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국물도 없다!" 사이버 인민재판
[오마이뉴스 2008.04.28 13:27:05]
▲ 왕첸위안에 관한 소식을 특집으로 만들어 왕을 민족 반역자로, 왕의 고향집을 사진으로 공개한 한 커뮤니티 사이트 ⓒ 코알라닷컴
지난 9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듀크대의 한 광장. 같은 날 베이징올림픽 성화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 대학 내에서는 티베트 사태를 둘러싼 친·반 중국 시위대가 대치했다.
티베트 지지 시위대에서 한 중국 유학생이 걸어나와 친 중국 시위대로 걸어갔다. 그는 100여 명의 중국인들에게 티베트 사태의 진실을 이해할 것과 티베트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이렇게 친·반 중국 시위대간의 대화를 중재했던 왕첸위안(20)은 그 날 이후 13억 중국인으로부터 민족반역자로 낙인찍혔다.
현재 중국 인터넷상에는 왕첸위안에 대한 마녀사냥이 극에 치닫고 있다. 중국 국영 CCTV는 듀크대의 시위 사건을 보도하면서 왕을 '추악한 유학생'으로 낙인찍었다. 중국 네티즌은 벌떼같이 달려들어 왕의 신상 정보를 캐냈다. 왕과 부모의 이름·신분증 번호·고향 주소·전화 번호·왕의 출신 학교 등이 인터넷에 올려져 있다. 부모가 살고 있는 집은 사진으로 공개되었고 누군가 집 앞에 인분까지 뿌려놓았다.
'칭다오의 수재'는 왜 마녀가 됐을까
왕첸위안에 대한 공격은 집단 이지메의 차원을 넘어섰고 중국 네티즌은 그를 인격 파탄자로까지 내몰고 있다. 한 네티즌은 듀크대의 반중 시위대를 분석하면서 왕에 대해서 누군 "CIA 정보원"이고 누군 "티베트 망명정부의 조직원"이라 주장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왕이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췄고 듀크대로부터 4만9700달러의 장학금을 받아 유학한 사실은 오래 전부터 미국정부와 모종의 관계를 맺어왔음을 나타내는 근거로 포장되고 있다. 왕의 고교 동창이라며 왕이 재학 시절부터 정치적 야심이 커서 미국으로 망명한 뒤 정계에 투신할 것이라는 글도 떠돌고 있다. 왕을 갈가리 찢고 모욕하는 합성 사진과 '암살하자'며 구체적 방안까지 나왔다.
한 때 '산둥성 칭다오의 수재'로 작년 7월 지역신문에까지 난 왕첸위안은 "돌연 세계 인구의 1/6이 내 개인정보를 알게 됐다"며 허탈해했다. 왕은 "나는 티베트의 독립은 반대한다"면서 "중국인은 억압된 티베트의 현실을 인식하고 티베트인에게 자유를 줘야 할 것"이라 말했다.
"티베트 지지자와 중국인 사이에 대화와 이해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왕은 "중국인이 티베트어를 배우고 티베트인은 중국어를 배운다면 티베트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왕은 티베트 독립 지지자가 아닌 티베트 사태를 제대로 인식하자는 '80후 세대' 지식인이었던 것.
왕첸위안에 가해지는 사이버 테러의 주력군은 단연 80후 세대다. 감성적 민족주의에 무장한 이들은 '매국노 인육광풍'이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특정인 심판에 골몰한다.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 바이두와 토론사이트 톈야에는 민족 반역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신상정보가 수천 건씩 내걸려져 있다.
'마녀'를 사냥하려는 네티즌은 순식간에 수천·수만 명으로 불어나 특정인의 이름·직업·학력·주소 등을 들춰낸다. 찾아낸 특정인은 인터넷 '인민재판'을 거쳐 매국노로 단죄된다.
지난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성화를 봉송하던 장애인 펜싱선수 진징을 공격한 티베트인 색출사건은 대표적인 예다. 당시 현장을 사진으로 찍은 한 쓰촨대 출신 유학생의 공개수배 제안은 순식간 6000만 명의 네티즌이 호응했다.
11일 대상자로 지목된 미국 솔트레이크 거주의 한 티베트인은 이름·주소 뿐만 아니라 자동차 사진까지 인터넷에 올려져 큰 곤욕을 치렀다. 수천통의 협박편지를 받은 그는 미국을 떠난 적이 없다는 알리바이를 입증해서야 겨우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났다.
▲ 중국 네티즌 인구 추이 ⓒ 중국인터넷네트워크정보센터
▲ 중국 연령별 네티즌 비중 ⓒ 한국무역협회
인터넷 인민재판 벌이는 2억 네티즌
최근 벌어지는 인터넷 마녀사냥은 중국 네티즌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2007년 12월 현재 중국 네티즌 수는 2억1000만명. 최대 네티즌 보유국인 미국의 2억1500만 명보다 500만 명 적은 세계 2위다.
24일 <동방조보>는 "2월 말 중국 인터넷 인구가 2억2100만 명을 돌파하여 세계 최대가 됐다"고 보도했다. 중국 네티즌 수가 매년 18.5% 느는 데 반해, 미국은 2.2% 증가율에 그쳐 순위가 뒤바뀐 것. 중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평균치인 19.1%도 못 미쳐 앞으로 중국 네티즌 수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한 해만 7300만 명이 증가했다.
1월 중국 인터넷협회와 인터넷데이터센터가 공동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연령층은 19~30세의 80후 세대가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연령대로 보면 19~25세가 전체 네티즌의 46.4%, 26~30세가 25.4%로 다른 연령층을 압도했다.
18세 이하 이용자 수가 급증하고 31세 이상 네티즌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80후 세대의 인터넷 이용률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농촌 지역의 인터넷 인구도 폭증하여 2006년 2311만 명에서 2007년 5626만 명으로 127.7%의 놀라운 증가율을 기록했다.
▲ 중국 인터넷 분야별 사용도 ⓒKOTRA
중국 네티즌 2억2100만 명 중 80후 세대가 71.8% 차지
외형적 성장 뿐만 아니라 내적 발전도 이어지고 있다. 2007년 중국 인터넷 사용비는 3988억 위안(한화 약 59조8200억원)으로 2006년 대비 44.1% 증가했다. 중국 포털사이트 매출액도 123.5억 위안(약 1조852억원)으로 22.3%나 늘어났다.
인터넷 전문조사기관 아이리서치(iResearch)는 "작년 중국 인터넷쇼핑시장 규모가 561억 위안(약 8조415억원)으로 전년대비 117.4%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아이리서치는 "온라인 광고시장 규모는 13억 달러로, 인터넷은 TV·신문·잡지와 함께 중국 4대 매체로서의 위상을 굳혔다"고 진단했다.
중국 인터넷의 규모는 팽창하고 있지만, 네티즌의 이용행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중국 인터넷협회와 인터넷데이터센터의 공동 보고서는 "중국 네티즌이 메신저 대화 39.7%, 신문 검색 20%, 온라인 게임 9.3% 등 순으로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용하는 메신저 프로그램도 중국인만 이용하는 QQ가 압도적으로 많아 폐쇄성을 드러냈다.
온라인 게임 이용자가 작년 480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7.1% 증가하고 판매수익은 105억7000만 위안(약 1조5855억원)로 61.5%나 급증했지만 문제점도 안고 있다. 네티즌 대부분(67.2%)이 무료 게임을 이용하고 수입이 없는 80후 세대 학생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중국 정부의 간섭과 통제도 자유로운 언로를 막고 인터넷 공간을 획일화시키고 있다.
지난 1월 중국 공안부 등 13개 정부기관은 오는 9월까지 인터넷에 유통되는 음란물과 반체제 게시물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다. 중국정부는 유해물 단속을 내세워 작년에만 4만4000개의 웹사이트를 폐쇄하고 44만 건을 삭제했다. 중국 인터넷 유해물 단속사무소는 해적 출판물 1억3600만 건, 포르노물 372만 건, 밀수 디스크 326만 건, 불법 신문 등 매체 320만 건 등을 단속하기도 했다.
티베트 관련 정보에 대한 단속은 철저해 중국 내에서는 티베트 망명정부 관련 사이트의 접속이 불가능하다. 중국에 비판적인 홍콩 언론매체 사이트는 오래 전부터 접속이 금지됐고, 지난 1~2년 사이 접근이 허용된 외국 언론 홈페이지도 티베트 사태 후 접속이 일시 차단됐다.
중국 정부도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시인하고 있다. 1일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부 사이트가 불법적인 내용을 전파하여 접근 금지를 취했다"면서 "중국 법률은 인터넷 상 위법 행위에 대한 제한을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공안부는 인터넷 경찰을 두어 네티즌이 사용하는 웹 사이트상에 툭 튀어나와 불법 콘텐츠를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한다.
▲ 중국 인터넷 소비규모 추이 ⓒ 한국무역협회
▲ 중국 인터넷게임 사용자 추이 ⓒ 한국무역협회
한국인·한류까지 화풀이 대상으로... 미숙함과 편협성 드러내
자유로운 언로가 막힌 상황에서 중국 네티즌은 인터넷을 은밀한 욕구 분출의 공간으로 활용한다. 지난 1월 말 중화권 전역을 들끓게 했던 홍콩 톱스타들의 누드사진 파문이 대표적이다.
홍콩 유명배우 에디슨 찬이 성관계를 맺은 여배우들의 정사·누드 장면을 찍어 보관하던 중 노트북 수리기사에 의해 사진을 유출되어 중국과 홍콩뿐만 아니라 대만, 해외 화교 사회까지 집단 관음증에 빠뜨렸다. 관련 연예인은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고 청순한 이미지의 톱스타들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
중국 정부는 누드 사진의 유통을 엄금했지만, 지금도 중국 대형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원본 사진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원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한 네티즌(24)은 "중국에서 인터넷 하는 사람 셋 중 둘은 사진을 보았을 것"이라며 "한 때 또래 친구들 간에 메신저를 통해 돌려보는 것이 유행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에 사진이 유출되면서 관련 여배우들이 자살기도 및 이혼·파혼을 겪은 고통은 전혀 관여치 않았다. 변호사로 미국에서 연수 중인 겅판(30)은 "중국 인터넷에 개인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중국인의 악습이 인터넷 상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젊은 중국 네티즌의 화풀이 대상에는 한국도 벗어나질 않는다. 5일 광둥성 광저우 둥펑광장 아파트 단지 건물 외벽에서 인기 탤런트 탄징(여)이 매달린 채 변사체로 발견됐다. 반라에 속옷만 입은 상태였다.
중국 공안이 사건 발표에 미적대면서 인터넷에서는 80후 세대 네티즌을 중심으로 탄징이 한국인에 의해 타살됐다는 주장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탄징이 사망한 아파트가 한국 유명 항공사의 직원 숙소였다는 헛소문이 떠돌았다. 사망 당일 탄징과 함께 있었던 한국인 남성 3명이 사고조사 없이 중국을 떠나 한국을 거쳐 멕시코로 도피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자신을 탄징의 지인이라 밝힌 한 젊은 네티즌은 "한국인이 탄징을 강간하려다 사고사로 위장한 것인데 공안이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수사에 어물쩍댄다"는 내용까지 유포시켰다. 공안은 탄징이 술을 취한 상태에서 화장실 창틀에서 실족, 전신 타박상을 입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거론된 한국인과 항공사는 명예가 크게 손상된 뒤였다.
한류 붐을 시기하여 한국드라마 저지운동을 벌이는 인터넷 카페도 등장했다. '만명 서명' 운동을 조직, 주도하는 이들도 80후 세대의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이다. 그들은 "중국인을 존중하지 않는 한국 드라마를 보지 말자" "반복적으로 방영되는데 이젠 질렸다" 등 감정적인 목소리를 쏟아내며 한국 드라마 타도를 외치고 있다.
언로의 자유가 제약된 상황에서 맹목적 집단주의에 매몰된 중국 80후 세대의 미숙함과 편협성이 인터넷에서 표출되는 것이다.
▲ 수많은 중국 네티즌이 PC방에서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있다. 80후 세대는 인터넷을 통해 은밀한 욕구를 내뱉고 있다. 러훠PC방체인
모종혁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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