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고려를 잉태하게 한 호과(胡瓜), 오이(黄瓜:Cucumber)

한부울 2013. 1. 1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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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잉태하게 한 호과(胡瓜), 오이(黄瓜:Cucumber)

 

글쓴이:한부울

 

即黄瓜。 北魏 贾思勰 《齐民要术·种瓜》:“种越瓜胡瓜法:四月中种之。胡瓜宜竖柴木,令引蔓缘之。” 明 李时珍 《本草纲目·菜三·胡瓜》:“ 张騫 使 西域 得种,故名胡瓜。按 杜寳 《拾遗録》云: 隋 大业 四年避讳,改胡瓜为黄瓜。” 明 李时珍 《本草纲目·菜三·胡瓜》﹝释名﹞引 陈藏器 曰:“北人避 石勒 讳,改呼黄瓜。”参见“ 黄瓜 ”。

 

黄瓜是由西汉时期张骞出使西域带回中原的,称为胡瓜,五胡十六国时后赵皇帝石勒忌讳“胡”字,汉臣襄国郡守樊坦将其改为“黄瓜”。

 

오이를 황과(黄瓜)라고 한 이유는 서한(西漢)시기에 장건(張騫)이 사신이 되어 서역(西域)에서 호과(胡瓜)라 칭하는 것을 가지고 돌아 왔는데 5호16국(五胡十六国)시절 후조황제 석근(石勒)이 “胡”자를 기피하여 번탄(樊坦)군수가 황과(黄瓜)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왜 호(胡)를 기피하였을까?

 

그래서 다시 호(胡)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호두(胡桃 Walnut-Juglans regia)와 마찬가지로 이 오이, 호과(胡瓜)역시 장건(張騫)이 서역(西域)에서 얻었다 하였다.

호(胡)는 물량이 풍부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나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国)은 결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동양인(東洋人) 또는 아시아인이라고 하는 즉 몽골리안(Mongolian)들이 주축이 된 역사 형국이 아닐 것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하겠지만 오호십육국은 동서양(東西洋)인을 가름하지 않는 상태에서 호수 호(湖)의 물수(水)를 뺀 호(胡)의 근원지가 오대호(五大湖)라는 것이고 그 근역에서 활동하던 16개 세력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호(胡)는 아메리카대륙으로부터 출발하는 문자임을 확신한다.

호(胡)영역은 본래부터 물량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지며 사시사철 온화한 날씨가 지속되기 때문에 인간이 가장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가진 곳일 것이고 예측할 수가 있다.

그곳이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이라는 사실이다.

북아메리카는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천혜(天惠)의 땅이었음을 숨길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차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과거 일제 두목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가 옛 조선(朝鮮)의 영광(榮光)은 위대했고 찬란(燦爛)했으며 찬영(燦榮)했다고 하였듯이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역시 그의 저서에서 조선(朝鮮)의 땅은 꿀과 젖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였다.

왜 이러한 사실을 모른 척 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

과거 불명확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보자는 것이다.

 

장사꾼인 독일인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1832-1903)가 무엇이 아쉬워 이렇듯 빈 소리를 하였겠는가?

1866년 8월 2차로 조선을 방문할 때 기록한 것을 토대로한 기행문, 금단의 땅 코리아(A Forbidden Land Voyage to the Corea)에서 그가 조선을 한마디로 표현한 어구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land of milk and honey)"으로 그렸다는 사실이고 그것도 부족하다 하여 "조선은 온 세상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을 만큼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쿠빌라이 칸의 대몽고제국 이래로 가장 눈부신 동양문명을 일구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새겨야 할 이야기다.

대몽고제국역시 반도역사는 다르다고 하고 있지만 조선(朝鮮)과 끈을 연결하지 않을 수 없는 제국임을 앞선 글에서 수차 반복하여 설명했다.

 

이 대몽고제국을 현재 서양인들이 타타르(Tatar)라고 공히 칭하기도 하지만 콜럼버스가 16세기 때 마침 신대륙을 탐험하기 위해 만든 16세기 착각지도를 보면 타타리아(Tartaria)의 영토를 지금의 시베리아를 포함한 동아시아대륙 전체와 특이하게도 현재 태평양을 육지로 보아 북아메리카대륙과 합쳐진 상태에서 북아메리카북부까지의 그 넓은 영역으로 표시한 것을 목격할 수가 있다.

이 거대한 영역을 서양인들이 당시부터 타타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을 동몽고(東蒙古)라고도 하였다.

또한 북아메리카 서중부는 카타이(Catai)가 지배한 것으로 나오며 북아메리카 남부는 망기(Mangi, 蠻, mong) 라고 하여 몽고(蒙古)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텍사스주, 휴스턴(Houston)이 몽고성(蒙古城)이라는 사실도 주지해야 할 일이다.

 

휴스턴(Houston)은 몽고성(蒙古城)이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35

 

성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Canaan)을 현재는 이집트와 소아시아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지중해 동해안지방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실증된 것은 없다.

나는 감히 짐작컨데 캘리포니아(金州:California)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는데 오페르트가 조선의 땅을 똑 같은 표현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표현했다.

그가 잘못보고 미친 짓거릴 했다는 것인가?

헛소릴 한 것인가?

아니다.

명백히 그는 "조선은 온 세상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을 만큼 천연자원이 풍부하다.."라고 분명하게 언급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곳이 한반도인가?

천만에 말씀이다.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이라는 말이다.

그곳에 물자가 풍부하고 사람이 살기 가장 적합한 곳, 그곳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이고 바로 호수 호(湖)에서 벗어나 호(胡)를 달았을 수도 있었던 곳임을 우리는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부정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지금까지 본 블로그가 생물학적 토대로 분석한 것에 따른다면 분명한 사실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많다 하겠다.

북아메리카대륙에 콜럼버스가 발을 딛기 전에 어떠한 문명의 역사도 일체 없었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앞 페이지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콜럼버스는 근원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황금(黃金)과 그것이 주는 탐욕(貪慾)에 눈이 멀어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고 괴롭혔던 무도한 자이다.

때문에 실제 그 이상 무슨 짓을 했을지 알 수 없는 건달일 뿐이다.

그의 말과 그의 기록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것인가?

북아메리카대륙에 콜럼버스가 첫 발을 디디기 이전부터 유구한 역사가 북아메리카대륙에 숨을 쉬고 있었다고 해야 맞다.

이미 그곳에 쿠빌라이 칸의 흔적이 있었던 곳이라고 해야 맞다.

고려제국의 대왕(高麗大王) 쿠빌라이 칸의 원(元)이 조선이니 조선호국(朝鮮胡國) 즉 조선(朝鮮)이 그 땅을 물려받았던 것이 틀림이 없다.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호는 조선과 함께 해야 할 지칭이며 호(胡)는 북아메리카를 대칭한 것이라고 보아야 맞다.

 

자 이제 오이를 보자.

 

해동역사(海東繹史) 에서 성경통지(盛京通志)에

○ 고려의 오이는 형체가 둥글면서 맛이 있어서, 중국에서 나는 것과 같다.

 

고려를 잉태하게 한 오이(黄瓜:Cucumber)라고 하여 고려 오이라고 한 내력이 아래 나온다.

세종지리지 영암군(靈巖郡)편에 보면 고려 때 사람 최씨의 경원 가운데에 오이 하나가 열렸는데, 길이가 한 자나 넘었으므로, 온 집안사람들이 자못 이상하게 여겼었는데 최씨의 딸이 몰래 이것을 따 먹었더니, 저절로 태기가 있어,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으며 이 사람이 바로 미리 예견하고 고려 왕건(王建)이 나라를 세운다는 풍수서 도선비기(道詵秘記)를 쓴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 도선(道詵:827-898)이라 하였다.

 

해동역사(海東繹史), 성경통지(盛京通志)에서 고려(高麗)오이는 형태가 둥글다 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먹고 알고 있는 길쭉한 오이형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오이를 형태적으로 살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해동역사에서 고려 오이가 둥글고 맛이 있다했기 때문이다.

오이가 어떻게 둥근가?

둥근 오이는 우리가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이 맛이라고 하니 오이가 특별하게 맛이 있는 채소인지 판단이 안선다.

 

調氷解渴功尤妙 얼음에 타면 해갈의 공이 더욱 뛰어나니

不數江南荔子漿 강남 여자의 단물은 세잘 것도 없고말고

 

그런데 위는 사가시집에 오이 즉 황과(黃瓜)를 읊은 시에서 오이를 얼음에 타 먹으면 해갈에 뛰어나다 하였으며 더 나아가 강남(江南)의 여자(荔子)처럼 단맛이 있다고 하였다.

 

여지(荔枝, Litchi)

 

荔枝树的果实。 唐 韩愈 《柳州罗池庙碑》:“荔子丹兮蕉黄,杂肴蔬兮进侯堂。” 宋 苏轼 《与吴秀才书》:“又致酒麵、海物、荔子等。僕岂以口腹之故千里劳人哉!” 清 金农 《咏频婆果》之二:“翻恨 炎州 鲜荔子,秪目风露不同生。”

科學分類

域: 真核域 Eukarya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雙子葉植物綱 Magnoliopsida

目: 無患子目 Sapindales

科: 無患子科 Sapindaceae

屬: 荔枝屬 Litchi

種: 荔枝 L. chinensis

 

위 글에서 강남(江南)의 여자(荔子)는 무환자과(無患子科:Sapindaceae)의 교목인 달콤한 맛과 향을 풍기는 여지(荔枝, Litchi)의 열매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이가 단맛이 나는가?

그렇지 않다.

 

Cucumis melo L. MELON Cantaloupe

 

 

그래서 나는 고려 오이는 같은 오이속(甜瓜属, Cucumis)인 메론(MELON)이라고도 생각해본다.

이 단 맛 때문에 고려를 잉태한 최씨(崔氏)딸이 고려 오이 즉 메론(MELON)을 먹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오묘할 정도로 맛이 있었다고 한다면 같은 오이속(甜瓜属, Cucumis)인 게르킨 오이(Gherkin)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태기가 있다는 것은 산모가 대체적으로 메스꺼움이나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피로감을 덜어주기 위해 신 것을 찾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여기에 비유한다면 신 맛과 비유된다.

이 열매는 열대 아메리카산 오이의 일종으로 작고 달콤하거나 피클로서는 시큼한 절임 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에서는 피클로 게르킨 오이(Gherkin)와 딜 씨(Dill Seed)로 맛을 내는데, 달콤하고 순한 향미를 내기 때문에 딜 피클(dill pickle)이라고 한다.

사전에 보면 서인도(WEST INDIAN)가 원산인 이 오이는 겉은 아삭아삭하고 안은 부드러우며 혀를 알알하게 하는 신맛과 단맛의 조화를 보여준다고 사전에 적고 있다.

실제 오묘한 맛이 있는 열매이다.

 

Cucumis anguria L. WEST INDIAN GHERKIN

 

 

또한 외형적으로 생각해 볼 때 왜 오이를 호과(胡瓜)라 하면서 황과(黃瓜)라 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왜 호과(胡瓜)라고 했을까?

장건이 서역에서 구해 왔기 때문에?...천만에 그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아메리카에서 자생한 것이기 때문에 호과(胡瓜)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노랗다고 황과라 했을까?

꽃이 노랗다고 해서?

꽃이 노랗다고 하여 황과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드시 열매가 노랗거나 누렇다는 사실 때문에 황과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오이가 누런 것인가?

아니다.

단맛도 아니고 둥근 것도 아니고 누런 것도 아니다.

그럼 고려 오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최씨 딸이 먹고 태기가 있었다고 하는 오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오이는 서아시아에서 3000년 전부터 재배되고 있었다는 점 등 때문에 인도(印度)가 원산으로 여겨진다고 하고 있다.

이 인도(印度)가 어디란 말인가?

서인도인가 동인도인가?

동서인도를 나눈다는 것은 합쳐 생각할 때 인도는 세계대제국임을 알게 한다.

아시아대륙의 인도아대륙인가?

아니다.

근대사에서는 오이는 인도에서 그리스, 로마로 전해졌고 로마에서 유럽으로 오이를 전파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으며 또 동쪽으로도 중국을 통해 동아시아로도 전해졌다고 하고 있다.

현재 인도를 인도로 본다면 그럴 듯한 이야기다.

 

세종지리지-오이 토산지

전라도(全羅道) 나주목(羅州牧) 영암군(靈巖郡)

 

이 호과(胡瓜)라고 하였지만 5호16국(五胡十六国)시절 후조황제 석근(石勒)이 “胡”자를 기피하여 황과(黄瓜)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왜 호(胡)를 기피하였을까?

 

호과(胡瓜)를 꺼려하여 황과(黄瓜)라 한 이 오이가 고려 오이에 이어 세종지리지에서 전라도(全羅道) 나주목(羅州牧) 영암군(靈巖郡)에서 자생했다고 하고 있다.

그곳이 서역인가?

게르킨 오이(Gherkin:WEST INDIAN GHERKIN)가 생장한 곳이라면 분명 더운 곳 일게다.

그리고 그것을 고려를 잉태하게 한 오이(黄瓜:Cucumber)라고 하였을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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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암군(靈巖郡)

靈異, 郡人諺傳高麗時人崔氏園中, 有一, 長尺餘, 一家頗異之。 崔氏女潛摘食之, 歆然有娠, 彌月生子。 父母責以無人道而生兒, 置之于竹林, 居數七日, 女往視之, 有鳩來覆翼之, 告于父母, 往見異之, 撫養。 及長, 祝髮爲僧, 名道詵。 《周官》《六翼》云: “道詵入唐, 傳得一行禪師地理之法而還, 踏山自白頭山至鵠嶺, 因過世祖宅, 見其新搆處, 乃曰: ‘種穄之地【鄕言穄, 與王音異意同故云。】何種麻耶?' 言訖而去。 夫人聞而入告世祖, 倒屣追之, 及見, 如舊相識, 請與同遊, 共登鳩嶺, 究觀山水之脈。 詵上觀天文, 下察時數曰: ‘此地脈, 自壬方白頭山水母木幹來, 落馬頭明堂, 宜從水之大數, 作宇六六爲三十六區, 則符應天地之大數。 若依此訣, 必生聖子, 宜名曰王建。' 因作實封一道, 外封云: ‘謹奉書百拜, 獻于未來統合三韓之主大原君子足下。' 世祖卽從密訣, 造屋居之, 明年, 果誕太祖。

이상한 일[靈異]. 본군 사람의 속설에 전하기를, “고려 때 사람 최씨의 경원 가운데에 오이 하나가 열렸는데, 길이가 한 자나 넘었으므로, 온 집안사람들이 자못 이상하게 여겼었다. 최씨의 딸이 몰래 이것을 따 먹었더니, 저절로 태기가 있어,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부모가 아비 없는 자식을 낳았다고 꾸짖고 대숲[竹林]에다 버려두었는데, 예니레 만에 그 딸이 가서 보니, 비둘기가 와서 날개로 이를 덮고 있었다. 부모에게 여쭈어 가서 보이니, 이상하게 여겨서 데려다가 길렀다. 장성하게 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이름을 도선(道詵)이라 하였다.” 한다. 《주관육익(周官六翼)》에 이르기를, “도선이 당(唐)나라에 들어가서 일행 선사(一行禪師)에게 지리법(地理法)을 배워 가지고 돌아왔다. 산(山)을 답사(踏査)하는데, 백두산(白頭山)에서 시작하여 혹령(鵠嶺)에 이르러 세조(世祖)의 집을 지나다가, 그 새로 집짓는 곳을 보고 이에 말하기를, ‘피[穄]를 심을 땅에【우리말에 피[穄]와 임금[王]은 음(音)이 다르나, 뜻이 같은 까닭이다. 】어찌 삼[麻]을 심는고.’ 하고, 말을 마치자 가니, 부인이 이 말을 듣고서 들어가 세조(世祖)에게 고하였다. 세조가 황급하여 신을 거꾸로 신고 뒤쫓아 가서 만나보니, 옛 부터 서로 아는 듯하여 같이 유람하기를 청하였다. 함께 구령(鳩嶺)에 올라가서 산수(山水)의 맥(脈)을 살펴보았는데, 도선이 위로 천문(天文)을 바라보고 아래로 시기의 운수[時數]를 살펴보고 말하기를, ‘이 땅의 맥(脈)이 임방(壬方)인 백두산(白頭山)으로부터 수(水)와 목(木)이 근간(根幹)이 되어 내려와서 마두명당(馬頭明堂)이 되었으니, 마땅히 수(水)의 큰수[大數]를 쫓아서 집을 육육(六六)으로 지어 36간으로 하면, 하늘과 땅이 큰 수[大數]에 부응할 것입니다. 만일 이 비결(秘訣)대로 하면 반드시 거룩한 아들[聖子]을 낳게 될 것이니, 마땅히 그 이름을 왕건(王建)이라 할 것입니다.’ 하고, 인하여 비봉(秘封) 한 통을 만들어 겉봉에 쓰기를, ‘삼가 글월을 받들어 백배(百拜)하고 미래(未來)에 삼한(三韓)을 통합할 임금 대원군자(大原君子) 족하(足下)께 드립니다.’ 하였다. 세조가 즉시 이 비결을 좇아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 이듬해에 과연 태조(太祖)를 낳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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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역사(海東繹史) 제26권  

물산지(物産志) 1

채류(菜類)

오이[黃瓜]

○ 고려의 오이는 형체가 둥글면서 맛이 있어서, 중국에서 나는 것과 같다. 《성경통지(盛京通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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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0권  
오이〔黃瓜〕

瓜子纍纍著早霜 주렁주렁 달린 오이에 이른 서리 내리어
摘來靑玉滿盤香 따 담으니 푸른 옥이 쟁반 가득 향기롭네
調氷解渴功尤妙 얼음에 타면 해갈의 공이 더욱 뛰어나니
不數江南荔子漿 강남 여자의 단물은 세잘 것도 없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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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黄瓜:Cucumber)

                                             

Scientific classification

Kingdom: Plantae

Division: Magnoliophyta

Class: Magnoliopsida

Order: Cucurbitales

Family: Cucurbitaceae

Genus: Cucumis

Species: C. sativus

Binomial name

Cucumis sativus L.


黄瓜,也称胡瓜、青瓜,属葫芦科植物。广泛分布于中国各地,并且为主要的温室产品之一。

黄瓜是由西汉时期张骞出使西域带回中原的,称为胡瓜,五胡十六国时后赵皇帝石勒忌讳“胡”字,汉臣襄国郡守樊坦将其改为“黄瓜”。黄瓜的茎上覆有毛,富含汁液,叶片的外观有3-5枚裂片,覆有绒毛。


오이는 박과의 한해살이풀로, 전 세계적으로 채소로 재배되고 있다.

꽃은 노랗고, 열매는 초록색으로 길쭉하다.

과즙이 많고 맛이 깔끔해 날로 먹거나, 오이 피클, 오이 냉채, 오이소박이 등의 여러 요리에 쓰인다.

 

 

 

                                                       Pickling cucumbers


Cucumbers originated in India. Large genetic variety of cucumber has been observed in different parts of India. It has been cultivated for at least 3,000 years in Western Asia, and was probably introduced to other parts of Europe by the Romans. Records of cucumber cultivation appear in France in the 9th century, England in the 14th century, and in North America by the mid-16th century.


서아시아에서 3000년 전부터 재배되고 있었다는 점 등 때문에 오이는 인도가 원산으로 여겨진다. 오이는 인도에서 그리스·로마로 전해졌고, 또 중국을 통해 동아시아로도 전해졌다. 로마인들은 오이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럽으로 오이를 전파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는 9세기에, 영국에는 14세기에, 북아메리카에는 16세기에 오이를 재배한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