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거서(秬黍), 흑서(黑黍:blackseed panic)

한부울 2013. 2. 2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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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서(秬黍), 흑서(黑黍:blackseed panic)

 

글쓴이:한부울

 

사실 생물학적으로 역사 근원지를 찾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꼭꼭 숨겨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조작세력들이 이러 저리 마구 흩어 놓았기 때문에 찾아내기가 그렇게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과거 일제가 어용학자(御用學者)들을 동원하여 조선(朝鮮)영역에 자생한 생물들을 죄다 한반도로 이식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철저한 계산아래 치밀한 작업을 했음을 알게 한다.

그것은 근원을 속이거나 감출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한 것으로서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위적인 조작을 감행하였다고 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 틀림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대조선이 해체되고 난 후 어지러웠던 20세기 초(初)라고 본다면 거의 100년이 지난 이야기다.

하지만 천지신명께서 도우신 결과로 21세기 인터넷이란 정보체계가 태동하였고 그 당시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러한 상황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고 할 때 현대의 정보환경 변화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대단한 선물이며 삼한역사찾기에 일등 공신으로서 눈부신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히 혁명적인 변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학명을 명명하면서 생물학체계에서 진실을 철저하게 속이고 숨기고 조작하였지만 이제는 그러한 것들이 하나 둘, 말도 안되는 모순이 되어 죄다 들통 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불과 100년 사이에 꿈에도 생각 할 수 없었던 상황이 우리에게 다가 온 것이다.

과거 어지럽던 시대, 역사판짜기 하던 시대, 신생제국들에게 전유물이 되다시피한 고급정보환경이 이제는 일반화되면서 누구라도 신분에 관계 없이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그 정보를 임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뿐만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축복과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말 그대로 인터넷으로 세계 정보를 마음대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세계 각 지역 어디든지 소속된 자생 생물들을 속속들이 찾아 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비교분석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어찌 상상이라도 하였겠는가?

그들이 역사판짜기 하면서 취한 인위적인 조작방법이 당시만 하더라도 분명 최상이었다고 다시 없는 방법이라고 판단하였겠지만 그리고 그것이 영원하리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보지만 100년만에 무덤에서도 놀라 자빠질 일이 현 시대에 벌어진 것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사실은 어줍잖은 일제어용학자뿐만 아니라 당시 근대사를 판짜기를 주도한 서세어용학자들도 입장은 마찬가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의 당시 작은 두뇌로 이를 어찌 알았겠는가, 이런 환경이 도래할 것이란 사실을...

이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우리에게 큰 다행스러움이고 모진 고통 속에 햇쌀같이 광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역사를 한순간에 통째로 잃어버린 우리민족을 천지신명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내려준 복이고 행운이라 할 수 있어 너무나도 감읍하여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되고 머릴 크게 조아리지며 절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세종 5년(1423)7월24일

검은 기장의 종자를 전국에 보급케 하다

○黃海道監司啓: “瓮津縣船軍李哲之田有黍一稃二米, 問其所由來, 答云: ‘曾於辛丑年菜田中, 生一箇黍養之, 發穗而實, 一稃二米。 異之取種, 連年種之, 至今年種於小田。’ 今將二十穗上進。” 命戶曹, 令其官將倉米換送, 種之籍田。 由是秬黍之種, 流布國中

황해도 감사가 아뢰기를,

“옹진현(甕津縣)의 선군(船軍) 이철지(李哲之)의 밭에 한 껍질에 두 알이 든 기장이 있으므로, 그 유래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일찍이 신축년에 채전(菜田) 가운데 한 개의 기장이 났으므로, 이를 길러 이삭을 피게 하였더니, 실제로 한 껍질에 두 알이 들었습니다. 이를 이상히 여겨 종자를 받아 해마다 심었습니다. 금년에 와서 작은 밭에 심어서 지금 20이삭을 위에 바칩니다.’고 하였습니다.”고 하였다. 호조에 명하여 그 고을 관원으로 하여금 창고 쌀로서 바꾸어 보내게 하여, 이를 적전(籍田)에 심었다. 이로 말미암아 검은 기장[秬黍]의 종자가 나라 안에 널리 퍼졌다.

 

영조14년(무오, 1738)

○ 10월. 소대하여 구준(丘濬)의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강하였다. 하교하기를,

“예악(禮樂)은 한 몸에 근본하는 것으로, 종고(鐘鼓)와 옥백(玉帛)은 바로 그 의절(儀節)이다. 세종 조에 해주(海州)에서 거서(秬黍)가 생산되고 남양(南陽)에서 경석(磬石)이 나와 마침내 명신(名臣)과 더불어 찬연하게 제작하였다.

 

청장관전서제57권

앙엽기 4(盎葉記四)

고려(高麗)의 경쇠[磬]

세종조(世宗朝)에서는 남양(南陽)에서 나는 석경(石磬)과 해주(海州)에서 생산되는 거서(秬黍)로 악률(樂律)을 정하였는데, 세상에서는 성세(盛世)의 상서로운 화응이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고려경(高麗磬)은 이미 송나라 조정(정부)에서도 유명했었다.

 

秬 朱子曰秬黒黍也 爾雅疏曰黒黍一名秬黍卽黒黍之大名

 

위 기록들은 바로 검은 기장 바로 흑서(黑黍)가 난 곳 해주(海州)를 말하고 있다. 

 

거(秬)는 주자(朱子)가 말하길 거서 또는 흑서라고 하였다. 또한 거서(秬黍)는 검은기장(黑黍)을 말하며 한나라 유희(劉熙)가 쓴 이아(爾雅) 석초(釋草)에 “거(秬)는 흑서(黑黍)다.”라 했고, 소(疏)에“흑서(黑黍)는 일명 거서(秬黍)인데, 거(秬)는 바로 흑서 중에 큰 것을 말한다.” 하였다.

신중국(新中국)에서는 이것을 강직(糠稷)이라고 하고 模式采自日本 즉 표본을 일본에서 채취한 것이라 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자료에도 Japanese Panicgrass 라고 나오며 학명에는 ‘일본의 린네’라고 불리는 칼 페테르 툰베리(Carl Peter Thunberg, 1743-1828)가 붙어 있다.

이 흑서가 일본 것으로 둔갑된 것이다.

 

세종실록 세종7년(1425)2월 29일(기사)

戶曹啓 東西籍田耕作 秬黍十七石三斗 除今年種子各一石外 其餘頒賜正三品以上 命分送京畿忠淸慶尙全羅黃海等道各官 耕種

용례(用例):조선시대 호구(戶口)·공부(貢賦)·전량(錢糧)·식화(食貨)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호조(戶曹)에서 아뢰기를 “동서적전(東西耤田)에서 경작한 거서(秬黍)17석 3두에서 금년 종자(種子)각기 1석을 제외하고는 그 나머지는 정3품 이상의 관원에게 나누어 주고, 명하여 경기, 충청, 경상, 전라, 황해등 도(道)의 각 고을에 나누어 보내어 경작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이러한 말도 안되는 거짓의 기록은 100년 전 당시 매우 공공연하게 만들어졌던 것들이다.

지금의 열도 기후조건을 보면 한정된 지형인데 생물학적 기후대를 온대, 열대, 아열대 심지어 극한대까지 온 세계 기후를 죄다 집어 넣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퍽 하면 일본지역에서 근원을 찾아야 한다면 툰베리와 주카리니 지볼트, 나카이등이 동원되어 현 열도 생장 조건과 전혀 다른 생물까지 마음대로 꿰 맞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 열도는 아열대도 아니고 열대는 더더욱 아님에도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았다.

때문에 100년 생물학체계는 엉터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서에 보면 조선시대에 적전(籍田)에서 이 검은 기장이 경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적전(籍田)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왕이 농사의 본(本)을 보이는 곳으로 종자(種子)가 생산되어 묘목(苗木)이 양성되는 국가가 관리하는 농경의 기본 체계에 의한 과학적 기구라고 할 수 있어 지금 농촌진흥청의 농업기술원 정도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러한 체계에 있었던 조선은 지금 미국처럼 각 지역의 종자와 묘목을 수집 또는 채집하여 근원을 밝히고 재배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풀이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물론 세종7년 기사에 보더라도 충분히 확인이 된다.

또 알이 검은 기장 거서(秬黍), 흑서(黑黍)는 제사용 술을 빚는 데 사용하였다는 기록도 있으며 특히[국립중앙과학관]의 자료에 의하면 조선시대 박연(朴堧:1378-1458)이 국악(國樂)의 기본음을 표준화하기 위해 만든 척도로서 국악의 기본음인 황종음(黃鐘音)을 낼 수 있는 황종율관(黃鐘律管)의 길이를 결정하는데 이 검은 기장의 씨앗이 쓰였다는 것으로서 세종7년에 박연이 해주산(海州産) 검은 기장(秬黍)씨앗 100알을 나란히 쌓아 그 길이를 황종척(黃鍾尺) 1척(尺)으로 정하여 음(音)을 고정하였다는 설명에서도 조선 땅 해주(海州)에서 나는 흑서(黑黍)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황종척(黃鍾尺)은 조선 세종때 사용한 도량형(度量衡)의 기본 단위를 말한다.

당시 모든 도량형(度量衡)의 기본 단위를 조선이 책정한 것으로 보아야 맞다.

그러니 검은 기장의 근원지가 조선 해주였다는 것이며 해주의 검은 기장은 조선 도량형의 표준화가 된 것이다.

이러한데 떨거지들은 일본에서 검은 기장 표본을 구했다고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조작스럽고 한심스러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조선(朝鮮)땅 해주(海州)는 과연 어딘지 알아보아야 할 문제에 봉착했다.

특히 해주(海州)는 황산과 함께 고려때부터 왜구가 들끊는 곳으로서 유명하며 조선 건국시조 이성계가 해주 땅에서 낙마하여 비밀스럽게 은거한 곳이기도 하다.

 

秬黍,又称黑黍,是黍的一种。中国古代的度量衡以产于羊头山附近(今山西省长治市)所产.

위는 신중국 자료인데 이 거서(秬黍) 즉 흑서를 가지고 조선의 박연이 황종척(黃鍾尺)을 만든 것처럼 똑같이 도량형(度量衡)을 이용했다 하고 현재 산서성(山西省) 장치시(长治市) 양두산(羊頭山)에서 산출된 흑서가 바탕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조선에서는 해주산을 이용한 것이라 하였다는 것과 비교하면 산서성, 장치시가 혹 해주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금방 확인 할 수 있어진다.

 

그렇다면 조선(朝鮮)땅 해주(海州)를 밝히기 위해  먼저 검은 기장이며, 거서(秬黍)이고 흑서(黑黍)란 곡식의 정확한 학명과 분류체계를 찾아야 한다.

생각처럼 찾기가 쉬운 것이 아니어서 몇 일을 헤매였다.

이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워낙 해주와 검은 기장의 등식이 중요한 것이라 이렇듯 숨겨 놓은 것일게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찾기 힘든 이 학명도 눈에 띈 것은 Black-seed panic 이란 단어에 의해서이다.

얼마나 검 길래 패닉(panic)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찾아보았는데 실상 의문과는 다르게 프랑스어 panic[panik]으로서 기장[피]류(類)를 말한 것을 확인하고 곧 바로 Black-seed panic를 검색에 들어갔다.

마침내 거서(秬黍)이고 흑서(黑黍)라고 판단되는 학명 Panicum bisulcatum Thunb 를 찾아 내었지만 한편으론 무지하게 실망스럽게도 학명 꼬리에는 일본의 린네란 별명의 소유자, 툰베리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 역시 학명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조심성을 불러 일으켰다.

이 100년전 생물학체계가 세워질 때 학명꼬리 붙은 이름 툰베리(Carl Peter Thunberg, 1743-1828), 나카이(中井猛之進.nakai, 1882-1952), 독일식물학자인 주카리니(Joseph Gerhard Zuccarini, 1797-1848)와 지볼트(Philipp Franz Balthasar von Siebold, 1796-1866)등이 붙어 있는 학명은 역사 판짜기하는 과정에서 조선영역에 있던 생물들을 한반도 또는 열도로 이식(移植)하였거나 조작하였다고 판단 할 수 있는 문제의 학명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찾기 어려웠던 학명을 알았으니 이것의 근원을 개관적으로 밝히기 위해 종전에 하던 것처럼 DNA 분석을 통한 자료 Discover life 가 제공하는 분포지도를 참고 하기로 한다.

 

糠稷:Panicum bisulcatum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未分级) 被子植物 Angiosperms

(未分级) 单子叶植物 Monocots

目: 禾本目 Poales

科: 禾本科 Poaceae

屬: 黍属 Panicum

種: 糠稷 bisulcatum

二名法

Panicum bisulcatum1815

 

Panicum bisulcatum Thunb. BLACK-SEEDED PANIC

Panicum acroanthum Steud; Panicum melananthum FMuell; Panicum melananthum FMuell sensu Mueller, FJH von 1853; Japanese Panicgrass

 

 

[북아메리카대륙 분포지역] 

UTAH, CACHE 캐시 밸리(Cache Valley)

PA

Pennsylvania, Philadelphia

SC

GA

 

그렇다 나는 이들 분포지도를 보고 단번에 근원을 알았다.

바로 검은 기장 특히 해주가 있었던 곳은 한반도도 아니고 동아시아대륙도 아닌 북아메리카대륙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온갖 자료에는 북아메리카대륙을 피해 여러 군데 알 수 없도록 마구 흩어 섞어 놓았지만 본질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이 학명이 북아메리카대륙을 근원으로 하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이 Discover life 가 지정한 북아메리카대륙에서도 근원이 몇 군데 파악되었지만 매우 신빙성이 있는 대표적인 것은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펜실베니아주(Pennsylvania) 필라델피아(Philadelphia)와 서부에 유타(Utah)주임을 알게 하였다.

그것과 동시에 동아시아대륙 신중국 자료의 산서성(山西省) 장치시(長治市)도 같이 얹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기에 나타나는 기록에서 해주(海州)는 실상 한반도 해주가 아니란 사실 또한 판단되는 것임으로 애초부터 한반도는 근원지에서 제외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동아시아대륙 산서성의 장치시(長治市)가 아닌가 하고 믿어 버릴 뻔했다.

하지만 동아시아대륙도 아니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문제는 해주가 기준이 되는 바다 동해란 존재에 대한 혼란이다.

이 바다를 우리는 황해라고도 하고 서해라고도 하는 모순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신중국에서도 역시 발해, 황해, 동해, 동지나해 식으로 따로 따로 불린다는 점이다.

도대체 크지 않고 육지 사이에 만 같은 바다 하나를 두고 이와 같은 호칭이 이렇게 무질서하게 난무할까 생각해보았다.

만약 해주가 장치시라면 동해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이 바다 호칭이 절대로 통일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놓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왜 현재까지도 동아시아대륙의 역사나 또는 한반도 역사가 대중적으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것인가에 대한 답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조선사이에 있는 바다 지명하나 통제, 통일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역사기록은 역사가의 것만 아니며 또한 어떤 특정 부류의 전유물도 아니다.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때문에 역사가들은 그들만의 역사가 아니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역사로 해석하여 발전시켜야 한다는 간단한 전제조차 해결하지 못한 사실에서 어찌 역사를 신뢰할 수 있는가는 점이다.

분명 현재 동아시아대륙에 중국(中國)이란 존재가 과거 역사에 있었다면 중국(中國)에는 천자(天子)가 있었으니 강력한 국제 질서를 조정하는 조정자로서의 대단한 파워가 있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국(中國)이 속국 삼한이 있었던 한반도 사이에 있는 지금의 동해라고 하는 바다 하나의 이름을 통제하거나 통일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역사 관점으로 보았을 때 중국이 무능하였거나 이런 역사자체가 처음부터 거짓이라는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일제가 만든 반도역사를 들여다 보면 허구한 날 삼한은 이리치고 저리 치었다고 하는 한반도에서 얼마나 이 좁은 바다에 집착하였길래 천자(天子)가 나서 이것 하나 바르게 통일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국가대 국가라고 하지만 엄연히 종적인 관계의 역사상황을 대입할 때 대국인 중국이 원한다면 작은 나라 조선이 설령 억울하더라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대로 따라야 사대모화사상에 걸 맞고 반도역사가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따로 한반도 따로 명칭이 난무한다는 것은 이러한 역사관계가 무색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현재 작금의 바다 이름이 혼용되는 것은 두 역사 자체가 전부 날조라고 판단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동해라고 하는데 작은 나라 조선에서는 서해(西海)라고 한다?

이러한 구도가 어째서 용납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도 일본 쪽바리와 우리가 동해의 명칭을 놓고 서로 논쟁을 넘어 전쟁까지 할 수 있는 험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바다 명칭이 어느 쪽으로 통일되는 것인가에 대해 과거나 현재에서 충분히 내다 볼 수 있는 심각한 이야기다.

하나의 바다를 동(東)과 서(西)로 다르다게 불리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천리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할 때 솔직히 동아시아 대륙에 있었다고 하는 중국 천자 입장에서 보면 난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반도역사는 한반도는 속국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중국이 시키면 뭐든지 다 해야 한다는 원칙이 서로 상방간에 작용하는 물리적 질서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렇게 지명에서 혼란으로 말미암아 당시 모든 공식문서가 혼란을 갖게 되어 천자의 입장에서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는 이야기고 역사기록상으로 따져 볼 때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속국인 한반도가 이런 고집으로 중국의 뜻이 저지되었다고 할 때 전쟁을 감 수할 밖에 없는 위험스러운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서 지금까지 왜 역사학자들은 심각하게 비판을 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설혹 한반도에서만은 편의상 서해라고 할지라도 공식문서에는 중국을 따라 동해라 했어야 맞다.

그리고 그 서해(西海)가 누런 황토물이 나와 황해(黃海)라 하여 우리 스스로가 황해도(黃海道)라고 하였다는데 엄밀하게 따진다면 지명을 명명하는데 결격사유가 될 수 있는 황토물의 근원이 한반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륙에서 누런 황토물이 나와 황해같이 보여 근세기 지도에 하나같이 yellow sea 라 했다는 것은 현재까지 상식처럼 되어 있는 것인데 굳이 대륙에서는 차라리 지명을 황해도라고 명명하지 않는데 누런 황토물과 전혀 관계가 없는 한반도가 황해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한반도에 황해도란 지명을 붙여야 했는지 그렇다면 서해라고 하지 말던가 이런 문제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게 하는 부분들이다.

지금이라도 반도 역사학자들에게 왜 황해도(黃海道)라 했는가 물으면 서해가 누른 물로 인해 황해라 했고 그래서 황해도라 했다고 변명할 것이 뻔한데 그것은 중국이 시켰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또 한가지 그렇다면 왜 유독 황해도만 황해도가 되어야 하는 이야기로 발전한다.

평안도도 황해에 접하고 경기, 충청, 전라 한반도서쪽에 웅거한 도()들은 모두가 황해와 접해 있는데 이것들도 황해도라 하는 것이 맞지 않는냐는 반론이 충분히 제기 되어 엉터리란 사실이 밝혀짐에도 지금도 어린 청소년들에게 이것을 사실인냥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실제로 일제가 남긴 폐해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폐부로 느끼게 하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서해 바다 전체가 누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형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볼 때 한반도 황해도 근역은 누렇지 않고 깨끗한 편이다.

그런데도 어쨌서 황해도라 해야 하는가?

지금 한반도에 황해도가 되려면 황해도 가운데로 큰 강이 흘러내려 누런 황토물이 강으로 넘쳐 바다로 흘러 들어야 맞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엉터리 역사를 우리는 역사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무엇인가?

속칭 땅 따먹기 기록이라고 하였다.

힘이 센 강국이 힘이 약한 약국을 지배하는 것이 역사기록이다.

또한 이긴자의 역사라고까지 한다.

대국에서 지칭하는 지명은 거의 따를 수밖에 없고 반도역사에서도 그렇게 언급하고 인정한다는 사실에서도 주장과 다르게 유독 중국대륙과 한반도 사이에 있는 작은 바다 명칭만은 중국사를 따르지 않았다고 고집한다는 것은 '한반도 역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대륙 역사 모두가 날조되었으며 거짓의 역사요'하고 실토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저렇게 따져 보아도 한반도 해주는 본래의 해주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지리지

해주목(海州牧)

서울과의 거리는 3백 65리다.

원래 고구려의 내미홀군(內未忽郡)인데, 지성(池城)이라고도 하고, 장지(長池)라고도 하였다. 신라(新羅)경덕왕(景德王)이 폭지(瀑池)라 고쳐 불렀으며, 고려 태조가 고을이 남쪽으로 큰 바다에 임(臨)하였다 하여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위 기록을 보면 해주목(海州牧)은 고려 태조가 고을이 남쪽으로 큰 바다에 임(臨)하였다고 해주(海州)라 하였다는 기록이다.

고대 지명(地名)을 명명(命名)하는 데는 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臨)하다는 것은 어떤 장소에 도달하다 또는 어떤 장소의 가까이 가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고 내려오다, 앞에 놓여 있다, 이르다, 접근하다란 뜻으로 나타낼 수가 있다.

모두 뜻에서 공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특히 해(海)와 주(州)는 바다와 고을 땅을 이르는 말이다.

더군다나 목(牧)은 기를 목인데 많은 백성을 보호한다는 뜻도 있지만 넓은 들판 공간에 소, 말, 양등을 목축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한반도 해주(海州)처럼 좁은 지형의 한계에 묶여 있는 항구(港口)만으로서의 장소가 해주목이라 하지 않는다.

다만 한반도 해주 경우에는 포(浦), 타(沱), 진(鎭)라 하였을 것이다.

바다에 접한 항구가 아니라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언근하게 접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 공간적 지명으로서 특히 거대한 바다가 인근에 있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지명인 것이다.

그리고 남쪽으로 바다가 임하였다고 하는 것은 어떤 특정 모양의 땅을 한정하여 놓고 남쪽을 지칭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이라고 할 때 바다가 초원이나 방목할 수 있는 공간을 사이에 놓고 접한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한반도 해주는 둘레 전체를 서해라고 할 뿐이지 누구도 남쪽운운하면서 따로 공간 땅을 두고 있다고 말할 사람 아무도 없다는 점을 들 수밖에 없어 본래 역사기록의 해주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을 남쪽으로 바다가 언근히 접한 그곳이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아래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펜실베니아주(Pennsylvania) 필라델피아(Philadelphia)를 클로즈업을 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도시와 남쪽 바다 사이에 뉴저지(New Jersey)들판과 웰링턴 도시가 아래에 있어 언근한 여유공간으로서 충분하다.

그 남쪽 접한 곳에 거대한 바다 대서양이 비집고 들어옴을 알 수가 있다.

이 바다 대서양을 근세기 역사판짜기 하기 전까지 대동양(大東洋)이라고 불리던 바다인 것이다.

바로 태양이 뜨는 동방의 나라가 있었던 곳이다.

해동이라고 하기도 했다.

뉴저지 동쪽에 있는 도시 웰링턴(Wellington)은 해주라고 판단되는 필라델피아 남쪽에 있고 한어로 신서전(新瑞典)이라고 하는 곳인데 뉴스웨덴(Nya Sverige)이라는 스웨덴 요새가 있었던 곳이다.

신서전(新瑞典)은 북아메리카에서 스웨덴의 유일한 식민지였다고 하고 네덜란드의 식민지 총독 페터 미노이트(Peter Minuit:1580-1638)의 원정대가 인디언으로부터 토지를 구입하여 정착지를 만들고 스웨덴여왕(Alexandra Christina,재위:1632-1654)의 이름을 따서 크리스티나요새(Fort Christina)를 세웠다는 곳인데 지금 델라웨어주(State of Delaware)의 웰링턴(Wellington)이다.

본래 이곳 주위가 세계삼한역사(世界三韓歷史) 관점에서 보았을 때 특별하게 볼 수 있는 숨은 지명들이 산재되어 나타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 말고 Discover life 가 지정하는 곳, 북아메리카대륙 서쪽에는 유타주(Utah)를 해주로 또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유타주(Utah)는 거대한 로키산맥이 있는 곳으로서 이성계가 왜적들을 상대할 때 황산(黃山)이라고 판단되는 지형의 산들과 해주(海州)라고 판단되는 무수한 강들이 넓게 포진되어 있는 곳으로 충분하게 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유타주를 정점으로 동서로 흐르는 강들은 황해라 하여 황해도의 지명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황토물이 굴곡을 만들며 곳곳으로 넘쳐 흐르는 곳으로서 아메리카대륙전체로 보았을 때 서해(西海)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거대한 강(江)들이 길게 뱀처럼 흐른다.

때문에 역사찾기 대상에서 빼 놓을 수없게 하는 중요한 곳임에 틀림이 없다 할 것이다.

하지만 필라델피아에 거서(秬黍), 흑서(黑黍) 즉 검은 기장이 났다는 판단은 쉽게 접을 수가 없게 한다.

언근한 공간 뉴저지(New Jersey)들판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생각을 강하게 한다.

위 지도에서 뉴저지 들판을 한번보라.

언근한 공간, 바다가 임하였다고 표현 할 만치 적당한 곳이라고 판단된다.

그래서 해주목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성 싶은 곳이다.

이것은 검은 기장이 난 곳 말고 또 다른 지형적인 면으로 신빙성을 갖게 한다는 것이며 그것과 함께 더욱 믿게 하는 것은 근세기 서양역사와 조선역사 즉 삼한역사가 공교롭게도 맞물리는 꼴이 무수하게 들어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게 한다.

어쨌던 해주(海州)는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었다는 것은 거의 확인 한 것이다.

아직 확실하고 명확하게 금을 그을 만치의 답은 없다 할지라도 느낌은 강하다.

해주가 있었던 곳, 한반도가 아니고, 또한 동아시아대륙도 아니라면 바로 미국 생물학적 DNA 분석자료가 지정하는 곳, 태양이 제일 먼저 뜨는 바다(海)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 그래서 바다의 땅이라고 한 곳, 해주(海州)는 바로 채소, 과일, 양계, 낙농 등 근교농업이 활발하였다는 뉴저지(New Jersey)들판을 남쪽에 두고 있어 이것은 목(牧)으로서의 충분한 가치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필라델피아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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