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바실 홀(Basil Hall)의 유황섬(硫黄島:Sulphur island)

한부울 2013. 7. 1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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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 홀의 유황섬(硫黄島:Sulphur island)

 

글쓴이:한부울

 

1816년 바실 홀이 보았다고 하는 유황섬을 찾으려면 화산섬을 찾아야 한다.

백과사전을 보면 유황(硫黃:sulfur)은 비금속원소로서 보통 형태의 것은 황색의 사방정(斜方晶:orthorhombic)을 나타내고 불을 붙이면 푸른 불꽃과 자극성 있는 냄새를 내면서 타는 것이 특징이라 하였고 일찍부터 화약제조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겼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한약제로도 쓰였다는 약제이기도 하다.
1834년 이규경(李圭景)이 지은 과학기술서, 오주서종박물고(五洲書種博物考辨)에 보면 유황의 제조법이 나오는데 “먼저 가마를 만들고 진흙을 굴(窟)과 같이 둥글게 그리고 휘어지게 쌓고 그 가운데에 땅을 파고 빈 질그릇 항아리 도항(陶缸)를 묻어 채굴한 유황석을 다른 질그릇 항아리에 담고 솔잎으로 일단 입구를 막고 난 후 다시 빈 항아리를 묻은 위에 화산에서 구한 유황석(硫黃石)이 담겨 있는 항아리를 서로 입구가 잘 합해지도록 올려 놓고 불을 때어 한돌, 일년 즉 일주기(一周期)를 기다려서 꺼내 보면 유황액(硫磺液)이 밑의 항아리로 흘러 들어가 있게 되고 그것이 응고되기를 기다려 나중에 항아리를 깨뜨려서 꺼내 보면 납(蠟)과 같이 굳어져 색이 노란 것이 가장 좋다고 한 기록을 말하고 있으며 1610년 허준(許浚)이 지은 의서(醫書)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유황은 성(性)이 대열(大熱)하고 맛이 시고 독이 있으며, 심복(心腹)의 체증이 오래되어 덩어리가 지는 적취(積聚 )와 사기(邪氣)의 냉벽(冷癖)등을 다스리고 근골(筋骨)을 굳세고 장(壯)하게 한다.“고 하면서 백과사전은 이 유황이 우리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많이 제조되고 다양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하였다.

 

클릭원본

                                  [자료찾기1-Tectonic plates boundaries detailed]

 

                                               [자료찾기2.Caribbean plate tectonics]

 

                                                [자료찾기3. Philippine Sea Plate]

 

제일 위 [자료찾기1]는 세계지진판(earthquake plate)지도이다.

이것을 보면 판(plate)과 판(plate)이 맞물려 있는 곳을 여러가지 색의 띠로 연결되게 표시한 것인데 이 띠 선을 지진대(地震帶:seismic belt) 또는 화산대(火山帶:volcanic zone)라고 한다.

유황섬(硫黄島:Sulphur island)을 찾으려면 유황석(硫黃石)이 다량으로 산출되는 곳 즉 화산대의 섬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이 유황석은 인류가 고대부터 채취해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 화산역사가 오래된 곳일 것이다.

위 세계지진판(earthquake plate)경계에서 보면 각기 화산섬을 두고 있는데 이것들 중에서 1816년 바실 홀일행이 보았다고 하는 유황섬(硫黄島:Sulphur island)을 찾으면 된다.

물론 현재까지 유황섬은 [자료찾기3]에서 볼 수 있는 일본열도(日本列島) 동남(東南)쪽 현재 필리핀판(Philippine Sea Plate)과 태평양판(太平洋板:Pacific plate)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이오지마(いおうじま:Iwo jima)를 지칭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안타까운 것은 이 유황섬이 지금의 이오지마에 정해지고 더 나아가 오키나와에 유구가 들어 앉으면서 실제로 삼한(三韓)의 코리아(corea)가 한반도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 이오지마가 유황섬이 아니라면 결국 한반도에 삼한의 주체 코리아(corea)가 있었다는 사실은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서세자료를 따르면 당시 영국정부는 청(淸)나라고 하였지만 고려(高麗)일 가능성이 높은 소위 중국(中國:chinese)과의 무역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암 허스트(Lord Amherst)사절단을 파견하였는데 이를 수행한 주함 1,097톤의 38포문을 장착한, 알세스트호(Frigate Alceste:1817. 2.18, China Sea난파)의 함장 머리 맥스웰(Murray Maxwell)과 이 함선 보다 조금 작은 10포문을 장착한 리라호(Sloop Lyra:1818 매각)호 함장 바실 홀(Basil hall)대령이 한반도 서해안과 류쿠(琉球國:Lewchew, Luchu)를 탐측한 해도와 기행일기를 1818년 런던에서 발표하고 그의 기록들을 전부 모아 코리아서해안발견과 기행보고(Account of 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라고 알려진 책이 출간되면서 이 코리아, 유구, 유황섬이 알려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코리아 서해안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하게 안다면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역사반전이 일어날 수 있는 전환점의 태풍이 되겠지만 이것을 본 블로그가 곧 밝힐 것을 다짐함과 동시에 이것과 별도로 유황섬의 특수성을 가지고 실제로 1816년에 바실 홀일행이 목격했다고 하는 유황섬의 정확한 위치가 과연 어딘가를 탐색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러니 코리아의 서해안 이야기는 잠시 미룰 수밖에 없다.

 

실상 바질 홀(Basil Hall:1788 -1844)이 보고 그린 그림이 그의 출간책에 삽화로 등장하는데 아래 그림이다.

 

                                      바실이 목격한 유황섬[硫黄島:Sulphur island]

 

그런데 이 섬의 모양이 전혀 지금의 이오지마(いおうじま:Iwo jima)와 전혀 닮지 않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관찰해 볼 때 사진 오른쪽 기괴하게 생긴 형상에서 주목되는 곳은 바로 카리브해제도 세인트루시아(St Lucia)섬 남서쪽 수프리에르만(Soufriere bay)쌍봉 그로스피통(Gros Piton)과 프티피통(Petit Piton)임을 알 수 있었다.

 

 

[자료찾기.5]또하나의 유황섬의 영국 삽화 사진 1863 Sulphur Island, opposite Satzuma's Dominions Japan Ships[Illustrated London News] 사쓰마 자기(薩摩焼, 薩摩磁器, 南京焼, 唐津燒:satzuma ware) 가 조선자기(朝鮮磁器:系技術)

 

이 그림역시 위 사진 보다 17년 뒤 늦게 영국에서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이 그림을 그린 곳은 우리가 일본 영역이라고 배워온 살마(薩摩)라는 사실이다.

바실홀이 그린 그림이나 위 1863년 그림 모두는 우리가 관광객으로 들어가 육지에서 촬영한 풍경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배에서 그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형상을 찾을 위치도 카리브해를 벗어날 수가 없다고 보여진다.

일단 화산 역사사실을 기준으로 판단해 볼 때 세인트빈센트 수프리에르(Soufriere)산이라고 판단되지만 살마가 세인트루시아(St Lucia)섬 도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 열도 동남쪽 이오지마 위치]

                            

[자료찾기 6. 이오지마  남쪽에 있는 산]

 

[자료찾기 7. 이오지마 구글 위성 캡쳐 자료]

 

반면 [자료찾기 6.7]그림은 구글로 현재 이오지마를 캡쳐한 것인데 모양자체가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가 있다.

더 이상 실제 형상에서는 이야기 할 꺼리가 못된다.

현재 유황섬이라고 알려진 일본 열도 동남쪽에 이오지마는 바실 홀의 그림 [자료찾기 4]와 비교하여도 형상이 전혀 비슷하지가 않다.

그렇다면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816년 영국함장 바실 홀(Basil Hall:1788 -1844)의 기행문을 요약하면 사절단이 천진에 들렸다가 책임자인 암허스트백작이 관례의식을 따르지 않는다고 중국황제로부터 퇴짜를 맞고 난 후 돌아가는 길에 처음 한반도 서해안을 탐측하였고 그것에 이어 다시 항로를 연장하여 현재 유구(琉球國:Lewchew, Luchu)라고 하는 오키나와(Okinawa)와 이오지마(Iwo jima)를 목격했다는 이야기로 당시 그린 그림을 보면 유황섬이란 이오지마에서 화산이 발생하여 화산먼지가 뿜어나오고 있는 장면을 그렸는데 그 산들의 모습이 기이한 형상이라 지금의 이오지마와는 형태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보아도 한눈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오지마가 유황섬이 아니라고 할 때 문제는 진짜 유황섬을 찾기 위해 사진에 보듯이 1816년에 화산이 발생하였던 역사사실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하고 위 1816년 바실 홀이 그린 그림과 비슷하게 생긴 화산섬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미 필리핀판과 태평양판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이오지마(Iwo jima:いおうじま)는 제외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곳인 카리브판(Caribbean plate)동편과 남아메리카판이 만나는 곳인데 이곳은 바로 반달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는 카리브해(Caribbean Sea)의 카리브제도(Caribbean)이고 과거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서인도제도(West Indies)라고 한 곳이다.

필자는 이 제도를 서인도가 아니라 그냥 인도제도라고 생각한다.

 

유구(琉球)는 윈드워드 제도(Windward Islands)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18

 

카리브제도의 배치 모양이 반달모양이라는 것은 위 블로그 글에서 한문(漢文)으로 유구(琉球)역시 뜻에서 유리공, 유리볼 등의 의미를 두고 있어 지금의 반달형태의 제도 모습을 반원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였고 그래서 위 글에서 유구 또는 류구(琉球)는 윈드워드제도(Windward Islands)라 하였는데 이것은 일본고사에 등장하는 1609년 살마(薩麻)가 유구를 침입할 때 유구의 바람(琉球之風)이라 하여 바람이 많이 부는 상징성을 나중에 영어로 옮겼다고 볼 수 있어 윈드워드(Windward Islands)라 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리워드 제도(Leeward Islands) 역시 바람과 관계되는 이름인데 프랑스령과 네덜란드령인 섬들이 속해있는 제도로서 특히 네덜란드가 화란(和蘭)이라고 하여 종종 일본처럼 여겨지는 국명으로서 
일본인들이 스스로 화인(和人)이라고 하는 점도 참고가 된다.

특히 카리브해제도가 원호를 그리거나 반달모양의 배치에서 볼 때도 일본역사와 늘 상 같이 하는 유구(琉球) 역사사실과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게 한다.

결국 카리브해는 일본과 유구(琉球)의 역사가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일본, 유구, 살마가 결코 이 곳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이곳들은 지리학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할 때 앞에서 언급한 판구조론(plate tectonics)에 의해 판과 판이 맞물려 있는 곳은 대체적으로 지진(地震) 진앙(震央)지역 즉 진원지(震源地)이라고 하거나 또는 화산지라고 하였다.

그래서 백과사전 판 구조론(板構造論, plate tectonics)의 설명에 따르면 지구내부의 가장 바깥 부분은 암석권(lithosphere)과 연약권(asthenosphere)의 두 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암석권은 지각과 식어서 굳어진 최상부, 지구의 지각과 핵 사이의 부분으로서 깊이 약 30km에서 약 2,900km까지를 가리키는 맨틀(mantle)로 구성되며 그 아래의 연약권은 점성이 있는 맨틀(mantle)로 구성되어 수백만 년 이상의 시간동안 맨틀(mantle)은 극도로 점성이 높은 액체와 비슷한 행동을 보이지만 지진파의 전파와 같이 짧은 시간동안 가해지는 힘(에너지)에 대하여서는 탄성체와 같은 행동을 보인다 하였다.

그리고 암석권은 탄성체 같은 행동을 보이는 연약권 위에 떠 있다 하고 있다.

암석권은 판이라고 불리는 몇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진판이며 세계지진판(earthquake plate)에 의한 세계10개의 주요 판(Plate)으로는 아프리카판, 남극판, 오스트레일리아판, 유라시아판, 북아메리카판, 남아메리카판, 태평양판, 코코스판, 나즈카판, 인도판으로 나누고 세부적으로 필리핀판과 카리브판도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카리브해 제도에서 화산섬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카리브해 판이 판구조론에서 오래된 해양저가 대륙 지괴(地塊)아래로 밀려들어가는 대륙 연변의 해구지역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네이버백과사전을 보면 섭입대(攝入帶:subduction zone)라 하여 섭입대를 따라 지진과 마그마가 발생하고 지표에서는 화산도 분출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삽입대가 있는 카리브해가 가장 화산이 활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료찾기8. 2010년 6월16 부터 6월22일까지 미국지질조사국(USGS) Weekly volcanic activity report]

 

위 도표는 1879년 설립된 미국 지질조사국(地質調査局, USGS: 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에 의해 2010.06-16~22 동안 조사한 지도인데 일본열도 동남쪽에 있는 이오지마 즉 이토(Ioto)섬과 마찬가지로 카리브해의 화산섬 몬트세랫(Montserrat)섬의 해발 915m, 수프리에르힐즈 산(Soufriere Hills)을 지정하고 각각 노란 삼각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이 노란 삼각표시를 ongoing activity"라 하여 예날부터 활동하였고 앞으로도 활동할 수 있는 화산지역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이오지마는 유황섬 그림에 근처에도 가지 못할 정도로 형태가 다른 것이니 제외할 수밖에 없다면 남은 것은 카브리해역에 몬트세랫(Montserrat)섬인데 이것을 유황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카리브해에서 그 많은 화산섬들 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섬들이 아래 [자료찾기 9]지도에 표시된다.

 

[카리브해제도]  

 

                                                  [자료찾기10. Caribbean Volcano Map]

 

그리고 이어지는 [자료찾기10] 위 카리브해 화산구에서 가장 중요한 화산섬을 체크한 것인데 위 지도[Caribbean Volcano Map]에는 (1)몬트세랫(Montserrat)섬의 해발 915m, 수프리에르힐즈 산(Soufriere Hills)과 (2)서인도 제도의 프랑스령(領)마르트니크(Martinique)섬에는 높이가 1463m의 몽펠레산(Mont Pelée)가 있고 (3)프랑스령(領) 과들루프 섬(Guadeloupe)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4)st.vincent 섬에 soufriere st.vincent 화산이 중요하게 표시되어 있다.

나머지 Kick-em-Jenny 는 바다 해저에 있는 분화구를 말하는 것이니 제외되어야 한다.

 

그래서 위 주요화산섬을 화산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영어문장을 번역하여 올려본다.

 

(1)번역자료-몬트세랫(Montserrat)은 카리브 해에 있는 영국의 1632년 영국의 속령이 되었다던 섬이다. 소(小)앤틸리스 제도를 이루며, 앤티가섬(Antigua)의 남서쪽 43km 지점에 있고 3개의 구릉으로 나누어지며, 전체가 화산섬이다. 완만한 비탈면에 경작지가 있고, 고지대에는 숲이 많으며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가 발견하여 에스파냐의 몬세라트 수도원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고, 1632년 영국인, 아일랜드인들이 최초로 정착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이들은 근세기에 득세한 세력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프랑스에서 섬을 차지하였으나, 1783년 이후 계속 영국령으로 존재하며 이 섬에는 수프리에르힐즈 산(Soufriere Hills)이 있는데 해발 915m의 화산이다. 이 화산은 성층 화산으로, 현재까지 활동하는 활화산이며 몬트세랫(Montserrat)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주었던 산이라고 한다. 높이는 낮지만 폭발위력은 대단히 강한 것으로서 분화를 할때 주로 화산암 조각 화산쇄설류(火山碎屑流:pyroclastic flow)를 일으키고, 어떤 때는 용암을 분출하기도 한다. 지진은 계속된 것으로 나타나는데 1897-1898 기간, 1933-1937 기간, 1966-1967 기간 발생하였고 1995년에 처음 화산이 폭발했으며 그 당시 화산재가 발생하여 몬트세랫에 쌓였으며 5,000명의 주민들이 대피하였다고 하는 섬이다.

 

(2)번역자료-서인도 제도의 프랑스령(領)마르트니크(Martinique)섬에는 높이가 1463m의 몽펠레산(Mont Pelée)이 있는데 1902년 5월 8일 열운(熱雲, nuees ardentes, glowing cloud, glowing avalance) 펠레식분출(Pelean eruption)이 발생하였는데 이 분출로 남서쪽 기슭의 도시 상피에르(saint-pierre)를 휩쓸었으며 약 3만 명의 사상자를 내기까지 하였다. 이 화산 폭발로 다량의 용암(熔岩)이 시가를 매몰하고 분화작용은 다음해 말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 화산은 1791년과 1851년에도 분화가 있었다고 하였고 특히 1856년에는 화산재의 분출이 심했는데 당시는 아름다운 화구호가 있어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1929년에도 화산재의 분출이 있었으나 소규모로 끝났고 산정에는 용암 원정구(圓頂丘)와 용암 첨탑(尖塔)을 형성하여 벨로니테(탑상화산 또는 용암탑)를 이루었는데 이 화산의 폭발은 세계 각국에 재해방지를 위한 화산관측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네이버백과사전은 전하고 있다.

   

(3)번역자료-서인도제도의 소(小)앤틸리스제도 북부에 있는 프랑스령(領) 과들루프 섬(Guadeloupe)의 면적은 1,705㎢ 로서 1635년 프랑스인이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영국 등과 영유권을 다투다가 1816년 프랑스령으로 확정되었고, 1946년 5개의 작은 섬을 합하여 식민지에서 해외주(海外州)로 승격하였다. 서쪽의 바스테르섬(Basse-Terre)은 화산성 고지로 산이 많고 험난하며, 동쪽의 그랑드테르섬(Grande Terre)은 산호 석회암의 저지(低地)로 사탕수수가 집약적으로 재배된다는 곳이다. 특히 프랑스 공화주의자 및 혁명가인 바르베스(Auguste Armand Barbès:1809-1870)도 이섬에서 태어 났다는 것은 신진세력들은 모두 이렇듯 섬에서 태어나고 그곳을 탈피하기위해 대륙으로 옮겨간 것으로서 근세사가 그려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력들을 삼한역사기록에서는 왜구라 하였을 것이 틀림이 없다.

 

(4)번역자료-서인도제도의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의 세인트빈센트(Saint Vincent)섬은 카리브어(Caribs)로 축복 받은 섬이라는 뜻으로 하이로우나(Hairouna)라고 불리었는데 1498년 콜롬버스가 세인트빈센트라 하였다. 이웃한 다른 섬들처럼 세인트 빈센트(Saint Vincent)섬도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잇고 있고 삼림이 무성한 산맥에는 물살이 빠른 짧은 하천이 여러 갈래로 가로질러 흘러 내려 협곡을 형성하는데 그 중 몇 개의 하곡은 수력발전에 이용되고 있다 한다. 특히 세인트 빈센트 섬 북부에 최고봉 수프리에르(Soufriere)산이 있는데 활화산으로 1902년에 폭발하여 섬의 북쪽이 황폐시켰고, 1979년 4월의 분화로 섬의 3분의 1이 화산재로 뒤덮여 바나나 재배 등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La Soufrière (“The Sulfurer”) or Soufrière Saint Vincent is an active volcano on the island of Saint Vincent in the Windward Islands of the Caribbean.

이 활화산은 고도 1,234 m로 수프리에르산(Soufriere) 또는 수프리에르 세인트 빈센트라 하고 프랑스어(Sulfurer)로 유황을 뿌리다(sulphur outlet)란 뜻, 즉 유황산(硫黃山)이라고 한 것이다. 이곳의 화산 역사는 가장 비참한 분화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1718, 1812, 1902 년에 북쪽 165 키로미터의 펠레식분출(Pelean eruption)로 인하여 1600명의 사람이 한순간에 사망하는 재난을 일으켰으며 용암원정구(lava dome, 熔岩圓頂丘)는 1971년 정상 분화구에 관입되어 분화구 가득 호수가 생겼지만 1979년에 다시 폭발하면서 배출되고 돔은 다른 곳으로 대체된 것이라고 한다.

 

위 4개의 화산섬 설명 중 콜롬버스가 이 세인트빈센트섬에 오기 전까지 거주하였던 원주민을 카리브(Caribs)라고 하는데 어쩌면 이 원주민이 유구 난민일 가능성과 이들이 18세기말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어 중미 온두라스(Honduras)로 추방되기까지 섬에 살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가장 신빙성이 있는 사실로 이 온두라스가 본래 유구난민들이 주거하던 곳이라고 해야 한다. 그렇게 1762년 영국이 점령한 이래 위 3개의 섬과 마찬가지로 유럽인들이 들어와 살았다고 하였으며, 한때 프랑스에 점령당했으나 1783년 베르사유조약(Peace of Paris or Treaties of Versailles)에 의해 영국령(領)이 되었다 하고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보았을 때 영국과 프랑스란 국명이 근세기에 생성된 것이라면 국가명이 아니라 지역적인 것을 나타내기 위한 협소적인 명칭일 수 있다는 가정이 있고 영국과 프랑스 모두가 시기적으로 다를 뿐 조선 역사와 깊이 관계한 사실을 밝혔던 바가 있다.

 

때문에 유구가 조선을 섬겼듯이 이것은 마치 근세기에 유구(琉球)에게 접근하여 미국(1854년), 프랑스(1855년), 네덜란드(1859년)가 각각 보호조약을 체결한 역사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보호는 커녕 일본에게 그대로 넘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역사를 근거로 할 때는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보호조약이 무엇인가?

그들의 편리한 역사 기록 문서로 남겨놓으면 그만이고 신의 따위는 없어도 된다는 이야기다.

명치유신정권 초기가 될 수밖에 없는 1872년에 갑자기 힘이 강해져 일본이 감히 위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보호조약을 맺어 있는 유구를 일방적으로 귀속시킬 수있었는가 하는 문제가 있고 더 나아가 황당하게 생각되는 것은 위 세나라의 조약체결을 나중에 일본이 점령한 후 유구대신 체결한 것으로 고친다는 기록에서 보면 일본은 당시 마치 이들  나라 위에서 군림한 것처럼 오해를 쌓기에 충분하다는 모순이 없지 않다.

카리브해의 역사가 동아시아대륙 역사로 바뀌면서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들 마음대로 이렇다 저렇다 하면 끝나고 문서가 될 수 있는 기록만 이것저것 만들어 놓으면 만사가 오케이되던 시절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새롭게 만든 동아시아역사가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기 때문에 실체는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고 단언을 하고 싶다.

타고르(Rabindranath Tagore:1861-1941)가 그의 시'동방의 등불(The Lamp of the East)'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 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그곳이 코리아라고 하였던 것처럼 지식이 자유롭다고 하였고 좁다란 담벽을 쌓은 것 같이 나눠지지 않았던 코리아가 그립다고 하였던 것을 보면 어느 시점부터 신생세력인 서세가 동양과 서양을 억지로 분리하면서 역사재편짜기가 시작되었고 그러한 것에서 파생한 것이 기록으로 만족해야 하는 그들에 입장에서 이렇게 하던 저렇게 하던 동아시아대륙 역사만 만들면되고 그러한 바탕에서 일본이란 역사가 새롭게 창조되면 그만이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이야기다.

결국 일본이 유구를 병합시켰다는 사실은 모두 역사 허구라고 보아야 옳다는 사실을 밝힌다.

 

시성(詩聖)타고르의 정신적 지주(支柱)는? http://blog.daum.net/han0114/17050641

 

편협적인 생각이 아니라 일본역사는 생성되지 말았어야 할 역사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역사가 생성되기 위해 모든 역사를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동아시아대륙역사는 한마디로 실체가 없는 허구의 역사일뿐이다.

물론 여기서 따지고 있는 유황섬 문제도 이와 같이 얽혀 있는 난맥상이다.

카리브해제도에 유구가 존재하여야 하는 것은 적어도 일본고사 1609년에 기록된 유구의 바람(琉球之風)이라는 뜻을 가진 윈드워드제도(Windward Islands)와 리워드제도(Leeward Islands)란 명칭에서 이미 종결이 난 이야기다.

그렇다면 일본도 그곳에서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1816년 코리아서해안을 찾아온 바실 홀(Basil Hall:1788 -1844)일행이 보았다는 류구(琉球國:Lewchew, Luchu)와 유황섬(硫黄島:Sulphur island)은 카리브해에서 찾아야 한다는 설명을 끝으로 접어야 할 것 같다.

 

이 유황섬을 완벽하게 찾기 위해 주요 화산섬을 위에서 열거하고 자세하게 화산 역사를 참고로 (1)몬트세랫(Montserrat)수프리에르힐즈 산(Soufriere Hills:915m), (2)프랑스령(領)마르트니크(Martinique)섬에는 높이가 1463m의 몽펠레산(Mont Pelée), (3)프랑스령(領)과들루프 섬(Guadeloupe), (4)세인트빈센트(Saint Vincent)섬의 1234m 수프리에르(Soufriere)산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그 외에도 세인트루시아(St Lucia)섬 남서쪽 수프리에르만(Soufriere bay)쌍봉 그로스피통(Gros Piton)과 프티피통(Petit Piton)의 형상을 그려 볼 수 있는 화산섬도 존재한다.

하지만 1816년 바실 홀이보았다던 유황섬을 찾기 때문에 이 점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화산섬은 바로 세인트빈센트라는 섬이라고 할 수 있고 그섬을 유황섬이라고 불릴 수 있는 화산 역사적인 조건도 충족하고 있다고 본다.

1816년 바실 홀이 그 섬을 보고 그린 그림에 화산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는 것은 얼마전에 화산폭발이 있었다고 본다면 바로 위 자료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1812년에 세인트빈센트(Saint Vincent)섬의 수프리에르(Soufriere:1234m)산에서 화산 발생한 사실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며 더군다나 프랑스어로 이 산을 슬푸르에르(Sulfurer)로 유황을 뿌리다(sulphur outlet)란 뜻, 즉 유황산(硫黃山)이라고 했다는 사실도 주요하게 볼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유황섬을 밝혀보았지만 맺음에 있어 부족한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괄적으로 판단을 해도 현재 일본 동남쪽에 위치한 화산섬이라고 하는 이오지마는 형태적으로 분명히 유황섬이 아닌 것이 밝혀진 셈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역사사실과 연계하여 볼 때 동아시아역사는 허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유황섬으로 가장 일치하는 곳은 바로 유구가 존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카리브해의 제도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확인을 했다.

물론 구체적인 것은 좀 더 관찰하고 연구후에 밝혀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1816년 코리아서해안을 찾아온 바실 홀이 코리아서해안을 탐측하고 해로를 연장하여 찾은 유황섬은 바로 카리브해제도의 세인트빈센트섬일 것이란 추측이 매우 신빙성을 더하고 있지 않는가 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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