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스탈린 낙점으로 지도자 훈련받아
[한국일보] 2008년 06월 25일(수) 오전 02:58
北정권 탄생비화 담은 '秘錄 - 평양의 소련군정' 출간
"박헌영과 政敵관계만은 아니었다" 등 통설깨는 주장 제기
학계선 "직접 지령내린 문건이라도 나와야… 무리한 추측"
남ㆍ북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해방 직후 정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김일성이 해방 3년 전부터 소련군에 의해 체계적인 정치ㆍ군사지도자 교육을 받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국후(62) 전 조선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전 평양주둔 소련군정 고위 고위정치장교와 구 소련 망명 북한 군ㆍ정 고위인사와의 인터뷰, 소련 국방성, 소련 공산당중앙위원회의 비밀문서 등을 분석해 <비록(秘錄)- 평양의 소련군정>(한울아카데미 발행)을 냈다.
저자는 김일성, 오진우 등이 활동하던 ‘김일성 부대’가 소련극동군 산하 조ㆍ중 혼성 특수부대 제 88정찰여단 산하로 흡수됐던 1942년 당시 이 부대의 성격을 설명하는 문건을 공개하며, 이런 주장을 편다.
당시 이 부대 여단장이었던 중국인 저우바오중 중좌가 그해 8월 바실레프스키 소련극동군 총사령관에게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88정찰여단은 42년 6월 스탈린의 직접지시에 따라 창설됐으며 그 목적은 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 등의 빨치산 부대와 같은 군사ㆍ정치 전문가 양성이다.
저자는 “소련은 42년부터 극동지역 한반도에 일제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동유럽에서처럼 소련공산당의 위성국가를 세우기 위해 군사ㆍ정치지도자를 양성했다”고 주장한다. 이때부터 김일성이 소련군 장교복장으로 원산으로 들어오는 45년 9월까지는 스탈린이 향후 북한에 세워질 위성국가의 정치지도자로 김일성을 훈련시키는 기간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해방직후 국내와 해외를 대표하는 공산주의리더인 박헌영과 김일성이라는 공산주의 리더 가운데 누구를 북한의 지도자로 낙점할까에 대한 소련내부의 미묘한 분위기도 흥미롭다.
소련 군사장교인 코바렌코의 증언에 따르면, 박헌영이 46년 5월 KGB 지국을 통해 스탈린에게 공산당은 남한에서 평화적으로 활동해 인민들을 끌여들여야 한다며 김일성의 무장혁명노선을 비판하는 편지를 보내자 KGB는 김일성에게 노선을 시정하게끔 경고했다는 것이다.
군부와는 달리 정보기관 쪽에서는 박헌영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자신이 싫어하는 코민테른 활동전력이 없으며, 빨치산 운동을 해 다른 종파에 관여하지 않았고, 소련에 충성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김일성을 선택했다고 저자는 결론내린다.
한편 책은 46년 3월 박헌영이 미국의 U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임시정부가 창설될 때 김일성을 지지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북조선의 여러 당에서 김일성을 대통령으로 내세우면 우리 당(남로당)은 인민과 함께 지지한다”고 언급한 사실, 45년 10월 소련군 환영대회에서 김일성이 스탈린 만세와 함께 박헌영 만세도 외쳤다는 박병률 전 북한 강동정치학원장의 증언 등을 공개하며 김일성과 박헌영이 일관되게 정적(政敵)관계를 유지했다는 기존통념을 반박한다.
이에 대해 김성보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42년이면 스탈린이 김일성을 알지도 못하는 시기였으며, 스탈린이 직접 지령을 내린 문건 등이 나와야 진상이 파헤쳐 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광서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88정찰 여단은 일소중립조약(41년) 체결 직후 일본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소련이 극동의 공산주의 게릴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성격이 강한 부대”라며 “스탈린은 해방직후 유럽에 강력한 친소위성국가를 세우려 했던 반면, 한반도에는 최소한 소련에 적대적이지 않은 국가가 들어서면 된다는 전제로 정책을 추진한 한만큼 일찍부터 위성국가의 지도자를 교육시켰다는 것은 무리한 추측”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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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김일성을 지도자로 삼은 까닭은
[연합뉴스] 2008년 06월 23일(월) 오전 11:26
'평양의 소련군정' 출간(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948년 남.북한에 개별 정부가 수립된 이후 남한의 미군정에 대한 자료 발굴과 연구는 활발히 진행돼 왔지만 북한의 소련군정에 대한 연구는 자료 접근에 대한 어려움 등으로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해방공간에 대한 연구와 자료 발굴 작업을 해왔던 언론인 출신의 김국후 씨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방성, 외무성 고문서 보관소의 희귀문서들을 발굴하고 분석해 북한의 소련군정 3년에 대해 짜맞추기를 시도한 책 '평양의 소련군정'(한울아카데미)을 펴냈다.
저자는 우선 소련이 조만식 선생이나 박헌영 같은 인사 대신 왜 하필 당시 33세의 소련군 대위 출신인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선출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대답의 실마리는 1945년 8월24일 소련 제2극동전선군 제88정찰여단장 저우바오중 대좌가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이었던 바실레프스키에게 보낸 긴급보고서에서 발견된다.
저자는 제88정찰여단이 해방 3년 전인 1942년 6월 스탈린의 직접 지시에 따라 창설됐으며 목적은 정치.군사 지도자 양성에 있다는 내용의 이 보고서를 통해 제88정찰여단이 '해방 후 조선'의 정치.군사 지도자 양성소였고 김일성이 이미 해방 3년 전부터 이곳에서 지도자로 양성되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보고서에는 또 "금년 8월9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전체 여단 대원들은 일본 사무라이들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에 나서라는 전투명령이 하달됐습니다. 그러나 대일전투작전이 개시된 지 4일 후 여단의 대일작전계획이 전면 취소됐고 현재까지 여단을 이용하지 않고 있습니다"(58쪽)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88정찰여단이 실제로는 소련군의 대일전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처음부터 '숙명의 정적관계'였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재조명하는 문건도 눈에 띈다.
박헌영은 1946년 3월 미국 UP통신(현 UPI 통신의 전신)의 호이트 기자와 기자회견에서 호이트 기자가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가 창설될 때 대통령으로 김일성을 지지하는가"라고 묻자 "김일성 씨는 전시에 항일 빨치산 지도자였던 민족영웅이다. 그는 북조선 인민들이 지지할 뿐 아니라 남조선 인민들도 민족영웅으로 여긴다. 북조선의 여러 당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내세우면 남조선 인민들도 이를 지지할 것이다. 우리 당에서는 인민과 함께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밖에 소련의 각종 대남 전략이 결정된 1948년 6월의 제2차 남북지도자 연석회의 속기록 등도 책에 수록돼 해방 이후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전략적 접근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대일전 참여로 한반도 반쪽을 점령한 붉은 군대 소련군이야말로 3년여 동안 북한에 주둔하면서 오늘의 북한정권을 창출해 낸 실질적인 주역"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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