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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개발 삽날에 찢긴 원주민 ‘30년 삶터’

한부울 2009. 5. 2. 18:14
 

대만-개발 삽날에 찢긴 원주민 ‘30년 삶터’

[경향신문] 2009년 01월 19일(월) 오후 05:39


대만 아미스족 산잉부락을 가다


“처음에 이 섬엔 수천년을 살아온 원주민이 있었지요. 뒤에 호키엔(福建) 사람들이 왔고, 다음엔 하까(客家, 광둥) 사람들이, 마지막엔 와이션(外省) 사람들이 와 섬을 점령하더니 이제 땅을 내놓으라고 하지요.”


    지난해 3월 강제철거 후에 다시 세워진 산잉부락 주민회관. 벽에 철거계고장이 붙어 있다.


지난해 말 타이베이현(臺北縣) 남서부의 산잉부락(三鶯部落)에서 만난 아미스족(河美族) 출신의 황혜지(黃惠頂)는 길고도 긴 사연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이주의 역사가 수백년에 달하는 호키엔과 하까도 원주민에 포함된다. 1945년 이후의 대만 현대사란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섬에 진주한 장가이섹(蔣介石)의 국민당군과 49년 중국혁명 이후 쏟아져 들어온 중국인들인 와이션에 의한 무력통치의 역사이다. 47년 228항쟁은 학살로 진압되었고 백색공포(白色恐怖)가 횡행했다. 계엄령 통치는 38년간 계속되었다. 87년 계엄령 해제 이후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중국계 원주민의 사정은 얼마간 나아진 편이다. 그러나 32만5000명에 달하는 진짜 원주민들은 여전히 소외된 계층이다.


따한시(大漢)강을 가로지는 산잉교(橋) 아래의 강둑에서 산잉부락 사람들은 30년 동안을 살아왔다. 타이완의 북동부인 따이퉁(臺東)과 화렌(花蓮)지역에서 이주한 아미스족 사람들은 어부이거나 농민이었지만 지난 30년 동안은 타이베이시 외곽의 산잉에서 대개는 건설노동자였다. 타이베이현은 지역개발과 하천범람을 이유로 산잉과 산샤(三峽)의 원주민 주거지역을 차례로 철거해 왔다. 지난 30년 동안 한 번도 하천이 범람한 적이 없었던 산잉부락에서는 철거가 고지된 후 지난해 2월 절반 이상의 주민들이 30년 동안 살아오던 집을 버리고 떠났다. 지난해 3월에는 남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경찰의 강제 철거가 단행되어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땅을 지키고 있는 19가구 40여명에 불과한 남은 주민들에게는 다시 일주일 기한의 철거계고장이 날아들었다.


                                산잉부락 주민들이 철거된 집터를 정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19일 타이베이 총통부 앞에서는 철거에 항의하는 시위와 삭발식이 있었다. 이 시위에는 타이완의 세계적 영화감독인 호샤오시엔(候孝賢)을 비롯해 문화계 인사들이 동참했다. 대만 언론들이 제법 크게 이 시위를 보도하면서 산잉부락은 대만에서 이제 원주민 문제의 상징이 되었다.


“정부에선 롱언뿌(隆恩捕)의 공공임대아파트로 이주하라고 말하지요.”

“이곳보단 아파트가 낫지 않을까요?”

“하지만 2년밖에는 거주할 수가 없어요. 월세도 내야 하고요.”

“부락민들 요구는 뭡니까?”

“살던 곳에서 살게 해달라는 거지요. 수천년을 살아왔는데 그만한 권리도 없나요? 땅에 금을 긋고 주인을 만든 건 우리가 아니에요. 그 사람들이지.”


그 사람들이 철거의 명분으로 내건 지역개발에 대한 산잉부락 사람들의 불신은 근거가 없지 않았다.


“우리 부락처럼 철거된 곳이 있었어요. 공원을 만들더니 주변에 고급주택들이 들어서고 호텔이 서더군요. 그 호텔에 마이클 잭슨이 와서 자고 간 것 아세요?”

“… 모르지요.”


철거지역을 공원으로 만든 후 주변엔 부유한 주거지 개발이라. 게다가 마이클 잭슨이 묵은 호텔이라면 특급이다. 타이베이현의 심오한 철거 및 개발전략인 셈이다.


지난해 3월 철거반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부락에 널빤지를 이용해 새로 지어진 목조주택들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산잉부락의 남은 사람들은 또 부락 입구에 대문을 만들고 있었다.


“다시 만드는 겁니까?”

“아니요. 부락이 생긴 후론 처음이에요.”

“오호!”


다리 밑의 강둑에는 부락이 생긴 후 처음이라는 묘한 활기가 넘쳤다. 주민 대부분이 건설노동자였던 탓에 투박한 석벽을 쌓고 나무 기둥을 올릴 때까지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부락 안쪽으로는 철거된 집터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30년 만에 마을 입구에 문이 선 것도, 부락민들이 하나가 된 것도, 싸움도 처음이라고 삭발한 머리에 모자를 눌러쓴 홍(洪)이란 아낙이 귀띔을 해주었다. 산잉부락 원주민들의 이렇듯 작은 싸움에 노동조합이나 호샤오시엔과 같은 양심적 인사들이 헌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그에 대한 화답이다. 지난해 12월23일 타이베이현은 산잉부락의 철거를 구정 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구정 뒤엔 또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유재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