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식물

튤립(鬱金香:Tulip)이 알려주는 놀라운 지명의 실체

한부울 2013. 11. 2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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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鬱金香:Tulipa)이 알려주는 놀라운 지명의 실체

 

글쓴이:한부울

 

강남(江南)을 전주(全州)

해양(海陽)을 광주(光州)

 

튤립(Tulipa)은 네덜란드의 국화 즉 나라의 꽃이라고 하며 17세기에 네덜란드를 거품경제현상을 일으킨 주범이기도 하다.

바로 앞글에서 언급한 네덜란드가 ‘코리아’에 1000톤급 상선‘코레호’를 건조하여 바치던 시기 1668년 보다 약 30년이 이른 1637년에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파동(Tulip mania), 튤립버블이라고 하는 사태가 발생되어 당시 네덜란드의 경제를 페닉 상태에 빠뜨리며 깡통부자들이 한꺼번에 양산되던 그 원인이 되던 꽃이다.

위키 자료에 따르면 네덜란드에 새롭게 소개된 식물이었던 튤립의 구근(球根)이 너무 높은 가격으로 팔리다가 갑자기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한 일이 발생된 것으로 구근이 숙련된 당시 기술 장인의 년 간 수입금액의 10배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팔렸다고 하였으니 거품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때 네덜란드에 수입된 튤립은 터기(Turkey)가 원산인데 이것이 인기를 끌었다고 하였다.

튤립 구근하나가 1억6000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하였으니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렇지만 더군다나 경제관념이 어두울 때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이런 파동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으로서 이와같은 현상은 적잖은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어 이 파동으로 네덜란드가 결국 영국에게 경제권을 내주는 형국을 맞았다는 약사와 같이 근세사에서 세계를 통제하거나 지배하던 세력이 이러한 파동을 겪었다면 이로인하여 심한 몸살을 앓았지 않았는가 예상이 되게 한다.

 

 

鬱金香在植物分類學上,是一類屬於百合科鬱金香屬(学名:Tulipa)的具鱗莖草本植物,又称洋荷花、旱荷花、草麝香、鬱香(《太平御覽》)、紅藍花、紫述香(《本草綱目》)

二月三月有花狀如紅藍」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綱: 單子葉植物綱 Liliopsida

目: 百合目 Liliales

科: 百合科 Liliaceae

屬: 鬱金香屬 Tulipa L.

被歐洲人稱為「魔幻之花」的鬱金香

 

튤립(Tulipa)은 식물분류체계가 외떡잎식물강(單子葉植物綱:Liliopsida), 백합목(百合目:Liliales), 백합과(百合科:Liliaceae), 울금향속(鬱金香屬:Tulipa)에 속하는 것으로 초사(草麝), 울금향(鬱金香), 울금초(鬱金草)라 하며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양하화(洋荷花), 한하화(旱荷花), 초사향(草麝香), 울향(鬱香)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홍람화(紅藍花), 자술향(紫述香)등이라 하며 본래 다양한 품종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백과사전을 보면 남동유럽과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라 하고 있지만 아래 영어자료를 보면 유라시아 전체를 가름하여 폭넓게 지정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The genus's native range extends west to the Iberian Peninsula, through North Africa to Greece, the Balkans, Turkey, throughout the Levant (Syria, Israel, Lebanon, Jordan) and Iran, North to the Ukraine, southern Siberia and Mongolia, and east to the Northwest of China.

 

이베리아 반도 서쪽과 그리스에서 북아프리카를 통과하고 발칸, 터어키, 리반트(Levant)지역 시리나,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 전체 그리고 이란, 우크라이나 북쪽, 시베리아남부, 몽골, 그리고 중국북부에서 동쪽까지 뻗어 분포지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어느 자료에도 아메리카대륙은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다.

이상하지 않는가?

지구를 딱 갈라 아메리카대륙에는 이 튤립이 생산되지 않았을까?

이처럼 근세사에서는 아메리카대륙은 아예 모든 생물근원지 대상에서 빼버리고 제외시켰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중요한 사실을 보기에 앞서 먼저 튤립에 대한 명칭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되는데 튤립을 울금이라 하여 강황과 섞어 부르기 때문에 발생되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먼저 아래 게시한 사계전서(沙溪全書) 경서변의(經書辨疑)에 울창(鬱鬯)이란 강신할 때 울창주(鬱鬯酒)를 땅에 부어 강신하는 것이니, 울창과 강신은 하나의 일일 뿐인데, 어떻게 존비(尊卑)로 나누어 두 가지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며 살펴보건대, 울창(鬱鬯)에는 두 가지가 있다라고 하면서 울금향(鬱金香)으로 술을 빚으면 울창(鬱鬯)이라 하니, 종묘에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것이라 하였고 또 하나는 울금향으로 빚지 않는 것은 거창(秬鬯)이라 하니, 상제(上帝)와 지기(地祗)에게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것이라 하여 먼저 옥과 폐백으로 천지를 섬기는 것은 가장 존귀한 것이라 첫째이며, 거창으로 신기(神祗)를 섬기는 것은 두번째이고 울창주로 종묘에 강신을 하는 것 또한 세번째라 한 것은 전국 시대(戰國時代) 각 국의 제도를 기록한 책으로《주례[周禮]》와 송나라 주희(朱熹:1130-1200)가 지은 의례《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천신지기(天神地祗)에 보인다 하였다.

 

이것을 다시 풀어보면 한어자료에 술창(鬯)은 고급한어사전(高級漢語詞典)에 상형문자라 하였고 술지게미로서

(象形。甲骨文字形,象器皿中盛酒形,中有小點,表示酒糟。本義:古代祭祀、宴飲用的香酒,用鬱金草合黑黍釀成)고대제사에 쓰튼 연음용으로서 향기나는 술이며 이것은 울금초와 검은 기장을 섞어 빚어 내는 것이라 하였으며 이것을 영어로 [tulip wine used in the offering sacrifice]강신할 때 제물(祭物)로 쓰이는 튤립술(tulip wine)이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 울금초가 튤립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아래 놀라운 기록을 볼 차례이다.

 

기언(記言) 제35권 원집(原集) 외편

동사(東事)

江南海陽。江南。今全州。海陽。今光州。本馬韓之地。西南際海。有鹽,鐵,海錯,橘,柚,梔,榧,竹箭之利。蜒俗不力田。作業漁採。無積聚江。南出楮,潻,梅,榴,莞,苧,蕉,薑,穰,荷,鬱金。

강남(江南)과 해양(海陽) 강남은 지금의 전주이고, 해양은 지금의 광주이다. 은 본래 마한의 땅으로 서남쪽이 바다에 접하였다. 소금ㆍ철ㆍ해산물ㆍ귤ㆍ유자ㆍ치자ㆍ비자(榧子)ㆍ죽전(竹箭) 등의 특산물이 산출된다. 해안 습속이 농사에는 힘쓰지 않고 고기 잡는 것으로 업을 삼았으며, 쌓아 두는 법이 없다. 강남에서는 닥나무ㆍ칠(潻)ㆍ매실ㆍ석류(石榴)ㆍ왕골ㆍ모시ㆍ파초ㆍ생강ㆍ짚ㆍ연[荷]ㆍ울금(鬱金) 등이 산출된다.

 

위 허목(許穆,1595-1682)의 기언(記言)동사(東事)에 보면 기절초풍할 이야기가 나오는데 놀랍게도 강남(江南)을 전주(全州)라 하고 해양(海陽)을 광주(光州)라고 하면서 특히 울금(鬱金)은 강남(江南)인 전주(全州)에서 토산(土産)으로 산출된다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3권

전라도(全羅道) 전주부(全州府)

[토산]석류(石榴), 종이 상품(上品)이다. 생강[薑]ㆍ울금초(鬱金草)ㆍ벌꿀[蜂密]ㆍ웅어[葦魚]ㆍ옻[漆]ㆍ사기그릇[磁器].

 

마찬가지로 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아도 전라도 전주부에 울금초가 토산으로 생산되었다는 기록을 살필 수가 있다.

때문에 전라도 전주는 이 울금초가 생산되었다는 것을 공히 확인할 수가 있다.

 

위에 울창 즉 울금주를 만드는 재료로서 울금초와 검은 기장을 섞는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이 울금초가 바로 튤립(tulip)이란 말이다.

 

튤립(Tulipa)을 울금향(鬱金香), 울금향(郁金香), 울금초(鬱金草), 양하화(洋荷花), 한하화(旱荷花), 초사향(草麝香), 울향(鬱香)《태평어람[太平御覽]》에 의거하고 홍람화(紅藍花), 자술향(紫述香)《본포강목[本草綱目]》에 의거한 것으로 百合科(Liliaceae) 울금향속(鬱金香屬:Tulipa) 별명(別名)으로 울금(鬱金), 목단백합(牡丹百合), 울금초(鬱金草), 향하화(洋荷花), 홍람화(紅藍花), 다구마(茶矩摩), 초사향(草麝香), 자술향(紫述香)등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위 기언에 기록된 울금은 튤립으로 봄이 맞다.

 

먼저 위에 글에서 "쌓아두는 법이 없다"라고 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늘 특산물이 산출되는 지역이니 구태어 쌓아놓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과 같다.

이러한 기후환경은 아열대지역이거나 열대지역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다.

이곳을 전주(全州)이며 광주(光州)라고 하였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도대체 강남(江南)을 전주(全州)라니 이 무슨 날 벼락같은 소리인가?

한반도에 강남(江南)이 도대체 어디 길래 충청도 밑에 있는 전라도 전주를 강남이라고 했단 말인가?

이것만 보아도 한반도 역사는 엉터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위 기언(記言)을 보면 또 강남(江南)과 해양(海陽)은 본래의 마한(馬韓)땅이라 하였고 서남쪽이 바다와 경계에 있다고 하였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긴가?

강남(江南)이 전주(全州)라고 하는 것도 놀라운 사실인데 전주(全州)와 광주(光州)가 서남쪽에 바다와 경계하고 있다고 하니 이것이 천지개벽할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네덜란드 국화라고 하는 튤립(Tulipa)의 근원지를 밝히는데 우리가 반도역사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지형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한반도 전라도(全羅道)에 전주(全州)라고 하면 서해(西海)가 가까이에 있다지만 바다가 경계에 있다고 할 수는 도저히 없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전라도(全羅道)에 광주(光州)역시 서해(西海)와 남해(南海)가 가까이에 있지만 서해나 남해모두 또한 경계에 있다고 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서남제해(西南際海)라 하면 서남해(西南海)의 가장자리, 가, 경계란 뜻의 제(際)라 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서남해, 가, 경계에 전주(全州)와 광주(光州)모두가 있다는 말이니 기절초풍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와같은 사실에서 아무리 이리저리 맞춰 보려해도 한반도 지형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이야기다.

이것을 다시 풀이하면 전주(全州)와 광주(光州)경계에 바다가 있다는 말인데 그 바다가 서쪽과 남쪽육지를 경계에 맞물리는 형태로 있는 바다를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르게 설명하면 제(際)를 변(邊), 연(沿)과 뜻이 상통하는데 변(邊)은 ‘물가’‘바다가’를 나타내고 연(沿)은 끼다, ‘테를 두르다’는 뜻으로 쓰여 서남(西南)으로 굽어진 육지가 바다를 끼고 테를 두르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지형을 어떻게 한반도에 있다고 강변하는가?

기언의 기록으로 따져보면 한반도에 전주나 광주가 없었다는 말과 같다.

서쪽이나 남쪽 모두 한반도처럼 바다가 밖이 아니라 바다가 육지 안쪽에서 육지 남쪽과 서쪽이 접하고 육지가 바다를 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만 풀 수 있는 지형구도로서 북아메리카대륙 바로 멕시코만(灣:Gulf of Mexico)이 서남제해(西南際海)의 형태에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북아메리카대륙 멕시코만의 지도 그림을 놓고 살펴보자.

어떤가?

이곳을 기언에서 서남제해(西南際海)라 한 것이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겠는가.

 

清雍正十二年(1734年)置海阳县,因地处黄海之北而得名。据《登州府志》:“以其地在海之阳,故名。”

 

강남(江南)은 본 블로그에서 여러 번 설명하고 밝힌바가 있지만 해양(海陽)은 처음한다.

물론 강남을 전주(全州)라고 하였으니 기회가 되면 다시 살펴볼 일이지만 우리에게 좀 생소하다고 볼 수 있는 지명 해양(海陽)을 광주(光州)라는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 하겠다.

 

광주(光州)를 한편으로 해양(海陽)이라 한다는 것은 등주부지(登州府志)에 ‘在海之陽’ 즉 태양이 뜨는 바다라 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빛'을 강조한 땅, 광주(光州)가 바다와 경계하는 것이라면 이 빛은 태양이 뜨는 바다라고 해야 맞다.

현재 해양은 동아시아대륙 산동성(山東省), 산동반도(山東半島)남쪽을 내려다보고 황해(黄海)와 접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원래 지명 해양(海陽)을 신중국 자료에 보면 1734년 청조(淸朝) 옹정(雍正:1723-1735)시기에 해양현(海陽縣)이 설치되었다 하고 양(陽)은 산(山)의 남쪽이나 강(江)의 북쪽을 나타내는 한자어라고 하였으니 황해(黄海)북쪽 땅을 일컫는다 한 사실과 현재 위치와 비교할 때 전혀 이러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분명 해양을 옛 이름이라고 하였지만 현재 동아시아대륙의 해양(海陽)이란 지명은 본래의 뜻과 다르게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 동아시아대륙은 본래의 광주(光州)나 해양(海陽)이 있었던 곳은 아님을 확인할 수가 있다.

즉 현재 동아시아대륙의 해양(海陽)도 잘못된 지명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반도도 아니고 동아시아대륙도 아니라면 강남(江南)이라고 하는 전주(全州)와 해양(海陽)이라고 하는 광주(光州)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곳은 감히 말하건데 북아메리카대륙과 중앙아메리카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해양(海陽)이 있었다고 하는 산동(山東)은 어딜 말하는 것일까?

그곳은 바로 5000m 고봉들이 즐비한 시에라마드레(Sierra Madre)산맥 동쪽을 말하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기언과 마찬가지로 위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더라도 전라도(全羅道) 전주부(全州府)에 울금초(鬱金)이 토산이라 한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전라도 전주(全州)에 튤립이 산출되었다는 사실은 위 허목(許穆,1595-1682)의 기언(記言)에 적혀 있는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므로 전혀 의심할바가 없다.

조선(朝鮮)땅 전라도 전주(全州)에 분명히 울금향(鬱金香) 즉 튤립이 산출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튤립(鬱金:Tulipa)의 근원종(根源種)을 찾아야 할 것이고 또한 그것을 통해 근원지(根源地)를 밝혀보지 않을 수가 없어 가장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아래 3가지 학명을 발췌하여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이 제공한 분포지도와 디스커버 라이프(Discover life)가 제공한 분포지도를 동시에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나타난다

 

Tulipa(鬱金香)

[분포지]

Utah Cache
CA
Canada, British Columbia
Missouri Boone Columbia
Missouri Saint Louis City
Missouri New Madrid Malden
동부
Michigan Manistee
New York
OH, PA, MD, MA
Connecticut, New London County
Canada, Nova Scotia, Bedford
Mexico, Distrito Federal멕시코시티, 차풀테펙Chapultepec주, Jardin Botanico식물원

 

위 분포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근세사가 말한 대로 네덜란드에서 튤립버블경제가 발생하였다고 한 사실에 부합하듯 유럽대륙에 근원지 표시 노란점이 빽빽하게 포진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고 또한 유라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마찬가지로 노란점이 표시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모든 자료에서 아메리카대륙은 언급조차 없는데 비해 북아메리카대륙에 노란 점이 표시된 것을 보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고 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위 분포지를 북아메리카대륙을 주안점으로 하여 세세하게 밝혀보았는데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를 중심으로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지역에 상당히 많은 분포지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유럽을 대신한 분포지도이다. 유럽땅에 유럽국가들이 생성되기전에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이 튤립이 폭넓게 재배되거나 생산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외 서부지역에는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Canada, British Columbia)와 유타주(Utah) 캐시(Cache)와 캘리포니아를 표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심이 볼 곳은 바로 강남이라고 할 수 있는 멕시코 땅에 멕시코시티(Distrito Federal)의 근교 차풀테펙(Chapultepec)과 카르딘 보타니코(Jardin Botanico)를 나타내고 있다.

 

Tulipa gesneriana L. GARDEN TULIP, Didiers Tulip

[분포지]
Washington, Skagit
California Modoc 와 Butte
Utah Cache 와 Utah County
Texas,
san angelo

 

위는 튤립 중 근원종이라고 판단 할 수 있는 린네(Tulipa gesneriana L.)가 학명을 명명한 것으로서

별명역시 정권률립(GARDEN TULIP)의 분포지를 살펴보니 공히 북유럽을 나타내고 있으며 특이하게 북아메리카대륙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북아메리카대륙에는 앞 튤립속(ulipa:鬱金香)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를 중심으로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지역에 상당히 많은 분포지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서부에 워싱턴주(Washington) 스카짓(Skagit)과 캘리포니아주(California)의 모독(Modoc) 와 뷰트(Butte)그리고 유타(Utah)의 캐시(Cache) 와 유타카운티(Utah County)를 나타내고 있으며 특별하게 보이는 곳이 바로 텍사스주(Texas)의 산 안젤로(san angelo)를 볼 수가 있다.

이곳은 바로 광주라고 할 정도로 빛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음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Tulipa celsiana DC. Lady tulip 캘리포니아

[분포지]

California, Riverside

 

마지막으로 위 종은 유럽이외 북아메리카대륙에서는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표식되고 있다.

이렇게 주요 세가지의 분포지도를 알아보았는데 공통점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에 표식된 주요 지역들이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매우 흥미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이미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바로 한반도지형에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서남제해(西南際海)란 지형적 조건에서 강남(江南)이라고 하는 전주(全州)가 있었고 해양(海陽)이라고 하는 광주(光州)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북아메리카대륙 멕시코만을 중심으로 한 지도로 맞추어 보니 놀랍게도 한장의 사진처럼 너무나도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전주를 강남하였던 곳이나 광주를 해양이라고 하였던 곳은 한반도가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이었던 것이다.

 

강남(江南)을 섬멸하면 조선(朝鮮)은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34

 

본 블로그에서 강남을 어디라고 하였던가?

강북(江北)에는 탱자[枳]가 있고 강남(江南)에는 귤(橘)이 있다던 경계의 강 리오 그란데(Rio Grande)을 나는 회수(淮水)라고도 하였으며 그 강을 중심으로 강 남쪽에는 강낭콩(菜豆)과 망강남(望江南:Senna occidentalis)이 생장하던 곳으로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대륙북부지경을 말한 것이다.

후금(後金)누루하치(奴児哈赤, 愛新覺羅 努爾哈赤, Aisin-gioro Nurhaci)가 도발하던 곳은 바로 후금(喉衿)이라는 곳으로서 목구멍, 목덜미 등을 나타내는 바로 중앙아메리카라고 하였다.

고려의 땅이 된지 오래 되었지만 고려에게 병합된 신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이 누루하치가 일어났다는 것도 본래 신라의 땅이 고려라고 할 때 매우 이치적으로 역사가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그곳은 본래 신라땅이었기 때문에 누루하치가 도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현 근세사에서는 무조건 그곳을 스페인의 영역이라고 하고 있지만 기실 신라땅이었던 것이며 남아메리카대륙 근원지라 하는 생물들 학명에는 COREA 가 붙은 학명이 많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후금(喉衿)이라고한 사실에서도 사람의 목구멍, 목덜미처럼 북과 남아메리카대륙을 연결하는 육교처럼 좁다랗게 길게 뻗어 이어진 중앙아메리카를 말한 것인데 이는 사람 목과 거의 같은 원리이다.

이곳을 옛날 부터 중원이라고 하였고 중국이라고 하였던 것으로서 순전히 가운데 놓여진 지형적인 형태를 말한 것이라고 글쓴이 수차 이야기 한바가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인조24년(1646)의 ‘역관 이형남, 한상국을 파견하여 왜사(倭使)를 따라가 대마도(對馬島)주를 위문하게 하다’ 라는 기록에서 귤왜가 말하길 "명나라를 더러 강남(江南)이라고 일컫기도 하며 조선(朝鮮)을 더러는 고려(高麗)라고 일컫기도 하니, 이것은 역시 서로 호칭(號稱)하는 말이오.”라고 한 것처럼 강남은 상징적인 것에 중심이 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명나라를 섬멸하면 조선은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라고 일갈했던 누루하치가 바로 명나라 근역에 있었던 것임을 알 수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조선은 멀지 않는 곳, 강북 북동지역에 조선이 버티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곳에 전통적으로 당(唐), 금(金), 송(宋), 원(元), 청(淸)이 있었다고 판단한다.

한반도역사에서 전주이씨(全州李氏)라 하여 이씨조선의 왕계보 본관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반도 전주가 아니라면 강남이라고 하는 후금(喉衿)에 원적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당(唐)왕 성씨가 이씨(李氏)라는 사실도 눈여겨볼 일이다.

한간에는 당나라 이씨와 전주이씨가 같은 부류라는 사실과 전주이씨가 경주이씨에서 파생된 성씨라고 한 사실등을 면밀하게 다시 검토되어야 할 문제에서 전주와 경주를 다시금 조명되어야 할 지명이다.

어쨌든 누루하치는 남아메리카대륙으로부터 생성된 세력으로 중앙아메리카로 밀고 들어온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조선말 청조(청정부:Qing Government)역시 동아시아대륙으로 옮기기 전까지 이곳에서 있었던 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주(全州)를 강남(江南)이라 한 허목(許穆,1595-1682)의 기언(記言)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본관도 모두 강남인 중앙아메리카대륙에서 답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다.

그리고 한반도로 이관되는 과정에서 1만여 명의 조선 유명 인사가 수록되면서 1913년 편집된 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의 사실여부도 여기서부터 출발해야하지 않겠는가 한다.

이렇듯 알고 나면 더욱더 마구 헝크러진 실타래를 보는 듯하여 마음이 답답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제 해양이라고 하는 광주를 알아볼 차례이다.

앞에서 등주부지(登州府志)에 ‘在海之陽’ 즉 태양이 뜨는 바다, 바다위에 태양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것이라고 하여 바다에 비친 빛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풀이라고 여겨지는데 이것이 해양(海陽)과 광주(光州)가 빛으로 어우러 질 수 있는 지명이 아닌가 할 정도로 무게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 동아시아대륙에서 위치를 놓기를 산동성(山東省), 산동반도(山東半島) 황해와 맞닿은 곳에 두었는데 이 해양역시 남쪽으로 황해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텍사스주(Texas)의 산 안젤로(san angelo) 역시 멕시코만을 남쪽으로 보고 있는 것이 같다.

텍사스주(Texas)의 샌 안토니오(San Antonio)라고 하는 도시와 거리 차이가 별로 없는데 이 샌 안토니오를 파야야 인디언(Payaya Indians)들은 상쾌한 바다(refreshing waters)라 하여 야나과나(Yanaguana)라 불렀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바로 빛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튤립을 분석함에 있어 또 한가지 더 부첨한다면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네덜란드에서 튤립버블이 발생되었을 때 가장 값비싸게 호가되었던 것이 터어키에서 수입산 튤립이라고 하였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

근세기의 대항해라는 활동범위가 절대 북아메리대륙과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대륙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터어키가 지금의 위치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치자(梔子)가 난 탐라(耽羅)는 주호(州胡)이고 호주(濠洲)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450


또 하나는 윗 글에서 오스트리아는 라틴어가 어원인데 독일어인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 는 'Eastern kingdom'를 라틴어화한 것으로 '동쪽의 나라'를 의미한 것이라고 하여 바로 오스트리아가 아메리카대륙에 있었음을 밝혀었다.

 

코리아는 세계에서 5번째 목화(木花, Gossypium)생산국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956


그리고 본 블로그 위 글에서는 국역승정원일기 고종 30년 계사(1893) 기록에 보면 임금과 통역을 맡아 하던 벼슬아치 전어관(傳語官)을 통하여 영사와 대화하는 내용에 오국(奧國)은 오스트리아(奧地利)라하고 인도(印度)와 터키(土耳) 두 나라 사이에 있다 한 사실에서 보더라도 오스트리아가 아메리카대륙에 있었다면 인도와 터키 역시 아메리카대륙에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터어키가 어디에 있었을까?

터어키는 주로 보통 고려로 통칭되는 것이기 때문에 북아메리카대륙 서부로 봄직하다.

위 분포지도에 보듯이 서부에 튤립의 DNA 분포지가 넓게 포진하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한참 맞추어 나가니 거의 다가 풀린 듯하다.

기언에서 기록한 강남의 전주도 알아보았고 해양의 광주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튤립을 수입하였다고 하는 터어키도 어디에 있었는가까지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코레호를 만들어 코리아에게 바치려고 하였던 네덜란드는 어디에 있었을까?

바로 부처님 손바닥내에서 벗어날 수가 도저히 없는 곳에 있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꼭 첨부하고 싶은 것은 정말 글쓴이가 파악한 이런식의 지형구도가 사실이라면 전라도는 멕시코영역까지 확대된 것이라고 감히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지리지에서 기록한 전라도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의 전라도를 비교함에 있어 변함없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란 판단이 있고 신증지리지가 출생한 중종이후는 오히려 좀 더 넗은 지역을 넓혔을 가능성을 내다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미수기언(眉叟記言)의 기록을 참고하자면 이 책이 왕명에 의해 전라도 나주(羅州)에서 처음 간행될 시기 숙종9년(1689)까지 조선의 전라도는 강남이라고 판단되는 멕시코지역을 포함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특히 숙종(肅宗, 1661-1720 재위:1674-1720)은 프랑스의 루이14세로 비견하는데 강력한 왕조를 건설한 왕으로서"짐이 곧 국가니라" 이라 하던 루이14세(Louis XIV 재위:1654-1715)는 태양왕(Louis the Great or the Sun King)이라까지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영토확장에 진력한 여지가 있는 것으로도 판단 할 수가 있다.

이것이 정녕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사실이라면 예상했던대로 당시 조선 즉 코리아는 네덜란드가 상선을 코레라고 명명하여 바칠 정도로의 위치가 강건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생사여탈지권을 가진 거대한 지배국으로서 통제력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이러한 놀라운 사실에서 그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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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전서(沙溪全書) 제13권  

경서변의(經書辨疑) ○ 중용(中庸)

혹문(或問)

○ 울창이란 강신할 때 울창주(鬱鬯酒)를 땅에 부어 강신하는 것이니, 울창과 강신은 하나의 일일 뿐인데, 어떻게 존비(尊卑)로 나누어 두 가지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 살펴보건대, 울창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울금향(鬱金香)으로 술을 빚으면 울창(鬱鬯)이라 하니, 종묘에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것이다. 울금향으로 빚지 않는 것은 거창(秬鬯)이라 하니, 상제(上帝)와 지기(地祗)에게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것이다. 옥과 폐백으로 천지를 섬기는 것은 가장 존귀한 것이며, 거창으로 신기(神祗)를 섬기는 것은 그다음이며, 울창주로 종묘에 강신을 하는 것 또한 그다음이니, 울창과 강신은 과연 두 가지이다. 이는 《주례》의 주 및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천신지기(天神地祗)에 자세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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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鬱金香Tulip)

 


鬱金香在植物分類學上,是一類屬於百合科鬱金香屬(学名:Tulipa)的具球莖草本植物,又称洋荷花、旱荷花、草麝香、鬱香(《太平御覽》)、紅藍花、紫述香(《本草綱目》),原產地从南欧西亚一直到东亚的中国东北一帶,為人熟知的外銷大國荷蘭初次引進鬱金香是在16世紀末,因生長地區緯度不同而花期各異,普遍在3月下旬至5月上旬。雖然全世界約有2,000多個鬱金香品種,但大量生產者大約只有150種。

歐洲人稱為「魔幻之花」鬱金香,自古以來就有一種莫名的魔力使園藝學家熱衷於品種改良,甚至有人傾家蕩產只為了它那稀有的球根。

鬱金香是荷蘭的國花。

1593年第一顆鬱金香花根,由一位荷蘭商人 格納(Guesters),從康士 坦丁(即是現在的土耳其)進口。


튤립·버블

 

튤립·버블(난초: Tulpenmanie, 영: Tulip mania, Tulipomania, 튤립광시대)은, 네델란드에서 1637년에 일어난 세계 최초의 버블 경제사건이다. 오스맨·터키로부터 수입된 튤립의 구근에 인기가 집중하여, 이상하게 고가가 붙었다. 그 후, 가격은 100분의 1 이하에까지 내려, 네덜란드 제 도시는 혼란에 빠졌다. 튤립·버블은 남해 포말 사건(잉글랜드)이나 미시시피 계획(프랑스)과 함께 근세 유럽의 3대 버블로 꼽힌다.

 

버블을 가져온 원인이 무엇으로 있는지,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후술 하는 것 같은 민중의 광기와 탐욕이 요구하는 우발설이나, 이러한 가격의 심한 변동은 일상적이었다고 하는 설 등이 있다. 네덜란드는 당시 경제대국이었지만 버블의 당사자가 된 민중은 궁핍한 생활에 맞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네덜란드의 북부 7주는 80년 전쟁에 승리하여, 17 세기의 초에는 실질상, 독립을 획득하고 거기에서 네덜란드는 일약 네덜란드 해상제국으로서 유럽에 군림했다. 이것은 포르투갈로부터 향료 무역을 빼앗은 것, 30년 전쟁에 의해 중부유럽이 혼란하게 되어 암스테르담에 상거래가 집중한 것,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바타비아 경영으로부터 이익을 주고 있던 것 등이 배경이 된다. 결과 소득은 최고 수준이 되었고, 해외의 미술품이 네덜란드에 집중되었다.

 

한편, 물가도 또 타 지역에 비해서 비교적 비싸게 되어 임금노동자나 직공 등의 연 수입은 대략 250 프로린과 추정되고 있다. 이것은 가족 4명이 먹는 것만으로 최상의 수입이며, 고기를 먹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말해진다. 그들이 버블에 들어갈 때, 가재도구나 가축 등 환금할 수 있을 것 같은 것 모두를 던져 넣었다.

 

한층 더 버블이 발생하도록 한 것은 카르바 주의 침투를 들 수 있다. 근면과 검약을 미덕으로 하는 카르바 주의가 퍼지고 있던 당시의 네덜란드에서는, 화려한 복장 등이 조심스러워졌다. 풍부할 수 있는 사람도 궁핍한 사람도 같은 복장을 하고 있어, 거리상으로는 사람의 빈부를 분별하는 것은 어려웠다고 말해진다. 이러한 신조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왜 투기에 치우쳤는지 현재 해명되어 있지 않다.

 

[네덜란드에 전파] 튤립의 발상은 천산산맥이라 전해진다. 오스만·터키는 세력을 넓히는 가운데 튤립과 만나, 눈 깜짝할 사이에 매료되어 버렸다. 이윽고 콘스탄티노풀(이스탄불)을 함락 시키면서 터키 사람들은 장엄한 궁전을 건립했다. 거기서 튤립이 재배·품종개량 되고 의복의 모양이나 회화에 등장하게 되었다. 16 세기가 되자 상인에 의해 유럽 각지에게 퍼져 나갔다.

 

방대한 품종 계통이라고 튤립이 인식되게 되는 것은 식물학자 카로르스·크루시우스의 연구에 의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새들과 구근식물을 연구하고 있던 크루시우스는 1593년 라이덴 대학에 초빙 되었다. 그는 풍부한 튤립의 구근과 함께 라이덴으로 옮겨 거기서 튤립의 연구·재배를 진행시켰다. 이것이 네덜란드에 튤립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크루시우스가 발견한 특성 속에, 후에 브레이킹이라고 불리는 돌연변이가 있다. 브레이킹을 일으킨 구근은 아름다운 점박이의 꽃을 붙였다. 이것은 바이러스에 감염한 구근이 모자이크병에 이환했기 때문에서 일어났지만 그 구조가 해명되는 것은 20 세기가 되고 나서이다.

 

[튤립의 특성] 튤립은 단기간으로 늘리는 것이 어려운 종이라 제품 부족상태를 부흥이라고 고가가 붙었다. 튤립은 종자로부터 육성하는 방법과 모구(구근)로부터 클론의 자구를 육성하는 방법이 있다. 종자로부터 기르면 교배로 신종이 태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꽃을 피울 때까지 3-7년 걸린다. 모구로부터 육성하는 경우는 그 해에 바로 꽃이 피지만, 모구가 만들어 지는 자구는2-3개 정도가 되어, 자구를 모구에 성장시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한층 더 발아하지 않는 종자·모구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급격한 수요의 증대에 생산이 따라가질 못했다.

 

[붐 ]센펠·아우그스트스 바불의 진전은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수급의 불균형에 의한 고가가 붙은 제1단계, 투기자들이 참가하는 제2 단계, 그리고 자본을 갖지 않는 서민을 몰려드는 제3 단계이다. 이 제3 단계에 이르러 버블의 양상을 나타나고 폭락과 혼란을 부르는 것이다.

 

Anonymous 17th-century watercolor of the Semper Augustus, famous for being the most expensive tulip sold during tulip mania

 

[애호가들] 1610년대, 최초로 튤립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사로잡힌 것은 여유가 있는 식물 애호가들이었다. 손에 들어오기 어려운 튤립의 구근은 당초부터 고가로 거래되었다. 또 원예가·애호가들은 스스로 품종 개량이나 재배도 실시하여, 다양한 이름의 튤립이 태어났다. 「리후킨 제독」(Admiral Liefken) 「팬·델·아이크 제독」(Admiral Von der Eyk) 「피세로이」(부왕, Viceroy) 「페네라리시모」(Generalissimo)등이 대표적인 고급 품종이다. 그 중에서도 애호가들이 절찬한 것은 브레이킹을 일으켜 보라색과 흰색의 줄무늬의 꽃을 가지는 「센펠·아우그스트스」(무궁의 황제, Semper Augustus)이다. 단색의 품종은 싸게 매매되었지만, 이러한 아름다운 꽃의 구근은 적어도 1000 프로린의 값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튤립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에 따라 가격이 점점 더 올라갔다.

 

[투기자들의 참가] 튤립의 인기에 투기자가 주목한 것은, 1634년 즈음으로 알려진다. 그들은 튤립을 재배하는 것이나 꽃의 아름다움에 흥미는 없고, 그 가격 상승을 목적으로 하여 시장에 뛰어들었다. 튤립 인기가 라이덴으로부터 암스테르담, 하르렘 등 타 도시에 전해져, 수요의 증대를 전망하고 구근의 매매를 실시했다. 과연 그들의 전망이 맞아들어 일확천금을 이루는 사람도 나타났다. 고급 품종의 구근 하나와 저택이 교환되는 일도 있었다.

 

고가의 구근은 에이스(aas, 1 에이스=0. 05 g) 단위로 재어지고 값이 붙여졌다. 그렇지 않은 품종은 개수로 팔았고, 싼 것은 봉투찬미하고 정량 판매 되었다.

이때 튤립 거래가 구근을 현물로 매매되고 있었다. 또 현물거래이기 때문에, 튤립 매매를 하는 것은 겨울 동안에 중단되었다. 그러나 과열하는 튤립 인기는 계절을 불문하고 거래할 수 있는 구조를 갈구하고 있었다.

 

[대중화] 튤립으로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소문이 직공이나 농민들에게 퍼지자 그들이 서서히 시장에 참가해 들어왔다. 자본을 갖지 않는 그들은 우선 스스로도 살 수 있는 정도의 구근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정도의 품종에서도 값은 올라, 전매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 속출했다. 그런 식으로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연중 거래와 거기에 따르는 선물거래 제도의 도입이다.

 

이러한 거래는 정규 증권거래소가 아니고 선술집에서 행해졌다. 거래에 대해 현금이나 현물의 구근은 필요가 없었다.「내년의 4월에 지불한다」「그 때에 구근을 건네준다」라고 하는 어음으로 해결되게 할 수가 있어 몇 안 되는 나중 입금으로 매매할 수 있었다. 나중 입금이라고 해도 현금이라고는 할 수 없고, 가축이나 가구 등 환금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이라면 뭐든지 통용되었다. 그 어음이 거래를 반복하는 동안에 몇 사람이 경유해 나가, 채권자나 채무자가 어디의 누군지 모를 정도가 되고 말았다. 선물거래 시스템에 의해 자본이 없는 사람도 투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빵가게나 농민까지 튤립시장에 참가해, 거기에 따라 수요가 부풀어, 염가의 품종조차 급등했다. 그러나 가격의 상승에 수반해, 본래의 구매자인 식물 애호가는 사지 않게 되어 갔다. 특히 민중이 거래하고 있던 염가의 구근은 애호가에게 보고 도 되지 않았다.

 

당시의 일화가 전해진다. 영국에서 온 식물 애호가가, 네덜란드의 친구 집을 방문했다. 그 애호가는 드문 양파와 같은 것을 발견하고 그 가죽을 벗겨 안을 열어 보았다. 친구가 돌아와「이것은 뭐라고 하는 양파입니까」라고 물었다.「팬·델·아이크 제독이라고 한다」「고마워요」애호가는 노트에 메모를 적으면서 질문했다.「이것은 네덜란드에서는 흔한 품종인가」친구는 애호가의 목덜미를 잡고「함께 행정장관에게 가보면 안다.」라고 대답했다. 애호가는 금화 2000매의 배상금을 지불할 때까지 채무자 감옥에 감금되었다.

 

                                  amphlet from the Dutch tulipomania, printed in 1637

 

 

                                        A standardized price index for tulip bulb.

 

[급락] 1637년 2월 3일, 돌연의 폭락이 일어났다. 가격이 내렸다고 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구매자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 상태였다. 어음은 부도나고 지불하지 못할 채무를 부담한 사람은 3000명이라고도 한다. 네덜란드 각 도시는 혼란 빠져 여기저기에서 지불할 수 있는지 입씨름이 난무했고 채무자 도주가 발생했다. 지금 모든 채권자가 동시에 채무자가 되고 말았다. 채무이행을 요구하면서 재판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었지만, 채무자에게 이행능력이 없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사태 해결에 유효한 방법은 되지 않았다.

 

빼고 넣고 하지 않는 정세에 의회·시 당국도 간신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채무자와 채권자의 강력한 치고 박고하는 식의 전투의 끝에「조사가 끝날 때까지 튤립거래는 보류로 한다」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것은 한꺼번에 총체적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어음에 의한 계약은 조금씩 없었던 것으로 되어가고, 소수의 파산자와 벼락부자를 남기며 튤립광시대는 막을 내렸다.

 

[버블의 영향] 튤립·버블은, 네덜란드 경제나 그 후의 역사에 거의 영향을 남기지 않았다. 식물 애호가는 고가의 튤립을 계속 요구했고 다른 산업이 타격을 받았다고 하는 사료도 발견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간파할 수 있는 것은 정신문화에의 영향이다. 절제·금욕을 취지로 하는 카르바 주의적 미덕이 부활하여, 튤립 시세에 참가한 사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팜플렛이 출판되었다. 튤립을 로마 신화의 여신 식물 상에 비유하고「탐욕인 식물 상에 헌상하는 바보들」이라고 비판되었다. 그 후 네덜란드인은 일시적으로 튤립을 싫어하게 되어, 네덜란드인의 사이에는 교훈으로서 구전되었다.

 

[역사학적 견해]튤립·버블은 대듀마의 소설·「검은 튤립」이나 회화에 그려질 뿐으로, 역사학적 시점으로부터 연구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스코틀랜드인 찰즈·맥케이가 저술한 이야기에 의해 1841년 세계에게 전할 수 있어 이 사건은 일약 각광을 받게 된다. 그 중 튤립·버블은 스캔 달라스에서 대중의 광기에 의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근년까지 맥케이의 버블상이 대개 받아들여져 착실한 연구 대상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E.A. 톰프슨 및 J. 트라자드 (2002)는, 튤립뿐만 아니라 당시의 물가는 항상 불안정하였고 대중의 광기로부터 사건을 설명하는 것은 잘못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계기로 근세기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어 튤립·버블의 전체상의 문제나 역사적 자리매김에 대해 향후 논의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있다.[일본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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