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양귀비(罌粟 Opium poppy)는 고려곡(高麗穀)이다.

한부울 2013. 1. 2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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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罌粟 Opium poppy)는 고려곡(高麗穀)이다.

 

글쓴이:한부울

 

아편(阿片, opium), 양귀비(Papaver somniferum L)로 본 또 다른 역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510

 

전편에서 왜 아시아대륙에서 아편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과 이 아편전쟁과 양귀비 즉 아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북아메리카대륙이란 주제로 글을 올렸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그야말로 포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아편, 즉 양귀비란 식물과 우리나라 삼한역사 관계에서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또한 북아메리카대륙과는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만이 삼한역사가 붕괴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24.11.22 동아일보 1면 정치 기사]에 보면

片(편) 阿(아) ◇鶯粟殼(앵속각)는 普通楊貴妃(보통양귀비)라고稱(칭)하는花草(화초)니 그種類(종류)가 대개四十種(사십종)가량이다.

 

위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아편은 1924년에 가서야 우리에게 알려진 식물로 보인다.

어디에 있었길래 이렇듯 늦게 알려진 것일까?

한반도이다.

 

다 아시다시피 아편(片阿)은 마약의 일종인 양귀비열매의 즙액으로서 고체이다.

유럽 각국어인 오피움, 오피엄(opium)등으로 칭하며 어원은 그리스어 opos(식물즙) 및 opion(양귀비의 즙액)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아편은 생 아편과 의약용 아편, 그리고 흡연용 아편으로 나눈다.

생아편은 덜 익은 양귀비 열매에 상처를 내어 유출되는 유액(乳液)을 채집하여 건조시켜서 덩어리로 만든 것이고 이것을 가루로 하여 모르핀의 함유량을 10%로 조절한 것을 '아편말'이라 하여 의약용 아편으로 쓰고 있다. 아편 말은 갈색의 가루이며, 특이한 냄새가 나고 맛은 매우 쓰다.

그리고 흡연용 아편은 생아편을 물에 녹여 불용분(不溶分)을 제거한 후 증발 농축하여 엑스상(extract狀)으로 만든 것으로서, 특별한 곰방대를 써서 작은 램프의 불로 발연시켜 흡연한다. 아편은 주로 인도·터키·유고슬라비아·파키스탄에서 재배·제조되며, 전세계의 생산량은 약 100만kg이나 된다.[네이버 백과사전]

 

위 네이버사전의 자료인데 여기도 역시 아메리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앞글에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신성불가침구역으로 제외 되어 있는 것이 아메리카대륙이다.

아메리카에는 아편이 아예 나오지 않았다는 말인가?

천만에 말씀, 콩떡이다.

전편 볼 블로그의 글을 참고하면 오히려 한정된 아시아대륙보다 더 광역에서 재배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우리는 늘상 아시아대륙의 양귀비 주산지 그 유명한 황금(黃金)의 삼각지대(三角地帶:Golden Triangle)와 황금(黃金)의 초생달지대(Golden Crescent)만을 관심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곳을 노골적으로 양귀비의 본산처럼 꾸몄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편전쟁이 발발하게 한 장소로서 충분한가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으레이 아편전쟁은 아시아에서 발발된 것이라고 하여 상식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상식이 맞는 것인지 밝혀 볼 일이다.

아편전쟁은 영국이라고 하는 국가가 바로 이 양귀비에서 파생되는 아편을 이용하여 중국이라는 제국을 무혈 입성하는 전략으로 사용하여 마침내 침략해 들어가는 더러운 전쟁이다.

그러한 논리는 당시 영국이라는 국가가 아시아대륙의 양귀비 주산지를 모두 점령하고 관리하고 있었다는 점을 부각시켜 그것을 토대로 사실화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인도점령과 버어마 전쟁이다.

 

영국동인도회사(英國東印度會社:United Company of Merchants of England Trading to the East Indies 1708-1873)라는 이름으로 1780년대부터 청나라(?)와 무역을 하게 된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광동무역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여 중국으로부터 차, 도자기, 목면 등을 수입하고 영국의 모직물, 면직물 등을 수출했다. 그런데, 청나라 조정에서는 광주(廣州)에서 서양인과 무역할 수 있도록 공식적인 허가를 받은 상인조합, 공행(公行)에게 관세를 자의적으로 부과하였고 그러자 외국상인의 무역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또한, 무역 기간이나 물품도 통제하여 유럽상인들이 별다른 수입을 올리지 못하였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주축이 된 아편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발단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영국동인도회사란 정체이다.

세포이 항쟁(1857-1858)이 일어나자 영국정부는 그 책임을 물어 회사운영을 정지시켰고, 인도통치의 기능을 모두 빅토리아 왕에게 헌납하도록 한 다음, 동인도회사를 1874년에 해산시켜버렸다고 1876년 5월 1일부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의 여제”라는 칭호를 갖게 된다.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시 영국이 차지한 영토가 인도 대부분이라고 하였지만 인도를 완전히 정복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인도에 포르투갈과 프랑스가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북아메리카대륙의 포르투갈령과 프랑스를 제외하고 말한 것인데 이 제외되는 영역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동인도회사의 정체에서 보면 동인도 회사의 군대는 오스트리아의 왕위 계승전쟁인 7년 전쟁(1756-1763)동안 영국 해군과 힘을 합쳤으며, 이집트에서 나폴레옹 축출(1799), 네덜란드로부터 자바 탈취(1811), 싱가포르(1819)와 말라카(1824) 획득, 버마격퇴(1826)등 인도 밖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가면서까지 협력을 이어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1874년까지 이렇듯 희생하여 영국에게 인도를 바치고 인도여제까지 만들어준 마당에 왜 해체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여하튼 자료에 따르면 1680년대 국왕이 동인도회사에게 징병권, 사관임명권, 교전권(交戰權)등을 부여하여 권력이 보장되게 하였다는 것에서 역시 그에 걸맞게 동인도 회사가 활약한 것을 보면 무소불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세력임에 분명한데 어떻게 해체 되었다는 것인지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란 자체를 의심하고 행적에서도 많은 곳에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실제로 동인도회사의 활약부분에서 영국이 청나라를 상대로 1840년 아편전쟁이 벌렸을 때까지 인도 영역을 빈틈없이 실제 완전하게 점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버어마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어쨌던 영국령 인도에 대한 전격적인 무력침략을 발단으로 하는 영국과 미얀마전쟁이 벌어지고 1차(1824-1826), 2차(1852), 3차(1885)에 걸쳐 치룬 전쟁에서 점령하게 되고 마침내, 버어마는1886년에 영국령 인도에 병합 되어 그 한 주가 된다는 것이 근대사의 설명이다.

그러니 언뜻 듣기에는 인도와 버어마가 영국에 의해 점령되어 양귀비가 관리권에 들어간 것으로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인도를 공략함에 있어 영국은 1799년에 마이소르를, 1805년에 마라타동맹을 해체하고, 그 영토를 흡수하였으나 1840년 아편전쟁을 치루기에는 인도 완전점령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아편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 1843년 신드를 합병하고, 1849년에는 펀자브를 병합하였다는 사실이다.

완전 점령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던 여기까지의 사건역사가 근대사로 이미 굳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영국은 아시아대륙의 양귀비 주산지 황금(黃金)의 삼각지대(三角地帶:Golden Triangle)와 황금(黃金)의 초생달지대(Golden Crescent)를 모두 관리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이 양귀비 주산지를 모두 점령하고 그것을 관리하면서 아편을 충분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양귀비가 생산되었던 곳은 절대 아시아대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구도는 1881년 이후의 동아시아대륙에 신중국이 생기고 난 후에 중국을 지금의 동아시아 대륙이란 사실을 전제하고 사건을 전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문제이다.

 

그리고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일어난 전쟁을 아편전쟁(1840-1842)이라고 한다.

실제 이때 영국과 청나라는 정상적인 국가로 볼 수 있었던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당시 영국 외교 문서를 볼 때 청나라라고 한 실체가 나라가 아닌 정부(淸政府, Qing Government)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현 신중국 대륙자료에 따르더라도 淸政府于同治元年(1862)즉 1861년 까지는 청정부로 인정을 한 사실이다.

그런데 1841년 당시 아편전쟁이 일어난 시점에 청나라(Qing Dynasty)고 칭하는 것은 이치상 맞지 않는 이야기다.

이러한 의혹을 우리는 명확하게 풀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이야기 할 것은 철종과 함풍제 그리고 쿠데타란 제목으로 한번 언급한 사실인데 바로 1882년에 있었던 중국인추방법(Chinese Exclusion Act)이다.

 

중국인추방법(Chinese Exclusion Act)이란 무엇일까?

1882년에 미국에서 왜 이민을 제한하는 중국인추방법이란 것을 시행했을까?

표면적으로는 미국인들의 고용권이 침식당하는 문제라고 하였다.

그것 말고 당시 미국에서 다른 문제로 고민이 한 것이 틀림이 없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인 절대적인 모험이었다고 볼 수 있는 정책이었다.

나중에 신중국 외교관 이홍장이 미국에 가서 1892년에 이 법을 해제 했다고 하는데 무엇때문에 이런 조치를 내렸는지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대조선의 대한 실체를 밝히는 문제라고 보인다.

미국기록에서 근대조선이 망한 시기를 1881년도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서 1882년부터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이러한 조치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엄연히 대륙에는 청 정부가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를 내렸다는 것은 다시말해 청 정부(Qing Government)가 중국(Chinese)이 아니라는 반증이고 미국정부는 중국으로 허용할 수 없었다는 말이된다. 다시 말해 청군벌은 청정부(Qing Government)일 뿐이지 청제국(Qing Empire)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시 해체되었다고 미국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조선이 중국(Chinese)이라는 사실이고 대조선(Modern cho-sen, 1392-1881)인들을 강제추방형식을 빌어 조치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사전에 찾아보면 Exclusion은 제외, 배제, 추방, 배척, 입국거부 등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서는 입국거부 즉 이민을 강제하는 법이 아니라 기존에 정착하고 거주하고 있던 중국인들을 추방시킨다는 법이란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대조선의 해체 시기는 1881년으로 미국학자에 의해 들어난 사실이다.

Asiatic history 이란 제목의 역사책인데 저자가 William Elliot Griffis(1843-1928)가 모던조선(Modern cho-sen, 1392-1881 AD)이라 하여 모던조선이 해체된 시점을 1881년으로 보았다는 것이고 모던조선이 해체된 바로 그 다음해 1882년부터 미국에서 갑자기 중국인에 대한 추방법이란 것을 만들어 시행했다는 사실에서 우린 이 사실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되는 점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미국인들의 고용권이 침식당하는 문제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인추방법은 미국의 국가 건립 사상인 자유와 평등이란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의 행위이고 엄밀히 따진다면 이 역시 분리정책을 동반한다는 사실에서 일반대중들은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강제법이다.

 

1776년 7월 4일 당시 독립선언서 2장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all men are created equal),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떠한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변혁 내지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이 인민의 권리인 것이다...”라는 대전제가 있고 어쨌던 이러한 대의사상은 미국의 건국헌법이 자연법과 신의 법에 기초하고 있는데 기초를 구도 있었다는 것이며 자연법과 창조주인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노버왕가3째 영국 국왕 조지3세(George III, 1738-1820,재위:1760-1820)으로 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요지가 성립된다는 엄중한 사실이다“라고 적혀있다.

 

1882년에 발효된 중국인 추방법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독립을 성취한 후 겨우 100년을 지나지 못한 시기에 그들의 독립선언서를 완전히 배치한 초헌법적인 상황이 돌출되는 위험성이 내포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인가 들어 낼 수 없는 문제가 내포되었다는 것을 눈치 챌 수가 있는 것이다.

들어 낼 수 없는 그 문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자유와 행복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권이 있다고 하였음에도 1882년에 발효된 중국인추방법은 이 독립선언서를 무시하고 위헌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인권을 위배한 강제법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건국이념을 생명과도 같이 여기는 대의를 저버리는 꼴인 것이다.

이러한 어리석은 법률은 그들의 정서에도 맞지 않았다고 볼 때 이것은 분명 기존 미국법에 호응하지 않고 융합할 수 없는 그리고 동화되지 않던 중국인 즉 대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외부로부터 새롭게 들어오는 세력들을 견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존 아메리카대륙에서 오랫동안 생활터전을 하고 생존해 왔던 구 중국세력을 합법적으로 동화, 또는 추방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률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연구를 더 해야 할 부분이지만 흐름상 그렇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실에서 볼 때 대조선 즉 모던 조선은 어떤 형태이든 간에 1881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 근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편전쟁 역시 아메리카 대륙 지배권과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모던 조선과의 전쟁이라고 할 때 청정부가 조선과 영국 사이에서 군사적, 외교적으로 대표역할을 할 수 있는 군벌이나, 정벌정도의 구성조직이었다는 한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던 청 정부(Qing Government)에서 외교관으로 활약한 청군벌(清軍閥)의 대표격인 이홍장(李鴻章1823-1901)의 경우를 보면 1896년 영국을 방문하고 당시 영국 여왕으로부터 빅토리아 훈장까지 수여 받았다는 사실을 보면 당시 상황을 대체적으로 짐작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풀어 볼 때 아편전쟁은 북아메리카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추리 할 수 있어야 한다.

 

앞에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아편 즉 양귀비의 원산지에서 우리사서에 등장하는 것들을 토대로 밝혀보기로 하자.

양귀비(楊貴妃)는 앵속과(罂粟科:Papaveraceae), 앵속속(罂粟属:Papaver)의 식물이다.

약담배, 아편꽃이라고도 하는데 1년 또는 월년초로서 한해살이풀로 높이는 50~150cm이며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이고 열매는 달걀 모양의 삭과(蒴果)를 맺으며, 열매가 덜 익었을 때 아편을 추출한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지리지(世宗地理志)에 이 양귀비(罌粟)가 경기, 충청, 황해, 경상, 강원도의 토산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양귀비 자생 분포지로 충청도(忠淸道) 보은현(報恩縣)과  경상도(慶尙道)  동래현(東萊縣)를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토산임을 알 수 있다.

양귀비가 자란다는 이곳은 대체적으로 기후가 아열대지역이다.

만약 한반도 경기, 충청, 황해, 경상, 강원이라면 기후는 고사하고 지금의 동남아시아처럼 그 주위에는 마약중독환자가 많이 발생했어야 했고 그 지역은 어떠한 경우라고 지금까지 양귀비재배지로 명맥이 유지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바로 생물의 근원으로서 생물학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청정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깨끗하다.

이미 우리 곁에서 돌아가시고 유명을 달리하신 할머니들은 비상 상비약으로 이 양귀비를 재배했었다고 하신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양귀비를 일상적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한반도로 이동하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한반도가 아니면 어디였을까?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雙子葉植物綱 Magnoliopsida

目: 毛茛目 Ranunculales

科: 罂粟科 Papaveraceae

屬: 罂粟属 Papaver

種: 罂粟 P. somniferum

二名法

Papaver somniferum L.

 

원산지는 지중해 동부지역과 소아시아, 이집트, 이란, 터키이며 한어자료엔 7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중국으로 들어 왔다고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고대 이집트, 그리스의 고의약서에 '끝없는 환상의 잠'을 가져오는 약으로 기록되어 있다. 호머의 시에도 아편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생아편은 지중해, 그리스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고 아랍의 무역상들에 의해서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 중국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앞 편에서 말한 것이지만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아편의 탐닉성과 독성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여 황색인종에게 가장 강하다는 것을 규명했으며 이는 아편전쟁까지 치르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

반도사에서는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거쳐 이조말엽, 생아편을 끽연하는 풍습이 들어왔다고 하고 있다.

미숙과실에서 얻어지는 유액을 말린 것이 아편 opium이고 70℃ 이하의 온도에서 건조하여 분말로 한 것이 아편가루(pulvis opii)이고 과각을 말린 것은 앵속각(罌粟殼)이라 하는데 중국에서는 아편을 앵속이라 한다.

여기까지가 별 다르지 않는 양귀비의 설명이다.

 

앞서 세종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지리지에서 분명 우리나라 각지방에서 이 양귀비를 재배하거나 자생한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다음에 나오는 고려곡(高麗穀)이란 기록을 보자.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萬物篇 / 草木類

穀種

穀種辨證說

...有高麗穀。有菰米。有鸎粟。有苜蓿。此外計中海內外。更未知有幾何種也。東國農書。穀名詳於姜氏《衿陽雜錄》。與今穀名逈殊。試與考農。較其異同。不相孚焉。姜氏之成書。距今爲三百餘年。而穀之名狀。又不可考。則而況前此幾千百年之名物也哉。

 

東國農書。穀名詳於姜氏《衿陽雜錄》

동국(東國)의 농서(農書), 조선 초기 문신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금양잡록(衿陽雜錄)에 기록된 것을 인용하면서 즉 곡(穀)은 양식으로 표현되는데 농사(農事)의 결과물 전체를 이른 것이라고 풀이 된다 하였고.

有高麗穀。有菰米。有鸎粟。有苜蓿。

여기서 고려의 곡식 즉 농사(農事)를 하는데 고미(菰米), 앵속(鸎粟), 목숙(苜蓿)이 있다 하였다.

 

고려곡(高麗穀) 고미(菰米:Zizania)는 북아메리카대륙 원산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07

중해내외(中海內外) http://blog.daum.net/han0114/17050606

거여목(苜蓿 Alfalfa)는 고려곡(高麗穀)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964

 

이미 앞 글에서 고려곡이라고 하는 고미(菰米), 목숙(苜蓿)까지 살펴보았다.

이제 앵속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앵속은 양귀비라는 사실은 이제 모두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양귀비는 어디가 주 원산일까?

바보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상식으로 굳어진 구태연한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하는 말이다.

앞에서 고려곡이라 하여 두 가지 곡식을 말하였는데 모두 북아메리카대륙임을 확인하였다.

양귀비는?

 

아래 학명은 린네가 명명한 양귀비 식물종의 주종이라고 볼 수 있는 8개의 학명이다.

Papaver alpinum L : Alps, Austria.

Papaver argemone L : Eurasia and North Africa, North America

Papaver dubium L : Europe and America

Papaver nudicaule L : northern Europe and North America

Papaver orientale L : Oriental Poppy(고려 아편)

native to the Caucasus, northeastern Turkey, and northern Iran

Papaver radicatum L : Kaffeklubben Island

Papaver rhœas L : native of Europe

Papaver somniferum L : Europe, North America, South America, and Asia

 

이것들을 세부적으로 근원지를 따져보면

Papaver somniferum L. OPIUM POPPY(Discover Life)의 분포지도에는

북아메리카와 유럽지역이 대부분으로 나타나고 오스트레일리아대륙에 퍼져있으며 아시아대륙은 사천지방정도이다.

Papaver alpinum L: Dwarf Poppy

이 종도 유럽지역이 대부분이며 아시아에는 사천지역에만 표시되어 있다.

Papaver argemone L: Long Pricklyhead Poppy 은 유라시아(Eurasia) 와 북아프리카(North Africa), 그리고 북아메리카(North America)지역이다.

Papaver dubium L: Long-headed Poppy, Blindeyes도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을 표시하고 있다.

Papaver radicatum L: Rooted Poppy은 전부 북아메리카이고 북유럽을 표시하고 있다.

나머지 Papaver nudicaule L, Papaver orientale L, Papaver rhœas L 3종은 역시 아시아이기보다는 유럽에 근원지 즉 분포지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위 8종 중 5종은 아메리카를 근원으로 하는 것이고 3종은 유럽을 근원으로 하는 종임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보더라도 특별하게 들어나는 아시아 종은 없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고려곡(高麗穀)은 어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단번에 잘 알 수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고려곡(高麗穀)은 나는 학명 Papaver orientale L : Oriental Poppy 라고 확신하는 바다.

그렇다면 이 종의 DNA 분석에 따른 자료 분포지도를 한번 살펴보자.

아래 (하)미국자료 Discover life가 제공하는 분포지도와 (상)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의 분포지도를 동시에 참고 한다.

 

[Encyclopedia of Life]Papaver orientale L : Oriental Poppy

 

[Discover life]Papaver orientale L : Oriental Poppy(고려 아편)

 

살펴보니 고미(菰米), 목숙(苜蓿)으로 밝힌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東洋)이라고 하는 오리엔트(Orient)는 동방(東方)을 말하는데 이것은 동(東)쪽에 해(太陽)가 뜨는 곳을 의미한다.

 

호(胡)는 북아메리카 대호(大湖)를 지칭한 것? http://blog.daum.net/han0114/17050603

 

윗 글에서 말한 것처럼 그곳은 조선(朝鮮)이 존재한 곳, 동국(東國), 대동(大東), 해동(海東), 동방(東邦), 진역(震域), 근역(槿域), 청구(青丘), 계림(雞林), 삼한(三韓)이 있었던 곳이다.

그곳에 고려곡(高麗穀)을 재배하며 살던 고려인이라고 하는 조선인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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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지리지 양귀비 자생 분포지

경기-양귀비[粟]

충청도-양귀비열매껍질[粟殼]

경상도-양귀비[鶯粟]

황해도-양귀비[鶯粟]

강원도-양귀비열매껍질[粟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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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양귀비 자생 분포지

충청도(忠淸道)  보은현(報恩縣) 

경상도(慶尙道)  동래현(東萊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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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경제 제1권  

치포(治圃)

앵속각(鶯粟殼) 양귀비화

종자는 두어 가지가 있다. 추석날 밤이나 혹은 중구(重九 9월 9일)에 발가벗고 심되, 두 손을 교대하여 종자를 뿌리고 다시 비로 고르게 쓸어주면, 꽃받침이 겹으로 되고 잎이 많이 난다. 먼저 땅을 걸우어 기름지고 더부룩하게 한 다음 종자를 잿물[黑汁]에다 반죽하여 뿌리면, 개미가 싹을 파먹지 않게 된다. 《치부》

부부가 함께 고운 옷을 입고 밤중에 마주 앉아 심으면 아리따운 꽃이 많이 핀다.

소자유(蘇子由 자유는 송나라 소철(蘇轍)의 자)가 영천(潁川)에서 살 때 집이 가난하였는데, 매양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환절기에 배추와 겨자가 잘 안 되었으면 앵속각과 결명(決明)을 심어 부족을 보충했는데 이는 청량(淸涼)한 맛을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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