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격구는 당나라가 시원이 아니라 고구려이다.

한부울 2009. 10. 1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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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구는 당나라가 시원이 아니라 고구려이다.

먼저 스스로 분명치 않거나 내세울 수 없는 경우 크게 나타내지 않으려는 심사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중에 제일 잘 들어나는 것은 잘못 전달되고 오류가 있는 역사사실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서양스포츠로 변모한 polo의 시원이다.

서양에서는 BC 500년에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중국대륙정권은 당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바로 알겠는가?

그 두 주장과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란(페르시아), 인도, 당나라 모두 신라와 연계되고 고려로 이어졌으며 또한 조선으로 변모하였다.

고구려가 격구를 먼저 했다는 역사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고구려를 그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올바른 시원을 밝히고자 하는 세계사학계 원래 취지와 형평성으로 어긋나는 편협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고구려가 들어가야 한다.

고구려는 북 시베리아에서 유라시아까지 엄청난 영역을 넓히고 확보했던 정복왕조이다.

그러한 정복왕조가 바로 당나라가 아니라 신라에게 무너진 것이다.

중국이라 자칭하는 대륙중공사학계에서 분명 polo 즉 격구가 당나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 있게 그에 대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특히 동양사에 감초 같은 역할을 자임하는 일본사학계 역시 분명한 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처지역시 마찬가지다.

무엇 때문일까?

지금까지 격구는 당나라사람들이 먼저 시작하였다고 모든 자료에 실제로 그렇게 나온다.

하지만 당나라 사람들이 하는 격구 그림을 보면 이상한 점을 알 수가 있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머리에 쓰고 있는 관모가 꼭 고구려 절풍 같기도 하고 흑건을 둘러 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무용총 벽화 사냥도를 보면 고구려 복식에서 무장들 보통 관모에 깃털모양의 표식을 꽂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절풍(折風)이고 한다. 절풍에 꽂은 깃털 새 깃의 숫자로 신분, 지위의 높낮이를 표식 하였다고 보여 지는 복식관습인 것이다.

또한 덕흥리 벽화분 벽화에 흑건 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격구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巾은 역사기록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수건과 같은 형태의 천으로 머리를 둘러싸고 뒤에서 묶은 초보적인 모자인데 검은 천을 주로 사용하여 黑巾이라 하여 보통 신분이 낮은 사람의 복식이라 보이지만 신분이 높은 귀족들도 사냥과 같은 야외활동 때 지위와 상관없이 폭넓게 사용되었음을 고분벽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나라사람이라고 하는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고구려가 망하고 고구려 땅을 당나라가 차지한 것이 아니라 신라가 차지했다.

그리고 조선시조 태조이성계가 22살 때 격구를 하였다고 조선왕조실록 첫머리에 나온다.

이렇듯 고려왕실 귀족층에서 격구를 일상적으로 하였다는 말이다.

결국 격구는 당나라가 시원이 아니라 고구려가 바로 시원이었다고 보인다.

얼마 전 역사 사극인 MBC 수목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고구려가 격구 하는 모습을 재현하였는데 그러한 재현은 근거가 있고 타당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무용총 벽화-새 깃 꽂은 절풍 쓴 사람]

 

 

 

 

 

                                                        [덕흥리 벽화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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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태조 1권총서

태조가 22살에 관직에 나가다. 격구하는 방법

 

高麗恭愍王五年丙申,【至正十六年。】太祖年二十二, 始仕。 高麗俗每於端午, 選武官年少者及衣冠子弟, 習擊毬之藝。 至其日, 於九逵, 設龍鳳帳殿, 當路中立毬門, 王御帳殿觀之, 設宴會張女樂, 卿大夫皆從之, 婦女亦結幕於路之左右, 飾以錦段, 名畫彩毯, 觀者如堵。 擊毬者盛服飾, 競尙侈靡, 一鞍之費, 直中人十家之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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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민왕 5년(1356) 병신【지정(至正) 16년.】 태조의 연세가 22세인데 비로소 벼슬하였다. 고려의 풍속에 매양 단오절(端午節)에는 무관(武官)의 나이 젊은 사람과 의관(衣冠)의 자제(子弟)들을 뽑아서 격구(擊毬)의 기예(技藝)를 익혔는데, 그 날이 이르면 구규(九逵) 19) 에 용봉(龍鳳) 장전(帳殿)을 설치하고 길 복판에 구문(毬門)을 세우고, 왕이 장전(帳殿)에 나아가서 이를 구경한다. 연회를 베풀고 여악(女樂)을 벌려 놓으매, 경대부(卿大夫)들이 모두 따르고, 부녀들도 또한 길 왼쪽과 오른쪽에 장막을 매고 금단(錦段)으로 장식하여, 이를 화채구(畫彩毬)라 이름 하니, 구경하는 사람이 많이 모이게 된다. 격구(擊毬)하는 사람이 의복 장식을 화려하게 하여 다투어 사치를 숭상하니, 말안장 한 개의 비용이 중인(中人) 10가(家)의 재산에 해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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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구:(馬上曲棍球 Polo)

 

                                                               Polo Players

 

 

            Tang Dynasty Chinese courtiers on horseback playing a game of polo, AD 706.


馬上曲棍球,一般簡稱馬球,它的英文名词Polo源於藏語Pulu的音譯,意即“球”。马球是騎在馬上,用馬球桿擊球入門的一种体育活動。马球在中國古代叫「擊鞠」,據中國歷史上的記載其始於漢代,並風行於唐代,但對於馬球的起源,目前尚沒有確切的說法。

 

역사: 學者普遍認為馬球的歷史可追溯到公元前600年左右的波斯,隨後傳入吐蕃(現今的西藏)、中國中原、伊朗和印度等一些亞洲國家。今日的職業馬球運動主要普及於阿根廷,英國,印度,巴基斯坦和美國。


타구(打毬) 또는 포구(抛毬)라고도 한다. 오늘날의 골프 또는 하키와 같이 막대기로 공을 치는 경기이다.


원래 페르시아에서 비롯된 폴로 경기가 당(唐)나라에 전래되어 격구로 불리면서 고구려 ·신라에 전해졌으며, 고려시대에 성행하였다.


조선시대에도 1425년(세조 7)에 무관의 습무(習武)로 재흥되어 전기까지는 무과(武科)의 시취(試取) 과목이 되었으며, 정조 때에 이십사반(二十四般)무예의 하나로 정해져 격구보(擊毬譜)가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되었다. 또한 《용비어천가》 제44장에는 격구에 관한 노래와 기록이 있고, 《경국대전》 병전(兵典) 시취조의 격구 항목을 보면, 막대에 붙은 숟가락[杖匙] 길이 9치(27 cm), 나비 3치(9 cm), 자루길이 3자 5치(105 cm), 공 둘레 1자 3치(39 cm)이며, 출마표(出馬標)와 치구표(置毬標)의 거리는 50걸음, 치구표에서 구문까지는 200걸음, 구문 사이 거리는 5걸음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격구에는 말을 타고 하는 기마격구와 궁중이나 넓은 마당에서 하는 보행격구가 있다. 무신이 한 기마격구는 구장에서 말을 타고 막대기로 공을 쳐서 구문 밖으로 내보내는 놀이이다. 경기 방식은 처음에 경기자들이 말을 타고 출마표에서 격구봉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기녀가 노래하고 춤추면서 구장 한복판에 공을 내던지면, 양편 경기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공을 쳐 구문 밖으로 내보내는데, 공을 구문 밖으로 쳐낸 횟수가 많은 편이 이겼다. 보행격구는 궁중이나 넓은 마당 여기저기에 구멍을 파놓고 걸어다니며 공을 쳐서 구멍 안에 넣는 놀이인데, 아이들까지도 참가하였다 한다. 세종 때부터는 종친을 궁내로 불러들여 보행격구를 하였고, 세조 때는 수십 명씩 떼를 지어 승부를 겨루었다. 임진왜란 이후 상류층에서는 볼 수 없었고, 서민들의 놀이로서 계승되었다. 이 놀이에서 파생한 것이 포구락(抛毬樂)이며, 고려 때부터 회례악(會禮樂)으로 채택되었으나, 조선 세종 때 너무 길다 하여 폐지되고 잡악으로 남았다.

 

                                                               격구구장도

 

                                                                    격구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