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黃帝 민족주의’ 띄운다
[동아일보] 2008년 04월 05일(토) 오전 02:55
허난성 염제 - 황제 조각상 성지화
“중화 자부심”… 소수민족 불만 무마
중국 허난(河南) 성 정저우(鄭州) 시의 바위산에 새겨진 염제(炎帝·중국 고대 불의 신)와 황제(黃帝)의 거대한 얼굴 조각상(사진). 지난해 4월 20년 만에 완성된 이 조각상을 보기 위해 중국 각지에서 방문객이 몰리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티베트와 위구르자치구 주민 등 중국 소수민족의 독립 시위가 거세지는 가운데 ‘황제(黃帝)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최신호가 보도했다. 황제는 5000여 년 전 중국을 지배한 것으로 전해 내려오는 건국신화 속의 영웅이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의 불만을 잠재우고 이들에게 ‘하나의 중국’ ‘중화민족’의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황제 민족주의를 활용하고 있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황제가 중국 역사에서 아버지 같은 존재로 추앙받기 때문에 전 민족에 애국심을 고양하는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산시(陝西) 성 황제 사당에서 열린 추모제에 티베트를 포함한 소수민족 대표를 고루 초대했다. 7월에는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이 사당을 거쳐 갈 예정이다.
최근 티베트 사태가 터지기 전 중국 정계에서는 황제 추모제를 연례행사로 규정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황제 추모제가 모든 분파와 민족의 힘을 통일하고 화합을 도모한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황제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산시 성과 허난 성 정부는 서로 황제의 탄생지라고 주장하며 각종 행사와 기념지 조성에 수백만 달러의 예산을 쓰고 있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높이가 106m에 이르는 허난 성의 염제와 황제 얼굴조각상은 이미 성지가 됐다. 허난 성 정부는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는 명절인 청명(4일)을 맞이해 이달 중 이 지역의 방문자가 2만 명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민족들은 중국 정부와 황제 신봉자들이 조장하는 황제 우상화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이 잡지는 보도했다.
남원상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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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중화인은 황제 후손... 뭉치자!
[오마이뉴스] 2008년 04월 07일(월) 오후 06:39
▲ 황제릉 헌원묘당 안에 모셔져 있는 황제 석상. 중국은 이 석상이 2000여 년 전 한나라 때 만들어졌다면서 황제의 생전 모습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주장한다. 모종혁
"황제는 영원히 변치 않는 중화민족의 시조다."
"황제의 혼과 정신을 받들어 민족혼을 불러일으키자."
지난 4일 중국 산시성 옌안시 황링현에는 홍등에 매달린 노란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올해부터 법정 공휴일로 지정된 청명절을 맞아 황제릉에서 거행된 공제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다. 이날 황제릉에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 화젠민과 산시성 당서기 자오러지를 비롯해, 중국과 지방의 당·정·군 지도자 8000여 명이 운집했다.
오전 9시 50분 웅장한 헌원전 아래 중국 지도자들이 도열한 가운데 공제는 시작됐다. 중국 전역 31개 성·시·구와 타이완·홍콩·마카오를 상징하는 34번의 북소리와 함께였다. 위안춘칭산시성 성장은 황제의 업적을 적은 제문을 읽어 내려갔다.
"황제는 중화민족의 시조이자 만고생물의 창조자다…(중략)…5000년 이래 변치 않고 이어져 내려온 황제의 혼과 정신은 올림픽 성전을 이 땅에 개최하게 했고 앞으로 양안 통일의 초석이 될 것이다."
흐린 날씨에 간간히 빗방울이 날렸지만, 공제에 참석한 중국 지도자들은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식후 공연까지 1시간여 동안 진행된 황제릉 공제는 중화민족의 부흥과 단결을 확인하는 거대한 정치 이벤트였다. 56개의 누런 깃발을 흩날리며 통일의 춤을 추는 무희의 공연도 중국 56개 민족의 단결을 상징하고 있었다. 34번의 북을 친 것도 타이완까지 통일하여 대중화의 울타리 안에 묶겠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참석인사 중에는 허허우화 마카오 행정장관을 위시하여 타이완·홍콩·마카오와 세계 각국에서 온 수백여 명의 정치·경제계 고위급 요인도 눈에 띄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공제에 참석하기 위해 자비로 타이완에서 날아온 일반인도 적지 않았다"면서 "황제릉 공제는 중화민족이 염황(염제 황제)의 자손임을 전 세계에 인식케 하는 행사"라고 보도했다.
▲ 청명절 황제릉 공제가 끝난 뒤, 행사에 참석한 중국인들은 기념사진을 찍느라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모종혁
▲ 한나라 때 무제가 조성했다는 황제묘에서 참배하는 사람들. 황제의 시신이 정확히 어디에 묻혔다는 역사적 고증은 없지만, 중국인들은 지금의 황제릉에 황제가 잠들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모종혁
공휴일로 부활한 청명절, 국가행사로 자리매김한 황제릉 공제
매년 4월 4일 청명절은 중국 전통명절로, 조상의 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돈 종이를 태우는 풍습이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래 청명절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았었다. 청명절 풍습을 미신이라 여겨 문화대혁명(문혁) 시기에는 조상숭배와 성묘행위를 철저히 금지하기도 했다.
중국정부는 전통 명절과 문화의 의의를 되살리고 이를 지켜온 타이완·홍콩·마카오 주민과 해외 화교를 아우르려는 의도로 올해부터 청명절과 단오절·중추절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했다.
황제릉은 산시성 수도인 시안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황제릉에서 처음 제사를 지낸 것은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자와 맹자의 어록에 보면, 고대 전설 속의 인물 황제를 한족의 시조신으로 받들고 황제릉에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 나와 있다.
기원전 3세기 진나라 때부터 조성된 황제릉은 한 무제가 직접 찾아 제사를 올리면서 국가적인 성지로 변모했다. 이는 20세기 들어서도 변치 않아 1912년 중화민국 임시 총통이 된 쑨원(孫文)이 한 일 중 하나는 사람을 보내 황제릉에서 제사를 지낸 것이었다.
1937년 시안사건 후 제2차 국공합작을 이룬 국민당 장제스와 공산당 마오쩌둥도 앞다투어 황제릉을 찾았다. 장은 "황제께서 천명을 받아 나라를 세우고, 추악한 치우를 주살하여 화와 이를 구분 지었다"고 제문을 썼고, 마오는 "황제가 위대한 창업을 하셨으나 후예들은 용맹스럽지 못해 나라를 망쳤다"며 황제의 위대함을 노래했다.
문혁 시기 폐허가 되었던 황제릉을 다시 성역화한 것은 지난 1992년. 중국정부는 황제릉의 대대적인 보수사업을 위해 12년 동안 3억4000만 위안(한화 약 476억원)을 쏟아 부었다. 해외 화교들이 황제릉기금회를 통해 내놓은 헌금만도 2억 위안(약 280억원)에 달한다.
2004년 오랜 대역사 끝에 새로이 단장한 황제릉은 전체 면적이 56만7000㎡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이 때문에 황제릉은 '천하제일릉'이라고도 불리는데, 중국정부는 성역화를 완성하면서 그간 중단해왔던 청명절 공제도 재개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황제릉에 전시된 황제 족인. 황제를 전설 속 영웅으로 묘사하여 만들어진 과장된 유물로, 한나라 때 석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종혁
전설 속의 인물 역사화... "중화민족은 염황의 자손" 주장
사회주의 정권 아래 청명절 공제가 다시 열리자, 중국인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2004년 첫 공제에서는 홍콩 영화배우 청룽이 사회를 자청하며 달려왔다. 황제릉을 찾는 참배객도 계속 늘어났다. 참배객 수는 1999년 30만 명에서 작년에는 50여만 명으로 증가했다. 1992년 이래 황제릉을 찾은 타이완·홍콩·마카오 주민과 해외 화교만 10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기자가 만난 레슬리 초우(41) 부부도 미국 국적의 화교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을 함께 데려온 그는 "황제릉 방문을 위해 일부러 산시성에 왔다"고 밝혔다. 초우는 "4년 전 중국에 왔을 때도 황제릉을 찾았다"면서 "이번이 중국 초행길인 자녀들에게 중국인이 황제의 자손임을 일깨워 주기 위해 황제릉을 다시 방문했다"고 말했다.
상하이에서 사업하는 왕궈안 타이완 연쇄점협회 이사장도 마찬가지다. 벌써 세 차례나 청명절 공제에 참석한 그는 "황제릉을 참배하는 것은 곧 해외 화교도 뿌리를 찾는 중요한 의식"이라고 강조했다. 왕 이사장은 "조상의 은덕을 잊지 않는 것은 중국인의 전통 덕목"이라며 "청명절 제사는 타이완에서도 굉장히 중시하기에 이번 중국정부의 법정 공휴일 지정은 좀 늦은 감이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청명절 공제 후 해외 화교들은 옌안시 정부와 합동으로 황제묘 염황자손림 식수행사를 열었다. 문혁 시기 무차별적인 벌목으로 황폐해졌던 황제릉 주변 산림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이뤄진 지속적인 식수사업을 통해 울창하게 변모했다. 중국정부는 올해까지 황제릉 외곽지역까지 산림 복개율을 24%에서 40%로 올리려 하고 있다. 산시성 해외우호회에 따르면, 해외 화교들은 매년 100만 위안(약 1억4000만원) 이상을 식수 비용으로 헌금하고 있다.
▲ 한 무제가 직접 황제릉을 찾아 제사를 지내고 올랐다는 한무선대. 한 무제는 황제릉을 성역화한 최초의 황제다. 모종혁
▲ 황제묘 아래 해외 화교가 헌금한 돈으로 조성되는 염황자손림. 지금도 전 세계에 흩어진 화교는 황제릉을 가꾸기 위해 막대한 성금을 내고 있다. 모종혁
공산주의가 사라지는 중국, 중화민족주의가 대체하다
황제릉 공제에 해외 화교의 발길이 줄을 이으면서 산시성 정부는 이를 투자 유치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제 하루 전 시안에서 열린 제12회 동서부 투자무역상담회 기자회견에서 징준하이 산시성 부성장은 "이번 공제를 상담회에 맞추어 더욱 성대하게 치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징 부성장은 "황제릉을 찾아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려는 해외 화교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산시성의 투자 가치를 발견하는 화교 기업이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황제릉 덕택에 황링현 경제도 호황을 맞고 있다. 해마다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황링현은 관광객이 뿌리는 돈으로 매년 수천만 위안의 재정수입을 얻고 있다. 푸젠성에서 온 첸위한(46)은 "솔직히 황제릉 자체는 별반 볼거리가 없다"면서 "입장료 91위안(약 1만2740원)은 중국 내 관광명소에서도 가장 비싼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첸은 "중국인이 황제릉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면서 "민족의 시조인 황제를 찾아 13억 중국인이 염황의 한 줄기에서 나온 후손임을 되새기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일 <환구시보>는 한 베이징 출신 학자의 발언을 빌려, "미국의 11개 주요 법정 공휴일은 종교성과 정치성이 있고 미국의 건국 역사 및 전통 문화와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역시 전설 속의 인물인 황제 및 염제와 연관된 의식도 국가대전으로 지정하자는 것이다.
<환구시보>는 "사람은 누구나 조상이 있듯이, 중국인 중 염황의 자손이 아닌 자가 없지 않느냐"며 "중화민족 공동의 선조에 대한 제사를 성대하게 치름으로써 민족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것"을 역설했다.
공산주의 사상이 국가통치이념으로 모호해진 오늘날 중국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전 세계에 흩어진 중국인들의 뜻을 모으고 양안 통일을 촉진할 수 있는 공통이념. 공산주의가 사라진 중국 대륙에 새로운 종교로 정착시킬 수 있는 사상체계. 번영하는 경제에 대한 자부심을 고대의 영화로부터 찾으려는 종교적 복고주의. 염황을 앞세운 중화민족주의의 바람이 황제릉에서 거세게 불고 있었다.
▲ 황제릉 헌원전 앞 공제 행사장 주변에 나부끼는 깃발. 황제의 표상인 용이 그려져 있다. 중국인은 자신들을 용의 후손이라고도 부른다. 모종혁
모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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