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부

루샤오보 "노벨상, 천안문 희생자에 바친다"

한부울 2010. 10. 11. 11:15

中 텐안먼 사태 20주년 http://blog.daum.net/han0114/17048261 

1989년 톈안먼 사건-Tiananmen Square protests of 1989

http://blog.daum.net/han0114/17048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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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샤오보 "노벨상, 천안문 희생자에 바친다"

[아시아경제] 2010년 10월 11일(월) 오전 08:14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54)가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 당시 희생자들에게 노벨상을 바쳤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류샤오보는 9일 진저우(錦州) 교도소에서 부인을 만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으며 부인을 통해 노벨상을 천안문 희생자 영령에게 바친다는 뜻을 전했다.


류샤오보의 부인은 트위터를 통해 이 소식을 알리는 동시에 "중국 당국은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된 지난 8일 이래 언론과 지인들과의 접촉을 차단했으며, 휴대전화도 끊겼다"며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그녀는 중국 정부에 남편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는 천안문 민주화 운동 당시 단식투쟁을 이끌다 수감된 것을 시작으로 고난으로 점철된 민주화 운동의 길을 걸었다. 그는 2008년 세계 인권의 날에 선포된 '중국 인권헌장'을 만드는데 참여했다가 베이징 제1중급인민법원에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고, 현재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지난 8일 중국의 인권신장을 위해 오랫동안 투쟁한 류샤오보를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가 중국 법률을 위반했기 때문에 재판을 받고 수감된 것이라며 노벨위원회에 류샤오보에 노벨평화상을 주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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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류샤오보 노벨 평화상' 사흘째 인터넷 차단

[조선일보] 2010년 10월 11일(월) 오전 03:00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중국 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사진·55)의 부인 류샤(劉霞)가 10일 수감 중인 남편을 면회하고 노벨상 수상 소식을 뒤늦게 전달했다.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시 외사판공실 관계자는 10일 진저우 감옥 부근에서 류샤를 기다리던 100여명의 국내외 취재진에게 "류샤가 오늘 오전 류샤오보를 면회하고 11시쯤 돌아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면회 장소가 어디였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 파문은 중국 안팎에서 사흘째 계속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밖으로는 '류샤오보의 즉각 석방 및 인권 개선' 요구에 직면했고, 안으로는 수상 소식 자체를 숨기느라 네티즌들과의 숨바꼭질을 계속했다.


서방 국가들은 위안화 평가 절상 요구에 이어 중국 내 인권 개선 요구 목소리를 높이며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8일 특별성명을 내고 "류사오보는 보편적 가치의 진전을 설득력 있고 용감하게 대변해 온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중국 정부에 자유와 인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 안에서도 베이징 톈쩌(天則)경제연구소의 마오위스(茅于軾·81) 이사장 등 지식인 7명은 외국에 서버를 둔 웹사이트 보쉰(博訊)에 올린 공동 축하 서한에서 "중국의 비폭력 지도자인 류샤오보의 수상이 중국의 평화적 변화를 위한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중국 정부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영문판은 9일자 사설에서 "노벨위원회가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켰고, 노벨평화상을 '반중(反中)'이라는 목표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켰다"고 비난했다. 관영 베이징청년보(北京靑年報)는 류샤오보의 수상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만들었다가 배포하지 못했고, 중국의 신문과 방송들은 사흘째 침묵하고 있다.


보도금지 조치를 뚫고 이를 알리려는 네티즌들과 당국의 숨바꼭질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포털사이트인 바이두(百度)와 신랑(新浪)망, 트위터에서 '劉曉波'나 '和平奬(평화상)' 등을 검색어를 넣으면 아예 검색 내용이 뜨지 않고, 휴대폰 메시지도 그런 단어가 포함되면 전송이 되지 않는다.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중국 네티즌들은 이런 방호벽을 뚫기 위해 동음사(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말)를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劉曉波(류샤오보) 대신에 발음만 같은 硫小博나 流曉撥라는 단어를 쓰는 식이다.


중국 지식인들은 류샤오보의 수상 소식에 대해 자부심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홍콩 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10일 보도했다. 인권 변호사인 푸즈창(浦志强)은 "류샤오보의 수상이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자부심과 용기를 심어줄 것"이라고 말했고, 인권운동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는 "상당수 지식인들이 자신들이 지키고자 투쟁해온 가치를 배반한 사실에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홍콩=이항수 특파원 hangsu@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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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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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12.28: 吉林省 창춘시 태생. 

1969-1973: 부모님과 함께 내몽고 농촌생활 

1974.7월: 吉林省農安県에서“지식 청년知識青年” 이됨

1976.11월: 창춘시에서 건축 작업원. 

1977-1982: 吉林大学文学部. 1982년 동교 석사 획득. 

1982: 북경사범 대학 문학부 석사과정 입학, 1984년 동교 문예학 석사획득. 

1984-1986년: 북경 사범 대학 문학부에서 교편을 잡다. 

1986-1988년: 북경 사범 대학 문학부 박사 과정을 이수, 1988년 문예학 박사 학위 취득. 

1988. 8월-11월: 노르웨이의 오슬로 대학의 요청을 받아 중국 현대문학을 가르치다. 

1988.12월- 1989년 2월: 미국 하와이 대학의 요청을 받아 중국 철학, 중국 현대 정치와 지식인을 테마로 연구와 수업. 

1989.3월-5월: 객원 연구자로서 미국 콜롬비아대학에 입학 기간 중에 귀국, 6·4 사건에 참가. 

1989.4.27-6.4: 민주화 운동에 참가. 

1989.6.6-1991.1:「반혁명죄」로 투옥된다. 

1989.9: 모든 공직을 잃는다. 

1991.1-1995: 북경에서 문필 활동, 인권 운동, 민주 운동에 종사. 

1995.5.18-1996.1: 다시 입옥入獄, 석방 후 민주화 운동, 문필활동 계속. 

1996.10.8-1999.10.7: “노동 교양労働教養”(중국특유의 감금형벌)에 처해진다. 석방 후 북경의 자택에서 프리라이터로서 대량의 시평이나 학술 논문을 발표한다. 

2003.11: 문필회 제2임회장(第二任会長)으로 당선. 

2005.11.2: 문필회 회장으로 당선 유임. 

2008.12.10: 다시 영8헌장(零八憲章)의 초안자가 되어 발표 직전에 신병이 구속됨

2009.6.23: 「국가정권전복선동죄」등의 용의자로 북경시 공안국에 정식으로 체포됨(신화사 통신 보도)

2009.12:11일에 기소되고 25일에 북경의 제1중급인민법원에서「국가정권전복선동죄」에 의해 징역 11년의 판결을 선고받음

2010.2.11: 북경의 고급 인민 법원이 류의 항소를 기각해, 징역 11년 및 정치적 권리는 구탈 2년의 판결이 확정

2010.10.8: 민주화와 인권의 촉진에의 공헌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

 

                                                   Nobel Peace Prize (2010)

 

                                                                   [홍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