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인물

태종과 세조에게 취화(翠華)와 제력(帝力)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한부울 2010. 4. 13. 19:48

성종임금은 제(帝)이고 천자(天子)였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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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과 세조에게 취화(翠華)와 제력(帝力)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기선(幾先)에 밝아 군웅(群雄)을 잔제(剗除)하여 두번 내난(內難)을 맑게 하시고, 화육(化育)에 참여하여 만물을 다스려서 사방을 편안하고 화평하게 하시니, 성교(聲敎)는 일본 동쪽(?)에 미치고 위령(威靈)은 변방 북쪽에 떨쳤습니다."


태종18년 무술(1418,영락 16) 4월2일 (임오)기사 해설에서 취화(翠華)는 물총새 깃으로 만든 것으로서 임금의 깃발이나 탄 어가(임금이 탄 수레)를 보고 이른다고 하였고 세조6년 경진(1460,천순 4) 10월13일 (을묘)기사에서는 취화(翠華)는 물총새 깃으로 장식한 천자(天子)의 기(旗)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위 기사나 아래 기사나 어가를 탄 사람은 다름이 아닌 조선국왕 태종과 세조이다.

그들이 사실적으로 따지자면 바로 제왕인 것이다.

아래 기사에서 보듯이

臣等幸遇河淸之辰, 得全樗散之壽。 耕田鑿井, 何知帝力之加就?

신 등은 다행히 하청(河淸)의 때를 만나 저산(樗散)의 수(壽)를 온전히 할 수 있었습니다. 밭을 갈고 우물을 파니, 어찌 임금의 힘[帝力]의 더함인 줄을 알겠습니까?

제력[帝力]즉 황제의 힘을 임금의 힘이라고 읽고 쓰고 뜻을 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태종은 물론 세조 역시 천자 즉 제황 즉 황제라고 불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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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8년 무술(1418,영락 16) 4월2일 (임오)

유도한 사헌부에서 환도하도록 상소하여 청하다

○留都司、憲府上疏, 請還都。 疏曰:

臣等分司還京之時, 路見貴賤男女牛駄馬載, 絡繹于道, 比之常時, 十相倍蓗, 其間豈無弊乎? 入京以來, 又見隨駕人民單獨者之家舍, 如過夏則恐破毁之盡, 而還無所止矣。 況在都人民瞻望翠華之心之切, 奚啻嬰兒之慕父母乎? 瞻望之心旣如此, 小民之弊又如彼, 伏惟殿下, 特垂明察, 早回車駕, 以副輿望。


유도(留都)한 사헌부(司憲府)에서 상소(上疏)하여 환도(還都)하도록 청하였는데, 상소는 이러하였다.

“신 등이 관사(官司)를 나누어서 환경(還京)할 때에 길에서 보니, 귀천(貴賤)의 남녀가 소나 말에 짐을 싣고서 길에 끊이지 않았는데, 평상시에 비(比)하면 10여 배나 되는 무리이니, 그 사이에 어찌 폐단이 없겠습니까? 입경(入京)한 이래 또 보니, 수가(隨駕)한 인민(人民) 가운데 홀로 사는 자의 집[家舍]은 여름을 지난다면 거의 다 허물어져 없어져서, 돌아오더라도 머무를 데가 없을까 합니다. 더군다나 도성(都城)에 있는 인민(人民)들은 취화(翠華)를 우러러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니, 어찌 영아(嬰兒)만이 부모(父母)를 그리워하겠습니까? 우러러 바라는 마음이 이와 같은데, 소민(小民)의 폐단이 또 저와 같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전하(殿下)께서 특히 밝은 말씀을 내려서 빨리 거가(車駕)를 돌이켜 여망(輿望)에 부응(副應)하도록 하소서.”

 

취화(翠華) : 물총새 깃으로 장식한 임금의 기(旗). 즉 임금의 거가(車駕).

어가(御駕) : 왕이 타는 수레

 

 

환도(還都) 환어를 요청하는 상소라 함은

태종 35권, 18년(1418 무술) 2월 4일(을유) 끔찍이도 사랑하던 임금의 제4자 성녕대군(誠寧大君) 이종(李褈)이 홍역을 앓아 14세 나이로 졸하였다. 이에 임금이 마음아파 2월 10일(신묘)경복궁으로 이어하였다. 이종(李褈)은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소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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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6년 경진(1460,천순 4) 10월13일 (을묘)

대가가 황주에 이르니 기로·유생·여기(女妓) 등이 가요를 올리다


○駕至黃州, 耆老、儒生、女妓等進謌謠。 耆老歌謠曰:

伏遇殿下巡臨弊道, 不勝懽忭。 伏以一德天必祐, 作君師而致隆平。 六年王乃巡, 考制度而同風俗, 鑾旗所至, 輿情胥欣。 恭惟殿下乃聖乃神, 允文允武, 以勛華之至德, 樹湯、武之隆功。 炳幾先而剗群雄, 再淸內難, 參化育而理萬物, 嘉靖多方, 聲敎曁於日東, 威靈振乎塞北。 邇安遠肅, 烽燧不驚, 大畏小懷, 梯航相接。 王道蕩蕩, 雨暘燠寒之以時, 黎庶熙熙, 鳥獸魚鼈之咸若。 顧昇平而無事, 宜大禮之擧行。 考虞書四岳之巡, 稽夏諺一遊之語, 大駕西幸, 兆姓徯來。 廣樂鈞天, 鼓吹奏兩部之伎, 翠華、黃鉞、鹵薄, 嚴千乘之儀。 羲馭, 暫駐於遐陬, 天威不違於咫尺。 朝守宰而觀政之得失, 詢芻蕘而察民之休戚。 垂日月之大明, 無所不照, 雖草木之微物, 亦獲添恩。 臣等幸遇河淸之辰, 得全樗散之壽。 耕田鑿井, 何知帝力之加就? 日望雲常懷魏闕之戀。 何期犬馬之餘齒, 獲拜乘輿之淸塵? 扶藜道傍, 欣瞻羽毛之美, 翹首日下, 仰覩龍鳳之姿。 謹採輿人之謳, 竊効華封之祝。


대가가 황주(黃州)에 이르니, 기로(耆老)·유생(儒生)·여기(女妓) 등이 가요(歌謠)를 올리었다. 기로(耆老)의 가요에 이르기를,

“전하께서 폐도(弊道)에 순행(巡幸)하여 임하심을 엎드려 만나오니 기쁘고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한결같은 덕으로써 하늘이 반드시 도우시어 군사(君師)를 만들어서 융평(隆平)을 가져 왔습니다. 재위 6년에 왕이 순행하시며 제도를 상고하여 풍속을 같게 히시니, 난기(鑾旗)가 이르는 곳에 여정(輿情)이 서로 기뻐합니다. 공손히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성(聖)스럽고 영묘하시니, 문(文)을 좇고 무(武)를 좇으시며 요순(堯舜)의 지극한 덕으로 탕무(湯武)의 융성한 공을 세우셨습니다. 기선(幾先)에 밝아 군웅(群雄)을 잔제(剗除)하여 두번 내난(內難)을 맑게 하시고, 화육(化育)에 참여하여 만물을 다스려서 사방을 편안하고 화평하게 하시니, 성교(聲敎)는 일본 동쪽에 미치고 위령(威靈)은 변방 북쪽에 떨쳤습니다. 가까운 곳은 편안하고 먼 곳은 엄숙하니 봉수(烽燧)에 놀라지 않으며, 큰 것을 두려워하고 작은 것을 품어 주니, 제항(梯航)이 서로 접하였습니다. 왕도(王道)가 평이(平易)하니 비 오고 볕나고 따뜻하고 추운 것이 때에 맞고, 여민(黎民)이 화평하며, 조수(鳥獸)·어별(魚鼈)이 모두 순합니다. 승평(昇平)하여 일이 없으니 대례(大禮)를 거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서(虞書)의 사악(四岳)의 순수(巡狩)를 상고하고 하언(夏諺)의 일유(一遊)의 말을 상고하여 대가가 서쪽으로 순행하니, 만민들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균천 광악(鈞天廣樂)을 고취(鼓吹)하여 양부(兩部)의 기예(伎藝)를 아뢰고, 취화(翠華)·황월(黃鉞)의 노부(鹵簿)는 천승(千乘)의 위의(威儀)가 엄하였습니다. 희어(羲馭)가 잠깐 하방(遐方)에 멈추니, 천위(天威)가 지척(咫尺)에서 멀지 않았습니다. 수재(守宰)를 조회 받아 정사의 득실을 보고 추요(芻蕘)에게 물어서 백성의 휴척(休戚)을 살피었습니다. 해와 달의 대명(大明)을 굽어서 비추지 않는 곳이 없으니 비록 초목(草木)의 미물(微物)이라도 또한 은택에 젖었습니다. 신 등은 다행히 하청(河淸)의 때를 만나 저산(樗散)의 수(壽)를 온전히 할 수 있었습니다. 밭을 갈고 우물을 파니, 어찌 임금의 힘[帝力]의 더함인 줄을 알겠습니까? 햇빛에 나가고 구름을 바라보니 항상 위궐(魏闕)의 사모를 품었습니다. 견마(犬馬)의 남은 나이에 승여(乘輿)의 맑은 티끌을 절할 것을 어찌 기약하였겠습니까? 길옆에서 여장(藜仗)을 짚고 우모(羽毛)의 아름다움을 기쁘게 바라보고 해 아래에 머리를 들고 용봉(龍鳳)의 자세를 우러러보았습니다. 삼가 중인(衆人)의 노래를 채집하여 가만히 화봉(華封)의 축하를 본받습니다.”

 

난기(鑾旗)-銮旗(鑾旗|鑾旂)
(1).天子卤簿属车上树立的旗。赤色,编以羽毛,上绣鸾鸟。《后汉书·公孙述传》:“然少为郎,习 汉 家制度,出入法驾,鑾旗旄骑,陈置陛戟,然后輦出房闥。”

(2).指天子车驾。《后汉书·杨秉传》:“王者至尊,出入有常,警蹕而行,静室而止,自非郊庙之事,则鑾旗不驾。” 李贤 注:“《汉官仪》曰‘前驱有云罕,皮轩鑾旗车’也。”参见“ 鑾旗车 ”。

 

취화(翠華) : 물총새 깃으로 장식한 천자(天子)의 기(旗)

노박(卤簿)[명] 천자의 행차 행렬

희어(羲驭)-太阳的代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