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대륙조선이 가진 진정한 의미(두가지 글)

한부울 2009. 12. 11. 01:13

한국사(韓國史)와 조선사(朝鮮史)는 무엇이 다른가!

[대륙사연구회:大韓魂]06.06.02 23:22


1. 반도에 뿌려지고 식재된 조선사(朝鮮史:韓國史)는 증거문헌과 사료가 거의 없는 상고사(上古史) 부분만 잘못되고 왜곡된 것은 아니다. 정사서(정부공인 역사서)로서 시대를 대변해주고 있는 역사의 왜곡도 심각(深刻)의 수준을 넘고 있다. 이제는 반도 한정의 조선사(한국사)해설이 기득 보수층의 아집을 넘어 국경 밖 타국세력들과 부화뇌동하며 타협하는 치밀함도 생겨나 서로 맞장구 쳐주는 실정에 이르렀다. 반도에 조선사 또는 한국사의 모두를 해석·해설한 관변의 연구가들은 일찍이 반도로 한정하는 한국사 및 조선사 해설은 억지를 부려 강압적으로 수용케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반도 조선사(한국사)란 제품이 유사불량품이란 것도 알고 있었고, 반도는 조선의 일부 또는 동변(東邊)의 한 곳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또한 반도 전체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유물 유적들도 조선의 반도 출처는 맞으나, 정사서 및 사료들을 근거로 한 조선과 한국 나라들의 제품이 아니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열도의 천황사를 지켜주기 위해 열도의 스승 및 사학자들의 보호 하에, 반도로 국한되는 해설의 조선사만 고수하였다.


즉 원전(原典)에 쓰여져 있는 정체의 조선과 한국을 해설하지 않고 1930년대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불량제품을 정품으로 만들기 위해 색칠하고 포장하는데 더 많은 정열을 쏟았다. 이러한 학문체계와 맞물린 기득의 사회 구조는 결국 반도에서 조선사(한국사)를 국사로 배우는 구성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지 못했고, 역사를 통해 배양되는 개척정신과 다물 사상의 설자리도 잃게 하였다. 지금 반도의 남쪽사회가 좌표와 목적 없이 표류하는 원인 중 하나는 왜곡된 한국역사의 전파가 크게 한 몫하였다는 것을 간과(看過) 해서는 안된다.


2, 정사서를 근거로한 한국(韓國)의 한(韓)은 칸(干:汗)과 왕(王:皇帝)의 뜻이고, 국(國)은 위수 지역 및 강역·통치영역을 의미한다. 조선(朝鮮)은 동방의 동국(東國)·동주(東州)의 뜻을 가지고 있고, 동국사(東國史) 또는 해동(海東)의 역사 무대로 병칭 된다. 조선의 8도(八道)란 한국이자 왕국(王國)을 제외한 전역을 의미하고, 조선의 9한(九韓)이란 9주(九州)로서 한국을 포함한 조선의 전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강역적으로 조선에는 한국이 포함될 수 있으나 한국에는 조선이 수용되지 않는다. 조선 전역의 권력·문화·문명이 한국으로부터 시작됨은 분명하다. 역사에서 조선 8도란 8개의 지방행정 구역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의 9한중 왕도(王都) 및 경성(京城)이 있고, 중앙의 한국을 중심축으로 8방향(八道,八域)으로 이어진 조선 강역을 말한다.

여기에 한국이 합쳐지면 정전(井田)의 조선 9주도 만들어진다.


역사의 조선왕국 또는 조선의 왕국이란 곧 한국(韓國)을 뜻하며, 조선왕조란 한국의 왕실과 조정을 의미한다. 오직 한국에만 왕조(王朝)가 있고, 그 밖의 8도(八道:八域)에는 없다.모두 제후와 열후로 채워지는 8역(八域)의 지방정부가 한국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8방향의 중앙(中央)인 한국에 경(京)과 기(畿)가 있고 경기의 중심에 경성 또는 왕부·왕도로 별칭되는 한국의 왕실과 조정과 있었다. 대체로 정사서에 의한 한국이란 왕성지역과 경기가 포함되는 한성부(漢城咐)지역을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한 한국의 영역은 외곽의 8도 지역을 제외하고도 동서가 1,140리, 남북이 2,450리의 광역이었다. 한국은 조선의 9한(9州)중에 유일무이한 지존의 칸국이었고, 8방향(八域)의 중심에 있었던 나라겸 왕국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중국(中國)이 된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란 정사서의 정체는 조선의 8도 지역(八域)을 제외한 한국(韓國)의 역사서로 한정된다. 중국으로도 불리웠던 한국 왕실과 조정의 동정을 편년체로 기술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이며 한성부 범위를 넘지 못한다. 조선의 8도 지역에는 일본(日本)·오월(吳越)·말갈·여진의 나라들과 여기서 파생된 크고 작은 나라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 조선이자 동이(東夷)의 백성들을 자처하며 한국(中國)을 향해 충성을 다하면서 자리를 보존하고 있었다.


한국의 백성들이자 조선의 한성부 지역 및 경기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조선인들 중에 중국인(中國人)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을 벗어난 8도 지역의 조선백성들은 조선인은 될 수 있어도 한국인 및 중국인은 될 수 없었다. 따라서 16세기말 풍신수길이란 군벌이 정한론(征韓論)을 이유로 부산과 동래(東萊)를 함락하고 왕성을 점령했다는 임진왜란의 진실은, 조선의 군벌이 조선의 왕국인 한국이자 중국(中國)의 실질 권력자가 되고자 반란을 일으켰다는 뜻이 된다.


즉 이시애·이징옥·이괄의 반란성격과 다르지 않다. 임진왜란때 풍신수길의 군대가 입구(入寇)한 곳도 한성부 또는 한국(中國:王國)의 부산과 동래였으며 한국의 외곽이자 조선 8도 변방의 부산과 동래를 침공한 것은 아니였다. 한국(왕국)이 중국(中國)이 될 수 있고 한성부 및 경기가 중국이 될 수 있는 근거는 훈민정음의 제자해(製字解)에 등장하는 이호중국(異乎中國)의 이면성에서 찾으면 있다.


3, 현제 황제 중심으로 엮어진 중화사(中華史)는 칸(干)의 제국 역사인 한국사의 기형이고, 천황 중심으로 서술된 일본사(日本史)는 조선사의 일부 변형과 변태의 모습이다. 동국(朝鮮)의 경주도(東京) 변질이 왜(倭)이고, 중화와 대화(大和)의 원형질은 칸의 역사인 한국사(韓國史)이다. 중조(中朝)와 성조(聖朝)의 어머니는 한(韓)이 조정이고 태반이 한성부(漢城付)였다. 


중화와 9주(九州)는 조선의 9한(九韓)을 모방한 유사품이고, 중국사의 천부(天府)는 왕검성과 신시(神市)의 아들이며, 또한 한성부와 경성(京城)의 이복 동생이다. 천자(天子)와 황제의 상징을 두리뭉실 합성한 일본 천황사는 조선의 왕국(칸의 나라) 역사를 분가시켜 해설한 것이며, 동경(東京:토오쿄)은 한국의 서울과 서라벌의 다른 한자 표기일 뿐이다. 일본사 이자 대화사의 터전인 동경은 한국사이자 중국사, 조선의 왕국사가 태동한 한성부와 송도(개성)였고, 신라의 왕경(王京)·백제와 공주(公州)와 광주(廣州)·고구려의 기주(冀州)·발해의 동경용원부 였다는 것도 알아두자.


조선의 왕국 역사이자 한국의 역사를 현대륙 전체로 굴려 확산시킨 것이 현재의 대륙중화사이고, 궁예의 태봉국(泰封國)과 대조영의 발해국 일부, 신라의 5경중 동경(東京)이 역사를 열도에 다림질 한 것이 일본사다. 중화사의 전부와 일본사의 모두는 한국에 예속된 조선의 8도(팔도:八域)를 터미널로 정하여 만나고 출발하며, 조선의 왕국사이자 칸의 제국역사인 한국사(韓國史)란 슈퍼컴퓨터에서 조종된다.


한국사의 태반이었던 한성부(漢城府)지역은 하동남로 (河東南路)인 현재의 하남성 낙양과 개봉 지역을 정점으로 하였다. 이곳은 송도(松都:宋都)·공주·광주(廣州)였고 시림(始林)과 시평(始平)지역이기도 하였다. 반도의 관변 사학자들과 열도의 어용사학자들이 조선사 (한국사)의 근원지를 반도로 고집하고 아무리 억지를 써도, 삼국사기·고려사·조선왕조실록이란 정사서를 근거로 하여 자리잡을 칸의 제국인 한국과 조선의 왕국지역은 현재의 하남성(河南省)지역과 황하유역을 떠날 수 없다. 조선의 8도 지역도 하남성(한성부)에서 8방향 8도 지역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광역으로 퍼져 나갔다. 반도로 한정될 한국과 조선8도는 처음부터 없었다.


조선의 중앙에 있어 중국(中國)이었고, 또한 조선의 왕국이기도한 한국(韓國)은 현 대륙의 중원(中原)에서 시종(始終)을 같이 했다. 따라서 황하 문명이란 한(漢)의 문명이 아니라. 한국(韓國)과 조선의 문명이라는 것도 신지식으로 알아두자. 또 삼국지의 위·촉·오의 혈전도 대륙 중원과 황하지대에서 고구려(위)·신라(오) ·백제(촉)의 분쟁역사의 일부를 윤색하여 대륙전체로 확산시켜 놓은 것으로 보면 된다.


조선사와 한국사에 등장하는 한강(漢江)·대동강(大同江)·낙동강(洛東江)·요수(遼水)·백강(白江)·압록강은 모두황하의 별칭과 이칭으로 현 대륙의 황하지대인 조선 강역에서 한국사 및 조선의 왕국사와 만날 수 있다. 이곳에 한성부→개경(송도)→동경→광주(한성)→평양→왕검성으로 이어지는 한국사의 터전인 낙양과 개봉이 있다.


하남성과 황하를 기준으로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펼쳐놓으면, 중국인 한국과 조선왕국을 향해 충성을 다했던 근세조선의 4백여 제후국과 고려의 5백80여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들의 나라를 만날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大韓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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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韓國史)와 조선(朝鮮)의 정체

[대륙사연구회:백두대간]03.07.20 01:11


조선(朝鮮)의 명칭이 변형된 현대용어가 동양(東洋)이다. 인도의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타고르」가 조선을 일컬어 동방의 등불(불빛)이라고 했으나 그가 말한 조선의 지칭은 한반도를 한정한다고 하지 않았다. 또한 한반도는 조선의 일부 또는 변방에 불과 했었다.

 

「후한서」에 보면 동방(東方)을 이(夷)라 했으므로 반도 한정의 동이(東夷)는 정착되지 않는다. 동방은 곧 동국(東國)과 동주(東舟)의 뜻으로 호전되며, 동국은 천하(天下)의 사방을 지칭하는 사해(四海)의 동해(東海)와 천하의 동쪽이란 뜻인 해동(海東)으로 쓰여진다. 동해와 해동의 뜻이 역사에서 해수면(海水面)의 바다와 연계되어 '바다건너의 동쪽, 바다의 동쪽, 동쪽의 바다'란 의미와는 조금도 연관되지 않는다.


Ω 우리가 동양(東洋)이라고 한자로 표기할 때 대양(大洋)의 큰 바다를 의미하는 글자를 차용하여 쓰면서도 바다(Sea,Ocean)의 뜻이 아닌 '거대한 육지인 대륙(大陸)'을 의미하듯이 동해(東海)역시 동양과 다르지 않다. 어디를 기준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체로 중앙아시아의 천산산맥 이동(以東)을 동양이라고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듯싶다. 동양은 곧 동해와 동방(東方:東邦)의 뜻과도 다르지 않고, 넓은 의미로 확대 해석하여 동국(東國)의 조선(朝鮮)과도 다르지 않다. 당태종 이세민을 따라 고구려를 원정했던 돌궐장군 아사나두이(阿史那杜爾)의 '아사나'가 아사달의 조선과 같은 의미로 쓰여졌다는 것을 볼 때, 한반도 한정의 조선은 곤란해진다. 동방과 조선의 단순한 한자 표기가 금(金)이였다는 것을 감안하여 아사달·알타이·아사나로 연계시킨 조선의 의미는 현 대륙 전체로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열도의 아시히(朝日地)가 조선이자 아사달의 변형이라고 볼 때, 옮겨진 아사히라 해도 열도 역시 조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조선의 어원과 뜻을 같이하는 동방·동해·동국·동양(東洋)의 생성은 조선에서 변형된 표기로서 중국(中國)과 한국(韓國)의 권력부 존재 유무와는 관련이 없다. 즉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권력중추부 존재 및 제도와 규범의 정착으로 왕국 중심으로 사방(四方)과 사해(四海)라는 천하의 의미도 사용되었으나 사해의 개념도 일정한 경계 설정의 범위는 없었다. 중심으로부터 사방이란 막연한 뜻이 들어가 있는 추상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대륙사에서 천하를 통일했다, 또는 사해(四海)를, 중국(中國)을 완전 장악했다는 왕조중심 정치사의 어정쩡한 기록들은 현재의 정치적 중화 인민 공화국 전역을 통일했다는 의미는 없다. 단순히 조선의 한국(韓國)에 해당하는 중원(中原)지역을 통일하고 장악했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


조선이란 의미 속에 일본·한국·중국이 포함되기는 하나 구체적으로 열도·반도·대륙으로 구분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칸(대왕)의 역사인 조선의 한국사는 천황사나 황제사 보다는 우선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서양(西洋)의 대칭으로서 동양의 의미는 한자(韓字:漢子) 문화 ·문명권으로 한정되기는 하나 중국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오늘날 한자(漢字)로 쓰여지면서 한족(漢族)들이 만들어낸 글자인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한자를 집대성 해놓은 강희자전(康熙字典)의 절운(切韻)체계에 따른 글자의 발음법을 보면, 한자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한족(漢族)이 아닌 조선의 왕국인 한국(韓國)인 들임을 알게된다. 또한 조선의 대왕이자 한국왕 이었던 장헌대왕(세종)시대에 만들어 졌다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진실도 한자(漢字)의 올바른 발음체계의 통일을 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반도로 한정되는 고유의 글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자음과 모음 28자를 서로 결합하여 한자의 발음체계를 완성한 발음부호(기호)들을 일컬어 '한글'이란 본래 뜻도 조선의 대왕국인 한국(韓國)에서 만들어낸 글이란 뜻이다. 제자해(製字解)에서 이호중국(異乎中國)으로 표기하며 '중국과 발음의 형태가 달라서'의 중국은 곧 조선의 대왕국인 한국을 말하는 것이 된다.


조선왕조실록에 세종(世宗)을 장헌대왕(大王)이라고 한 것을 보면, 한국(조선의 왕국)에 황제와 천황을 능가하는 대칸(大汗:대왕)이 있었고, 한국의 예속 지역인 조선8도 지역(八城)에 수많은 제후왕과 열후왕이 있었음도 증명해준다. 세종은 한국을 중심으로 조선영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조선의 왕국(한국, 중국)에서 통용되는 한자발음 체계에 따른 부호를 배우고 익히게 하여 조선내의 문자인 한자는 그대로 두고 발음하는 언어통일을 시도했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한자(漢字)라고 쓰여지는 표현은 한국과 조선왕국의 문자로 표기하여 대왕국의 한자(韓字)로 함이 옳고, '한글'은 대왕국(중국)의 한자(韓字) 발음부호(기호)체계를 한국 밖 또는 제후국의 전파로 보면 정확히 맞는 해설이 된다. 누가 뭐라 해도 한족(漢族)의 한(韓)나라가 한자(韓字)를 만들 일은 없었다. 한(韓)이라는 글자가 황(黃)과 통하여 중토 및 중주의 뜻은 가지고 있으나 왕국(한국)으로서 중국(中國:Central Kingdom)으로의 이면성은 가지고 있지 않다.


당연지사 한자(韓字)를 만든 한국(조선의 왕국, 중국)에서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발음부호를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며 권력 중추부에서 만들어 보급해야 나라의 곳곳으로 퍼질 수 있는 위력도 가지는 것이다. 왕이 있는 왕도 및 왕부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러 방면으로 실력이 있는 자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문화·문명의 중심과 축도 된다. 한글을 언문(諺文) 또는 암글이라고 표현한 것도 '쉽고도 널리 쓰여지는, 동방의 한자(韓字) 발음' 이란 사회적 보편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특별성이나 비하성의 의미는 없다. 한글이 한자의 발음체계를 부호화 한 것이기 때문에 사대부(士大夫)는 제외되고 서민·하류층·여인(女人)들의 전용 글자로 해석됨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문화적으로 동양(東洋)이 갖는 속뜻은 여러 가지로 간추릴 수 있으나 한자(韓字:漢字)를 문자로 사용하는 황인종들이 사는 곳으로 정의를 내려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한자의 원조인 갑골문(胛骨文) 출토가 황하지대의 중원에서 주로 나왔고, 주로 은(殷)나라의 유허지란 곳으로 한정된다. 기자(箕子)의 전신에 해당된다. 서역 출신인 서주의 무왕(武王)은 은나라를 멸했다고 했고, 기자는 새로운 조선 왕국의 왕이 되었다고 하였다. 기자는 새로운 조선왕국의 왕이 되었다고 하였다. 조선과 서주(西周)사이는 1천리로서 사이에 송(宋)과 은의 옛 서울이 있었다고도 하였다. 또한 이후에 조선의 왕국이자 한국은 변함없이 대륙의 황하지대에 있었고 나라별 왕도 및 도성의 명칭만 달리 했을 뿐 꼼짝없이 중원의 중국이자 대왕(대칸)의 왕국 지역에 있었다. 즉 한자의 원조로 판명된 갑골문 파편이 많이 출토된 황하의 중류지역(하남성)에 있었다. 이곳에서 조선의 장헌대왕(세종)시대에 한자를 발음하는 부호가 글자화 되어 사통팔달(四通八達)로 퍼져 나갔다. 현 대륙의 동방과 반도와 열도도 조선의 범위 내에 있었기 때문에 세종 시대에 정한 한자발음 체계의 훈민정음은 조선의 전역으로 퍼져 나갈 수 있었다. 조선의 반도와 열도로서 훈민정음의 한자발음 체계가 전파될 수 있었고, 심각한 방언도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방언(사투리)의 사용은 현재의 경우에서 보듯이 사라지지 않았으나 모두 한자를 사용함은 같았다.


열도 일본의 가나와 대륙의 북경관어를 비롯한 10개 이상의 큰 방언은 모두 조선의 대칸(大汗)이자 세종시대에 만들어져 보급된 한자의 한국(韓國) 사용의 발음체계인 '한글' 의 또 다른 방언표기의 흔적이다. 특히나 지금의 북경관어(보통화)는 정확한 발음체계의 부호(기호)를 창안해 내지 못하여 '영어의 알파벳'을 빌려 대신사용하고 있는 것이 처량할 정도다. 이 말은 곧 한자(韓字:漢字)를 발음하는 부호로 가장 훌륭하고 멋진 한국(韓國)의 훈민정음 체계를 조선의 왕국사이자 한국사의 반도 이동과 함께 조선의 왕국이 있었던 중국(한국, 하남성)에서 왕조의 실록과 함께 옮겨 놓았기 때문에 현재의 대륙에서 활용 될 수 없었다.


근본적으로 동양과 조선이 같고, 동국과 동해(東海)가 같으며, 조선의 왕국이자 한국의 개념이 역사의 중국(中國)과 같다. 우리가 시급히 바로 잡아야 할 것은 반도와 열도는 조선의 대 영역 중 일부에 해당하고 대륙 전체 역시 조선(朝鮮)으로 있다가 동양(東洋)이란 표기로 변했다는 것과, 한국과 조선왕국의 다른 표기이자 조선의 중앙부에 있었던 나라가 역사의 중국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자는 것이다. 또한 오랜 옛날부터 조선의 왕국지역에서 한자가 만들어져 사용되었고, 이곳에 있었던 대칸(대왕)의 한국에서 한글도 만들어져 널리 활용되었음을 한국사의 신지식으로 알아두자.[백두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