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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金)으로 본 시팡구(Cipangu)와 여송국은 콜롬비아인가?
글쓴이:한부울
금가서랍(金加西蠟, Castilia Del oro) 황국왕국은 지금 남아메리카 대륙의 북서쪽 끝에 있는 나라 콜롬비아(Colombia)를 두고 이야기 한 것이다.
여송연(呂宋煙:Cigar)으로 본 여송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시가와 금, 은, 보석들은 분명 탐욕스러운 침략자들에게는 꿀 같은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탈취하기 위하여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인간들의 악질적인 속성이 나타나는 것인데 살인, 강간, 방화, 탈취, 갈취, 납치이다.
그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서양근대사가 생성 된 것에는 이러한 수단이 바탕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emerald]
근대사의 근원을 찾는다면 어딜 시발점으로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평민이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에 의한 신천지 신대륙을 발견이라고 말할 것이지만 그들이 신대륙을 발견했을 당시 발견당한 산살바르도(Sansalvador)원주민 입장에서는 아마도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mé de Las Casas:1474-1566)가 그의 기록(Brief Report on the Destruction of the Indians,1542)에서 에스파냐인들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을 보면 말을 탄 스페인인들은 길고 짧은 창을 들고 살인과 기괴한 잔혹행위를 저지르기 시작했으며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에 뛰어든 그들은 어린이도 노인도, 심지어 애를 밴 여자와 그 뱃속의 태아도 남겨두지 않았다 하였고 마치 우리 안에 가둔 양떼를 잡듯이 배를 가르고 토막을 내는가 하면 한 칼에 얼마나 통쾌하게 배를 가르느냐, 얼마나 멋있게 목을 자르느냐, 얼마나 똑바르게 창을 꽂느냐를 놓고 서로 내기를 걸기도 했다는 사실은 일제의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1937)은 이를 재연한 듯한 내용이다.
콜럼버스(C, Columbus)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의 엉뚱한 황금의 땅 시팡구(cipangu) 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서인도제도(西印度諸島:West Indies)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 동기라 하였다는 것인데 만약 마르코 폴로의 기록이 전부 소설같은 엉터리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결국 서양사가 말하고 있는 시발점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서양사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사가 역사라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이탈리아인 콜롬버스에 의해 막연히 서쪽으로 항해하여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그들 서양역사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주장한다는 사실이 어쩌면 비애같은 것이 느껴진다.
바로 금을 찾아 나서 서양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질은 그들에게 혼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이자 항해가라고 한 콜럼버스는 여러 가지 미사도구를 이용하여 신세계를 발견한 사실만 가지고 극찬하고 있지만 인간성이라든지 사람 됨됨이가 정상적인 사회에서 존경 받을 수 있었던 인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점은 역사문화의 한계가 그들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추측할 수가 있다.
그 역시 당시 유행처럼 번진 일확천금 부자, 거부의 병이 걸려 허황된 꿈을 꾸며 약한 자들을 이용하면서 이득이나 이익을 추구하고 도적질을 밥먹듯이 하던 세력들이 해적질을 기꺼이 할 수 있었던 부류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아마 당시 서세들은 전부 이 모양으로 살았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당시 그 뿐만 아니라 그러한 풍토가 그들 세계에서는 퍽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일상적인 생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콜럼버스(Cristoforo Colombo,1451-1506)가 1492년 1차 항해하기 전에 그렸다고 판단되는 그가 그린 지도를 보면 항해자가 사용한 지도라고 보기가 조악하기가 이를 때 없는 엉터리 같은 지리학 상식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마르코 폴로가 주장한 시팡구(Cipangu)가 그려져 있는 곳은 분명 카리브해(Caribbean Sea) 중에 있으며 아메리카대륙과 아시아대륙이 붙었다고 믿었다는 것을 볼 때 해양지리가 변변히 못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지식으로 어떻게 해양시대, 또는 항해시대를 열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예 태평양 전체를 육지 대륙으로 보았다는 콜럼버스의 착각지도는 아래와 같다.
[클릭하면 자세히 볼 수 있음]
[콜롬버스의 지리학 개념도]
회귀선은 지금의 적도 위치와 분명한데 한반도와 열도란 개념이 없이 대륙전체를 하나로 보았던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실제 위 지도가 당시 서양인들의 작품이라고 볼 때 현재 동아시아 역사는 엉터리가 틀림이 없다.
이런 지리학 수준은 그 당시 보편적인 서양인들의 깊은 해양 상식이었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마르코 폴로(1254-1324)가 지금의 아시아 열도를 황금의 땅 운운하며 시팡구(Cipangu)라 했다는 것은 허소리에 불과한 것이며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 수가 있다.
시팡구(Cipangu)는 어쩌면 근세기에 서양인들에 의해 그들의 역사를 세우기 위해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서 만들어진 허설(虛說)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고베시립박물관에 소장되었다고 하는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 1527-1598)의 1570년 지도를 보면 열도와 흡사하지도 않는 섬을 가지고 지금의 열도라 하면서 시팡구(Cipangu)라고 떠드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애처롭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1527-1598)의 일본이 아니라 시팡구
(Cipangu, 그림중앙)[1570년 고베시립박물관 소장]
위 지도는 한반도도 없고 지금 열도도 없는 그림일 뿐이다.
당시 해적질을 하던 서양인들의 지리학 상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실제로 너절하고 조잡하기가 그지 없는 지도임을 알 수 있다.
1570년대 지도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16세기까지 태평양을 그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며 16세기 열도에 서양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방문했다는 사실 또한 모두 허구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것이다.
생각해보라.
지도가 이 따위라면 그들은 절대로 태평양 뿐만아니라 동남아시아 각종 섬들을 목표로 항해할 수 조차 없었을 것이란 판단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1570년 그렸다는 한반도가 없는 지도]
시대가 앞 섰다고 하지만 실제로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고 하는 자체가 신기할 정도이다.
지도같지 않는 너절하고 조잡한 지도를 그린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1570)는 모순 덩어리 근대사를 잉태시킨 책임을 확실하게 져야 할 인물이다.
이 시대에 지리학 수준이 이런 형편인데 난데없이 한반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도 참 어설픈 것이 아닐 수 없다.
시팡구(Cipangu)를 일본인들이 전설처럼 여기는 것은 그들의 근원과 정체성에서 열등의식에 있는 것을 만회라고 할 수 있는 듯이 여기기 때문이고 그것은 그들의 허약한 역사성에 기인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지금 가지고 역사 자체가 정당할 수도 정확할 수도 없는 도적질같은 역사라는 것을 이 지도가 다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콜럼버스 역시도 당시 이런 조악하고 조잡한 지리학 상식을 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어떻게 세계대양을 마음대로 누볐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가 발견한 것은 시팡구(Cipangu)도 황금왕국도 발견하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는 허망한 결과만을 낳았지만 그를 신대륙 발견한 영웅으로 떠 받드는 미국인들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미국 역시 역사 일천한 것은 지금의 열도 일본이 못지 않다.
상부상조하기에 붙어 다닌다.
그렇다면 당시 이런 지리학 상식이 콜럼버스만 그러했겠는가?
서양 모든 사람들의 상식이 그러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리학 개념이나 상식에서는 삼한인들을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비주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콜럼버스보다 200년이나 앞선 시대에 살았던 마르코 폴로(1254-1324)가 상식을 뛰어넘는 기행을 했다는 자체도 의심스러운 것이지만 지금의 열도를 시팡구(Cipangu)라 했다는 것은 어린애도 웃을 헛소리가 아닐 수 없다.
이탈리아인인 마테오리치(Matteo Ricci:利瑪竇 1552-1610)가 1602년에 그렸다는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도 역시 1920년 이후 음흉한 일제에 의해 수정되었을 것이라고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쓸모있게 그렸다는 지도임을 알 수 있고 당시 서양인들의 지리상식을 뛰어넘는 것으로 아마도 마테오리치는 삼한역사에 소속된 사람이거나 삼한역사를 공부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가 있다.
일찍이 삼한인들이 지도를 수없이 만들고 발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절대로 들어난 일이 없으니 알길이 없지만 삼한인은 이미 세계전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근세기에 서양인들에 의해 이렇게 저렇게 수정되어 마치 서양인들이 그린 것처럼 왜곡했을 가능성은 충분하게 있다.
그만큼 근대사는 오류투성이고 모순덩어리이기에 들어난 사실만으로 믿을 수 없는 혼란 그자체라는 것으로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
아래는 콜럼버스에 대해서 비판의 글이다.
두 번째 항해 동안 콜럼버스와 그의 부하들은 역사가들에 의해 '홀로코스트(집단학살)'이라는 정책을 편다. 타이노(Taino Indian) 원주민들은 조직적으로 노예화되고 살해되었다. 수백이 유럽으로 팔려갔고 다수는 과정에서 죽어갔다. 나머지 인디언들은 금을 가져오게 하여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수족을 잘랐다. 실제로 금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많은 원주민들은 도망갔고, 스페인 인들은 이들을 사냥하여 죽였다. 원주민들은 저항하였으나 스페인의 무기가 훨씬 우월했고 유럽에서 옮아온 전염병이 그들을 파괴했다. 절망 속에서 원주민들은 자식을 동반으로 집단 자살하였다. 2년 만에 25만에 달하던 타이노 원주민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나머지는 노예화되고 사망률이 높은 대농장에서 일해야 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60년 만에 타이노 원주민은 수백명 만이 남았고, 100년이 더 흐른 뒤에는 손에 꼽을 인구만이 남았다. 이러한 잔혹한 정복자로서의 콜럼버스의 모습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위키]
결과적으로 따져 보면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역사찬탈, 살인, 살육, 도적질, 인신매매를 일삼던 범죄자 일 뿐인 것이다.
이것이 당시 콜럼버스의 사람이 아닌 짐승의 모습인 것이다.
제1회 항해
출범은 1492년 8월 3일이었으며, 같은 해
10월 12일에 현재의 바하마 제도(Bahamas)에서 과나하니 섬(추정)에 도달했고, 이 섬을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구세주의 섬)이라 칭하였다. 이어서 그는 쿠바·히스파니올라(아이티, Haiti)에 도달하여, 이곳을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칭하였다.
1493년 3월에 귀국하여 왕 부부로부터 ‘신세계’의 부왕으로 임명되었다.
제1회 항해후 아메리카에서 쿠바에서 그가 가져온 금제품이 전 유럽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일화도 생겨났다.
제2회 항해
17척에다 1,500명의 대선단에 의한 1493년 출항은 그의 선전에 따라 금을 캐러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식민지 개척자는 인디오의 저항으로 전멸해 버렸으나,
콜럼버스는 여기다 식민지 행정관으로서 이사벨라 시를 건설하는 한편, 토지를 에스파냐인 경영자에게 분할해 주고 인디언에게는 공납(貢納)과 부역(경작과 금 채굴)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금의 산출량이 보잘것없자, 항해자들은 인디언을 학대 ·살육하였으며 노예화하였다.
이 항해에서 에스파냐로 보낸 산물은 주로 노예였으며, 이 때문에 1496년에 본국으로 돌아오자 문책 당하였다.
제3회 항해
1498년∼1500년까지 항해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오리노코 강 하구(河口)를 발견하였다.
콜럼버스는 제3회 항해에서 칼데아 신아람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한 선원 두 명을 데리고 갔다. 목적지인 남아시아에 다다르게 될 경우, 에덴동산의 거주자들이 이 두 언어를 쓸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리노코 강 하구를 에덴동산의 관문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신의 명으로 불꽃의 검을 들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케루빔이 자신의 배들을 공격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았다.
히스파니올라에서 내부 반란으로 그의 행정적 무능이 문제화하여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제4회 항해
1502년∼1504년의 허가는 바스쿠 다 가마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때문인 것으로 보이나, 그 사정은 명백하지 않다. 이 항해에서 그는 온두라스와 파나마 지협(地峽)을 발견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사를 변질되게 한 근원은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황금에 대한 탐욕이다.
지팡구(Cipangu)와 황금왕국은 실제로 어디었을까 궁금한 것이 사실이다.
근대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지는 대륙기록을 보면 여송(呂宋)이란 나라는 분명 남송(南宋:1127-1279)의 잔당이 세웠다고 표현하고 있다.
지금의 필리핀 루손(Luzon)섬이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본 블로그에서 “여송연(呂宋煙, Cigar)으로 본 이상하고 한심한 근대사”란 제목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루손섬에 나라를 세웠다 하는 여송(呂宋)은 정작 필리핀의 루손(Luzon)섬이 아니라 스페인이라는 확신이 있고 스페인이 시가를 유럽전역에 퍼뜨렸으니 여송연(呂宋煙, Cigar)는 스페인에서 난 담배가 맞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페인이 골드, 금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따져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는 조선 후기의 학자 이규경(李圭景:1788-1863)이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인데 중국, 기타 외방의 문물·제도를 망라하여 연혁과 내용을 기록한 책으로서 저자는 서문에서 사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본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서광계(徐光啓)·왕징(王徵)의 저술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다.
때문에 이규경이 단독생각이 아님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서광계(徐光啓:1562-1633)는 중국 명나라 후기의 정치가이자 학자이면서 상하이(上海)에서 출생하였는데 세례명은 바오로라 하였고 결국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로서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의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 선교로 그에게 세례를 받게 하고 로마 가톨릭교회로 개종하면서 마테오 리치로 부터 천문학과 수학을 배웠다 하고 있는 인물인데 이것은 중국과 이태리로 보는 오유를 우리는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당시 이태리는 나라가 있을 수도 없고 서양역사가 존재하지도 않는 시대에 구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발상인 것이다.
그리고 왕징(王徵1571-1644)역시 17세기 중국의 기계와 역학에 대한 관념의 책인 기기도설(奇器圖說)을 펴낸 가톨릭신자라 하였지만 왕(王)자는 술탄의 성씨라 한 적도 있고 거란족의 왕씨와 김씨가 같다는 주장을 본 블로그가 최근에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개종을 실제 했다면 왕징은 이슬람에서 카톨릭으로 개종 하였을 것이란 판단을 하게 한다.
이렇게 보면 전부 조선 후기의 학자 이규경과 마찬가지로 카톨릭 즉 예수회 신자인 것이 동일하기 때문에 이들 전부가 조선내 또는 삼한 내에 존재하던 서양세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이사람들을 같은 고향이나 같은 지역 또는 같은 근거리에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이제부터 오주연문장전산고를 풀어 보기로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天地篇 / 地理類 金銀銅鐵珠玉
(1)山童産金辨證說
扫泥于衢。则无处不可。以衢中万人行处。有肥腻焉。日月蒸入。之澄之。重者在下。以铅硝煎之。白金出矣。又言太阳所照之地皆生金。暖故也。通衢人足所磨更暖。故生金较多。黄金本日精。白金本月华。故近赤道之地。多金銀也【《地毬圖》。呂宋國多黃金。《職方外紀》。北亞墨利加州內。金加西蠟地。金銀至賤。蓋赤道所臨之下故也。我東與日本在於東表日出之地。故亦産金最饒也。】
天地篇 / 地理類 金銀銅鐵珠玉
(2)種金銀珠玉辨證說
世間傳種者。禽獸昆蟲草木而已。至於金銀珠玉。不得種成之物也。長夏經霖愁惱中。繙閱諸書。有呂宋金豆、薛瓊銀實、[宋]陳襄種珠、雍伯栽玉。乃說謊。然旣有古牒所傳。則仍爲之辨證。而以金銀珠玉貨殖。生生不已。則斯豈非播金蒔銀種珠栽玉耶。按《淸三通》。呂宋國有機易山。産金銀。傳聞樹生金豆云。此可謂金豆樹。果不謊說。則金豆可種。成樹結豆。豈其然乎。
天地篇 / 地理類 (3)人種
白人辨證說
人形旣有崑崙、烏鬼。崑崙國人黑如漆。故名崑崙奴。烏鬼。一名墨坊。而其黑似墨。走水上若平地。阿蘭陀船有之。純廟庚申。有洋船泊耽羅。卸五人而去。其人卽呂宋國炭島人。色黑如漆。入送中國。還出處耽羅。此亦黑人也。則必有白人。然後可作對偶。故西洋英吉利國人。間有一身白如傅粉者。特鬚眉鬢髮紺黑耳。
萬物篇 / 草木類 (4)穀種(곡식)
蕃藷辨證說
《蕃薯頌》。以證薯卽藷也。匪峨說曰。度閩海而南。有呂宋國。呂宋國度海而西而西洋。多産金銀。行銀如中國行錢。西洋諸國金銀。皆博載此以通商。故閩人多賈呂宋焉。其國有朱薯。
위 네 문장을 하나 하나씩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문장 천지편(天地篇 / 地理類 金銀銅鐵珠玉 山童産金辨證說)에는
故生金较多。黄金本日精。白金本月华。故近赤道之地。多金銀也
금이 비교적 많이 나는데 황금은 태양처럼 깨끗하고 백금은 달처럼 빛난다. 그곳은 적도 가까운 곳으로서 금과 은이 많이 나는 땅이다.
《地毬圖》呂宋國多黃金 여송국은 황금이 많다.
《職方外紀》北亞墨利加州內。金加西蠟地。金銀至賤。
북아메리카주내 금가서랍(金加西蠟, Castilia Del oro)즉 황국왕국인데 금은이 지천으로 깔렸다
했다.
또 두 번째 문장 天地篇 / 地理類 金銀銅鐵珠玉 種金銀珠玉辨證說 에 보면
有呂宋金豆
여송금두(吕宋金豆)가 있다.
而以金銀珠玉貨殖。生生不已。則斯豈非播金蒔銀種珠栽玉耶。
금은주옥화폐가 만들어지고 늘어나면서 그치지 않는다. 어찌 금을 퍼뜨리고 은을 모종을 하며 구슬을 종자로하여 옥을 재배한다고 하지 않은 손가?
《淸三通》。呂宋國有機易山。産金銀。傳聞樹生金豆云。此可謂金豆樹。果不謊說。則金豆可種。成樹結豆。豈其然乎。
여송극에는 기이산(機易山)이 있는 금은이 산출된다.
전하는 풍문에 의하면 금두(金豆)란 것이 산출되는 나무라 하였다.
이것을 금두수(金豆樹)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과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금두(金豆)와 같은 종이다.
이 나무가 성장하면 콩(豆)이 맺는데 그것을 어찌 옳다 하지 않겠는가?
세 번째 문장 天地篇 / 地理類 人種 白人辨證說 에 보면
人形旣有崑崙、烏鬼。崑崙國人黑如漆。故名崑崙奴。烏鬼。一名墨坊。而其黑似墨。走水上若平地。阿蘭陀船有之。純廟庚申。有洋船泊耽羅。卸五人而去。其人卽呂宋國炭島人。色黑如漆。入送中國。還出處耽羅。此亦黑人也。則必有白人。然後可作對偶。故西洋英吉利國人。間有一身白如傅粉者。特鬚眉鬢髮紺黑耳。
사람의 형태는 대개 곤륜(崑崙)과 조괴(烏鬼)가 있다.
곤륜국인(崑崙國人)은 옻칠한 것 같이 검다하여 옛날의 이름이 곤륜노라 했다.
조괴(烏鬼)는 일명 묵방(墨坊)인데 묵과 같이 검다 하였다.
물위에 오고가는 것이 평지에서 걷는 것 같다.
아란타(阿蘭陀:네덜란드) 배가 순묘(純廟)경신년(庚申)에 탐라(耽羅)에 들어와 정박하여 5인이 내려 거하였는데 그들은 여송국(呂宋國) 탄도인(炭島人)이다.
얼굴색이 옻을 칠한 것 같이 검었는데 중국에서 들어온 탐라(耽羅)에서 도로 다시 중국으로 보냈다(入送).
이것은 흑인이라 한다.
백인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후에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서양 영길이국 사람들 간에는 몸에 분을 바른 것 같은 백인이 있을 것이다.
특히 수염과 눈섭 그리고 귀밑 터럭은 감청색이고 귀는 검다.
네 번째 문장 萬物篇 / 草木類 穀種 蕃藷辨證說 에 보면
《蕃薯頌》。以證薯卽藷也。匪峨說曰。度閩海而南。有呂宋國。呂宋國度海而西而西洋。多産金銀。行銀如中國行錢。西洋諸國金銀。皆博載此以通商。故閩人多賈呂宋焉。其國有朱薯。
[1722년 스페인 은화]
저(薯)가 저(藷, 洋山芋)인가를 밝혀보자.
비아(匪峨)말에 의하면 민해(閩海)를 넘어 남쪽에 여송국(呂宋國)이 있다.
여송국은 바다를 넘어 서쪽 서양이다.
금과 은이 많이 나오고 은은 마치 중국 은화와 같다.
서양제국의 금은은 모두 통상으로 얻는다.
그러므로 민(閩)의 사람들은 여송과 많은 거래를 한다.
그 나라는 주저(朱薯)가 있는다.
붉은 감자 이것은 바로 스위트 포테토(sweet potato)라고 하는 고구마(학명:Dioscorea esculenta)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첫 번째 문장에서는 금이 비교적 많이 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적도 가까운 곳으로서 금과 은이 많이 나는 땅이라 하였고 그 곳이 바로 여송국이며 황금이 많은 나라라고 하였다. 또 남아메리카주내 금가서랍(金加西蠟, Castilia Del oro)즉 황금왕국인데 금은이 지천으로 깔렸다 하였다.
이곳이 과연 어떨까?
여송국이 금가서랍인가?
아니면 황금왕국이라고 하는 시팡구(Cipangu)가 금가서랍인가?
금가서랍(金加西蠟, Castilia Del oro)황국 왕국은 지금 콜롬비아를 두고 이야기 한 것이다.
Castilla del Oro in XVI century map.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두 번째 문장에서 보면
여송금두(吕宋金豆)라는 것이 있는데 그곳에서 금은주옥화폐가 만들어지고 늘어나면서 그치지 않는다 하였고 어찌 금을 퍼뜨리고 은을 모종을 하며 구슬을 종자로 하여 옥을 재배한다고 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여송국에 있는 기이산(機易山)에서 금은이 산출된다 하였으며 전하는 풍문에 의하면 금두(金豆)란 것이 산출되는 나무가 금두수(金豆樹)라 말해도 좋을 것이라 했다. 과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금두(金豆)와 같은 종이라 하면서 마지막으로 이 나무가 성장하면 콩(豆)이 맺는데 그것을 어찌 옳다 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그런데 명사(明史)에 보면 機易山在海外,必無遍地金銀,任人往取 라하여 여송국의 기이산(機易山)이 해외(海外)에 있는데 금과 은이 곳곳에 널려있어도 음흉한 사람들이 가서도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였다.
여기서 여송국의 기이산(機易山)이 해외(海外)에 있다 하였다.
그런데 근대사가 여송이 필리핀 루손 섬이라 했으니 이것이 해외(海外)인가 물어 볼 일이다.
바다 밖을 뜻하는 것인가?
바다 밖을 뜻한다면 필리핀 루손섬인 듯 하다.
하지만 여송국의 범주 아내 있는 영토가 해외에 있다는 것은 혹 아닐까?
때문에 해외(海外)는 나라 밖 즉 바다 밖 멀리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황금의 나라 시팡구(Cipangu)전설은 마르코 폴로(1254-1324)의해 파생되었다.
당시 마르코 폴로가 여행기문에 대한 이야기책을 만든다고 생각했다면 그래서 대필한 것이라면 그 대필한 사람에 의하여 각색되고 첨가 되었을 것이란 추측을 쉽게 할 수 있다.
책이 잘 팔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상 사실적인 것 보다 좀 더 모험적이고 흥미위주로 이야기를 엮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시팡구(Cipangu)는 육지, 즉 만지의 동쪽해안으로부터 약 240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다.
이 섬은 상당히 크며 원주민들은 피부가 하얗고 문명화되어있다.
그곳 사람들은 애들을 잡아먹는다고 하였다.(문명화란 단어와 극과 극으로 대치된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외세로부터 자주적이다.
그들을 통치하는 왕이 있다.
그곳에는 금이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왕이 금을 외부로 유출하는 것을 통제하기 때문에 그곳을 방문하는 상인이나 선박이 드물다.
왕의 궁전은 상당히 호화스럽다.
누구나 막대한 양의 금을 소유하고, 왕이 사는 궁전은 순금으로 지붕이 이어져 있으며, 손가락 두 개 정도 폭의 두꺼운 순금이 마룻바닥에 빈틈없이 깔려있다.
이것은 공통적으로 묘사된 어구들이다.
마르코 폴로가 시팡구(Cipangu)를 신비스러운 땅처럼 기술하였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황금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있고 황금의 섬이라고 착각을 한 이유가 항해 중 지나가다가 봤는데 일반 서민의 집이 황금처럼 번쩍거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도 후세에서 첨가 또는 가미한 것이라고 풀이 할 수 있다.
마르코 폴로는 더 나아가 시팡구 섬에서는 누구나 막대한 양의 황금을 소유하고 있다 하는 바람에 많은 금을 찾는 사람들을 부추긴 것 같으며 그 후, 콜럼버스 역시 황금의 나라, 시팡구(Cipangu)를 찾아서 대서양을 통해 서쪽으로 떠났다는 가설이 생긴 것이다.
그것과 별도로 아랍인들이 신라를 금이 많고 풍요로운 나라로 묘사한 걸 가지고 신라가 시팡구(Cipangu)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Cipangu described on the 1492 Martin Behaim globe.
어쨌거나 근대사의 근원적인 혼란은 마르코폴로(Marco Polo,1254-1324)의 동방견문록(Travels of Marco Polo)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가 1271년부터 1295년까지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여행했으며 17년 동안 중국에 머물렀다는 이 이야기책은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각색되거나 조작되어 마치 지리학개념으로 변질 되었으며 현재는 지리학의 고전이 되고 말았다 한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책을 팔기위해 만든 흥미 위주의 환상적인 모험소설로서 보물을 찾아 일확천금의 횡재수를 노린 탐욕에 빠진 서양 중세인들의 마음에 새로운 전망과 기대감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러한 마르코 폴로를 빗대어 후세 비평가들은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천재라거나, 제 자랑만 늘어놓고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허풍쟁이, 또는 항구와 시장에 떠도는 소문을 그대로 믿는 떠돌이 등 신뢰성이 부족한 부분을 꼬집었다는 것에서 시사하는 면이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 책이 나온지 몇 개월도 지나기 전에 마르코폴로의 기행기는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 유명세를 탔다고 하였다.
마르코 폴로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Travels of Marco Polo)으로 인하여 후세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이 발단이 되어 혼란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근세기 근대사가 탄생하였는지도 알 수 없는 모순들이다.
여기서 금이 많이 나는 황금의 나라 시팡구와 금이 많이 나는 여송국은 공통적으로 적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금의 나라 시팡구(Cipangu)전설은 마르코 폴로(1254-1324)가 퍼뜨린 것이다.
그렇다면 후 일본과 교역을 처음 시도한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가 이 곳에서 나는 황금을 많이 가지거나 수많은 교역으로 엄청난 금 보유국이 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기록은 아직 보질 못했다.
다시 말해 황금왕국 시팡구(Cipangu)가 일본이 될 수도 없으며 또 지금 열도가 당시 포르투갈 또는 네덜란드와 교역을 빈번하게 하였던 당시 일본이 아니라는 말이다.
스페인이 일본과 처음 교역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안타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 자료를 보면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은 막대한 양의 귀금속을 획득하였다는 사실을 숫자에서 알 수 있다.
스페인으로 유입된 귀금속의 각 년대별 총량.
1500년대- 금 4,965 kg 은 0 kg
1510년대- 금 9,154 kg 은 0 kg
1520년대- 금 4,889 kg 은 148 kg
1530년대- 금 14,466 kg 은 86,193 kg
1540년대- 금 24,957 kg 은 177,573 kg
1550년대- 금 42,620 kg 은 303,121 kg
1560년대- 금 11,530 kg 은 942,858 kg
1570년대- 금 9,429 kg 은 1,118,592 kg
1580년대- 금 12,101 kg 은 2,103,027 kg
1590년대- 금 19,451 kg 은 2,707,626 kg
아메리카 식민지시대이전 1490년대 유럽 내의 귀금속 생산량이 연간평균 은47,000kg, 금 580kg이고 포르투갈에 의한 북아프리카의 금 유입이 1500년대 연간 평균 430kg, 10년간 총량 4,300kg 임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양이라는 걸 알 수 있다.[자료출처:팔랑기테스]
위 자료를 보면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가 아니라 오히려 스페인이 1500년부터 1590년대까지 어마한 량의 금과 은을 확보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시팡구(Cipangu)는 일본이 아니란 이야기다.
황금의 나라 시팡구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나오는 해외(海外)의 여송국은 바로 아래 자료처럼 콜롬비아란 이야기가 된다.
스페인이 이 콜롬비아를 먼저 손에 넣었다면 여송국의 해외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콜롬비아를 금, 은이 지천에 깔리 금가서랍(金加西蠟, Castilia Del oro)즉 황금왕국이라 했던 것이다.
바로 적도부근이고 지역도 맞아 들어간다.
콜롬비아는 천연자원이 풍부하며, 금·백금·에메랄드·사탕수수·쌀·담배 등이 산출된다. 주요 수출품은 석유, 석탄, 커피(수출의 56%를 차지)와 그외 농산물, 금이 있다. 비공식적으로 불법 마약도 주요 수출품인데, 세계 코카인의 80% 이상이 콜롬비아에서 생산되며, 이 나라 GDP의 1~3%에 해당한다고 한다. 콜롬비아는 세계적으로 에메랄드 생산으로 유명하며, 미국이 수입하는 화훼 작물의 70%가 콜롬비아산이다.[야후사전]
세 번째 문장에서
아란타(阿蘭陀:네덜란드)배가 순묘(純廟) 경신년(庚申)에 탐라(耽羅)에 들어와 정박하여 5인이 내려 거하였는데 그들은 여송국(呂宋國) 탄도인(炭島人)이다 하면서 얼굴색이 옻을 칠한 것 같이 검었는데 이것은 흑인이라 했다.
그런데 제목에서 보듯이 백인이라는 제목아래 영길이국은 백인인데 나타나지 않았다고 의심스러워하는 대목이다.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여송국의 여송인은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여송국이라고 하는 스페인은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라는 설명인데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콜롬비아를 스페인 여송국이라고 했으면 가능하다.
네 번째 문장에서
비아(匪峨) 말에 의하면 민해(閩海)를 넘어 남쪽에 여송국(呂宋國)이 있다 라고 하였으며
여송국은 바다를 넘어 서쪽 서양이라고 하였다.
민(閩)은 넓은 의미에 복건성(福建省)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한(漢)대 허신(許愼)이 지은 자전《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민, 동남월(越), 뱀의 종류” 라고 적혀있다. “민남인은 뱀을 숭상하는 민족이라 정의하고 있다.
[마야문명-Maya civilization]
뱀신 숭배는 고대 멕시코에 살던 부족들 사이에서도 성행했다.
마야족(Maya馬雅, BC1500-AD16C)의 최고 신 이참나(Itzamna)는 종종 뱀으로 상징되었다.
“깃털 달린 뱀”인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은 톨텍족(Toltec10~12세기에 현재의 멕시코 중부를 지배했던 부족)이 숭배했던 학문과 문화와 철학의 신이었다.
아스텍족(Azteca 1248-1521)도 그 뱀을 학문의 신으로 여겼으며 심지어 인간의 창조주로 숭상하기까지 했다.
그 신의 많은 역할과 능력에 대해「멕시코 고고학」(Arqueología Mexicana)지에서는 이렇게 기술한다. “깃털 달린 뱀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데, 다른 어떤 신들보다도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수세기에 걸쳐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중미·카라비언지역)의 거주민들은 깃털 달린 뱀을 숭배했으며, 오늘날에도 멕시코의 코라족(Kora)과 우이촐족(Huicholes) 에게서 그러한 뱀 신 신앙을 찾아볼 수 있다.
특정한 축제 날이 되면 깃털로 장식한 참가자들이 뱀 흉내를 내면서 춤을 춘다.
또한 키체족(Quiche)은 살아 있는 뱀을 가지고 춤을 추는 다산 의식을 거행한다.
과테말라에 사는 마야족의 일파인 초르티족(Chorti)은 가톨릭 성인들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깃털 달린 뱀을 숭상한다고 하였다.[여호와증인자료]
민해(閩海)를 넘어 남쪽에 여송국(呂宋國)이 있다라고 하였다는 사실을 주목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여송국은 바다를 넘어 서쪽 서양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여송국은 스페인인 서쪽 서양이 맞다.
그렇지만 민해(閩海)를 어딜 말한 것일까?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지나 대륙 복건성을 민(閩)이라고 한다는 사실은 다 잘 아는 것이다.
그렇지만 스페인이 있는 곳을 기준으로 한다면 민해(閩海)는 지중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스페인 즉 여송국을 콜롬비아로 본다면 민해는 카리브해(Caribbean Sea)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지금의 복건성(福建省) 복건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북아메리카 남동부가 복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북아메리카가 대륙 조선의 땅이면 가능한 이야기다.
중국이라고 하는 고려라고 하는 조선 땅 아래 여송국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 여송국을 콜롬비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곳을 근세기에 스페인이 정복 했다면 더욱 그렇다.
이런 추리를 하는 나자신도 무척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 여송국은 금과 은이 많이 나오고 은은 마치 중국 은화와 같다 했으며 서양제국의 금은은 모두 통상으로 얻는다 하면서 민(閩)의 사람들은 여송과 많은 거래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여송국은 주저(朱薯)가 있는데 붉은감자로서 이것은 바로 스위트 포테토(sweet potato)라고 하는 고구마(학명:Dioscorea esculenta)라고 하였다.
본 블로그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감히 단정은 내릴 수 없다 하더라도 고구마의 원산지라 일컫는 중앙아메리카 멕시코가 고려(corea)와 아무래도 무슨 중요한 연관관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밝혀진 것들을 조각조각 퍼즐처럼 맞추어 보면 결코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천축모란이란 꽃이 있다.
이것을 다알리아라고 한다.
이것이 원산지가 바로 중앙아메리카이다.
그곳을 바로 천축이라 했다 한다.
천축은 인도이다.
그런데 바로 중앙아메리카가 인도라는 말이 된다.
이곳에 신이 내린 지배국가 고려(corea)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네이버 자료에는 고구마 원산지가 멕시코라고 하면서 콜럼버스가 스페인에 전하여 아시아로 전파하였다고 하였지만 아래 학명유래 자료 M.M.P.N.D(Multilingual Multiscript Plant Name Database)에 스페인은 고구마를 분명 중국 단 감자(Batata de China)라고 하였다.
스페인 콜럼버스가 멕시코에서 가지고 온 고구마를 중국 단 감자(Batata de China)라고 한 이유가 바로 고려임을 숨기려 한 것이고 중국(china)을 붙여 고려와 분리하고자 했던 것이 분명한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china 가 corea 란 사실을 은폐하는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위키에 “Dios” 단어를 찾아보면
「Dios, Spanish for God」
「Dio is the Italian word for God」이렇게 나온다.
고구마 학명은 고려(corea) 단어 앞에 신(Dios)이란 라틴어를 붙여 명명한 것이다.
즉 1750년경 린네가 조사한 결과 고려(corea)가 고구마의 원산지였고 서양인이 보았을 때 신이 내린 고려(조선) 단 감자(sweet potato)이며 감자 마(yam) 이었던 것이다.
마(yam)원산지가 어디든 그곳은 고려의 땅이란 말이다.
바로 신의 땅 고려(Dios-corea)는 인간들이 가장 중요하고 신성하게 여기는 주식, 먹는 식량의 총체적 이름 또는 상징성으로 자리 했음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랍인들이 신라를 금이 많고 풍요로운 나라로 묘사한 걸 가지고 신라가 시팡구(Cipangu)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고구마가 나고 금이 나고 은이 나며 에메랄드가 산출되고 다알리아란 천축모란이 피었던 곳 그곳은 삼한의 땅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묻는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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