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변절

우리말의 어원이 궁금하다.

한부울 2007. 1. 3. 22:15
 

우리말의 어원이 궁금하다.


노들강변


우리는 보통 `노들강변`이라고 하면 버드나무가 휘휘 늘어진 어느 강변을 연상하지 않습니까?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의 민요가 그러한 인상을 주게 하지요. 아마도 `노들`이 `버들`을 연상시키나 봅니다. 그래서 어느 곳이든 이러한 풍경이 있는 강변이면 `노들강변`으로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실제 `노들강변`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노들강변`은 서울의 `노량진` 나루터를 말합니다. 현재 서울의 흑석동에 있는 국립묘지 근처에 있던 나루터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 싸우시던 `울돌목`을 아시겠지요? 이 `울돌목`은 한자어로 `명량(울명, 돌량)`이라고 하지요. 이 `명량`의 `명`은 `울명`자이고요. `량`은 원래 `돌량`입니다. 이 `돌`은 충청도 방언에 `똘, 또랑`으로도 사용하고 있지요.

`노량`의 `량`도 `돌량`입니다. 그래서 `노량(이슬노, 돌량)`은 `노돌`이라고 했지요. 그러던 것이 `노들`로 변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노량`이 `노들`로 변하고 거기에 `강변`이 덧붙은 것입니다.


이 `노들강변`은 옛날에 서울과 남쪽 지방을 잇는 중요한 나루였습니다. 그래서 이 `노들강변`은 애환이 많이 깃든 곳입니다.


성냥


불을 켜는데 썼던 `성냥`은 마치 고유어인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한자어였습니다. 즉 `셕뉴황`이 음운변화를 겪어서 `성냥`이 된 것입니다.


애국가 가사 중의 `바람서리`의 뜻


애국가의 가사 2절중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이 중에 `바람서리`를 간혹 `바람소리`로 잘못 알고 계신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바람서리`입니다. 그 뜻은 `풍상`이란 뜻입니다. 즉 `바람 풍, 서리 상`이지요. 즉 `풍상에 불변함은`이란 것인데, 조사인 `-에`가 생략되었습니다.


애국가 가사 중의 `남산`의 뜻


애국가 중의 또 한 가지 `남산`의 의미를 모르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어느 고장을 가나 `남산`은 있습니다. 서울의 남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남산`은 `남쪽에 있는 산`으로 알고 계신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남`은 한자로 지금은 `남쪽`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원래 `남`은 `앞 남`이었습니다. 즉 `남산`은 `앞산`이란 의미입니다. `앞에 있는 산`이 곧 `남산`입니다. 그리고 `북`은 `뒤 북`이었었습니다. 그래서 `북망산`에 간다는 것은 `뒷산`의 묘지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곰보


마마에 걸려서 얼굴이 얽은 사람이 있지요?

지금은 천연두가 사라져서 그런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만, 그런 분을 속칭 `곰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곪다`의 `곪-`에 접미사 `-보`가 붙어서 된 말입니다. 그래서 그 어원을 잊어버리고 그냥 `곰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곪-`의 발음이 `곰`이 되기 때문입니다.


숨바꼭질


어렸을 때 숨바꼭질을 해 보지 않으신 분은 없으시겠지요? 술래가 있어서 사람이 숨으면 그 사람을 찾는 놀이지요. 그런데, 이 `숨바꼭질`은 원래 그런 놀이가 아니었었습니다.

이 `숨바꼭질`은 `숨 + 바꿈 + 질`에서 나왔습니다. 이때의 `숨`은 `숨다`의 `숨-`이 아니라 `숨쉬다`의 `숨`입니다. 숨쉬는 것을 바꾸는 일이니까 소위 자맥질을 말합니다. 물속에 들어가서 어린이들이 물속으로 숨고, 다시 숨을 쉬기 위하여 물위로 올라오곤 하는 놀이지요. 만약에 `숨다`에서 `숨`이 나왔으면 동사 어간에 명사가 붙는 경우가 국어에는 맞지 않습니다. `비행기`를 `날틀`이라 해서 웃음을 산 일이 있는데, 이것도 `날다`의 어간에 `틀`이라는 명사를 붙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국어의 구조에 맞지 않아서, 그 의도는 좋았지만, 사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도 남쪽의 방언에 `숨바꿈쟁이` 등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곧 잠수부를 말합니다.


성가시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단어 중에 `성가시다`는 말이 있지요. `귀찮다, 괴롭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파리하다, 초췌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성가시다`(현대 철자법으로 고쳤습니다) 등으로 사용되었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면 모든 것이 귀찮아지겠지요.


가물치


물고기 중에 `가물치`가 있지요? 이 중에 `-치`는 물고기 이름을 나타내는 접미사임은 누구나 다 아실 것입니다. `꽁치, 넙치, 준치, 멸치` 등등 많습니다.

그런데 `가물`이란 무엇일까요?

천자문을 배울 때, `하늘 천, 따 지, 가물 현` 하지요. 물론 지금은 `검을 현`이라고도 합니다. `가물`은 오늘날의 `검을`에 해당합니다. 옛날엔 `검다`를 `감다`라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가물치`는 `감-+ -을 + -치`로 구성되어 있지요. 결국 `검은 고기`란 뜻입니다.


어른의 원래 뜻


`어른`, `어린이`라고 해서 `어른`을 `성인`으로 이해하고 있지요? 그런데, 본디 `어른`은 `얼운`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얼우다`의 어간 `얼우-`에 명사형 접미사가 붙은 말로 `얼우다`는 `성교하다`라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따라서 `얼운`은 `혼인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현대국어의 `어른`은 `혼인한 사람`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라는 말은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처음 만든 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옛 문헌을 보면 `어린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다만 이 때는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으로 쓰였다가 소파가 `어린 사람`이란 뜻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귀고리와 귀거리


요즈음은 여성들이 `귀`에 `고리`를 `걸고` 다니는 것을 많이 보지요. 그래서 곧잘 `귀고리`를 `귀`에 `거는` 것으로 인식을 해서 `귀걸이` 또는 `귀거리`로 인식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귀고리`는 원래 `귀`에 거는 `고리`라는 뜻입니다. `귀`에 `거는` `골희`여서 `귀옛골희`였었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귀고리` 또는 `귀골희`가 되었다가 요즈음은 `귀고리`로 변했습니다. 최근에 정한 표준말에서도 `귀고리`로 결정되었습니다. 귀에 `거는` 것이 아니라 귀에 거는 `고리`라는 뜻입니다. 요즈음은 `귀고리`가 `고리`가 아닌 다른 모양들도 많더군요. 그래서 아마 `귀고리`를 `귀거리`로 이해하시는 것 같군요.


스승과 화냥년


`스승`의 어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무격`이란 한자어가 있지요. `무`는 `여자무당`을, `격`은 `남자무당`을 말합니다. 그런데 옛 문헌을 보면 `무`를 `스승 무` `격`을 `화랑이 격`이라 되어 있습니다. 결국 `스승`이란 `여자무당`을 말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무당`은 고대사회의 모계사회에서 대단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인디안 영화나 아프리카 영화를 보면 추장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결국 `스승`은 임금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선생님을 한자어로는 `사부`라고 하는데, `사`자도 `스승 사`, `부` 자도 `스승 부`입니다. 결코 `선생 사, 선생 부`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자무당`이 `임금의 선생님`으로 그 의미가 변화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일반화되어 `스승`이 되었습니다.

`남자무당`인 `화랑이 격`은 오늘날 `화냥년`이라는 못된 욕을 할 때 사용하는 말로 변화했습니다. 이 `화랑이 격`의 `화랑`은 신라시대의 `화랑`과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무당`도 고대사회에서는 중요한 귀족 중의 하나였습니다. 신라 향가인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도 `화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무당은 여자무당에 비해 그 위세가 약합니다. 오늘날의 무당의 세계도 일처다부제가 보이기도 할 정도이니까요. 처용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동침하는 것을 보고 물러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알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지요. 그래서 남자무당은 이 여자무당, 저 여자무당을 찾아다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을 `화냥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에게 쓰이던 것이 여자에게 사용된 것이지요. 간혹 `화냥`을 `환향`, 즉 `고향으로 돌아오다`라는 의미로 해석해서, 청나라에 끌려갔던 여인들이 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 것처럼 알고 있는 분도 있으나, 그것은 민간인들이 만들어낸 어원입니다.


지어미와 지아비


`지아비`와 `지어미`는 특히 한자의 뜻과 음에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즉 `부`를 `지아비 부`, 그리고 `부`를 `지어미 부`로 알고 있는데, 이때에 `아비, 어미`는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지만, `지`의 뜻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원래 `집`의 소유격형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5세기의 문헌에 보면 `짓아비, 짓어미`였는데 19세기말에 와서 `짓`이 `지아비, 지어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아비, 지어미`의 본디 뜻은 `집아비, 집어미`인 셈입니다.


시냇물


`시냇물`의 의미를 모르시는 분은 없지만, 그 어원을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으시리라 생각됩니다. 본래 `시냇물`은 `실`+ `내` + `물`이 합쳐져서 생긴 말입니다.

`실`은 `곡(골 곡)`의 뜻입니다. 아직도 고유지명에 `실`이 쓰이고 있습니다. `밤실` 등 무척 많습니다. 결국 골짜기란 뜻입니다.

결국 `시냇물`은 `골짜기를 흐르는 냇물`이란 뜻입니다.


양이 찼다 의 `양`의 뜻


음식을 먹은 후에 `양이 찼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의 `양`은 `질량`의 `양`, 즉 한자어 `양`이 아닙니다. 이 `양`은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양`은 `위장`이라고 할 때의 `위`에 해당하는 우리말입니다. 그래서 쇠고기 중에 `곱창`도 있고, `양`도 있지요.

그래서 `양이 찼느냐?` 하는 것은 `위가 찼느냐?`는 뜻입니다. 즉 `배가 부르냐?`는 뜻이지요. 그리고 `곱창`의 `곱`은 `기름`이란 뜻을 가진 우리말이었습니다. `눈곱`의 `곱`과 같은 것입니다.

`곱창`은 `곱`+ `창자`의 `창`이랍니다. 기름이 많은 창자이지요. `애`가 `창자`라는 사실은 이순신 장군의 시조에 `나의 애를 끊나니`에서 배워, 알고 계시겠지요.

한 가지 더 말씀 드리지요.

`폐`는 우리말로 `부아`(옛날에는 `부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아가 난다.`고 하지요. 화가 나면 숨을 크게 들어 마셔서 `허파`가 크게 불어나지요. 그래서 `부아가 난다`는 `화가 난다`는 뜻이 되었습니다.

우리 국어에서는 이렇게 신체 부위를 가지고 감정을 표시하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몇 예를 들어 볼까요?


머리가 아프다. 골치가 아프다.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귀가 가렵다. 귀가 따갑다. 눈꼴이 시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부아가 난다. 손이 근질근질한다. 애가 탄다. 애간장을 녹인다. 입이 나온다. 핏대가 난다.

이 이외에도 무척 많지요.


`결혼하다`와 `혼인하다`의 뜻 차이


오늘날 `결혼하다`와 `혼인하다`는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즉 marriage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결혼하다`와 `혼인하다`는 다른 뜻이었었습니다. 즉 `혼인하다`는 오늘날 쓰이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였지만, `결혼하다`는 다른 뜻이었습니다.

`철수가 복동이와 결혼하였다`란 말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이 문장의 의미는 `철수`의 자손과 `복동`의 자손이 `혼인`할 것을 결정하였다는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남자와 남자, 그리고 여자와 여자끼리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어에서는 `결혼하다`가 오늘날 남녀 혼인의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 국어에 들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식장에 `결혼예식장`과 `혼인예식장`이란 명칭이 다 보이지요?

`혼인하다`란 뜻은 `혼`은 `신부집`을 말하고 ``인`은 신랑집을 말한 데에 기인합니다. 옛날에 혼인을 할 때에는 신랑이 `혼` 즉 신부집으로 먼저 가서 예식을 올립니다. 즉 `장가`(장인의 집)를 가지요. 그리고 사흘 뒤에 신부를 데리고 `인`(즉 신랑집)으로 옵니다. 즉 신부는 `시집`을 가지요. 그래서 `장가가고 시집간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고뿔`과 `감기`


지금은 감기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모두 `고뿔`이라고 했습니다. 이 `고뿔`은 마치 `코`에 `뿔`이 난 것처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것은 `코`에 `불`이 난 것입니다. 즉 `코`에 열이 난다는 뜻이지요. 이전엔 `곳블`이었습니다. 즉 `코`를 뜻하던 옛날말인 `고`에 `불`(되었던 것인데, 원순모음화가 되어 `곳불`이 되고 다시 `뒤의 `불`이 된소리로 되어(마치 `냇가`가 실제 발음으로는 `내까`가 되듯이) `고뿔`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한자어인 `감기`가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 `감기`란 한자말은 `복덕방``사돈`, `사촌` 등처럼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어입니다. 혹시 일본어에서 온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어에서는 감기를 `풍사(바람 풍 사악할 사)`라고 하니깐요.


옛날 옛적 고리짝에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쉽게 책과 접할 수 있어서 많은 동화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어린 시절에 그런 동화책 대신 우리의 전래 동화나 신화 전설 민담을 할아버지 할머니께 듣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나 할어버지의 옛날이야기는 으례 이렇게 시작되곤 하였지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옛날 옛적 고리짝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도 아마 `옛날 옛적 고리짝에`의 `고리짝`의 뜻을 알고 말씀하신 분은 거의 없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냥 입에서 귀로 전래되어 와서 그냥 말씀하신 것일 뿐이지요.

`고리짝`이 `고려 적`(고려 때)이 오랜 동안 구전되어 오면서 그 뜻을 잃어버린 단어임을 아셨더라면, `옛날 옛적 고려 적에`로 말씀하셨겠지요.

옛날이야기는 먼저, 지난 시기에 일어난 이야기임을 듣는 사람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조선 시대에는 그 이전의 시대, 즉 `고려 시대`를 언급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남아 있는 많은 고소설의 대부분이 `조선 숙종대왕 즉위 초에` 등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옛날 옛적 고려 적에`로 시작된 것인데, 이것이 오늘날 `옛날 옛적 고리짝에`로 변화된 것이지요.


거지`와 `x지`


남에게 빌어서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것은 `거지`입니다. 이 `거지`의 어원은 무엇일까요? 어떤 책을 보니까, `거지`는 `걷다`(거두어 드린다)의 `걷-`에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인 `-이`가 붙어서 `걷이`가 되었는데, 이것이 구개음화되어 `거지`가 되었다고 써 놓았더군요. 하지만 이것은 우리말의 옛날 형태를 모르는 데에서 온 실수입니다. 옛날 문헌을 보면 `거지`는 `거아(아래아 자)지`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중국어 `걸자`(빌 걸, 아들 자)의 중국어 발음을 그렇게 써 놓은 것입니다. `걸`에 접미사인 `자`가 연결된 단어입니다. `자`는 중국어의 접미사인데, 우리말에 와서는 두 가지 음으로 읽혔습니다. 하나는 `자`이고 또 하나는 `지`입니다. `판자`는 `판자집`일 때에는 `판자`이지만, `널판지`일 때에는 `판지`로 읽습니다. `주전자, 감자, 사자, 탁자` 등의 `자`는 `자`로 읽지만, `가지(식물의 하나), 간장종지, 꿀단지` 등의 `자`는 `지`로 읽습니다. 남자와 여자 생식기의 이름인 ``-자`가 붙은 것인데 모두 `도 결국은 한자어입니다.


양말


여러분이 신고 다니는 `양말`이 한자에서 온 말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시겠지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자어입니다. 원래 버선을 한자로 `말`이라고 했습니다. `버선 말`자이지요. 그런데 서양에서 이 버선과 비슷한 것이 들어오니까 버선을 뜻하는 `말`에 `양` 자를 붙여서 `양말`이라고 했습니다. 버선하고 양말이 이렇게 해서 달라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서양에서 들어 왔다고 해서 `양` 자를 붙이거나 `서양`을 붙여 만든 단어들이 꽤나 있습니다. 그 예가 무척 많음에 놀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뜻도 잘 모르게 변한 것들도 많습니다.

몇 가지를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철(또는 생철)


양철도 `철`에 `양` 자가 붙어서 된 말입니다. 쇠는 쇠인데, 원래 우리가 쓰던 쇠와는 다른 것이 들어오니까 `철`에 `양`자만 붙인 것이지요.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철`에 `서양`이 붙어서 `서양철`이 되고, 이것이 다시 변화되어서 오늘날에는 그냥 `생철`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양동이


국어에 `동이`라고 하는 것은 물긷는 데 쓰이는 질그릇의 하나인데, 서양에서 비슷한 것이 들어오니까 여기에 `양`자를 붙여 `양동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입니다.


양순대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인데, 서양에서 `소시지`가 들어오니까 `순대`에다가 `양`자를 붙여 `양순대`라고 했는데, 이것을 쓰지 않고 `소시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되살려 쓰고 싶은 단어입니다. 중국의 우리 동포는 이 `소시지`를 `고기순대`라고 하더군요. 너무 잘 지은 이름이 아닌가요?


양은


양은은 `구리, 아연, 니켈을 합금하여 만든 쇠`인데, 그 색깔이 `은`과 유사하니까 `은`에 `양`자를 붙여 `양은`이라고 한 것입니다.


양재기


`양재기`는 원래 `서양 도자기`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에 `양`자가 붙어서 `양자기`가 된 것인데, 여기에 `아비`를 `애비`라고 하듯 `이` 모음 역행동화가 이루어져 `양재기`가 된 것입니다.


양회


이 말도 앞의 `양순대`와 같이 거의 쓰이지 않는 말입니다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세멘트`를 `양회`라고 했습니다. `회`는 회인데 서양에서 들여 온 회라는 뜻이지요. 이 말도 다시 썼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양행


이 말도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 말이지요. 서양에 다닌다는 뜻으로 `다닐 행`자를 붙인 것인데, 이것이 무역회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한양행`이라는 회사가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지요.

이 이외에 `양`자가 붙어서 만든 단어들을 몇 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양복, 양장, 양궁, 양단, 양담배, 양란, 양배추, 양버들, 양식, 양옥, 양장, 양잿물, 양주, 양초, 양코, 양파, 양화점 등.


양치질


여러분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양치질`을 하시지요? 이`양치질`의 어원을 아시나요? 언뜻 보아서 한자어인 줄은 짐작하시겠지요? 그러나 혹시 `양치질`의 `양치`를 `양치`(기를 양, 이 치)나 `양치`(어질 양, 이 치)로 알고 계시지는 않은지요?(간혹 `양치질`의 `치`를 `치`( 이 치)로 써 놓은 사전도 보입니다만, 이사전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양치질`의 `양치`는 엉뚱하게도 `양지질` 즉 `양지`(버드나무 가지)에 접미사인 `질`이 붙어서 이루어진 단어라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그렇습니다. 고려 시대의 문헌(예컨대 {계림유사})에도 `양지`(버들 양, 가지 지)로 나타나고 그 이후의 한글 문헌에서도 `양지질`로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양지` 즉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청소하는 것이 옛날에 `이`를 청소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오늘날 `이쑤시개`를 쓰듯이, 소독이 된다 고 하는 버드나무 가지를 잘게 잘라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청소하는 것을 `양지질`이라고 했던 것인데, 이에 대한 어원의 식이 점차로 희박해져 가면서 이것을 `이`의 한자인 `치`에 연결시켜 서 `양치`로 해석하여 `양치질`로 변한 것입니다. 19세기에 와서 이러 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양지`는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음인 `요지`로 변했습니다. `이 쑤시개`를 일본어로 `요지`라고 하지 않던가요?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이쑤시개`를 `요지`라고 하는 분들이 있지 않던가요?

`양지질`이 비록 `이쑤시개`와 같은 의미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양 지질`과 `이쑤시개`는 원래 다른 뜻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두 단어 모두가 오늘날의 뜻과 동일한 것이지요. `양지질`에 쓰는 치약으로 는 보통 `소금`이나 `초`를 사용하여 왔습니다. 이렇게 `양지질`이 `양치질`로 변화하는 현상을 언어학에서는 보통 `민간어원설`이라고 합니다. 즉 민간에서 어원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원래의 단어를 해석하거나, 그 해석된 대로 그 단어를 고쳐 나가곤 합니다. 이렇게 민간에서 잘못 해석한 단어는 무척 많습니다. 여러 분들이 잘 아시는 `행주치마`가 그렇지요. 원래 `행주`는 `삼` 등으로 된 것으로서 물기를 잘 빨아들이는 천을 일컫는 단어인데, 이것을 권율 장군의 `행주산성` 대첩과 연관시켜서,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 을 날랐기 때문에 그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한다는 설이 있지만, 그것은 민간에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부엌에서 그릇 을 닦는 데 사용하는 걸레인 `행주`는 어떻게 해석할까요? 걸레의 하나인 `행주`와 `행주치마`의 `행주`는 같은 단어입니다.


박쥐


`박쥐`는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짐승이지요. 우선 징그럽다고 하고, 또 밤에만 나돌아 다녀서 그런지, `남몰래 밤에만 음흉하게 일을 하는 사람`을 욕할 때, `박쥐 같은 놈`이라고 하지요. 이 `박쥐`에서 `쥐`는 그 뜻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 `박`이 붙었으며, 또 그 `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박쥐`는 원래 `밝쥐`였지요. 아마도 `눈이 밝다`는 뜻으로 `밝-`이 쓰인 것 같습니다. 박쥐가 초음파를 발사하여 그 반사음을 포착하여 방향을 조정해서 야간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니까, 그 전에는 `눈이 밝은 쥐`로 이해할 만도 하겠지요.


총각


국어에서는 남녀를 나타내는 말이 무척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혼인할 나이가 된 성인 남녀를 지칭할 때에는 `처녀` `총각`이란 한자어를 사용합니다. 그 중에서 `처녀`는 그 단어 속에 `여`가 들어 있어서 그 뜻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지만, 아마도 `총각`은 그 어원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한자인 `총`은 지금은 `다 총` 등으로 `모두`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지만, 원래는 `꿰맬 총`, `상투짤 총` 등으로 쓰이던 것입니다. `각`은 물론 `뿔 각`이고요.

중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이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뿔 모양으로 동여맨 머리를 `총각`이라고 했었습니다. 이런 머리를 한 사람은 대개가 장가가기 전의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머리를 한 사람을 `총각`이라고 한 것이지요. 옛날에는 어린 소년들에게도 `총각!`하고 불렀습니다. 이것을 마치 어린 소년을 높여서 부르는 것처럼 생각한 분은 안 계신지요?

여기에서 `더벅머리 총각`이라는 말도 생겼지요. 어떤 사람은 `떡거머리 총각`이라는 말도 쓰는데, 이때의 `떡거머리`가 무엇을 나타내는 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사전에도 `떡거머리`란 단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연유해서 생긴 단어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총각김치`란 말입니다. `총각김치`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 손가락 굵기만한 어린 무우를 무우청째로 여러 얌념에 버무려 담은 김치를 말하는데, 그 어린 무우가 마치 `총각`의 머리와 같은 모습을 닮아서 생긴 단어입니다. 그런데 처녀들은 그 `총각김치`란 단어 자체나 또는 실제의 김치를 기피하곤 했었습니다. 그 총각김치가 마치 총각의 생식기를 형상하는 것에서 생긴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니, 처녀들은 이제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총각김치를 드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딴따라패`와 `깡패`


요즈음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연예인들을 `딴따라패`라고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이전에는 곧잘 `딴따라패`라고 얕잡아 부르곤 했습니다. 언뜻 들어도 `딴따라`가 나팔 부는 소리와 같아서 연예인들의 행동을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빠른 속도로 번져 나갔었습니다. 옛날의 풍각쟁이들처럼 그 행렬의 앞에서 북치고장구치는 사람들을 연상했을 테니까요.

이 `딴따라`가 우리 국어의 의성어에서 온 것 같지만, 실상은 영어의 의성어에서 온 것입니다. 영어의 `tantara`의 음을 빌려 온 것이지요. 나팔이나 뿔나팔 등의 소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소리를 빌어 와서 `딴따라`라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이들을 국어의 의성어 `딴따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국어에서는 `딴따라`라는 의성어는 없습니다.

이처럼 의성어는 언어마다 유사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어에서 `flag`는 `깃발`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국어의 `펄럭펄럭`을 연상시키지요? 물론 영어의 `flag`는 의성어에서 온 단어입니다. 영어를 빌어온 단어 중에서 우리가 늘 쓰는 것 중에 `깡패`란 말이 있습니다. 폭력을 쓰면서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지요. 이 `깡패`에 대해서는 대체로 두 가지 어원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해방 뒤에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고, 이들의 통조림통인 `can`에다가 한자어인 `통`을 붙인 `깡통`을 거지들이 이용하면서, 이들 못된 짓을 하는 `거지패`들을 `깡패`라고 했다는 설이고, 또 하나는 영어의 `gang` 즉 `깽`을 일본에서 `걍구`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국어에 들어 와서 `패거리`의 `패`를 붙여서 이들을 `깡패`라고 하였다는 설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후자가 더욱 그럴 듯합니다. 왜냐하면 `깡으로`(억지스럽게)등의 단어가 쓰이기 때문입니다.


우두머리


지금은 `우두머리`라는 단어가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마치 `두목`이란 한자어처럼 `도둑의 괴수`인 것처럼 사용되고 있지요. 그러나 옛날에는 `우두머리`란 단어는 비칭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경칭은 아니었습니다. `우두머리`는 한자어인 `위두`(할 위, 머리 두)에 고유어인 `머리`가 합쳐진 합성명사입니다. `위두`는 보통 `위두하다`라는 형용사로 쓰이어서 가장 위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위두머리`의 `위`가 단모음화되어 `우`가 됨으로써, 오늘날 `우두머리`가 된 것입니다.


한 살`의 `살`과 `설날`의 `설`의 관계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난 지 이틀밖에 안된 아기가 나이로는 `두 살`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가 지나면 자연히 한 `살`을 먹게 되니까요. 음력 섣달 그믐날에 태어난 아기가 그 다음 날, 그러니까 `설날`만 되면 비록 태어난 지 이틀밖에 안된 아기지만 금방 두 살이나 됩니다. 서양에서는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아이를 두 살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의아해 하는 분도 많지만, 그 생각은 서양식 교육의 영향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나이 계산 방법에 의하면 그 아기는 분명히 두 살입니다. 왜냐구요?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나면 곧 한 살이 되고, 다시 한 `설`을 지나면 한 `살`을 더 먹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에도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해서,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한 살씩 더 먹는 날을, 서양처럼 각자 생일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정하지 않고 모두 `설날`로 정한 것이지요. 이러한 생각이 서양사람들의 사고에 비해 얼마나 인간적이고 합리적인가요?

그래서 한 `살`을 더 먹기 위해서는 한 `설`을 지나야 합니다. 옛날에는 `한 살, 두 살 다.

이렇게 국어의 단어는 만들어졌습니다. 매우 경제적인 방법입니다. 새로운 뜻을 가진 사물이나 현상이 생기면, 이것에 전혀 생소한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단어들의 자음이나 모음을 바꾸어 가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갑니다. 이것을 보통 `단어의 파생`이라고 합니다.

우리 국어에서는 이와 같이 모음만 바꾸어서 그 뜻을 조금씩 바꾸어 간 것이 무척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1) `머리`와 `마리` : `머리`가 하나이면 `한 `마리`지요. 그래서 옛날(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사람의 `머리`도 `마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을 `한 마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2) `남다`와 `넘다` : `남으면` `넘치지요`? 아니면 `넘으면` `남는` 게 되지요.

(3) `낡다`와 `늙다` : 사람이 `낡으면` `늙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낡다`는 옛날에는 `다`는 다른 사물에만 쓰는 단어입니다.

(4) `맛`과 `멋` : `맛`이 있어야 `멋`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 이외에도 이른바 의성 의태어는 모음을 달리 해서 그 조그마한 뜻을 바꾸는 일이 너무 많지요. 다음에 드는 예문에 속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는 상상만 해 보세요.


다방의 `레지`


다방에 `레지`가 있지요. 이 `레지`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영어의 lady 가 국어에서 `레지`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영어의 register에서 온 말이지요. 일본에서는 다방에 소위 카운터에서 요금을 `계산하는` 사람이 주로 여자가 했었는데, 이 `레지스터`를 줄여 `레지`라 했습니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대로 사용된 것입니다.


마누라


`아내 우리나라 말에는 남성이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여럿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말도 그 사람이 혼인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떠한 벼슬을 했는지에 따라, 그리고 누가 부르는지에 따라 각각 다르게 지칭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를 지칭할 때, `남정네, 남진, 남편, 사나이, 총각` 등이 있고, 여자를 지칭할 때에는 `아내, 여편네, 마누라, 집사람, 계집, 부인, 처녀` 등 꽤나 많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쓰인 것인지는 대개 알려져 있지만, 그 어원들을 아시는 분이 많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되어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아내`는 지금은 그 표기법도 달라져서 그 뜻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안해`였지요. `안`은 `밖`의 반의어이고, `-해`는 `사람이나 물건을 말할 때 쓰이던 접미사`입니다. 그래서 그 뜻이 `안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안사람`이란 말을 쓰고 있지 않던 가요? 거기에 비해서 남자는 `바깥사람, 바깥분, 바깥양반` 등으로 쓰이고요. `부부``를 `내외`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주지요.

`여편네`는 한자어이지요. `여편`에다가 `집단`을 뜻하는 접미사 `-네`를 붙인 것이지요. 어느 목사님께서 혹시 남편의 `옆`에 있어서 `여편네`가 아니냐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즉 `옆편네`가 `여편네`가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목사님의 설교에서 그렇게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자를 뜻하는 `남편`은 도저히 그 뜻을 해석할 수 없지요. `여편네`와 `남편`은 서로 대립되는 말입니다.

`마누라`는 무슨 뜻일까요? 지금은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그것도 같은 지위나 연령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아내를 지칭할 때나 또는 아내를 `여보! 마누라` 하고 부를 때나, 다른 사람의 아내를 낮추어 지칭할 때(예를 들면 `주인마누라` 등) 쓰이고 있습니다.

원래 `마누라`는 `마노라`로 쓰이었는데, `노비가 상전을 부르는 칭호`로, 또는 `임금이나 왕후에게 대한 가장 높이는 칭호`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극존칭으로서, 높일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그리고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부르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지위가 낮은 사람이 그 웃 사람을 `마누라`라고 부르거나 대통령이나 그 부인을 `마누라`라고 부르면 어떻게 될까요? 큰 싸움이 나거나 국가원수 모독죄로 붙잡혀 갈 일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아내의 호칭으로 변화하였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남편을 `영감`이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영감`은 `정삼품 이상 종이품 이하의 관원`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판사나 검사를 특히 `영감님`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이것은 옛날 그 관원의 등급과 유사하여서 부르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남편보다도 아내를 더 높여서 불렀던 보양이지요? 남자는 기껏해야 `정삼품`으로 생각했는데, 아내는 `왕이나 왕비`로 생각했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마누라`와 `영감`은 대립어가 된 것입니다.


사꾸라


며칠 동안 지방에 다녀오느라고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또 글을 올립니다. 오늘은 우리가 늘 쓰던, 그리고 지금도 쓰고 있는 일본어 `사꾸라`에 대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사꾸라`는 일본의 국화 `사쿠라`를 연상하게 하지요. "그 사람 사꾸라야"처럼 이 `사꾸라`는 흔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때의 `사꾸라`는 `벚꽃`인 `사쿠라`가 아닙니다. `사꾸라`는 역시 일본어인데, sakura, 즉 말고기를 뜻합니다. 일본에서 쇠고기로 속여 말고기를 파는 데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코오롱과 `나이롱`


우리나라에 `코오롱` 회사가 있지요. 원래 이 회사는 섬유로부터 시작한 회사입니다. 이 `코오롱`은 `코리아`+ `나이롱`에서 온 말입니다. 그리고 `나이롱`이란 말도 원래 `최신`이란 뜻을 가진 관형사인데, 미국 듀폰(Dupon)사의 상표로부터 일정한 섬유를 가리키는 말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나이롱 뽕`이라는 화투의 용어가 생긴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꿩 머고 알 먹고


`꿩 먹고 알 먹고`란 말은 `일석이조`란 의미로 자주 쓰이는 말이지요. 왜 그러한 말이 나왔을까요? 꿩처럼 주위의 소리에 민감한 동물도 드물 것입니다. 사람이 가

까이 가는 소리만 들으면 금방 튀어 날라가 버리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알을 품고 있을 경우입니다. 알에 대한 모성애가 강합니다. 꿩을 기르고 있는 곳이 있으면 한 번쯤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알을 품고 있는 꿩을 발견하면, 꿩도 잡고 알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꿩 먹고 알 먹고`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학독


어느 분이 `학독`의 뜻을 물으셨고, 이 태영 교수가 그 뜻을 알려 드렸습니다. 방언 연구를 전공으로 하는 이 태영 교수의 풀이가 맞습니다.

그런데, 이 `학독`은 원래 `확독`입니다. `확`은 지금도 방언형에서 쓰이고 있는데, 나무나 돌을 움푹파서, 그곳에 고추를 넣고 찧거나 하는 도구를 말합니다. 움푹 들어간 곳을 `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독`은 `돌`의 방언형입니다. 지금도 남부방언에서는 `돌`을 `독`이라고 하지요. 우리가 늘 말하는 `바둑`의 `둑`도 원래는 `돌`의 뜻입니다. `바둑`도 방언에서 `바돌`이라고 하는 지역이 많거든요.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


`개나리`와 `진달래`의 `개-`와 `진-`이 접두사임을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으

실 것입니다. `개나리`는 `나리`에 접두사 `개-`가 붙은 것이고 `진달래`는 `달래`에 접두사 `진-`이 붙은 것입니다. 나리꽃은 나리꽃인데, 그보다도 작고 좋지 않은 꽃이라고 해서 `나리`에 `개-`를 붙인 것이고, 달래꽃은 달래꽃인데 그보다는 더 좋은 꽃이라고 해서 `진-`을 붙인 것입니다. 원래 `나리`꽃은 `백합`꽃을 일컫던 단어였습니다. `백합`꽃과 `개나리`꽃을 비교해 보세요. `나리`꽃과 `달래`꽃을 아시는 분은 아마도 고개를 끄덕이실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것에는 접두사 `진-`을, 좋지 않은 것에는 접두사 `개-`를 붙인 단

어가 우리 국어에는 무척 많지요. 이러한 것의 전형적인 것을 들어 보일까요? `개꽃`과 `참꽃`을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그분은 아마도 대전과 군산을 잇는 경계선 아래에 고향을 두신 분입니다. 즉 이 단어는 영남과 호남의 일부지방에서만 사용되는 방언입니다. 그 북쪽이 고향이신 분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꽃은 `참꽃`이고 먹을 수 없는 꽃은 `개꽃`이지요.


고주망태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때 `고주망태`라는 말을 흔히 씁니다.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마셨다`고 말하지요. 이 고주망태는 어디에서 온 말일까요? `고주`를 `고주`(쓸 고, 술 주)라고 해석하는 분도 있지요. 그러

나 `고주`는 `쓴 술, 또는 독한 술`이란 뜻을 가진 한자어가 아닙니다. `고주`는 고유어입니다. 원래는 `고자(아래 아)`이지요. `고자(아래 아)`란 `고조`라고도 썼는데, 그 뜻은 누룩이 섞인 술을 뜨는 그릇을 말합니다. `망태`는 `망태기`와 같은 것으로, 무엇을 담는 그릇을 말하기도 하고, 전혀 쓸모없이 되어버린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주망태`란 술통을 통째로 마신 것처럼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하여 정신을 못차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썰매


겨울이 되면 썰매를 타고 놀곤 하던 생각이 나는 분이계실 것입니다. 지금은 시골의 깊은 산촌에나 가야 어쩌다 발견하는 것이어서 젊은 사람들 중에는 이 `썰매`를 구경도 못한 사람이 꽤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어느 텔레비젼에서 국민학교 학생에게 `인두`를 보이며 이것이 무엇에 썼던 것인 것 같으냐고 물으니까, 한참 들여다보다가 `화살촉`이 아니냐고 되묻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어린이들에게 `썰매`를 보이면, `나무깔판`이 아니냐고 되물을 것 같습니다.

`썰매`는 엉뚱하게도 한자어입니다. 즉 `설마`(눈 설, 말 마)의 음이 변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눈위에서 달리는 말`이란 뜻이지요. 어떻습니까? 그럴 듯하게 이름을 붙였지요?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슬기롭게 이름을 붙였었습니다.


`계집`과 `집사람`


`계집`은 지금은 비칭이 되었지만, 본래는 그 형태가 `겨집`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 `겨시다`(계시다)이기 때문에 `겨집`이라고 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아직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민간어원설입니다. `겨집`은 `여자`의 뜻으로, 평칭으로 사용되어서 `아무개는 아무개의 겨집이다`라고 했었는데, 이 `겨집`에 `가 비칭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가 많지요. `버리다`도 `베리다`라고 하면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을 말할 때 쓰인다던가, `소주`를 `쇠주`라고 하면 역시 낮추어서 부르는 것이 된다던가 하는 것 등이 그러한 것이지요.

`집사람`은 본래의 뜻은 이것의 한자어 즉 `가인`(집 가, 사람 인)으로서, `가족`이란 뜻이었지요. 부인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집사람`이라고 호칭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옛날 문헌에서 `집사람`이라고 한 것을 보면 대개 그 부인을 말하는 경우가 많았었지요.


마요네즈


음식의 위에 덮어서 먹는, 또는 섞어서 먹는 `마요네즈`라는 것이 있지요? 간혹 `마요네스`라고도 합니다. 이 `마요네즈`는 스페인의 항구도시 `마욘`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지방에서 나는 특산품이지요.


호치키스


종이의 묶음을 하나로 묶기 위하여 사용하는 기계를 `호치키스`라고 하지요? 문방용구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미국의 발명가 Hotchkiss가 발명한 기관총(Hotchkiss gun)을 말하던 것이었는데, 소위 지철기(Stapler)의 상표가 되면서 우리나라에서 `호치키스`라는 이름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미역국을 먹다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은 요즈음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미끄러져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원래는 미역국은 애기를 낳은 산모가 먹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해서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미역국의 미역이 미끌미끌하니까, 그렇게 사용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름도 있을텐데, 하필이면 미역국을 비유의 대상으로 삼았을까요?

아직까지 이 말의 원래 뜻은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설이 있습니다.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은 원래 취직자리에서 떨어졌을 때를 속되게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도 유래가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우리나라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을 때, 그 `해산`이란 말이 아이를 낳는다는 `해산`과 말소리가 같아서, 해산할 때에 미역국을 먹는 풍속과 관련하여 이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은 `해산`당했다는 말의 은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취직자리가 떨어진 것과 시험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 설은 아직 과학적으로 중명된 것은 아니니,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은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간나이`와 `사나이


`여인`이 한자어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립되는 남자의 호칭 중에 `남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쓰이지 않고 단지 `내외를 갖춘 남의 집 하인`을 뜻하는 `남진계집`이란 단어가 복합어로만 쓰일 뿐입니다.

`남진`은 `여인`의 대립어인 `남인`(사내 남, 사람 인)의 우리식 발이 반시옷이 후대에 `진`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렇게 반시옷이 `지읒`으로 변화한 것 중의 하나가 `삼월삼질`(또는 `삼월삼즉 `삼월삼일`의 `일`이 `일(반시옷 글자)`이었는데, 이것이 `질`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왜 `여인`은 왜 `여진`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남진` 대신에 `남정네`가 쓰이지요. 이 `남정네` 역시 한자어입니다. `남정`이지요. `남`은 아실 것이고 `정`은 `니다. 여기에 접미사 `-네`가 붙어서 `남정네`가 된 것입니다.

이 `정`(고무래 정)과 연관시켜 생각할 것이 `간나이`와 `사나이`입니다. `간나이`는 지금은 방언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것인데 옛날에는 `갓나히`였습니다. `갓`은 `여자`, 특히 시집가지 않은 젊은 여자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이 `갓`이 `가시`가 되고 이것이 다시 한자어에 견강부회식으로 붙여서 `각시`를 만들었지요. 그러나 그 어원은 모두 `갓`입니다. `나히`는 아직 그 어원을 알 수 없는 단어입니다. 이 `나히`에 `산`이 붙으면 `산나히` 즉 `사나이`가 됩니다. 이 `산`(원래는 아래 아 자)은 `정`을 말하는 것으로서 말하는 단어입니다. 옛날 문헌에는 `정`을 `산(아래 아자) 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간나이`와 `사나이`는 서로 대립되는 말입니다.

평안도 방언에서 `이 간나 새끼`라는 욕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여자 같은 새끼`라는 욕이겠지요.


원숭이`와 `잔나비`


우리네 동양 사람들은 천간을 따져서 나이를 무슨 띠로 말하곤 합니다. 사람의 난 해를 지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속성으로 상징하여 말하는 것이지요.

지지 중에 `신` 자가 붙은 해(예컨대 `갑신`년)에 태어난 사람을 `원숭이 띠`라고 하지만, 이것은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옛날 노인들은 `잔나비 띠`라고 하셨습니다. 왜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했을까요?

우리말에 옛날에는(17세기까지도) `원숭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18세기에 와서 한자어인 `원성이`(원숭이 원, 원숭이 성)가 생겨났고 `성`의 음이 `승`으로 변하여(`어`가 `으`로 발음되는 경우는 많지요. `어른`도 `으른`이라고 하지 않나요?) `원승이`가 되고 이것이 또 변하여서 오늘날 `원숭이`가 된 것입니다.

원숭이의 고유어는 `납`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 `원`의 새김도 `납 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재다`(동작이 날쌔고 재빠르다)의 형용사형 `잰`이 붙어서 `잰나비`가 되고 이것이 음운변화를 겪어서 `잔나비`가 된 것입니다. 원숭이가 재빠르긴 재빠르지요(여기의 `재빠르다`도 `재다`와 `빠르다`가 합쳐진 말이군요). 아직도 방언에서는 원숭이를 `잰나비`라고도 하지요.


우물


요즈음이야 참 좋은 세상이지요.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쏟아져 나오니까요. 옛날에야 어디 그런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나요? 모두 동네 우물에 가서 물을 동이에 이고 오거나 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더군다나 남자가 물을 길어 오는 것은 금물이어서 여자분들이 꽤나 고생을 했었습니다.

`우물`은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요? `우물`의 `물`은 알겠는데, `우`가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지요? 그런데 그것은 `우`가 아니라 `움`입니다. 그러니까 `움물`이 `우물`이 된 것입니다. `움`에서 나오는 `물`이란 뜻입니다. 지금도 `우물`을 `움물`이라고 하는 방언도 있습니다. 지금도 `움`이란 말은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움`을 파고 김치독을 묻거나, 움에다가 천으로 가려 집을 만들면 `움막집`이 됩니다.


가게


요즈음은 일상생활품을 어디서 사오나요? 옛날에는 `가게`에 가서 사 왔는데, 요즈음은 `슈퍼`에서 사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가게`라고 하는데, 저의 아들들은 꼭 `수퍼`라고 합니다. 한번은 `슈퍼마켓트` 주인이신 할머니를 `수퍼할머니`라고 해서 저는 어느 초능력을 가진 할머니가 계신 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옛날의 `가게`는 물건을 널판지로 만든 시렁 위에 임시로 진열하여 놓고 파는 곳을 말합니다. 요즈음도 가끔 시골에 가면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본래 `가게`(옛날에는 `가개`)란 말은 `상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렁, 선반 또는 차양을 뜻하던 것으로 행인이 앉아 쉬게 하던 평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임시로 노점과 같은 것이 생기자 이 `가게`가 점차 상점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따발총


6.25를 겪으신 분은 `따발총`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소련식 기관단총이지요. 이것을 보통 `다발총`(많을 다, 필 발, 총 총)이라고 해석해서 한자어인 줄로 알고 계신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국어사전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 말은 따발총 같애.` 라고 말하여 마치 속사포를 일컫는 것으로 이해하여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알고 계신 것입니다.`따발총`을 직접 보신 분이 계신가요? 탄창이 어떻게 생겼던가요? 마치 `또아리`(물동이 등을 머리에 일 때에 머리 위에 얹도록 만든, 짚으로 둥글게 틀어서 만든 물건)처럼 생기지 않았던가요? 이 `또아리`를 함경도 방언에서 `따발`이라고 합니다(`또아리`를 `또바리`라고 하는 방언도 있습니다). 함경도에서 소련식 기관단총에 `또아리`와 같은 것이 달렸다고 하여, 이 총을 그 방언에 따라 `따발총`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따발`이 한자의 `다발`과 비슷하니까, `다발총`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지요.


무좀


아마 무좀에 한번쯤 걸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로 발가락 사이에 잘게 물이 잡히는 부스럼이지요. 혹시 이 말을 외래어로 아시고 계신 분은 안 계신지요?

`좀`의 뜻은 아시지요? `좀`은 벌레 이름입니다. 보통은 `좀벌레`라고 하는 것인데, 나무, 곡식, 옷, 종이 따위를 쏘는 벌레의 하나입니다. 저는 아직도 고서 속에 생기는 이 좀벌레를 없애기 위해 `좀약`(나프타린)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좀`의 `무`는 무엇일까요? 앞의 `보조개`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물좀`이 `니다. `좀`은 `좀이 쑤신다`처럼 참고 기다리지 못하거나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앉았다 섰다 하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이지요. 그만큼 `좀`이 몸을 쑤시면, 가려워서 견디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좀도둑`의 `좀`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좀(쫌)스럽다, 좀(쫌)팽이` 좀(쫌)상스럽다, 좀(쫌)생원`의 `좀`으로, `조금`의 준말로 쓰이는 것입니다.


곶감


`곶감`에 얽힌 이야기는 무척 많습니다. 호랑이가 자기보다도 무서운 것으로 알았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속담도 많지요. `곶감이 접반이라도 입이 쓰다`(마음이 언짢아서 입맛이 쓸 때),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알뜰히 모아 둔 것을 힘들이지 않고 하나씩 빼어 먹어 없앤다는 뜻), `곶 감 죽을 먹고 엿 목판에 엎드러졌다`(연달아 좋은 수가 생겼다는 뜻) `곶감 죽을 쑤어

먹었나`(왜 웃느냐고 핀잔주는 말)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다` 등등.

이 `곶감`의 `감`은 물론 과일의 하나인 `감`이지요. 그리고 `곶`은 `곶다`의 어간 `곶-`입니다. `곶다`는 현대국어에서는 된소리가 되어 `꽂다`로 되었지요. 그래서 일부 방언에서는 `꽂감`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니까 `곶감`은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을 말합니다.


마땅하다


`마땅하다`는 "잘 어울리다, 알맞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따위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고 있고, 또 그 어감이 꼭 우리 고유어인 것처럼 생각되어서, 이 단어에 한자가 있다고 한다면,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마`가 한자일까? `땅`이 한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말과 그 표기법이 큰 변화를 겪어 왔기 때문에 수긍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의 예들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보시면 수긍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땅하다`는 원래 `맛당하다`로 또는 `맛당하다`로 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맞다`의 어간 `맞-`에다가 이 `맞다`와 같은 뜻을 가진 한자 `당(마땅 당)`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우리 고유어에다가 같은 뜻을 가진 한자를 붙여서 만든 단어이지요.

이처럼 우리 고유어에 한자가 붙어서 된 단어는 꽤나 있습니다. `굳건하다, 튼실하다, 익숙하다`등이 그러한 예들입니다.

`굳건하다`는 고유어인 `굳다`의 어간 `굳-`에 한자 `건`(굳셀 건)이 합쳐진 단어이고요, `튼실하다`는 `튼튼하다`의 `튼`에 한자 `실`(열매 실)이 합쳐져서 된 말이지요. 그리고 `익숙하다`도 `익다`의 `익-`에 한자 `숙`(익을 숙)이 합쳐진 말입니다.

이렇게 고유어에 고유어가 뜻을 같이 하는 한자가 붙어서 된 단어를 우리는 동의 중복으로 된 복합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한자어와 고유어를 합쳐서 쓰는 말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우리가 보통 드는 예는 `처가집, 역전앞, 무궁화꽃`등 정도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만, 실상은 그 이상입니다. 그 예가 무척 많음에 놀라실 것입니다. 다음에 그 일례들만 들어 보이도록 할 테니까, 하나하나 잘 분석해 보세요. 같은 뜻을 가진 한자와 고유어가 어떻게 섞여 있는지를요.


담장 바람벽 어떤 일미인 두견 접동

장림 숲 학 두루미 옷 칠 모래사장

손수건 속내의 새신랑 긴 장대

큰 대문 어린 소녀 젊은 청년 늙은 노인

빈 공간 넓은 광장 같은 동갑 허연 백발

누런 황금 배우는 학도 둘로 양분하다 미리 예습하다

다시 재혼하다 서로 상의하다 스스로 자각하다 배에 승선하다

자리에 착석하다 분가루 일전 한 푼 자식새끼

외가 집 면도칼 고목나무 진화되다

소급해 올라가다 유언을 남기다 상용하여 써 온다 피해를 입는다.


지치다


`피곤하다`는 뜻으로 곧잘 `지치다`란 말을 쓰지요. 그런데 이 `지치다`란 말은 원래의 뜻이 `설사하다`란 것이었습니다. 설사하는 행위의 결과로 신체에 나타나는 상태를 `지치다`로 하니까, 자연히 `피곤하다`는 의미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하다`로 쓰이던 `즈다`가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훈몽자회에도 지칠 설, 지칠 사로 되어 있습니다(이것은 현대의 표기법으로 바꾸

어 쓴 것입니다)


노래`와 `놀이`와 `노름`


`사람`, `삶` `살림`이 모두 `살다`에서 온 것과 마찬가지로, `노래` `놀이` `노름`도 한 가지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즉 `놀다`의 어간 `놀-`에서 온 말입니다. 각각 `놀- + -애`, `놀- + -이`, `놀- + -음`으로 분석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우리들에게는 `노래, 놀이, 노름`이 전혀 다른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요. `놀이`는 그럴 듯한데, `노래`나 `노름`이 `놀다`에서 나왔다는 인식은 들지 않지요.

그런 생각이 드는 단어일수록 대개는 그 단어가 만들어진 역사가 오랜 것들입니다.


클랙션


자동차를 운전하는 분은 가끔 `클랙션`(경적)을 사용하지요. 이 `클랙션`이라는 말은 이 기계를 만든 제조회사 Klaxon에서 나온 상표 이름으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마요네즈


음식의 위에 덮어서 먹는, 또는 섞어서 먹는 `마요네즈`라는 것이 있지요? 간혹 `마요네스`라고도 합니다. 이 `마요네즈`는 스페인의 항구도시 `마욘`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지방에서 나는 특산품이지요.


메리야스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이제는 내의를 입어야 할 때가 되었지요? 우리가 흔히 `내의`를 `메리야스`라고 하지요. 이것은 본래 `내의`의 상표 이름이었습니다. 스웨덴에서 온 medias(한 켤레의 양말이란 뜻)란 상표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내의`란 뜻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습니다.


바바리코트


날씨가 추워지면서, 길거리에 `바바리코트`를 입은 사람이 많아 졌습니다. 요즈음은 `바바리코트`를 입은 사람은 자가용이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도 들을 정도로 이 옷을 입은 사람이 적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바`(overcoat)가 두텁고 무거워서 대부분 `바바리코트`를 선호했었습니다. 가을이나 겨울 아무때나 입어서 전천후 코트가 되었었지요.

이 `바바리코트`는 영국 Burbery 회사가 만들어낸 비옷(레인코트)의 상표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독


여러분! 고독할 때가 많습니까? 그래서 `고독`을 씹는다는 말을 곧잘 하지요? 이 `고독`은 물론 한자말입니다. `외로울 고, 홀로 독`이지요. 그러나 어느 때가 외로울 때고, 어느 때가 홀로 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고독한 사람은 부모를 여의고, 짝을 잃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고아`니 `독신`이니 하는 말을 하지요. 정말로 `고아`와 `독신`을 겸하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가 진실로 고독한 때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고독하다`고 말씀하시지 마십시요. 그리고 고독한 척도 하지 마십시오. 물론 오늘날에는 그 뜻이 바뀌었지만 말입니다.


코리아


우리나라를 외국에서는 여러 가지로 부릅니다. `코리아, 꼬레, 꼬레아`등 그 나라의 언어에 따라 각각 다르지만, 영어권에서는 `코리아`라고 하지요. 이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고려`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려`라고만 부르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 `아`가 붙은 것이지요. 그러니까 `코리아`는 `고려 + 아`가 연결되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Korea`가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 즉 `a`는 무엇일까요?

외국의 지명에는 끝에 `a`` 많이 보이지 않습니까? `America, Canada, China, 오스트리아, 오스트랄리아, 기니아` 등 찾아보면 무척 많습니다. 이 `a`는 영어에서 지명을 표시하는 접미사입니다. `코리아`는 `고려`에 `a`가 붙은 것이고, `China`는 `진`나라(진시황의)의 `진`에 `a`가 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인도지나`라고도 하지요. 그것이 영어 발음에 따라 `차이나`로 되었습니다.


우리말 어원 이야기- 엮 은 이: 홍윤표, 다시고침: 류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