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부

오삼계는 통일 영웅인가 반역자인가

한부울 2006. 8. 31. 14:41
 

오삼계는 통일 영웅인가 반역자인가

                             ▲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하이꽌 ⓒ오마이뉴스 김태경


지난 9월 12일 산해관(山海關)을 찾았다. 베이징에서 동북쪽 열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산해관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다.


산해관의 성벽 위에는 명나라 말기에 활약했던 많은 재상과 장군들의 동상 100여개가 서있었다. 그러나 오삼계(吳三桂 1612∼1678)의 동상은 없었다.


오삼계는 중국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장군이다. 1644년 명나라 말기 농민 반란을 일으킨 이자성(李自成)이 수도 베이징에 쳐들어왔다. 명나라는 오삼계를 평서백(平西伯)에 봉하여 수도방위를 맡게 했다. 그러나 그는 이자성에게 베이징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자 산해관으로 돌아가 청나라에게 항복했다. 이로써 명나라는 멸망했다.


그러나 명나라의 잔존 세력은 남방으로 가 저항했다. 오삼계를 비롯해 정남왕(靖南王) 경정충(耿精忠), 평남왕(平南王) 상지신(尙之信) 등 한족(漢族) 출신 장군들은 앞장서 명나라 잔족 세력을 제거했다. 오삼계는 남명(南明) 정권을 추적해 영력제(永曆帝)를 오늘날의 미얀마에서 살해했다. 그러나 이후 청나라는 이들의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1673년 오삼계는 운남성에서 군사를 일으켜 주(周)를 세우고 경정충, 상지신(尙之信) 등과 함께 '삼번(三藩)의 난'을 일으켰다가 모두 패배해 살해당했다.


고구려와 수당 사이의 전쟁을 민족통일전쟁이라고 부르는 중국의 시각에서 본다면 오삼계는 중국 통일의 영웅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그 누구도 오삼계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같은 시기 오삼계와 정 반대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 있다. 바로 정성공(鄭成功 1624~1662)이다.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정성공은 명나라가 망하자 당왕(唐王) 융무제(隆武帝)를 옹립해 청나라에 대항했다. 그는 국성(國姓)인 주(朱)씨를 하사받아 주성공(朱成功)으로 이름까지 고쳤다.


1661년 정성공은 당시 타이완을 점령하고 있던 네덜란드 세력을 격퇴시키고 이곳을 근거지로 청나라에 항거했다. 그러다 1683년 정성공 세력은 완전히 몰락하고 청나라에 복속됐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그 누구도 정성공을 "조국 통일을 방해한 민족 분열주의자"라고 평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