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조선 강역의 혼란

한부울 2009. 8. 15. 18:49

우리나라 `금`이 없다?…외환보유액 0.2% 불과 http://blog.daum.net/han0114/17049371 

동서양 史料로 본 Corea, Korea 연원 http://blog.daum.net/han0114/17047810

(가칭)대륙조선강역도  http://blog.daum.net/han0114/1645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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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大明一統志는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많은 지리지이다.

강역지도에서 방향을 남을 위로 두고 본 것인지 아니면 북을 위로 두고 본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대체적으로 서양 고지도는 北向을 위(上)로 둔다.

동양 고지도 중 南向을 위로 둔 경우도 없지 않다.

北向을 위(上)로 하면 좌(左)가 서쪽이고 右는 동쪽이다.

좌우(左右)는 북을 위로 두고 볼 때와 남을 위로 할 때가 지명 위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 기록이 주는 혼란이다.


王京...左江原右黃海...즉


왕경을 기준으로 하여 좌는 강원이고 우는 황해라 했다.

좌가 서쪽인가 동쪽인가?

풀어야 할 혼란이다.

지도상에서 북을 위로 두고 볼 때 좌는 분명하게 서쪽이 된다.

예로부터 금이 많이 생산되는 곳을 대륙 금산이라고 하는데 바로 알타이산맥이다.

세종지리지에서는 그곳을 강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왕경을 지금의 서안을 기준으로 할 때 강원은 서쪽이 되어야 옳다.

그러나 소재집(疎齋集)이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는 강원을 동쪽으로 두었다 한다.

만약 위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1600년경에 이야기는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1600년 이전까지 금 생산지로 유명 한 곳은 분명 금산이고 알타이다.

지금의 신강성지역에 강원도 금산인 알타이산맥이 있어 왕경에서 오른쪽인 右가 되려면 왕경은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 근역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후 조선이 인조반정을 거치면서 정묘, 병자호란을 핑계삼아 후세사가들은 의도적으로 지명 조작하여 강원도는 지금의 산동성 방면으로 지명 이동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대륙조선연구회 자료에는 몽골어로 좌측(동쪽)은 준쭉, 우측(서쪽)은 바론쭉 이라 발음한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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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곤선생의 대륙조선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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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강역의 혼란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1693) 

저자 : 신경(申炅)  

생년 : 1623 

몰년 : 1653 

 

재조번방지 2(再造藩邦志 二) 


蓋王京爲我國都會。左江原右黃海。東慶尙南全羅。咸鏡忠淸爲之猗角。頗據有天險。而天兵連勝。亦有輕敵之心。人頗憂之。提督先遣査大受。哨探前路。提督亦自繼發。二十五日。入開城府。


대개 서울은 우리나라의 도회지로, 왼쪽에는 강원도, 오른쪽에는 황해도, 동쪽은 경상도, 남쪽은 전라도가 있으며 함경도와 충청도가 서로 호응하는 형세로 되어 있어 천연의 요지를 차지하였는데, 명나라 군사가 잇달아 이겨서 또한 적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지니 사람들이 매우 근심하였다. 제독이 먼저 사대수(査大受)를 보내어 앞길을 정찰하고 제독도 자신이 이어 떠나서 25일에 개성부에 들어왔다.


半島史에 따른 해석의 오류

大明一統志도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기록에 명이라고 명시하지 않았음에도 천병(天兵)을  明軍이라고 해석한다.

해석을 마음대로 추측하고 마구 갖다붙여도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천병(天兵)은 조선의  先朝 고려의 병사일 수 있다.

적어도 고려가 임진왜란 시점까지 음양으로 존재했다는 자료가 없지 않다.

중국을 天子國이라고 했다면 실체는 바로 고려이고 이은 조선이어야 한다.

고려와 조선은 사이(四夷)의 존경을 받았던 삼한의 실체이다.

삼한(三韓)은 萬邦의 우두머리이고 바로 중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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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집(疎齋集:1759)   

疎齋集卷之十一    

雜著     

疆域關防圖說  172_276c

이이명(李頤命) 

생년 : 1658년(효종 9) 
몰년 : 1722년(경종 2)


我國疆域。


太祖康獻大王。受天明命。定鼎漢陽。洪武二十五年壬申七月十六日。卽位于松京。越三年。定都于漢陽。疆域。因麗之舊。東南抵大海。西至鴨江。北拓地至豆滿江爲界。東西一千里。南北二千三百里。列聖相承。分域內定八道。諸道名或多變改。成宗朝以後。定今名不改。其後或以綱常罪人革邑。則改道名。處四方之中曰京畿。西南曰忠淸。東南曰慶尙。偏南曰全羅。正東曰江原。正西曰黃海。東北曰咸鏡。西北 曰平安。松京置開城府。凡京二。府四。大都護府四。牧二十。都護府四十四。郡八十三。縣一百七十三。州縣之數。中宗朝以前如此。後來陞降增减不一。卽今府五。大都護府四。牧二十一。都護府六十八。郡七十四。縣一百六十一。關防要害之地。多設僉節制使萬戶鎭權管堡。表裏山河。經緯益鞏。


八道 處四方之中曰京畿 西南曰忠淸 東南曰慶尙 偏南曰全羅 正東曰江原 正西曰黃海 東北曰永安 西北曰平安.”

사방(四方)의 한복판에 자리한 것이 경기도이며, 그 서남쪽을 충청(忠淸), 동남쪽을 경상(慶尙), 남쪽으로 치우쳐 있는 곳을 전라(全羅), 정동쪽을 강원(江原), 정서쪽을 황해(黃海), 동북쪽을 영안(永安), 서북쪽을 평안(平安)도(道)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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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1883) 

第一集雜纂集第二十五卷○小學珠串 

八道  정약용(丁若鏞) 

八之類二十條

八道 281_556b


八道者。我邦之諸藩也。中曰京畿。次南曰忠淸。古百濟又南曰全羅。東南曰慶尙。古新羅正東曰江原。次西曰黃海。西北曰平安。古句麗正北曰咸鏡。南北道卽 古南北沃沮。此之謂八道也。


八道之名。出大明一統志。其目見武備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