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사건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은 고려, 조선에서 일어났는가?

한부울 2011. 12. 3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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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은 고려나 조선에서 일어났는가?

 

글쓴이:한부울


14세기 흑사병(黑死病)은 유럽 인구의 3분의1(25,000,000명)을 숨지게 한 페스트다.

흑사병(黑死病)은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전염병으로 박테리아의 일종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가 원인균이다.

이 페스트(pestis)는 1348년 유럽에 상륙했는데 원래 인도와 아시아 남부에 살고 있는 시궁쥐(집쥐노르웨이쥐 Brown rat)·곰쥐(黑鼠 Black rat)의 벼룩을 통해 옮겨지면서 14세기 몽골군의 인도침략에 따라 유럽으로 몰려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곰쥐(黑鼠 Black rat)-原產於亞洲的熱帶地区(印度,東南亚)

The species originated in tropical Asia and spread through the Near East in Roman times before reaching Europe by the 1st century and spreading with Europeans across the world.

 

              《死神之凯旋》(局部)Pieter Brughel,1562年,普拉多艺术馆,马德里(마드리드)

 

몽골제국의 4대칸국 중의 하나인 킵차크칸국의 9대 칸인 우즈벡(Uzbeg, 1282–1341,재위:1312-1342)이 사망할 무렵 몽골의 지배계층 사이에 큰 혼란이 일어나 러시아의 각 공국을 비롯한 동유럽이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몽골제국 킵차크한국의 10대 자니베크 칸(Jani Beg, 재위:1342-1357)의 킵차크군은 기마군단을 몰아 크림반도로 쳐들어가 페도오시아(Feodosiya) 제노바 교역소를 포위하고 흑사병에 걸려 죽은 병사의 시체를 투석기에 담아 도시의 성벽 던져 넣었고 그 결과 도시에 흑사병이 퍼지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유목민과 달리 유럽농경정착민족에게는 허술하게 지어놓은 목제창고가 많아 곳곳에 곡식이 널려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 안에도 곡식이 있었다. 당연히 쥐가 들끓었고 제노바 교역소에 떨어진 시신에는 페스트균이 가득 들어 있었으며 그 시신들을 수거해 한적한 곳에 갖다 버렸으나 시신 속의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벼룩은 쥐로 옮겨갔고 그 쥐들은 사람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녔으며 벼룩에 물린 사람은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다가 며칠 만에 죽어버렸다. 쥐떼가 한번 지나갈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쓰러지고, 곧 시체로 변해버렸으며 농경 정착 사회를 파고든 쥐들은 도시와 농촌을 가릴 것 없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신문지상에 보도 된 것을 참고 한다면 14세기 흑사병은 중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고 당시 유럽 인구 7500만 명중 2500여만 명을 몰살시킨 흑사병의 발원지와 대창궐 원인에 대해 지금까지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 호수(Issyk-Kul Lake) 주변 설치류(rodent, 齧齒類)가 페스트균을 옮겼다는 설이 유력했지만 아일랜드 코크대(Cork college) 연구진은 중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발표했다. 또 6세기에 동로마제국을 중심으로 유럽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The Plague of Justinian: AD541–542)’ 역시 중국에서 기원한 페스트균이 원인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물론 그 당시의 중국을 어디로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현재의 중국은 그 당시 중국이 있었다고 여겨지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제국내에 속한 영토로서 존재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 국가는 바로 고려연합이라고 해야 맞다.

 

페스트가 창궐할 때는 모두가 미쳐나갔다.

독일에선 서로 채찍질하면서 고행을 즐기는 광신도들이 급증했고 유태인들에 대한 집단살육도 숱하게 이뤄졌다 한다.

페스트는 인간성의 본질을 의심케 하였고 민족국가 탄생과 종교개혁 등 문명의 대전환을 불러왔으며 사람들은 무력한 교회 대신 페스트에 대해 비교적 신속히 대처한 도시정부를 믿기 시작했으며 라틴어에 정통한 사제들이 흑사병으로 인해 줄어들어 라틴어 대신 세속적 언어가 공식문서에 쓰이기 시작하는 등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마련됐다고 평하고 있다.

소설가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페스트’에서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고 썼다.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일러 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는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에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대목은 섬뜩하면서도 미래문명을 다시 생각게 하는 교훈으로 남는다.

그런데 이 흑사병 만큼은 우리나라 역사 조선왕조실록이나 기타 어느 사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병명이다.

특히 반도역사가 그렇다.

이미 삼한의 역사는 반도사가 아니란 것이 낱낱이 들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분명히 흑사병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것은 누군가에 의하여 역사가 다시 쓰여졌거나 있었던 기록은 다른 유럽언어쪽에는 기록하고 반면 한문역사기록 특히 한반도역사에서는 이 흑사병 기록을 죄다 빼 버리거나 없애버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흑사병이 동아시아까지 창출하였다고 지도에 나오는데 지금의 동북삼성과 한반도만 빠져 있다. 그것은 사람교류가 없었다는 말도 되겠지만 실제 동아시아까지 오지 않았다고 해야 맞는 것이다.

왜냐하면 근대사가 중국을 동으로 쫓으면서 모든 지명이 그와함께 동쪽으로 이동되는 바람에 지명과 함께 흑사병도 옮겨지게 된 것이라고 추리 할 수 있다.

 

Black Death(흑사병) 이름은 1883년에 지칭이 붙여졌는데 피부의 혈소 침전에 의해 피부가 검게 변하는 증상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했다. 14세기 당시는 이병을 Great Pestilence(대 페스트), Great Plague(대 역병), Great Mortality(대규모 떼죽음)이라고도 했다 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서에 흑사병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렇다면 흑사병(黑死病)이 아닌 대역(大疫)이나 역질(疫疾), 악질(惡疾), 괴질(怪疾) 등으로 쓰여 졌을 것이라고 판단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흑사병을 삼한 역사에서 감추고 싶었다면 그것은 삼한의 역사가 반도사가 아니란 사실이 들어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근세기에 그들이 그렇게 음밀하게 숨겨놓은 것들이 현재 낱낱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본 블로그에서 세계적으로 대유행 질병을 시리즈 형식으로 세세히 밝혀 놓았다.

 

키프리안 역병(Plague of Cyprian)은 고구려에서 발생한 대역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441

안토니우스 역병(Antonine Plague AD165-AD180)과 신라(新羅)

http://blog.daum.net/han0114/17050440

매독(梅毒, syphilis)이 발병된 조선이 한반도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434

조선홍역(唐紅疫)은 왜 13개식민지(Thirteen Colonies)와 연결 되는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438

말라리아(Malaria, 瘧疾, 唐瘧)가 밝히는 대륙조선 http://blog.daum.net/han0114/17050437

콜레라(cholera)가 발생한 조선은 한반도가 아니었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436

천연두(天然痘, Smallpox)로 본 박제가(朴齊家)는 에드워드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435

한센병(Hansen, Leprosy)이 발병한 제주는 인도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433

 

세계적으로 유행한 흑사병 리스트이다.

Death toll

Region

Years

Name

Species

100,000,000

Europe, Asia

1338–1351

Black Death

黑死病

 

Spain

1778

Cadiz

黑死病

 

Ottoman

Empire, Egypt

1801

 

黑死病


 

Iran

1829–1835

 

黑死病

 

Egypt

1834–1836

 

黑死病


위 흑사병 리스트 자료는 메이저급만 올라 있는 관계로 런던 대흑사병(1665년–1666년), 베니스 대흑사병(1679년), 이탈리아 흑사병 (1629년-1631년)은 빠졌다.

1738년에 발생한 대흑사병은 튀니지의 상선에 의해 전파되어 아드리아 해와 우크라이나로 번져 나갔다. 이로 인해 루마니아의 티미쇼아라(Timișoara)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19세기(1829년–1835년)에 일어난 이란(Iran) 흑사병(黑死病)과 1834년–1836년 사이에 유행한 이집트(Egypt)의 흑사병(黑死病)이 유명하다.

 

 

                                                       [Timisoara 1656]

 

어쨌거나 우리가 깊이 분석해야 할 대흑사병과 우리 삼한역사가 자연스럽게 엉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세계 4대 흑사병을 추려 본다면

첫째 1. 펠로폰네소스역병(The Peloponnesian Plague: BC431-BC404)

둘째 2. 안토니우스 역병(The Antonine Plague: AD165-AD180)

셋째 3. 유스티니아누스 역병(The Plague of Justinian: AD541-AD542)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Plague of Justinian)는 541년에서 542년까지 비잔티움 제국, 사산 제국, 그리고 지중해 연안 전역에 걸쳐 발생한 페스트 범유행이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페스트 중 하나였으며, 2천 5백만 ~ 5천만 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넷째 4. 대흑사병(The Black Death:AD1347-1351)

이다.

 

근대사에 대흑사병이라고 알려져 있는 유럽인구 3분의1을 앗아간 네 번째로 있는 대흑사병은

1346년에 발생한 것인데 현재의 흑해연안 크림반도의 항구 도시인 카파(Kaffa) 즉 페오도시야(Feodosiya)를 처음 휩쓸었고 1347년 상선함대 하나가 시칠리아의 메시나(Messina)항에 당도했는데 이 배의 선원들은 이상한 전염병에 걸려 있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유럽에 흑사병이 전파된 첫 계기가 된 것이다.

1347년-1348년 사이 제노바(Genoa)와 베니스(Venice)에 흑사병이 퍼졌으며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된 흑사병은 유럽전역으로 번져 나갔다. 1348년 프랑스, 에스파냐, 포르투갈, 잉글랜드 지역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였고 1348년-1350년 사이 흑사병은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반도(Scandinavian Peninsula)에까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노르웨이에서 처음으로 흑사병이 발생한 것은 1349년으로 아스퀴(Askøy)항에 당도한 선박에서부터 전염된 것이었다. 이 흑사병은 베르겐(Bergen)에까지 번져나갔다. 1351년이 되자 흑사병은 러시아에서도 확산되었다. 결국 폴란드를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흑사병이 창궐하였으나 벨기에와 같은 몇몇 지역은 화를 면했을 뿐이라고 한다.

 

 

 

 

 

 

 

흑사병은 서아시아의 여러나라에서도 발생하였다.

이 지역 역시 상당한 인구감소와 이로 인한 사회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중동지역의 흑사병전파는 러시아 남부의 흑해연안에서 시작되었다.

1347년 가을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흑사병이 발생하였다.

이는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의 흑사병이 확산된 결과로 여겨진다. 이 후 흑해 연안의 여러 항구 도시를 중심으로 흑사병이 창궐하였다. 1348년이 되자 흑사병은 가자(Gaza),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으로 확산되었다. 1348년-1349년 동안 흑사병은 안티오키아(Antioch)까지 번져 나갔다. 당시 안티오키아는 염료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이 때문에 서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흑사병 확산 목록에 추가되었다.

 

메카(Meca)역시 1349년 흑사병이 퍼졌으며 같은 해에 모술(Mosul)에서도 발생하였다.

1351년 이집트를 방문하고 돌아온 예멘 국왕 일행은 흑사병에 걸려 있었으며 이로 인해 예맨(Yemen)에도 흑사병이 번졌다.

 

하지만 이것도 지명 이동문제가 있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더 연구를 해야 할 것들이다.

좀 난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메리카에 있었던 원시불교과 근세기에 지명 이동되면서 예수회의 대적 종교 회교로 둔갑된 면도 없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흑사병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서혜 임파선종, 폐렴증상, 패혈증이다.

서혜 임파선종이 가장 일반적이며, 감염된 사람의 증상은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임파선이 검게 변하고 비대해졌다고 하고 피부가 검게 썩어 들어갔다고 한다.

만일 치료를 하지 않으면 감염된 사람의 50%가 3일~7일 안에 사망한다고 하였다.

폐렴증세를 보이는 호흡기 감염은 기침에 의하여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된다.

최초 24시간 이내에 항생제 투여를 하지 않으면 감염된 사람은 2일-4일 사이에 100%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패혈증 감염은 박테리아가 임파선이나 호흡기를 통하여 혈액 속으로 침투하였을 때 발병하는데 형태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검게 변하며 괴저(壞疽)가 진행된다. 비록 이 형태가 드물기는 하지만 일단 감염되면 거의 치명적이라고 한다.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속도 면에서는 다른 형태에 비하여 제일 빠른 것이다. 증상이 나타난 바로 당일에 사망하는 예도 많다

 

흑사병에 대한 대략 개요가 이렇다

하지만 여기서 구태어 흑사병을 진단하려는 것이 아니다.

과연 고려와 조선시대기록에 나타나는 대질병 발생기록에서 흑사병으로 간주되고 인용할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흑사병(黑死病)이 아닌 대역(大疫)이나 역질(疫疾), 악질(惡疾), 괴질(怪疾) 등으로 쓰여 졌을 것이라고 판단 할 수 있다.

흑사병이 한반도 조선에서는 없었다고 기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식으로든지 흑사병, 주요전염병은 완전히 기록에서 빼버렸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제가 남기고 간 반도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 고려와 조선의 발병기록을 보면 엄청난 전염병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병자들을 보호하는 수단이 국가적으로 시행되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이미 흑사병이 발발되던 시점에 고려에서는 혜민국, 제위보, 동서대비원을 세워 질병에 대비한 것으로 파악되는 점이다.

이러한 기관들은 큰 전염병에 대한 구제책이고 방역책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판단은 각자가 할 수밖에 없다.

아래 세계 흑사병 발생년보를 기준으로 고려, 조선의 대질병기록을 비교 나열해놓았으니 이 글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은 본인의 감성여하에 문제라는 것을 부첨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고려, 조선에서 흑사병이 존재했었는가?

있었다면 분명 그곳은 한반도가 아닐 것이다.란 결론을 내릴 수 있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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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흑사병발생년보와 고려조선의 대질병발병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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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 Asia(1338–1351)

1325년 高麗충숙왕13년10월: 의지할 곳 없는 자, 병든 노인을 구료하다.

혜민국, 제위보, 동서대비원을 수리하여 질병 치료에 만전을 기하도록 지시하다.

1352년 高麗공민왕2년: 의지할 곳 없는 자, 병들어 버림받은 자를 관(官)에서 돌보아 주다.

1326-1351까지 기록이 빠져 있음

흑사병시기 유럽에서 발생한 1338–1351기록이 빠짐

 

혜민국(惠民局)은 고려 시대의 시약(施藥)을 맡은 의료 및 구제기관으로, 1112년(예종 7년)에 처음 설치되었다.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고 백성들에게 약을 무료로 나누어 주는 곳이었다. 충선왕 때 사의서(司醫署) 관할이 되었다가, 공양왕 3년(1391년) 혜민전약국(惠民典藥局)으로 개칭하였다. 혜민국에는 판관 4명을 두었는데, 본업(本業 : 의관)과 산직(散職 : 일정한 직무가 없는 벼슬아치)을 교대로 보내어 일을 담당케 하였다. 조선개국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제위보(濟危寶)는 빈민과 병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고려시대에 설립된 국가 기관이다. 제위포라고도 부른다. 보는 원래 일정한 기금을 모아 그것을 늘려 감으로써 사업을 운영하는 일종의 공공단체였다. 제위보는 963년(광종 14년)에 설치되어 잉여 곡식이나 돈을 비축했다가 대출해주어, 그 변리를 가난한 사람이나 의지할 데 없는 나그네를 구호하고 질병을 치료해 주는 데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1391년(공양왕 3년)에 폐지되었다.

대비원(大悲院)은 고려때 의료(醫療)를 주로 한 구제기관이다.

처음 설치연대는 알 수 없으며, 1049년(고려 문종 3)에 개경의 동·서에 두어서 동쪽의 것을 동대비원(東大悲院), 서쪽의 것을 서대비원(西大悲院)이라 하였고, 이들을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이라 합칭(合稱)했다고 한다. 환자의 치료를 주요 업무로 하고, 기한자(飢寒者 : 굶주리고 헐벗어 배고프고 추위에 떠는 사람)나 그밖에 무의무탁자(無依無托者 : 의지할 곳 없는 몹시 궁핍하고 외로운 사람)를 수용하였다.

조선 태종 14년(1414년) 활인원(活人院)으로 개칭되어 이어졌다.

 

 

이탈리아 흑사병(1629-1631)

1629년부터 1637년까지의 병 발생기록이 없다.

런던 대흑사병(1665–1666),

1665년 현종 6년 2월: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에 전염병이 치열하다.

1665년 현종 6년 3월: 전라도, 충청도에 전염병이 번성하다.

1665년 현종 6년 6월: 충청도에 장티푸스가 치열하다.

1665년 현종 6년 7월: 강화도에 전염성 열병이 치열하여 사망자가 40여 명이 되다.

1665년 현종 6년 8월: 평안도에 장티푸스가 치열하여 사망자가 매우 많다.

1665년 현종 6년 9월: 평안도 가산군, 귀성부, 태천, 박천, 안주, 의주 등 각 읍에서 장티푸스가 크게 치열하여 사망이 서로 잇다.

1666년 현종 7년 1월: 전라도 돌림병이 사방에 치열하다.

1666년 현종 7년 3월: 충청도내에 전염병이 치열히 발생하여 사망자가 50여명이다.

1666년 현종 7년 12월: 전라도에 전염병이 치열하고, 소의 질병이 또한 심해 사람과 소의 사망이 많다.

베니스 대흑사병(1679),

1677년 숙종 3년 2월: 경사도 울산에서 졸지에 심하게 아프지도 않고 취한 듯한 괴질이 돌아 3, 4일이 못되어 죽다. 일순간에 죽은자 34명이나 되다.

1680년 숙종 6년 2월: 강원도 울진에 괴질이 돌아 연말부터 사망이 77명에 이르다.

1680년 숙종 6년 9월: 도하에 두진(마마)이 크게 치열하다.

Spain (1778)

1778년부터 1784년까지 병 발생기록이 없다.

Ottoman Empire, Egypt(1801)

1800년부터 1807년까지 병 발생기록이 없다.

Iran (1829–1835)

1833년 순조 33년 5월: 한성부 내에 돌림병이 성행하므로 각 부의 관리로 하여금 무의탁자 중 병든 자는 성 밖으로 내보내 활인서와 혜민서로 하여금 구료케 하다.

Egypt (1834–1836)

1834년 순조 34년 전염병으로 도로에 쓰러져 죽은 시체 1,005구가 어지럽게 쌓였으므로 수습하여 매장하다.

1834년 순조 34년 5월: 도하 전염병이 아직까지 잠들지 않으므로 별여제를 별도의 날을 잡지 않고 설행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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