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동물

백령도(白翎島)와 제주(濟州) 들소(野牛, 兕, bison)

한부울 2012. 10. 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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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野牛, 兕, bison)

 

글쓴이:한부울

 

1830년부터 미국정부는 인디언 보호구역 강제수용을 하면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세 차례에 걸친 인디언 대학살과 인디언 식량인 들소(野牛)를 학살하는 등 인디언 말살정책을 통하여 그들의 토지를 강탈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즉 인디언들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인디언식량을 고갈시키게 만들기 위함이었으니 들소(野牛)와 인디언(American Indian)은 바늘과 실, 서로 없어서는 안될 공생관계 같은 역사임을 알 수가 있다.

들소(野牛, 兕, bison)를 탐구하게 된 동기는 본 블로그에 자주 찾아 주시는 비룡님께서 조언하시길 이태리학자가 물소(Bubalus bubalis)랑 인디언(American Indian)은 바늘과 실의 관계라고 하였다는 사실에서 처음 물소(水牛)를 보려했으나 조선왕조실록에 분명 야우(野牛) 또는 외뿔들소를 나타내는 시(兕)의 기록이 있음을 발견하고 들소(野牛)부터 먼저 찾아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시도한 것이다.

우리가 혼란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물소(水牛)역시 들소(野牛)와 마찬가지로 영어로 버팔로(buffalo)라고 한다.

Bubalus is a genus of bovines, whose English name is buffalo.

버팔로(buffalo)라는 단어는 단수와 복수의 형태가 일치하는 명사(名詞)이지 들소나 물소를 단적으로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위에 문장에서도 알 수가 있다.

동사(動詞)로 사용되면 위협하다, 속이다란 뜻으로 나타내며 ‘버팔로(buffalo)같은 짓을 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들소(野牛)와 다르게 물소(水牛)의 야생종은 아시아대륙 인도, 네팔, 아삼, 방글라데시 등지에 분포한다하여 아시아대륙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모든 자료에 공히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지만 이것역시 우리가 밝혀 볼 것이라 하겠다.

 

위의 설명대로 이해한다면 남아시아에 근거한 물소가 도저히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American Indian)과 연관관계를 따진다는 것은 실제로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시아대륙과 북아메리카대륙의 위치 차이가 있는 것인만큼 연결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리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물소(水牛) 대표학명이 인도수우(印度水牛 Bubalus bubalus)라는 사실과 이 물소속(水牛属, Bubalus)학명을 명명한 사람이 바로 미국들소(美洲野牛 bison bison)학명을 명명한 찰스 해밀턴 스미스 중령(Lieutenant-Colonel Charles Hamilton Smith:1776-1859)이라는 사실이 있고 또한 학명 부여 년도 역시 1827년 같다라는 사실이다.

물소와 들소가 다름에도 왠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미친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모든 생물학체계에서 나타나는 인도(印度)는 단순하게 아시아(亞)대륙이라고 단정짓고 말 것 같으면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조차 없다.

 

또한 근세기 태평양이란 거대한 바다가 가로 놓여 있는 지리적 환경에서 학명을 부여한 사람이 같은 년도에서 동일하다는 것은 어쩠거나 지리적으로 같은 곳에서 관찰하고 표본조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무엇인가 시간, 공간을 초월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한다.

여기서 공간이동같은 거창한 4차원, 5차원적인 물리과학을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치적인 문제에서 과연 그 때 당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없을 수가 없다.

때문에 한사람이 똑같은 년도 시기에 학명이 부여한 것이라면 지리적으로 남아시아대륙과 아메리카대륙 양분하여 왔다갔다 표본 조사하였다는 것인데 이와같은 것은 전설따라 삼천리다.

당시 대륙간 이동성에서 볼 때 일엽편주 범선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대해양시대에서 넘나들었다고 하지만 서세가 만능이고 전지전능한 신일 수 없다는 이치를 말할 수밖에 없다.

서세가 그렇다면 다 그렇다고 믿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과 비교하여 전혀 얼토당토하지 않는 이야기며 서세가 말하는 이따위 지리적 서식지 분리주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근원적으로 들소(野牛)와 물소(水牛)가 같은 지리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었거나 아니면 서식근원지가 적어도 대륙이 같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아시아대륙을 원산지로 알고 있는 물소(水牛)근거지 역시 세밀하게 따져 본다면 아래 분포지에 나타나듯이 남아메리카에 노란점 하나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어 남아시아의 들소란 등식에서 다르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밑받침 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이러한 추측에서 확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한어자료를 보면 물소(水牛)를 인도야우(印度野牛, 野牛)라 했음도 있어 들소와 물소 이렇게 크게 분리하지 않고 보았던 결과로서 물소(水牛)를 들소(野牛)와 마찬가지의 성격으로 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인도물소-Bubalus bubalis (Linnaeus, 1758) water buffalo(印度野牛, 野牛)

늪, 소택 습지 버팔로(Swamp Buffalo); Bos bubalis Linnaeus, 1758

 

카라바오(carabao)는 필리핀어로 물소(水牛,water buffalo)라고 한다는데 현재 필리핀(Philippine)도 근세기 미국과 스페인 충돌이 있었던 시기에 지명 이동되었다는 추측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The word carabao is Tagalog meaning "buffalo" a symbol of fighting, hard work, and patience.

또한 고대 필리핀어(語)를 따갈로그(Tagalog)라고 하는데 따갈로그어(Tagalog語)로 카라바오(carabao)는 노력, 끈기, 투지의 상징이라 하여 버팔로(buffalo)라 칭했다 한다.

이것을 근세기에 water buffalo, Swamp Buffalo이라 하여 끝내 아시안버팔로 (Asian Buffalo )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들소도 버팔로(buffalo)라고 했지만 물소 역시 버팔로(buffalo)라 했다는 것은 거의 구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근세기 이전 미국과 스페인 충돌이 있기 전에는 필리핀은 늪, 소택, 습지가 있는 열대우림지역인 중앙아메리카 어디에 있었다는 사실을 추리할 수 있고 그곳에서 자랐던 들소가 물소로 바뀐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들판에 방목한 것은 야우(野牛)라 하여 들소라고 하면서 같은 야우임에도 늪, 소택, 습지의 서식한다 하여 스왐프 버팔로(Swamp Buffalo)라 하고 이것을 무조건 아시안버팔로(Asian Buffalo) 아종(亞種)이라고 구분한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할 것이다.

 

위 설명과 함께 놀라운 사실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들소 야우(野牛)기록이다.

서양생물학자들은 야우(野牛)라고 하는 들소가 거대하다는 뜻의 바이슨(bison)을 붙여 학명과 별도로 호칭하였고 이 바이슨을 북아메리카를 근거로 하는 아메리카들소(Bison bison)와 유럽을 근거로 하는 유라시아들소(Bison bonasus) 2종(種)만이 존재한다고 분류체계를 세웠다.

그러니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이 들소(野牛)는 북아메리카대륙이나 유럽대륙이 아닌 어떠한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동물인 것이다.

 

세종13년(1431)3월30일(갑오) 조심을 백령도로 보내다란 제목에서

○遣護軍趙深于白翎島, 刷出野牛。

호군(護軍)조심(趙深)을 백령도(白翎島)로 보내어 들소(野牛)를 색출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그 기록에서도 조선 백령도에 들소가 있다고 하는 명확한 기록들이 나온다.

또한 승정원일기, 고종11년(1874)8월13일 기사 좌목에 세자의 일상이 있었던 동궁(東宮) 청덕궁(昌德宮), 성정각(誠正閣)에서 전 제주목사(濟州牧使) 이복희(李宓熙)를 소견할 때 기록인데 대화록에서 보면

상이 이르기를,

“소 전염병이 기승을 부린다는데, 과연 어떠했는가?”하니, 이복희가 아뢰기를,

“겨울부터 지금까지 산우(山牛)와 야우(野牛)가 병들어 죽은 것이 그 숫자를 알지 못할 정도로 많아, 심지어 말을 가지고 대신 논밭을 갈고 있기까지 합니다.”하였다는데 제주목사(재임1872-1874) 이복희(李宓熙)가 제주에 야우(野牛) 즉 들소가 병들어 죽은 것이 그 숫자를 알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는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놀라운 사실이다.

즉 바이슨이 한반도 땅에 숫자가 얼마인지도 알 수 없게 많았다는 것이 말이아 되는 소리인가?

 

또한 아래 첨부한 제일 끝자료에서 보면 조선전기의 학자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시문집, 점필재집(佔畢齋集)의 시(詩)가 있는데 이를 보면

嶺南樓次韻


영남루에서 시운(詩韻)을 빌려 시를 지음에서
野牛浮鼻橫官渡
들소(野牛)는 코만 내민 채 관선 나루를 횡단하고...라고 하였는데 조선 영남루(嶺南樓)에서 바라볼 때 소설(小說)삼국사에 등장하는 조조가 원소대군을 격파한 곳으로 유명한 관도(官渡)를 수많은 들소떼가 코만 내민 채 넘는다는 것과 비슷한 광경을 떠 올릴 수 있는데 거친 강줄기를 가로 횡단하는
들소떼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며 조선 영남루와 삼국사의 영남루가 다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동시에 생성케 하는 시귀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참으로 답답한 것은 우리 한반도 사람들은 조선왕조실록보다 삼국지를 더 믿으니 문제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들소와 물소만을 그릴 때 늘 사진으로 보아왔던 물소그림과 캡처된다.

영남루(嶺南樓)의 사실판단이 아직까지 확실하지 않고 확인할 수가 없다는 것에서 자제할 수밖에 없게지만 하여튼 들소(野牛)기록이 남아 있는 이것이 바로 조선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아메리카의 야우(野牛)라고 하는 들소 역사를 보면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n)에서 록키(Rocky)산맥에 이르는 광활한 북아메리카지역, 특히 서부평원에 수천만 마리가 살았다는 사실이 있고 미국의 원주민인 아메리카인디언(American Indian)은 들소(野牛)를 사냥하여 고기양식으로 하고 가죽으로는 옷을 해 입었는데, 들소들의 생명을 존중하여 삶을 유지 할 정도만이 사냥하여 개체수가 엄청 불어났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인디언의 생활철학을 그들이 마구 먹어치우는 양식에 비유하고 그것을 없애려고 하였으니 얼마나 잔혹한 이야기며 돼지습성에서 발상된 처함한 이야긴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초두에서 말한 것처럼 북아메리카대륙에 들소(野牛)가 인디언 말살정책의 일원으로 미국인들에 의해 무차별 학살되기 전에는 약 5,000만 마리가 생육되고 있었다고 하는 자료가 분명하게 있다.

그러나 초창기에 미국으로 이주한 백인들이 들소를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하여 대조선이 해체된 1881년 이후 약 8년이 지난 1889년에는 고작 54마리까지 격감하였다는 사실에서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거의 학살이라고 하여도 모자라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들의 양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주식으로 삼는 인디언들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하니 사람을 하찮은 개돼지 취급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당시 북미원주민이라고 하는 아메리카인디언(American Indian)들이 차지하고 있는 토지를 강탈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인디언 학살에서도 느꼈듯이 근대사가 만든 엄청난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피도 눈물도 양심도 없는 그들의 영토소유욕이 하늘을 찔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볼 때 위 조선왕조실록기록이나 승정원일기기록에 등장하는 백령도(白翎島)나 제주(濟州)에 들소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에서 그와같은 기록이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고 한꺼번에 반도역사에서 빠져 나올 수밖에 없는 다시 없는 귀중한 기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이런 명확하고 놀라운 사실조차 은폐하고 모른척 하고 있는 친일학자들에게 무엇이라고 해야 옳겠는가?


참으로 한심스럽고 개탄스럽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북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이라고 하는 인디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현재까지도 그렇지만 그 당시 어느대륙이든 문명계와 떨어져 살고 있었던 원주민은 없었을 수가 없다 하더라도 지금 인도네시아 자바섬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원주민이 인도네시아 역사를 대신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개가 웃을 일이 아닌가?


미국원주민인 아메리카인디언이 미국전체 역사를 대신하였다는 것은 눈감고 아웅하는 짓이다.

미국인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완전히 점령하기 전 애써 그 땅의 주인이었다고 하는 아메리카인디언(American Indian)을 상대로 벌렸던 모든 악행이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합리화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주민 인디언 말고 미국이 상대한 기득권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못할 뿐만 아니라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길은 아무데도 없지만 밝히다보면 나타날 것이라고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인들은 대륙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증거를 없애기에 혈안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고 지금 그러한 사실을 증명할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실제 상대한 기득권의 실체를 밝히기기 지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각오한 일이다.

 

1492년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가 신대륙이라고 하는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이전 역사가 없다는 것은 곧 근대사가 없다는 것과 같다.


그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당시 원주민이라고 하여 벌거벗은 몸으로 머리에 새 깃털이나 꽂고 있는 인디언 사진이나 나뭇가지로 엉기성기 걸쳐 가죽 천을 덮어 놓은 소규모의 부락고을들만 남겨두고 신대륙 발견하기 이전 그것이 인디언 역사라고 가르치고 사실화하는 것은 엉큼한 본 모습을 숨기고 있는 그들의 가식일뿐이다.

소위 우리가 찾는 세계삼한역사의 대주 대조선(大朝鮮)의 그림자는 현재 이런 환경에서는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

이 들소 문제에서 빼놓을 수없는 것은 인디언 말살정책이다.


신대륙발견에 이어 신개척자들이 신대륙에 들이닥쳐 인디언 말살정책으로 인디언들을 깔끔하게 청소까지 한 마당임에도 아직까지 미국인과 캐나다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 폄하정책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느끼게 한다.

무엇때문에 이런 식의 조잡한 방법을 지속적으로 강구하는 것일까?

아메리카인디언이 어디가 그렇게 무섭고 두려워 본질을 밝히지 못하는 것일까?

처음 신개척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땅에 이주한 후 개척이란 명목으로 인디언과 들소를 무차별 학살하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역사사실임에 확인이 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들의 잔인성을 숨기기고 만회하기 위해 인디언들도 양식을 위해 사냥한 것이 아니라 학살한 것처럼 만들어 지속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비록 일용양식(日用糧食)을 위한 것이라지만 인디언들은 잔인한 방법을 동원하여 들소를 학살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서 방문하는 관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알리고자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양식을 위해서라도 사냥 수를 조절하며 개체수를 늘리면 늘렸지 마구 학살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하였다.

신개척시대에 그들의 원초적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고 반대로 인디언들의 잔인성을 알리는 이중의 효과를 얻기 위해 국제관광단지로 조성하였고 마침내 1981년 유네스코세계유적지(UNESCO World Heritage Site)로 등재까지 한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캐나다 앨버타(Alberta)주 남서쪽에 있는 버펄로(아메리카 들소)의 뼈가 여전히 많이 발견되는 곳이라고 하는 헤드 스매시드 버펄로 지대(Head-Smashed-In Buffalo Jump)라는 곳이다.


이러한 관광지는 혼탁하고 무분별한 근대사를 정립할 수 없는 영원히 잊어지지 말아야 하는 인류사의 상징성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인디언들의 들소 사냥, 또는 학살에 대한 소고(小考)를 말하자면 인디언(Indian)이라고 영어호칭과 인도(印度)라는 한문이 지칭하는 실체가 다른 것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정통 아시아의 인도(印度)역사의 근원을 보자면 소(牛)는 분명 현대불교가 아닌 고대 원시불교적 관점에서 숭상의 대상으로 취급받았던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인도(印度)의 고유 종교는 산스크리트어로 사나타나다르마(Sanātana Dharma)라고 하는데 기원전 1500년 경에 성립된 경전(經典)을 우리말처럼 귀로 눈으로 들어보고'안다'고 하는 어원 산스크리트어 베다(Veda)를 바탕으로 한 종교로서 이것을 1876년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이러한 인도의 종교에 자의적으로 붙인 이름이 바로 힌두교(Hinduism)라 하였다.

어쨌던 종교의 명칭까지도 영국이 관할 한 것이다..

아시아 인도(印度)의 종교 이러한 힌두교(Hinduism)에서는 소(牛)를 시바신(Shiva 神)이 타고다니는 운송수단 즉 신성한 가축이라 하여 숭상하게 한 것은 종교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인간사적으로 보았을 때 소고기를 사람들이 먹기 시작한 이후 소의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어 농사나 다른 잡일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 사실이 더 설득력이 있다 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아메리카인디언이 취한 것과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실제 그렇다고 한다면 절대로 아메리카인디언들은 서양인들처럼 들소를 함부로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예단할 수가 있다.

 

본 블로그에서 인도(印度)와 천축(天竺)이 현재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이 아니라 아메리카대륙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입장이다.

만약 인도(印度)와 천축(天竺)이 실제 아시아에 근원하지 않았고 북아메리카를 근원으로 한 역사라고 한다면 북아메리카원주민인 인디언들이 무차별적으로 들소 살육을 감행하였다는 사실은 종교적인 관점으로도 새빨간 거짓주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서양인들이 밥지을 땔감이 없다고 나무십자가를 깨뜨려 장작으로 삼는 일과 다름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결국 캐나다 앨버타(Alberta)주 남서쪽에 있는 버펄로(들소)의 뼈가 묻혀있는 헤드 스매시드 버펄로 지대(Head-Smashed-In Buffalo Jump)에서 벌어진 들소학살은 아메리카인디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근세기 과거 역사를 지우기 위해 동원된 세력이거나 근세기에 막강한 파워를 가지며 역사를 농단하던 세력있다고 할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체도 분명치 않는 미국원주민인 인디언들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기록에 나타나는 야우(野牛) 들소는 분명 아메리카나 유럽의 들소라는데 이의가 없다.

그렇다면 백령도와 제주에 들소가 자랐다고 하였으니 북아메리카대륙이나 유럽대륙에서 찾아야 할 역사장소로 확인이 가능하다.


들소(野牛)를 지칭하는 언어적으로 볼 때 알아 두어야 할 사항은 실제 유럽들소와 아메리카들소만을 가리킬 때는 바이슨(bison)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 중 아메리카들소는 평원들소(plain bison)와 숲들소(woodland bion) 두 종으로 나뉘며, 이 두 종과 유럽들소를 합한 세 가지 종(種)은 서로 교잡하여 잡종새끼를 낳는 것이 가능하였던 모양이다.


이것은 근세기에 생물학체계를 세우면서부터 밝혀진 것이라고 할 때 이미 그 3가지 종(種)은 마구 섞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아메리카들소와 유럽들소는 이미 교잡을 전제로 근세기에 서로 이동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두산백과사전에 보면 아메리카들소는 몸길이 180∼210㎝, 어깨높이 150∼180㎝, 몸무게 360∼900㎏이고, 유럽들소는 몸길이 250∼300㎝, 어깨높이 150∼180㎝, 꼬리길이 80㎝, 몸무게 600∼1,000㎏로 나타난다.

오히려 유럽들소가 더 크고 거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889년에 북아메리카대륙 들소의 개체수가 고작 54마리라고 했다.

유라시아들소는 19세기 말까지, 아메리카들소는 20세기 초까지 야생의 것은 거의 멸종위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아메리카들소는 북아메리카 대륙에만 5000만 마리가 서식하였고 남부 아열대지역까지 분포하였다 하였으며 현재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약 4000마리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북아메리카대륙의 들소나 유럽들소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얼마든지 같은 종이라고 볼 수 있고 아마도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서 백령도(白翎島)와 제주(濟州)에 분명 수많은 들소떼들이 있었다는 것을 위 설명에서 알 수 있으며 동시에 조선전기의 학자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점필재집(佔畢齋集)의 시(詩)에서도 영남루(嶺南樓)에서 바라볼 때 거친 강줄기 관도(官渡)를 수많은 들소떼가 코만 내민 채 횡단하는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는 것을 명확하게 확인하였다.

이제 백령도와 제주가 바로 아메리카들소와 유럽들소가 뛰어 노던 곳이었다고 추측하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들소로 본 조선의 역사는 믿거나 말거나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들소가 근원한 땅 북아메리카와 유럽지역이 다 조선역사기록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내다 볼 수 있었다.

끝으로 정리할 것은 조선 기록에 등장하는 명칭인 산우(山牛)와 야우(野牛)와 함께 현대 생물학적 분류체계적으로 동아시아만 서식한다는 수우(水牛)라는 명칭에서 오는 혼란을 정리하고 마치고 싶다.

 

단순하게 산에 산다고 산우(山牛), 들에 산다고 야우(野牛), 물에 산다고 수우(水牛)라고 했다는 것은 아마도 근세기 생물학분류가 체계화 되면서부터 야생이라는 관념이 사라진 현대사회까지에서 생물학적 근거가 아닌 관념적인 호칭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원적으로 소를 볼 때 산과 물에서 살고 또는 들에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생물학적 구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야기다.

사람이 축육을 하기 이전 일이니 야생이라고 하면 산, 들, 물에서 서식하는 모든 것을 야생이라고해야 맞다.
근세기에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가까이 할 수 있게 길들이기나 축우(畜牛)한 부분까지 생물학적 서식 근거로 할 수 없으며 물소가 마치 아시아에서만 서식한 것처럼 만들어 아시안물소(Asiatic water buffalo) 또는 수우(水牛)라고 낙인 찍는 것은 생물학적분류체계와 전혀 다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유독 아시아에서만 물소가 자라고 그것을 수우라고 하며 농사 짓기위한 소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시아가 농업산업의 본산지란 상징성을 심기 위함도 없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말해 수우라고 하는 물소(水牛) 역시 산우(山牛) 또는 야우(野牛)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특히 물소(水牛)는 풀이 무성한 정글을 흐르는 커다란 강 근처나 늪지에 서식하고 때론 물을 좋아하며 몸통에 곤충의 피해가 많은 때 물속으로 들어 가서 코만 내놓고 있다고 물소라 하는 것도 일부 과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풀이 무성한 정글, 늪, 소택, 습지가 있는 열대우림지역이 어떻게 남아시아만 있겠는가?

그외 지목할 수 있는 곳은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북부지역에 서식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태어 물에 산다고 아시안물소(Asiatic water buffalo)라고 규정 지울 필요까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근대사에서 생물학분류체계적으로 들소와 물소 특히 아시안물소(Asiatic water buffalo)로 나눔에 있어 유심히 볼 것은 바로 조선사에서 기록한 산우(山牛)와 야우(野牛)를 어떻게 구분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위에서 북아메리카들소와 유럽들소 모두를 바이슨(bison)이라고 하였고 동시에 두 대륙에 있는 들소 전부와 물소를 통칭 버팔로(Buffalo)라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버팔로는 야생소를 상징한 명칭이었다.

 

글을 정리한다면 조선에서 서식한 산우(山牛)와 야우(野牛)는 노력, 끈기, 투지의 상징인 버팔로(Buffalo)라 하였던 것 같고 노력, 끈기, 투지하면 삼한인이고 한민족이니 어쩌면 조선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들소와 물소 또는 산우와 야우가 존재하였고 조선천지에 서식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와같은 사실에서 보면 결코 조선은 작은 나라라고 할 수 없으며 그토록 근세기에 인디언처럼 조선을 말살하기 위해 서세와 그들 추종자 일제의 갖은 음모가 있었다고 보이지만 그렇다고 일시에 사라질 수 없는 거대한 역사였다는 사실을 이 들소 버팔로로부터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글을 쓰고 정리하는 큰 보람이라고 하겠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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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野牛, Bison)

 

科學分類

界: 动物界 Animalia

門: 脊索动物门 Chordata

綱: 哺乳纲 Mammalia

目: 偶蹄目 Artiodactyla

科: 牛科 Bovidae

亞科: 牛亚科 Bovinae

族: 牛族 Bovini

屬: 美洲野牛属 Bison Linnaeus, 1758

美洲野牛 Bison bison

찰스 해밀턴 스미스 중령(Lieutenant-Colonel Charles Hamilton Smith:1776-1859) was an English artist, naturalist, antiquary, illustrator, soldier and spy.

(美洲平原野牛 Bison bison bison)

(美洲森林野牛 Bison bison athabascae)

欧洲野牛 Bison bonasus

(欧洲低地野牛 Bison bison bonasus)

(欧洲高加索野牛 Bison bison caucasicus 灭 멸)

(欧洲匈牙利野牛 Bison bison hungarorum 灭 멸)

长角野牛 Bison latifrons 灭 멸

古风野牛 Bison antiquus 灭 멸

亚洲野牛 Bison occidentalis 灭 멸

西伯利亚野牛 Bison priscus 灭 멸

美洲野牛, Bison bison(Linnaeus, 1758)又名 犎牛, 美洲水牛

欧洲野牛, Bison bonasus(Linnaeus, 1758)

印度野牛, Bos gaurus H. Smith, 1827 别名 野牛, 白肢野牛, 野黄牛, 白袜子, 亚洲野牛

 

(1)Bison bison (Linnaeus, 1758) AMERICAN BUFFALO American bison; Bos bison

 

 

 

Also known as:

American Buffalo,

Sexual Dimorphism:

Males are larger than females.

Length: Range: 3.1-3.8 m males; 2.1-3.2 m females

Weight: Range: 460-907 kg males; 360-544 kg females

 

(2)Bison bonasus (Linnaeus, 1758) EUROPEAN BISON

 

 

 

현재도 국제자연보호연맹의 Red List 중 취약 종으로 등재되어 있다.

 

Holocene range (light green), range in the high middle ages(dark green) and relict populations in the early 20th century (red)


(3)소과 (Bovidae) 소아과 (Bovinae) 우속(牛属 Bos) Bos gaurus H. Smith, 1827   

 

(4)물소:Bubalus bubalis (Linnaeus, 1758) Water Buffalo, Swamp Buffalo; Bos bubalis Linnaeus, 1758 

 

물소떼가 코만 내 밀고 도강하는 모습이다. 점필재집(佔畢齋集)의 시(詩)가 연상된다.

 

소과 (Bovidae) 소아과 (Bovinae) 수우속(水牛属 Bubalus)
소과 (Bovidae) 소아과 (Bovinae) 美洲野牛属, 欧洲野牛属 이다.
소과 (Bovidae) 소아과 (Bovinae) 우속(牛属 Bos) Bos gaurus H. Smith, 1827

위 전부가 다르지 않다.

또한 물소 미국자료 분포지에 나타나는 남아메리카 지역은 바로 브라질(Brazil) 마라조섬(Marejo Island)를 유심히 살펴 볼 일이다.

마라조섬(Marajó)은 브라질 북부 파라 주에 있는 섬인데 면적 47,573 km².이다.
적도부근 아마존 강 하구에 위치하며, 강에 둘러싸인 섬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참고로 한반도 제주도(濟州島)의 면적은 1,845.92㎢ 이니 거의 크기가 약 25배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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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3년 신해(1431,선덕 6)3월30일 (갑오)

조심을 백령도로 보내다

○遣護軍趙深于白翎島, 刷出野牛。

호군(護軍) 조심(趙深)을 백령도(白翎島)로 보내어 들소[野牛]를 색출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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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동문선 제2권

부(賦)

약호부(藥壺賦)

남효온(南孝溫)

鬚眉皓白 수염과 눈썹은 하얗고

狀貌淸奇 얼굴은 맑고도 기이하네

依然韓衆之態 의연한 한중의 태도요

儼乎偓佺之儀 엄연히 액전(신선의 이름)의 거동일세

揖予汝南之市 여남의 저자에서 나에게 읍하고

迎予壺中之域 병 속의 세계에 나를 맞이하네

三光森朗於洞天 삼광이 동천에 밝았으며

地軸潛移於咫尺 땅덩어리를 지척에 옮겨 놓은 듯

黃熊靑兕之啼號 누른 곰과 푸른 들소가 부르짖고

瓊宮紫府之傍列 경궁과 자부가 옆으로 벌여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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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어동물 암외뿔소.

2. 고대(古代)에 살았던 푸르고 검은 털을 가진 들소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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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제33권

전라도(全羅道)

김제군(金堤郡)

본래 백제의 벽골군(碧骨郡)인데 신라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전주(全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인종(仁宗) 21년에는 현령을 두었다. 본조(本朝) 태종(太宗) 3년에 본현 출신인 명(明)나라 환자(宦者) 한첩목아(韓帖木兒)의 요청으로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제영]요곽하화최효우(繞郭荷花摧曉雨) 이발(李發)의 시에, “성곽 둘레의 연꽃은 비를 재촉하고, 들에 가득한 벼이삭은 가을 하늘에 상긋거리네.” 하였다. 수락어하국(水落魚鰕國) 김극기의 시에, “수위(水位)가 낮아지니 고기와 새우의 나라요, 산이 고요하니 호랑이와 들소의 고을이로다.” 하였다. 일로요련해(一路遙連海) 옛 사람의 시에, “한 길 아득히 바다에 이어있고, 천가(千家)는 반쯤이나 산에 가려 있구나.” 하였다.《대동지지(大東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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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고종 11년 갑술(1874, 동치13)

8월 13일(계미) 맑음

좌목

성정각에서 전 제주 목사 이복희를 소견할 때 동부승지 민창식 등이 입시하였다

○ 오시(午時).

(이상생략)

이복희가 아뢰기를,

“산장(山場)의 말은 원래의 총 숫자가 1032필인데, 비는 대로 숫자를 채웁니다. 그 나머지 각장(各場)의 말도 정해진 총 숫자가 있는데, 태어나고 죽는 것이 해마다 각각 같지 않기 때문에 공물로 바칠 때가 되면 숫자를 채우고 장부를 수정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소 전염병이 기승을 부린다는데, 과연 어떠했는가?”

하니, 이복희가 아뢰기를,

“겨울부터 지금까지 산우(山牛)와 야우(野牛)가 병들어 죽은 것이 그 숫자를 알지 못할 정도로 많아, 심지어 말을 가지고 대신 논밭을 갈고 있기까지 합니다.”하였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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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3 - 석전류 2

석전잡설(釋典雜說)

석전(釋典)의 범문(梵文)에 대한 변증설(고전간행회본 권 37)

범문(梵文)은 곧 서축(西竺)의 방언(方言)이다. 불서(佛書)가 처음 중국에 들어왔을 때에 중국의 자음(字音)으로 그것을 번역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음절(音切)은 또 중국의 것과 다르니, 그 음에 서축(西竺)의 말이 어찌 다 담길 수 있겠는가. 범서(梵書)는 특히 음에 장점이 있으므로,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은 어문(語文)의 세계가 판이한 데다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도 다시 구별이 있으니, 그 뜻만 알고 넘어갈 뿐, 그 음은 논하지 않는 것이 옳겠다.

또 불가(佛家)의 어류(語類)를 해석해 놓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야우(野牛) 실가라(悉伽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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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집 시집 제5권

[시(詩)]

영남루에서 차운하다[嶺南樓次韻]

登臨正値浴沂天 올라간 것이 마침 늦은 봄을 만났는데

灑面風生倚柱前 낯 스치는 바람이 기둥 기댄 앞에서 나오네

南服山川輸海上 남방의 산천들은 모두 바다에서 다하고

八窓絲竹鬧雲邊 팔창의 관현악 소리는 구름 가에 들레어라

野牛浮鼻橫官渡 들소는 코만 내민 채 관선 나루를 횡단하고

巢鷺將雛割暝煙 백로는 새끼 데리고 저녁연기를 가르누나

方信吾行不牢落 이제야 믿노니 내 행차 적막하지 않음은

每因省母忝賓筵 늘 모친 뵙는 틈에 빈연에 참여한 때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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