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북연(北燕)은 고구려 제후국이다

한부울 2009. 8. 28. 22:52

북연은 고구려 제후국이다.

오호십육국 한(漢)이라고 표시한 나라들은 모두 고려제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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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연(北燕 407년~436년)


북연(北燕 407년~436년)은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고구려 왕족 출신의 고운(高雲)이 후연(後燕)의 왕위를 찬탈하고 건국한 국가이다.


선비족(鮮卑族)이 건국한 후연의 군주 모용희(慕容熙)는 폭군이었다. 407년, 모용희의 황후가 사망하자 모용희는 신하들에게 큰소리로 곡하도록 명령하고 소리가 크지 않은 자들을 처벌하였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선비족화한 한족 출신의 신하 풍발(馮跋)은 모용보(慕容寶)의 양자 모용운(慕容雲)을 설득하여 모반을 일으켰다. 모용희는 폐위되었으며, 수도 용성을 공격하다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모용운은 천왕(天王)에 즉위하여 성을 본래의 성인 고(高)로 고치고 국호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모용씨의 연나라를 후연, 고운의 연나라를 북연으로 구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고운의 재위까지를 후연으로 보기도 한다.


후연 시기, 연나라는 고구려(高句麗)와 오랫동안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고운이 즉위하자 고구려 광개토왕(廣開土王)은 408년, 사신을 보내 종족의 예를 베풀었으며 고운 역시 이에 화답하여 북연과 고구려는 화친하였다. 409년, 고운은 측근인 이반(離班)과 도인(桃仁)에게 암살당하였다.


풍발은 고운이 암살되고 일어난 혼란을 평정하고 스스로 뒤를 이어 천왕에 즉위하였다. 풍발은 정치에 힘써 국내를 안정시키는 한편 고구려와는 화친하고 화북의 강자로 등장한 북위(北魏)와 대립하였다. 430년에 풍발의 뒤를 이어 동생 풍홍(馮弘)이 즉위하였다.


당시의 북연은 북위의 압박을 받아 나라가 위태로웠다. 이에 풍홍은 435년,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고구려로 망명하여 재기를 도모할 것을 청하였다. 436년 북위가 침공하여 백랑성(白狼城)이 함락되자 풍홍은 고구려로 망명하였으며 북연은 멸망하였다. 한편 풍홍은 고구려에서 438년에 살해되었다.


랴오닝 성 북요시 서관영자에서 북연의 재상 풍소불(馮素弗)의 분묘(墳墓)가 발굴되었으나 명문은 없다.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1대

-

혜의제
(惠懿帝)

고운(高雲)

정시(正始)407~409

407~ 409

2대

태조
(太祖)

문성제
(文成帝)

풍발(馮跋)

태평(太平)409~430

409~ 430

3대

-

소성제
(昭成帝)

풍홍(馮弘)

태흥(太興)431~436

430~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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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胡十六國

國名

始祖

存続年

民族

前涼

張軌

301-376

漢族

前趙

劉淵

304-329

匈奴

成漢

李特

304-347

巴賨

後趙

石勒

319-351

前燕

慕容皝

337-370

鮮卑

前秦

苻健

351-394

後燕

慕容垂

384-409

鮮卑

後秦

姚萇

384-417

西秦

乞伏国仁

385-431

鮮卑

後涼

呂光

389-403

南涼

禿髪烏孤

397-414

鮮卑

北涼

沮渠蒙遜

397-439

盧水胡

南燕

慕容徳

400-410

鮮卑

西涼

李暠

400-421

漢族

赫連勃勃

407-431

匈奴

北燕

馮跋

409-436

漢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