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코소보,티베트 다음은? 소수 인종들의 독립투쟁

한부울 2008. 4. 3. 23:46
 

코소보…티베트…다음은? 소수 인종들의 독립투쟁 도미노

[위클리조선] 2008년 04월 01일(화) 오전 10:35


‘분노의 피’로 물든 티베트


티베트어 금지하고 사찰 6500개서 45개로

억압적 동화정책에 승려·주민들 결국 폭발


중국 시짱(西藏·티베트) 자치구의 수도 라싸(拉薩)는 티베트어로 ‘신의 땅’이라는 뜻의 고도(古都)이다. 해발 3700m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약 1300년 전부터 불교를 신봉해 오고 있는 티베트 민족의 성지이다. 이 도시가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인들이 흘린 ‘분노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중국 군경은 이 도시에서 벌어진 승려와 주민들의 분리 독립 시위(3월 14일)를 무력으로 강제 진압했다.


중국은 1951년 인구 270만명의 티베트를 무력으로 강제 합병하고 이곳에 시짱자치구를 세웠다. 이후 중국은 티베트에 강력한 동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6500여개에 달하던 티베트 사찰은 지금 45개만이 남아있을 정도다. 또 중국은 50만여명에 달하던 승려를 대부분 파계시켜 환속하도록 했다. 현재 승려 수는 2000여명으로 줄었다. 티베트에서 승려가 되려면 공산당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사회주의에 대한 교육을 이수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불교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티베트인들의 마음속에는 중국 정부의 억압적인 동화정책에 대한 뿌리 깊은 반발과 분노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의 학교에서나 공공장소에서 티베트어 사용을 금지하고 중국어만을 사용하게 했다. 심지어 주민들에게 전통적으로 경작하던 작물인 보리 대신 겨울 밀을 심도록 강요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황량한 티베트의 토양은 더욱 나빠졌다.


중국은 또 한족(漢族)을 대규모 이주시켰다. 티베트인의 인구를 줄이고 한족을 늘리려는 고도의 술책이었다. 특히 2006년 7월 칭짱(靑臟)철도가 완공된 이후 한족의 티베트 이주는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주한 한족들에게 각종 경제적 혜택을 부여했다. 현재인구 27만명이 살고 있는 라싸의 절반은 한족이다. 라싸의 상권도 대부분 한족이 차지했다. 티베트 주민들이 이번 유혈 사태의 와중에서 한족 소유 상점을 불태운 것도 이 때문이다. 티베트 주민들의 지난해 1인당 소득은 중국에서 가장 낮은 2788위안(약 39만700원)이었다. 티베트 승려와 주민들이 분리 독립 시위를 벌인 것은 오는 8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전세계에 지난 57년 간 독립 의지를 꺾기 위해 종교와 문화를 탄압해온 중국의 이중성을 전세계에 알리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인종분쟁 폭탄’ 발칸반도


세르비아·마케도니아 등 7개국 국경선 복잡

코소보의 독립선언으로 얽히고설킨 분쟁에 재점화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전세계적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소수 인종의 분리 독립 운동이 21세기 국제 사회에서 새로운 분쟁과 갈등의 화약고가 되고 있다. 이미 코소보의 독립선언(2월 17일)으로 발칸반도에선 ‘인종 폭탄’의 심지에 불이 붙은 상태이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분노한 시위대가 코소보 독립을 지지한 미국의 대사관을 불태우는 사건(2월 21일)까지 일어났다. 코소보는 인구 210만명 중 이슬람교를 믿는 알바니아계가 92%,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 5.2%, 기타 인종이 2.8%이다. 코소보는 그 동안 법적으로는 세르비아의 자치주였지만 끊임없는 탄압을 받아왔다. 1998~1999년 알바니아계에 대한 세르비아의 인종 청소가 발생하자 나토가 1999년 3월 말 군사적으로 개입, 6월 초까지 세르비아와 전쟁까지 치렀다. 이 전쟁으로 1만3000여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실종됐다. 이후 코소보는 유엔의 위임통치를 받아왔다.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한 것은 세르비아의 인종차별정책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코소보의 실업률은 무려 45%이다.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150유로(21만원), 인구의 37%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고 있으며 1달러 미만인 극빈층도 15%에 이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코소보는 12세기 세르비아라는 왕국이 세워진 곳으로 세르비아인들이 민족 발상지로 여기는 곳이다. 세르비아 정교회의 첫 번째 교구가 생긴 곳도 바로 여기다. 그런데 1389년 이 지역을 놓고 세르비아와 당시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 투르크의 전쟁이 벌어졌다. 당시 전쟁을 코소보 폴예(Kosovo Polje·검은 새의 평원이란 뜻) 전투라고 하는데 이 전투에서 세르비아의 라자르 왕과 병사 10만명이 몰사했다. 오스만 투르크군은 시체들을 까마귀밥이 되도록 전장에 버려두었다고 한다. 코소보 폴예가 지금의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 지역이다. 오스만 투르크는 세르비아 왕국을 정복한 이후 이 지역에서 세르비아인을 대거 추방했고 대신 알바니아인을 집단 이주시켰다. 세르비아는 1912년에야 코소보를 다시 자국으로 편입시켰다.


현재 발칸반도는 코소보,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등 7개국의 국경선이 그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3곳은 언제라도 인종 분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한 지역이다. 무엇보다 먼저 코소보의 북부 미트로비차 지역이다. 이 지역은 세르비아계 주민 10만여명이 살고 있다. 졸지에 코소보 국민이 된 이 지역 주민들은 코소보로부터 세르비아에 편입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 한 곳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자치 지역인 스르프스카 공화국이다. 세르비아계와 이슬람계, 기독교를 믿는 크로아티아계 등 3개 세력 간 격렬한 내전을 치렀던 보스니아는 1995년 데이튼 평화협정을 통해 이슬람-크로아티아계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세르비아계인 스르프스카, 즉 두 개의 자치공화국으로 나누어졌다. 스르프스카 공화국은 세르비아로 편입하거나 독립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마케도니아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마케도니아의 인구 중 25%를 차지하고 있는 알바니아계 주민들도 코소보와의 합병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럽의 소수 인종들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 유엔·러시아에 독립 인정 요청

스페인 바스크족은 40년 투쟁 “올 10월 독립 찬반투표”


이런 상황을 볼 때 코소보의 독립선언에 따라 분리 독립을 원하는 소수 인종들은 일종의 도미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곳은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자치공화국이다. 남오세티야는 지난 3월 5일 유엔과 러시아에 자국의 독립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남오세티야는 제주도의 배가 조금 넘는 면적(3900㎢)으로 국경 바로위쪽에 접한 러시아령 북오세티야와 인종과 언어가 같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1944년 효율적 통치를 명분으로 내세워 오세티야를 남북으로 분할했고 이후 남오세티아는 그루지야에 편입됐다. 인구는 약10만명이고, 주민 대부분은 오세트인이다. 압하지야도 조만간 러시아와 유엔에 독립 인정을 요청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루지야는 절대 두 자치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무력 충돌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그루지야와 러시아의 관계도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루지야 정부는 러시아가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충동질해서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럽도 발칸반도 못지않게 소수 인종의 분리 독립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지난 40여년간 바스크족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무장 투쟁을 전개해온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라는 반정부 무장단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와 피레네 산맥 남부를 근거지로 하고 있는 이 단체의 테러로 그동안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ETA는 “코소보 독립선언은 자결권 행사의 좋은 선례”라며 오는 10월 바스크족 주민들을 대상으로 분리 독립 찬반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벨기에도 북부 플랑드르의 분리 독립 움직임으로 국가가 분열될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벨기에는 크게 네덜란드어권인 북부 플랑드르와 프랑스어권인 남부 왈로니아로 나뉘어 있으며 지난해 6월 10일 실시한 총선 이후 지역정부의 자치권 확대를 놓고 두 언어권 사이에 갈등이 극도로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잘사는 플랑드르는 자치권을 조세와 노동정책 등 경제정책 부문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못사는 왈로니아는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이 축소될 것을 우려해 자치권 확대에 제동을 걸어왔다. 양측의 갈등으로 그동안 연정 협상이 두 차례나 실패하는 등 총선 이후 8개월이 넘도록 새 정부가 출범도 하지 못했다. 양측은 지난 2월 노동시장, 보건, 가족정책 등의 권한을 연방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이양키로 하는 등 자치권 확대에 합의, 가까스로 위기를 봉합했다.


이처럼 인종 갈등을 겪고 있는 유럽연합(EU)의 일부 회원국들은 코소보의 독립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은 러시아의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코소보의 독립을 적극 지지했지만 EU 회원국 내부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 것에 대해 상당히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러시아는 구 소련에서 독립해 친서방정책을 펴고 있는 그루지야를 견제하기 위해 자국에 우호적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분리독립 운동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자국 내 자치 공화국인 체첸의 분리 독립을 주장해온 반군에 대해선 무력 탄압 정책을 펴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의 소수 인종들


위구르 이슬람단체, 분리독립 주장하며 항공기 테러기도

스리랑카 타밀 반군, 올 들어 휴전협정 깨고 무력투쟁 재개

 

 

아시아에서도 소수 인종의 분리 독립 운동이 거세다. 이번에 유혈 사태가 발생한 티베트는 물론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분리 독립 운동에 중국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7일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를 출발한 중국 남방항공 소속 여객기가 테러용의자들의 테러 기도로 인근 간쑤성 란저우시에 불시착했다면서 테러 용의자 2명이 승무원들의 진압으로 붙잡혔다고 밝혔다. 이번 테러 기도 사건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분리 독립 운동을 벌여온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이라는 단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공안당국은 지난해 초 파미르 고원 산악 지대에 있는 이 단체의 테러훈련 기지를 급습, 18명을 사살하고 17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중국은 1949년 위구르족이 살고 있는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설치했다. 이후 위구르족은 중국 정부에 대항해 왔다. 1997년 위구르족과 한족의 충돌이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져 수백 명이 숨지기도 했다.


아시아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가장 적극적으로 해온 단체는 스리랑카의 타밀 엘람 해방호랑이(LTTE)이다. 이 단체는 무력으로 타밀족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반군조직이다. ‘엘람’은 타밀어로 스리랑카를 의미하며, 호랑이는 스리랑카 국기에도 등장하는 싱할리족의 상징인 사자에 대응되는 개념이자 타밀족 옛 왕조의 전통문양이다. 이 단체는 현재 병력이 1만명을 넘고, 10여척의 함정에 5대의 항공기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 단체는 올 들어 지난 6년간 지켜왔던 스리랑카 정부와의 휴전 협정을 깨고 다시 무력 투쟁에 들어갔다. 스리랑카의 인구는 약 2000만명으로 이 중 75%가 불교를 믿는 싱할리족이고, 힌두교를 믿는 토착 타밀족과 영국 식민통치 시절 인도 남부에서 차 농장 노동자로 대거 유입된 인도의 타밀족을 합쳐 15%를 차지하고 있다. 1948년 독립 이후 다수의 힘으로 정권을 장악한 싱할리족은 현재까지 소수파인 타밀족에 대한 차별 정책을 펴왔다. 이 때문에 1983년부터 2002년 휴전이 이뤄지기 전까지 스리랑카 정부군과 타밀 반군의 전투로 7만여명이 숨지기도 했다. 노르웨이의 중재로 양측이 당시 타협한 휴전 협정의 골자는 타밀 반군이 독립국가 건설 노선을 버리는 대신 스리랑카 동부와 북부 지역을 자치 지역으로 한다는 일종의 연방제였다. 하지만 타밀 반군은 자신들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스리랑카 정부를 의심하면서 다시 독립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이고 있다. 양측의 휴전 협정이 폐기된 이후 지금까지 타밀 반군의 테러 공격과 스리랑카 정부군의 보복 등으로 300여명이 사망하는 등 갈수록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


인종민족주의가 등장한 이유


인터넷과 세계화가 고립됐던 소수 인종의 정체성 깨워

다수 인종의 차별정책도 분리독립 부추기는 촉매제로


1989년 옛 소련의 붕괴로 이데올로기에 의한 냉전이 종식된 이후, 탈냉전시대를 거쳐 21세기를 맞아 국제사회에선 인종민족주의(ethno-nationalism)가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민족(nation)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언어ㆍ풍습ㆍ종교ㆍ정치ㆍ경제 등을 공유하면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집단이다. 민족과 인종이 동일하지는 않다. 하지만 민족이란 기본적으로 공통의 인종적 기반 위에 성립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민족주의는 사전적 의미로는 ‘민족을 단위로 독립국가를 건설하고 유지하자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반드시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하나의 민족이 2~3개 국가를 이룰 수도 있고 여러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할 수도 있다. 때문에 21세기의 민족주의는 보다 엄밀히 말하면 인종민족주의를 말한다.


인종은 혈연적·체질적 특징을 기초로 인간을 구분하는 개념이다. 같은 DNA를 가진 것을 의미한다. 민족은 혈연공동체보다는 문화공동체로서의 개념이다. 같은 종교와 습관, 전통 등을 말한다. 국가와 민족의 벽을 허무는 세계화가 21세기의 보편적 현상임에도 불구, 인종민족주의가 대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의 보급, 무역과 자본, 사람들의 글로벌 교류 확대를 가져온 세계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억압 받고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되었던 소수 인종에게 민족 자각과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힘있는 다수 인종의 차별 정책은 소수 인종의 분리 독립을 부추기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국제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의 경향을 보면 다민족 국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 충돌과 갈등, 이에 따른 내전이 대부분이다. 인종의 충돌은 또 종교와 문화를 수반하면서 일종의 문명 충돌 현상까지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인종 충돌이 인종 청소라는 최악의 결과까지 가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중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