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장목(香樟木, Cinnamomum camphora)과 장뇌(樟腦, camphor)
용뇌(龍腦,氷片:Borneolum)
향장목(香樟木)라고도 하는 녹나무(Cinnamomum camphora)는 장뇌목(樟腦木)이라 하고 예장나무(豫樟)라고도 불렀다.
한어자료에 보면 장수(樟树, Cinnamomum camphora)라 하는 상록나무인데 본장(本樟), 향장(香樟), 조장(鳥樟), 로장(栳樟), 장자(樟仔)라 하고 있다.
향장목(香樟木)은 깊고 기름진 토양이나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고 높이가 약 20m, 지름 약 2m이며 나무껍질은 어두운 갈색이고 새가지는 윤이 나고 연둣빛이며 털이 없고 잎은 어긋나고 달걀모양 타원형 또는 달걀모양으로 끝은 뾰족하며 밑은 뭉뚝한 특징이 있다.
공해와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내륙지방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는 나무이다.
나무의 색과 결이 고우며, 일반적인 용도로는 건축의 내장재, 가구재, 완구, 조각재 등으로 사용되고, 특히 사찰의 목어(木魚)를 만드는데 최고급재라 한다.
분명 녹나무는 아열대성 교목(喬木)이며, 북위 18∼32°에 걸친 아시아동부에서 자란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아래 밝히려고 한다.
이 녹나무가 우리나라에서는 한반도 제주도에서만 자란다고 하고 있다.
현재 이상기온이 아닌 당시에 한반도 제주도가 아열대성 기후인가 물음에서 당치도 않다는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치이다.
그러나 고사여러자료를 보면 제주도에서만 나는 것이 아닌 듯한데 직접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금강산, 두류산 등 여러 곳에서 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녹나무가 우리나라의 어떤 특정지역에서 난다는 기록은 없다.
아래 열거한 고사여러자료를 차례대로 살펴보면 첫째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의 원종순효대왕2년(元宗順孝大王二:1273)기록과 충렬왕2년(忠烈王二:1283)기록에서 원나라 사신이 향장목(香樟木)을 내라고 요구하였다는 사실만이 나올 뿐이며 탐라(耽羅)의 향장목(香樟木)를 원나라 사신이 요구하였다는 것이 특별하다.
이러한 기록이 현재 한반도 제주도에서만 이 녹나무가 나온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근세기록으로서도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다산시문집 징사고서(徵賜考敍)에서 신라 문무왕(文武王, 661-681)때 당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자석(磁石)을 징구하였고 동시에 원나라에서도 자주 징구하여 문저포(紋苧布), 안교(鞍轎), 향장목(香樟木), 불경지(佛經紙)등을 보낸 것이 사적(史籍)에 자세히 실려 있다 라고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뒤집어 보면 그만큼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이 녹나무 즉 향장목(香樟木)이 자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신라 때나 고려 때, 당나라와 원나라에서 요구한 것이 된다.
그래서 아래 기록도 자세히 분석을 해보면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세조8년(1462)에 유구국(琉球國) 사신이 와서 말하길 화포가 맹렬하기 위해서 구리가루와 장목의 기름을 섞으면 좋다고 한 사실에도 장목의 기름, 즉 장뇌유(樟腦油)가 조선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분명 장목 즉 향장목(녹나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성종19년(1488)에 최부(崔溥)가 물레방아라고만 알고 있는 수차(水車)를 만들었는데 이 윤판(輪板)을 녹나무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승정원일기에 스스로 신하가 임금에게 직임을 체차해 주길 상소하는 글에서 마치 돌과 옥이 서로 섞여 있어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녹나무(櫲)와 우나무(枕)가 구별이 쉽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녹나무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櫲, 木名,即「枕」。也作「豫」
해주(海州) 동헌에 녹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성호사설 남산시(南山詩)에 그 산에는 옥석(玉石), 금은(金銀), 동철(銅鐵), 예장(豫章), 단자(檀柘)같은 특이한 물건들이 난다 하였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나주목편에 동(洞)안에는 다른 초목은 없고 대나무가 소나무나 녹나무(枏)에 섞여 있다 하고 있다.
금강산(金剛山)에도 녹나무가 있으며 두류산(頭流山)에서 녹나무가 있고 청음집(淸陰集), 유서산기(遊西山記)에 한양(漢陽)의 산(山) 언덕에서도 녹나무가 둘러싸여 있다고 하였다.
이런 기록에서 분명하진 않지만 여러 곳에서 많이 자생한 것이 맞는데 분명하게 들어나는 특정지역이 표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제 그러한 기록이 사실이라면 조선각종지리서(地理書)에 나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일체 그러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은 더욱 더 반도역사의 진위자체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그런 단절의 역사는 근세기 어떤 세력들로부터 강력한 조치에 의한 실종이라고 할 수 있고 실제 있었던 과학적인 자료들을 강제적으로 없애버려 생물학적 역사(歷史)기록이 단절된 것처럼 통째로 사라진 것이라고 풀이 할 수 있다.
무엇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단절 될 이유를 따진다면 일제어용, 친일사학자들의 장난 말고는 찾을 것이 없다.
장뇌(樟腦)는 향장목이라고 하는 녹나무과(樟科:Lauraceae)의 녹나무(Cinnamomum camphora)의 목부, 가지, 잎을 절단하여 수증기로 증류하여 얻은 장뇌유(樟腦油)를 냉각시켜 석출한 결정체라고 한다.
두산백과사전에 중국(中國)에서는 녹나무의 가지와 잎을 사용하므로 천연빙편(天然氷片)이라고 하였다 하고 옛날 중국의 큰 절에 큰 뱀이 들어와 사람을 물어 죽여서 절이 곤경에 처했는데 우연히 스님들이 쓰다 버린 나막신을 태우니 뱀이 그 향을 맡고 죽게 되었다. 그 신발은 모두 녹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녹나무를 태운 향이 뱀을 죽인다는 소문이 퍼져 이른 봄이 되면 집집마다 마당에서 녹나무를 태워 나쁜 벌레와 병마를 쫓는 풍습이 생겨났다 하고 있다.
때문에 이 장뇌는 방충제, 살충제, 강심제를 만드는 원료가 되며 장뇌(樟腦)의 강한 방향(芳香)이 있어 벌레가 먹지 않고 썩지 않으며 보존성이 높아 예로부터 왕후귀족의 관재(棺材)로 많이 사용되었다 한다.
또한 백과사전에서 장뇌(樟腦)는 1833년 장 밥티스트 뒤마(Jean-Baptiste-André Dumas, 1800-1884)에 의해 그 조성(組成)이 결정되었으나, 정확한 구조가 밝혀진 것은 1860년 후의 일이라 했으며 그 후 1903년에 라세미체(體racemic body)인 장뇌산(樟腦酸, camphoric acid)의 전합성(全合成, Total Synthesis)이 이루어져, 그 구조가 확실해졌다하고 있다.
그리고 가소제로서 장뇌를 함유하는 질산에스터(nitric ester:RONO2)인 나이트로셀룰로스(nitrocellulose)로 이루어진 일종의 플라스틱, 셀룰로이드(celluloid)나 화약(火藥, gunpowder)의 원료로서 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공업적으로 합성하려 했다.
특히 세계 삼한역사관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제1차 세계대전 중 물자부족으로 시달린 독일에 의해서 합성이 이루어져, 전쟁이 끝난 후에도 생산량이 증가하여 독일은 장뇌(樟腦)의 수출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약리작용으로서의 장뇌는 몸 안의 막힌 기혈을 속속들이 뚫어주는 통규(通竅)작용이 강해 의식을 잃었을 때나 토사, 복통에 사용되며 종기, 피부궤양, 악창, 옴, 버짐, 가려움증에 외용하고 강심, 진통 효과가 있다 하며 약리작용은 피부방부, 중추신경흥분, 강심, 혈압상승, 호흡흥분, 간장해독작용 등이 보고되었다.
이상에서 미국자료(Discover Life)를 통하여 녹나무라고 하는 향장목(香樟木)의 실제근원지를 알아 볼 차례이다.
자료 제공처:
University of Georgia
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Missouri Botanical Garden
Smithsonian Tropical Research Institute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https]
original
녹나무, 시나모뮴(樟屬 Cinnamomum)속
Cinnamomum camphora 樟 녹나무
Cinnamomum cassia 肉桂
Cinnamomum japonicum 天竺桂
Native range : C. camphora is native to Japan, China, Taiwan and northern Vietnam.
Known introduced range : C. camphora has become widely naturalised in Australia. In the United States, it grows along the Gulf Coast and in California.
자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은 이 녹나무의 근원지가 동아시아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록 원산지가 native to Japan, China, Taiwan and northern Vietnam. 일본, 중국, 타이완 그리고 북베트남이라고 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원산지로서는 아래와 같이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에서 걸프 해안 그리고 캘리포니아이다.
Known introduced range : C. camphora has become widely naturalised in Australia. In the United States, it grows along the Gulf Coast and in California.
위 미국지도에서 나타나듯이 켈리포니아 주와 북아메리카 남부거의 다 지역을 가름하고 있다.
실제 일본이란 지역이 플로리다주와 많이 겹치고 잇다는 점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전세계 분포지도를 보면 중앙아메키라와 카리브해도 포함됨을 알 수 있다.
물론 남아메리카 남동부지역도 범위에 들어간다.
일본이들이 조선시대때 녹나무에서 나올 수 있는 장뇌를 와서 바쳤다는 기록이 수없이 많은데 그들의 영역이 과연 어디겠는가?
그렇다면 조선의 위치는 어디겠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
녹나무-장뇌목(樟腦木 : Cinnamomum camphora)
illustration
장수(樟树, Cinnamomum camphora)是樟科常绿大乔木,别名本樟、香樟、鸟樟、栳樟、樟仔。
科學分類
域: 真核域 Eukarya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雙子葉植物綱 Magnoliopsida
目: 樟目 Laurales
科: 樟科 Lauraceae
屬: 樟屬 Cinnamomum
種: 樟 C. camphora
二名法
Cinnamomum camphora(L.) Sieb.
Cinnamomum camphora is native to Taiwan, southern Japan, southeast China and Indochina, where it is also cultivated for camphor and timber production.
樟樹
녹나무(Cinnamomum camphora)는 장뇌목(樟腦木)이라고 한다. 상록의 교목으로서, 잎은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며 윤이 나 고 향기가 있다. 꽃은 양성화인데, 5월경에 황백색의 작은 꽃들이 잎겨드랑이에서 원추꽃차례를 이루면서 핀다. 꽃덮이 조각은 6개로, 꽃이 핀 뒤에 떨어진다. 제주도 삼성혈 부근의 숲에 자생하며, 지리적으로는 일본과 중국·타이완에 많이 분포한다. 높이 20m, 지름 2m에 이른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6-10cm, 너비 3-6cm, 계랑형의 긴 타원형이다. 잎자루가 길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으며 부드럽고 완만하다. 꽃은 양성으로 작고 5월에 피는데 흰색에서 황색으로 된다. 열매는 지름 8㎜의 핵과로 작고 둥글며 10월에 흑자색으로 익는다. 이 나무는 토심이 깊고 비옥한 토양을 좋아하며, 음지에서도 잘 자라지만 공해와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내륙지방에서는 경제적 생장이 어렵다. 이 나무는 귀중한 향료인 장뇌(樟腦)를 얻을 수 있어 이용가치가 높다. 장뇌는 이 나무의 둥치나 뿌리를 수증기로 증류시켜 얻은 기름으로서, 향료를 비롯한 방충제·살충제·강심제를 만드는 원료가 된다. 또한, 이 나무는 장뇌의 강한 방향(芳香)이 있어 벌레가 먹지 않고 썩지 않으며 보존성이 높아 예로부터 왕후귀족의 관재(棺材)로 많이 사용되었다. 나무의 색과 결이 고우며, 일반적인 용도로는 건축의 내장재·가구재·완구·조각재 등으로 사용되고, 특히 사찰의 목어(木魚)를 만드는 데는 최고급재가 된다. 상록성의 광택있는 잎의 질감이 좋고 수형이 웅대하게 자라 제주도에서는 귀중하게 쓸 수 있는 조경수림이며, 남해안지방에서도 녹음수나 공원의 풍치수로 식재가 가능하다. 번식방법은 11월에 익은 종자를 채취, 정선하여 노천매장하였다가 이듬해에 파종하는데, 발아율이 약 80% 정도 되므로 쉽게 묘목을 얻을 수 있다.
*********************
고려사절요 제19권
원종 순효대왕 2(元宗順孝大王二)
계유 14년(1273), 송 함순 9년ㆍ원 지원 10년
○ 원 나라에서 보낸 사신이 어상(御床) 만들 때 쓰는 재목 향장목(香樟木)을 내라고 하였다.
충렬왕 2(忠烈王二) 계미 9년(1283), 원 지원 20년
○ 봄 정월에 원 나라에서 백라개(伯剌介)를 보내어 탐라(耽羅)의 향장목(香樟木)을 요구하였다.
*****************************************
다산시문집 제15권 서(敍)
징사고 서(徵賜考敍)
삼가 생각건대, 번국(藩國)에게 징구(徵求 물자를 요구하는 것)하는 것이 옛 도(道)가 아니다. 그러므로 가보(家父)가 수레를 징구하고 모백(毛伯)이 돈을 징구한 것을 《춘추(春秋)》에서 나무랐다. 그러나 상국(上國)이 징구하면 이를 받들어 따르는 것이 사대(事大)의 의리인 것이다. 신라 문무왕 때 당 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자석(磁石)을 징구하였고, 원 나라는 자주 징구하여 문저포(紋苧布), 안교(鞍轎), 향장목(香樟木), 불경지(佛經紙) 등을 보낸 것이 사적(史籍)에 자세히 실려 있고, 충렬왕(忠烈王)ㆍ충선왕(忠宣王) 이하의 세기(世紀) 명나라 때에는 징구하면 조심하여 봉행하였으며, 숭덕 이후로는 토산물인 속미(粟米)와 병기(兵器),시문(詩文) 등을 징구하기도 하여 그 품목이 그때그때마다 달랐다.
사뢰(賜)의 의전(儀典)은 연례적으로 하사하는 이외에 특사(特賜)ㆍ가사(加賜) 등의 규례가 있다. 《예기(禮記)》에 시보(施報)를 말하였고 《역경(易經)》에서 구여(求與)를 볼 수 있으니, 그 일이 서로 같기 때문에 지금 이 두 가지 일을 서열하여 징사고를 만든다.
****************************
세조 8년 임오(1462,천순 6) 2월28일 (계사)
유구국 사신 선위사 이계손의 문견 사목(聞見事目)
(이상생략)-부사(副使)가 후원(後苑)에서 인견(引見)하던 날에 말하기를, ‘내가 중국(中國)과 외국(外國)에 두루 가보지 않는 데가 없는데, 지금 귀국(貴國)에 이르니 의관(衣冠)과 문물(文物)이 중화(中華)와 같습니다. 모든 조신(朝臣)들의 거동(擧動)이 복건(福建)의 장락현(長樂縣)의 풍속과 비슷한데 다른 외국(外國)이 미칠 바가 못되며, 임금의 활쏘는 능력도 또한 다른 사람이 미칠 바가 못된다.’고 하였습니다.
부사(副使)가 후원(後苑)에서 관화(觀火)하던 날에 말하기를, ‘화포(火砲)가 맹렬(猛烈)하여 천하(天下)에 비(比)할 데가 없으나, 다만 불꽃의 빛깔이 붉을 뿐인데, 만약 동말(銅末)과 장목(樟木)의 기름을 합하여 사용하면 불꽃의 빛깔이 희여질 것입니다.’고 하므로, 신이 말하기를, ‘불꽃의 빛깔이 본래 붉은데 어찌 흰 것을 쓰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보통의 것을 변(變)하게 하는 것이 귀(貴)합니다.’고 하였습니다.
****************************
성종 19년 무신(1488,홍치 1) 8월4일 (을미)
전(前) 사직(司直) 최부(崔溥)가 수차(水車)를 만들어 바쳤다.
(이상생략)-그 제작하는 나무는 기계에는 삼(杉)나무를 쓰고, 장골(腸骨)은 느릅나무[楡]를 쓰며, 윤판(輪板)은 녹나무[樟]를 쓰고, 차장(車腸)은 죽편(竹片)을 써서 얽어맨다. 만일에 삼나무·느릅나무·녹나무를 얻지 못하면 모름지기 나뭇결이 단단하고 질긴 것을 쓸 것이며, 그 윤판에는 나무가 무거운 것을 쓰되, 두텁고 실한 것이라야 비로소 가할 것이다.
수차(水車):동력에너지 장치라고 생각되지만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없다.
물레방아나 맷돌 등에 쓰인 동력장치
풍차(風車)와 더불어 증기기관이 발명되기 이전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력장치였다.
*****************************
(승정원일기)고종 3년 병인(1866, 동치5) 2월 1일(신묘) 비
좌목
적임자가 아니므로 문원의 직임을 체차해 주기를 청하는 행 대호군 조연창의 상소
(이상생략)-돌과 옥이 서로 섞여 있고 녹나무와 우나무가 구별이 없어 관직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가벼워지는 것이 신의 몸에서 비롯될 것이니, 성상의 선발하심에 누를 끼치고 여론을 놀라게 하는 것이 또한 어떻겠습니까.
*****************************
본[부상록]상권 8월 25일(병자) 우창(牛窓) 조에 보면, 본련사(本連寺) 중의 시에 차운한 시의 원주에 “근일에 남목(楠木 녹나무)이 돌이 되었다.”라는 내용이 보이는데, 이것을 인용한 듯하나 여기서는 그 반대로 표현하였다.
*****************************
사가문집 제1권 기(記)
해주(海州) 객관(客館)의 동헌(東軒)을 중신한 것에 대한 기문
해주는 관서(關西)의 큰 고을이다. 해주는 고구려의 내미홀(內米忽)이었다. 신라 경덕왕이 폭지군(瀑池郡)을 설치하였고, 고려 태조가 군의 남쪽이 큰 바다와 닿아 있다고 하여 비로소 해주라는 이름을 썼다.
(이상생략)-동헌의 모서리를 돌아 조금 비스듬히 북쪽으로 가면 누대가 하나 있는데 높이가 한 길 남짓하고, 녹나무[楠樹]가 두 그루 있는데 울창하게 우거져서 큰 그늘을 드리워 그 그늘에 수백 명이 앉을 수 있습니다.
*****************************
사화기략(使和記略)
10월 29일
맑음. 오후에 걸어서 산중턱에 오르니 신사(神社)가 있는데, 녹나무[楠木]가 천 그루나 있고 골짜기의 그늘이 오히려 깊으니 지기(地氣)가 따뜻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곳 주민이 녹나무로 안갑(案匣 책상과 상자)과 반합(盤盒 소반과 합) 등속을 만든 것을 부산하게 가지고 와서 파는데, 대단히 아담하여 사랑스러웠다.
*****************************
성호사설 제30권
시문문(詩文門)
동서제해(東西際海)
한퇴지의 남산시(南山詩)에,
동ㆍ서 양쪽이 바다를 즈음해서 / 東西兩際海
잔 것 굵은 것 다 헤아리긴 어려운 걸 / 鉅細難悉究
하였거니와, 남산은 서울의 남쪽에 있는데 어찌 바다로 즈음할 이치가 있으랴?
이는 동방삭전(東方朔傳)에서 나온 것이니, 거기에, “무제(武帝)가 아성(阿城) 이남과 고지(盩厔) 이동, 의춘(宜春) 이서를 상림원(上林苑)으로 만들고자 하므로 동방삭은, ‘무릇 남산은 천하의 막이[阻]로서, 남으로는 강ㆍ한(江漢)이 있고 북으로는 하ㆍ위(河渭)가 있으며, 그 지역은 견ㆍ농(汧隴) 이동과 상ㆍ낙(商雒) 이서로 되어 그 땅이 비옥하므로 한 나라가 발흥하자 삼하(三河)의 지역을 버리고 패ㆍ산(灞滻)의 이서에 그쳐 경ㆍ위(涇渭)의 지역에 도읍을 정하였으니, 이는 이른바 천하 육해(陸海)의 요지로서, 진(秦) 나라가 이 까닭에 산동(山東)을 노획[虜]하고 서융(西戎)을 겸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주에, ‘높고 평평한 지대를 육(陸)이라 이르니, 관동(關東)이 지대가 높기 때문에 육이라 칭한 것이며, 해(海)란 것은 만물이 나는 곳이니 관중(關中)의 산천에는 물산이 풍부하다는 것을 말하는 까닭에 육해라 이른 것이다.’ 하였다.
이에 이른바, ‘동ㆍ서 양쪽이 바다를 즈음했다.’ 한 것은, 다 물산이 풍부하고 요족한 땅인 때문이니, 동방삭도 역시, “그 산에는 옥설(玉石)ㆍ금은(金銀)ㆍ동철(銅鐵)ㆍ예장(豫章)ㆍ단자(檀柘) 같은 특이한 물건들이 나므로, 모든 공인(工人)들이 넉넉히 지내고 온 백성들이 의존해서 요족히 생활하게 되며, 또 항도(秔稻)ㆍ이율(梨栗)ㆍ상마(桑麻)ㆍ죽전(竹箭)의 생산이 풍요하므로 가난한 자도 요족하여 기한에 허덕일 염려가 없다.” 하였다. 그래서 해(海)라 이른 것이리라.
당(唐) 나라가 진ㆍ한(秦漢)의 옛터를 인해 도읍을 관중에 정하였으므로 퇴지가 그렇게 말한 것이리라.
예장(豫章) : 녹나무의 일종.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전라도(全羅道)
나주목(羅州牧)
동(洞) 안에는 다른 초목은 없고 오직 누런 띠풀과 긴 대나무가 소나무나 녹나무[枏]에 섞여 있다. 민가에서 문과 울타리는 가끔 대나무로 나무를 대용하니, 그 소쇄(蕭洒)하고 청한(淸寒)한 것은 멀리 온 사람도 또한 즐겨 안거(安居)할 만하다.
*****************************
연암집 제8권 별집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
김신선전(金神仙傳)
그 이듬해 가을에 나는 동으로 바닷가를 여행하다가 저녁나절 단발령(斷髮嶺)에 올라서 금강산을 바라보았다. 그 봉우리가 만 이천 개나 된다고 하는데 흰빛을 띠고 있었다. 산에 들어가 보니 단풍나무가 많아서 한창 탈 듯이 붉었으며, 싸리나무, 가시나무, 녹나무, 예장(豫章)나무는 다 서리를 맞아 노랗고, 삼나무, 노송나무는 더욱 푸르르며, 사철나무가 특히나 많았다. 산중의 갖가지 기이한 나무들은 다 잎이 노랗고 붉게 물들어 있어 둘러보고 즐거워했다.
*****************************
점필재집 문집 제2권
기행록(紀行錄)
두류산을 유람한 기행록[遊頭流錄]
나는 영남(嶺南)에서 생장하였으니, 두류산은 바로 내 고향의 산이다.
(이상생략)-이 때 구름과 안개가 다 사라지고 햇살이 내리비추자, 동서의 계곡들이 모두 환히 트이었으므로, 여기저기를 바라보니, 잡수(雜樹)는 없고 모두가 삼나무[杉], 노송나무[檜], 소나무[松], 녹나무[枏]였는데, 말라 죽어서 뼈만 앙상하게 서 있는 것이 3분의 1이나 되었고, 간간이 단풍나무가 섞이어 마치 그림과 같았다. 그리고 등성이에 있는 나무들은 바람과 안개에 시달리어 가지와 줄기가 모두 왼쪽으로 쏠려 주먹처럼 굽은데다 잎이 거세게 나부끼었다.
*****************************
청음집 제38권
기(記) 5수(五首)
유서산기(遊西山記)
한양(漢陽)의 산이 복정(覆鼎)에서부터 산줄기가 뻗어 내려와 왕도(王都)의 진산(鎭山)이 된 것을 공극(拱極)이라고 일컫는다.
(이상생략)-산줄기가 이어지면서 산등성이를 이루고 여러 산등성이가 나뉘어 골짜기가 되었다. 골짜기에는 모두 샘이 있어 맑은 물이 바위에 부딪치매 수많은 옥이 찰랑거리는 것 같았는바, 수석(水石)의 경치가 실로 서울에서 으뜸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한스러운 것은 금령(禁令)이 해이해져 산 전체에 아름드리 큰 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소나무나 전나무 그늘이 있고 단풍나무나 녹나무가 언덕을 둘러싸고 있어 솔솔 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바람 맑고 달빛 밝은 저녁에 느릿느릿 서성인다면 봉호(蓬壺)나 곤랑(崑閬)도 어찌 부러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
홍재전서 제184권
군서표기(羣書標記) 6 ○ 명찬(命撰) 2
식목실총(植木實總) 1권 사본
이는 삼가 경모궁(景慕宮)에 나무를 심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궁 안 동산으로부터 주변 사방 산들에까지 모두 소나무, 삼나무, 단풍나무, 녹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버드나무 등을 심었는데 궁관(宮官)에게 명하여 심은 나무의 총 숫자와 살아 있고 죽은 나무의 실제 수효를 매 계절 초하루에 수정하여 아뢰도록 하여 아침저녁으로 살펴보는 자료로 삼아 어버이를 공경하는 소자의 뜻을 붙였다. 본궁(本宮) 도제거(都提擧) 서명선(徐命善)의 서문이 있다.
*****************************************************
장뇌 (樟腦)
台灣早期北部山林多為原始樟樹林,老樟樹樹齡千年以上者甚多,因此,台灣樟腦輸出量曾達世界首位,有“樟腦王國”之称。
화학식 CHO. 녹나무에 대량으로 함유되어 있는 두고리모노테르펜에 속하는 케톤화합물. 장뇌(樟腦)라고도 한다. 천연의 캠퍼는 주로 -체이고 합성한 캠퍼는 -체이다. 녹는점 178.45℃, 끓는점 209℃, 비중 0.9853이고 우선성(右旋性, 고유광회전도 [α]=+44°)을 가지며 유기용매에는 잘 녹지만 물에는 녹지 않는다. 독특하고 강한 냄새와 맛을 가진 무색 투명한 고체이다. 천연캠퍼의 원료가 되는 녹나무는 아열대성 식물로 한국의 제주도·중국·타이완·인도차이나 등지에 분포한다. 캠퍼는 녹나무의 유세포(油細胞)에 함유되어 있는데, 주로 50년 이상의 큰 나무일수록 함유량이 많고 뿌리·가지·줄기의 순으로 많이 함유되어 있다. 녹나무의 근주(根株)를 수증기로 증류하여 캠퍼 및 캠퍼유를 추출한 뒤 필터프레스로 캠퍼유와 물을 분리하고 승화 또는 재결정에 의하여 정제된 캠퍼를 얻는다. 합성캠퍼는 1903년 옥살산에틸, β, β-디메틸글루탐산디에틸을 원료로 하여 합성되었다. 현재는 테레빈유의 주성분인 α-, β-피넨을 원료로 하여 캠펜, 이소보르네올을 거쳐서 합성된다. 의약용으로는 강심제로서 호흡중추·혈관운동중추 및 심장의 흥분, 세포 기능의 활성화에 주사약으로 쓰이고, 신경통·류머티즘·동상·두드러기에 알코올용액(캠퍼팅크)이 사용된다. 니트로셀룰로오스와 캠퍼가 고용체(固溶體)를 이루어 가소제(可塑劑)로 뛰어난 성질을 지니고 있고 착색성이 좋아 셀룰로이드와 필름 제조에 쓰이며, 또 니트로셀룰로오스 무연화약의 제조 등 공업원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승화성이 높아 살충·방충제, 훈향제로도 쓰인다
***************************************
세종 14권, 3년(1421 신축 / 명 영락(永樂) 19년) 11월 6일(을축)
일본국 전 구주총관 원도진이 의정부에 전한 서신
○日本國前九州摠管源道鎭遣使致書于議政府曰:
道鎭已辭兵馬之柄, 居閑無事, 以大國屢篤交好, 不忍遐棄舊例, 遣使者以伸慇懃之意。 近琉球國商船爲對馬賊所邀, 彼此死者幾乎數百, 遂焚毁舟楫, 虜掠人物。 琉球國比來貢獻于我, 故欲問其罪。 夫對馬之賊, 人面獸心, 難以敎化、法令制之, 貴國沿海州郡, 當嚴戍禦, 以待賊變, 伏惟照亮。
仍獻硫黃一千二百斤、丹木一千斤、明礬二百斤、象牙二本、犀角三本、樟腦五斤、磁盆五事、手箱二介、食籠一介、砂糖一百斤。 平宗壽又遣人弔太后之薨, 獻硫黃八百斤、沈香三十斤、蘇香五百斤、䤵提二具、甘草十斤、水犀角二本、手箱一介。
일본국 전 구주 총관(九州摠管) 원도진(源道鎭)이 사신을 보내어 의정부에 서신(書信)을 전했는데, 그 서신에,
“도진은 이미 병마(兵馬)를 맡은 권력에서 떠나서 아무 일도 없이 한가로이 있는데, 대국에서 여러 번 교린(交隣)의 호의(好誼)를 두터이 하여, 그 전의 예(例)를 차마 버리지 않으므로써 사자(使者)를 보내어 은근한 뜻을 전합니다. 요사이 유구국(琉球國)의 상선(商船)이 대마도의 적(賊)에게 요격(邀擊)되어, 양편에서 죽은 사람이 거의 수백 명이나 되었으며, 드디어 배를 불사르고 사람과 물건을 노략하였던 것입니다. 유구국이 근래에 우리나라에 공헌(貢獻)하는 까닭으로 〈대마도에〉 그 죄를 묻고자 합니다. 대체 대마도의 적은, 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짐승과 다름이 없으니, 교화(敎化)와 법령으로써 이를 제어(制御)하기가 어렵습니다. 귀국에서도 연해(沿海) 주군(州郡)에 마땅히 엄중하게 방어하여, 적의 변고에 대비(對備)해야 될 것입니다. 삼가 살피소서.”
라고 하였다. 인하여 유황(硫黃) 1천 2백 근, 단목(丹木) 1천 근, 명반(明礬) 2백 근, 상아(象牙) 2본(本), 서각(犀角) 2본, 장뇌(樟腦) 5근, 자분(磁盆) 5개, 손상자[手箱] 2개, 식롱(食籠) 1개, 사탕(砂糖) 1백 근을 바쳤다. 평종수(平宗壽)도 또한 사람을 보내어 태후(太后)의 돌아가심을 조문(弔問)하고, 유황(硫黃) 8백 근, 침향(沈香) 30근, 소향(蘇香) 5백 근, 비제(䤵提) 2구(具), 감초(甘草) 10근, 서각(犀角) 2본, 손상자[手箱] 1개를 바쳤다.
******************************
세종 21권,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9월 18일(병신)
일본 전 총관 원도진이 대장경 청구하는 글을 예조에 올리다
○日本九州前摠管源道鎭、筑州府石城管事平滿景等使人獻土物。 源道鎭奉書于禮曹, 其書曰:
吾殿下前年求《大藏經》, 貴國卽見恩惠。 又愚息義俊求尊經, 同辱厚惠, 僥倖之至, 得罪得罪。 回禮使四月四日到筑州石城冷泉津。 薄禮在別錄: 扇子百五十把, 練緯二匹, 犀角二本, 土黃十斤, 金襴一段, 麒麟血一斤半, 陳皮百斤, 丁香五斤半, 草菓十斤, 紗二匹, 黃芩十斤, 藿香三十斤, 蘇合油五斤, 銅五百斤, 蘇木一千斤, 硫黃六百斤。
命禮曹判書申商答書曰:
所獻禮物, 謹啓收納。 仍知回禮使船已到冷泉津, 欣喜。 土宜正布六百八十匹領納。
平滿景奉書于禮曹, 其書曰:
吾國長州人鬚左近寄寓大國畿內, 傳聞被謫在于荒服。 此有一老母在于本州, 年旣邁耋, 晝夜悲泣忘食, 伏請見還。 長州與九州隣甚, 其族屢來哀訴, 余不勝其情, 故告以區區, 伏乞啓達。 土宜練緯二匹, 鉛五十斤, 蘇木一千斤, 銅五百斤, 縮砂十斤, 獐腦〔樟腦〕五斤, 沈香五斤, 朱盆二片。
禮曹佐郞成念祖答書曰:
所諭鬚左近被罪, 謫在外方, 未敢稟啓, 照悉。 土宜正布四百四十匹領納。
일본구주(九州) 전 총관(摠管) 원도진(源道鎭)과 축주부(筑州府) 석성관사(石城管事) 평만경(平滿景) 등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고, 원도진이 예조에 글을 올렸는데, 그 글에,
“우리 전하께서 전년에 대장경(大藏經)을 구하니, 귀국(貴國)에서 즉시 보내주신 은혜를 베푸셨으며, 또 내 자식 의준(義俊)이 존경(尊經)을 구할 때에도 역시 보내주신 은혜를 받자와 요행함이 지극하매 죄송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회례사(回禮使)는 4월 4일에 축주(筑州) 석성(石城)의 냉천진(冷泉津)에 닿았습니다. 보잘것없는 예(禮)는 별록(別錄)에 기록돼 있습니다. 부채[扇子] 1백 50자루[把], 연위(練緯) 2필, 서각(犀角) 2(本), 토황(土黃) 10근, 금란(金欄) 1단(段), 기린혈(麒麟血) 1근 반, 진피(陳皮) 1백 근, 정향(丁香) 5근 반, 초과(草菓) 10근, 사(紗) 2필, 황금(黃金) 10근, 곽향(藿香) 30근, 소향유(蘇香油) 5근, 동(銅) 5백 근, 소목(蘇木) 1천 근, 유황(硫黃) 6백 근을 바칩니다.”라고 하였다. 예조 판서 신상(申商)에게 명하여 서신에 답하게 하였는데, 그 답서에,
“바친 예물(禮物)은 삼가 위에 아뢰어 수납(收納)하였는데, 인하여 회례사(回禮使)가 이미 냉천진(冷泉津)에 도착하였음을 알게 되었으니 매우 기쁘오. 토산물인 정포(正布) 6백 80필을 수납(收納)하시오.”라고 하였다, 평만경(平滿景)이 예조에 글을 올렸는데, 그 글에,
“우리나라 장주(長州)사람 수좌근(鬚左近)이 대국(大國)의 기내(畿內)에 기우(寄寓)했는데, 전해 듣건대, 귀양을 가서 황복(荒服)에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 노모(老母)가 있어 본주(本州)에 사는데, 나이 이미 80세가 되었으며, 밤낮으로 슬피 울어 밥 먹는 것까지 잊고 있으니, 삼가 돌려보내기를 청합니다. 장주(長州)와 구주(九州)는 심히 가까우므로, 그 친족이 여러 번 와서 슬피 호소하여, 제가 그 정경(情景)을 견딜 수 없으므로 구구한 말로써 알리오니 삼가 위에 아뢰기를 원합니다. 토산물은 연위(練緯) 2필, 연(鉛) 50근, 소목(蘇木) 1천 근, 동(銅) 5백 근, 축사(縮砂) 10근, 장뇌(樟腦) 5근, 침향(沈香) 5근, 화분(禾盆) 2편(片)을 바칩니다.”라고 하였다. 예조 좌랑 성염조(成念祖)가 서신에 답했는데, 그 답한 서신에,
“말한바 수좌근(鬚左近)이 죄를 입어 외방(外方)에 귀양가서 있다고 한 것은 감히 아뢰어 조실(照悉)하지 못하오. 토산물인 정포(正布) 4백 40필을 수납(受納)하시오.”라고 하였다
*********
세종 22권,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10월 15일(임술)
일본 구주 다다량덕웅·평만경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日本九州多多良德雄、筑前州管事平滿景等使人來獻土物。 多多良德雄致書于禮曹曰:
承聞, 去歲太上皇厭世, 是貴國之大故也。 伏惟殿下儼然猶在憂服之中, 摧痛哀慕奈何? 更望節哀就禮, 以全大孝。 小子館于京師, 夙夜在公, 政事浩穰, 何暇及他? 以故, 不伸弔問一禮者, 踰年于玆矣。 緩慢之罪, 宜在譴絶, 而不可逭焉。 高明審察賜恕則多幸也。 專差建幢首座奉書, 幷不腆土宜, 具如別幅, 雖不足爲賻贈, 聊表追悼之萬一爾。 臨紙哽塞, 無勝悽惋之至。 紅織金段子一匹, 白織金段子一匹, 硫黃一千斤, 鵬砂一斤, 蘇香油二斤, 紅練絹一匹, 銅五百斤, 獐腦〔樟腦〕十斤, 香白芷一十斤, 銀地扇子二十本, 紅漆茶柈五十枚, 黃芩二十斤, 土黃二十斤, 杜沖三斤, 附子三斤, 巴豆十斤, 犀角五本, 麻黃三十斤, 蘇木一千斤, 紫檀五十斤, 白檀香五十斤, 疎香二十三斤, 蠟燭一百丁。
禮判書申商復書曰:
專人陳慰爲感。 所獻賻儀, 謹啓收納。 仍將土宜正布一千三百六十匹、緜紬二十匹, 以表謝忱。
平滿景致書禮曹, 求鞍子, 仍獻土物。 銅三百斤, 硫黃五百斤, 犀角二本, 貝母十斤, 獐腦〔樟腦〕五斤, 蘇木一千斤, 陳皮五十斤, 藿香三十斤, 丁香皮一百斤, 麻黃二十斤, 巴戟十斤, 白磁茶椀十箇, 靑磁茶椀三十箇, 靑磁盤三十箇。 命禮曹佐郞成念祖復書曰:
馬鞍製造非易, 未卽從請。 唯土宜正布六百九十匹, 付回使。
일본구주(九州) 다다량덕웅(多多良德雄)·축전주 관사(筑前州管事) 평만경(平滿景) 등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고, 다다량덕웅이 예조에 글을 올려 말하기를,
“받들어 듣건대, 지난해에 태상황(이방원1367년~1422년)께서 세상을 버리셨다 하니, 이는 귀국의 큰 상고(喪故)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금상 전하(今上殿下)께옵서 공경히 오히려 상복 중에 계시오니 비통(悲痛)하시고 애모(哀慕)하심이 어떠하오리까. 다시 슬픔을 억제하시고 예절에 좇으시어 큰 효도(孝道)를 온전히 하시옵기를 바랍니다. 소자는 경사(京師)의 객사(客舍)에 있으면서 밤낮으로 공직에 종사하므로, 정무가 많고 복잡하여 다른 일에 미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하여 조문(弔問)의 예절을 펴지 못한 채 이제 해를 넘겼습니다. 더디고 게으른 죄는 마땅히 견책(譴責)하시어, 거절하셔서 용서받지 못할 것이오나, 고명하신 귀관께서 살피시어 용서하여 주시면 다행하겠습니다. 특히 건당수좌(建幢首座)를 보내어 글을 받들어 올리고, 아울러 변변하지 못한 토산물을 별폭(別幅)과 같이 갖추었습니다. 비록 족히 부의(賻儀)가 될 것이 못되오나, 또한 추도(追悼)하는 정성의 만분의 일을 표하는 바입니다. 종이[紙]를 임하매, 목이 메어 슬픔을 누를 길이 없나이다. 홍직 금단자(紅織金段子) 1필, 백필 금단자 1필, 유황(硫黃) 1천 근, 붕사(硼砂) 1근, 소향유(蘇香油) 2근, 홍련견(紅練絹) 1필, 동(銅) 5백 근, 장뇌(樟腦) 10근, 향백지(香白芷) 10근, 은지선자(銀地扇子) 20본, 홍칠다반(紅漆茶柈) 50매, 황금(黃芩) 20근, 토황(土黃) 20근, 두충(杜沖) 3근, 부자(附子) 3근, 파두(巴豆) 10근, 서각(犀角) 5본, 마황(麻黃) 30근, 소목(蘇木) 1천 근, 자단(紫檀) 50근, 백단향(白檀香) 50근, 소향(蘇香) 23근, 납촉(蠟燭) 1백 정(丁)이라.”
하였다.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회답하는 서간에 이르기를,
“특히 사람을 보내어 위문을 진달하니 감사하다. 헌납한 부의는 삼가 계주하여 수납하고, 인하여 토산물로 정포 1천 3백 60필과 면주 20필을 가지고서 정의를 표하노라.” 하였다. 평만경이 예조에 글을 보내어 말안장을 청구하고, 인하여 토산물로 동(銅) 3백 근, 유황 5백 근, 서각 2본, 패모(貝母) 10근, 장뇌 5근, 소목 1천 근, 진피(陳皮) 50근, 곽향(藿香) 30근, 정향피(丁香皮) 1백 근, 마황(麻黃) 20근, 파극(巴戟) 10근, 백자다완(白磁荼椀) 10개, 청자다완(靑磁荼椀) 30개, 청자반(靑磁盤) 30개를 바쳤다. 예조 좌랑(禮曹佐郞) 성염조(成念祖)에 명하여 회답 서간을 주게 하였으니, 이르기를,
“말안장은 제조하기가 쉽지 않아 즉시 청구에 응하지 못하고, 다만 토산물인 정포 6백 90필을 회사(回使)에게 부치노라.”하였다.
*********************************
세종 26권, 6년(1424 갑진 / 명 영락(永樂) 22년) 11월 23일(갑오)
일본국 석성관사 평만평이 방물을 바쳐 정포 550필을 회사하다
○日本國石城管事平滿景使人獻土宜: 金襴一段、丹木五百斤、犀角四頭、縮砂十斤、銅三百斤、扇子一百本、獐腦〔樟腦〕二十斤、鑞五十斤、盤二十片、川芎一十斤、蓬莪朮一十斤、靑皮一十斤、明礬五百斤、甘草十斤, 回賜正布五百五十匹。
일본국(日本國) 석성 관사(石城管事) 평만경(平滿景)이 사람을 보내어 방물을 바쳤는데, 금란(金襴) 1단(段), 단목(丹木) 5백 근, 서각(犀角) 4개 [頭], 축사(縮砂) 10근, 동(銅) 3백 근, 선자(扇子) 1백 자루, 장뇌(樟腦) 20근, 납(鑞) 50근, 반(盤) 20개, 천궁(川芎) 10근, 봉아출(蓬莪朮) 10근, 청피(靑皮) 10근, 명반(明攀) 5백 근, 감초(甘草) 10근이다. 정포 5백 50필을 회사(回賜)하였다.
*************************
세종 34권,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11월 1일(경인)
일본 축주 석성관사 종금이 사람을 시켜 토산물을 바치므로 정포를 회사하다
○日本筑州石城管事宗金, 使人奉書禮曹, 謝賜圖書, 仍進摺扇一百本、樟腦五斤、大刀十柄、犀角一頭、鬱金二十斤、銅二百斤、藿香二十斤、硫黃一千斤, 回賜正布二百四十匹。 筑前州大宰少貳藤原滿貞, 使人奉書于禮曹, 再請發還對馬, 屬臣平奴田昆季等, 仍獻大刀五柄、穿山甲一張、樟腦一斤、草菓十斤、紗二段、盤一百片、磁椀一千、蘇香油三斤、牛皮十張、銅三百斤、丹木五百斤、硫黃一千斤、丁香皮三斤、鉛一百斤。 禮曹參議金孝孫答書云: “諭及平奴田昆弟, 旣委質我朝, 厚蒙上恩, 反懷譎詐, 重干邦憲, 謫在于外。 姑將正布四百三十匹, 就付回价。” 對馬州宗貞盛ㆍ左衛門大郞等奉書禮曹, 再請發還平道全, 禮曹參議金孝孫答書曰: “諭及道全, 重干邦憲, 然得保性命, 恩至渥也。”
일본(日本) 축주(筑州) 석성 관사(石城管事) 종금(宗金)이 사람을 시켜 예조(禮曹)에 글을 보내어 〈앞서 우리나라에서〉 도서(圖書)를 내려준 것에 사례하고, 인하여 접선(摺扇) 1백 자루, 장뇌(樟腦) 5근, 대도(大刀) 10자루, 서각(犀角) 1개, 울금(鬱金) 20근, 동(銅) 2백 근, 곽향(藿香) 20근, 유황(硫黃) 1천 근을 바치므로, 정포(正布) 2백 40필을 회사(回賜)하였다. 축전주(筑前州) 태재(太宰) 소이(少貳) 등원만정(藤原滿貞)이 사람을 시켜 예조(禮曹)에 글을 바치고, 〈인질(人質)로 잡혀 와 있는〉 대마도(對馬島)의 속신(屬臣) 평노전(平奴田) 형제 등을 돌려보내기를 재차 청하고, 인하여 대도(大刀) 5자루, 천산갑(穿山甲) 1장, 장뇌(樟腦) 1근, 초과(草菓) 10근, 비단 2필, 쟁반[盤] 1백개, 자완(磁椀) 1천 개, 소향유(蘇香油) 3근, 우피(牛皮) 10장, 동(銅) 3백 근, 단목(丹木) 5백 근, 유황(硫黃) 1천 근, 정향피(丁香皮) 3근, 연(鉛) 1백 근을 바쳤다. 예조 참의(禮曹參議) 김효손(金孝孫)이 답서하여 말하기를,
“평노전(平奴田) 형제에 대하여 말한다면〈그들은〉이미 우리 조정에 인질(人質)로 와 있어, 상감의 은혜를 두터이 입었는데도 도리어 간사한 마음을 품어 국법에 중하게 저촉되어 외방에 귀양가 있는 중이며, 우선 정포(正布) 4백 30필을 돌아가는 사신에게 부치노라.”
하였다. 대마주(對馬州) 종정성(宗貞盛)·좌위문대랑(左衛門大郞) 등이 예조(禮曹)에 글을 올리고 평도전(平道全)을 돌려보내 주기를 재차 청하니, 예조 참의 김효손(金孝孫)이 답서를 보내 말하기를,
“도전(道全)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가〉 국법에 크게 저촉되었으니, 성명(性命)을 보전하게 된 것만도 그 은혜가 지극히 우악(優渥)한 것인 줄 알라.”하였다.
**************************
'세계삼한역사 > 식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뇌(龍腦香)이 난 영남(嶺南)은 어딜까? (0) | 2012.10.21 |
---|---|
천축주(天竺酒)가 난 곳은 남아메리카(南蠻)이다. (0) | 2012.10.20 |
육계(肉桂:Cinnamomum cassia)-계피 (0) | 2012.10.14 |
안투리움(Anthurium)과 안쓰러움(Anthurium coriaceum) (0) | 2012.10.13 |
소나무(赤松, Korean Red Pine)와 잣나무(紅松, Korean Pine)의 혼란 (0) | 2012.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