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이미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 지난 9월16일 중국 훈춘에서 팡취안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취안허(圈河)에서 부두 공사가 한창이다. 다리 건너 북한 지역은 함경북도 라선시 원정리다. ⓒ2004 오마이뉴스 김태경
중국이 진행중인 '동북공정'의 궁극적 목적은 간도 문제 등 영토분쟁에 대비한 사전 정비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를 중국사로 편입함으로써 유사시 북한땅에 대한 중국 개입의 근거를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결코 '연구'만 하고있는 게 아니다. 동북공정이라는 학술적 작업과 함께 만주인 동북 3성을 군사적·정치적으로 안정화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작업도 진행중이다.
지난 9월16일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중국 지린성 훈춘에서 60㎞ 정도 떨어진 팡촨(防川)을 찾았다. 팡촨은 북한, 중국, 러시아 3개국의 국경이 만나는 곳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북한의 두만강시, 왼쪽으로는 러시아의 하싼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곳에서 두만강을 따라 17㎞만 내려가면 동해가 나온다. 이 수역의 절반은 러시아 영토, 나머지 절반은 북한 영토다.
훈춘에서 4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취안허(圈河)에서 부두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중국군 65831부대가 발주한 이 공사는 240만위안(3억4800만원)을 들여 7월30일 공사를 시작해 10월30일 완료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취안허에서 팡촨까지의 2차선 도로를 시멘트로 포장하는 공사도 진행중이었다.
취안허는 중국과 북한의 중요한 국경 무역지역으로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통해 함경북도 라선시(라진-선봉지구가 합쳐 형성) 원정리와 연결돼 있다.
그런데 왜 취안허에 부두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북한, 러시아, 중국의 외교관계상 중국이 이곳에 굳이 군용 부두를 만들 필요는 없다.
현지 취재과정에서 이같은 의문은 곧 풀렸다. 취안허의 부두는 군용이 아니었다. 변경 지역이어서 군 부대가 공사를 발주했을 뿐 실제로는 동해 쪽 출구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의 하나였다. 중국은 동해로 머리를 내밀기만 하면 상당한 경제·정치·군사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중국은 지난 10여년간 동해로 진출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러시아의 자루비노항이나 북한의 라진-선봉항을 이용하는 방안 등을 고민했고 실제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다른 나라 국경을 통과해야하고, 특히 러시아는 중국의 동해 진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 직접 동해 쪽 출구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을 벌인 것이다.
한 중국 학자는 "수심이 최하 3m에 창고를 지을만한 비교적 넓은 터가 있는 취안허에 작은 항구를 만든 뒤 400~500t 정도의 배에 물건을 실어 동해 공해상에 대기하고 있는 대형 배에 옮겨싣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팡촨부터 동해까지는 두만강의 북한 쪽 수역을 이용할 계획이다.
해마다 막대하게 쌓이는 두만강의 충적토를 준설하는 방안, 팡촨 바로 앞에 있는 북한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철교(친선교)의 높이를 높이는 방안 등도 연구중이었다.
만주 개발... 동북진흥 계획 추진 중
동북진흥은 지난 1999년부터 야심차게 시작한 서부 대개발과 같은 급의 중대사업으로 동북3성 가운데서도 랴오닝성이 가장 핵심지역이다. 중국 정부는 동북지역을 광둥성의 주강 삼각주, 상하이 부근의 장강 삼각주, 베이징 중심의 징진탕(京津唐) 지구와 함께 중국의 4대 경제권역으로 부상시킬 계획이다.
표면적으로 동북진흥을 시작하는 목적은 지역간 소득격차 해소다. 동북3성의 총 면적은 79만㎢, 인구 1억655만명(2002년 기준)으로 지하자원이 풍부해 1930년대부터 공업화가 시작됐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이 지역은 정부의 중공업 우선 발전전략에 따라 철강, 화학, 중장비, 자동차, 군수산업 등이 집중 성장해 중국 제일의 공업지대가 됐다.
그러나 개혁개방 뒤 동부 해안 위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국유기업 중심인 동북지역은 낙후되기 시작했다. 동북 3성 전체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랴오닝성의 경우 78년만해도 GDP가 광둥성의 2배였다. 그러나 지난 2002년 랴오닝성의 GDP는 5458억위안으로 1조1770억위안인 광둥성의 절반에 불과하다.
동북 지역 최저생활 보호대상자 600만명으로 중국 전체 도시빈곤인구의 25%를 차지한다. 재중동포 학자인 김아무개씨는 "국유기업 정리과정에서 실업자가 양산되면서 이로인한 집단시위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 동북 3성"이라며 "이런 상황이니 중앙정부에서 이곳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동북진흥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LG경제연구원 강승호 박사는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동북진흥을 통한 중국의 중공업 부활 전략은 그들이 중간재, 자본재를 수입대체하는 등 한 단계 높은 공업화를 위한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동북지역은 러시아, 몽골, 한반도와 연결되는 핵심지역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만주에서 흥기한 왕조가 중원을 점령했었다.
▲ 지난 9월9일 압록강 유람선에서 바라 본 북한 신의주(오른 쪽)과 중국 단둥의 모습. 양 쪽 경제수준의 차이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2004 오마이뉴스 김태경
"이러다가 북한경제가 중국에 포섭될 수도"
그러나 국내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동북진흥을 대단히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동북진흥을 통해 지리적으로 바로 인접해 있고 옛 소련식의 중화학 위주의 산업구조까지 비슷한 북한이 중국 경제권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 경제를 남한 경제권에 포섭하고 더 나아가 동북아 중심국가를 추구하려던 우리 구상과 크게 배치된다.
한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은 "동북공정이 고구려가 있던 북한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를 마련한다면, 동북진흥은 경제적으로 북한을 포섭할 수 있다"며 "동북공정과 동북진흥은 동전의 양면이다. 동북진흥과 북한 경제권 확보 전략은 연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한 전문가는 "동북진흥은 베이징-다롄-단둥을 잇는 랴오닝성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며 "중국은 자신의 경제적 영향력을 압록강을 넘어 신의주와 평양으로 미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화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말 중국의 시사잡지인 <료망동방주간>(瞭望東方週刊)은 "중국인들이 다시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이전에는 군인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상인들이다"라고 보도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군복을 입은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넜지만 이제는 북한 지역에 대한 투자를 위해 기업가들이 도강하고 있음을 빗댄 것이었다.
올 해 중국의 선양중쉬(瀋陽中旭) 그룹은 북한 무역성 등과 합작해 북한 최대의 백화점인 평양 제일백화점 10년 임대권을 확보하고 5000만위안(72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이 회사는 내년에 평양에 있는 점포 4개의 추가경영에도 나설 계획이다. 선양중쉬 그룹 쩡창뱌오(曾昌飇) 회장은 '중국의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원저우 상인이다.
중국의 무역컨설팅 회사인 차오화여우롄(朝華友聯) 문화교류공사는 올 지난 7월10일 저장성
원저우에서 북한투자 설명회를 열었다. 당시 200여명의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인들이 몰려들어 자리가 모자랐으며 일부는 자리가 없어 선채 들었다고 한다. 같은 달 말 이 회사는 북한시장 고찰단을 모집해 평양에 갔다.
올 5월 평양에는 '북중상품판매센터'가 개설됐다. 7월1일 평안남도 대안군에는 대안친선유리공장 착공식이 열렸다. 올해 안에 2만평 규모의 조·중 비즈니스 센터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지난 2002년 9월 중국의 난징슝마오전자그룹은 북한의 대동강계산기 회사와 합작으로 컴퓨터 회사를 설립했다. 중국 우진(五今)그룹의 한 계열사는 북한과 합작으로 자동차 오일 생산회사를 만들어 북한 시장을 장악했다.
원저우시 대외경제무역합작국의 샤린홍 처장은 "북한에는 경공업 제품이 모자라는데 이 분야에 원저우 기업들은 경쟁력이 있다"며 "또 중국은 현재 경공업 시장이 포화상태로 시장 다변화의 필요성이 있다"고 북한 진출의 이유를 설명했다. 북한 정부도 중국 기업들에게 세제 혜택과 싼 토지를 제공한다. 평양제일백화점에 투자한 중쉬그룹의 경우 5%의 수입세와 5%의 소득세만 내면된다.
"지금은 북한시장 선점할 절호의 기회"
▲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연결하는 중조우의교(友宜橋). 이 다리를 통해 중국 무역상인과 상품들이 북한으로 들어간다. ⓒ2004 오마이뉴스 김태경북한은 경제 관련법이 미비하고 기업 재산권에 대한 보장도 아직 불확실한 면이 많다. 전력도 부족하고 통신·운수 시설도 상당히 열악하다. 그런데도 중국 기업이 북한에 가는 이유에 대해 중쉬그룹 쩡창뱌오(曾昌飇) 회장은 "나는 7년을 기다려 평양제일백화점 투자사업을 따냈다"며 "지금이야말로 북한 시장을 선점할 절호의 기회"라고 단언했다.
문제는 북한에 진출하는 중국 기업은 겉만 민간이지 실제로는 중국 국유기업이거나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신 밀월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밀접해졌다. 지난 4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월에는 권력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6개월 시차로 북한 최고위 권력층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중국도 9월10일 리창춘 정치국 상무위원을 평양에 보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남한의 영향력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일단 북핵문제에 있어 한국은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중국한테 넘겼다.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은 훨씬 더 강해졌지만 남한이 쓸 지렛대는 없는 실정이다.
유일한 희망인 개성공단 사업은 전략물자 반입문제로 지지부진하다. 크리스토퍼 힐 대사는 지난달 25일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는 '전략물자 반출입 문제는 미국과 잘 협의되고 있다'고 몇달 째 같은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는 것 같다.
여기에 지난 7월말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에 몰려있던 탈북자 460여명을 남한 정부가 한국에 데려오고, 미국이 북한 인권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남북 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재중동포 학자는 "북한은 원래 개성공단에 큰 기대를 걸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실망하고 있다"며 "휴전선 부근인 개성공단을 군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내줬다. 북한으로서는 큰 양보였다. 그런데 미국의 전략물자 반입 통제를 남한 정부가 제대로 막지못하고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남한과의 경협도 별 성과는 없고, 북핵 문제에 있어 남한이 한미일 공조만 외치자 갈수록 북한은 중국에 기울게 된 것이다.
임완근 남북경협진흥원장은 "북한은 남한과 오랫동안 경협을 진행했지만 뭣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중국하고는 일이 잘 풀리니까 그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며 "역사를 빼앗아간다고 해도 결국 찾아오지 않겠는가? 그러나 북한 경제권이 중국에 넘어가면 정말 손 쓸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재선되면서 남북 경협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국제조사문제연구소 조성렬 박사는 "북한과의 경협하면 마치 한국이 당연히 우선권이 있는 듯이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앞으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놓고 남한은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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