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과 세조에게 취화(翠華)와 제력(帝力)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http://blog.daum.net/han0114/17049862
성종임금은 제(帝)이고 천자(天子)였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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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홍희제를 담력이 없는 임금이라고 비판하고 나무랐다.
洪熙皇帝及今皇帝, 皆好戲事。 洪熙嘗聞安南叛, 終夜不寐, 甚無膽氣之主也。
“홍희(洪熙)는 일찍이 안남(安南)이 모반하였다는 말을 듣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하니, 참으로 담력(膽力)이 없는 임금(主)이로다”
반도사관으론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긴가?
어찌 왕이란 임금이 감히 황제를 보고 막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다.
이러한 선입견도 따지고 보면 근세기 우리가 역사를 잘못배워 일어난 혼란이라고 보인다.
대왕, 천자, 황제 칭호를 볼 때 대왕과 천자는 동양에서 부르는 칭호이고 황제는 서양에서 만들어 진 칭호일 가능성이 높다.
근세기 서세동점시기 서양중심의 역사에서 동양에서는 대왕, 천자로 통하는 것이 서양에서는 황제로 대신 칭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황제라는 칭호는 동양적인 호칭이라기 보단 근세기 들어 제국들의 난립 속에서 등장한 서양 세력위주의 칭호라고 보인다.
황제는 차르(Tsar)라는 단어에서 시발하는 것 같고 카이사르(라틴어:Caesar) 즉 옛 로마제국의 시저로 통칭되는 황제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고 자료에 나오는 것을 보면 1453년까지 그리스도교, 고대그리스 문화를 간직한 비잔틴제국의 황제상징성과 중세 러시아 최고통치자들이 사용하는데서 부터 출발한 것 같다는게 중론이다.
차르 a czar[tsar, tzar]는 재정러시아 황제 칭호로 황제(皇帝)는 제국(帝國)의 세습군주의 존호이라 했고 왕국(王國)의 군주인 왕(王)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작위 중 가장 높은 지존의 서양 작위이다.
이 지존의 서양작위는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과 칭호에서 비롯한다하였고 그의 칭호인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에서 ‘임페라토르(Imperator)’와 ‘카이사르(Caesar)’가 황제를 뜻하는 영어 ‘엠퍼러(emperor)’와 독일어 ‘카이저(Kaiser)’ 및 러시아어 ‘차르(царь)’등의 어원이 되었다고 [위키]자료에 나온다.
또 페르시아와 터키의 황제는 로마제국과는 별도로 기원전 550년 키루스 대제의 통일부터 제호를 유지해온 최초의 통일국가 페르시아제국의 황제는 전통적으로 파디샤(Padishah)혹은 샤안샤(Shahanshah)라 하였다. 이 칭호는 최근래의 팔레비 왕조까지 페르시아의 모든 왕조에 걸쳐서 사용이 되었다. 이는 외래계 왕조인 일 칸국 역시 해당된다.
사파비왕조 와 카자르왕조 에서는 페르시아의 황제가 회교 시아파의 우두머리를 겸했기 때문에, 질룰라(Zill'ul'lah)라는 호칭이 황제의 휘(諱)앞에 붙기도 하였다.
오스만제국과 무굴제국의 황제도 파디샤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여타의 이슬람 국가에서 사용되는 술탄이라는 칭호는 자주 황제로 오역되곤 하지만 오스만제국과 무굴제국, 페르시아제국 등지에서는 대공(Grand Duke, 大公)에 해당하여 황자들에게 붙여졌던 칭호로써 황제에 해당하지 못한다. 단, 오스만 제국에서 메흐메트 2세를 존칭할 때에 사용 되었던 술타네스 셀라틴(Sultanes Selatin)만이 술탄 중의 술탄의 뜻으로, 황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삼한 역사에서 나오는 대왕(大王:왕중에 왕)이란 칭호와 흡사하다.
페르시아계 인도 왕조인 무굴제국이 멸망한 뒤에 영국의 국왕이 인도황제를 겸하는 인도제국이 무굴제국의 후계 왕조로써 탄생하였다. 하지만 이는 영국의 국왕이 황제로 격상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영국의 국왕과 인도 황제라는 2개의 신분을 한 사람이 겸하는 형태에 불과했다.[위키]
1240년 이후에는 몽골의 칸(汗)을 가리켰다고 하지만 칸은 부족 추장정도의 칭호로서 결국 황제라는 존칭에서 보면 동양에서 칭하는 것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汗 [hàn]
추장 이름, 땀-한
出汗。 - 땀을 흘리다.
[명]칸(Khan). [중세에 몽고·위구르·타타르에서 군주(君主)를 이르던 말].
[부연설명] ‘可汗kèhán’의 줄임말임.
成吉思汗。 - 칭기즈칸
그렇다면 칸이 높임 칭호이겠는가 대왕(大王:왕중에 왕)이 높임칭호이겠는가?
위에 한어사전 자료를 보더라도 칸(汗, Khan)은 일개 부족추장이나 군주에게 하던 존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를 포함한 삼한과 고려 그리고 조선의 대왕칭호와는 비교 할 수도 없는 낮은 존칭이었다고 볼 수 있다. 칸은 정복왕조 대왕의 지시를 받는 대장군 요사이 같으면 국방부장관이나 참모총장 정도의 지위가 아닌가 여겨진다.
때문에 몽골 징기스칸은 근세기에 띄우기에서 왜곡된 존칭으로 보이고 실제는 고려연합체의 대장군일 가능성이 많다는 말이다.
동양에서의 황제 칭호가 중국 진시황제가 시원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진시황제란 칭호가 정복왕조로서 확실한 지위를 가진상태에서 사용된 것인지 아니면 근세기 역사모사꾼들에 의해 조작 된 호칭인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고구려 제왕들이 사용한 대왕이란 칭호가 정복왕조 제국의 최고 통치자에게 부여할 수 있는 최고의 상징성이 아닌가 하고 삼한에서 전통적으로 이를 천자라 하였다고 보여진다.
대왕과 천자는 같이 병용한 호칭이라고 보인다.
천자는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고대 우리민족을 천손이라 하였고 뛰어난 자를 하늘의 아들이라고 높여 천제를 지낼 수 있는 제사장으로 삼았음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큰 대(大)는 왕 중에 왕이란 뜻에서 사용된 극존칭이라고 보이고 근세기에 대륙남방세력 화하나 객가세력들이 스스로 한족이라 하고 중화라고 주장하는 대륙역사에서도 보면 대왕칭호만은 좀처럼 보기 힘든 존칭이었다는 사실에서 무엇인가 감춰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조선왕들을 전통적으로 대왕 또는 임금이라 불러 칭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어자료에 제왕들의 형태적 한어 풀이를 아래같다 하였다.
帝 [dì] 하느님, 임금-제
임금 [名] 1. 皇帝
상감(上監) [名] 1. 国王
인군(仁君) [名] 1. 皇帝
차르(tsar)沙皇
[名]历史
1. 沙皇 차르(tsar)-러시아(Russia)와 불가리아(Bulgaria)를 다스렸던 황제의 칭호
2. 皇帝
1. 皇帝
2. 人君 임금. 군주.
3. 人主 군주. 旧时专指一国之主,即帝王(한어사전)
仁君
1.仁明的国君。
어질고 밝은 국왕(國王). 국군(國君).
2.犹言明公,古代对有地位 声望者的尊称
현명한 사람. 명망이 높은 사람이란 말과 같다.
옛날 지위를 나타내는 말로서 명성(名聲). 명망(名望)이 있는 사람을 존칭하는 말이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서 보면 조선 초기에는 분명 조선이 영역적인 면이나 주위환경적인 부분에서도 분명 중국이라고 하여도 손색이 없을 광대한 영역적인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중종대 이후 부터 그러한 기록이 갑자기 줄어들고 세밀하지 못하면서 무언인가 듬성 듬성 빠져 생략된 느낌과 뭔지 모르게 왜소하게 변해 버리기 시작한 점을 특히 많이 볼 수 있는데 냉정하게 따져 본다면 사서가 일률적이지 못하고 어긋난다는 것은 의도적인 첨가 수정 조작한 부분이라고 감히 생각되며 그 싯점부터 조선 초기보다 오히려 더 강해진 국력이었다는 사실을 일부러 감추려고 한 기록이 아닌가 여겨진다.
세종지리지 보다 76년 뒤 늦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도 따지고 보면 세종지리지 기록과 비교하여 보아도 상당히 크게 확대된 영역으로 나타나는데 이로 인한 불편함을 행정적인 면에서도 고쳐야 할 필요성을 중종이 느껴 분명 증보(증가시켜 보충하였다는 말이다)하여 편찬하였다고 보면 근세기에 일제총독부에 의해 축소 허약하게 고쳐지고 중요한 부분은 빼거나 삭제하는 과정에서 완전하게 뒤틀려 버린 기록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때문에 중종조 이후는 대륙조선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기형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일본세력들이 지금의 열도에 스스로가 역사적으로 근거하였다고 주장하려면 그들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서라도 꾸며진 임진왜란을 삽입하여야 했기 때문에 왜란이 발생된 전후로 하여 중점적으로 관리한 흔적이라고도 보인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료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세종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등을 기초로 그들은 열도의 일본사기를 만들었을 것이고 한마디로 그들이 지금 열도에 존재하기 위해 한반도 조선을 멋대로 고쳐 다시 그렸다고 볼 수 있다.
본 페이지에 기재한 사실 자료에서 보듯이 조선 초기 태조는 물론이고 태종, 세조에게 명백하게 제(帝)라고 표현한 기록을 보면 중국천자(天子)를 칭한 것이 틀림이 없다. 그리고 임금이라는 호칭도 결국 따지고 보면 제(帝)와 함께 천자(天子)를 통칭하던 호칭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다.
아래 세종10년 기사에서 세종이 명나라 황제를 인주(人主)라 하면서 절도 없는 거동을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제목에서
帝非枉殺諫臣御史自取之也
중국 황제들의 절도 없는 거동에 대해서 신하들과 논하다
원문에는 중국황제란 단어가 나오지도 않는데 명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명을 중국인 것처럼 상징적으로 내세운 번역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반도사가 기록한 것에서 보면 분명히 조선이 명의 속국이고 제후국이라고 하였는데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감히 제후국의 왕이 황제를 공공연하게 신하와 함께 비판 하는 것도 모자라 중국황제의 그릇됨을 나무랄 수 있는 처지인지 우리는 반드시 의문을 가져야 한다.
이런 식에 나무람이라면 나무라는 대상인 즉 명 황제는 기록과 달리 오히려 제후국 군주의 신분이나 조선신하와 동급으로 보았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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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41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9월 8일(정사)
중국 황제들의 절도 없는 거동에 대해서 신하들과 논하다
帝非枉殺諫臣御史自取之也
○上謂代言等曰: “尹鳳率爾告予曰: ‘洪熙皇帝及今皇帝, 皆好戲事。 洪熙嘗聞安南叛, 終夜不寐, 甚無膽氣之主也。’” 知申事鄭欽之對曰: “尹鳳謂予曰: ‘洪熙沈于酒色, 聽政無時, 百官莫知早暮。 今皇帝燕于宮中, 長作雜戲。 永樂皇帝, 雖有失節之事, 然勤於聽政, 有威可畏。’ 鳳常慕太宗皇帝, 意以今皇帝爲不足矣。” 上曰: “人主興居無節, 豈美事乎?”
임금(上:세종)이 대언(代言) 등에게 이르기를,
“윤봉(尹鳳)이 갑작스럽게 나에게 말하기를, ‘홍희황제(洪熙皇帝명4대1424~1425)와 지금(명5대1425~1435)황제(宣德皇帝)는 모두 작난[戲事]:(유희, 장난)를 좋아했다.’ 하더니, 홍희(洪熙)는 일찍이 안남(安南)이 모반하였다는 말을 듣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하니, 참으로 담력(膽力)이 없는 임금(主)이로다.”
하였다. 지신사 정흠지(鄭欽之)가 대답하기를,
“윤봉(尹鳳:조선출신의 명환관)이 저에게 이르기를, ‘홍희(洪熙)는 주색(酒色)에 빠져서 때없이 정사를 들으니, 백관들은 아침과 저녁을 가릴 줄 몰랐으며, 지금 황제도 궁중에서 잔치를 벌이고 늘 잡스로운 장난[雜戲]만 하고 있소. 영락황제(太宗3대1402~1424)는 비록 실절(失節)한 일은 있었으나, 정사를 들음에 부지런하고 위엄이 있어 가히 두려워할 만하였소.’ 하였사오니, 봉(鳳)은 늘 태종황제(太宗皇帝)를 사모하고 지금의 황제를 만족하게 생각지 않는 것 같습니다.”하니, 임금(上)이 말하기를,
“인주(人主)의 거동에 절도가 없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겠는가.”하였다.
1427년(AD) 명나라, 안남의 독립을 승인. 여리(黎利) 즉위, 대월(大越)을 일으킴(黎朝:~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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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코지(Tsar- kozy): 대통령 + 슈퍼총리>라는 등식으로 소개하고, Le Canard enchaîné에서는 사르코지를 차르-코지(Tsar-kozy)로 지칭한다.
Nicholas II, the last Tsar of Russia.
니콜라이 2세(1868.5.18~ 1918.7.17)는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1894.11. 1-1917.3.15)이다. 본명은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러시아어: 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Рома́нов). 로마노프 왕조의 14번째 군주이다. 1917년 혁명으로 퇴위했으며, 1918년 총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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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tzar)
tzar, czar라고도 씀. 여성형은 tsarina, tzarina, czarina.
주로 러시아의 통치자들을 일컫는 칭호.
고대 로마제국의 카이사르라는 칭호의 한 형태인 차르는 러시아어로 여러 가지 파생어를 낳았다. 우선 차르의 부인이나 여성 차르를 나타내는 것으로 차리차(tsaritsa), 차르의 아들 차레비치(tsarevich), 차르의 딸 차레브나(tsarevna), 그리고 차르의 맏아들이자 상속자인 체사레비치(tsesarevich:19세기 용어) 등이 그것이다. 중세 러시아에서 차르 칭호는 최고 통치자, 특히 비잔틴 제국의 황제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며 대략 1240년 이후에는 몽골의 칸[汗]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모스크바 대공인 뇌제 이반 4세는 1547년 자신에게 차르 칭호를 붙였다. 차르가 됨으로써 이론적으로는 절대적인 권력을 차지했으나 실제상으로 그와 그 후계자들은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적 권위와 보야르(대귀족) 회의 및 1497, 1550, 1649년에 제정된 법전 등에 의해 권력을 제한당했다. 1721년 표트르 1세는 공식적으로 차르 칭호를 임페라토르(imperator:라틴 어로 '황제'라는 뜻)로 바꾸었는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로마의 장군들에 붙이던 전통적인 호칭인 임페라토르를 표트르 1세가 사용한 것은 성공적으로 러시아 영토를 확장시켰던 자신의 노력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1917년 혁명으로 제정이 붕괴될 때까지 러시아의 통치자들은 일반적으로 계속해서 '차르'라고 불렸다. 한편 초창기 불가리아의 황제들(10~14세기)과 20세기 불가리아의 왕들(1908~46)도 차르로 자처했다.
Tsar
Czar, csar, and tzar redirect here. For other uses, see Tsar (disambiguation)
Tsar (Bulgarian, Serbian: цар, Russian царь (help·info), in scientific transliteration respectively car and car' ), occasionally spelled Czar or Tzar in English (Zar in German), is a Slavonic term designating certain monarchs.
Originally, and indeed during most of its history, the title tsar (derived from Caesar) meant Emperor in the European medieval sense of the term, i.e., a ruler who has the same rank as a Roman or Byzantine emperor (or, according to Byzantine ideology, the most elevated position next to the one held by the Byzantine monarch) due to recognition by another emperor or a supreme ecclesiastical official (the Pope or the Ecumenical Patriarch). Occasionally, the word could be used to designate other, non-Christian supreme rulers. In Russia and Bulgaria, the imperial connotations of the term were blurred with time and by the 19th century it had come to be viewed as an equivalent of king,[1].[2] The modern languages of these countries use it as a general term for a monarch.[3][4] For example, the title of the Bulgarian monarchs in the 20th century was not generally interpreted as imperial.
"Tsar" was the official title of the supreme ruler in the following states:
Bulgaria in 913–1018, in 1185-1422 and in 1908–1946
Serbia in 1346–1371
Russia from about 1547 until 1721 (after 1721 and until 1917, the title was used officially only in reference to the Russian emperor's sovereignty over certain formerly independent states such as Poland and Geor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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