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2)고려문신 이규보(李奎報)의 조강부(祖江賦)는 대륙의 기록이다.

한부울 2010. 4. 24. 23:23

발해(渤海)와 합천(陜川)은? http://blog.daum.net/han0114/17049653 

(1)고려문신 이규보(李奎報)의 조강부(祖江賦)는 대륙의 기록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886 

********************************

고려문신 이규보(李奎報)의 조강부(祖江賦)가 대륙양자강 조강부(祖江)을 도강한 기록인가 아니면 한반도에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지는 곳 조강(祖江)을 도강한 것인가?


(1).좌보궐(左補闕) 우보궐(右補闕)?

보궐이란 직책은 야후사전에 당(唐)대에서는 임금의 잘못을 간(諫)하여 바로잡거나 보완하던 벼슬인데 고려 때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낭사(郞舍) 벼슬이었다라고 하고 있으며

중서문하성은 고려시대 최고정무기관으로서 재부(宰府:재상(宰相) 집무하는 관아)라고도 하였으며 장관은 문하시중이었다 한다.

한어사전에는 보궐(補闕)은 “凡诸侯即位” 처럼 대체적으로 모두 제후의 직위이었던 것 같다.

중국 고려천자가 문하시중을 둔 것을 후세 역사가들이 제후로 본 것이 아닌가 한다.

만약 문하시중이 제후라면 고려는 틀림없이 연합체제의 광역적인 국가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조강(祖江)은 한강(漢江)과 임진강(臨津江)이 합류하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신증지리지에서는 경기(京畿) 풍덕군(豐德郡) 덕수현에 조강도(祖江渡)가 있다 했다.

보통 도(渡)라고 하면 나루터라고 하지만 한어사전에는 나루터를 도구(渡口)라고 한다.

그렇다면 조강도(祖江渡)는 나루터라고 할 수 없고 조강(祖江)을 건넌다는 표현이다.

조강(祖江)은 한강(漢江)과 임진강(臨津江)이 합류하는 곳이라 했으니 대륙 한강과 임진강을 찾으면 된다. 어딜까?


(3).이규보가 우보궐(右補闕)로부터 탄핵을 받아 귀양지 겸 낙직(落職)되어 경기도 계양(桂陽)군수로 전보되는데 신증은 계양(桂陽)을 지금의 한반도 경기도 부평(富平)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규보가 건넜다는 강이 한반도 한강이 아닌 대륙 장강(長江)을 건넜다고 한다면 계양(桂陽)은 대륙남방 호남성(湖南省) 장사시(長沙市)아래 침주시(郴州市)계양현(桂陽县)일 가능성이 크다.

침주시(郴州市)계양현(桂陽县)에서 다시 역추적하면 이규보가 건넜다던 조강도(祖江渡)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동정호 동쪽 강 지류를 타고 남하 하면 상강(湘江)에 이르고 중간에 장사(長沙)를 거치며 다시 상강을 타고 래수(耒水)로 들어가 다시 서하(西河)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침주시(郴州市)계양현(桂陽县)에 닿는다.

 


(4).기구당지족비(豈瞿塘之足譬)-어찌 구당(瞿塘)에 비할 뿐이겠으랴~.

조강을 어찌 구당(瞿塘)에만 비교 할 수 있겠는가 이다.

구당협(瞿塘)이외,  장강삼협(長江三峽)이라 하여  무협(巫峡)과 서릉협(西陵峡)이 있다.

대륙 특히 양자강 본류에는 이와 같은 곳이 많다 란 표현일 것이다.


鳥鳴軋軋。猿哭啾啾。......


(5).새 소리 알알(軋軋)하고 원숭이 울음 추추(啾啾)하네~

새소리는 그렇다 치고 원숭이 울음이라 하였는데 이규보가 가는 노정에 원숭이가 있다는 말이다.

이규보가 간 곳이 한반도라면 한반도에 도대체 무슨 원숭이가 있는가?

그러나 장사시(長沙市)와 계양현(桂陽縣)에 들어가는 구()로서 가장 적합한 수로(水路)로 찾아보면 바로 양자강 동정호(洞庭湖) 남동쪽으로 흐르는 수로가 있다.

바로 그곳이 조선 관리들이 귀양가게 될 때 통하는 곳으로서 특히 장독이 빈발하여 두렵게 여기는 습한 기후의 땅 아열대지역 장사(長沙)와 연결되는 수로이며 또한 계양현으로 들어가는 곳이라 그 지역에 원숭이가 없다 할 수 없다.

추추(啾啾)는 처량하게 부르는 소리. 구슬프게 부르짖는 소리라 풀이한다.

 

                            白掌長臂猿分佈在中國西南部、緬甸、泰國和整個馬來半島。

 

洞庭湖畔,猿猴在树上哀啼,人坐在木兰舟上,顺水漂流。

동정호반에 원숭이가 있어 나무 위에서 슬프게 우는데 사람들은 목단 배에 앉아 물 흐르는 곳으로 흘러간다.


嗟此遐征。古豈無之。孟三宿而出晝兮。丘去魯兮遲遲。賈誼洛陽之才子兮。謫長沙之濕卑。聖賢尙爾。予復何悲。


(6).아, 멀리 떠나가는 길, 옛날엔들 어찌 없었으리. 맹자(孟子)는 세 밤 자고 주(晝) 땅으로 나갔고, 공구(孔丘)는 노(魯) 나라를 떠날 제 지지(遲遲 더디고 더딤)하다 탄식했네. 가의(賈誼)는 낙양의 재주 있는 사람으로서 장사(長沙)의 비습(卑濕:아열대기후)한 땅으로 귀양 갔으니, 성현(聖賢)들도 오히려 그러했거늘 내가 다시 슬퍼할 게 무엇이랴.

 

한반도 조선에 장독이 성행하던 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http://blog.daum.net/han0114/17049543 

 

양자강을 건너 장사와 계양으로 가는 길은 매우 더디고 습한 곳으로서 한번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곳임을 강조하고 성현들도 그러했는데 자신이 어찌 망 서릴 것인가 다짐하는 문장이다.


鵠山隱翳兮漸遠。望長安兮徒自疲。業已離兮上都兮。欣桂陽之伊邇。

(7).곡산(鵠山 송악산)은 점점 멀어 보이지 않으니, 장안(長安)을 바라보면 저절로 피해지기만 하는구나. 벌써 상도(上都)를 떠났음이여, 계양(桂陽)이 차차 가까우니 기쁘구나.


그런데 곡산(龍鵠)은 강서성(江西省)에 곡산이 있으나 정황상 맞지 않는 것 같고 오히려 사천성 용곡산(龍鵠山)이 곡산이 아닌가 한다.

 

한어자료 특히 중공(中共)자료 중 가장 신빙성이 없다고 보는 것은 상도(上都)란 위치설명이다.

당대종(唐代宗) 청세조(淸世祖) 외 시기에는 어떤 곳에 있었을까?

상도(上都)가 있었다면 신강(新疆)에 있어야 맞다.

상도(上都)서울. 경도.

① 당(唐) 대종(代宗)때의 산시성(陕西省) 장안현.

② 세조(淸世祖) 때의 찰합이(察合爾) 다륜현(多倫縣)의 동남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3권  

경기(京畿)

풍덕군(豐德郡)


[산천]

조강도(祖江渡) 덕수현에 있다. ○ 고려 백원항(白元恒)의 시에, “나룻배 떠날 무렵 늦은 조수 밀려 왔는데, 말을 멈추고 나루에 서서 홀로 쓴웃음 짓네. 언덕 위 세상 사정은 어느 날에나 끝날건가. 앞 사람이 건너기도 전에 뒷사람이 왔네.” 하였다.

○ 이규보(李奎報)가 우보궐(右補闕)로부터 탄핵을 받아 계양수(桂陽守)에 제수되어 이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강물이 본래 세찬데다가 마침 폭풍을 만나서 고생을 하고 건넜으므로 부(賦)를 지어 슬퍼하였다. 부에 이르기를,

*************************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제1권  

고부(古賦) 6수(首)

조강부(祖江賦) 병서(幷序)


祖江賦 并序

貞祐七年四月。予自左補闕被劾。尋除桂陽守。將渡祖江。江水本迅激。適値暴風。困而後濟。爲賦以悲之。卒以自寬。


정우(貞祐 금 선종(金宣宗)의 연호) 7년(정우는 4년뿐이니 흥정(興定) 3년인 1219년까지 친 것이다) 4월에 내가 좌보궐(左補闕)에서 탄핵을 받고 얼마 후에 계양(桂陽 지금의 경기도 부평(富平)) 원으로 부임하는 길에 조강(祖江 한강(漢江)과 임진강(臨津江)이 합류하는 곳)을 건너려고 하였다. 이 조강은 본래 물결이 빠르고 세찬데다 마침 폭풍을 만나 온갖 곤란을 겪은 후에 건너게 되었다. 그래서 이 부(賦)를 지어 신세를 슬퍼하고 끝내 마음을 스스로 달래었다.


浩浩江流。燭如涇水。漆色而泓。難俯視。湍又激而迅兮。豈瞿塘之足譬。控百川之奔會兮。若鼎湯之驚沸。


(신증)“넓고 넓은 강 흐림이 경수(涇水:개울)처럼 흐리구나. 검은 물 너무 깊으니, 겁나서 굽어볼 수 없네. 여울이 사납고 급함이여, 어찌 구당(瞿塘)과 비교할 수 있으랴. 여러 물이 한데 모여 급히 흐름이여, 솥 안에 끓는 물이 용솟음치는 듯하구나.


(동국)넓고 큰 이 조강물은 흐린 것이 마치 경수(涇水)와 같아, 칠처럼 검은 빛이 출렁이므로 겁이 나 내려다보기 어렵구나. 여울이 또 거세고도 빠르게 솟구쳐 흐르니 어찌 구당(瞿塘)에 비할 뿐이겠으랴. 온갖 냇물이 한 곳으로 모여들어 마치 솥에 물이 끓어 솟아오르는 듯하다.


呀呀以流涎。又安測毒龍之潛伏以伺。泝灘欲徑進兮。船如行而尙止。不夕而暝。不風而波。雪浪礧石以崩騰兮。若秦晉戰于彭衙。


이무기와 악어가 서로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또 독룡(毒龍)이 숨어서 엿보지 않는 줄 어찌 알겠느냐? 여울로 거슬러 올라가 빨리 건너려고 하니, 배가 가는 듯하다가 그만 제자리에 멈추어 있다. 저녁이 아닌데도 사방이 캄캄하고 바람도 불지 않는데, 거센 물결이 일어나 눈 같은 파도가 쾅쾅 바위에 부딪치는 모양은 마치 진(秦)과 진(晉)이 팽아(彭衙 문공(文公) 2년 진후(晉侯)와 진사(秦師)가 싸운 곳)에서 싸움을 하는 듯하다.


篙工狎翫靈胥兮。猶畏夫洄洑與盤渦。顧區區一瞥之所如。豈以其澎濞鬱怒兮成此邈遐。予旣被謫。遭此險流。孤舟兀以出沒兮。其將安適兮去悠悠。望平皐兮草暗。遡極浦兮煙愁。


뱃사공은 영서(靈胥)도 업신여기건만, 굽이쳐 흐르는 웅덩이는 오히려 두려워하네. 잠시면 건널 수 있는 곳을 험난하여 이렇게 오랜 시간을 끌게 되었네.

내가 이미 귀양을 가게 되어 이렇게 험한 강물을 만났구나. 외로운 배 물결에 뜨기도 하고 잠기기도 하는데 장차 어디로 가려고 이런 애를 쓸까. 평평한 언덕에는 풀빛조차 어둑어둑하고 먼 갯벌에는 연기도 시름겹구나.


鳥鳴軋軋。猿哭啾啾。落日兮掩掩。黃雲兮浮浮。雖五馬之足榮兮。亮非吾之攸期。嗟此遐征。古豈無之。孟三宿而出晝兮。丘去魯兮遲遲。賈誼洛陽之才子兮。謫長沙之濕卑。聖賢尙爾。予復何悲。


새소리도 슬픈 듯 짹짹하고 원숭이 울음도 구슬픈데 넘어가는 햇빛 뉘엿뉘엿 누른 구름은 뭉게뭉게, 아무리 오마(五馬)가 영화스럽다 할지라도 나로서 바란 바는 아니었네.

아, 이렇게 멀리 떠나는 길이 옛날에도 어찌 없었으랴. 맹가(孟軻)도 사흘 밤 자고 주(晝)로 떠났고, 공구(孔丘)도 노(魯) 나라를 떠나는 걸음이 더디었다네. 가의(賈誼)도 낙양(洛陽)의 재자(才子)였건만 비습(卑濕)한 장사(長沙) 땅에 귀양 갔었다. 성현(聖賢)들도 오히려 이렇게 되었는데 나쯤이야 뭐 슬플 것이 있으랴?


較昔人之未遇兮。吾又專城兮斗仰。纍纍。鵠山隱翳兮漸遠。望長安兮徒自疲。業已離兮上都兮。欣桂陽之伊邇。于以泊舟。于彼碕涘。誰其來迎。貿貿殘吏。


옛사람의 불우(不遇)에 비교하면 나는 또 전성(專城)으로 인(印)을 찼구나.

그러나 곡산(鵠山 개성(開城) 송악산(松岳山))이 뒤로 점점 멀어지자 장안(長安)을 바라보니 마음이 절로 괴롭구나. 벌써 상도(上都)을 떠나오니 가까이 보이는 계양(桂陽)이 반갑다오. 일렁이는 배를 물가에 대고 저 바위 언덕으로 올라간다. 누가 나와서 맞이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늙은 아전(衙前)들이네.


紛綵幕兮葳蕤。爛紅旆兮旖旎。弭節兮山之椒。炬火照林兮鳥驚。以飛聊逍遙以散髮兮。風攪攪兮吹衣。江水駚而疾兮。予旣濟其何疑。行矣尙足樂兮。何必眷眷兮懷歸。出處不自謀兮。樂天知命兮先哲是希。


채막(綵幕)은 매우 훌륭하고 붉은 깃발도 찬란하다. 절모(節旄)를 어루만지면서 초주(椒酒) 한잔 들이키는데 횃불이 숲에 비치므로 새가 놀라 날아간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슬슬 거니니 바람 설렁설렁 옷자락을 날리네. 험한 강물 아무리 사나워도 나는 벌써 건너왔으니 무서워할 것이 무엇 있겠으며 서울을 떠났어도 오히려 즐길 수 있으니 뭐 돌아가려고 애쓸 필요 있겠는가?

출처(出處)는 맘대로 안 되는 것, 하늘이 내려준 운명을 그대로 즐기면서 선철(先哲)과 같기를 희망해야지.

***************************************

경수(涇水) : 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강으로 그 물이 흐리다. 《시경(詩經)》패풍(邶風) 곡풍(谷風)에 “경수는 위수(渭水)를 흐리게 만든다.” 하였다.

구당(瞿塘) : 중국 사천성(四川省) 동쪽에 있는 구당협(瞿塘峽)인데 험하기로 유명하다.

영서(靈胥) : 물귀신의 별칭. 좌사(左思)의 오도부(吳都賦)의 “긴 바람을 휘몰고 영서를 업신여긴다.” 한 주에 “오자서(伍子胥)의 넋을 영서라 한다.” 하였다.

오마(五馬) : 태수(太守)의 별칭. 《북제서(北齊書)》유원책전(柳元策傳)에 “유씨 한집안 5형제가 모두 태수가 되어 각각 말 한 필씩 타고 다녔던 까닭에 그 당시 사람들이 부럽게 여기면서 유씨의 문정에는 오마가 늘어서 있다.” 하였다.

맹가(孟軻)도……떠났고 : 가(軻)는 맹자(孟子)의 이름. 《맹자(孟子)》공손추 하(公孫丑下)에 “천리 먼 길에 제왕(齊王)을 찾아왔으나 잘 대우하지 않기 때문에 사흘 밤 지난 후 그만 주(晝)로 떠났다.” 하였다.

공구(孔丘)……더디었다네 : 구(丘)는 공자(孔子)의 이름. 《맹자(孟子)》만장 하(萬章下)에 “공자가 노(魯) 나라를 떠날 때 나의 걸음이 더딘 것은 부모의 나라를 버리고 가는 때문이다 했다.” 하였다.

가의(賈誼)도……귀양 갔었다 : 한 문제(漢文帝) 때 낙양(洛陽) 사람으로 문명(文名)이 높았다. 22세 때 문제(文帝)가 불러서 박사(博士)를 삼고 그 뒤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제수하여 정삭(正朔)을 고치고 복색(服色)을 바꾸며, 법도(法度)를 제정하고 예악(禮樂)을 일으키는 등 많은 일을 했다. 이런 공(功)으로 문제가 그를 공경(公卿)에 앉히려 하자 강후(絳侯)인 주발(周勃)ㆍ관영(灌嬰) 등의 참소를 입어 끝내는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당했다. 그가 장사로 가면서 상수(湘水)를 걸 널 때 조굴원부(弔屈原賦)를 지어 자신의 처지에 비유했다. 얼마 후 다시 양 회왕(梁懷王)의 태부가 되어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고서 3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전성(專城) : 전성백(專城伯)의 약칭으로 한 고을 원이란 칭호이다. 당(唐) 나라 소정(蘇頲)의 시에 “떠나는 길 멀다고 하지 말라. 전성백 모두들 귀히 여긴다.” 하였다.

절모(節旄) : 임금이 사자(使者)에게 주는 기. 《한서(漢書)》소무전(蘇武傳)에 “한(漢) 나라에서 가지고 온 절모가 다 떨어지도록 흉노(匈奴)에게 잡혀 있었다.” 하였다.

초주(椒酒) : 산호와 다른 약재(藥材)를 섞어서 담근 도소주(屠蘇酒) 따위로 사기(邪氣)를 물리친다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