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깨달음

신심이 만드는 종교란?

한부울 2008. 6. 22. 19:25
 

신심이 만드는 종교란 무엇인가?

누런 황금 물질이 저절로 생성되게 하는 존재 인 것 같다.

이제는 누런 황금 뿐만 아니라 높이 선 교회가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것 같다.

이것을 질곡이라고 하고 싶다.

지금처럼 질곡에 빠진 종교가 왜 필요한가?

필요한 신들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자들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 같다.

종교라고 하여 신비하게만 여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종교이기에 이젠 간단명료한 답이 필요한 것 같다.

답은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신심은 자기을 알아 깨닫고 자기조상과 선조를 극진하게 섬기라는 것에 있다 할 것이다.

그것이 본래의 종교이다.

종교라는 단어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개념부터 먼저 정리하고 깨닫고 그것이 주는 것을 새롭게 아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 위 할아버지 또 그 위에 할아버지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분들이 아니면 나란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일 위로 가면 최고 조상님이 존재한다.

그것이 본래의 종교이다.

 

종교는 신을 모시고 또는 섬기는 일연의 행동이다.

신은 무엇인가?

우주만물과 인류를 창조하고 구원하는 존재하고 정의된다.

아니 사람이 죽어 사람의 기억으로 남기는 것이 신이다.

부처님도 그렇고 예수님도 그렇고 알라신도 그렇듯 다 돌아가신 분들이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신이 누구이겠는가?

전혀 나를 알지 못하는 신인가?

나를 알 수 없는 신을 믿으려 안달한다.

조상님을 모시고 내 선조들을 모시는 것이 곧 종교라 했다.

이러한 우리민족의 종교관을 인정하고 있는 곳은 불교와 천주교이다.

과거 역사에서 제왕들이 천신을 모시는 것은 웃대 조상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힘을 빌리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제왕이라고 해도 약할 수밖에 없으니 보호받으려는 심리는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제왕이라 할지라도 신은 천제, 상제라고 하는 웃대조상신이다.

평민들도 마찬가지다.

웃대 조상님이시다. 

평민이라고 할지라도 그 웃대조상은 천제가 되고 상제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분들이 비록 신체는 사라졌다해도 살아 있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소유하였다고 믿기 때문에 그래서 자손들이 자신들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의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때  이치적으로도 타당하고 논리가 맞는 이야기다.

굳이 나를 알 수 없고 전혀 모르는 신들을 애써 찾아가 이름을 적고 봉투를 내밀고 십일조를 내고 공양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니 나도 하고 가족의 안위를 빌고 기도한다고 한다.

그렇다 알아준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구상에 이미 60억이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 모두가 똑같은 바람을 갖고 있는데 신이라고 한들 차별을 둘 수 없다고 본다면 너무나도 골치가 아픈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더군다나 우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던 사람도 아니고 인종적으로 전혀 다를뿐만아니라 언어적으로도 말이 통하지 않는 부처님, 예수님, 알라신에게 빌고 기도한다고 그분들이 어떻게 나를 알아 줄 것인지 의문도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모호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신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종교는 복잡하고 먼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마음속에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 같다.

내 마음속에 있는 신들은 내 조상님과 나를 아는 선조들만 하더라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과대하게 욕심을 낼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 이상의 마음속에 지킴이는 불필요한 것이다.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마음속에 앎과 상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자기 조상과 선조들은 모시지 않으면서 부득불 자기존재가치도 인정할 수 없는, 더욱이 나란 존재자체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외국 신에게 의탁하고 애걸복걸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지금 당장 느껴 모든 것은 나의 마음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하는게 먼저라고 본다.

그런 이치가 아니면 고집하거나 우기지 말라.

그러한 것이 넘치면 스스로가 상충이 되는 것은 물론 독단적인 어거지가 되어 내종교만 고집하게 되는 것이 현실에서 목도하고 있는 꼴사나운 행태이다.

내 조상만이라도 잘 섬긴다면 그것이 곧 천제를 섬기는 것이고 상제를 섬기는 것이니 이만하면 신심이 넘쳐나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남의 신이 나를, 자신을 돌 봐 줄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갈망이라 생각한다.

내 주위에 늘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는 조상과 웃대조상님들이 날, 우리 자신을 지켜 주실 것이 당연한데 엉뚱한 곳에서 찾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아를 알면 무엇이 더 부족한가?

갈망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아닌가?

조상님들의 열성적인 노력과 성의를 몰라주는 자손들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지금도 엄한 곳에서 신심을 경쟁적으로 내고자 안달하는 자손들 주위에서 많이들 섭섭해 하실 것이다.

종교? 그것은 바로 내마음속에 신심이 있음을 지금부터라도 바로 알고 사는 것이다.

이제는 신심을 이용하여 누런 황금을 쌓으려고 하거나 높이 선 교회를 더 높이 세우려고 하고 내 종교만을 외치는 질곡에서 부터 빠져나오고 더 보태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하지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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