성도평원(成都平原)으로 나오는 장소에는 전국시대 말기에 진에 의해서 건설된 수리 시설 두장옌이 있어 민강의 물을 청두 평원 방면으로 흘려보내고 수해 방지·수운·관개 등으로 이용된다. 두장옌(都江堰)은 현재까지 2000년 이상에 걸쳐 성도평원(成都平原)의 광대한 농지를 적시는 수로망의 기점이며, 세계 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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