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동포

일제시대 조선인 도와 헌신한 일본인 2명 독립유공자 추서

한부울 2007. 2. 28. 18:45

 

도적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고 짐승 같은 잔인함을 경멸하면서 오직 정의감으로 뉘우치고 분개하며 진정한 한국인이 스스로 되고자 하는 일본인이 현재에도 있다면 그들을 기꺼이 두 손 벌려 가슴으로 감싸 안아야 할 것이고 그들의 거룩한 용기에 뜨거운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과거 일제시대때 일방적으로 핍박당하고 있던 우리민족에게 헌신적인 희생으로 펼쳤던 그들의 숭고한 고마운 마음을 시대가 변했다고 하여 어찌 잊을 수 있으며 진정한 군자국의 나라에서 감사함을 어찌 따뜻하게 표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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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일제시대 조선인 도와 헌신한 일본인 2명 독립유공자 추서

[쿠키뉴스] 2007년 02월 28일(수) 오후 06:10

 

[쿠키 사회]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인을 위해 헌신한 일본인 2명에 대해 독립유공자 추서가 추진된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 기념사업회’는 일제 때 전남 하의도 땅 찾기 운동에 공헌한 고노 부스노스케(木尾虎之助·1878∼1956), 아사히 겐즈(朝日見瑞·1898∼1988)씨 등 일본인 2명을 독립유공자로 신청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현재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일본인은 독립운동가 변론을 맡은 공로로 2004년 애족장을 받은 후세 다쓰지 변호사가 유일하다.

◇인권변호사, 고노=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위치한 하의도는 1623년 풍산 홍씨 집안에 소유권이 넘어간 이래 1956년 농민들이 땅을 되찾을 때까지 긴 투쟁의 세월을 거쳤다. 식민지 시기에는 총독부의 비호를 받은 친일파와 일본 재벌들의 손에 넘어가기도 했다.

인권변호사였던 고노 부스노스케씨는 1909년 땅을 되찾아오려는 주민들의 싸움에 뛰어들었다. 이미 1심 재판에서 져 승소확률이 낮았지만 그는 직접 하의도로 내려가 현장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등 3년 간 밤을 잊고 뛰었다. 고노씨의 헌신적인 변호는 결국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고노씨는 전남 도의회 의원, 순천 번영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일본으로 돌아가 중의원까지 지냈다.

◇전설적 활동가, 아사히=1912년 재판에서 패소한 일제는 주민들을 총칼로 협박해 다시 소유권을 빼앗아갔다. 땅을 빼앗긴 하의도 농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본 오사카에 노동자로 흘러들어갔다. 그 곳에서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아사히 겐즈씨를 만났다.

오사카에서도 멸시받던 조선 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했던 아사히씨는 1927년말 하의도에 농민조합을 만들기 위해 밀입국했다. 주민들의 첫 반응은 냉랭했지만 아사히씨는 한복을 입고 농민들과 동고동락해 그들의 마음을 열었다. 결국 농민 800명으로 이루어진 조합이 탄생했고 소유권 반환 운동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조합은 일본농민조합에 가입, 국제연대를 통해 지주들과의 싸움을 이어나갔다. 아사히씨는 경찰에 체포돼 1928년 11월 강제추방될 때까지 하의도 농민조합을 위해 헌신했다. 아사히씨는 일본에 돌아가서도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1988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기념사업회 측은 수소문 끝에 고노 변호사의 장남 고노 신덴(木尾進展) 씨와 아사히씨의 장녀 사다케 즈이코(佐竹瑞子)씨를 찾았다. 오는 5월 하의도에 개관하는 농민운동기념관 개관식에 이들을 초청해 공로패도 전달할 계획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