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지(荔枝:lychee, Litchi chinensis)로 본 대식국(大食國)
글쓴이:한부울
여지(荔枝)는 당나라 양귀비가 매일 먹었다던 과일로 맛이 단 것으로 유명하다.
침, 타액(唾液)을 생기게 하고 혈(血)을 보익하며 기(氣)의 순환을 조절하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능을 가진 약재로 사용되었으며 중국 남부(南部)가 원산(原産)으로 알려져 있고 열대(熱帶), 아열대(亞熱帶)지방에서 재배되는 상록수(常綠樹:evergreen tree)과일나무라는 사실은 여기저기에 보면 나온다.
식물분류학(植物分類學:plant taxonomy)체계적으로 보면 무환자목(無患子目 Sapindales) 무환자과(無患子科 Sapindaceae) 여지속(荔枝屬 Litchi)에 속하는 과일이다.
사전에 보면 잎은 어긋나고 깃꼴 겹잎이며, 꽃은 암수 꽃이 다 피는 잡성화(雜性花)로 연한 황록색의 자웅동체 양성화 (兩性花), 자웅이화 단성화(單性花)가 피며, 열매는 둥글고 돌기가 있다. 키는 10~15미터이며 학명은 ‘Litchi chinensis’ 라고 하지만 이것은 동아시아대륙 기준의 학명이다.
동의보감에는 이 여지가 성질은 평(平)하고 맛은 달며[甘]독이 없다고 했고 정신을 깨끗하게 하고 지혜를 도우며 가슴에 열감(熱感)이 있으면서 입 안이 마르고 갈증이 나는 번갈(煩渴)을 멎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한다는 열매이기 때문에 양귀비가 좋아하였던 것은 아닌가 한다.
또한 말하길 사천(四川), 운남(雲南)지방에서 나며 과실은 달걀만하고 껍질에는 붉은 항라(亢羅)의 무늬 같은 것이 있고 살은 푸르고 흰 것이 수정 같으며 맛이 꿀맛 같다 했고 또한 씨는 연밥(蓮子肉) 같으며 비계같이 희고 달면서 즙이 많다고 하였다.
과실이 열렸을 때의 가지는 약하고 꼭지는 단단하여 딸 수 없기 때문에 칼이나 도끼로 그 가지를 찍는다고 했으며 때문에 칼로 찌를 ‘예(苅, 刈)’자와 가지 ‘지(枝)’자를 붙여서 예지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라 한다[입문].
‘리치’란 이름은 중국어 이름 ‘여지(茘枝, Lìzhī)에서 왔는데, 광둥어로는 라이지(laiji)로 읽는다. 당도가 높고, 향기가 나서 중국 고대부터 귀하게 여겼으며 신당서 양귀비전에 따르면, 당나라 때 양귀비가 화남(華南)에서 장안(長安)까지 빠른 말로 가져오게 한 과일이다.
국내에 재배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1403년 10월 21일 태종 3년《설미수가 여지를 올리다》에서 리치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1421년 제주로 가는 고충언(高忠彦)에게 여지와 향 등을 내려주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정조 24년인 1800년 6월14일에는 종기가 난 정조(正祖:1752-1800,재위:1776-1800)에게 여지고(荔枝膏)가 고름을 빨아내는데 가장 좋다는 의관 정윤교의 대화가 등장한다 하여 이것 외에도 리치와 관련된 내용이 60여건이 등장한다고 백과사전에서 적고 있다.
그래서 이 여지가 어떻게 우리나라 사서에 등장하는가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먼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경상도(慶尙道) 의성현(義城縣)에서 유호인의 송신사(送神歌)란 글에는 '여지(荔枝)가 누래지지 아니하니 계수나무는 부끄러워지는도다.'라는 글이 있어 이곳에 여지(荔枝)가 자랐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태종3년(1403)에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문신(文臣) 설미수(偰眉壽:1359-1415)가 여지(荔枝)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태종11년(1411)에는 어떤 사신(使臣)이 알 수 없으나 그로부터 여지(荔枝)를 임금이 받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태종12년(1412)에는 임금이 검교(檢校)한성윤(漢城尹)에게 여지(荔枝)를 내려주었다는 기록.
세종7년(1425)에 정사(正使) 윤봉(尹鳳)이 임금에게 이 여지(荔枝)를 바쳤다는 것도 보이고
예종1년(1469) 황해도 출신 명나라 환관이라고 하는 정동(鄭同)이 왕에게 이 여지(荔枝)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연산군 8년(1502)에 신하들이 건의하는 과정에서 무역을 줄이는 것과 무역을 금지하는 품목에 이 여지(荔枝)가 들어 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연산군 10년(1504)윤4월4일 기록을 보면 연산군은 용안육(龍眼肉)과 여지(荔枝)를 무역해 왔는데 질이 좋지 않아 성절사(聖節使)가는 편에, 좋은 것으로 선택해서 사오게 하라는 기록도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성절사는 천주교회(天主教會)와 성공회(聖公會)의 절일(節日)이라는 만성절(萬聖節)이 매년 11월 1일에 있다는 것이고 그 외 성절사(聖節使)를 정기적으로 조선(朝鮮)에서 파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반도역사는 중국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해마다 보내던 사절이라고 하였으니 얼마나 엉뚱한 이야긴가?
왜 그랬을까?
바르게 알리면 될 것인데 왜 그랬을까?
바로 한반도란 위치적인 취약성 때문이다.
만성절(萬聖節)을 핼러윈(Halloween)축제라 하여 서양인들에게 큰 명절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조선이 모든 종교를 수용했다고 보일 때 이러한 축제에 사신을 파견하는 것은 당연하가 할 것이다.
삼한역사는 이러한 가톨릭(Catholic)교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荔枝(學名:Litchi chinensis),又名離枝、丹荔是中國南部出產的一種亞熱帶果樹。
别名 离支、荔支、荔枝子、离枝、丹荔、火山荔、丽枝、勒荔, 雷芝
科學分類
域: 真核域 Eukarya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雙子葉植物綱 Magnoliopsida
目: 無患子目 Sapindales
科: 無患子科 Sapindaceae
屬: 荔枝屬 Litchi
種: 荔枝 L. chinensis
二名法
Litchi chinensis Sonn.
Pierre Sonnerat (1748 -1814) was a French naturalist and explorer.
公元3世紀時張勃著的《吳錄》有 "蒼梧多荔枝,生山中,人家亦種之" 的記載。蒼梧便在今日的廣西境內。現在廣東、廣西及海南的原始森林中仍然可以找到野生的荔枝樹。
위 한어자료를 보면 3세기생몰불상(生卒年不詳)으로 한선제(汉宣帝)、한원제(汉元帝)때 대신(大臣)장발(张勃)의 저서 오록(吳錄)에 창오(蒼梧)에는 여지가 많은데 산중에 있고 인가에도 씨를 뿌린다. 이 창오를 현재 광서경내(廣西境內)라고 하여 지금의 광동(廣東)이라고 한다.
그리고 광서와 해남의 원시삼림 중에서도 야생 여지나무(荔枝樹)를 변함없이 찾아낼 수 있다 라고 적고 있다.
그래서 지금 여지의 산지로 광동(廣東)과 복건(福建)이라 하고 있다.
광서(廣西)에는 여강(荔江)이라는 이름도 붙어 있다.
荔枝与香蕉、菠萝、龙眼一同号称“南国四大果品
또 역사에서는 이 여지를 바나나, 파인애플, 용안과 같이 남국(南国)의 4대과(四大果)품으로 여겼다는 사실도 함께 전한다.
그러니 이 과일도 남국(南国) 산(産)인 것이다.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中国果树业发展史[中国农业百科全书]
10世纪中,林檎传入日本:13世纪枇杷传至印度。当时,东南沿海的福州和泉州是著名的水果产地,有荔枝、龙眼、佛手柑、香蕉、橄榄、杨桃、枇杷、金柑等名产。范成大的《桂海虞衡志》(12世纪)果志部分就记述了50多种南方果树。福建大量生产的果脯是对外贸易的传统货品;荔枝也外销,“东南舟行新罗(朝鲜)、日本、琉球、大食(阿拉伯帝国)之属,莫不爱好,重利以酬之。”
위 한어자료는 중국농업백과전서를 참고하여 작성한 중국과수업발전사라는 글에서 중요한 부분만 발췌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이렇다.
10세기에는 능금(林檎)이 일본으로부터 들어왔고 비파나무(枇杷)는 인도(印度)에서 전래되었다. 수과산지로는 동남연안에 복주(福州)와 천주(泉州)가 유명했었는데 그 종류가 여지(荔枝)、용안(龙眼)、불수감(佛手柑)、바나나(香蕉)、올리브(橄榄)、카람볼라(carambola:楊桃)、비파열매(枇杷)、금귤(金柑)등의 명산(名产)이었다는 것이다.
범성대(范成大:1126-1193)의 계해우형지(桂海虞衡志)12세기에 과일기록을 보면 50가지 종을 취하고 있는데 복건(福建)의 대량생산에서 보면 과일을 설탕에 재어 만든 것으로 과포(果脯)라고 하는데 대외 무역에서 전통적인 상품이었다고 한다.
여지(荔枝)는 해외 수출판매를 하였는데...
여기서부터 중요한 문구가 시작된다.
东南舟行
동남(東南)주행(舟行) 즉 동남쪽으로 배를 항해하였는데
新罗(朝鲜)、日本、琉球、大食(阿拉伯帝国)之属
신라, 일본, 유구, 지금의 아랍제국인 대식의 땅(属)이라 하였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하나는 신라가 12세기까지 존재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마지못해 조선이라고 부첨하였지만 이것은 후세 역사가들이 첨가한 것이라고 할 때 분명 신라는 12세기까지 존재한 것이다.
두 번째는 주(舟)행이라고 하였으니 이 주(舟)는 큰 배가 분명 아니다.
주(舟:boat) 즉 뱃사공이 있는 배로서 영어로 보트라고 표현되는 배로 일엽편주(一叶扁舟)인 것이다.
그러한 작은 배로 설령 무대가 동아시아대륙이라고 하여도 지금의 복건(福建), 복주(福州)라 할 때 한반도 신라, 일본도 무리겠지만 그렇다 치고 유구는 또 무엇이며 항해거리가 11,000km거리의 아랍제국까지 어떻게 무슨 재주로 들락거렸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엉터리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근세기 1882년부터 동아시아(East Asia)대륙역사를 새롭게 만들면서 철저하게 속이려는 것이었지만 이제 백일하에 들통이 나고 만 것이다.
이런 작은 배, 보트정도의 배를 이용하여 무역을 빈번할 수 있었던 곳은 적어도 중국이라는 대륙 동남쪽 방향에서 그렇게 멀지 않는 곳에 조선(朝鲜)이 아니라 신라(新罗)와 일본(日本), 유구(琉球)가 있었다는 것이고 또 아랍제국 대식국(大食國)이 있었다는 설명이 된다.
위 한어자료를 끝까지 읽어보면 어쨌던 이렇게 무역을 하니 이 모든 나라에서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어
重利以酬之
높은 수익을 올렸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chinensis 가 붙어 여지를 대표하는 학명으로 존재하는 이 학명의 근원지가 어디로 하는지 알 필요성이 있어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과 디스커버 라이프(Discover life)의 분포지도를 참고 한다.
Litchi chinensis Sonn. 1782-LYCHEE
분포지
Costa Rica Puntarenas
Costa Rica Heredia
Ecuador Esmeraldas
Florida Dade
California Alameda
Washington County King, food library
Hawai`i Honolulu
Hong Kong
하지만 위 DNA 를 바탕으로 한 분포지도를 다시 확대하여 동아시아대륙을 세분하고 보았지만 현재
복건(福建), 복주(福州)에는 근원지표시가 전혀 없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DNA 근거가 없다는 것이며 근원지 즉 여지(荔枝)의 원산지가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본래 양귀비가 좋아 하여 이 여지(荔枝)를 그녀가 죽을 때까지 수송했다고 하는 출발점, 원산지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북아메리카대륙남부와 멕시코를 포함한 중앙아시아대륙에서 찾아야 맞다.
지금까지의 자료를 종합하고 DNA 분포지도를 참고하여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결론을 내린다면 실제로 여지(荔枝)가 났다고 한 복건(福建), 복주(福州)는 절대 동아시아대륙의 복건과 복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12세기까지 적어도 신라(新羅)가 역사에 존재한 사실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대식국(大食國)이 지금의 중동 지역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유구가 있었다고 판단되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이 대식국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문제가 생기며 중국이라는 기록이 남긴 방향은 남동쪽이 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
[동의보감]
여지( 枝, 예지)
성질은 평(平)하고(약간 따뜻하다[微溫]고도 한다) 맛은 달며[甘](달면서 시다[甘酸]고도 한다) 독이 없다. 정신을 깨끗하게 하고 지혜를 도우며 번갈을 멎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한다.
○ 사천 운남 지방에서 나며 과실은 달걀만하고 껍질에는 붉은 항라의 무늬 같은 것이 있고 살은 푸르고 흰 것이 수정 같으며 맛이 꿀맛 같다. 또한 씨는 연밥(蓮子肉) 같으며 비계같이 희고 달면서 즙이 많다.
○ 많이 먹으면 열이 난다. 꿀물을 마시면 풀린다.
○ 과실이 열렸을 때의 가지는 약하고 꼭지는 단단하여 딸 수 없기 때문에 칼이나 도끼로 그 가지를 찍는다. 때문에 칼로 찌를 ‘예’자와 가지 ‘지(枝)’자를 붙여서 예지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입문].
여지핵( 枝核, 예지씨)
가슴앓이[心痛]와 소장산기(小腸疝氣)를 치료하는데 태워 가루낸 다음 따뜻한 술에 타 먹는다[입문].
************************
태종 3년 계미(1403,영락 1) 10월21일 (을축)
설미수가 여지·종려다래·발라를 올리다
○偰眉壽進荔枝及椶韂、孛羅
설미수(偰眉壽)가 여지(荔枝) 및 종려다래[椶韂]와 발라(孛羅)를 올리었다.
*************************
태종 11년 신묘(1411,영락 9) 8월16일 (을사)
태평관에 가서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고 안마를 주다
○乙巳/上如太平館享使臣, 贈鞍馬。 翼日, 使臣令頭目一人, 獻龍眼、荔枝及琥珀帶、香帶、紈扇、玉纓, 上親受之, 敬使命也。 贈頭目苧麻布四匹。
임금이 태평관에 가서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고 안마(鞍馬)를 주었다. 이튿날 사신이 두목 한 사람을 시켜 용안(龍眼)·여지(荔枝) 및 호박대(琥珀帶)·향대(香帶)·환선(紈扇)·옥영(玉纓)을 바치니, 임금이 친히 받았는데, 사명(使命)을 공경한 것이다. 두목에게 저포(苧布)·마포(麻布) 4필을 주었다.
*************************
태종 12년 임진(1412,영락 10) 3월24일 (무신)
검교 한성 윤 고충언이 제주로 가기 때문에 물품을 하사하다
○戊申/賜檢校漢城尹高忠彦紅袍荔枝金帶。 忠彦以濟州都司守將還, 有是賜, 仍降香, 祀漢拏山川之神。
검교 한성 윤(檢校漢城尹) 고충언(高忠彦)에게 홍포(紅袍)·여지(荔枝)·금대(金帶)를 내려 주었다. 고충언이 제주 도사수(濟州都司守)로서 장차 돌아가기 때문에 이러한 하사가 있었다. 또한 향(香)을 내려 주어 한라(漢拏) 산천(山川)의 신(神)에게 제사 지내게 하였다.
*************************
세종 7년 을사(1425,홍희 1) 2월13일 (계축)
정사 윤봉 부사 박실이 각기 왕과 중궁, 동궁에게 물품을 바치다
○正使尹鳳進段子二匹、白畫絹一匹、沙糖、龍眼、荔枝, 中宮進段子二匹, 東宮進段子、白毛子各一匹, 副使朴實亦進段子一匹、白毛子一匹。 中宮、東宮各進段子二匹。
정사(正使) 윤봉이 〈임금에게〉 단자(段子) 2필, 백화견(白畫絹) 1필, 사탕(沙糖)·용안(龍眼) ·여지(荔枝) 등을 바치고, 중궁(中宮)에게는 단자 2필을 바치고, 동궁(東宮)에게는 단자·백모자(白毛子) 각 1필을 바쳤으며, 부사(副使) 박실도 또한 〈임금에게〉 단자 1필, 백모자 1필을 바치고, 중궁과 동궁에게는 각각 단자 2필을 바쳤다.
***********************
예종 1년 기축(1469,성화 5)윤 2월29일 (갑신)
정동이 천화채·양두·막고·황고·서원안·여지 등의 물건을 바치다
○甲申/鄭同進天花菜、羊肚、莫姑、黃姑、鼠圓眼、荔枝等物。
정동(鄭同)이 천화채(天花菜)·양두(羊肚)·막고(莫姑)·황고(黃姑)·서원안(鼠圓眼)·여지(荔枝) 등의 물건을 바쳤다.
***********************
연산군 8년 임술(1502,홍치 15) 7월6일 (병자)
윤필상 등이 사치품의 무역 금지와 무역을 줄이기를 건의하다
○丙子/坡平府院君尹弼商、領議政韓致亨、左議政成俊、右議政李克均啓: “今貿易物件, 如沙糖、龍眼、荔枝則御膳所進, 貿之猶可, 如孔雀羽、大珊瑚、白玉, 皆爲戲玩之具, 非關於國用, 何必貿之? 況通事貿易之時, 必稱國用, 於中朝見聞何如? 且國家貿易, 非止此也, 貿物之價轉輸之際, 驛路必至凋弊。 如此之事, 猶未除之, 驛路何時得蘇? 請減貿易。”
파평 부원군(坡平府院君) 윤필상(尹弼商), 영의정 한치형(韓致亨), 좌의정 성준(成俊), 우의정 이극균(李克均)이 아뢰기를,
“지금 무역(貿易)하는 물건 가운데 사탕·용안(龍眼)·여지(荔枝) 같은 것은 어선(御膳)으로써 진상하는 것이니, 이것들은 무역해도 오히려 옳지마는, 공작깃(孔雀羽)·대산호(大珊瑚)·백옥(自玉) 같은 것은 모두 노리개요 나라의 소용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니, 어찌 이를 무역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통사(通事)가 무역을 할 때에는 반드시 나라의 소용이 된다고 말할 것이니, 중국 조정(朝廷)에서 보고 듣는 데에 어떠하겠습니까? 또 국가의 무역은 이것에 그칠 뿐이 아닌데, 무역하는 물건의 대가(代價)를 수송할 때에 역로(驛路)가 반드시 피폐하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을 없애지 않으면 역로가 어느 때에 소생(蘇生)되겠습니까? 무역을 줄이소서.”
하였다.
중조(中朝) 중국조정이라 하였는데 어찌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대륙조선 중앙조정(중앙조정)이 더 합당하다 할 것이다.
중국이라 하여 나라로 취급한 것은 근세기 들어 화하계 국민당으로부터 처음 사용한 용어로서 사서에 적힌 중조와는 그 본 뜻이 다르게 해석되었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
연산군 10년 갑자(1504,홍치 17)윤 4월4일 (갑자)
좋은 용안육과 여지를 사오게 하다
○傳曰: “前此貿來龍眼、荔枝皆不好, 其令聖節使之行, 擇好貿來。”
전교하기를,“앞서, 용안육(龍眼肉)과 여지(荔枝)를 무역해 왔는데, 모두 좋지 못하니 성절사(聖節使) 가는 편에, 좋은 것으로 선택해서 사오게 하라.”
하였다.
*********************************
동국이상국전집 제4권
서(序)
여지(荔支)
唐書云。貴妃嗜荔支。必生致之。乃置驛騎。傳送數千里。味未變。已至東편001師。杜牧詩云。一騎紅塵妃子笑。無人知是荔支來。
《당서(唐書)》에 “양귀비(楊貴妃)가 여지를 좋아했는데, 반드시 싱싱한 것으로 가져와야만 했다. 그러므로 연도(沿道)에 역마(驛馬)를 놓아 수천 리의 거리를 전송(傳送)해 와도 그 맛이 변치 않은 채 경도(京都)에 도착하곤 했다.” 하였다. 두목(杜牧)의 시(詩)에 “말발굽에 이는 티끌 귀비가 좋아하는데, 여지가 올라온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一騎紅塵妃子笑 無人知是荔支來]”하였다.
玉乳氷漿味尙新 옥유와 빙장의 맛 그저 싱싱도 하다
星飛馹騎走風塵 성화 같은 역마 풍진을 일으키네
却因咫尺三千里 삼천 리를 지척같이 달려왔기에
添得紅顔一笑春 미인 얼굴에 웃음꽃 한층 더했어라
여지(荔支) : 과일의 이름. 중국 복건(福建)ㆍ광동(廣東)ㆍ사천(四川) 등지에서 생산되는 과일로 살은 희고 맛은 달고 즙(汁)이 많으며, 모양은 용안(龍眼)의 열매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당 현종의 비(妃)인 양귀비(楊貴妃)가 이를 매우 즐겨 먹었다고 한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5권
경상도(慶尙道)
의성현(義城縣)
사묘(祠廟)○ 유호인의 송신가(送神歌)에, “신령이 양양함이여 산(山)의 머리로다. 구름은 뭉게뭉게 무턱대고 헤매는도다. 북은 두둥둥 둥둥 주저주저 춤추는도다. 여지(荔枝)가 누래지지 아니하니 계수나무는 부끄러워지는도다. 내가 드린 메를 받으시니 물리치지 않으시도다. 팔사(八蜡)는 해마다 가을이면 온 지경 안에서 구슬처럼 모여들어 삼밭처럼 빽빽하도다. 여귀(厲鬼 역귀(疫鬼))를 쫓으니 큰 복을 내리시는도다. 우리 백성이 보답하니 해마다 증수(增修)하는도다.” 하였다. 여단 현 북쪽에 있다.
**************************
여지(荔枝:리치Lychee)
荔枝(學名:Litchi chinensis),又名離枝,是中國南部出產的一種亞熱帶果樹。荔枝是華南的重要水果農作物,每年產量超過一百萬噸。
native to China, and now cultivated in many parts of the world.
大明末年傳敎士畫嘅荔枝
科學分類
域: 真核域 Eukarya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雙子葉植物綱 Magnoliopsida
目: 無患子目 Sapindales
科: 無患子科 Sapindaceae
屬: 荔枝屬 Litchi
種: 荔枝 L. chinensis
二名法
Litchi chinensis Sonn.
Litchi chinensis flowers.
在今日中國的廣東、廣西、海南、福建、四川及雲南,都有種植荔枝,大約是從北緯18度至北緯28度都有。亞洲部份國家如中華民國、越南、泰國等都有荔枝出產,引入荔枝栽種的國家有美國佛羅里達州(Florida)及加利福尼亞(California)、澳洲的昆士蘭、印度、南非、馬達加斯加(Madagascar)、以色列和墨西哥(México)等。
리치는 무환자나무과의 상록수 과일 나무이다. 중국 남부 원산으로 열대, 아열대 지방에서 재배된다. ‘리치’란 이름은 중국어 이름 ‘여지(중국어 간체: 荔枝, 정체: 茘枝, 병음: Lìzhī)’에서 왔는데, 광둥어로는 lai6ji1로 읽는다.
껍질을 벗진 리치상록 교목으로 잎은 짝수이며, 깃 모양 겹입(2-4대의 떡잎에서 자란)으로 들쭉날쭉하다. 꽃은 황록색으로 봄에 피며, 열매는 여름에 익고, 표면은 붉은 비늘(신선한 것은 가시가 날카로운)로 덮에 있다. 과피를 벗기면 먹는 백색 반투명의 과즙이 많은 과육 (정확하게는 씨의 외피)가 있고, 그 가운데 큰 씨가 하나 있다.
당도가 높고, 향기가 나서 중국 고대부터 귀하게 여겨, 당나라 때 양귀비가 화남에서 장안까지 빠른 말로 가져오게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1] 현재는 중국 남부, 대만, 동남아시아, 일본 오키나와 등지, 호주, 플로리다와 하와이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국내에 재배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1403년 10월 21일 태종 3년 《설미수가 여지를 올리다》에서 리치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2], 1421년 제주로 가는 고충언에게 여지와 향등을 내려주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3] 정조 24년인 1800년 6월 14일에는 종기가 난 정조에게 여지고가 고름을 빨아내는데 가장 좋다는 의관 정윤교의 대화가 등장한다.[4] 이것 외에도 리치와 관련된 내용이 60여건이 등장한다.[위키]
중국 남부 원산이며, 과수로 흔히 재배한다. 높이 10∼15m이며 밑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고 깃꼴겹잎이며 끝의 작은잎이 없다. 작은잎은 두껍고 짙은 녹색이며 긴 타원형 또는 바소꼴이다. 잎 뒷면은 회백색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1가화이고, 양성화·수꽃·암꽃이 원추꽃차례에 달리며 연한 황록색이다. 꽃받침조각은 4∼5개이고 꽃잎은 없으며, 수술은 6∼10개이다. 열매는 둥글며 지름 3cm 정도로서 겉에 돌기와 더불어 거북의 등처럼 생겼다. 과육은 시고 달며 독특한 향기가 있어 날로 먹는다. 중국 남부에서는 과일 중의 왕이라고 한다. [두산백과사전]
'세계삼한역사 > 식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개나리(朝鮮連翹:Forsythia coreana) (0) | 2013.03.27 |
---|---|
신라(新羅)에서 석류(石榴:Punica granatum)의 종자(種子)가 나왔다 (0) | 2013.03.18 |
아나나스 파인애플(菠萝:Ananas comosus)은 석왕리(釋王梨)인가? (0) | 2013.03.16 |
구아바(Psidium)가 번석류(番石榴)란 사실이 주는 의미 (0) | 2013.03.12 |
접시꽃(蜀葵:Alcea rosea)으로 본 촉(蜀) (0) | 2013.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