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혼천시계 340년 만에 복원-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

한부울 2009. 8. 17. 19:56

1395년 조선태조 때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완성하면서부터 천문학은 비로소 개척되었다고 볼 수 있고 이 또한 조선 천문과학은 독보적이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또한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판단된다.

천문학은 동양이 서양보다 앞섰다고 해야 하며 동양조선이 바로 세계 천문학을 선도한 것이다.

지금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혼천의 역시 독창적인 우수한 과학성을 세계적으로 당당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역사가 대륙조선이 아니라 반도조선이기에 무엇이든 그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역사자료 빈곤과 함께 독창적인 면에서는 근원적으로 우선에서 밀리고 독창적인 면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서글픈 현실인 것이다.

당당하여야 함에도 그것을 증명할 길이 뚜렷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의 역사가 언제까지고 대륙조선이 아닌 반도조선으로 남아 존재한다면 그러한 서글픈 환경은 결코 변하지 않는 비관적인 면도 없지 않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깨어 대륙조선임이 낱낱이 밝혀지는 계기를 만든다면 그와 같은 문제는 일시에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풀어질 문제가 아닌가 여겨지는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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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과학관 혼천시계 340년 만에 복원

[매일경제] 2009년 08월 17일(월) 오전 11:23


무거운 추의 힘을 이용한 혼천시계를 340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했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관장 김영식)은 조선 현종 10년 천문학자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를 원형과 똑같이 복원해 상설전시장에 전시한다고 17일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혼천시계는 시계장치와 혼천의로 구성되는데, 이는 세계 처음으로 진자시계를 개발한 크리스티앙 호이겐스의 진자시계를 응용한 것이면서도 2개의 추 운동을 동력으로 움직인다는데 대해 세계 시계 제작기술 사상 독창적 천문시계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복원된 혼천시계는 매 시간마다 종소리로 시간을 알려주고, 태양의 위치와 달의 월령(음력일수)까지 알려준다. 또 시계 장치의 핵심부품을 별도로 만들어 관람객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혼천시계 작동원리 체험관'도 동시에 개관했다.


[유용하 기자]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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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천시계(渾天時計:Honcheonsigye)

 

 

 


지정번호 : 국보 제230호

지정연월일 : 1985년 3월 3일

시대 : 조선 현종 10년(1669)

규모ㆍ양식 : 나무상자 - 가로 118.5cm, 폭 52.5cm, 높이 99.0cm

혼천의 - 지름 약 40cm, 지구의 지름 - 약 8.9cm

재 료 : 상자 - 목제, 

혼천의 - 청동 

소 유 자  : 고려대학교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1 고려대학교 박물관

 


혼천시계(渾天時計)란 천문시계의 구실을 하던 기구인 혼천의와 기계시계를 결합한 천문기구를 말한다. 혼천시계의 출현배경과 그 작동원리는 증보문헌비고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우선 송이영이 만든 본 혼천시계는 이민철이 만든 수격식 동력장치인 천문시계와는 달리 추의 주기운동으로 톱니바퀴를 돌리는 진자시계였다. 그리고 시계장치에는 시간을 알리는 시보 장치와 종을 치는 자명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계의 동력은 혼천의에 전달되어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혼천의가 돌게 하였던 점도 확인된다.


나무상자 속에 오른쪽 절반은 시계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왼쪽에는 혼천의가 설치되어 있다. 혼천의에 중심에 지구의가 위치해 있으며, 시계와는 톱니바퀴로 연결되었다. 시계장치는 두 개의 추의 운동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시각을 알리기 위한 추로, 바퀴테와 톱니바퀴를 회전시키는데 바퀴테가 수직축 주위를 수평면에서 회전함으로써 바퀴테에 붙어 있는 12시를 알리는 시패를 창에 드러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다른 하나는 종을 쳐서 시각을 알리기 위한 추로, 비둘기 알만한 쇠구슬 24개가 홈통 안을 굴러 내려감으로써 종을 치는 망치가 걸려 곧 종이 울리고, 회전바퀴 살에 붙은 주걱들에 의하여 쇠구슬이 들리면서 이 작동이 반복된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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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천시계란 천문시계의 구실을 하던 기구인 혼천의(渾天儀)와 기계시계를 결합한 천문기구를 말한다. 혼천시계의 출현배경과 그 작동원리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우선 송이영(宋以潁)이 만든 본 혼천시계는 이민철(李敏哲)이 만든 수격식 동력장치인 천문시계와는 달리 추의 주기운동으로 톱니바퀴를 돌리는 진자시계(振子時計)였다. 그리고 시계장치에는 시간을 알리는 시보(時報) 장치와 종을 치는 자명(自鳴)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계의 동력은 혼천의에 전달되어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혼천의가 돌게 하였던 점도 확인된다.


나무상자 속에 오른쪽 절반은 시계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왼쪽에는 혼천의가 설치되어 있다. 혼천의(渾天儀)의 중심에 지구의(地球儀)가 위치해 있으며, 시계와는 톱니바퀴로 연결되었다. 시계장치는 두 개의 추(錘)의 운동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시각을 알리기 위한 추로, 바퀴테와 톱니바퀴를 회전시키는데 바퀴테가 수직축 주위를 수평면에서 회전함으로써 바퀴테에 붙어 있는 12시를 알리는 시패(時牌)를 창에 드러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다른 하나는 종을 쳐서 시각을 알리기 위한 추(錘)로, 비둘기 알만한 쇠구슬 24개가 홈통 안을 굴러 내려감으로써 종을 치는 망치가 걸려 곧 종이 울리고, 회전바퀴 살에 붙은 주걱들에 의하여 쇠구슬이 들리면서 이 작동이 반복된다.


시계와 연결된 혼천의는 육합의(六合儀)ㆍ삼신의(三辰儀)ㆍ지구의(地球儀)의 세부분으로 되어 있다. 육합의는 수평면의 동서남북과 천장(天障)과 천저(天底)를 정하고 있다. 삼신의(三辰儀)는 12궁ㆍ24절기ㆍ28수가 새겨져 있다. 지구의는 남북극을 축으로 하여 시계장치와 연결되어 1일 1회전하게 되어 있다. 이 지구의에는 세계지도가 아주 간략하게 그려져 있고 각 지역에 대해서는 조선, 일본, 유구, 대 청국 등의 이름을 명기하였다. 이런 구조와 원리를 지닌 혼천시계는 홍문관에 설치되어 시간측정과 천문학 교습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 혼천시계는 1930년대 인촌 김성수(金性洙) 선생이 그 당시 집 한 채 값을 주고 사 놓았다가 고려대에 기증한 것이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유실되지 않고 1960년 미국 예일대학의 과학사 교수 프라이스의 조사 의뢰를 받아 고려대 박물관에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멸실의 위기를 면한 이 혼천시계는 우리나라 과학문화재 중에서 세계 과학사학계에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영국의 유명한 과학사가인 니덤(J. Needham)박사가 그의 저서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이 시계의 모조품을 세계의 유명한 과학박물관에 전시해야 한다고 썼고, 또한, 그는 이 혼천시계가 동양의 오랜 시계제작 기술 전통과 서양의 기계시계 제작기술을 섞어서 만든 아주 특징 있는 자랑스런 유산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국립 스미소니언 기술사 박물관은 특별전시를 계획하기도 했었다.


이 혼천시계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추시계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문시계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비길 바가 없다. 특히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모델이었던 물레바퀴의 원리를 동력으로 삼은 시계장치와 서양식 기계시계인 자명종의 원리를 조화시켜 전혀 새로운 천문시계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세계 시계 제작기술의 역사상 독창적인 천문시계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편, 이 유물은 지구회전설의 원리까지도 잘 적용한 지구의가 설치되어 당시 조선의 선구적인 학자들이 지구회전의 원리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서울특별시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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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연대표]

1395년 조선 태조, 석각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완성하다.

1433년 조선 혼천의(渾天儀) 만듦

1464년 쿠자누스, 천동설을 의심하다.

1473년 코페르니쿠스가 출생하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De revolutionibus orbium coestium (천체궤도의 진화에 관하여)가 출판되다.

1546년 티코 브라헤 출생.

1564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출생하다.

1571년 케플러가 출생하다.

1582년 기존 사용되던 율리우스력이 그레고리력으로 개정되다.

1600년 조르다노 부르노, 우주가 무한함을 주장하다가 종교재판을 당해 처형당하다

1609년 갈릴레오의 낙하법칙, 케플러의 법칙 발표됨.

1643년 아이작 뉴턴이 출생하다.

1669년 혼천시계발명

1687년 아이작 뉴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간하다.

1744년 오일러 법칙

1781년 윌리엄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하다.

1799년 라플라스 법칙

1809년 가우스, 행성의 궤도를 측정하다.

1854년 앙리 푸앵카레가 출생하다.

1864년 휴긴스에 의해 성운의 흔적이 발견되다

1873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출생하다.

1879년 앨버트 마이켈슨, 몰리와 함께 광속도를 측정하다.

1889년 푸앵카레, 천체역학에서의 삼체 문제에 대한 논문으로 스웨덴 국왕이 수여하는 그랑프리를 수상하다. 에드윈 허블(사진)이 출생하다.

1905년 아인슈타인,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다.

1915년 아인슈타인,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다.

1917년 러시아, 그레고리력을 채택하다.

1923년 에드윈 허블, 외부 은하계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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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천의(渾天儀:Armillary sphere)

 

천문과학 뿐만아니라 시계 역사에서도 서양이 동양보다 앞선다는 주장이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주장일뿐 밝혀지고 있는 사실관 거리가 있다.


11세기 송조(宋朝) 기술자 소송(蘇頌)에 의하여 물 흐름(水流)으로 동력을 사용 천문시계가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근거 없고 송은 고려일 뿐이다. 유럽초기의 시계개발에 대하여 자료가 없고 1330년대 센트·올 반스(St Albans)의 워린포드 리처드 그리고 1350년대에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 파도바(Padova)의 데·돈디(de Dondi ) 부자(쟈코보 & 죠반니 )에 의해 발명된 천문시계 역시 현존하고 있지 않으며 설계에 관한 기록만 남겨져 있을 뿐 확실치 않다.

 

 

 

                                               Armillary sphere diagram

혼천의(渾天儀)는 천체관측 기구로 '혼의' 또는 '선기옥형'이라고도 불린다. 해와 달, 오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혼천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후를 예측하기 위한 천문관측에 사용하여 왔다. 당나라의 황도유의(黃道遊儀)나 수운혼천(水運渾天) 그리고 송나라의 부루표영(浮漏表影)이나 혼천의상(渾天儀象) 그리고 원나라의 앙의(仰儀), 간의(簡儀) 같은 것은 모두 정교하게 제작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측정을 할 때마다 수동으로 작동을 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헌상으로는 1433년 세종 15년 6월 9일에 정초, 박연, 김진 등이 제작한 것이 처음이다. 당시 세종과 세자는 매일 간의대에 숙직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다. 세종 20년 1월 7일 장영실에게 흠경각(欽敬閣)을 짓게하고, 이곳에 혼천의를 설치하였다. 이곳에 설치된 혼천의는 기기를 별도로 수동으로 작동하는 일없이도 측정할 수 있는 정밀한 기기였다.


그 후 선조 대를 거쳐 개량을 거듭하여 물레바퀴를 동력으로 하는 시계와 인조 때 서양에서 들여온 자명종의 원리와 결합하여 혼천시계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손상되거나 소실되었고, 현종 때 이민철, 송이영 등이 이를 개량하여 수동(水動)식과 기계식 혼천시계를 경희궁에 설치하였으나 그것도 대부분 소실되었다.


1669년 현종 때는 두 종류의 혼천의가 제작되었는데, 이민철이 제작한 물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과 송이영의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혼천시계가 그것이다. 1631년 인조 9년 정두원이 명나라에서 천리경과 자명종, 화포 등을 들여왔는데, 1669년 현종 10년 10월 14일 송이영(宋以穎)은 자명종을 참고하여, 톱니바퀴로 작동하는 시계와 종을 울려주는 자명장치 등이 추가되어, 절기와 계절, 시간까지 알게 해주는 다목적의 시계였다. 구조를 살펴보면 네모난의 나무상자 안에 오른쪽 절반은 시계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왼쪽은 혼천의가 설치되어 있었다. 혼천의에는 눈금이 새겨진 둥근 지평환과 황도환, 적도환, 백도환, 받침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남아 있는 국보 제230호 혼천의는 1669년 현종 10년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이며, 1930년 인촌 김성수가 구매를 하여 고려대학교에 기증한 것이다. 여주의 세종대왕릉에 있는 혼천의는 송의영의 혼천 시계 중 혼천의 부분만 따로 2.5배 확대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60권, 15년(1433 계축 / 명 선덕(宣德) 8년) 6월 9일(경인)

정초·박연·김진 등이 새로 만든 혼천의를 올리다


○鄭招、朴堧、金鎭等, 進新造渾天儀。


정초·박연·김진(金鎭) 등이 새로 만든 혼천의(渾天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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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61권, 15년(1433 계축 / 명 선덕(宣德) 8년) 8월 11일(신묘)

정초·이천·정인지 등이 혼천의를 올리다

○大提學鄭招、知中樞院使(事)李蕆、提學鄭麟趾、應敎金鑌等, 進渾天儀, 上覽之, 遂命世子, 與李蕆質問制度, 世子入啓。 世子至簡儀臺, 與鄭招、李蕆、鄭麟趾、金鑌等, 講問簡儀與渾天儀之制, 乃命鑌及中官崔濕, 夜直簡儀, 參驗日月星辰, 考其得失, 仍賜衣于鑌, 以其夜直也。 自是上與世子, 每日至簡儀臺, 與鄭招等同議, 定其制度。


대제학 정초·지중추원사 이천(李蕆)·제학 정인지·응교 김빈(金鑌) 등이 혼천의(渾天儀)를 올리매, 임금이 그것을 곧 세자에게 명하여 이천과 더불어 그 제도를 질문하고 세자가 들어와 아뢰라고 하니, 세자가 간의대(簡儀臺)에 이르러 정초·이천·정인지·김빈 등으로 더불어 간의와 혼천의의 제도를 강문(講問)하고, 이에 김빈과 내시 최습(崔濕)에게 명하여 밤에 간의대에 숙직하면서 해와 달과 별들을 참고해 실험하여 그 잘되고 잘못된 점을 상고하게 하고, 인하여 빈에게 옷을 하사하니 밤에 숙직하기 때문이었다. 이로부터 임금과 세자가 매일 간의대에 이르러서 정초 등과 함께 그 제도를 의논해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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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조선 초기부터 석각본, 목판본, 필사본 등으로 제작·보급된 한국의 전천천문도(全天天文圖)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태조 석각본으로 가로 122.8 cm, 세로 200.9 cm 크기의 흑요석에 새겨졌다. 태조 석각본은 국보 228호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 세종 석각본은 전해지지 않고, 숙종 석각본은 보물 837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선조 때의 목각본이 일본 천리대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2006년에 신한은행에서 구입하여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대한민국에서 2007년 1월 22일부터 발행된 만원권 뒷면 배경에 약식으로 모사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려졌다.


별그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형태는, 별자리 그림을 중심으로 주변에 해·달·사방신에 대한 간략한 설명, 주관하는 각도, 각 절기별 해가 뜨고 질 때 남중하는 별자리가 설명되어 있고, 하단부에는 당시의 우주관, 측정된 28수의 거극도 및 각도, 천문도의 내력, 참여한 관리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사(舍)

수(宿)

중심별

동방 청룡

각(角)

처녀자리 (α Vir) 스피카

항(亢)

처녀자리 (κ Vir)

저(氐)

천칭자리 (α Lib) 주벤엘게누비

방(房)

전갈자리 (π Sco)

심(心)

전갈자리 (σ Sco) 알니야트

미(尾)

전갈자리 (μ Sco)

기(箕)

궁수자리 (γ Sgr) 알나시

북방 현무

두(斗)

궁수자리 (φ Sgr)

우(牛)

염소자리 (β Cap) 다비흐

여(女)

물병자리 (ε Aqr) 알발리

허(虛)

물병자리 (β Aqr) 사달수드

위(危)

물병자리 (α Aqr) 사달멜릭

실(室)

페가수스자리 (α Peg) 마르카브

벽壁)

페가수스자리 (γ Peg) 알게니브

서방 백호

규(奎)

안드로메다자리 (η And)

루(婁)

양자리 (β Ari) 셰라탄

위(胃)

양자리 (35 Ari)

묘(昴)

황소자리 (17 Tau) 엘렉트라

필(畢)

황소자리 (ε Tau) 아인

자(觜)

오리온자리 (λ Ori) 메이사

삼(參)

오리온자리 (ζ Ori) 알니탁

남방 주작

정(井)

쌍둥이자리 (μ Gem)

귀(鬼)

게자리 (β Cnc) 알타흐

류(柳)

바다뱀자리 (δ Hya)

성(星)

바다뱀자리 (α Hya) 알파드

장(張)

바다뱀자리 (ν Hya)

익(翼)

술잔자리 (α Crt) 알케스

진(軫)

까마귀자리 (γ Crv) 기에나흐


별자리 그림은 큰 원 안에 하늘의 적도와 황도를 나타내는 교차하는 중간 원을 그리고, 그 내부에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보이는 별들을 표시하는 중앙의 작은 원, 그 위에 각 분야별로 1464개의 별들이 293개의 별자리를 이루어 밝기에 따라 다른 크기로 그려져 있다. 별자리의 수는 서양의 88개와 비교하면 3배가 넘는다.


그 위에 은하수가 그 모양대로 그려져 있으며, 큰 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365개의 주천도수 눈금, 각 방향을 대표하는 12지, 각 땅을 대표하는 분야(分野), 황도 12궁이 표시되어 있다.

별의 그림은 중국의 천문도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일본의 기토라 고분의 천문도는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관련이 있다고 추측되고 있다.


숙종 석각본은 태조 석각본과는 설명하는 글의 배치가 서로 다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하단부에 적힌 권근의 설명을 참조하면, 본래의 석본이 평양에 있었으나 전란 중 강에 빠져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그 해(1392년)에 평양 석각본의 인본을 바치는 사람이 있었고, 태조가 매우 기뻐하여 돌에 새길 것을 지시하였으나, 천문도가 세월이 오래 되어 그 도수가 차이가 나므로 그 값을 새로 측정하여 고쳐 새겼다고 한다.[2] 이에, 권근을 비롯한 10여명의 학자들이 수 년 간의 노력 끝에 태종 석각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완성하였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 그림으로부터 추정한 관측위도와 평양의 지명으로부터 미루어 볼 때, 천문도는 평양이 그 도읍지였던 고구려에 그 원본이 보관되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거극도와 각도 및 별들의 분포와 세차운동으로 인한 위치의 변화로 그 측정연대를 참조하면, 대략 삼국시대 초기인 기원 전·후가 된다. [3] 기록상으로 1464개의 별이 그려진 천문도를 중국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3세기에서 2백 년 가량 앞서는 시기이다.


동아시아의 별자리


동아시아의 별자리는 3원 28수 체계에 의해, 3개의 울타리와 그 내부에서 군락을 이루는 별자리들, 28개의 적경으로 구분된 영역과 각 영역에 속한 별자리들로 나뉘어져 있다. 세종 대 이순지가 쓴 《천문류초》에 동아시아의 별자리 각각에 대한 형태와 의미, 해석에 대한 설명이 정리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는 송대의 순우천문도 등에서 볼 수 있는 중국의 별자리와는 별의 연결, 별자리의 형태에 차이가 있으며, 위치가 다르거나 목록에 없는 별자리도 있다.


일본의 별자리는 7 ~ 8C 무렵의 기토라 고분 벽화에 그려진 것이 최초인데, 그 형태는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중국 별자리의 중간에 해당된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에 중국과 조선의 별자리를 바탕으로 몇 개의 별자리를 추가하여 독자적인 천문도를 제작하기도 하였으나, 사용된 기간은 길지 않다. 조선의 문물이 전해지면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본뜬 천상열차지도와 천문분야지도가 그려지기도 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별들은 중국의 별자리 그림과는 달리 실제 밝기에 따라 그 크기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4] 하지만, 이들 별자리를 현재의 하늘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종 12년(1861년) 남병길이 중국 청나라의 별목록인 《흠정의상고성 속편》에 수록된 별의 위치를 토대로 세차운동을 보정하여 《성경(星鏡)》을 제작하였다.


조선의 옛 별자리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삼국시대 이전에 기원하여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졌던 궁중 천문학의 흐름이 끊겼고, 이후로 서양 천문학이 교육. 보급되면서 옛 별자리 체계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전통이 단절되면서 일반인들로부터도 멀어졌다. 현재는 무속이나 역사에 기록된 천체의 기록을 참조로 하는 천문학 연구에 필요에 따라 사용된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