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고소대(姑蘇臺)와 고소정(姑蘇亭)

한부울 2010. 7. 17. 23:01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이 작전계획을 세우고 명령을 내린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도 고소정(姑蘇亭)이라는 정자이다.[두산백과사전]

“연산군 12년(1506)에 왕이 경복궁에 미복(微服)으로 잠행(潛行)하여 경회루에 올라가 만세산(萬歲山)에 관등(觀燈)을 배설하고 잔치를 끝낸 다음, 승정원으로 하여금 들어와 보게 하였는데, 밤 2경(更)이었다”란 기록에서 만세산(萬歲山)이 등장한다.

고소대(姑蘇臺)등 등을 꾸미는데 비용이 1만냥이나 들었다고 하였다.

萬歲山為中國歷史上皇家園林中常見的山名,可以指:北京景山 ,北京北海公園瓊華島 , 北宋東京艮岳 

중국역대 황제들이 지금의 어찌 북경에만 있었겠는가?

연산군은 명조(明朝)대라고 보아야 하는데

明朝의 황궁은 지금의 남경(南京)이라고 하였으니 고소대가 있는 강소와 가깝다.

인조이후 淸朝는 지금의 북경(北京)이라고 하고 있지만

북경(北京)도 근세기에 들어 서세에 의해 불려 지게 되면서 알려진 황궁으로 수원 화성격인 성격이 존재하고 근세기에 서세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면이 있어 전통적인 중국 메인 황궁이라 할 수 없다.

때문에 위 한어자료 북경에 萬歲山이 경산(景山)이라 하는 것은 믿을 바가 못된다.

연산 왕이 미복으로 경복궁에 잠입하여 경희후에 올라 만세산(萬歲山)에 관등을 설치한곳과 왕이 황소로와 공효련에게 명하여 고소대(姑蘇臺)등 관등(觀燈)을 배설한 곳은 과연 한반도 경복궁일까 대륙 경복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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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12년 병인(1506,정덕 1) 4월12일 (신유)

경회루에 올라 만세산에 관등을 배설하고 주위를 꾸며 잔치를 벌이다

○王微行至景福宮, 御慶會樓, 設萬歲山觀燈, 宴罷, 命承政院入觀, 夜二鼓矣。 王命司鑰黃小老、公孝連, 分左右部作燈, 靑鸞、紫鳳、蓮花、牧丹、姑蘇臺、蓬萊山、金烏、玉免、銀鯽、黃龍, 千態萬狀, 窮極奇巧, 皆以金銀珠翠飾之, 所費萬計, 懸于萬歲山下, 王乘黃龍舟觀之。 炷芙蓉香數百束, 列蠟炬千柄, 夜明如晝, 興淸數百, 列坐奏樂。

왕이 경복궁에 미복(微服)으로 잠행(潛行)하여 경회루에 올라가 만세산에 관등(觀燈)을 배설하고 잔치를 끝낸 다음, 승정원으로 하여금 들어와 보게 하였는데, 밤 2경(更)이었다. 왕이 사약(司鑰) 황소로(黃小老)·공효련(公孝連)에게 명하여 청란(靑鸞)·자봉(紫鳳)·연화(蓮花)·모란[牧丹]·고소대(姑蘇臺)·봉래산(蓬萊山)·금오(金烏)·옥토(玉兎)·은즉(銀鯽)·황룡(黃龍)등의 등(燈)을 좌·우부(左右部)로 나누어 다니, 천태만상으로 기교를 다하여 금은주취(金銀珠翠)로 꾸몄으며 비용이 1만 냥이나 들었는데, 만세산 밑에 달고, 왕이 황룡주(黃龍舟)에 올라 구경하였다. 부용향(芙蓉香:연꽃향) 수백다발을 태우고 납거(蠟炬:초) 1천 자루를 늘어세워 밤이 낮처럼 밝은데, 흥청 수백명이 늘어 앉아 풍악을 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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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31년 병신(1536,가정 15) 5월12일 (병인)

활 쏘는 것을 구경하고, 신하듦에게 시를 짓도록 하다

○觀文臣射于慶會樓下。 傳曰: “此非分邊之射也。 當各計其畫而賞之, 熟馬四匹、兒馬五匹, 速令入繫于池北。 前者武臣觀射居首者, 賞加, 其次熟馬, 又其次, 兒馬賜給, 已爲前例。 今亦依此規論賞事, 書于紙, 遍示射官可也。” 上以姑蘇臺七言律詩, 黃鶴樓五言律詩, 題書于紙, 而下之曰: “凡入侍之臣, 其皆製進。”

상이, 문신(文臣)들이 경회루 아래에서 활 쏘는 것을 구경하고 전교하기를,

“이는 양편으로 나누어서 활 쏘는 것이 아니니, 마땅히 각각 그 점수를 계산하여 상을 내리라. 숙마 4필과 아마 5필을 속히 연못 북쪽에 들여다 매어 놓으라. 전일 무신들을 관사(觀射)할 때 1등한 자에게는 상가(賞加)하였고 그 다음에게는 숙마를 주었고 또 그 다음에게는 아마를 내렸으니, 이미 전례가 되었다. 이제 또한 전례대로 상을 준다는 것을 종이에 써서 활 쏘는 관원들에게 두루 보여주라.”

하고, 상이 ‘고소대(姑蘇臺)’로 칠언율시(七言律詩)를 ‘황학루(黃鶴樓)’로 오언율시(五言律詩)를 짓도록 시제(詩題)를 내어 종이에 써서 내리면서 일렀다.

“입시한 신하들은 모두 글을 지어 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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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제22권 칠언절구(七言絶句)

고소대(姑蘇臺

정몽주(鄭夢周)


衰草斜陽欲暮秋 이즈러진 풀은 저녁볕에 가을이 저물려는데

姑蘇臺上使人愁 고소대 위에선 사람을 애끓게 한다

前車未必後車戒 앞 수레가 〈엎어진 것〉 뒷 수레가 경계하지 못하여

今古幾番麋鹿遊 지금까지 사슴들이 여기서 몇 번이나 놀았던고


[주C-001]고소대(姑蘇臺) : 전국시대 때에 오나라 오자서(伍子胥)가 오나라가 오래지 않아 망할 것을 탄식하기를, “마침내 고소대(姑蘇臺)에 들사슴들이 노는 것을 보리라.” 하더니, 과연 오나라가 망하고 뒤에 그 땅에 나라를 세운 이도 그것을 거울삼아 경계[戒]할 줄 모르고 여러 나라가 망하였음을 탄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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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대 옛터를 보며(蘇臺覽古)


李白


舊苑荒臺楊柳新 오래된 정원 황폐한 누대 버들잎이 새롭고

菱歌淸唱不勝春 마름 따는 아가씨 청명한 노래 봄이 노곤해

只今惟有西江月 지금은 오로지 서강에 달이 떠 있으나

曾照吳王宮裏人 전에는 오궁의 서시를 밝게 비췄으리


궁정에서 쫓겨난 이백은 천보(天寶) 五년(AD749)에 남쪽 오월(吳越) 일대를 유람했다. 옛날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오나라와 월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절실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BC494년 오나라 왕 부차(夫差)는 명신 오자서(伍子胥)의 도움을 받아 회계산(會稽山)에서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굴복시켰고 아버지 합려의 원한을 풀었다. 그리고 나자 부차는 풍광명미(風光明媚)한 소주(蘇州)에서 마냥 영화를 누렸다. 도성에서는 계원(桂苑)이란 정원과 고소대(姑蘇臺)란 누대를 만들어 궁전 누각을 세웠고, 또 천지(天池)란 연못을 파고 배를 띄우기도 했다. 더욱이 부차는 패자(敗者) 구천이 보내준 미인 서시(西施)에 빠져 나날이 유연(遊宴)만을 일삼았고 마침내 20년을 와신상담(臥薪嘗膽)하던 구천에게 패하고 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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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대(姑苏台, 姑蘇臺) 

亦作“姑胥臺”。台名。在 姑苏山 上,相传为 吴王 夫差 所筑。《墨子·非攻中》:“夫差 遂筑 姑苏之臺,七年不成。” 孙诒让 间诂:“按《国语》以筑 姑苏为夫差事,与此书正合……《越絶》以 姑苏为 闔閭 所筑,疑误。” 汉 袁康《越绝书·外记传吴地传》:“胥门外有九曲路,闔閭 造以游 姑胥之臺,以望太湖 。”元 萨都剌《登姑苏台》诗之二:“ 姑苏臺 上一尊酒,落日昏鸦无限悲。” 清孙枝蔚《姑苏台》诗:“姑苏臺上春可怜,姑苏臺 下草芊芊。”

姑苏台又名姑胥台,在苏州城外西南隅的姑苏山上。姑苏台遗址即今灵岩山也。 

公元前492年吴王夫差自战胜越国之后,在吴中称王称霸,得意忘形,骄傲起来,在国内大兴土木到处建造宫室、亭台楼阁,作为他享乐、荒淫无度的“蓬莱仙境”,长生逍遥之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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