赴京이라고 하는 京은 中國 明나라이고 京師와 北京인가?
朝見이라함도 명나라에 가는 길이 맞는가?
조선총독부 하부 조직인 조선사편수회가 무조건 赴京이라 함은 中國 서울로 가는 것이고 京師라고 하면 明나라 北京이라 마음대로 틀을 만들었을 것이 뻔하고 그 틀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치밀하게 짜맞춘 것이 바로 半島史이다.
글자 몇자 끼워 넣을 수 있는 것은 끼워넣고 너무 긴 것은 삭제 빼버리거나 뜯어고쳐 마치 원본인 것처럼 인쇄하여 일제 관리들이 장기간 보관하다가 국민당에게도 주고 우리에게도 내놓은 것이다.
당시 사관들이 조선왕조 실록을 편찬 함에 있어 원문을 쓰고 나머지는 필사하였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인터넷 조선왕조실록 원본 이미지를 확대해보면 필사가 아니라 인쇄본인데 글자가 통일되지 못하고 뒤죽박죽이다.
이러한 것은 원문 필사가 아님을 알 수 있고 그 이후 뜯어고친 결과 물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결과물이 이렇다면 실체사건과 180도로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바로 조선사편수회 구성원들인 일본인 서금룡과 그 밑에 하수인 이병도와 최남선 신석호 등이 만든 세기의 걸작품 인 것이다.
여기 첨부한 부경(赴京)이나 경사(京師)만 이렇듯 엉터리겠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전체가 이렇듯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원문에 어디에도 부경이라 하여 중국 中字도 없고
경사라고 하여 명나라 明字도 없다.
어찌 이것을 진정한 조선사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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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宗 34卷, 17年(1417 丁酉 / 명 영락(永樂) 15年) 9月 1日(癸丑)
호조에서 중국 경사에 가는 사신의 의복수를 상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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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戶曹詳定赴京使臣衣服之數。〔啓曰〕: “正月、二月、七月、十二月, 使副使十二升以下麻布團領四、苧布裏衣四、汗衫五, 從事官十升以下麻布團領三、苧布裏衣三、汗衫四, 打角夫、押馬、養馬、理馬九升以下麻布團領二、苧布裏衣二、汗衫三, 從人七升以下麻布衣二、苧布裏衣二、汗衫三。 三四五六月, 使副使十二升以下麻布團領六、苧布裏(布)〔衣〕六、汗衫七, 從事官十升以下麻布團領四、苧布裏衣四、汗衫五, 打角夫、押ㆍ養ㆍ理馬九升以下麻布團領三、苧布裏衣三、汗衫四, 從人七升以下麻布衣二、苧布裏衣三、汗衫三。” 從之。
호조(戶曹)에서 중국 경사(京師)에 가는 사신의 의복(衣服)의 수를 상정(詳定)하였다.
“정월·2월·7월·12월의 사(使)·부사(副使)는 12승(升) 이하 마포 단령(麻布團領) 4·저포 이의(苧布裏衣) 4·한삼(汗衫) 5이고, 종사관(從事官)은 10승 이하 마포 단령 3·저포 이의 3·한삼 4이고, 타각부(打角夫)4673) ·압마(押馬)·양마(養馬)·이마(理馬)4674) 는 9승 이하 마포 단령 2·저포 이의 2·한삼 3이고, 종인(從人)은 7승 이하 마포의 2·저포 이의 2·한삼 3이고, 3월·4월·5월·6월의 사(使)·부사(副使)는 12승 이하 마포 단령 6·저포 이의 6·한삼 7이고, 종사관은 10승 이하 마포 단령 4·저포 이의 4·한삼 5이고, 타각부·압마·양마·이마는 9승이하 마포 단령 3·저포 이의 3·한삼 4이고, 종인은 7승 이하 마포의 2·저포 이의 3·한삼 3으로 하소서.”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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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宗 85卷, 8年(1477 丁酉 / 명 성화(成化) 13年) 10月 28日(壬戌)
사헌부에서 이춘경·김중선과 공의·노충선·설주·이정조 등의 형벌에 대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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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憲府啓: “赴京押物李春景、金仲善數外麻布齎去罪, 律該杖一百, 養馬孔義數外麻布及皮物胡椒齎去罪, 律該決杖一百、徒三年竝盡奪告身。 盧忠善、薛柱、李鼎祚以麻布寄屬罪, 律該杖九十收贖、追奪告身四等。” 從之。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북경(北京)에 갔던 압물(押物) 이춘경(李春景)·김중선(金仲善)이 숫자 이외의 마포(麻布)를 가지고 간 죄는 율(律)이 장(杖) 1백 대에 해당하고, 양마(養馬) 공의(孔義)가 숫자 이외의 마포(麻布)와 피물(皮物)·호초(胡椒)를 가지고 간 죄는 율(律)이 결장(決杖) 1백 대에 도형(徒刑) 3년에 해당하는데, 아울러 모두 고신(告身)을 빼앗을 것이며, 노충선(盧忠善)·설주(薛柱)·이정조(李鼎祚)가 마포를 가지고 남에게 부탁하여 맡긴 죄는 율(律)이 장(杖) 90대를 수속(收贖)하고 고신(告身) 4등을 추탈(追奪)하는 데 해당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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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宗 38卷, 9年(1427 丁未 / 명 선덕(宣德) 2年) 10月 13日(丁卯)
세자가 대호군 윤중부와 사직 황보신 등과 진헌마 등을 거느리고 명나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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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子朝見押馬大護軍尹重富、司直黃保身、馬醫養馬等二十四人、從人二名, 將進獻馬五十匹、司僕多人馬二十五匹、駄運馬二十四匹發行。
세자가 명나라에 가는 길에 압마 대호군 윤중부(尹重富)와 사직 황보신(黃保身)과 마의(馬醫)·양마(養馬) 등 24인과 종인(從人) 2인이 진헌마(進獻馬) 50필, 사복 다인마(司僕多人馬) 25필, 타운마(駄運馬) 24필을 거느리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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