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곽향(藿香:Patchouli)은 조선 전라도(全羅道)의 토산물이었다.

한부울 2013. 4. 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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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향(藿香:Patchouli)은 조선 전라도(全羅道)의 토산물이었다.

 

글쓴이:한부울

 

곽향(藿香)은 한방약재의 용어인데 식물분류체계적으로볼 때 두 가지 종(種)이 겹쳐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모두 꿀풀목(脣形目:Lamiales), 꿀풀과(唇形科:

Lamiaceae)로서 자예초속(刺蕊草屬:Pogostemon)과 배초향속(藿香.排草香屬:Agastache)으로 나뉨을 알 수 있고 이 자예초속(刺蕊草屬:Pogostemon)을 패출리(patchouli)라 하여 patchouly, pachouli로 불리면서 학명 대표종으로서 Pogostemon cablin 과

Pogostemon patchouli 으로 나누는데 학명 Pogostemon cablin(L.)를 광곽향(廣藿香), 해곽향(海藿香), 곽향(藿香)이라 한다.

또한 배초향속(藿香.排草香屬:Agastache)에서도 여러종으로 나뉘는데 특이한 것은 학명 Agastache rugosa 를 코리아 민트(Korean Mint)라고 한다는 사실이다.

 

위 자예초속(刺蕊草屬:Pogostemon), 학명 Pogostemon cablin(L.) 를 해곽향이라고 하여 또 다시 해(海)자 가 붙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아메리카대륙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며 좁게는 카리브해를 지칭한 것이다.

특이하게 이 해(海)가 붙을 경우 거의가 삼한영역에서 자라는 토산물로 보면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또한 세계삼한역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송(宋)학자 소송(蘇頌)은 이 비위(脾胃)의 손상으로 인한 구토에 좋다 했고 금(金)의학자 장원소(張元素)도 위기(胃氣)를 도와 소화를 돕는다고 했으며 원(元)출신 왕호고(王好古)가 비위(脾胃)를 따뜻하게 하고 기(氣)의 순환을 돕는 것과 함께 폐(肺)가 허약하여 한사(寒邪)와 열(熱)의 침범을 받은 증상을 치료한다 하였다.

 

广藿香(Pogostemon cablin).,又名到手香、左手香,唇形科多年生草本植物。原產地印度或非洲。

(明)학자 이시진(李時珍)은 콩잎을 곽(藿)이라고 하는데 그 잎이 콩잎과 비슷하므로 곽향(藿香)이라는 명칭이 생겼다하고,  릉엄경(楞嚴經)에서 굴뚝 앞에서 두루파향(兜婁婆香)으로 목욕한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 식물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법화경(法華經)에서는 다라라발향(多摩羅跋香)이라고 하였고 금광명경(金光明經)에서는 발달라향(鉢怛羅香)이라고 하였다.

두루(兜婁)는 고대의 인도어라고 사전에 적고 있으며 또 열반(涅槃)에서는 이 식물을 가산향(迦算香)이라고 하였다.

 

반면 배초향속(排草香屬:Agastache)은 중국에서는 곽향(藿香)이라 적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성숙한 배초향을 곽향이라 하여 약재로 사용한다 하였으나 백과사전에서는 이 배초향(排草香:Agastache rugosa (Fisc.r et Mey.) Kuntze)의 지상부를 사용해 만든 한방약재를 신중국과 일본에서는 약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채롭게 하고 있다.

이것은 적어도 신중국과 열도에는 이 식물이 본래 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조선초기에 이 곽향을 시도때도 없이 조선 세조에게 바쳤다는 기록이 난무한다.
그리고 이 배초향(排草香:Agastache rugosa)을
코리아향피(korean zest), 코리아박하(Korean Mint)라고 하며, 푸른감초(Blue Licorice), 자주우슬초(Purple Giant Hyssop), 곽향(Huo xiang), 인디언박하(Indian Mint), 패출리허브(Patchouli Herb), 주름우슬초(Wrinkled Giant Hyssop)등으로 불린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배초향을 '방아잎'으로 불리고 있다.
이 식물들이 정유(패출리향유)로 가공되고 이용되었으며 옛부터 향기나 향수에 이용되었다 하였고 인도가 원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과 인도가 또한 엮이고 있는 것이다.

이 이름들은 타밀어의 녹(緑)과 잎(葉)에 유래된다고 적고 있다.

주로 동인도나 서인도 등 열대지방에 생육하고 있다 하여 어중간하게 지금은 설명하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거의 동남아시아에 분포하는 것으로 만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높이는 대략 60-90 cm정도의 낮은 나무이며, 더운 환경에서 잘 자라지만 직사광선은 좋아하지 않는다.

곽향은 예로부터 벌레 방충에도 효과가 있다는 식물이며 18 세기부터 19 세기에 중국으로부터 중동에 비단을 수출하는 교역상들은 나방이 옷감에 알을 낳아 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 건조시킨 곽향의 잎을 비단과 함께 싸서 이동했다고 한다.

서양사람들이 이러한 현상에서 곽향이 고귀한 냄새라고 생각하던 이유 중에 하나라고 추측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한다.

물론 코리안 향피, 코리안 민트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이 곽향유의 향기는 다른 냄새를 지우기 것으로도 이용되었는데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는 대마의 수상한 냄새를 숨기기 위해서 곽향을 히피들 사이에 넓게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또한 근대 베트남 전쟁 때 미군병사는 적병 시체에서 나오는 악취를 지우기 위해서 곽향을 이용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이 곽향(藿香)을 세종(世宗, 1397-1450:재위1418-1450)시기에 유국, 일본국 축주 관사 평만경, 구주전총관 원도진, 구주의 작주 자사 평상가, 일본 구주 도원수 원의준 등이 1426년까지 지속적으로 조선(朝鮮)에 조공(朝貢:tribute)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놀라운 사실은 세종지리지에서 이 곽향이 전라도에서만 나는 토산물로 기록했다는 사실은 전라도가 아열대지방 또는 열대지방임을 확인 할 수 있게 한다.

China, India, Indonesia, Malaysia, Mauritius, Philippines, West Africa and Vietnam

대륙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모리셔스(인도양의 Madagascar 섬 동쪽 섬나라), 필리핀, 서아프리카 그리고 베트남.

그러나 영어자료를 보면 위와 같은 원산지 내용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전부 동남아시아 지역만을 지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이 곽향(藿香)이 열대지방에서 생육되고 산출된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종지리지(世宗地理志)에서 말한 전라도(全羅道)가 열대지방인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한반도 전라도에 열대식물인 곽향(藿香)이 토산물로 자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도대체 세종지리지에서 말한 전라도는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전라도(全羅道)라는 전라(全羅)는 태양(羅)이 전체를 비춰주는 곳, 태양신을 섬기는 곳, 한편으론 전체가 신라(新羅)영역이라는 말로 풀이 할 수도 있는 지명이다.

 

그래서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과 디스커버 라이프(Discover life)가 제공하는 분포지도를 각 학명별로 따져 분포지를 살펴 보았다.

첫째 곽향에서는 북아메리카대륙 워싱턴주(Washington) 가이아나(Guiana-Saul, Cayenne), 마르티니크(Martinique), 코스타리카(Costa Rica, Puntarenas), 쿡 섬(Cook Islands)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두번째 배초향(排草香)에서는 린네가 붙인 학명만을 골랐는데 앞 두 학명 Agastache foeniculum, Agastache nepetoides 모두 북아메리카대륙만을 지정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코리아향피(korean zest), 코리아박하(Korean Mint)라고 칭하는 학명 Agastache rugosa 에서 보면 이 학명을 부여한 사람이 두 사람이 있는데

Friedrich Ernst Ludwig Fischer(1782-1854)was a Russian botanist, born in Germany.
Carl Anton Andreevic von Meyer(1795-1855)was a Russian botanist and explorer.

두 사람 다 러시아인이라는 사실과 사망연도가 거의 같다는 사실, 그리고 마이어(Meyer)는 탐험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최종 마지막 학명에 이름을 올린 쿤츠(Otto Carl Ernst Kuntze1843-1907)역시도 독일인이며 식물학자이고 앞 두 학명에도 모두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린네가 아닌 좀 늦은 시기에 학명을 부여 했다는 사실과 이 학명에 특히 독일인들이 관여했다는 사실에서 매우 중하게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동아시아대륙에 이 곽향이란 식물이 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인데 동아시아대륙에 심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전라도는 어딘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조선왕조실록 기록에서 이 곽향이 유구, 일본, 구주등에서 조공으로 들어오던 기록이 1426년 세종8년부터는 더 이상 기록된 것은 없다.

이것은 조선이 그 지역을 점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위 분포지도를 참고 해 볼 때 분명 북아메리카대륙이 손에 들어 온다.

그리고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한 Discover life 분포지도에 코리아향피(korean zest), 코리아박하(Korean Mint)라고 하는 학명 Agastache rugosa 에서 가리키고 있는 분포지가 분명 북아메리카대륙 서부지역인 캘리포니아(California), 로키산맥 남부와 미주리주(Missouri)영역임을 알게 하고 있다.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멕시코를 포함한 서부지역을 클로즈업시키고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있기 전 왜구들이 을묘왜변(乙卯倭變)이라 하여 1555년 5월 11일 배 70여 척을 타고 전라도 연안지역을 1차 침입하였다는 사실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늘 전라도지역은 왜구의 침입에 가장 직접적으로 맞서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곽향이 토산물로 자생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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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지리지 곽향 자생 분포지

전라도(全羅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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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곽향(藿香 : Patchouli)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门 Angiosperms
綱: 双子叶植物纲 Eudicots
(未分级) 菊分支 Asterids
目: 唇形目 Lamiales
科: 唇形科 Lamiaceae
屬: 刺蕊草屬 Pogostemon
種: 广藿香 P. cablin
二名法
Pogostemon cablin(L.) H.S.Irwin & Barneby
異名
patchouli
patchouly
pachouli
 

Pogostemon cablin(L.) H.S.Irwin & Barneby-Patchouli


Washington
Guiana 사라수(Saul), Cayenne
마르티니크(Martinique)
Costa Rica, Puntarenas
Cook Islands
Niue

 

Pogostemon patchouli

Guiana, Ouanary, Region littorale
Paraguay, Central

Patchouli (Pogostemon cablin (Blanco) Benth; also patchouly or pachouli) is a species from the genus Pogostemon and a bushy herb of the mint family, with erect stems, reaching two or three feet (about 0.75 metre) in height and bearing small pale pink-white flowers. The plant is native to tropical regions of Asia and is now extensively cultivated in Caribbean countries, China, India, Indonesia, Malaysia, Mauritius, Philippines, West Africa and Vietnam.

 

(2)배초향(排草香)

목: 꿀풀목 脣形目
과: 꿀풀과 唇形科
속: 배초향속(藿香.排草香:Agastache)
종: 배초향

Agastache foeniculum (Pursh) Kuntze-Blue Giant Hyssop

쿤츠(Otto Carl Ernst Kuntze1843-1907)was a German botanist.


Agastache nepetoides (L.) Kuntze-Yellow Gianthyssop

 

Agastache rugosa (Fisch. & C.A. Mey.) Kuntze1891-Korean Mint

Friedrich Ernst Ludwig Fischer(1782-1854)was a Russian botanist, born in Germany.
Carl Anton Andreevic von Meyer(1795-1855)was a Russian botanist and explorer.

 


이명 

土藿香(토곽향), 兜婁姿香(두루자향)

약성가

藿香辛溫止嘔吐

發散風寒霍亂主


기원

이 藥은 脣形科(꿀풀과 ; Labiatae)에 속한 多年生 草本인 廣藿香 Pogostemon cab!lin(BLANCO.)BENTH. 또는 一年生 혹은 多年生 草本인 배초향(藿香) Agastache rugosa(FISCH. et MEYER) O. KUNTZE의 全草를 건조한 것으로, 廣藿香은 6~7월 사이에 채취하여 晒乾 또는 陰乾하고, 藿香은 6~7월의 開花時와 10월에 채취하여 晒乾 또는 陰乾한다. 


① Pogostemon cab!lin

多年生 草本으로 높이는 30~100cm 정도이고 芳香이 있다. 줄기는 直立하며 거칠고 윗분에서 많이 分枝하며 갈색에 가깝고 황색의 絨毛로 덮여 있다. 잎은 對生하며 葉柄의 길이는 2~5cm 정도이고 털로 덮여 있으며 葉片은 넓은 卵形이며 길이 5~10cm 폭 2.5~7cm 정도이다. 先端은 鈍尖하며 基部는 楔形 혹은 微心形이며 邊緣에 거칠고 둔한 鋸齒가 있으며 보통 옅게 갈라진다. 穗狀花序는 頂生 혹은 腋生하며 輪傘으로 모여 핀다. 花萼은 管狀이고 길이 약 6mm이며 苞片에 비해 길고 5裂한다. 花冠은 脣形이고 길이 8mm이며 옅은 紅紫色이고 雄蕊는 4개인데 花冠 밖으로 나오며 小堅果는 平滑하다.

② Agastache rugosa

多年草로서 높이 40~100㎝이고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며 네모가 진다. 잎은 對生하고 卵狀 心臟底이며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이 圓底 또는 亞心臟底이며 길이 5~10㎝, 폭 3~7㎝로서 표면에 털이 없고 뒷면에 약간의 털과 더불어 흰빛이 도는 것도 있으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고 葉柄은 길이 1~4㎝이다. 꽃은 脣形으로서 7~9월에 피며 자주색이고 가지 끝과 원줄기 끝의 輪狀花序에 달리며 花序는 길이 5~15㎝, 폭 2㎝이다. 花萼은 길이 5~6㎜로서 5개로 갈라지고 裂片은 좁은 三角形이며 花瓣은 길이 8~10㎜로서 밑 부분의 것이 길고 옆의 것에 톱니가 있으며 二强雄蕊가 길게 밖으로 나오고 分果는 길이 1.8㎜로서 倒卵狀 楕圓形이며 편평한 三稜形이다.


성상

① 廣藿香 : 이 약의 줄기는 약간 方柱形으로 많이 分枝되었고, 가지는 조금 구부러져 길이 30~60cm, 지름 0.2~0.7cm이다. 表面은 부드러운 털로 싸여 있고, 質은 부스러지기 쉬우며, 斷面의 가운데에는 髓가 있다. 老莖은 類圓柱形으로 지름이 1~1.2cm로 灰褐色의 코르크층으로 싸여 있다. 잎은 對生하고 쭈그러졌으며, 펴보면 葉片은 卵形 또는 橢圓形으로 길이 4~9cm, 폭 3~7cm이다. 兩面은 灰白色의 茸毛가 덮여 있고, 先端은 짧고 뾰족하며, 基部는 楔形 또는 鈍圓하고, 邊緣에는 크기가 불규칙한 鋸齒가 있으며, 葉柄은 가늘고 길이 2~5cm로 柔毛로 싸여 있다.

② 藿香 : 이 약을 건조한 全草의 길이는 30~60cm이다. 줄기는 四方柱形으로 四角의 棱脊이 있고, 지름이 3~10mm이다. 表面은 黃綠色 또는 灰黃色으로 毛茸이 稀少하거나 혹은 없고, 質은 가볍고 부스러지기 쉬우며, 斷面의 中央에는 白色의 髓가 있다. 老莖은 단단하고 木質化되어 斷面의 中央은 비어 있다. 잎은 거의 떨어졌고 남은 잎은 灰綠色으로 쭈그러지거나 혹은 부스러졌으며, 兩面에는 작은 털이 있고, 얇아 부스러지기 쉽다.

이 약은 특이한 향기가 있고 맛은 덤덤하다.

이 약은 줄기가 푸르고 잎이 많이 붙어 있으며 향기가 짙은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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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권, 즉위년(1418 무술 / 명 영락(永樂) 16년) 8월 14일(신묘)

유구 국왕의 아들이 사람을 보내어 단목·백반 등을 바치다

○琉球國王二男賀通連遣人致書于左、右議政, 獻丹木五百斤、白磻五百斤、金襴一段、段子一段、靑磁器十事、深黃五十斤、川芎五十斤、藿香五十斤、靑磁花甁一口、沈香五斤。 回賜九升白紵布二十匹、黑麻布三十匹、白紬布二十匹、七升緜布四十匹、六升綿布百十一匹、五升緜布二百匹。 令禮曹判書答書曰:

使至辱書, 從審動履嘉裕。 所獻禮物, 謹已啓納。 涉險修睦, 敢不爲喜? 仍將土宜, 就付回使, 不腆爲愧。

유구(琉球) 국왕의 둘째 아들 하통련(賀通連)이 사람을 보내어 좌·우 의정에게 편지하고, 단목(丹木) 5백 근(斤), 백반(白磻) 5백 근, 금난(金爛) 1단(段), 단자(段子) 1단(段), 청자기(靑磁器) 열 가지, 심황(深黃) 50근, 천궁(川芎) 50근, 곽향(藿香) 50근, 청자화병(靑磁花甁) 하나, 침향(沈香) 5근을 바치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회답으로 구승 백저포(九升白紵布) 20필(匹), 흑마포(黑麻布) 30필, 백주포(白紬布) 20필, 칠승 면포(七升綿布) 40필, 6승 면포 1백 11필, 5승 면포 2백 필을 주고, 예조 판서로 하여금 답서를 하게 하니, 그 글에는,

“사신이 이르러 보내 주신 글을 받아 보아 존체가 평안하시고 다복하심을 살펴 알게 되며, 보내신 예물은 삼가 이미 국왕께 아뢰어 바치었습니다. 험난한 바닷길을 건너와 국교를 돈목(敦睦)하게 하시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돌아가는 사신 편에 우리 토산물을 부쳐 보내오며, 변변치 못함을 부끄러워합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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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9권,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1월 12일(갑오)

일본국 축주 관사 평만경이 토산물을 바치다

○日本國筑州管事平滿景使人獻土物, 命饋之。 其書曰:

滿景承先考皇帝登遐, 初聞仰天痛哭, 投地泣血, 大失庇庥, 不幸無大於此焉。 仰惟衋傷, 使平三郞左衛門奉書告哀, 伏願聞達。 小禮土宜, 龍腦五十錢, (目)蘇香油二觔, 唐朱二觔, 黃練緯二匹, 硫黃二千觔, 藿香十觔, 麒麟血二觔, 甘草二十觔, 扇子二十把。

禮曹參議柳衍之答書曰:

專人陳慰, 深感深感。 所獻禮物, 謹已啓納。 今將土宜緜布四百七十匹, 就付回人。

일본국의 축주 관사(筑州管事) 평만경(平滿景)이 사람을 시켜 토산물을 바치니, 그를 접대하라고 명하였다. 그 서신(書信)에,

“만경(滿景)은 선고 황제(先考皇帝)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적에 하늘을 우러러보고 통곡했으며 땅에 몸을 던져 울었습니다. 크게 의지할 곳을 잃었으니, 불행한 일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었습니다. 우러러 마음을 상하여 평삼랑 좌위문(平三郞左衛門)으로 하여금 글을 받들어 슬픔을 고하오니, 삼가 아뢰어 드리기를 원합니다. 조그만 예물(禮物)로 올리는 토산물은 용뇌(龍腦) 50전목(錢目), 소향유(蘇香油) 2근, 당주(唐朱) 2근, 황련위(黃練緯) 2필, 유황(硫黃) 2천 근, 곽향(藿香) 10근, 기린혈(麒麟血) 2근, 감초(甘草) 20근, 부채[扇子] 20자루를 바칩니다.”라고 하였다. 예조 참의 유연지(柳衍之)가 답서하기를,

“사람을 보내어 위문(慰問)하니 깊이 감사한다. 바친 예물은 삼가 이미 위에 아뢰어 드리었으며, 지금 토산물인 면포(緜布) 4백 70필을 돌아가는 사람에게 부쳐 보낸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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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0권,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5월 25일(갑진)

구주 전 총관 원도진이 토산물을 바치다

○九州前總管源道鎭使人來獻硫黃一千觔、丹木四百觔、銅鐵一千觔、扇子六十把、犀角三本、蘇香油一觔、藿香二十觔、阿仙藥十觔, 回賜正布三百八十匹。

구주(九州) 전(前) 총관(摠管) 원도진(源道鎭)이 사람을 보내어 유황 1천 근, 단목 4백 근, 동철 1천 근, 부채[扇子] 60자루, 서각(犀角) 3본, 소향유(蘇香油) 1근, 곽향(藿香) 20근, 아선약(阿仙藥) 10근을 바쳤다. 회사로 정포 3백 80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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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1권,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9월 18일(병신)

일본 전 총관 원도진이 대장경 청구하는 글을 예조에 올리다

○日本九州前摠管源道鎭、筑州府石城管事平滿景等使人獻土物。 源道鎭奉書于禮曹, 其書曰:

吾殿下前年求《大藏經》, 貴國卽見恩惠。 又愚息義俊求尊經, 同辱厚惠, 僥倖之至, 得罪得罪。 回禮使四月四日到筑州石城冷泉津。 薄禮在別錄: 扇子百五十把, 練緯二匹, 犀角二本, 土黃十斤, 金襴一段, 麒麟血一斤半, 陳皮百斤, 丁香五斤半, 草菓十斤, 紗二匹, 黃芩十斤, 藿香三十斤, 蘇合油五斤, 銅五百斤, 蘇木一千斤, 硫黃六百斤。

일본 구주(九州) 전 총관(摠管) 원도진(源道鎭)과 축주부(筑州府) 석성 관사(石城管事) 평만경(平滿景) 등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고, 원도진이 예조에 글을 올렸는데, 그 글에,

“우리 전하께서 전년에 대장경(大藏經)을 구하니, 귀국(貴國)에서 즉시 보내주신 은혜를 베푸셨으며, 또 내 자식 의준(義俊)이 존경(尊經)을 구할 때에도 역시 보내주신 은혜를 받자와 요행함이 지극하매 죄송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회례사(回禮使)는 4월 4일에 축주(筑州) 석성(石城)의 냉천진(冷泉津)에 닿았습니다. 보잘것없는 예(禮)는 별록(別錄)에 기록돼 있습니다. 부채[扇子] 1백 50자루[把], 연위(練緯) 2필, 서각(犀角) 2(本), 토황(土黃) 10근, 금란(金欄) 1단(段), 기린혈(麒麟血) 1근 반, 진피(陳皮) 1백 근, 정향(丁香) 5근 반, 초과(草菓) 10근, 사(紗) 2필, 황금(黃金) 10근, 곽향(藿香) 30근, 소향유(蘇香油) 5근, 동(銅) 5백 근, 소목(蘇木) 1천 근, 유황(硫黃) 6백 근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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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2권,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11월 17일(갑오)

일본국 원의준이 대장경을 청구하다

○日本國源義俊使人求《大藏經》, 仍獻硫黃五千斤、銅二百斤、紺色織金段子一匹、丹木五百斤、胡椒二十斤、藤二百本、藿香二十斤、麻黃十斤, 回賜正布二百一十匹。 平滿景使人獻丹木四千斤、炎蒸二十斤、陳皮五十斤、獐腦〔樟腦〕一十斤、銅二百斤、犀角二本, 回賜正布七百八十匹。 源朝臣使人求《大般若經》, 請還俘擄人, 仍獻大刀二腰、硯子二面、硫黃七千斤、陳皮三十斤、藿香五斤、高良姜十斤、肉豆蔲五斤、蘇木三百斤, 回賜正布六十匹。

일본국 원의준(源義俊)이 사람을 보내어 대장경(大藏經)을 청구하고, 인하여 유황 5천 근, 동 2백 근, 감색직 금단자(紺色織金段子) 1필, 단목 5백 근, 호초 20근, 등 2백 본, 곽향(藿香) 20 근, 마황 10근을 바쳐왔으므로, 정포 2백 10필을 회사(回賜)하고, 평만경(平滿景)이 사람을 보내어 단목 4천 근, 염증(炎蒸) 20근, 진피(陳皮) 50근, 장뇌(樟腦) 10근, 동 2백 근, 서각 2본을 헌납해 왔으므로, 정포 7백 80필을 회사하고, 원조신(源朝臣)이 사람을 보내어 대반야경(大般若經)을 요구하고 포로된 사람을 돌려보내 줄 것을 청하면서, 인하여 대도 2자루[腰], 연자(硯子) 2면(面), 유황 7천 근, 진피(陳皮) 30근, 곽향 5근, 고량강(高良姜) 10근, 육두구(肉豆蔲) 5근, 소목 3백 근을 바쳐 왔으므로, 정포 60필을 회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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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2권,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12월 25일(임신)

일본 국왕의 사신 규주·범령 등 135명이 토산물을 바치다

 

○壬申/日本國王使臣圭籌、梵齡, 都船主久俊等一百三十五人詣闕獻土宜, 上御仁政殿受禮訖, 命圭籌、梵齡入殿內, 久俊在殿外。 上曰: “爾等去年海路無恙回國, 今又無事而來, 予甚喜焉。 國王不待予請, 刷還諸島擄去人口, 良用嘉悅。” 圭籌等對曰: “被擄人內, 其不載寡君書中者, 以回禮使之言刷還者也。” 上又曰: “國王所求大藏經板, 我國唯有一本, 難以塞請, 但欲以密敎大藏經板、註華嚴經板、漢字《大藏經》全部送之。” 圭籌等對曰: “寡君以爲, 年年使人請經, 恐爲煩瀆, 一賜經板則後無請經之瀆。 密字, 寡君本不解看, 若蒙賜漢字本, 則寡君必誠感悅, 臣之爲使與有光焉。” 上曰: “漢字板, 祖宗相傳唯一本耳。 若疊有之, 向國王敢有吝惜心乎?” 圭籌等對曰: “上敎詳密, 深謝深謝。 臣等亦更商量以啓。” 上命內官饋使副于六曹朝啓廳, 其餘客人, 分饋于東西廊。 上以大藏經板無用之物, 而隣國請之, 初欲與之, 大臣等議曰: “經板雖非可嗇之物, 日本之求無已, 今若一一從之, 後有求其不可與之物, 則非所以慮遠也。” 故上以難於塞請答之。...

別幅: 經史類題二十卷, 白練緯五十段, 沈香三十斤, 白檀五十斤, 丹木一千斤, 胡椒三十斤, 甘草五十斤, 藿香二十斤, 銅二百五十斤。

일본 국왕의 사신 규주(圭籌)·범령(梵齡)과 도선주(都船主) 구준(久俊) 등 1백 35인이 대궐에 나아가서 토산물을 바치니, 임금이 인정전에 나아가서 예를 받은 뒤에, 규주와 범령은 대궐 안에 들어오도록 명하고, 구준은 대궐 밖에 있도록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지난해에는 바닷길에 탈 없이 고국으로 돌아갔고, 이제 또 무사히 왔으니, 내 몹시 기쁘노라. 국왕이 나의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여러섬에 피로(披擄)된 사람을 찾아서 돌려보내 주니, 실로 희열(喜悅)하여 마지 않는다.”

하니, 규주 등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피로되었던 사람 중에 과군(寡君)의 글속에 실려 있지 않은 자는 회례사의 말로써 찾아 보낸 것이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국왕이 요구한바 대장경판(大藏經板)은 우리 나라에 오직 1본 밖에 없으므로 요청에 응하기 어렵고, 다만 밀교대장경판(密敎大藏經板)과 주화엄경판(註華嚴經板)과 한자대장경(漢字大藏經)의 전부를 보내려고 한다.”

하니, 규주 등이 대답하기를,

“과군이 해마다 사람을 보내어 경을 청하는 것으로써 번쇄(煩瑣)하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있으나, 한번 경판을 하사하시면 뒤에는 경판을 청구하는 번거로움은 없을 것이오며, 밀자(密字)는 과군이 본래 해독하지 못하오니, 만약 한자본을 하사하심을 얻는다면, 과군이 반드시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뻐할 것이며, 신이 사절로 온 것도 함께 영광된 빛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한자판은 조종조로부터 서로 전하는 것이 다만 1본뿐이다. 만약 겹쳐서 여러벌 있다면 국왕에 대하여 굳이 아끼어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겠느냐.”

하니, 규주 등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자상하시니 깊이 감사하고 깊이 감사하옵니다. 신들도 또한 잘 헤아려서 아뢰겠나이다.”

하였다. 임금이 내관에게 명하여, 사신과 부사(副使)는 육조의 조계청(朝啓廳)에서 음식을 접대하게 하고, 그 나머지의 객인(客人)은 동랑(東廊)과 서랑(西廊)에서 접대하게 하였다. 임금이 대장경판은 무용지물인데, 이웃나라에서 청구한다 하여 처음에 이를 주려고 하매, 대신들이 논의하여 말하기를,

“경판은 비록 아낄 물건이 아니오나, 일본이 계속 청구하는 것을 지금 만약에 일일이 좇다가, 뒤에 줄 수 없는 물건을 청구하는 것이 있게 된다면, 이는 먼 앞날을 염려하는 것이 못됩니다.” ...

별폭 경사류제(經史類題) 20권, 백련위(白練緯) 50단(段), 침향(沈香) 30근, 백단(白檀) 50근, 단목(丹木) 1천 근, 호초(胡椒) 30근, 감초(甘草) 50근, 곽향(藿香) 20근, 동(銅) 2백 50근.” 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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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5권, 6년(1424 갑진 / 명 영락(永樂) 22년) 8월 21일(계해)

구주의 작주 자사 평상가가 소목 유황·정향·곽향 등을 바치다

○九州作州刺史平常嘉使人獻蘇木一千觔、硫黃一千觔、丁香五十觔、藿香三十觔、白檀十五斤、犀角三本、金襴一段、象牙一本、銅二百觔、鉛二十觔, 回賜正布三百四十匹。

구주(九州)의 작주 자사(作州刺史) 평상가(平常嘉)가 사람을 보내어 소목(蘇木) 1천 근, 유황 1천 근, 정향(丁香) 50근, 곽향(藿香) 30근, 백단(白檀) 15근, 서각(犀角) 3개, 금란(金欄) 1필, 상아(象牙) 1개, 구리 2백 근, 납[鉛] 20근을 바쳤으므로, 정포(正布) 3백 40필을 회사(回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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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7권, 7년(1425 을사 / 명 홍희(洪熙) 1년) 1월 6일(정축)

일본 구주 도원수 원의준이 여러 물품을 바치니 판서 신상이 답서하다

○日本九州都元帥源義俊遣人獻硫黃三千斤, 銅一千斤, 丹木一千斤, 鑞一百斤, 陳皮、靑皮、良薑、蓬莪朮、甘草、藿香、光絹、扇子、犀角、朱槃等物, 兼奉書禮曹曰:

專使道經下邑, 謹已發船護送。

禮曹判書申商答書曰: 回禮使往還, 厚接護送, 深以爲感。 正布八百匹, 就付回价。

일본 구주 도원수(九州都元帥) 원의준(源義俊)이 사람을 보내어 유황(硫黃) 3천 근, 동(銅) 1천 근, 단목(丹木) 1천 근, 납(鑞) 1백 근, 진피(陣皮)·청피(靑皮)·양강(良薑)·봉아출(蓬莪朮)·감초(甘草)·곽향(藿香)·광견(光絹)·선자(扇子), 서각(犀角), 주반(朱槃) 등의 물품을 바치고, 겸하여 예조(禮曹)에 글을 올려서 말하기를,

“귀국의 사절의 행차가 하읍(下邑)을 경과하옵기에 삼가 선척을 내어 호송(護送)하였나이다.”하였다.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답서하기를,

“회례사(回禮使)의 왕복 길에 후히 접대하고 호송함을 깊이 감사한다. 정포(正布) 8 백 필을 돌아가는 사객에게 부치노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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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34권,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12월 14일(계유)

구주 전 도원수 원도진이 상아·소목 등을 바치다

○九州前都元帥源道鎭, 使人獻華氈一張、練緯二匹、海梅五枚、藿香十觔、象牙一箇、蘇木三百觔、磁椀千箇、銅三百觔、樟腦五觔、蘇合油二斤、大刀五柄, 回賜正布三百十五匹。

구주 전 도원수(九州前都元帥) 원도진(源道鎭)이 사람을 시켜 화전(華氈) 1장, 연위(練緯) 2필, 해매(海梅) 5매, 곽향(藿香) 10근, 상아(象牙) 1개, 소목(蘇木) 3백 근, 자완(磁椀) 1천 개, 동(銅) 3백 근, 장뇌(樟腦) 5근, 소합유(蘇合油) 2근, 대도(大刀) 5자루를 바치므로, 정포(正布) 3백 15필을 회사(回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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