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코소보ㆍ티베트ㆍ중동, 그 끝나지 않은 '피의역사' 지구촌 화약고를 가다

한부울 2008. 4. 13. 16:25
 

코소보ㆍ티베트ㆍ중동, 그 끝나지 않은 '피의역사' 지구촌 화약고를 가다

[헤덜드경제]2008.04.12.10:37 


그들은 왜 다시 총을 드는가

 

 

1,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한 세기를 보낸 이후 지구촌은 들떴다.

오랜 분쟁의 역사가 막을 내리고, 진리의 새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미국 역사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 을 말했을 때, 그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 주도의 세계 평화질서 유지), 또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종착역을 떠올렸다. 4000년 가운데 3700년을 전쟁으로 점철한 인류사에 새로운 지평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끊임없는 전쟁과 좌ㆍ우 이데올로기를 대신한 건 그러나 평화와 안정이 아니었다.


민족간, 종교간 갈등이 빚어내는 국지 분쟁이 21세기 벽두를 헤집고 있다. 특히 올들어 중국과 발칸반도, 터키-이란ㆍ이라크 접경지대에서는 소수민족의 저항이 유혈사태를 부를 정도로 극렬양상을 띠고 있다.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이 사라진 그 자리에 새로운 화약고로 똬리를 튼 소수민족 분리운동.


세계화의 흐름 속에 국가의 경계선이 날로 허물어지고 민족 개념이 고리타분해진 지금, 소외와 핍박의 마이너리티, 그들은 왜 다시 총을 집어 드는 것일까.

 


분쟁에서 평화로, 다시 분쟁으로= 지난 세기말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90년대 초 냉전의 한 축인 공산주의가 스스로 허물어졌다. 소련과 유고연방에서 자행된 참혹한 유혈진압과 인종청소는 구소련연방(CIS)과 발칸의 독립국들을 탄생시키며 조용히 일단락되는 듯 했다. 아프리카 르완다의 후투, 투치 양종족간 참살극도 극한의 대치국면을 벗어나 상처를 치유해가고 있었다. 북아일랜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분쟁 고착지역에서도 평화회담 소식이 연이어 들렸다. 테러 조직의 원조격인 스리랑카 타밀족의 반군 활동도 잦아들었다. 전쟁 없는 사회를 향한 인류의 바람은 새 천년의 초입인 지난 2002년, 21세기 최초의 신생 독립국 동티모르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세계 각 국은 이데올로기의 명분 없는 깃발을 접고, 경제발전이라는 하나의 지향점 아래 무한경쟁에 접어들었다. 그 후 6년이 흘렀다.


지난 2월 17일, 돌연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신유고연방의 일원인 코소보가 독립선언을 한 것이다. 코소보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세기말의 치유가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 말해준다. 열강과 국제연합(UN)의 종전 합의는 그들의 입맛에 맞춘 자의적 정치행위였고, 전쟁의 세기인 20세기가 남긴 상흔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림자로 남아 있다.


침묵하던 시간을 깨고 코소보가 봉기하자, 여타지역의 휴화산들도 일제히 용암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3월14일에는 은둔의 성지 티벳에서 독립을 향한 외침이 들려왔다. 중동의 집시 쿠르드 족은 터키 정부군을 향해 거센 저항의 총구를 겨눴다. 순탄하게 진행되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은 테러와 복수극을 반복하고 있다. 민족과 국가가 아무렇게나 뒤엉킨 아프리카에서는 콩고민주공화국, 케냐, 수단의 다르푸르 등지로 분쟁의 불길이 번졌다.


도미노 독립투쟁= 전 세계가 코소보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코소보 독립이 몰고 올 엄청난 원심력 때문이다. 만약 코소보가 유고연방에서 벗어날 경우, 당장 수십년을 억눌려 지내온 비슷한 처지의 소수민족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유럽내에서만 스페인 바스크와 카탈루냐, 벨기에 플랑드르, 키프로스 북키프로스, 몰도바 트란스트네스트르, 프랑스 사부아와 랑그도크, 코르시카, 영국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사르데냐와 시칠리아, 등 수많은 독립 요구 세력들이 존재한다. 이들 소수민족 대표들은 지난 2004년 코르시카에 모여 현행 유럽연합(EU)식 통합에 반대하는 공동투쟁을 다짐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 등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국 내 자치공화국들의 분리운동이 더욱 격렬해질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 의회는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한 바로 다음날 "코소보가 독립을 한다면 옛 소련권 공화국들의 분리 움직임에 대한 우리의 정책을 재검토할 것"이라며 "우리의 불가피한 새 정책에 대한 책임은 코소보 독립을 승인해 준 나라들에 있다"고 엄포를 놨다.


러시아내에는 지금 체첸을 비롯해 다게스탄과 잉구슈티야 등 21개 자치공화국들이 있으며 자치주와 자치촌까지 합하면 수백개에 달한다. 러시아에 인접한 그루지야도 중부내륙의 남오세티야와 북서부 압하지야, 내륙 아자리야 자치공화국 분리 움직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인접한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나고르카라바흐와 탈리쉬-무간 공화국이 분리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 정부와 오랜 구원을 갖고 있는 스리랑카의 타밀족과 인도-파키스탄 경계에 놓인 카슈미르 지역에서도 코소보가 점화한 분리 독립의 움직임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될 지 예측하기 어렵다.


왜 분리 독립인가= 19세기 민족 독립운동과 20세기 수많은 신생국의 탄생은 대부분 정치적 결단에서 나온 것들이다. 하지만 최근의 독립 움직임은 정치적 목적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 이데올로기를 대신하고 있는 종교,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인의 최고선으로 자리 잡은 경제적 이유와 맞물려 있다. 이른바, '21세기형 소수민족 분리운동'은 이처럼 복합적인 이유와 목적을 지닌 새로운 국제흐름이다. 티벳인들의 봉기는 신의 땅인 라싸(拉薩)를 되찾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라싸의 상권을 모조리 독차지하고 있는 한족에 대한 경제적 불만이기도 하다. 실제 티벳 주민들은 이번 유혈사태의 와중에 한족소유 상점을 대거 불태워버렸다. 피를 감수하며 체첸의 독립을 막고 있는 러시아정부의 머릿속에는 러시아의 분열 못지않게 풍부한 자원으로 가득찬 경제적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냉전당시, 국가보다 중요했던 이데올로기적 편가름이 사라진 것도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운동을 부채질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열강의 냉혹한 국제외교전이 도사리고 있다.


코소보가 유고연방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코소보를 독립시킴으로써 세르비아의 배후에 버티고 서 있는 러시아가 동유럽에서 지녀온 영향력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서구 선진국에 깔려 있는 것이다.


양춘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