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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쇼군'에 허리굽힌 '일왕' 히로히토

한부울 2009. 11. 21. 22:54

미국인 '쇼군'에 허리굽힌 '일왕' 히로히토

[유코피아] 2009년 11월 21일(토) 오전 11:08

 


지난 14일 일본 방문 중 일왕에게 거의 90도로 허리를 굽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주일 넘도록 미국 언론으로부터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 보수 공화당은 물론 친 오바마 진영에서조차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것. 64년 전 맥아더의 사진과 너무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맥아더는 어떻게 일왕과 사진을 찍었을까.


현대사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이 컷은 맥아더가 직접 기획하고 연출한 사진이다. 그의 지시대로 한 미군 병사가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 일본의 역사를 짓눌러 버렸다. 그것도 반세기가 넘게 일본인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했으니 한 컷의 위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사진은 패전국 일본의 왕이 점령군 사령관 앞에서 예를 갖추고 있는 장면이다. 1945년 9월 27일이다. 원래는 히로히토가 거의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있는 것과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한 것 두 컷이 있었다.


일본이 강력한 로비를 펼쳐서인지 언제부턴가 '90도 일왕'은 미국과 일본의 기록물에서 자취를 감췄다. 복장도 극히 대조적이다. 히로히토는 연미복을 빼입었지만 맥아더는 넥타이도 안맨 채 장교 평상복 차림이다. 일왕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반면 맥아더는 뒷짐을 진 듯한 모습이다.


맥아더는 사진의 기획단계부터 철저하게 손익을 계산했다. 어느 누구도 일왕과 접촉해선 안 된다는 엄명을 내리고는 히로히토가 스스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린 것. 맥아더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히로히토는 맥아더가 도쿄에 들어온지 거의 한 달이 돼가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자 그야말로 바늘방석이었다. 차라리 미군 헌병이 들이닥쳐 수갑을 채우면 체념이라도 할텐데 그도 저도 아니어서 좌불안석이었던 것.


참다 못한 히로히토는 결국 자기 발로 맥아더를 찾아갔다. 일본 역사에서 왕이 재위 기간 중 궁 밖을 나간 건 2000 년 만에 처음 있는 '대사건'이었다. 기획이 성공하자 맥아더는 곧바로 연출에 나섰다. 일왕을 맞이한 인물은 영관급 장교에 불과한 군의관. 맥아더 주치의였다. 가뜩이나 위축된 일왕을 기까지 꺾어놨다. 그러니 허리를 굽힐 수밖에.


사진은 다음날 전세계 신문의 1면을 덮었다. '살아있는 신' 히로히토 보다 훨씬 센 맥아더. 일본인들은 그제서야 현실이 파악됐다. 맥아더에게 붙여준 타이틀은 '가이진 쇼군'(외인 장군). 절대권력을 휘두르게 된 맥아더는 즉각 일본사회의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사진 한 장이 이처럼 역사를 뒤바꿔 놓은 것이다.


그의 카리스마 통치는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위력을 발휘했다. 맥아더가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을 모두 빼내 한반도로 보내자 워싱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미군이 없는 틈을 타 일본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맥아더는 "쇼군의 등에 칼을 꽂을 사무라이는 없다"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무장 봉기는커녕 미군을 타겟으로 한 테러조차 없었다. 맥아더가 보직해임돼 귀국하던 날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길가엔 100만 명의 인파가 몰려 '쇼군'을 배웅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아예 찬미가를 썼다. "장군이여, 장군이여, 진정 가십니까. 당신이 뿌려 놓은 씨앗은 이제 싹이 터 일본의 들녘을…." 2009년 11월 14일. 이번엔 미국의 군 최고통수권자가 일왕 아키히토 부부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사진에서 본 일왕은 미소를 잔뜩 머금은 모습이었다. 아버지 히로히토가 당한 설움을 이제야 되갚음했다는 표정이라고 할까. 그동안 미국 앞에만 서면 한없이 오그라들었던 일본. 나라 안팎의 어려움으로 인해 미국의 기력이 약해진 틈을 타 일본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진은 이런 현실의 냉혹함을 담아낸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 방문 중 오바마는 자신을 미국 최초의 '태평양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쇼군'이 카리스마를 앞세워 일본을 통치하던 시절의 미국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여 무상함을 느끼게 해 준다. 미국은 정녕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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