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문제에서도 별스럽지 않게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것을 다시 보고 관찰하다 보면 얼마나 반도사관에 우리스스로가 찌들어 있는 것인가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기존 역사서에도 이러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송(宋)나라 서긍(徐兢)이 지은 책 고려도경에도 그러한 것이 많이 있다.
사실 솔직하게 느낌부터 말하려 한다면 서긍을 송나라 사람이라고 하여 지금의 한족이라고 주장하는 대륙역사에 포함되어야 할 인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려연합에 속한 정부사신으로 받아들여진다.
어쨌든지 아래 선화봉사고려도경 기록에서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용봉(龍鳳)과 명단(茗團)이란 단어이다.
용봉(龍鳳)은 무엇인지 설명이 없다.
그러나 명단은 송나라 차(茶)라고 명시하고 있다.
과연 그런 설명이 맞는가?
오히려 한어 자료를 보면 용봉과 명단이 함께 어울려 뜻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송나라에서 조공(朝貢)으로 차(茶)를 바친다는 것인데 바로 용봉차(龙凤茶)란 말이다.
그것을 한어자료에서 공다(貢茶)성격을 가진 용봉단다(龙凤团茶)란 뜻이다.
단다(团茶)를 용단(龙团)으로도 불린 것 같다.
“龙团”或龙茶、盘龙茶、龙焙、小团龙;印度凤者称“凤团”或凤饼、小凤团等。
둘째 육상(六尙)의 이름난 진품과 사방의 맛좋은 것에서
則六尙之名珍。四方之美味。無一不具
육상(六尙)은 숭상하는 尚冠(관)、尚衣(의)、尚食(식)、尚沐(씻기청결)、尚席(자리)、尚书(글)를 나타내는 것인데 중국이란 지위가 아니면 이런 단어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인다.
한어사전:掌宫廷供奉之官的总称。秦 始置六尚,曰尚冠、尚衣、尚食、尚沐、尚席、尚书,掌诸供奉。隋 之六尚属殿内省,曰尚食、尚药、尚衣、尚舍、尚乘、尚辇。唐 改殿内省为殿中省,所属六尚与 隋 同。宋 殿中省无尚乘,另设尚醖,亦为六尚。唐 陈子昂 《为武奉御谢官表》
셋째 상국(上國)의 파리(玻梨 유리)ㆍ마뇌(馬腦 瑪瑙)ㆍ비취(翡翠:에메랄드)ㆍ서시(犀兕 무소의 뿔) 등 기이한 완상품들을 상 위에 진열하고..에서
上國玻梨,馬腦,翡翠,犀兕,瑰奇玩用之物
여기서도 상국의...것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사실 송나라 서긍이 보아 그가 상국이라고 한 것은 바로 고려임을 지칭하는 것인데도 마치 상국의 것을 고려가 분에 넘치게 차려놓은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은 내용상 문맥이 맞지 않는 상황이다.
유리(13세기 시리아), 마뇌(인도), 비취(미얀마, 중앙아시아 호탄지방)도 그렇고 무소뿔(아열대지방)도 한반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려가 신라를 통합한 유라시아제국으로서 연합형태의 제국이라면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판단되어 서긍이 자랑스러워 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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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봉사고려도경 제6권
궁전(宮殿) 2
연영전각(延英殿閣)
...今入朝進貢使資諒。齎桂香御酒龍鳳茗團珍菓寶皿來歸。嘉與卿等。樂斯盛美。臣僚皆皇駭恐懼。退伏階陛。辭以固陋。不敢干盛禮。王趣令就坐。溫顏以待之。備物以享之。其供張之設。器皿之列。觴豆之實。菓核之品。則六尙之名珍。四方之美味。無一不具。復有上國玻梨,馬腦,翡翠,犀兕,瑰奇玩用之物。交錯於桉上。塤箎椌楬琴瑟鐘磬安樂雅正之聲。合奏於堂下。王執爵。命近臣監勸曰。君臣交際。惟以至誠。其各盡量。不辭而飮。左右再拜。告旨而卒爵。或獻或詶。和樂孔皆。
입조(入朝 송 나라에 조회하러 가는 것)했던 진공사(進貢使) 자량(資諒)이, 계향(桂香)ㆍ어주(御酒)ㆍ용봉(龍鳳)ㆍ명단(茗團 송나라 차)ㆍ진과(珍菓:진귀한 과일)ㆍ보명(寶皿:보물그릇)을 가지고 돌아왔기로, 아름답게 여겨 경들과 함께 이 훌륭하고도 아름다움을 즐기고자 하노라.’
하니, 신하들이 모두 황송하고 송구스러워 섬돌에 물러나 엎드리며,
‘고루(固陋)한 몸이라 감히 훌륭한 예식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하고 사양하니, 왕이 곧 도로 가 앉도록 하고, 온화한 안색으로 대하며 갖가지 음식을 갖추어 먹였는데, 거기에 차려놓은 그릇과 잔이나 접시에 담긴 음식과 갖가지 과일은, 육상(六尙:尚冠、尚衣、尚食、尚沐、尚席、尚书)의 이름난 진품과 사방의 맛좋은 것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상국(上國)의 파리(玻梨 유리)ㆍ마뇌(馬腦 瑪瑙)ㆍ비취(翡翠:에메랄드)ㆍ서시(犀兕 무소의 뿔) 등 기이한 완상품들을 상 위에 진열하고, 훈(壎)ㆍ지(箎)ㆍ강(椌)ㆍ갈(楬)ㆍ금(琴)ㆍ슬(瑟)ㆍ종(鐘)ㆍ경(磬)의 즐겁고 단아한 곡조로 당(堂) 아래서 합주(合奏)하도록 하고, 왕이 잔을 들고서 근신(近臣)을 시켜 권하며 이르기를,
‘군신 사이는 오직 지성으로 하여야 하는 것이니, 각기 양대로 사양하지 말고 마시라.’
하니, 좌우 신하들이 재배(再拜)하면서 감사함을 아뢰고 잔을 비웠다. 그리고는 잔을 올리기도 하고 혹은 받기도 하여 화락한 즐거움이 매우 흡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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