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카슈가르-Kashgar-中 신장에서 또 공안 공격

한부울 2008. 8. 12. 22:04
 

中 신장에서 또 공안 공격…3명 칼에 찔려 사망

[뉴시스] 2008년 08월 12일(화) 오후 05:37


[베이징=로이터/뉴시스]지난 4일 폭탄 공격이 발생 경찰 16명이 사망하고 또다른 16명이 부상했던 중국 신장위구르자치주의 카슈가르에서 12일 중국 공안에 대한 또다른 공격이 발생해 공안 3명이 칼에 찔려 사망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차량을 타고 지나던 범인이 공안들이 있는 검문소 앞에서 갑자기 뛰어나와 칼을 휘두르며 공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공격이 8일 전의 폭탄 공격과 연계돼 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신장위구르자치주 쿠차에서는 지난 10일에도 17차례의 연쇄 폭탄 공격이 일어나 경찰과 범인 등 모두 12명이 사망했었다. 중국은 두 차례의 폭탄 공격이 신장의 분리독립주의자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비난했다.


유세진기자 뉴시스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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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가르-Kashgar

 

 

카슈가르 (위구르어: قەشقەر/K̢ǝxk̢ǝr, 중국어: 喀什, 병음: Kāshí, 카스)는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에 위치한 도시이다. 1999년의 조사에서 인구는 20만5,056명이다.


지형


카슈가르는 텐산 산맥주위의 타클라마칸 사막의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고도 1,290미터이며, 북위 39° 24’ 26” , 동경 76° 6’ 47”에 위치하고 있다.


교통


이곳은 카라코람 고속도로(Karakorum highway, KKH)의 시작점이며 파키스탄과의 국경인 쿤자랍 고개를 넘어 이슬라마바드까지 연결된다. 파키스탄과 연결하는 정기 버스 노선이 존재하한다. 또한, 키르키스탄으로 가는 길도 있다.


1999년 10월, 카슈가르는 신장성 남부를 가로지르는 란신 철도(南疆铁路, Lanxin Railway)가 개통되었다.[1] 카슈가르로 가는 기차는 주로 우루무치에서 매일 출발하며, 약 24시간 정도 소요된다. 2007년 현재, 이 철도는 파키스탄과 연결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주민


대부분의 주민이 위구르족이다.


일요시장

카슈가르 국제시장


카슈가르에서는 매주 일요일 유서깊은 큰 시장인 일요시장이 열린다. 이 곳에서는 주변 농민들이 직접 제배한 다양한 과일과 채소, 공예품 등이 거래된다. 고대로부터 일요시장은 실크로드에서 가장 큰 시장중에 하나였지만, 지금은 그 명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원래는 일요일에만 열리는 비상설 시장이지만, 최근에는 상설 시장으로 발전하였다. 카슈가르를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느 시장이다. 시장에서는 주변 호탄 등지에서 만들어진 비단, 카펫, 캐쉬미어, 옥, 귀금속들도 거래된다.


볼거리


카라쿨 호(카라쿨 호수)

모하메드 카슈가르의 묘

막이불탑

민가(民家)/고(古)주택가

위스푸하스모스크

아이티걸 모스크-애제타이 청진사

직인가(수공예품 거리)

향비묘 (아팍호자의 묘)

반초성(班超城); 서역을 제패한 반초의 유적

대바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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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喀什), 아니 위구르어로 '카슈가르(Kashgar)'의 아침은 10시부터 시작된다.


중국 최서단 신장위구르족 자치구(新疆維吾爾族自治區) 남서부에 위치한 카슈가르는 2천년 동안 실크로드의 무역상들이 거쳐 갔던 동서교역의 중심지다. 중앙아시아의 파키스탄과 인접한 카슈가르는 중국 수도인 베이징과 3시간의 시차가 난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하나의 중국(統一中國)'을 원칙으로 러시아와 인접한 두만강 변에서 카슈가르까지를 모두 통일 시간대로 묶어버렸다.


그래서 카슈가르에서는 중국 시각 오전 9시가 훨씬 넘어서야 해가 뜬다. 매시간 중국 전역 라디오에서 울려나오는 '베이징 스젠(北京時間)'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정부가 시간대를 하나로 묶었지만, 신장의 위구르인들은 현지 사정에 맞게 생활한다. 카슈가르의 모든 일상 업무는 오전 10시 돼서야 시작된다.


빼앗긴 땅,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위구르 문화


카슈가르를 아우른 신장자치구는 본래 투르크 계열 민족들의 땅이었다. 지금은 정치·경제적 실권을 쥔 한족을 비롯, 회족·몽골인·만주인·타지크인·러시아인 등 13개 민족이 살고 있지만, 8세기 이후 신장은 인구가 가장 많은 위구르족을 위시한 투르크 민족들에게 장악돼왔다.


오늘날 중국정부가 신장을 점령하고 자국의 영토로 삼은 것은 역사적 유래에 의해서다. 기원전 2세기 한무제의 명을 받은 장건에 의해 개척된 실크로드를 따라 한나라는 타림분지에 서역도호부를 설치했다.


수세기 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신장을 중국이 복속시킨 것은 7세기 당나라 때. 몽골어로 '아름다운 목초지'이란 뜻의 신장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烏魯木齊, Urumqi) 동쪽으로 130여㎞ 떨어진 곳에 북정도호부를 설치하면서부터다. 8세기 위구르족에 의해 당나라가 쫓겨나자, 그 뒤 천년동안 신장 각지는 여러 투르크 민족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리고 18세기 중엽 준가리아를 정복하고 카슈가르 칸국을 병합한 청나라는 우루무치에 안서제독을 주둔시키면서 다시 신장을 장악했다.


당시 신장 투르크 민족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었는데, 청은 강력한 대이슬람 배척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격분한 이슬람교도들은 19세기 중엽 대규모 반청독립운동을 일으켰지만, 태평천국 혁명을 압살한 청조 대신 좌종당(左宗棠)은 무력으로 무슬림들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1944년 국공내전의 혼란기에 위구르족과 카자흐족은 다시 봉기하여 동(東)투르키스탄공화국을 세우지만, 중국의 새로운 주인인 공산당 인민해방군에 의해 붕괴됐다.

 

                ▲ 카슈가르의 한 광장에서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위구르 노인들. ⓒ 모종혁

 

▲ 한 이슬람사원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위구르족에게 이슬람은 삶 그 자체이다. ⓒ 모종혁

 

우루무치를 거쳐 카슈가르에서 만난 위구르족은 외모부터 한족과 다르다. 검붉은 피부, 큰 키에 장대한 골격, 머리에 '도빠'를 쓴 남성들과 온몸에 '차도르'를 걸친 여성들. 이들에게서는 중국보다는 중앙아시아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2000년 현재 신장 인구 약 1600만명 가운데 위구르족은 공식적으로 750여만명이다. 중국에서는 좡(壯)족, 회(回)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투르크족의 후예, 우즈베크족의 사촌이라는 위구르족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소수민족과 종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도 이슬람교는 위구르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1960~70년대 중국정부는 철저한 신장의 복속을 위해 위구르족이 쓰는 아랍문자를 한어병음화시키고 상당수의 이슬람사원들을 철거했지만 그 뜻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10년 사이 달라진 카슈가르... 위구르 도시는 어디 갔지?


나는 지난 1997년 카슈가르를 처음 방문했다. 당시 우루무치에서 카슈가르는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뜻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는 3일간의 긴 여정이었다. 그러나 올해 다시 찾은 카슈가르는 비행기로 단 1시간 반만에 도착했다. 2001년에는 우루무치와 카슈가르간 총길이 1500km의 남신강 철도도 개통됐다.


편리해진 교통 때문일까. 카슈가르는 더 이상 낭만적인 이국 풍경의 오아시스 도시가 아니었다. 넓게 뚫린 대로변의 멋진 현대식 건물들, 수없이 오가는 차량행렬, 도시 곳곳에서 쉽게 부딪칠 수 있는 한족들. 중국의 여느 도시와 별 차이가 없어졌다.


택시를 운전하는 위구르족 이시알씨는 "1990년대만 해도 카슈가르 주민들 90% 이상은 위구르족이었는데 지금은 한족들이 1/3 가량 되는 것 같다"면서 "카슈가르에서 돈벌이 되는 비즈니스는 모두 한족이 잡고 있다"고 말했다.

 

▲ 퇴락한 카슈가르의 구시가지. 이곳이 중국정부에게는 돈벌이의 한 수단일 뿐이다.ⓒ 모종혁

 

                               ▲ 동바자르에서 장사를 하는 위구르 상인.ⓒ 모종혁

 

서역(西域) 최대의 장터인 카슈가르의 명물 동(東)바자르도 변해있었다. 과거 노점 위주의 시장은 4년 전부터 지방정부에 의해 상가로 정비되었다. 지금도 재래시장의 열기는 어느 정도 남아있지만 매주 일요일 수만명의 상인들이 수레와 마차를 타고 몰려들었던 이국적인 장터 풍경은 거의 사라졌다.


동바자르에서 도빠를 파는 카심(가명)씨는 "여기뿐만 아니라 카슈가르 주변 마을마다 상설시장이 들어서 구태여 동바자르에 올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서 "주변에 사는 위구르족이 모두 모여 대화의 장 역할까지 했던 바자르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중국정부의 노력이 들어먹히는 꼴 아니냐"고 말했다.


주요 상권이 외지의 한족들에 의해 장악되고 현대식 빌딩들이 속속 들어서는 카슈가르지만, 중국정부는 관광사업을 위해 위구르족이 거주하는 구시가지 일부를 남겨두었다. 이마저도 몇 곳은 입장료를 받고 들여보내고 있다. 원주민인 위구르족의 생활 터전이 관광자원으로 전락한 것이다.


구시가지에서는 할 일 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위구르족 젊은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중국어 구사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카슈가르의 경제발전은 그림의 떡이다. 이에 비해 한족들은 카슈가르에 와서 쉽게 일자리를 찾는다.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에서 대학을 마친 왕샹(여)도 취직을 위해 카슈가르에 왔다. 현재 중국이동통신에 근무하는 그는 "우루무치에 거주하는 친지가 일자리를 구하기 쉽다고 권해 여기로 왔다"며 "회사 내 동료도 대부분 외지의 한족들"이라고 말했다.


카슈가르의 경제발전... 그러나 돈버는 사람은 한족

 

▲ 인민광장에 서있는 마오쩌둥 동상. 중국 3대 마오 동상 중 하나인 이 육중한 석상은 카슈가르의 위구르족을 내려보고 있다. ⓒ 모종혁


일반기업에서 취업하기 힘든 위구르족 청년들은 작은 자영업소에서 일하거나 직업을 찾아 고향을 떠난다. 극소수긴 하지만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 국경지대인 '황금초생달'에서 생산된 마약은 카슈가르·우루무치를 거쳐 중국 전역으로 퍼진다.


신장 출신 한족과 위구르족이 대부분인 신장 마피아는 할 일 없는 위구르족 청년들을 조직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중국 <난팡도시보(南方都市報)>는 "우루무치에서만 2000년 1톤에 불과했던 마약 소비량이 최근에는 약 7톤으로 늘었다"며 "신장 전역의 에이즈 감염자 1만2000명 가운데 1만명은 마약을 복용한 경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03년 12월 중국정부는 신장 분리독립운동을 벌인 4개의 위구르단체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작년 10월에는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둔 '동투르키스탄 해방조직(ETLO)'이 중국정부에 대한 무장투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신장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대테러전쟁에서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미국이나 자국내 소수민족문제를 안고 있는 러시아 등에게 위구르족 문제는 남의 일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투르키스탄의 영광'을 재현코자 하는 위구르족의 염원은 불가능해 보인다. 석유·천연가스 등 무진장한 지하자원과 실크로드 무역로의 요지인 신장을 중국정부가 놓아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카슈가르를 붉게 물들이는 중국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