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朝鮮策略

한부울 2010. 1. 4. 18:10

                                                                    朝鮮策略 


정리: 惠菴 김  희  진

修信使日記 朝鮮策略 廣東黃遵憲私擬


개화파의 천거로 고종의 명을 받아 김홍집이 수신사의 자격으로 일본을 찾은 것이 1880년. 이 때 그의 나이는 38살이었다. 도쿄에서 이동인의 소개로 당시 청나라 외교부의 참찬 자격으로 도쿄에 와 있던 32살의 황준헌(黃遵憲)을 만난다. 황준헌은 조선에서 온 수신사에게 국제정세를 설명하면서 조선의 살길은 이것밖에 없다며 조선의 선택방법을 예시하는 작은 책자를 드리민다


― 수신사일기, 조선책략, 광동 황준헌의 개인적으로 헤아린 글.


地球之上, 有莫大之國焉, 曰俄羅斯, 其幅員之廣, 跨有三洲, 陸軍精兵百餘萬, 海軍巨艦二百餘艘, 顧以立國在北, 天寒地瘠, 故狡然思啓其封疆, 以利社稷,


지구의 위에는 막대한 나라가 있는데, 아라사(러시아)라고 한다. 그 너비가 광대해서 3대륙에 걸쳐있다. 육군 정예병이 백여만이고, 해군 거함이 이백여척이다. 다만, 나라를 북쪽에 세워서 하늘은 차고 땅은 척박하였다. 고로 빠르게 그 영토를 넓혀서 사직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을 가졌다.


自先世彼得王以來, 新拓疆土, 旣踰十倍, 至於今王, 更有括四海, 幷合八荒之心, 其在中亞細亞回鶻諸部, 蠶食殆盡,


선세로부터 피득왕(표트르대제)이래 새로 강토를 개척하여 이미 (이전보다) 10배가 넘었다. 지금의 왕에 이르러서는 다시 4해를 관할하고 팔방을 병합하려는 마음으로 중아세아(중아시아)에 있는 회골(위구르)의 모든 부족을 잠식하여 거의 다하였다.


天下皆知其志之不少, 往往合從以相距, 土耳其一國, 俄久欲並之, 以英法合力維持, 俄卒不得逞其志, 方泰西諸大若德․若奧․若英․若意․若法․皆耽耽虎視, 斷不假尺寸之土以與人,


천하가 모두 그 뜻이 작지 아니함을 알고 왕왕 합종하여서 서로 항거하였다. 토이기(투르크) 한 나라를 러시아가 오랫동안 병합하고자 하였으나 영국과 법국(프랑스)이 합력하여 유지해 나감으로 러시아가 끝까지 굳세게 그 뜻을 얻을 수가 없었다. 바야흐로 서양의 여러 대국들, 독일․오스트리아․영국․이탈리아․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모두 호시탐탐 결단코 한 척, 한 촌의 땅이라도 남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俄旣不能西略, 乃幡然變計, 欲肆其東封, 十餘年來, 得樺太洲於日本, 得黑龍江之東於中國, 又屯戍圖們江口, 據高屋建瓴之勢, 其經之營之, 不遺餘力者, 欲得志於亞細亞耳,


러시아가 서양 공략을 이미 할 수 없게 되자, 이에 번연히 계획을 바꾸어 그 동쪽의 땅을 마음대로 하고자 하였다. 십여년 이래로 화태주(사할린)를 일본에게서 얻고, 중국에게서 흑룡강 동쪽을 얻었으며, 또한 도문강 입구에 주둔하여 지켜서 높은 집에서 물병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형세이고, 그 경영하여 여력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시아에서 뜻을 얻고자 함이다.


朝鮮一土, 實居亞細亞要衝, 爲形勝之所必爭, 朝鮮危則中東之勢日亟, 俄欲略地, 必自朝鮮始矣,


조선의 땅은 실로 아세아의 요충에 자리잡고 있어, 형세가 반드시 싸우는 바가 되니 조선이 위태로 우면 즉 중동의 형세가 날로 급해질 것이다. 러시아가 땅을 공략하고자 하면 반드시 조선으로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嗟夫, 俄爲遞狼秦, 力征經營, 三百餘年, 其始在歐羅巴, 繼在中亞細亞, 至於今日, 更在東亞細亞, 而朝鮮適承其弊, 然則策朝鮮今日之急務, 莫急於防俄, 防俄之策, 如之何, 曰親中國․結日本․聯美國, 以圖自强而己,


아! 러시아가 이리 같은 진나라처럼 정벌에 힘을 쓴 지, 3백여년, 그 처음이 구라파에 있었고, 다음에는 중아시아였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다시 동아시아에 있어서 조선이 그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즉, 오늘날 조선의 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를 막는 책략은 무엇과 같은가?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함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따름이다.


何謂親中國, 東西北背俄, 連界者惟中國, 中國之地大物博, 據亞洲形勝, 故天下以爲能制俄者莫中國若, 而中國所愛之國, 又莫朝鮮若, 爲我藩屬, 己歷千年, 中國緩之以德, 懷之以恩, 未嘗有貪其土地人民之心, 此天下之所共信者也, 况我大淸, 龍興東土, 先定朝鮮而後伐明, 二百餘年, 字小以德, 事大以禮,


중국과 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일컬음인가? 동․서․북이 러시아를 등지고 경계를 잇고 있는 것은 오직 중국뿐이다. 중국은 땅이 크고 물자가 풍부하며, 형세가 아시아주에 거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천하는 러시아를 제어할 나라로는 중국만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이 사랑하는 나라로는 또한 조선만한 나라가 없다. 조선이 우리 번속이 된지 이미 천년이 지났으되 중국은 덕으로써 편안히 지내게 하고 은혜로써 품어 줄 뿐, 한번도 그 토지와 인민을 탐내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음은 천하가 함께 믿는 바이다. 하물며 우리의 대청은 동쪽 땅에서 제국을 일으켜, 먼저 조선을 평정하고 후에 명을 정벌해서 2백여년 동안 덕으로 소국을 사랑하고 조선은 예로써 대국을 섬겨왔다.


當康熙․乾隆朝, 無事不以上聞, 己無異內地郡縣, 此非特文字同․政敎同․情誼親睦己也, 抑亦形勢昆連, 拱衛神京, 有如左臂, 休戚相關而患難相共, 其與越南之疏遠, 緬甸之偏僻, 相去固萬萬也,


강희․건륭조를 당하여서는 무슨 일이든지 상문하지 않은 것이 없이 내지의 군현과 다름이 없었다. 이는 문자가 같고, 정교가 같고 정의가 친목할 뿐만 아니라, 또한 형세가 연접하여 신경(북경)을 껴안아 호위함이 마치 왼발과 같다. 서로 휴척을 같이하고, 서로 환란을 함께 하였으나, 저 월남(베트남)의 소원과 면전(버마)의 편벽과는 본디 서로 떨어짐이 오래됨이다.


向者朝鮮有事, 中國, 必糜天下之餉, 竭天下之力以爭之, 秦西通例, 兩國爭戰, 局外之國, 中立其間, 不得偏助, 惟屬國則不在此例, 今日朝鮮之事中國, 當益加於舊, 務使天下之人曉然於朝鮮, 與我, 誼同一家, 大義己明, 聲援自壯, 俄人, 知其勢之不孤, 而稍存顧忌, 日人量其力之不足敵, 而可與連和, 期外釁潛消, 而國本益固矣, 故曰親中國,


지난번 조선에서 일이 있을 때에는 중국은 어김없이 천하의 양식을 소비하고 천하의 힘을 다하여서 싸웠다. 서양의 통례에 따르면 양국이 전쟁할 때면 국외의 나라는 그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 한편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한다. 오직 속국은 곧 이 예가 아니다. 오늘날 조선은 중국 섬기기를 마땅히 예전보다 더욱 힘써서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조선과 우리는 한 집안 같음을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의가 밝혀지고 성원이 스스로 성해지면 러시아 사람은 그 형세가 외롭지 않음을 알고, 조금은 돌아보고 꺼림이 있을 것이다. 일본 사람은 그 힘이 대적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 가히 더불어 연결하여 화친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필코 외국의 혼란은 슬며시 없어지고 나라의 근본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중국과 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何謂結日本, 自自自中國以外, □密邇者, 日本而己, 在昔先王, 遣使通聘, 載在盟府, 世世職守, 至於近日, 則有北豺虎同据肩背, 日本苟或失地, 八道不能自保, 朝鮮有一變故, 九州․四國, 亦恐非日本能有, 故日本與朝鮮, 實有輔車相依之勢,


일본과 맺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중국 이외에 가장 가까운 나라는 일본이다. 옛날 선왕이 사신을 보내어 통교한 나라는 맹부에 실려 있고, 그들은 대대로 맡은 일에 충실하였다. 근일에 이르러서는 즉 북으로 이리와 호랑이가 어깨와 등을 걸쳐 타고 있어 만일 일본이 혹 땅을 잃으면 조선 팔도가 능히 스스로 보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조선은 한번 변고가 생기면 구주․사국이 또한 일본의 차지하는 바가 되지 못할 것이다. 고로 일본과 조선은 실로 보거상의의 형세에 놓여있다.


韓․趙․魏合從, 秦不敢東下, 吳․蜀相結, 魏不敢南侵, 彼以强隣交迫, 欲聯脣齒之交, 爲朝鮮者自當損小嫌而圖大計, 修舊好而結外援, 苟使他日者, 兩國之輪舶鐵船, 縱橫於日本海中, 外侮自無由而入, 故曰結日本,


한․조․위가 합종하자 진이 감히 동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오․촉이 서로 결합하자 위가 감히 남쪽으로 침략해 오지 못하였다. 저들이 강대한 이웃 나라의 핍박으로 순치의 교분을 맺고자 하니, 조선으로서는 작은 거리낌을 버리고, 큰 계획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다. 구교를 닦고 외원과 결합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훗날 양국의 윤선과 철선이 일본의 바다 위에 종횡으로 누비게 되면 외해는 절로 들어올 길이 없어질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일본과 맺어야 하는 것이다.


何謂聯美國, 自朝鮮之東海而往, 有亞美利加者, 卽合衆國所都也, 其本爲英屬, 百年之前, 有華盛頓者, 不願受歐羅巴人苛政, 發奮自雄, 獨立一國, 自是以來, 守先王遺訓, 以禮義立國, 不貪人土地, 不貪人人民, 不强與他人政事, 其與中國, 立約十餘年來, 無纖芥之國, 而與日本往來, 誘之以通商, 勸之以練兵, 助之以改約, 尤天下萬國之所共知者,


미국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일컬음인가? 조선을 동해로부터 가면 아메리카가 있는데 즉 합중국이 도읍한 곳이다. 그 근본은 영국에 속해 있었는데 백년 전에 화성돈(워싱턴)이란 자가 유럽사람의 학정을 받기를 원치 않고 발분 자립하여 한 나라를 독립시켰다. 이 뒤로부터 선왕의 유훈을 지켜서예의로써 나라를 세우고 토지를 탐내지 않고, 남의 인민을 탐내지 않고, 굳이 남의 정사에 간여하지 않았다. 그와 중국과는 조약을 맺은 지 십여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조그마한 분쟁도 없는 나라이다. 일본과의 왕례에 있어서는 통상을 권유하고 연병을 권유하고, 약속을 고칠 것을 도와주니, 이는 천하만국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盖其民主之國, 共和爲政, 故不利人有, 而立國之始, 由于英政酷虐, 發憤而起, 故常親於亞細亞, 常疎於歐羅巴, 而其人, 實與歐羅巴同種, 其國之强盛, 常與歐羅巴諸大地, 驟於東西兩洋之間, 故常能扶助弱小, 維持公義, 使歐人不能肆其惡, 其國勢遍近大東洋, 其商務獨盛大東洋, 故又願東洋, 各保其國, 安居無事, 使其使節不來, 爲朝鮮者, 常當遠泛萬里之重洋, 而與之結好, 而况其迭遣使臣, 旣有意以維繁朝鮮乎, 引之爲友邦之國, 可以結援, 可以紓禍, 吾故曰聯美國,


대게 민주국이란 공화로써 정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이롭게 여기지 않는다. 미국이 나라를 세운 시초는 영국의 혹독한 학정으로 말미암아 발분하여 일어났으므로 고로 항상 아시아와 친하고 유럽과는 항상 소원하였다. 그 인종은 실은 유럽과 동종이다. 그 나라의 강성함은 유럽의 여러 대지와 더불어 동․서양 둘 사이에 끼여 있기 때문에 항상 약소한 자를 부조하고 공의를 유지하여, 유럽사람으로 하여금 그 악을 함부로 행할 수 없게 하였다. 그 국세는 대동양에 두루 미치고 그 상무는 호로 대동양에서 성하였다. 또한 동양이 각기 제 나라를 보전하여 편안히 거하고 무사하기를 원하였던 까닭에 그 사절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으로서는 마땅히 항상 만리 대양에 사절을 보내서 그들과 더불어 수호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그들이 연달아 사신을 보내어 조선과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뜻이 있음에랴! 우방의 나라로 끌어들이면 가히 구원을 얻고, 가히 화를 풀 수 있다. 이것이 미국에 연결해야 하는 까닭이다.


夫曰, 親中國, 朝鮮之所信者也, 曰結日本, 朝鮮之將信將疑者也, 曰聯美國, 則朝鮮之所深疑者也.


무릇, 중국과 친하는 것은 조선의 믿는 바이요, 일본과 맺는 것은 조선이 장차 믿고, 장자 의심할 것이다. 미국과 연결하는 것은 즉 조선이 심히 의심할 것이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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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본 1책. 1876년 한일수호조규를 맺고 일본에 개항한 조선은 그해 5월 제1차 수신사로 김기수를 파견한데, 이어 1880년 3월 23일에는 제2차 수신사로 예조참의 김홍집(金弘集)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김홍집은 일본에 약 1개월간 머무는 동안 국제정세 탐문 및 국제법과 관련하여 활동을 전개했는데, 그는 특히 청국 공관을 왕래하면서 주일 청국공사 하여장(何如璋), 참사관 황준헌(黃遵憲) 등과 외교정책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귀국하는 길에 황준헌이 지은 《사의조선책략 私擬朝鮮策略》을 얻어와 고종에게 바쳤다.


이 책은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한 조선의 외교정책이 핵심 내용이다. 즉 황준헌은 러시아가 이리처럼 탐욕하여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정벌에 힘써온 지 300여년 만에 드디어 조선까지 탐낸다고 하면서, 조선이 이를 방어하기 위한 책략은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하여 자체의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황준헌은 중국과 친해야 하는 이유로 중국이 물질이나 형국에서 러시아를 능가하고, 조선은 천여 년 동안 중국의 번방(藩邦)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양국이 더욱 우호를 증대한다면 러시아가 중국이 무서워서도 감히 조선을 넘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은 조선이 중국 이외에 가장 가까운 나라이고, 과거부터 통교해 온 유일한 국가라고 설명한 후 조선과 일본 중 어느 한쪽이 땅을 잃으면 서로 온전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보거상의(輔車相依)의 형세이기 때문에 서로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비록 조선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남의 토지나 인민을 탐내지 않고, 남의 나라 정사에도 간여하지 않는 민주국가로서 오히려 약소국을 돕고자 하니 미국을 끌어들여 우방으로 해두면 화를 면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의 외교정책은 서구의 침략으로부터 무사할 때에 공평한 조약을 맺는 것이 이득이 되는 것이며, 중동과 같이 위세에 눌려 조약을 맺게 되면 자주권과 이익을 탈취 당하게 되니 서둘러야 된다는 것도 강조하였다.


《조선책략》은 황준헌이 쓴 작은 책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조선에 유입된 후 조선 조야의 반향은 상당히 컸다. 정부에서는 찬반 논의가 격렬하게 전개되었고, 재야에서는 보수 유생들을 중심으로 거국적인 위정척사운동이 일어났다. 1880년 11월 7일 유원식(劉元植)의 척사상소를 비롯하여 1881년 2월에는 이만손(李晩孫)을 소두(疏頭)로 한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는 전국의 척사 풍조를 자극하여 신사(辛巳) 척사상소운동을 선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당시 고종을 비롯한 집권층에게는 큰 영향을 주어 1880년대 이후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방정책의 추진 및 서구문물을 수용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김세민>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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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18권, 18년(1881 신사 / 청 광서(光緖) 7년) 2월 26일(무오)

이만손 등 만 명이 연명으로 《사의조선책략》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다

嶺南儒生李晩孫等萬人聯疏。 略:

경상도(慶尙道) 유생 이만손(李晩孫) 등 만 명이 올린 연명 상소의 대략에,

 

卽伏見修信使金弘集所䝴來黃遵憲私擬一冊之流傳者, 不覺髮竪膽掉, 繼之以痛哭流涕也。 左道惑衆之刑, 著於王法, 黨與先治之訓, 載在《春秋》。 由是而治, 反是而亂, 由百等百, 莫之或違。 洪惟我朝列聖相承, 崇儒重道, 式至今休。 三代以下, 未有臻斯盛者也。 而不幸有耶蘇邪敎者出於海外夷種, 禮義廉恥尙矣無論, 倫綱彝則一切掃盡, 直一禽獸耳, 太羊耳。 肆我正宗、純祖以及憲廟, 先酉後申, 增其式廓。 干犯者, 必殺無赦, 詿誤者, 雖小不貸, 妖腰亂領, 咸就顯戮。 逮我聖上踐祚, 適追先王之志事, 丙寅沁都之變, 天討大行, 群醜駭遁。 曾不十年, 凶言醜說, 狼藉旁午, 前之潛相狂誘者, 今乃肆然筆之於書, 前之私相傳習者, 今乃顯然投之於我, 勝於周公、孔之說, 猶吾程、朱之句, 何等誣聖? 何等辱國? 而有邀進而欲奏御者, 有登對而欲傳布者。 噫! 自古以來, 衣君食君, 冠儒服儒, 膺專對之任, 居具瞻之地, 而䝴奉辱國之書, 達之天陛, 藏弆誣聖之說, 播之朝著, 張皇寇賊之勢, 恐動君心, 憑藉勻衡之威, 鉗制衆口者, 果皆何如人哉? 何況在先王則斥之如此其嚴, 在殿下則容而納之, 在丙寅則討之如此其正, 而在今日則優而接之, 臣不敢知“殿下將何以仰報於先王, 而有辭於後世乎?” 請復就其所謂私擬策者而逐條辨之。 其言曰: “朝鮮今日急務, 莫先於防俄。 而防俄之策, 莫先於親中國、結日本、聯美國。” 夫中國者, 我之所稱藩也, 信義交孚, 殆過二百年之久。 而一朝曰‘皇’, 曰‘朕’, 偃然二尊之稱, 無辭以受之, 容其人而留其書, 萬一執此爲詰, 致煩嘖舌, 則將何以解之也? 日本者, 我之所羈縻也, 關隘險夷, 渠已稔知, 水陸要衝, 渠已占據, 萬一瞰我無備, 恣其豕突, 則將何以制之也? 美國者, 我之所素昧也。 公然被他慫慂, 自我引惹, 駕風濤涉重險, 疲弊我臣僚, 尾閭我財賄, 萬一覘我之虛, 侮我之弱。 强以難從之請, 委以不繼之費, 則將何以應之也? 俄夷者, 我之本無嫌也。 空然信人間貳, 損我威重, 靠遠交而挑近隣, 擧措顚倒。 虛聲先播, 籍此爲釁, 來尋兵端, 則將何以救之也? 又況俄、米、日本同一夷虜, 難置厚薄於其間。 而豆滿一帶疆界又相接, 萬一循日本己行之例, 援美國新設之約, 請地來居, 請貨交榷, 則何以拒之也? 又況薄海內外, 如日本、美國者, 不可殫數。 萬一各自效嚬, 請地請和, 一如日本之爲, 則亦何以遏之也? 不許, 則前功盡棄爲仇, 衆怨叢集爲敵者, 不但俄夷一國而已; 許之, 則一隅靑邱, 將無地可容矣。 如使俄夷, 眞如遵憲之言, 力能竝呑、志在侵凌, 則將坐待萬里之援, 而抑將獨與轂下之羌戎禦之乎? 此, 其利害之較然者也。 今朝廷何若而爲此有百害無一利之擧, 啓俄夷無心之心, 生美國無事之事, 以致寇而召戎乎?” 其言又曰: “從事於西學, 盡力於致財, 盡力於勸農, 盡力於通工。” 夫財用農工, 自有先王之良法美規。 勞來振德, 不傷不害, 則民恒安矣。 節以制度, 食寡用餘, 則財恒足矣。 不以無益害有益, 不以異物賤用物, 則工恒勸矣。 唐、虞之比屋皆封, 成周之居積行裏, 漢之紅腐貫朽。 由之, 可使勇且知方。 何嘗捨先王之道, 而從事於別樣妙術耶? 尤可痛者, 彼遵憲者自稱中國之産, 而爲日本說客, 爲耶蘇善神, 甘作亂賊之嚆失, 自歸禽獸之同科, 古今天下, 寧有是理? 無乃向時巨魁之漏網者憤於沁都之敗, 而知其不可以兵力取勝, 逞其僥倖稍食之慾, 售其輾轉熏染之奸乎? 如其不然, 則甘言誘說之已極矣, 危辭恐嚇之已盡矣, 又何以傳敎無害之說, 尾之於後也? 其心所在, 不難知也。 伏乞淵然深思, 廓揮乾斷, 其人則盡爲發遣, 其書則投諸水火。 明示好惡, 布告中外, 使一國含生知聖意所在。 而益明周、孔、程、朱之敎, 人皆親上死長, 衆心成城, 醜類邪黨, 無所容其奸, 我國禮義之俗, 將有辭於天下萬世矣。

 

批曰: “闢邪衛正, 何待爾等之言乎? 至若他國人私擬文字, 初不足深究, 而爾等又誤看而抉摘矣。 若籍此而又煩疏擧, 是謗訕朝廷, 豈可待之以士子而不之嚴處乎? 爾等知悉退去。”

 

“방금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이 가지고 온 황준헌(黃遵憲)의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라는 1권의 책이 유포된 것을 보니, 저도 모르게 머리털이 곤두서고 가슴이 떨렸으며 이어서 통곡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단(異端)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킨 자에 대한 처벌은 왕법(王法)에 나타나 있고 그 무리에 가담한 자를 먼저 다스려야 한다는 가르침은 《춘추(春秋)》에 실려 있으니, 이것을 따르면 다스려지고 이와 반대로 하면 혼란해진다는 사실은 영원히 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우리 왕조는 역대 임금들이 계승하면서 유도(儒道)를 높이고 중시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3대(三代) 이후로 유도가 이처럼 융성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악한 예수교라는 것이 해외의 오랑캐 종족들에게 나와서 예의나 염치는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윤리와 강상(綱常)이 일체 없어져버리니 다만 하나의 짐승이나 하나의 개, 돼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정종(正宗), 순조(純祖)로부터 헌종(憲宗)에 이르기까지 선대 임금들이 이루어 놓은 법을 후세의 임금이 계승하여 어기는 자는 반드시 죽이고 용서하지 않았으며 잘못을 저지른 자는 작은 죄라 하더라도 용서하지 않았으므로 요망한 난적(亂賊)들이 모두 주륙되었습니다.

 

우리 전하가 즉위하자 선대 임금의 뜻과 사업을 계승하여 병인년(1866) 강화도(江華島)의 변란 때에 크게 토벌하니 추악한 무리들이 놀라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10년도 되기 전에 흉악하고 너절한 말이 한창 무성하게 퍼져서 이전에는 은밀히 서로 꾀던 자들이 지금은 방자하게 책을 쓰기까지 하고 이전에는 사적으로 서로 전습(傳習)하던 것을 지금은 버젓이 드러내놓고 우리에게 주면서 그것은 주공(周公), 공자(孔子)의 말씀보다 낫고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문구(文句)와 같다고 하니, 어찌 이리도 성현(聖賢)을 모욕하고 어찌 이리도 나라를 욕되게 한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임금 앞에 나가서 이것에 대해 아뢰려는 자도 있고 등대(登對)하여 전파시키려는 자도 있으니, 아! 예로부터 임금이 준 옷을 입고 임금이 주는 밥을 먹으며 선비의 의관을 차리고 사신의 임무를 받고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나라를 욕되게 하는 글을 가지고 와서 전하에게 아뢰고 성인을 모욕하는 말을 은밀히 조정에 퍼뜨리며 적의 세력을 장황하게 설명하여 임금의 마음을 두렵게 하고 여러 나라 사이에 균형을 지킨다는 설(說)을 빙자하여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 자는 과연 어떤 사람들입니까?

 

더구나 선대 임금은 그처럼 엄하게 배척하였는데 전하께서는 용납해서 받아들이며 병인년에는 그처럼 엄정하게 토벌하였는데 오늘날에는 너그럽게 받아들이니, 신은 전하께서 장차 무슨 면목으로 선대 임금께 우러러 아뢰며 후세에 할 말이 있으실지 감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시 이른바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라는 책을 가지고 조목조목 따져 보겠습니다.

 

그 말에 의하면, ‘조선의 오늘날 급선무는 러시아를 방어하는 것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없는데, 러시아를 방어하는 대책으로는 중국과 친교를 맺고 일본과 결속하고 미국과 연합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중국으로 말하면 우리가 번국(藩國)으로 자처해 왔고 신의(信義)로 교류한 지 거의 200년의 오랜 시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황제(皇帝)’요, ‘짐(朕)’이요 하면서 두 존칭(尊稱)을 태연하게 사양하지 않고 받으며 그런 말을 한 사람을 용납하고 그런 사람의 글을 받아두었다가 만일 중국에서 이것을 가지고 따지면서 시끄럽게 떠든다면 무슨 말로 해명하겠습니까?

 

일본으로 말하면 우리가 견제해야 할 나라입니다. 국경 요새지의 험준하고 평탄한 지형을 그들이 이미 잘 알고 있으며 수로와 육로의 요충지를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터에 우리의 대비가 없는 것을 엿보고 함부로 돌격한다면 어떻게 막아내겠습니까?

 

미국으로 말하면 우리가 원래 잘 모르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공공연히 그의 부추김을 받아 우리 스스로 끌어들여서 바다를 건너고 험한 길로 미국에 가서 우리 신료들을 지치게 하고 우리나라의 재물을 썼는데도 만일 그들이 우리나라의 헛점을 알고서 우리가 힘이 약한 것을 업신여겨 따르기 어려운 청으로 강요하고 댈 수 없는 비용을 떠맡긴다면 장차 어떻게 응대하겠습니까?

 

러시아로 말하면 우리와는 본래 아무런 혐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연히 남의 이간술에 빠져 우리의 위업을 손상시키면서 먼 나라와 사귀고 이웃 나라를 도발하게 하는 전도된 행동을 하다가 헛소문이 먼저 퍼져 이것을 빌미로 삼아서 병란의 단서를 찾는다면 장차 어떻게 수습하시렵니까?

 

또 게다가 러시아나 미국, 일본은 모두 같은 오랑캐들이니 후하고 박한 차이를 두기가 어렵고, 러시아는 두만강(豆滿江) 한 줄기로 국경이 맞닿아 있는데 이미 실시한 일본과의 규례를 따르고 새로 맺은 미국과의 조약을 끌어대면서 와서 거주할 땅을 요구하고 물화를 교역하기를 요청하면 장차 어떻게 막겠습니까?

 

또 더구나 세상에는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각 나라들이 서로 이 일을 본보기로 하여 땅을 요구하고 화친을 청하기를 일본과 같이 한다면 또한 어떻게 막겠습니까? 허락하지 않는다면 지난날의 성과는 다 없어지고 원수가 되며 여러 나라의 원망이 몰려들어 적이 되어버리는 것이 러시아 한 나라에 그치지 않을 것이며, 허락한다면 세계의 한 모퉁이인 청구(靑邱)에 장차 수용할 땅이 없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황준헌의 말처럼 러시아가 정말 우리를 집어삼킬 만한 힘이 있고 우리를 침략할 뜻이 있다고 해도 만 리 밖의 구원을 앉아 기다리면서 혼자서 가까이 있는 오랑캐 무리들과 싸우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이해관계가 뚜렷한 것입니다. 지금 조정에서 무엇 때문에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일을 굳이 해서 러시아 오랑캐에게는 본래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생각하도록 만들고 미국에서는 원래 계책으로 삼지도 않은 일을 계책을 삼게 하여 병란을 초래하여 오랑캐를 불러들이게 합니까?

 

그는 또 말하기를, ‘서학(西學)에 종사하고 재물 모으기에 힘쓰고 농사를 장려하는 데 힘쓰며 상공업에 힘써야 한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재물과 농공(農工)은 선왕(先王)의 좋은 제도와 아름다운 규범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위로하여 모여들게 하면서 덕을 베풀고 재물을 손상하지 말고 백성들을 해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항상 편안할 것입니다. 절약하는 것으로 제도를 삼아 먹는 것을 적게 하고 쓰는 것을 남게 한다면 재물은 항상 풍족할 것입니다. 무익한 일을 해서 유익한 일에 손해를 주지 않으며 다른 나라의 기이한 물건 때문에 본국의 재화를 천시하지 않는다면 공인(工人)들은 언제나 고무될 것입니다.

 

당요(唐堯), 우순(禹舜) 때에는 집집마다 어진 사람이 살았고 성주(成周)에서는 집에는 식량을 쌓아두고 여행할 때면 전대를 걸머지고 다녔으며 한(漢) 나라에서는 창고에 곡식이 붉게 썩어갈 정도이며 돈꿰미는 썩어났으니, 이것으로 하여 백성들은 용감하면서도 나아갈 방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선왕의 도리를 버리고 다른 묘책에 힘을 쓰겠습니까? 더욱 분통스런 것은 저 황준헌이라는 자는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면서도 일본에서 연사(演士)로 행세하고 예수를 믿어 자진하여 사문난적(斯文亂賊)의 앞잡이가 되고 짐승과 같은 무리가 되어 버렸으니, 고금천하(古今天下)에 어찌 이런 이치가 있습니까? 혹시 지난날에 법망을 빠져나간 큰 괴수가 강화도의 실패에 분격해서 병력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요행수로 차츰차츰 먹어 들어가려는 욕심을 부려서 점차로 우리를 물들이려는 간계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달콤한 말로 유인하는 것이 극도에 이르렀고 위태로운 말로 위협하는 것에 힘을 다하였는데 또 무엇 때문에 ‘예수교를 전교(傳敎)하는 것이 해롭지 않다.’는 말을 끝머리에 붙이겠습니까? 그 심보를 알 만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생각하고 판단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우선 쫓아버리고 그 책은 물이나 불 속에 집어던져 호오(好惡)를 명백히 보이며 중외(中外)에 포고(布告)해서 온 나라의 백성들로 하여금 전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 주공과 공자, 정자와 주자의 가르침을 더욱 밝혀 사람들이 모두 임금을 위하여 죽을 각오를 가지게 하며 백성들의 마음으로 성(城)을 삼아서 더럽고 요사스런 무리들이 간계를 부릴 여지가 없게 한다면 우리나라의 예절 있는 풍속을 장차 만대에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하니, 비답하기를,

 

“간사한 것을 물리치고 바른 것을 지키는 일에 어찌 그대들의 말을 기다리겠는가? 다른 나라 사람의 《사의조선책략》의 글은 애당초 깊이 파고들 것도 없지만 그대들도 또 잘못 보고 지적함이 있도다. 만약 이것에 빙자하여 또다시 번거롭게 상소하면 이는 조정을 비방하는 것이니, 어찌 선비로 대우하여 엄하게 처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이 점을 잘 알고 물러가도록 하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