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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킬링필드’ 죗값 치르나

한부울 2009. 2. 17. 12:08
 

캄보디아 ‘킬링필드’ 죗값 치르나

[중앙일보] 2009년 02월 17일(화) 오전 01:15


인류 역사의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사건이 30년 만에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대학살의 주범에 대한 국제재판이 17일 수도 프놈펜에서 시작된다고 AFP 통신 등이 16일 보도했다. ‘킬링 필드’는 1970년대 중반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 루주 군이 유토피아적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한 사건이다. 노동자와 농민의 국가를 만든다며 고위직 공무원과 대학 이상 졸업자는 물론 안경을 쓴 사람과 손이 흰 사람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잡아다가 고문하고 처형했다.


유엔과 캄보디아의 합의에 따라 2006년 7월 구성된 국제재판소는 2년6개월여 동안 5명의 피의자를 체포해 수감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재판정에 서는 피의자는 악명 높은 투올슬렝(당시 이름 S-21) 감옥의 교도소장 카잉 구엑 에아브(별명 더치·66)다. 크메르 루주의 핵심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는 여성과 어린이들을 포함한 1만6000명의 수감자를 고문하고 처형했다. 이 감옥의 수감자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14명에 불과했다. 더치는 최근 기독교로 개종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지만 종신형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더치 외에 크메르 루주의 2인자이자 이념가인 누온 체아, 당시 국가주석 키우 삼판, 외무부 장관 이엥 사리, 그의 처로 사회부 장관을 지낸 이엥 티리트 등도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무죄를 주장하는 이들 4명에 대한 재판은 내년에나 시작될 전망이다. 이들 대부분이 70대의 고령으로 건강이 나쁜 데다 무죄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킬링 필드를 총지휘한 크메르 루주 최대 지도자 폴 포트도 98년 심장병으로 사망해 법정에 설 수 없게 됐다.


유철종 기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