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부안(扶安)사람들은 단민(蜑氓)으로서 배에서 생활하는 촉나라사람이다.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지리서 전라도 부안현 편에서 설명하기를 “전라도 부안현은 중국 남방 해변가에서 생활하는 단자(蜑子)와 같다”라고 하였다.
단자(蜑子) 즉 단족(蜑族)은 배에서 생활한다고 하는 종족을 말한다. 그래서 단민(蜑氓)이라고도 한다.
단민(蛋民)이라 함은 광둥성이나 푸젠성(福建省)의 연안 지방이나 강위에서 수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르킨다고 한어사전에 나온다.
한어사전에
단(蜑)dàn 은
中国古代南方少数民族-중국고대남방소수민족
蜑民的船-배에서 생활하는 종족
古同“蛋”,鸟、龟、蛇等生的带有硬壳的卵。단(蛋)은 오랑케 이름으로서 새, 거북, 뱀알 등을 나타낸다.
또
氓 [méng]
백성, 서민-맹
백성(百姓)[주로 외지에서 온 백성을 가리킴]=[萌] 처음으로 생겨나다
群氓- 뭇 백성(姓). 우매한 백성(姓)
한마디로 부안현 사람들은 배위에서 생활하는 외지인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민 단가라 함은 선상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현지 토착민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토착인이라면 거처할 땅이라도 있어 집을 짓고 살 수가 있다.
그러나 외지인이고 이방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이동수단인 배를 이용하여 바다 해변가에서 생활 할 수 밖에 없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부안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촉나라에서 부터 근거한단다.
한반도 전라도 부안에 단민이란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을까?
또 한가지는 이규보가 부안현 단민들은 “습속은 남방 단자와 많이 같으니 현으로 된 것이 잠총국(蠶叢國)으로부터 시작된 줄 어느 누가 믿으랴.” 하는 것은 부안이 잠총국(蠶叢國)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한어자료엔 잠총(蠶叢)은 누에를 잘 치는 사람으로서 촉나라를 세웠다고 하였으며 상주(商周)시기에 성도(成都)평원에 세워진 노예제 정권의 촉(蜀)나라는 고대전설 속의 3대 촉왕, 잠총(蠶叢), 백관(柏灌), 어부(魚鳧)와 관련이 있다 하여 나온 말이다.
그렇다면 전라도 부안현 사람들은 단족으로서 촉나라 사람이라는 말이다.
또한 조선 선조 때 문신 이산해(李山海)의 시문집 아계유고 제3권 해빈단호기(海濱蜑戶記)를 보면 저자가 처음 평해에 유배가면서 기성(箕城) 경내의 사동(沙銅)이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옷차림과 언어가 일반 백성들과 전혀 다른 바닷가 미개인을 보고 그때의 일을 기록한 것인데 여기서도 단호(蜑戶)라 하여 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그려놓고 있다.
조선 평해라 함은 지금의 동해인데 그 곳에 단족들이 살았다?
조선 문신 이산해가 유배 간 곳 평해는 대륙 절강(浙江)이라야 맞다.
서해 전라도 부안에도 단족이 있었고 동해에도 단족이 있었다 함은 조선시대 단족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반도처럼 4계절이 뚜렷한 온대기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경우라고 해야 한다.
기후가 아열대 습윤 지역으로서 수상생활에 지장이 없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이것은 바로 조선이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연우(蜑雨)라 하여 남쪽 바닷가에 쏟아지는 비라는 뜻인데 연(蜑)은 대체적으로 아열대지방 남방을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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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지리서
전라도(全羅道) 부안현(扶安縣)
[풍속]풍속은 단자(蜑子 중국 남방 해변가에서 생활하는 종족)와 같다. 이규보의 시에 “습속은 남방 단자와 많이 같으니 현으로 된 것이 잠총국(蠶叢國)으로부터 시작된 줄 어느 누가 믿으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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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계유고 제3권
조선 선조 때 문신 이산해(李山海)의 시문집. 1659년(효종 10) 간행되었고 책머리에 죽피옹(竹皮翁)이라는 자호로 쓴 서문이 있다.
기성록(箕城錄) ○ 잡저(雜著)
해빈단호기(海濱蜑戶記)
내가 처음 유배지로 갈 때 기성(箕城) 경내로 들어서니, 날이 이미 캄캄하여 사동(沙銅) 서경포(西京浦)에 임시로 묵게 되었다. 이 포구는 바다와의 거리가 수십 보가 채 안 되고 띠풀과 왕대 사이에 민가 십여 채가 보였는데, 집들은 울타리가 없고 지붕은 겨릅과 나무껍질로 이어져 있었다. 맨땅에 한참을 앉았노라니, 주인이 관솔불을 밝혀 비추고 사방 이웃에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그들은, 남자는 쑥대머리에 때가 낀 얼굴로 삿갓도 쓰지 않고 바지도 입지 않았으며 여자는 어른 아이 없이 모두 머리를 땋아 쇠 비녀를 지르고 옷은 근근이 팔꿈치를 가렸는데, 말은 마치 새소리와 같이 괴이하여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비린내가 코를 휘감아 구역질이 나려 하였으며, 이윽고 밥을 차려 왔는데 소반이며 그릇이 모두 악취가 나서 가까이할 수가 없었다. 주인 할아범과 할멈이 곁에서 수저를 대라고 권하기에 먹어보려 했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이에 내가 몹시 놀라, 궁향(窮鄕) 벽지에는 반드시 별종의 추한 인종이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채 살고 있나 보다 생각하였다. 그 후 사람들에게 물어본즉 이곳이 이른바 바닷가의 단호(蜑戶 바닷가에 사는 미개인의 집)란 것으로 기성(箕城)에만 열한 곳이 있으니, 여음(餘音), 율현(栗峴), 구미(鷗尾), 해진(蟹津), 정명(正明), 박곡(朴谷), 표산(表山), 장정(長汀), 도현(陶峴), 망양정(望洋亭) 등이며 사동(沙銅)도 그중 하나라 하였다.
아, 옛사람들은 혹 품팔이꾼으로 몸을 숨기기도 하고 대장장이로 몸을 숨기기도 하고 저잣거리에 몸을 숨기기도 하고 염호(鹽戶)에 몸을 숨기기도 하고 노역부(勞役夫)로 몸을 숨기기도 하고 창고지기로 몸을 숨기기도 하였으니, 어찌 그들이 처한 곳이 몹시 비루함을 알지 못하였겠는가. 그런데도 그곳을 마치 낙토(樂土)인 양 여기며 산 것은 자취는 비록 더럽혀지더라도 마음은 더러워지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기이한 재주를 지닌 사람이 비린내 풍기는 이 더러운 곳에 자취를 숨기고 살고 있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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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 단민(蜑家, 蛋民)
疍家(dàn,但)日常生活中與疍家通用。是廣東、廣西、福建、海南和浙江一帶,另一種以船為家的漁民。屬於漢族,是一支特有的、瀕臨消失的民系。由於經常生活在遊船上,他們的腳同生活在陸地上的人略有差別。
홍콩[香港] ·광저우[廣州]를 중심으로 중국의 화남(華南)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수상(水上)생활 자.
원래는 양 쯔강[揚子江] 상류에 있던 비한민족(非漢民族)을 가리켰으나, 10세기 말 이후 중국의 영남지방에 있는 수상생활자의 호칭으로 변하였다. 《만서(蠻書)》에 내[川]를 만어(蠻語)로 탐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단(蛋,蜑 ) 의 어원은 만어의 ‘내’라고 한다.
역사적으 로 분포의 중심은 광둥[廣東]이었으나, 현재는 홍콩을 중심으로 마카오, 광저우시에 많이 분포되어 있고, 이 외에 광둥성에 도 약간 있다. 언어적 ·문화적으로 한민족인 중국인에 속하지만, 거의 육상에 살지 않고 배 위에서 수상생활을 하기 때문에 풍속 ·습관은 한민족과 다른 인상을 준다. 홍콩에서는 수상생활자 가운데 광둥인을 단가(蛋家), 차오저우인[潮州人]을 학료(鶴佬 )라고 부르고 있으나, 멸시하는 호칭이어서 수상인(水上人)이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선주거(船住居)의 기원에 대한 정설은 없으나 대대로 배에서 일생을 보내며, 묘지(墓地)를 제외하고는 육지에 토지나 가옥을 소유하는 일이 없다. 수상인의 집이 되는 배의 규모는 4∼27 m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으며, 배에는 방 ·부엌 ·변소 등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주거하는 배를 사용하여 어업 ·도선(渡船) 외에 도시 주변에서 잡다한 수상직업에 종사하는데, 재산 정도는 배에 따라 차이가 있다.
수상표박(水上漂泊)은 하지 않고 단골상인이나 배를 만드는 목공이 있는 일정한 근거지에 속하면서 주기적으로 일정하게 행동한다. 예로부터 천민시(賤民視)되었으며, 1729년에 비로소 육상거주가 허용되었으나, 실제는 근년까지 육상거주나 육상인과의 통혼 금지가 계속되어 왔다. 현재 사회적 차별은 없지만 여전히 수상인끼리의 통혼이 많다. 고연령층은 거의 문맹이나, 학령기의 취학률은 상승하고 있으며, 육상거주의 장려로 그 수가 격감하고 있다.[두산백과사전]
分佈 : 疍家主要生活在珠三角、粵西沿海,閩東沿海和閩江流域,閩南廈門鷺江和泉州晉江流域,在其它閩粵桂瓊浙沿海地區亦有分佈。蛋家往往以江海為家,居無定所。
민월인(閩越人)민장(閩江) 강. [푸젠성(福建省)에 있는 강 이름].
福建
福州
福州疍民
20世纪初福州内河上的疍民船
穿行于中洲岛南岸夹缝中的疍民,沿岸的木厝即疍民搭建的简陋居所,摄于1907年左右
美国传教士绘制的闽江上的福州疍民,摘自美以美会的保灵牧师1884年所撰之散文《福州》
廣東
香港
香港早期農村社會
水上人
海南
浙江
錢唐江,流域的九姓渔民。主要有陈、钱、林、李、袁、孙、叶、何、许等九姓,另外尙有少量江、唐、胡、徐、施、季、潘、鲁、方、张、王、吴等姓氏
廣西
疍家上岸的主要地點有:廣東惠州惠東、深圳西鄉、동완(東莞),香港各離島,福建沿海福州、寧德、廈門、泉州等地市。
广东诸民系
粤语族群(广义广府) 广府, 五邑, 粤西, 疍家, 其它 월어:중국어 방언의 한 가지인 광둥어(广东語)
客语族群(广义客家) 客家, 东江本地, 涯(물가 애)
潮语族群(廣義潮州) 潮汕, 海陆(해륙), 雷州, 其它
객가족도 단족이다.
蠶叢(生卒年不詳)又稱蠶叢氏,蜀國首位稱王的人,他是位養蠶專家,據說他的眼睛跟螃蟹一樣是向前突起,頭髮在腦後梳成「椎髻」衣服樣式的左邊是斜著分了叉的,最早他居住岷山石室中。後來蠶叢為了養蠶事業。率領部族從岷山到成都居住。在夏桀十四年,夏桀派大將軍扁攻打蠶叢和有緡氏,於是蠶叢跟有緡氏說用美女來讓夏桀沒有打戰的心情,果然夏桀被美女迷惑後,宣佈要回到朝廷。西周時期,蠶叢被其他部落打敗後,蠶叢的子孫後代,都各別逃到姚和雟(兩地於今四川西昌一帶),最後由新勢力魚鳧來結束這次戰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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