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目인가? 色目人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48535
사색(死色)되지 말라 사색당파여
[아시아문화사연구회]09.06.04 21:45
사색당파!
이런 말을 들으면 머리에 핏줄이 거꾸로 서는 것 같다. 조선의 피를 이었다면.
사람들마다 뭔가 반대론리를 펴는 것 같으면서도 끝내는 사색당파의 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조선은 우수한 인재들이지만, 하나하나 보면 그럴 뿐이지, 전체로 보면 모래알 같다. 참으로 빈정대는 말치고는 기분 나쁘다. 그런데 그런 사색 당파라는 말 가운데는 동인·서인 하다가 나중에는 노론·소론이라고 나온다. 또 우리는 색목인(色目人)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도 왔는데,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원나라 때 서역(西域) 사람들이라는 것에 주저앉아 버렸기 때문이다.
사색당파와 색목인을 함께 엮어보자.
무슨 말이 되는지 말이다.
(1) 임금[세종]이 우찬성 황보인(皇甫仁)과, 도승지 리승손(李承孫) 등에게 "몽고(蒙古) 색목인(色目人)은 원조(元朝)의 외척이다."고 말했다.
[上謂右贊成皇甫仁都承旨李承孫等曰 蒙古色目人, 是元之外戚也.][世宗 105卷, 26年(1444 甲子, 正統9) 7月 8日(乙卯)]
1444년에 세종대왕이 황보인·리승손 등을 불러 말했던 것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몽고는 색목인이고, 그 몽고가 원조의 외척이다"고 한 것이다.
몽고는 무엇이며, 원조(元朝)는 무엇인가?
몽고의 부족이 나라를 세운 것이 원(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몽고가 원조의 외척이라?
(2) 처음에 경재(卿宰) 가운데 소론 색목인(少論色目人)을 입시하라고 명하였다.
[初命卿宰中少論色目人入侍.][正祖 2卷, 卽位年(1776 丙申, 乾隆41) 9月 22日(庚寅)]
여기서 경재는 좌의정 김상철(金尙喆), 인양군(仁陽君) 리경호(李景祜), 행 사직(行司直) 구윤옥(具允鈺)·서명선(徐命善), 호조 판서 정홍순(鄭弘淳), 행 사직 한광회(韓光會)·윤동섬(尹東暹)·리휘중(李徽中), 리조 판서 리중호(李重祜), 례조 판서 정상순(鄭尙淳), 형조 판서 리복원(李福源), 행 부사직 안집(安)·윤득양(尹得養)·리재간(李在簡)·리재협(李在協)·정호인(鄭好仁)·서회수(徐晦修)·송순명(宋淳明)·한성 우윤 정창순(鄭昌順), 리조 판서 서호수(徐浩修), 행 부사직 구익(具?)·정창성(鄭昌聖)·성천주(成天柱)·송문재(宋文載)·형조 참판 정만순(鄭晩淳), 행 부사직 김로진(金魯鎭)·리성규(李聖圭)이다.
1776년에 정조대왕이 위의 재상들 가운데서 소론을 불렀다. 그 소론이 색목인이라는 것이다.
소론이 색목인이라!?!
그렇다면 색목인, 그 소론을 어떻게 선발했을까?
(3) 지치(至治) 원년(1321, 충숙왕 8)에 나 또한 외람되이 원나라에서 시행되는 회시(會試)에 응시한 적이 있었는데, 이해에 응시자가 정원을 채우지 못해 좌방(左榜)에 오른 자가 겨우 43명이었다.
[復記在至治元年. 亦自猥濫與計而偕. 是年擧子尙未滿額. 登左榜者才四十三人.][졸고천백(拙藁千百)제2권 사명(使命)을 받들고 왔다가 원나라 조정으로 돌아가는 리중보(李中父)를 떠나보내며 주는 글(送奉使李中父還朝序)]
여기에 과거시험 회시에서 좌방에 붙은 자가 43명이란다.
그럼 "좌방"이란 또 무엇인가?
(4)《원사(元史)》 선거지(選擧志)에 의하면, 원나라 때에 과거 합격자의 방을 게시하면서 좌우로 두 개의 방을 붙였는데, 지배층인 몽고인(蒙古人)과 터키ㆍ이란ㆍ유럽 등의 색목인(色目人)을 우대하여 우방(右榜)에 게시하고 금(金)나라 유민인 화북(華北)의 한인(漢人)과 남송(南宋)의 유민인 강남(江南)의 남인(南人)은 좌방(左榜)에 게시하였다. 고려인이 좌방에 게시된 것으로 보아, 고려가 원나라로부터 우대를 받는다는 최해의 형식적인 표현과 달리 실제로는 중하등의 대우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동문선》에 수록된 동일 작품에는 '룡방(龍榜)'으로 되어 있다.[위의 문헌 각주]
자! 여기에서 잘 보자.
좌방과 우방이 있다.
좌방은 몽고인·터키·이란·유럽 등이 색목인이다. 이 색목인은 우대받았다.
우방은 화북의 한인(漢人)·강남의 남인(南人)이다. 漢人은 금(金)나라의 유민이고, 南人은 南宋의 유민이다.
《元史 卷81 選擧志1》에 보면, 우방(右榜)에는 몽고인과 유럽 계통의 색목인(色目人)을 게시하였고, 좌방에는 화북(華北)의 한인(漢人)과 강남(江南)의 남인(南人)을 게시하였는데, 고려인은 좌방에 속하였다.《元史 卷178 梁曾列傳》에 보면, 원나라는 우측을 중시하며 숭상하였다. 량증(梁曾)이 안남(安南)에 사신으로 가서 이른바 '우측을 숭상하는 새 조정의 예법〔新朝尙右之禮〕'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방이니, 우측은 서쪽이다.
좌방이니, 죄측은 동쪽이다.
서인(西人)·동인(東人)이니 하는 말들은 우방·좌방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그래서 소론이 색목인이라고 했으니, 그 소론이 어디에 있는 사람들일까? 그 색목인이 또 어디의 사람들이라고 했던가? 조선의 력사에서 말이다.
그들은, 다시 말하지만, 몽고·터키ㆍ이란ㆍ유럽 등의 색목인이었다.
남인·북인·노론·소론!
많이도 듣던 이름인데, 그 가운데에 '소론'이 여기서 언급이 된다.
(5) 척계광(戚繼光)·리성량(李成梁)의 지나간 자취가 생각하면 어제 같은데, 청(淸) 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여 몽고(蒙古), 회회(回回) 등의 여러 부족들을 섞어서 등용하니, 조정의 태반(太半)이 색목인(色目人)이다. 중화(中華)의 이로움을 외이(外夷)와 더불어 함께하므로, 변방의 소요를 경계하지 않은 지가 이미 100여 년이 되었다.
[戚繼光李成梁之往跡. 想像如昨. 淸有天下. 參用蒙回諸部. 朝廷太半是色目人. 以中華之利. 與外夷共之故. 邊塵之不警. 已百餘年.][燕行紀 卷1 경술년(1790, 정조 14) 七月 四日壬]
이『연행기(燕行紀)』의 1790년 7월 4일의 기록을 보면, 몽고족·회회족 등이 벼슬아치로 등용이 되었는데, 그들은 색목인이고, 중국의 조정은 그 색목인이 차지한 것이 태반이나 되었다고 했다.
이 시기는 조선의 정조 때 아닌가?
이 글이 실린 시기의 말들에서 보면, 위의 (5)는 조선의 조정이 아니고, 청조이기 때문에 조선과는 관계없는 것일까? 그 청조가 무엇일까?
[아시아문화사연구회] 최두환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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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지킴이
당파(黨派)! 조선역사와 언제나 함께두는 이 말! 이 허구의 껍질이 깨지고 있습니다. 이 껍질은 우리역사 곧 아시아역사의 전반에 덮여있는 정신적인 감옥입니다. 지금 우리 글방님들이 날선 검으로, 벽력 같은 사자후로 이 허구를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09.06.05 00:24
서우성
몽고가 원조의 외척이라는 말은 몽교=색목, 원조=고려. 즉 충렬왕, 충선왕... 이후 부터는 고려왕(황제)의 외가가 됩니다. 09.06.05 09:41
과거시험 회시에서 좌방에 붙은 자가 43명이라는 말은 적다는 의미입니다. 원사에 보면 몽골과 색목은 시험이 쉬운반면, 글자수도 500자 내외, 한인과 남인은 어려우면서도 1000자 내외의 글을 채워야 합니다. 당연히 불공평하다보니 좌방이 어려워서 합격자가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09.06.05 09:44
영남사림으로 동인이 먼저 있었다가 ( 원조때에는 색목인(우방=서방=서인의 원조)이 득세하였으나 조선(명조)이 생기고 부터는 대 통합을 하였으나 나중에 영남사림이 우세하였음.(좌방=동방=나중에 영남사림= 동인) 동인이 다시 나누어져서 남인, 북인으로 나누어졌으며 이들이 선조 광해 이전의 당파의 형성이었으며 인조 효종이후로는 남인과 서인(인조반정이후로 득세)으로 대립하다가, 숙종이후로 초기의 동인계열인 남인은 거의 중앙에서 몰락하고 서인계열인 소론과 노론이 득세하였다. 노론과 소론은 서인계열이기 때문에 조선 후기- 대한제국까지 이어지는 것.(색목인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임) 09.06.05 09:58
김재만
흐름을 이해하니 한 눈에 들어오는 군요... 09.06.05 14:08
이태수
청(淸) 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여 몽고(蒙古), 회회(回回) 등의 여러 부족들을 섞어서 등용하니, 조정의 태반(太半)이 색목인(色目人)이다.: 회회인은 터어키인을 가리킵니다. 몽고는 터어키 주변에 있는 부족임에 틀림없습니다. 오스만 터어키의 북동쪽에 몽고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09.06.06 04:51
김재만
예전에 보던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유럽의 전설중 나라가 어지러울때에는 북방의 군대가 들어온 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09.06.0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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