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고려 최씨 무신정권은 징기스칸 몽골정권이다.

한부울 2009. 8. 2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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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최씨 무신정권은 징기스칸 몽골정권이다.

 

글쓴이:한부울

 

본래 고려 역사란 큰 테두리 안에 몽골역사가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그것을 근세기 들어 서세와 그 앞잡이 왜구무사정치집단이 공모하여 고려역사와 몽골역사를 분리 따로 떼어 내어 몽골제국을 만들고 한반도에 고려를 심었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역사서와 볼 수 없는 역사서가 있다.

볼 수 있는 역사서는 이미 正史가 되었고 實證史書가 되었다.

반도사가 되었고 식민지사가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롭게 태동한 역사가 몽골 칭기즈칸과 원의 역사이며 또한 막부와 열도 일본국의 역사이다.

그러나 반대로 볼 수 없는 역사서는 연기 속으로 사라지거나 비밀스러운 장소에 쳐 박혀 있겠지만 아시아고려사와 대륙조선사이다.

20세기 초 동양사재편과정에서 조작된 사서를 正史와 實證史書로 둔갑시켰다.

그들이 그러한 작업과정에서 없애버린 사서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일제가 일제강점기에 우리사서를 20만권이나 소각하였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증빙이 되고 있는 실정에서 소각행위 뿐만아니라 약탈해간 사서 또한 숫자를 헤아릴 수 없다고 본다.

그들이 만든 엉터리 조작사서가 정사나 실증사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거꾸로 아시아고려사나 대륙조선사를 입증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사이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들 대륙사의 관계되는 모든 중요한 역사자료들이 지금 모두 일본 왕실창고 정창원(正倉院)에 보관되고 있다.

우리사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중공사학계까지 동양사 전체를 일본사학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의 거대한 역사음모는 조작하는 것에 끝이지 않고 동양사전체를 잡고 농단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래 고려 왕조가 존재한 시기(960~1392)에 금과 송 그리고 몽골 원까지 계보를 보면 교묘하게 혼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위 거론하는 나라 중 건국 부터 패망까지 따져 고려보다 더 오래 존속한 나라가 있는지 한번 보자.

고려가 한반도에만 근거하지 않고 아시아 대륙전역을 근거 한 나라였다고 생각해보자.

어떻게 되겠는가?

고려가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허약한 나라라고 한다면 명맥을 도저히 온전하게 부지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고려가 먼저 태동되었음은 물론이고 끝까지 존속했다.

여기서 모든 것이 정리 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 이상 이설이 있을 수가 없다.

모든 묘호 시호 연호는 고려연합의 것이다.

현재 역사는 그것을 반대로 고려가 그것들을 모방하거나 받아들여 취한 것처럼 만든 것이다.

특히 몽골왕국은 무단정치세력 崔씨 정권이며 고려 충(忠)자를 앞에 달고 있었던 6명의 실체가 없는 가공된 왕들은 원 황제들과 뒤 바꿔 세운 것이다.

고려말 비로소 공민왕조가 들어서면서 제자리를 찾은 것 같지만 주도권역사가 실체와 비교하면 그 또한 거리가 있다.

여하튼 그 당시 고려를 서양에서 unite corea 라고 했고 korai 라 했다.

년대를 918~1382년으로 본 것이 아니라 송나라 건국시점을 기준으로 960~1392년으로 보았다.

이것은 918년 부터 960년까지 42년간 unite 연합체제가 아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삼국시대가 936년 종말이 아니라 962년까지 지속되었다는 말이다.

삼한을 통일한 시점이 바로 960년이고 송나라 건국시점과 일치하는 것이다.

960년부터 unite corea 가 시작되어 1392년까지 unite corea 가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어찌 거짓이라고만 할 것인가?[전편:한부울]

 

옛만주에 거주하던 대륙조선인들은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에 동양사재편과정에서 대규모 소개

(疏開)를 거치면서 일부는  東(한반도, 만주)으로 西(중앙아시아)로 北(몽고, 시베리아)으로 南(대륙하남)으로  강제 이동한다.

 

최충헌은 48세에 상장군되어 정권 22년간 잡는다. 70세 사망한다.(일본막부가 바로 고려무사정권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징기스칸 44세 칸이 되고 21년간 잡는다. 65세 사망한다.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징기스칸은 최충헌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칭기즈칸은 몽골음역은 cinggis Qayan 이고  이름 鐵木真(Temujin) 철(鐵)이고 iron 이다.
영어로는 Genghis Khan 이다.

우리가 최씨를 소리나는데로 영어 음역을 choi, Choe 라고 표기하고 쇠(철) 발음을 일으킨다.

몽골 음역인 cinggis, 鐵木真(Temujin)의 첫음 C 가 최씨의 C 와 다를다 할 수 없다.

19세기 역사날조 세력들이 칭기즈칸의 몽골음을 한자음역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소리나는데로 첫음을 붙여 최씨로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아니면 무단정치인 최씨를 테무진(鐵木真, Temujin)으로 둔갑시켰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칸은 종족의 추장이나 부족장 정도의 호칭이지 대왕이나 천자의 호칭이라 할 수 없다.

또 하나 감안하여야 할 것은 바로 고려(高麗)왕족 성씨인 왕(王)자이다.

이 왕(王)자는 몽고의 칸(Khan)과 이슬람의 군주 용어인 술탄(sultan)을 대신하는 한자어(漢字語)가 아닌가 한다..

 

무단정치 최씨 정권

최충헌(崔忠獻, 1197년~1219년) (1149~1219)

최충수(崔忠粹  1151~1197신종즉위년) 형제이지만 최충헌에게 죽는다.

최우(崔瑀, 1219~1249년) 최충헌 아들

최항(崔沆, 1249~1257) 최우의 아들

최의(崔竩, 1257~1258년) 최항의 서자

 

몽골정권

칭기즈 칸(1162~1227.8.18) : 재위1206~ 1227, 아들 : 쥬치, 차가다이, 우구데이, 톨루이

톨루이(1190~1232) : 재위1227~ 1229 칭기즈 칸 2자, 아들: 몽케 쿠빌라이, 아라 부가, 훌라구

우구데이(1186~1241) : 재위1229~ 1241 칭기즈 칸 3자

구유크(1206~ 1248) : 재위1241~ 1248 우구데이 장남

몽케(1208~1259) : 재위1248~ 1259 톨루이 장남

쿠빌라이(몽골5대) 1260년 ~ 1271년 1215년 ~ 1294년

8대 투그테무르  1330년 ~ 1332년

고려28대 충혜왕과 일치한다.

 

원 왕조계보와 혼입된 고려 (忠)왕들

25대 충렬왕(1274~1308) 부터 30대 충정왕(1348~1351)까지 쿠빌라이 원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25충렬왕(忠烈王)경효대왕 왕거(王昛)1274~1298 복위1298~1308

26충선왕(忠宣王)선효대왕 왕장(王璋)1298년 복위1308~1313

27충숙왕(忠肅王)의효대왕 왕만(王卍)1313년~1330년 복위1332~1339

28충혜왕(忠惠王)헌효대왕 왕정(王禎)1330년~1332년 복위1339~1344

29충목왕(忠穆王)현효대왕 왕흔(王昕)1344년 ~ 1348년

30충정왕(忠定王)왕저(王胝)1348년~13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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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최씨 무신정권은 징기스칸 몽골정권이다.

 

최씨 무사정권이 칭기즈칸 몽골정권이라고 하는 주된 이유는 군사적인 문제점과 영역적인 문제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물리적인 구도아래 존재하는 힘의 균형문제이다.

똑같은 시대에 몽골도 군사정권이지만 고려도 군사정권이었다.

하지만 고려는 반도사관으로 보았을 때 영역이 한반도란 한정된 지역도식 때문에 군사정권이란 의미가 퇴색되고 축소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역사상황을 한반도와 대륙으로 갈라놓고 보기 때문에 일어 날 수밖에 없는 오류이다.

모든 사실에 비추어 고려와 몽골 모두 대륙에 존재하였다.

그렇다면 역학적 구도에서 서로가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려는 명실공이 삼한을 통일한 나라이다.

삼한이 무엇인가?

고구려, 백제, 신라이다.

고구려는 시베리아전여과 유라시아를 포괄하는 광대한 영역이었음을 우린 알 수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아시아 전 대륙을 영역으로 두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漢)도 삼한이다. 韓과 漢은 소리도 같지만 상징성도 같다.

韓이 唐이란 사실은 곧 신라란 말이다.

백제역시 대륙에서 존재했으며 54담로를 보면 동남아시아 도서를 영역으로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에서는 삼한을 카라(から)라고 하고 통일삼한을 唐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현존하는 역사대로 하더라도 唐이 사라진지가 이미 100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唐이라고 한 것이다.

그 당시까지 일본인들에게 두려운 대상인 唐 세력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삼한이고 고려이며 조선이다.

반도사관이 아닌 대륙사적으로 볼 때 대륙한복판에 고려가 존재하였다면 같은 시대에 칭기즈칸이 고려를 극복하지 않고 과연 아시아영토를 독식 할 수 있었겠는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몽골 칭기즈칸은 넘어서야 할 대상인 고려를 손도 안 되고 영토 확장에 열을 올렸다 하고 있다.

칸은 부족장이고 추장이며 고려의 대장군이지 천자나 대왕이 될 수 없다.

고려대왕만이 천자가 되고 황제일수 있기 때문이다.

황제란 지칭도 근세기에 들어 서양식 표현이라고 할 때 전통적인 대륙통치자에게 왕중에 왕이란 뜻인 대왕을 지칭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몽골이 정말 독립된 왕조라고 한다면 구태여 칸이라고 명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한 영역이면 황제(대왕)를 붙이고도 남음이 있다.

1206년 칭기즈칸은 칸이 되었음에도 대륙지척에 있었을 법한 고려는 손도 되지 않았고 1227년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몽골 고려 1차 전쟁이 금나라 멸망하기 3년전 1231년에 가서야 칭기즈칸의 대를 이은 오고타이가 시작하고 부하 살리타이(撒禮塔)에게 별군(別軍:고려군)을 주어 침입하도록 하지만 곧 중지되고 이듬해인 1232년 음력1월 군대를 철수하였으며 그 대신 몽골사료에 고려 전국에 다루가치(達魯花赤) 72명을 두었다고는 하나 정작《고려사》에는 전혀 이런 기록이 없다고 하는 점에서 근세기에 조작세력들이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 대목이다.

다루가치(達魯花赤, Darughachi)는 원(元)의 행정·군사면에 있어서의 중요한 관직명으로서 총독이나 지사의 뜻으로 그 어원은 ‘진압하다’라는 뜻의 몽골어 daru에 gha와 chi를 붙여 그것에 종사하는 사람을 표시한 것이다. 따라서 한문으로 진수자(鎭守者)·단사관(斷事官)이라 번역된다.

예를 들어 한국 전통의 가죽신을 만드는 장인 또는 전문 기술자 화혜장(靴鞋匠)을 "갖바치"라 했듯이 치(chi)가 사람을 뜻하는 우리의 순수한 말이란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다.

한반도 좁은 곳에 72명의 총독을 두어 다스렸다 하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이때 이미 몽골은 유라시아전역을 강타하고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이다.

만약 다루가치를 두었다면 한반도가 아닌 고려영토라고 판단되는 유라시아전역에 두었다고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고려가 100년(1170~1270)간 무단정치 군사정권이었다면 그 만큼 영토 확장에 치중했다는 반증인데 대륙에 서로 공존하였다면 이러한 몽골의 독식을 지켜보고 고려가 어떤식으로 든지 반응을 했을 것이고 몽골이 하는대로 용납하였다는 것은 바로 고려자신이 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보아야 이치에 맞는 이야기가 된다.

바로 몽골이라고 하는 실체가 바로 고려라는 말이된다.

어쨌던 다루가치를 72명식이나 두었다는 것은 바꾸어 생각하면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고려가 존재했다는 것이며 고려와 몽골의 이러한 대결구도라면 아무리 날고뛰는 유목민 출신 칭기즈칸이라고 할지라도 무사정권인 고려가 눈에가시처럼 장해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징기스칸은 유라시아를 차지하기 이전에 먼저 고려를 넘어야 했다.

그러나 칭키스칸이 죽을 때까지 고려를 건드리지 않았다.

반도사가 기록하는 몽골역사는 처음부터 고려를 한반도 고려만으로 그려 대륙고려는 전혀 감한 하지 않았던 기록이라 냉철하게 본다면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서세와 왜구무사정치집단이 공모하여 서양위주의 역사를 위해 더볼어 왜구가 일본이 되기 위해 동양사재편짜기에 엄청난 조작이 실행되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몽골인들은 지금도 역사적으로 고구려를 자기네 조상이라고 한다.

고구려가 그 만큼 지배영역을 확대하여 엄청난 영토를 차지한 정복국가라는 사실이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은 13세기 칭기즈칸이 정복한 영역보다 더 넓은 영역을 고구려가 차지하였다고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중공정부가 동북공정이란 틀에서 고구려를 중국사에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고구려가 중국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몽골역시 중국에 포함 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생겨 동북공정이란 자체가 무의미 할 수밖에 없다.

고구려와 고려는 삼한의 자손으로서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 관계이다.

이름도 그렇지만 고구려 분신이 바로 고려라고 해야 한다.

송, 금, 원도 고려이다.

고려는 연합체제(unite corea)의 국가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다.

무사정권 즉 군사정권이 노린 것이 정권 탈취에만 목적을 둔 것이 아니다.

현 한반도 정치만을 목격하고 있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륙을 두고 경영한다고 할 때 어찌 정권에만 염두에 두었겠는가 하는 말이다.

바로 영토 확장이 주 목적이다.

때문에 백성들이 무신세력들을 허용하고 용인하였던 것이다.

나라가 강해지고 당장 부강해진다는데 나서 크게 반대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고려라고 하면 신의 나라처럼 신사를 만들고 야단법석을 떨며 한사코 떠받드는 것은 고려가 그만큼 강대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한 자에게 굴복하는 그들의 생활 습성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카라(から)가 고구려와 고려를 지칭 한 것이며 삼한을 지칭하였던 것이라고 이해 할 수 있다.

통일삼한이라는 唐도 카라(から)에서 나온 지칭이다.

카라(から)는 唐이라고도 한다.

태권도 부류인 카라데 또한 唐手이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철저하게 조선을 조작하면서까지 배격했다.

그리고 정치권력자들은 의도적으로 그들 백성에게 조선은 그들의 식민지 국가였고 나약한 나라였음을 강조하고 왜곡까지하면서 가르치고 기억하게 하고 있다.

조선의 역사는 그들이 만든 일본역사를 모르고선 설명할 수 없게 만들었다.

때문에 카라(から)라고 하는 고려와 조선을 한군데 묶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삼한(三韓)을 지칭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몽골과 원은 정치체제가 달라 표면적으로 분리한 것이다.

다시 말해 고려무단정치가 끝나고 왕정정치가 회복되고 복권되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일본역사 막부정치에서 명치유신으로 넘어가면서 왕이 복권하는 것과 같다.

원은 황제(대왕)가 중심이 되는 중앙통치체제를 고집한 고려인 것이다.

몽골 칭기즈칸은 최충헌일 수도 있다.

고려 최씨 무사정권이 몽골이기 때문이다.

다 뒤집어 혼란스럽게 만든 역사이기에 우리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진실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고 본다.

또한 고려 말 이성계 또한 몽골군벌이라고 하고 있고 또한 티무르라고도 한다.

물론 이러한 점에서도 좀 더 밝혀야 하고 찾아내어야 할 것들이 많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점을 무시 할 순 없다. 

이러한 역사구도가 근본적인 대고려 역사의 기본 핵심이고 틀이 되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후편: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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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계보

 

대수 묘호 시호 재위 기간 비고
20 신종(神宗) 경공정효대왕 왕탁(王晫) 1197년~1204년  
21 희종(熙宗) 인목성효대왕 왕영(王韺) 1204년~1211년 최충헌폐위
22 강종(康宗) 명헌원효대왕 왕오(王祦) 1211년~1213년  
23 고종(高宗) 충헌안효대왕 왕철(王皞) 1213년~1259년  
24 원종(元宗) 충경순효대왕 왕전(王倎) 1259년~1269년
복위1270년~1274
송도종(宋度宗)년대 일치 
(임시) 영종(元宗) 안경대왕(安慶大王) 왕창(王淐) 1269년~1269년  
25 충렬왕
(忠烈王)
경효대왕 왕거(王昛) 1274~1298
복위1298~1308
원 과 분리
26 충선왕
(忠宣王)
선효대왕 왕장(王璋) 1298년
복위1308~1313
원 과 분리
27 충숙왕
(忠肅王)
의효대왕 왕만(王卍) 1313년~1330년
복위1332~1339
원 과 분리
28 충혜왕
(忠惠王)
헌효대왕 왕정(王禎) 1330년~1332년
복위1339~1344
원 과 분리
29 충목왕
(忠穆王)
현효대왕 왕흔(王昕) 1344년 ~ 1348년 원 과 분리
30 충정왕
(忠定王)
  왕저(王胝) 1348년~1351년 원 과 분리
31 공민왕
(恭愍王)
인문의무용지명열
경효대왕
왕전(王顓) 1351년~1374년  원 과 분리
32 우왕(禑王)   왕우(王禑) 1374년~1388년 이성계폐위
33 창왕(昌王)   왕창(王昌) 1388년~1389년 이성계폐위
34 공양왕
(恭讓王)
  왕요(王瑤) 1389년~1392년 이성계폐위

 

  묘호 시호 재위기간 비고
(추존)   문원대왕 (文元大王) 왕정(王貞) (추존) 묘호없음
(추존)   정간왕(靖簡王) 왕기(王基) (추존) 묘호없음
(추존) 영종(英宗) 안경대왕(安慶大王) 왕창(王淐) (추존) 안경공(安慶公)

 

송나라

4대 송 영종
(宋寧宗)
법천비도순덕무공인문
철무성예공효황제
(法天備道純德茂功仁文
哲武聖睿恭孝皇帝)
조확(趙擴) 경원(慶元) 1195~1201
가태(嘉泰) 1201~1205
개희(開禧) 1205~1208
가정(嘉定) 1208~1225
1194~1224
5대 송 이종
(宋理宗)
건도비덕대공복흥열문
인무성명안효황제
(建道備德大功復興烈文
仁武聖明安孝皇帝)
조윤(趙昀) 보경(寶慶) 1225~ 1227
소정(紹定) 1228~ 1233
단평(端平) 1234~ 1236
가희(嘉熙) 1237~ 1240
순우(淳祐) 1241~ 1252
보우(寶祐) 1253~ 1258
개경(開慶) 1259
경정(景定) 1260년~1264
1224~1264
6대 송 도종
(宋度宗)
단문명무경효황제
(端文明武景孝皇帝)
조기(趙禥) 함순(咸淳)1265~1274 1264~1274
7대 송 공종
(宋恭宗)
효공의성황제
(孝恭懿聖皇帝)
(가국공<嘉國公>)
조현(趙顯) 덕우(德祐)1275~1276 1274~1276
8대 송 단종
(宋端宗)
유문소무민효황제
(裕文昭武愍孝皇帝)
조시(趙昰) 경염(景炎)1277~1278 1276~1278
9대 - 소황제(少皇帝)
(유주<幼主>,위왕<衛王>)
조병(趙昺) 상흥(祥興)1279년 1278~1279

 

금나라

6대 금 장종
(金章宗)
헌천광운인문의무
신성영효황제
(憲天光運仁文義武
神聖英孝皇帝)
완안경
(完顔璟)
명창(明昌) 1190~1196
승안(承安) 1196~1201
태화(泰和) 1201~1208
1189~
1208
7대 - 무평황제
(武平皇帝)
(위소왕<衛紹王>)
완안윤제
(完顔允濟)
대안(大安) 1209~1211
숭경(崇慶) 1212~1213
지녕(至寧) 1213
1208~
1213
8대 금 선종
(金宣宗)
계천흥통술도근인
영무성효황제
(繼天興統述道勤仁
英武聖孝皇帝)
완안순
(完顔珣)
정우(貞祐) 1213~1217
흥정(興定) 1217~1222
원광(元光) 1222~1223
1213~
1223
9대 금 애종
(金哀宗)
(금 의종金義宗)
순정황제
(順靖皇帝)
완안수서
(完顔守緒)
정대(正大) 1224~1232
개흥(開興) 1232
천흥(天興) 1232~1234
1223~
1234
10대 - 말황제
(末皇帝)
완안승린
(完顔承麟)
성창(盛昌) 1234 1234

 

西遼

5대. 말제 야율직노고(末帝 耶律直魯古, 재위 1177년 - 1211년) - 야율이열의 차남.

6대. 결제 크출르크(缺帝, 재위 1211년 - 1218년)- 야율직노고의 사위.

 

몽골과 원을 계승왕조처럼 만든 것은 다른 왕조를 빌렸을 가능성이 많다.

고려를 충으로 떼우고 본 묘호를 가지고 간 것인지 아니면 금나라를 망하게 하고 그 연호를 계속 이어 간 것인지는 더 밝혀야 한다.

몽골과 원이 계승 왕조처럼 연결 하는 것 자체가 조작이다.

칭기즈칸 자손들을 원으로 연결시켜 승계한 것처럼 꾸민 것인데 몽골왕조는 고려의 무단정치 세력일 가능성이 많다.

 

몽골 

  묘호 시호 성명 제위 생몰
1대 원 태조
(元太祖)
법천계운성무황제
(法天啓運聖武皇帝)
(成吉思汗, 칭기즈 칸)
패아지근철목진
(孛兒只斤鐵木眞)
(테무진)
1206~ 1227 1162~ 1227.8.18
- 원 목종
(元穆宗)
(원 세조 추숭)
도녕황제
(道寧皇帝)
패아지근출적
(孛兒只斤朮赤)
(쥬치)
- ? ~
1227
- 원 성종
(元聖宗)
(원 세조 추숭)
충무황제
(忠武皇帝)
패아지근찰합태
(孛兒只斤察合台)
(차가다이)
- ? ~
1242
임시 원 예종
(元睿宗)
(원 세조 추숭)
경양황제
(景襄皇帝)
패아지근타뢰
(孛兒只斤拖雷)
(톨루이)
1227~ 1229  1190~
1232
2대 원 태종
(元太宗)
영문황제
(英文皇帝)
패아지근와할대
(孛兒只斤窩闊臺)
(우구데이)
1229~ 1241 1186~
1241
3대 원 정종
(元定宗)
간평황제
(簡平皇帝)
패아지근귀유
(孛兒只斤貴由)
(구유크)
1241~ 1248 1206~ 1248
4대 원 헌종
(元憲宗)
환숙황제
(桓肅皇帝)
패아지근몽가
(孛兒只斤蒙哥)
(몽케)
1248~ 1259 1208~
1259

 

몽골왕조(고려 무단정치 정권)은 소멸되고 만다.

쿠빌라이가 몽골과 원에 이중으로 재위한 것처럼 꾸며 놓았다.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5대 원 세조
(元世祖)
성덕신공문무황제
(聖德神功文武皇帝)
패아지근홀필렬
(孛兒只斤忽必烈)
(쿠빌라이)
중통(中統) 
1260~1264
지원(至元)
1264~1271
1260~
1271
1대 원 세조
(元世祖)
성덕신공문무황제
(聖德神功文武皇帝)
패아지근홀필렬
(孛兒只斤忽必烈)
(쿠빌라이)
지원(至元) 
1271~1294
1271~ 
1294
- 원 유종
(元裕宗)
(원성종 추숭)
문혜명효황제
(文惠明孝皇帝)
패아지근진금
(孛兒只斤眞金)
(징김)
- -
2대 원 성종
(元成宗)
흠명광효황제
(欽明光孝皇帝)
패아지근철목이
(孛兒只斤鐵穆耳)
(테무르)
원정(元貞) 
1295~1297
대덕(大德)
1297~1307
1294~ 
1307
- 원 순종
(元順宗)
(원무종 추숭)
소성연효황제
(昭聖衍孝皇帝)
패아지근답랄마팔랄
(孛兒只斤答剌麻八剌)
(다르마바라)
- -
3대 원 무종
(元武宗)
인혜선효황제
(仁惠宣孝皇帝)
패아지근해산
(孛兒只斤海山)
(카이산)
지대(至大) 
1308~1311
1307~ 
1311
4대 원 인종
(元仁宗)
성문흠효황제
(聖文欽孝皇帝)
패아지근애육려발력팔달
(孛兒只斤愛育黎拔力八達)
(아유르바르와다)
황경(皇慶)
1312~1313
연우(延祐)
1314~1320
1311~ 
1320
5대 원 영종
(元英宗)
예성문효황제
(睿聖文孝皇帝)
패아지근석덕팔랄
(孛兒只斤碩德八剌)
(시디발라)
지치(至治) 
1321~1323
1320~ 
1323
- 원 현종
(元顯宗)
(원진종 추숭)
광성인효황제
(光聖仁孝皇帝)
패아지근감마랄
(孛兒只斤甘麻剌)
(카말라)
- -
6대 원 진종
(元晉宗)
치효황제
(致孝皇帝)
(진왕<晉王>)
패아지근야손철목아
(孛兒只斤也孫鐵木兒)
(예순테무르)
태정(泰定)
 1324~1328
치화(致和)
1328
1323~ 
1328
7대 - 덕효황제
(德孝皇帝)
(폐황제<廢皇帝>,
유주<幼主>)
패아지근아속길팔
(孛兒只斤阿速吉八)
(라기바흐)
천순(天順) 
1328
1328
8대 원 문종
(元文宗)
성명원효황제
(聖明元孝皇帝)
패아지근도첩목이
(孛兒只斤圖帖睦爾)
(투그테무르)
천력(天曆) 
1328~1329
 
1328~ 
1329
9대 원 명종
(元明宗)
익헌경효황제
(翼獻景孝皇帝)
패아지근화세랄
(孛兒只斤和世剌)
(쿠살라)
천력(天曆) 
1329
1329
8대
(복위)
원 문종
(元文宗)
성명원효황제
(聖明元孝皇帝)
패아지근도첩목이
(孛兒只斤圖帖睦爾)
(투그테무르)
지순(至順) 
1330~1332
 
1330~ 
1332
10대 원 영종
(元寧宗)
충성사효황제
(沖聖嗣孝皇帝)
패아지근의린질반
(孛兒只斤懿璘質班)
(린칠반)
지순(至順) 
1333
1332~ 
1333
11대 원 혜종
(元惠宗)
선인보효황제
(宣仁普孝皇帝)
(순황제<順皇帝>)
패아지근타환첩목이
(孛兒只斤妥懽帖睦爾)
(토곤테무르)
지순(至順) 
1333
원통(元統)
1333~1335
지원(至元)
1335~1340
지정(至正)
1341~1368
1333~
1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