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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이후 조선근대사 추측
[대륙조선사연구회]2008.10.21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조부터 철종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근데 그 이후인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1934 년에 기록된 것을 보아서 일제의 조작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미루어 조선왕조는 1910년에 멸망한게 아닌 1876년에 권력을 상실한 것으로 추축됩니다. 기존역사엔 일본이 윤요호사건을 일으키자 조선왕조가 순순히 사죄하는 의미에서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일본과 격전에서 패배한 결과가 강화도 조약일 수 있습니다.
강화도조약으로 시안지역은 고립되었으며 20년 동안 서구세력과 일제, 청조를 방어하다가 1896년에 미국에게 시안시가 점령당해서 조선황실은 러시아로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그 사건이 아관파천인데 조선황실이 러시아로 도망가는 도중에서 신장성에서 갑자기 행방불명되었습니다.(아마도 미군이 중간에 납치했을 것입니다. 러시아황실이 러시아혁명 때 학살된 유도 조선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876년 이후에 조선역사는 시안시가 아닌 그 동쪽인 황하강 하류 도시인 정저우시에서 벌어진 역사로 추정됩니다. (을미사변과 을사의병은 시안시에서 벌어진 역사입니다.) 대한제국이 1897년에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실은 1876년에 정저우에서 세워졌으며 그것도 일제의 괴뢰국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1905년부터 일제가 대한제국의 권한을 해임하기 시작한 이유는 대한제국 정부가 다른 서구세력과 동맹을 맺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한제국을 따르던 독립운동세력은 을사조약 이후에 여러 차례 항일의병을 일으켰지만 번번히 패배하여 1909년에 내몽골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1910년 8월22일에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 정부가 폐지되었습니다.
한일합방 이후로 독립운동 세력은 내몽골에서 청조잔재세력과 함께 조선부활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세력의 일부는 친미하려고 했으며 그 결과 2차대전때 연합군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김구는 1945년 초에 시안시에 공수부대를 보내려고 했으나 일본이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 그것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실은 일본이 일찍 항복한 이유는 폭탄이 투하되어서가 아니고 미국의 협박과 회유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독립운동세력의 일부는 미국에 의해서 한반도로 이주했으나 1948년에 남북한 정부가 수립된 이후로 하나둘씩 피살되기 시작했고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친미세력만 남기고 반미세력은 모두 죽었습니다. 한편 한반도로 가지 못한 독립운동세력은 1949년에 모택동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이후로 소련으로부터 신만주를 할양받고 신장성, 내몽골, 티베트를 침략했습니다. 내몽골에 있던 독립운동세력은 중국공산당에 대항했으나 패전했으며 그 결과는 독립운동 세력의 절멸이었습니다.
[대륙조선사연구회]황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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