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프랑스 왕실 상징 플뢰르 드 리스(Fleur-de-lys)에서 본 대조선

한부울 2012. 7. 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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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실 상징 플뢰르 드 리스(Fleur-de-lys)에서 본 대조선

 

글쓴이:한부울

 

이 붓꽃에 대해 이미 알아보았던 적이 있는데 바로 본 블로그 "붓꽃(馬藺, 鳶尾 Iris)과 고려사랑 http://blog.daum.net/han0114/17050020" 에서 이다.

이 식물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과거 몽골인들이 고려를 무지개 나라라고 하였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지만 붓꽃이 본래 레인포우 와 무지개 사랑 그리고 무지개 나라와 연결된다는 사실에서의 고려가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Fleur de lys]

                            [Iris compared with fleur-de-lis ornament in French]                               

 

플뢰르 드 리스(Fleur de lys)는 백합이라고 해석되지만 백합꽃(Lily, Lilies, Lilium)일까 아니면 붓꽃(Iris)일까 일단 궁금해진다.

 

                                                           [백합百合:Lily]

 

생긴 모양은 백합꽃 보다는 위 붓꽃이다.

그렇다면 왜 붓꽃(馬藺, 鳶尾, 溪蓀:Iris)을 백합이라고 모두 해석할까?

붓꽃이라고 하면 이를 애려사(愛麗絲)라 했다는 사실이 들통날까봐 그렇게 숨긴 것은 아닐까?

괜한 의심은 좋지 않다.

엘리자(Elisa)를 애리사(艾莉莎), 애려사(愛麗絲)로도 읽고 쓰며 엘리자베스(Elizabeth)역시 고려사랑(愛麗絲)의 음이라 할 수 있다. 

 

 

위는 대만에 있는 향파림화원(番婆林花園)자료이다.

 

지금부터 삼한역사가 관계하는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이 애려사(愛麗絲)를 그리스 말로는 "레인보우 무지개"라 했다 한다.

It takes its name from the Greek word for a rainbow

IRIS was the goddess of the rainbow, the messenger of the Olympian gods.
올림픽선수들의 신 메신저 무지개 여신을 말한다고 되어 있고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면 고대 그리스 항아리 그림에 황금날개를 한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손에 물주전자와 전령의 지팡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몽고인들이 고려를 "무지개 나라(솔론고스 울스:Солонгос улс)"라고 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남미에서도 무지개를 신성시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있다.

그러나 본 블로그에서는 이 몽고인들을 근원적으로 아시아몽골인으로 보지않고 대비달자 즉 아라사로 보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애려사의 원산지와 지배지가 특히 기존 삼한이 존재하는 땅 한반도가 속하는 동아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동시알게 한다.

riverbanks of Europe, the Middle East and northern Africa, Asia and across North America.

위 글에서 보면 이 붓꽃(애려사)은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강기슭, 강변에서 자란다 하였다.

어쨌던 이러한 영역은 전체로 따진다면 상당한 넓은 영역이고 거의가 세계를 아우러는 지역이다.

애려사(愛麗絲)는 어원그대로 풀이 하면 고려를 사랑하는 꽃임을 다시 강조할 수 있으며 고려 (高麗)사랑이 오죽했으면 애려사(愛麗絲)라 명명할 수밖에 없었던 그 때 역사적환경을 상상하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자료에 보면 분포지로 북아프리카, 레바논, 카프카스지역,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등으로도 나오는 이 지역들은 역시 삼한역사와 밀접한 곳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근원적으로 붓꽃인지 백합인지가 분명하지 않고 형태적으로 볼 때 붓꽃인가 하지만 이 상징이 프랑스왕국의 문양이라는 점과 이것과 얽힌 정치성상황에서 이 상징이 당시 주는 영향력 정도를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것은 세계삼한역사를 찾는데 매우 중요한 중심점이기 때문이다.

 

이 붓꽃과 유럽역사를 한번보자.

먼저 프랑스의 역사는 골, 갈리아, 그리고 켈트와 연관된다고 판단된다.

 

근대 프랑스영토의 경계는 대략 고대 골(Gaul)족의 영역과 같다고 되어 있는데 이 골(Gaul)족은 누누히 이야기 하지만 고구려일 가능성이 많고 유럽역사가 삼한역사와 동일하다고 판단되는 점을 감안한다면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풀어볼 수밖에 없는 것 내용이다.

물론 그러한 문제를 정립하는 것이 그렇듯 간단할 수는 없다.

현재 프랑스 영토는 이 골(Gaul)족의 영역이고 기원전 10세기 이래 켈트인이 거주한 서구지역을 로마인들이 골(Gaul)또는 갈리아(Gallia)라 불렀다는 사실을 인용하면 골, 갈, 켈은 같은 음역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하는 것이다.

유럽역사를 냉정하게 평하는 것에서 보면 현 러시아 수학자이며 이론역사학자인 아나톨리 티모페에비치 포멘코(Anatoly Timofeevich Fomenko)는 고대그리스, 고대로마, 고대이집트를 포함한 고대사 모두가, 중세에 일어난 사건의 반영에 지나지 않았고, 또 중국이나 아랍의 역사 모두가 17 세기부터 18 세기에 걸친 것으로 1534년 8월 15일에 군인출신 로마 가톨릭 수사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cio de Loyola, Ignatius of Loyola, 1491-1556)에 의한 이야기로서  예수회(Society of Jesus)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실상 따질 것이 없어보인다.

더군다나 트로이아 전쟁(Troia 戰爭)과 십자군(Crusades, 1096-1270)은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십자군역사는 사실상 유럽사의 뿌리라고 할 수 있음에도 이렇다 할 때 사실상 유럽사는 거의가 꾸민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고대 로마제국 갈리아의 원 거주민은 켈트족(Celts, Celtae)으로, 갈리아라는 이름 자체가 '켈타이(Celtae)'를 라틴어식으로 옮긴 것이라고 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서양사는 사실상 뿌리 즉 근원이 없는 존재하지 않았던 허상의 역사와 마찬가지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헌 허상을 만들 수 있었던 기초는 바로 사라진 세계삼한역사에서 줏은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갈리아는 고리=구리=골=갈=구려, 코리=고려, 구려, 고구려 등으로 불리었던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삼한과 가깝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본 블로그 "충격적인 동방역사(東方歷史)에 들어가면서 http://blog.daum.net/han0114/17050378 "글에서 고구려 역사가 유럽전역을 가름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밝힌바가 있다.

 

 

 

영국문장에 붓꽃 상징 문장이 갑자기 1801년에 사라진다는 사실이 있다.

프랑스왕가의 문장을 차용하고 있었던 영국이 갑자기 영국문장에서 없애 버린 것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 한다면 1801년부터 시작한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 연합왕국(1801-1922)의 문장에서 빼 버린 것이다.

무엇때문일까?

 

 

 

위 그림은 바로 백합꽃 또는 붓꽃(Fleur-de-lys)이라고 하는 상징으로서 프랑스 왕가의 문장(coat of arms, 紋章)이며 동시에 부르몽왕가의 문장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데 이것에 자료를 보면 프랑스왕가의 백합 또는 붓꽃 문장 사용은 부르몽왕조의 전신인 카페왕조출신이며 사자왕이라고 하던 루이 8세(Louis VIII le Lion,1187-1226재위:1223-1226)가 처음이었다고 오늘날은 여겨지고 있는데 그것은 1211년경 아직 루이8세가 왕자였을 시절의 도장에서 발견되었다는 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모양은 오늘날의 백합(편이적으로)문장이 아닌 백합 묘목문장이었다고 하고 1375년 샤를 5세(Charles V le Sage,1338-1380,재위:1364-1380)에 의해 오늘날의 문장과 같은 모양으로 교체되었다고 하며 그때부터 문장은 파란바탕에 금색 백합 3개가 있는 문장이 되었는데 루이 9세(Louis IX, 1214-1270,재위:1226-1270)는 이 3개의 백합 잎을 각각 지혜, 기사도, 믿음의 상징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인도 브라만교(婆羅門敎:Brahmanism)에서 세상을 창조하는 범천(梵天)인 브라흐마(Brahma), 세상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비슈누(Vishnu), 세상을 징벌하고 파괴하는 시바(Siva)를 삼신(三神)이라 하여 삼주신(三主神:Trimurti)이라 하듯 기독교에서 14세기부터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theory of trinity)성부(聖父)·성자(聖子)·성령(聖靈)이 전 유럽에 유행하면서 왕실문장에 대한 해석도 삼위일체론에 부합되도록 변경되었다는 설이 존재한다.

이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 theory of trinity)도 다시 논의 되어야 할 성질에 것이지만 환인을 천황(天皇), 환웅을 지황(地皇), 단군을 인황(人皇)으로 하는 삼환신(三桓神)의 삼위일체이며 일반 제례에서 뿌리(根)는 조상을, 줄기(莖)는 부모, 그리고 잎사귀(葉)자신라 한 제례상에 올려지는 각종 식물에도 이 삼위론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근원이 하나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같다 할 수밖에 없다.

 

               [카페왕조라고도 하는 발루아 왕조(Maison capétienne de Valois)]

 

                                    [부르봉 왕가(House of Bourbon, 1589-1830)]

 

이 백합 또는 붓꽃 상징의 문장은 처음에는 1328년에서 1589년까지는 카페왕조라고도 하는 발루아 왕조(Maison capétienne de Valois)로부터 시작하여 부르봉 왕가(House of Bourbon:1589-1830)가 이어받고 나중에 오를레앙 왕가(House of Orléans:1640-1848)가 잇게 된다.

그리고 이 붓꽃상징은 이 3왕가가 공히 사용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상징의 대표성은 물론 부르봉 왕가(House of Bourbon:1589-1830)에게 있고 문장(Arms)으로서는 오를레앙 왕가(House of Orléans:1640-1848)역시도 잠시지만 이 상징을 부르몽가에 이어 사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1848년까지 그 문장이 주는 상징성이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헌종성황제(憲宗成皇帝:1827-1849,재위:1834-1849)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때 멕시코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eaty of Guadalupe Hidalgo)이 맺어지고 거의 서부땅전체를 넘겨줘야만 했다.

 

바로 부르봉 왕가(House of Bourbon:1589-1830)가 무너지는 1830년에 영국에서 프랑스왕가 상징에대한권한요구를 철폐한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시민혁명이라고 하는 프랑스혁명(French Revolution:1789-1794)이 일어나 부르봉 왕가(House of Bourbon)의 루이 16세(Louis XVI, 1754-1793, 재위:1774-1792)가 시민군으로부터 강제 폐위당하고 반역혐의로 1792년 단두대에 처형됨에 따라 사실상 부르몽 왕가의 명을 다하는 것이 되어 버렸으나 당장 군주제를 혁명군이 폐지하지 않고 루이16세의 아들 루이17세(Louis XVII, 1785-1795,재위:1793-1795)를 앉히지만 곧 왕가가족 전부를 탕플(Temple)감옥으로 보내지면서 결국 감옥에서 루이17세는 임파선 결핵에 의해 어린나이 17세에 사망하고 만다.

그 이후 변화가 무쌍하게 돌변하여 쿠데타로 1814년 정권을 잡고 있었던 나폴레옹 정권(Napoléon Bonaparte:1804-1814, 1815)마저 실각함에 따라 프랑스 제1제정이 몰락하고 프랑스혁명으로 쫓겨난 프랑스의 기존 왕실인 부르봉 왕가 루이15세(Louis XV)의 왕태자인 루이 페르디낭(Dauphin de France)의 아들, 루이16세의 남동생인 루이18세(Louis XVIII,1755-1824,재위:1814-1815, 1815-1824)를 복귀케 하여 1824년까지 다시 통치하게 된 것을 부르봉 왕정복고(Restauration)라 부른다.  

 

그러나 1830년 7월 29일 부르봉 왕정복고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이 7월 혁명을 일으키자 이에 오를레앙 왕가(House of Orléans)의 루이필리프(Louis-Philippe Ier, 1773-1850,재위:1830-1848)가 다시 시민의 왕으로 추대되어 즉위하지만, 결국 7월왕정 역시 무너지고, 루이필리프는 1848년 폐위된다.

어쨌던 그가 오를레앙왕가이지만 붓꽃 문장을 1830-1848년 까지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프랑스의 주도세력 지배왕가라 할 수 있는 부르봉 왕가(Maison capétienne de Bourbon, House of Bourbon, 1589-1830)는 카페왕조(Capetian dynasty:987-1328)의 한 계열로 루이 9세(Louis IX:1214-1270, 재위:1226-1270)의 마지막 아들 클레르몽의 백작 로베르 드 프랑스(Robert de France:1256-1317)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것을 부르봉 왕조라고 불렀다.

또 이 왕조는 프랑스왕가(1589-1830)뿐만 아니라 에스파냐왕가(1700-1833)의 펠리페 5세(Felipe V, 1683-1746, 재위:1700-1746)로부터 시작하여 페르난도 7 세(Fernando VII,1784-1833,재위:1808-1833)이어 그의 딸인 여왕 이사벨2세(Isabel II, Isabel María Luisa de Borbón,1830-1904,재위:1833-1868)까지 통치하게 하였으며 프랑스북서부에 위치하고 있었던 나바라(Navarre)왕가 역시 엔리케 3세, 앙리 4세대왕(Henri IV de France, 1553-1610,재위:1572-1610)과 루이스 2세, 루이13세 정의왕(Louis XIII, 1601-1643, 재위:1610-1620)이 동시에 통치하였으며 그리고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가 역시 카를로스3세(Carlos III, 1716-1788, 재위:1731-1788)와 페르디난도 1세(Ferdinando I, 1751-1825,재위:1816-1825)가 지배하고 통치했다는 사실이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유럽이라는 역사틀에서 볼 때 유럽대륙 정치질서를 이 부르몽 왕가가 틀어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역사 근대사에서 프랑스왕가라고 지금은 정리되고 있지만 사실상 명칭은 근세기에 붙여진 것이라고 보이고 혹 삼한이름으로 불리었을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으며 서양사를 바탕으로 한 현재 나라라고 명시되어 있는 스페인, 그리고 이 스페인에 합병된 포르투갈, 이탈리아, 시칠리아, 나바라 등은 전부 부르몽 왕가 내에 있는 일개 정치주체들일 있지만 절대 국가명으로 삼한역사원문에 기재되지 않았을 것이란 확신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그 역사에서는 분명코 하나의 체제로서 각기 국가명을 붙일 수 없었다는 생각이다.

부르몽왕가의 영향력을 볼 때 루이14세부터 루이16세까지의 시대때 영국왕실에서도 영국 국내에서 반대파에 의해 영국왕실의 위기가 있을 때 마다 프랑스왕국으로 망명하여 도움을 요청하거나 의탁을 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영국왕가 역시 프랑스왕가의 전폭적인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환경에 있었다는 사실을 감지 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사를 보면 영국과 프랑스가 충돌이 잦았고 이 충돌들이 전쟁으로 묘사되어 국가대 국가의 충돌로 오인되는 점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사에서도 기득권 세력으로 분류되는 프랑스에게 불리한 상황이 루이15세이후 두들어진다.

 

문제는 루이 16세 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프랑스가 영국과 큰 싸움에서 늘 패하여 우위에 있었지 못했다는 사실이고 영국이 북아메리카대륙을 장악한 상태에서도 루이16세 재위시 발생한 미국독립전쟁(1775-1783)에서 필요이상으로 집착한 것으로 보여 실패를 당한 것이라고 나타나지만 실상은 이때 온건파 세력들을 지원하면서 난국을 타개하려고 했지만 영국에게 승리하고 독립을 쟁취한 미국독립군에게 어떤한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은 참으로 이상하기 짝이 없다.

미국동부 13개주를 영국이 잃게 되었다는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이지만 사실상 프랑스와 영국이란 국가가 취한 이득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냥 힘겨루기 였다고 하기엔 프랑스 루이16세 입장에선 치명적인 것이어서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희귀한 사실들임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유럽사를 대충 때우는 식으로 처리한 것일뿐 실상은 다를 것이란 생각이 강하다.

이런 것을 보면 적어도 영국왕실도 프랑스 지배질서 속에 존재 한 것이라고 판단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서로 독립적인 관계가 존중되면서 왕조의 근원은 부로몽 왕가를 뿌리로 한다는 원칙에서 서로가 협조하고 또는 충돌하였다고 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본 블로그 "정조와 루이16세 http://blog.daum.net/han0114/17050507 "글에서 프랑스와 대조선관계를 세밀하게 살펴보았지만 예를 들어 만약 대조선(숙종, 영조, 정조)이 프랑스라면 조선(朝鮮)이란 거대한 정치사회에서 붕당(朋黨)이라고 하는 서인(西人), 남인(南人), 노론(老論), 소론(少論), 그리고 시파(時派), 벽파(辟派)가 서로 충돌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시파, 벽파가 생성된 1801년 이후부터 프랑스도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이러한 사태가 공교롭게도 조선과 일치하는 이야기다.

프랑스처럼 조선 역시 시대조류였던 부르주아혁명(Bourgeois revolution)을 막지 못해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결국 이러한 사태는 결국 안동김씨세도정치로 이전되는 상황을 맞이 한 것이라고 풀어 볼 수있는 일이다.

 

 

 

[Edward III(1312 -1377,재위:1327-1377)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한 Royal Arms of England(1340-1367)문장]

 

 

                               [영국왕실문장 Royal Arms of Great Britain (1714-1801)]

 

이러한 것은 프랑스왕국 부르몽왕가(House of Bourbon)에서 영국의 하노버 왕가(House of Hanover)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하노버왕가가 지배한 이 왕국을 통칭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연합왕국이라고 하고 있으며 하노버 왕가(House of Hanover) 계보에서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801-1922)의 조지 3세(George III, 1738-1820,재위:1760-1820)와 조지 4세(George IV,1762-1830,재위;1820-1830)가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조지 3세(George III)는 미국독립전쟁에서 패하고 미동부13개주를 내주고 만다.

실제로 부르몽왕가의 최종 명맥을 유지하던 스페인왕가의 페르난도7 세(Fernando VII, 1784-1833, 재위:1808-1833)가 죽는 시점까지를 부르몽왕가의 정점으로 하고 있고 1837년부터는 하노버 왕가(House of Hanover)의 정통 승계권을 여자의 신분때문에 부여받지 못하는 빅토리아여왕이 들어선 다음부터 이상하게 대영제국이라고 하는 빅토리아시대가(Queen Victoria, Alexandrina Victoria;1819 -1901,1837-1901)열리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이 실제 유럽정치질서를 영국이 쥐게 된다는 사실만은 알 수가 있다.

사실상 유럽정치역사를 손에 검어 쥔다는 것은 곧 세계를 움켜잡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만큼 18세기 이후 19세기의 유럽실권을 누가 잡느냐는 바로 세계실권을 누가 잡는 것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가 승계받는 시점은 1837년 부르몽 왕가가 끝나고 하노버왕가(House of Hanover)마저 전통성을 상실하는 위기에 빠지는 시기이다.

때문에 양대왕가는 사라지는 것일 뿐 세계역사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조(正祖,1752년-1800,재위:1776-1800)가 죽은 년대가 하노버 왕가의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801-1922)이 시작되는 시점과 공교롭게도 맞물리고 있다.

그 이후 정조 후 순조(純祖, 1790-1834, 재위:1800-1834)가 승계하지만 등극한 순조 대신 수렴청정 하던 경주김씨(慶州金氏) 대왕대비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는 국내 로마가톨릭 신자 탄압을 빌미로 남인(南人)과 소론(少論), 시파(時派)를 모두 숙청을 하고만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난 후에는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소론시파인 순조 왕비(王妃)의 아버지 김조순(金祖淳,1765-1832)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 안동김씨(安東金氏:영국왕실)의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 마치 영국문장에서 부르몽왕가의 상징인 붓꽃 상징이 없어지고 대신 스코틀랜드의 사자 문양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는 사실을 읽을 수가 있다.

그와 동시에 조선의 붕당(朋黨)은 정치 세력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였다는 것이므로 이것은 1803년 이후부터 김조순이 정권을 잡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고 하노버왕가(House of Hanover)의 영국왕실은 유럽정치질서와 세계정치질서를 거머쥐는 형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을 알 수가있다.

 

본 블로그 "방울뱀으로 본 미국(美國)은 풍이족(風夷族)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522 "글에서 미국혁명전쟁(revolutionary war:1775-1783), 또는 미국독립전쟁(Independent War)이란 이름으로 기존 지배국인 영국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들어난 영국의 용(Dragon:龍) 상징성과 대조선의 용(龍) 상징성을 대조하여 본 결과 크게 다르지 않고 틀리지 않음을 알았다.

이러한 형태적인 면에서 알려고 한 것은 최소한 미국과 영국이 충돌한 사실 전반적인 상황을 조선역사에 넣고 볼 수 있는 동질성을 읽기 위함이었다.

이것을 비유하자면 결과적으로 큰 몸집 대조선(大朝鮮)은 비록 흔들렸겠지만 이러나저러나 건재하였을 것이고 정권의 이동이 변화무쌍하게 전개된 것인만큼 당시마다 상황을 주도한 정치세력들만 부르몽왕가나 하노버왕가처럼 사라지고 생성되고 대신 그자리를 차지한 세력이 등장했을 것이란 추측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영국(England)은 근세사에서 대조선(大朝鮮)를 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말 그렇다면 혼란스럽게 보이던 세계사 정황의 전체 익스텐트(extent)에서 스펙트럼(spectrum)이 한곳으로 집중됨을 알 수 있고 그것에서 삼한역사가 보이는 것이다.

 

언어학적 접근으로 “Fleur de lys”에 대한 설명은 루이와 관련 있다고 하는데 프랑스에는 유난히 루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때문에 문장에 있는 꽃이 바로 "루이의 꽃"이라고 할 정도로 뜻에서도 "Flor de Loys(Fleur de Louis)"가 "Fleur de lys"의 어원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였으니 이 부분에서 각자 다르게 생각 할 수도 있겠다 싶다.

문제는 지금까지 붓꽃으로 보았지만 북아메리카대륙을 깃점으로 하는 역사라면 백합의 학명 외떡잎식물강(單子葉植物綱:Liliopsida), 백합목(百合目:Liliales), 백합과(百合科:Liliaceae), 백합속(百合屬:Lilium)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도 한다.

 

본격적으로 영국이 유럽사에서 지도국으로 등장하는 시기가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801-1922)이란 이름으로 1801년 이후라는 사실도 퍽 느낌을 강하게 하는 대목이다.

 

앞에서 전제한 것처럼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1801년부터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801-1922)의 문장 변화를 세부적으로 한번 보는 것이다.

전통적인 문장을 보면 가운데 있는 방패는 4등분 되어 있는데,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에는 정면을 향해 오른쪽 앞다리를 들고 왼쪽을 향해 걷는 자세를 한 잉글랜드의 사자 세 마리가 자릴 잡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붓꽃 무늬로 장식한 2중 선 안에서 뒷발로 일어선 스코틀랜드의 사자가 있고, 왼쪽 아래에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하프가 있다.

그러나 1801년 이전의 문장을 보면 이것과 다른데 바로 방패 오른쪽 위에는 붓꽃 무늬로 장식한 2중 선 안에서 뒷발로 일어선 스코틀랜드의 사자가 있는 곳에 프랑스왕가 부르몽 왕가의 상징인 백합꽃 또는 붓꽃모양의 문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들어난 자료에는 이 백합꽃의 문장은 실제 백합꽃과 닮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본인은 여기서 자꾸 백합꽃과 붓꽃을 병기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비슷한 꽃을 찾는다면 노란꽃창포 붓꽃과(iris des marais)인데 백합문양과 비교하면 노란꽃창포를 뒤집어 놓은 그림이라고 할 수가 있다.

 

 

                                                            붓꽃과 (노란꽃창포) 

 

붓꽃(馬藺, 鳶尾, 溪蓀:Iris)=애려사(愛麗絲)
It takes its name from the Greek word for a rainbow
riverbanks of Europe, the Middle East and northern Africa, Asia and across 북아메리카North America.

native to Europe, western Asia and northwest Africa.

Common names include yellow iris and yellow flag. 공통 이름은 노란 꽃창포, 노란 깃발이다.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门 Magnoliophyta

綱: 单子叶植物纲 Liliopsida

目: 天门冬目 Asparagales

科: 鸢尾科 Iridaceae

屬: 鸢尾属 Iris

種: 黄菖蒲 I. pseudacorus

二名法

Iris pseudacorus L.

 

 

 

 

노란꽃창포 붓꽃은 영국문장에 방패에 오른쪽 위에는 붓꽃 무늬로 장식한 2중 선이 있다는 사실과 또한 비교된다.

그러나 알 수 없다.

이 붓꽃이 유럽을 대다수 분포지로 한다는 것을 이용하였을 수 있기때문에 본래 프랑스 상징성이 있는 꽃은 백합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것을 당시 에드워드3세때부터 영국왕실에서 프랑스의 문장을 빌여 쓴 것이라고 하고 있다.

1801년 이후부터는 영국문장에서 지금까지 유럽대륙질서를 좌지우지하던 부르몽 왕가 문장이 없어지면서 동시에 프랑스왕가도 쇠락 길을 맞았고 대신 이 부르몽 왕가 백합꽃 문장은 뒷발로 일어선 스코틀랜드의 사자가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결국 이렇게 하여 영국왕실의 문장 일부분으로 역사사실에서 남았을 뿐인데 사라진 듯한 이 백합꽃 문장은 프랑스사람이 아닌 영국의 군인 로버트 베이든 파월(Robert Baden-Powell, 1857-1941)이 스카우트 운동인 스카우팅(scouting)을 1921년에 설립이 하였고 이 프랑스 부르몽왕가의 문장을 스카우트 운동의 심볼마크로 만들었다.

이 부르몽왕가의 상징인 백합꽃 또는 붓꽃은 결국 대조선의 영광을 배경삼아 세계 젊은이들의 육체, 정신, 영혼 발달을 지원하여 사회에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적인 청소년 운동 단체 스카우트운동(scouting)의 심볼마크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아쉽지만 그나마 이런 모형으로 남아서 대조선의 자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애려사 고려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니 그렇다.

프랑스에서는 이 문장을 이제 찾을 수 없지만 영국에서는 당시 이 부르몽왕가 상징인 백합꽃 문장을 빌려 쓰다가 이것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며 결국 영국이 끝까지 차지한다는 사실 또한 이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가 가지고 있던 권위 상징이 영국으로 영원히 넘어가게 된 것이다.

 

                                                [에드워드3세-Edward III]

 

1328년 영국의 에드워드3세(Edward III, 1312-1377,재위:1327-1377)가 프랑스왕관의 상속을 요구하면서 영국왕실 문장에 프랑스의 백합문장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1801년 조지3세(George III, 1738-1820,재위:1760-1820)가 영국 왕실의 프랑스 왕관 상속요구를 영구적으로 철폐하면서 오늘날의 영국왕실 문장이 되었다는 사실과 오늘날 이 문장은 프랑스와 퀘벡(Quebec)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쓰이고 있으며 그 밖에도 스페인 국기를 보면 가운데 이 문장 중앙에 또렷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가 있다.

그외 세르비아(Serbia), 보스니아, 스코틀랜드, 루이지애나의 뉴올리언즈(New Orleans), Acadiana, 캔터키의 루이빌(Louisville), 미주리의 생루이(St. Louis, Missouri)등 광범위하게 국가 또는 자치단체의 문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조금이라도 대조선의 그림자를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이와같은 사실과 함께 앞에서 지적하였지만 정작 현재 프랑스공화국의 국장"(National emblem of France)-French Republic" 에서 백합 또는 붓꽃 모양의 문장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부르몽왕가의 상징인 이 백합 또는 붓꽃 모양의 문장은 당시 프랑스란 국가를 세계적 권위의 상징으로 알리는 역할을 충분하였을 것임에도 이러한 조치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왜 현 문장에 역사적으로 충분한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부르몽왕가 문장을 사용하지 않고 있을까?

현재는 법적으로 공식적인 국장을 정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1953년 이후로 프랑스 외교부와 여권 표지에서 1912년 당시 외교 사절과 영사로 파견되었던 쥘 클레망 샤플렌(Jules-Clément Chaplain)이 디자인했던 아래 문장을 프랑스공화국의 국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양에서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국장 가운데에 사자의 머리와 독수리의 머리가 장식된 방패가 그려져 있다.

방패 가운데에는 프랑스의 공식 명칭인 "프랑스 공화국(République Française)"의 프랑스어 약칭인 "RF"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방패 뒤쪽에는 속간(束桿, fasces)이 그려져 있고 방패 양쪽에는 올리브 가지(olive), 월계수(Laurel)와 참나무(oak, Quercus)가지가 장식되어 있다.

보통 속간(權表, 束桿, fasces)은 라틴어로 "묶음"이란 뜻이고 권력과 사법권, 또는 "통합을 통한 힘" 즉 파쇼 fascism, fascio, 국수주의적, 권위주의적, 정치적 주의를 상징하는 것이라 하며 이 속간은 전통적으로 고대 로마의 속간을 칭하는 것인데 하얀 자작나무 막대기를 붉은 가죽띠로 묶으며, 막대기 사이에 옆으로 날이 선 청동 도끼를 끼운 것을 로마 공화정의 상징으로 쓰였다는 표식이다.

 

그러나 위의 언급한 사실처럼 의구심은 현재 프랑스가 로마의 전통은 따르지만 프랑스의 번성기를 누리게 한 부르몽왕가의 상징인 "Fleur-de-lis" 백합 또는 붓꽃 상징성은 일체 사용하지 않는 다는 사실에서 무엇인가 근원적으로 감추고 싶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과거 로마 갈리에누스(Publius Licinius Egnatius Gallienus , 218-268)황제가 모든 병권을 좀 이질적으로 볼 수 있는(실제 이교도라 불리웠음) 켈트인인 갈리아인 포스투무스(Postumus, 260-268)에게 맡겼다는 것에 고마움의 표시라는 것일까?

그때부터 프랑크라 하였기 때문이다.

혹 지금까지 추측한 대조선과 관계되는 것은 아닐까?

 

결론적으로 프랑스왕가 부르몽왕가의 상징인 모양에서 실제 백합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즉 붓꽃이 애려사라고까지 통용된 것이라면 근대역사판짜기 세력들이 기어코 붓꽃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란 판단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부르몽왕가의 문장에 있는 상징은 붓꽃이어야 하고 애려사(愛麗絲)가 맞다.

그리고 이 붓꽃의 원산지와 고유지배지를 보았을 때 현재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 있는 한반도 동아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이 되었다.

 

본 블로그 글 "붓꽃(馬藺, 鳶尾 Iris)과 고려사랑 http://blog.daum.net/han0114/17050020 "에서 충분하게 알아보았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무엇인가 혼란스럽게 엮여 있다는 것만 확실한 것 같다.

이 곳을 터전으로 한 애려사(愛麗絲)의 원조 고려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이것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사실에서도 확인 된 사실이다.
이렇게 확실한 또 한가지의 연결고리가 생겼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그 결정은 이제 우리가 밝혀야 몫이 되었다.

 

적어도 유럽은 고구려, 신라, 고려가 관계 되어야 할 삼한지역이어야 한다.

어쨌던 프랑스왕가의 상징인 백합꽃 또는 붓꽃으로 본 오늘날 유럽 괴리의 역사는 이렇게 일단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이처럼 세계삼한역사 찾기는 흥미진진하다.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밝히고 들어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원초적으로 세계삼한역사란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헛소리로 들릴 가능성도 있는 대단히 모험적인 이야기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큰 의미가 있는 역사사실을 새롭게 추적하고 그 속에 감추어진 무엇인가를 발취하는데 대한 보람이 있다면 비록 지금은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고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다음페이지를 약속할 수밖에 없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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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몽왕가의 상징이 국기로 사용된 사례(Coats of arms and flags)

 

                                     French royal arms before 1376 (France ancien)

 

                                       French royal arms after 1376 (France moderne)

 

                                The arms of the Kings of England from 1340 to c.1411

 

                                          Arms of the Kingdom of England, 1558-1603

 

                                                    Scottish royal arms

Prior to the Union of the Crowns, 1603, 제임스 1세(James I, 1566-1625,재위:1603-1625)Coat of arms of James VI from 1603 as Jacobus

 


kingdom of great britain 1707-1801

 

                                 Coat of Arms of Great Britain in Scotland(1714-1801)

Coat of Arms of Great Britain in Scotland from 1714 to 1801 used by King George I, George II, George III

 

 

                                                                 [Spain]

 

국장 양쪽에는 "헤라클레스의 기둥" 이라고도 부르는 두 개의 기둥이 그려져 있으며, 기둥 위에는 카를 5세가 사용했던 왕관이 올려져 있다.

기둥 양쪽에 그려져 있는 빨간색 리본에는 스페인의 나라 표어인 "보다 더 멀리" ("PLVS VLTRA, Plus Ultra")라는 문구가 라틴어로 쓰여져 있다.

방패 가운데에는 빨간색 테를 두른 파란색 원이 그려져 있으며, 원 안에는 세 개의 백합 무늬가 그려져 있다. 다섯 개의 작은 공간에는 15세기 말에 통일되기 이전에 있었던 스페인의 다섯 왕국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방패 왼쪽 상단에는 카스티야 왕국 (빨간색 바탕에 세 개의 탑이 세워진 금색 성곽이 그려진 문양), 오른쪽 상단에는 금색 왕관을 쓴 사자는 레온 왕국 (은색 바탕에 금색 왕관을 쓴 자주색 사자가 그려진 문양), 왼쪽 하단에는 빨간색과 금색의 방패는 아라곤 왕국 (금색 바탕에 네 개의 빨간색 세로 줄무늬가 그려진 문양), 오른쪽 하단에는 나바라 왕국 (빨간색 바탕에 십자 모양과 X자 모양의 십자 모양으로 묶인 금색 쇠사슬이 그려진 문양)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으며, 방패 아래쪽에는 그라나다 왕국 (은색 바탕에 두 개의 잎과 빨간색 열매를 가진 석류 문양)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방패 위에는 스페인의 국왕을 상징하는 왕관이 장식되어 있다

                                                    Fleur-de-lis of Florence

피렌체(Florence)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주도

 

플로린(Florin)은 1252년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지방의 금화에서 시작되었다.
중세유럽에서 피렌체는 상당한 부국(副國)이었기에 그 지방의 통화인 플로린(Florin)은 서유럽 최초의 주조된 금화로서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다.

 

                            [1266년에 프랑스의 루이9세가 발행한 첫 번째 ecus]

 

                                     Fleur-de-lis in the coat of arms of Pope Paul VI

교황 바오로 6세(Paulus PP. VI) 제262대 로마 교황(재위: 1963-1978)

 

                               Zlatni Ljiljan("golden lily") of Bosnia and Herzegovina

 

                                                              세르비아(Serbia)

 

                                                 National symbol of the Bosniaks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주요 민족으로 남슬라브 민족에 속한다

 

                                                              Flag of Quebec

 

                                                      Flag of New Orleans

 

                                                         Flag of Acadiana(Louisiana 주)

 

                                                      켄터키주 루이빌(Louisville)

 

                                                    Flag of St. Louis, Missouri

 

                         Coat of Arms of 비스바덴(Wiesbaden), Capital of Hessen, Germany

 

                       산자크-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국경 사이에 위치한 역사적인 지역

 

                          Fleur-de-lis on 14th century Syrian albarello(시리아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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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가 상징인 백합꽃에 대한 학명풀이와 원산지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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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백합(聖母百合 Lilium candidum)은 부르몽왕가 상징과 동일한 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모양이 맞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붓꽃 고려사가 더 일치하는 문장이다.

눈이 있으면 확인하고 볼 수 있다.

성모백합이라고 하여 종교적으로 이 백합의 상징을 끼워맞춘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성모백합(聖母百合 Lilium candidum)是百合科百合屬多年生草本植物,又名白百合、瑪丹娜百合(Madonna Lily)。原產於巴爾幹半島(발칸반도:Balkan)與서아시아(西亞)

中世紀時期的基督徒常拿這種百合花來供奉성모마리아(聖母瑪利亞=Mary (mother of Jesus)

It is native to the Balkans and West Asia.

 

 

 

                                                      [(1794)Lilium candidum]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單子葉植物綱 Liliopsida

目: 百合目 Liliales

科: 百合科 Liliaceae

屬: 百合屬 Lilium

组: Liriotypus

種: 聖母百合 L. candidum

二名法

Lilium candidum L.

 

《植物學雜誌》(1794)Lilium candidum

 

聖母百合分布於地中海東部地區,由希臘, 마케도니아(馬其頓)至이스라엘(以色列) 갈리리(加利利Galilee)、시리아(敘利亞)크레타섬(克里特島)生長在石灰質的土壤中,生長地夏季極為乾燥。

 

프랑스혁명이후 왕권 복원 후 프랑스에서는 부르봉 왕가(House of Bourbon, 1589-1830)의 프랑스 왕관을 애착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문장(Arms)은 여전히 프랑스 왕가에 의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결국 오를레앙 왕가(House of Orléans:1640-1848)가 이어 사용하였지만 1830–1831 이후부터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무엇 때문일까?

스카우트 운동 또는 스카우팅(scouting)은 젊은이들의 육체, 정신, 영혼 발달을 지원하여 사회에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인 전 세계적인 청소년 운동 단체이다.

영국 육군의 중장 로버트 베이든 파월(Robert Baden-Powell, 1857-1941)은이 잉글랜드 브라운시 섬의 제1회 스카우트 캠프를 실시한 1907년에 스카우트가 시작되었다.

 

부르쥬대성당(Bourges cathedral)의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에 그려진 프랑스왕가문양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

색유리를 창이나 천장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7세기경 중동지방에서 비롯되었으며, 이슬람건축에는 대리석판에 구멍을 뚫어서 유리 조각을 끼워, 채광과 장식을 겸하는 방식을 많이 이용하였다. 서구(西歐)에는 11세기에 이 기법이 전해졌으며, 12세기 이후의 교회당 건축에서 이 예술은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특히 고딕건축은 그 구조상 거대한 창을 달 수 있으며, 창을 통해서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신비한 효과가 인식되어, 스테인드글라스는 교회당 건축에 불가결한 것으로 되어 큰 발전을 해 왔다. 프랑스의 샤르트르대성당(Chartres Cathedral) , 르망대성당(Saint Julian’s Cathedral)

영국의 요크 및 캔터베리대성당(Canterbury Cathedral)같은 여러 성당의 것은 12∼13세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현존하는 것으로는 독일의 아우크스부르크성당에 있는 예언자 다니엘상을 나타낸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1065년 또는 12세기 전반이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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