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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양산군은 지금의 사천성 파중시 남강현인가?

한부울 2010. 3. 20. 00:12

경상도 양산군은 지금의 사천성 파중시 남강현인가?

 

신증동국여지승람 지리서 경상도 양상군 풍속편에서 경상도 양산은 땅이 좁고 백성들은 경박하며, 전답은 모두 낮고 습해서 가물면 곡식이 익고, 비가 오면 물이 해로워 그 풍흉이 딴 고을과는 판이하다...

양산은 땅이 낮아 습한 지형으로서 비가 많이 오는 것(多雨濕潤)을 알 수 있다.

 

한반도 경상도가 땅이 낮고 습한 곳인가? 

오히려 경상도는 한반도 등줄기 역할을 하는 태백산맥이 뻗어있는 산악지대로서 지대가 낮지 않고 또한 비가 많이 오며 습한 기후가 아니다.

 

또 신증에서 집마다 남녀의 구별이 없이 대나무를 가지고 그릇을 만들어 다른 물건을 바꾸고, 의식(衣食)과 세금 내는 것을 오직 대나무만 바라다보고 있을 뿐이며, 또 큰 장사꾼이나 부자로 이것을 취급하는 자는 없다...

 

경상도 양산에 대나무 숲이 울창하여 남녀구분없이 오직 대나무로만으로 생계를 꾸리고 부를 축적한다는 내용이다. 양산에 대나무가 많았다는 내용이다.

아래 한어자료를 보면 사천지방에 특산물로서 양산죽렴(染山竹帘) 즉 대발이 유명함을 알 수 있다.

양산죽렴의 산지가 바로 사천 파중시 남강현이라 하고 있다.
이 자료내용이 어찌 신증에 기록된 내용과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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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慶尙道)  양산군(梁山郡)

[풍속]집집마다 남녀의 구별이 없이 대나무로 도구를 만든다 최해(崔瀣)의 안량주(安梁州)를 보내는 서(序)에 이르기를, “양산(梁山) 고을은 우리 계림(鷄林) 고리(故里)에서 1백여 리나 떨어져 있다. 금년 여름에 내 상복을 벗고 고향에서 돌아오는데, 마침 죽옥상공(竹屋相公)이 진(鎭)에 나와 포구를 합친다 하기로, 공을 뵙기 위하여 갔었다. 이에 길이 헌양(巘陽)을 지나게 되어 양산에서 자려 했더니, 때마침 몹시 무덥고 또 비가 와서 그 곳 사람들이 말하기를, ‘만일 하루 저녁만 비가 더 오면 냇물이 넘어서 며칠 동안 건너지 못할 것이다.’ 한다. 내 생각건대 관청에 돌아갈 날짜가 장차 차있으니 걸음을 천천히 할 수 없다하여, 이에 부득이 양산에 들어가 자지 못하고 바로 냇물을 건너 서쪽으로 갔었다. 관사(官舍)를 바라다보니 백성들의 집이 대나무 숲 사이에 가물가물 보이는데, 사람들이 이곳을 가리켜 양산 고을이라고 한다. 이로 인하여 그 풍속의 한두 가지를 알겠도다. 이 지방은 땅이 좁고 백성들은 경박하며, 전답은 모두 낮고 습해서 가물면 곡식이 익고, 비가 오면 물이 해로워 그 풍흉이 딴 고을과는 판이하다. 대개 가뭄은 해마다 있는 것이 아니니, 하늘이 어찌 오직 양산 백성들만 위해서 항상 비가 오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풍년드는 해는 적고 흉년만 계속되는 것은 그 지형 때문인 것이다. 집마다 남녀의 구별이 없이 대나무를 가지고 그릇을 만들어 다른 물건을 바꾸고, 의식(衣食)과 세금 내는 것을 오직 대나무만 바라다보고 있을 뿐이며, 또 큰 장사꾼이나 부자로 이것을 취급하는 자는 없다. 심지어 사신의 왕래에 그들을 대접하는 것까지 초초해서 차마 견디고 응할 수가 없으니, 이는 곧 대나무 숲 속에 숨어서 마치 놀란 사슴과도 같기 때문이다. 동남쪽 여러 고을 중에 이 고을이 가장 가난해서 본래 다스리기 어렵다고 했더니, 이원윤(李元尹)이 이곳으로 귀양오자 공은 그 폐단을 알고 먼저 상전(上田)을 보고 그 도랑을 깊게 판 다음, 사람으로 하여금 거친 밭 몇 두둑을 농사짓게 하여 힘을 써서 갚도록 하였다. 또 옛 풍속은 농사에 익숙하지 못하여 모두 아침에 늦게 나가고 저녁에는 일찍 파하는데, 이것을 보고 그 땅 품질에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일하게 하고, 매양 사람 열 명이 보(保)를 만들고 보마다 대쪽 하나씩을 만들어 맨 먼저 온 사람이 이것을 가졌다가, 그 다음에 오는 사람에게 차례로 서로 전하면, 맨 나중에 오는 사람은 이것을 전할 곳이 없으므로 이것을 가진 채 일하게 된다. 일이 끝나면 이 대쪽을 가진 자는 맨 뒤에 왔다는 죄로 벌했다. 그때에야 해가 떠오르는데, 전부터 공은 이미 밭에 나가 있으니 이렇게 하기를 10일 동안을 하자 사람들은 다투어 가며 먼저 밭으로 나가서, 양산의 거친 밭은 모두 잘 이루었으나 이것을 쓸 곳이 없었다. 반년이 못되어 공이 부름을 받아 돌아오니, 이때에는 공의 은혜가 그다지 심히 나타난 것 같지 않아서 사람들은 옛 습관을 편하게 여겨 옛날에 갈던 밭에 금시에 씨도 뿌리지 않고, 씨를 뿌린다 해도 또한 김매주지 않았다. 내가 양산을 다녀온 것과 이공(李公)이 그곳을 떠난 지가 겨우 한 달 남짓한데, 나는 여기에서 인인군자(仁人君子)가 조그만 벼슬을 낮게 여기지 않고 자기 몸이 백성의 일을 먼저 하는 것을 보았으니, 이로써 양산 백성들의 가난한 것은 비단 이곳 백성들의 잘못뿐이 아니라, 정치하는 자의 부지런하고 게으른 데에 있다는 것을 알겠다. 이제 죽옥(竹屋)에 사는 사람이 양산의 명을 받았기로 인하여 내가 양산에서 들은 것을 기록하여 주면서 또 권하기를, ‘내 다만 이공의 정치한 것을 들어 말했으니, 양산이 적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양산 백성들을 다스리지 못한다고 무엇을 근심할 것이며, 양산 백성의 가난한 것을 부자로 만들지 못하랴. 만일 부자가 된 뒤에 가르치는 방법에 있어서는 그대로 학문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니 어찌 내 말을 기다리겠는가.’ 소년 시절에 글을 읽은 효력이 나타나는 것을 내 양산 백성들이 그대에게 교화(敎化)된 것에서 보겠도다.” 하였다.

[토산]철(鐵) 화자포(火者浦)에서 난다. 죽전(竹箭) 고성산에서 난다. 송이ㆍ은어[銀口魚]ㆍ표고[香蕈]ㆍ황어(黃魚)ㆍ천문동(天門冬). 『신증』 차(茶)ㆍ웅어[葦魚]ㆍ수어(秀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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染山竹帘 是四川特色商品文化特色产品。

 


대발. 죽렴(竹簾).

竹 대-죽

帘 발(햇빛 등을 가리는 물건)-렴


染山竹帘. 

产地:四川 巴中 南江县

 

 


染山竹帘,是我国的特产。它既实用,又是美化生活的装饰品。竹帘画,是在精编的竹丝卷帘上绘画,通常运用具有传统特色的国画技法。据记载,重庆竹帘,“细如毫发密如丝”。光绪年间就发展了油漆彩绘的画帘。这种画帘,是用光滑纤细的竹丝作纬线,蚕丝作经线编织而成,然后在帘子的幅面上画山水、人物、花卉、翎毛、走兽等国画,成为精美的壁饰和窗帘,有浓厚的诗情画意,极富有东方色彩和民族气派。竹帘画在新中国成立后,有了很大发展,不仅受到国内外广大群众珍爱,而且还常常被选为国家礼品赠送给外国友人和政府首脑,为国增光[Baidu]


四川省 특산물

成都:瓷胎竹编

其他:染山竹帘、安岳竹席、竹藤器、南充竹帘画

 

                                                                  安岳竹席

 

                                                                  竹藤器

 

                                                                南充竹帘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